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1. 개요
2002년부터 2013년 12월 16일까지 WWE에 존재'''했던''' 챔피언십으로 WWE 챔피언십과 함께 WWE의 양대 1선급 헤비웨이트 챔피언[1] 중 하나'''였'''다.
WWE에 소속된 프로레슬러들이 꿈꾸는 큰 목표들 중 하나였을 정도로 큰 영예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에는 WWE 그리고 매니아층 사이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가치와 존재 의의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을 정도로 실질적인 지위가 하락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부분은 항목 밑 "가치 하락 논란" 참조.
2013년 12월 15일, WWE 챔피언십과 통합되었다. WWE는 WWE 챔피언십과 타 챔피언십의 통합 사례들처럼 새로운 통합 챔피언십인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은 WWE 챔피언십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가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1년 WCW 챔피언십의 폐지 이후, 2002년부터 11년간 양대 월드 챔피언십의 지위를 지키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은 마지막 챔피언 랜디 오턴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타이틀 벨트 (일명 Big Gold Belt)는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타이틀 벨트로서 기존의 WWE 챔피언십 벨트와 함께 모습을 보이다가[2] 섬머슬램 2014 다음 날 RAW에서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로고 변화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란 명칭 자체는 NWA에서 유래했다. NWA 체제가 프로레슬링 그 자체이던 1980년대까지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그냥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라 부를 정도로 타이틀의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향으로 21세기에도 일부 프로레슬링 단체들은 단체의 메인 타이틀을 호칭할 때 그냥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가치가 떨어진 1990년대 초반까지도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디자인이 빅 골드 디자인이었는데,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과 WWE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디자인의 원조였다.
2. 역사
2.1. 탄생
2002년 섬머슬램 이후, WWE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이었던 브록 레스너가 스맥다운과 단독 계약을 맺고 스맥다운으로 이적해버린다. 당시 통합 챔피언은 양쪽 브랜드의 TV쇼에 모두 출연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단독 계약을 맺어버린 탓에 RAW에는 월드 챔피언급의 챔피언이 없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당시 RAW의 단장이던 에릭 비숍은 WCW의 챔피언 벨트[3] 를 WWE로 들고 오게 되는데 이를 WCW 챔피언십이 아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으로 명명한 뒤 초대 챔피언으로 당시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십 넘버원 컨텐더 트리플 H를 지명, 그에게 수여하면서 챔피언십을 신설하게 된다. WCW 챔피언십과는 디자인만 비슷하고 완전히 다른 챔피언십이다.[4]
2.1.1.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
스토리상 WWE 챔피언십이 스맥다운의 메인 타이틀로 확정되면서 WWE는 이와 동격으로 취급할 월드 챔피언십을 두고 여러 개의 대안을 내놓게 된다. 처음에는 WWE 내에서 화려한 역사를 지닌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을 월드 챔피언급으로 위상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빈스 맥마흔을 비롯한 일부 수뇌부들이 "너무 #2 벨트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유로 취소시켰다.[5]
결국 벨트를 신설하는 쪽으로 결정하고 당시로부터 1년전 사용한 WCW 챔피언십의 챔피언 벨트만 디자인을 약간 수정한 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새로운 월드 타이틀로 만들었다.
벨트가 처음 생길때 명칭과 디자인때문에 거센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당시 WWE 내에 존재하던 다른 타이틀(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제외)과 달리 WWE라는 명칭이 붙지 않던 벨트였기때문이다. 사실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나 WWE 태그팀 챔피언십이 신설됨으로 인해 브랜드간 벨트 이름 통일을 위해서 이름을 바꿨을뿐 원래는 WWE 태그팀 챔피언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걸 감안하면[6]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은 특이한 케이스였다.
게다가 벨트 디자인은 과거 NWA 월드 챔피언십이나 WCW 인터내셔널 월드 챔피언십, WCW 챔피언십의 디자인인 '''Big Gold Belt'''이기에[7]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과거의 벨트들의 역사를 승계한 것으로 혼동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이런 논란이 있음에도 WWE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는데 일단 명칭의 경우 '''마땅히 붙일 명칭이 없다는 점이 컸다.'''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이미 WWE 챔피언십이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WWE라는 명칭을 달 경우 WWE 챔피언십보다 급이 낮은 느낌이 들 수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도 나름 대륙간 챔피언인데 빈스에게 까인걸 보면...
그리고 과거의 챔피언십 역사를 승계했단 혼동을 막기 위해서 역대 챔피언 목록도 독자적으로 새로 쓰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美주류레슬링의 정통성과 상징성을 그냥 놓치긴 싫었는지, 2009년에 NWA 시절과 WCW 챔피언십 내용을 모두 포괄한 '히스토리 오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DVD'를 발간, 사실상 과거의 역사를 승계했다고 선포해버린다.
2.2. 2011년 이후 가치 하락 논란
실상 챔피언십 창설 때부터 가치 하락 논란을 피하지 못했는데, 초대 챔피언을 경기로 뽑은것도 아니고 당시 RAW 단장이었던 에릭 비숍이 트리플 H에게 그냥 거저 줘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에 숀 마이클스와 골드버그에게 잠깐 넘겨줬던 시기를 제외하면 장장 '''447'''일동안 벨트를 독점했기 때문에 이 당시 트리플 H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까이고 수많은 안티를 양산하며 벨트까지 평가절하당했다.
그래도 명목상으로 WWE 챔피언십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고, 한동안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PPV의 메인이벤트 슬롯을 연속해서 배정받으며 [8] WWE 챔피언십보다 더 대우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즈음 스맥다운의 월드 챔피언십으로 몇 년 동안 고정되어버린 이후, [9] WWE 챔피언십에 비해 푸대접을 받기 시작하더니 아예 PPV의 오프닝 매치로 밀려버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는 WWE가 스맥다운보다는 메인 쇼인 RAW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쏟은 탓.
2005년경 벨트의 가치가 절정기일 당시의 모습. 메인 플레이트의 끝부분이 거의 명치 아래까지 온다.[10]
[image]
스맥다운으로 이동된 이후, 벨트 위상의 전성기를 상징하던 언더테이커의 챔피언 시절.
[image]
존 시나가 알베르토 델 리오를 꺾고 챔피언에 등극해 기뻐하는 모습. 폐지 직전의 벨트 모습인데, 이전보다 크기가 장난감 수준으로 줄었다.
벨트 자체의 크기 또한 빅 골드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축소되어 그야말로 '미니어쳐 벨트'가 되어버려 특유의 위압감도 없어져버렸다.
단 위의 존 시나때 벨트 크기 변경은 존 시나가 빅 골드 벨트가 너무 무겁다고 크기를 줄여 달라고 해서 만들어진 존 시나 전용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라는 것이다.[11]
2011년 8월 이후. WWE의 양쪽 브랜드간 로스터가 통합되어버리면서 [12] 특정 브랜드에서만 챔피언십이 방어 가능하던 제약이 풀렸으나, 여전히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메인이벤터들의 대립이 주가 된 WWE 챔피언십에 비해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은 한 단계 아래인 하이미드카더 선수들이 도전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 심지어는 챔피언십 도전권을 얻을 수 있는 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도 WWE 챔피언십 도전권이 걸린 경기에 비해 지위가 낮은 선수들이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 대거 출전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말만 월드 챔피언십이지 No.2 챔피언십이나 다름없다."며 챔피언십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반응이 늘어났고, 심지어는 인터콘티넨털 챔피언십이나 WWE US 챔피언십과 동급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2011년을 특정해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의 가치 하락 논란이 심해진 것은 에지의 은퇴 문제가 가장 컸다.
2011년 4월 목 부상으로 은퇴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최다 월드 헤비 웨이트 챔피언으로 빅 골드 벨트의 상징이 되었으나, 에지의 은퇴 이후 존 시나와 랜디 오턴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메인이벤터가 벨트를 차지 못했다.
결국 에지를 대체할 수 있는 메인이벤터가 나오지 못해,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은 에지 이후 크리스찬이 잠깐 차다가 마크 헨리나 빅 쇼, 셰이머스등의 선수가 차게 되었다.
그나마 이런 갑론을박 중에도 팬들 대부분이 공감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긍정적인 부분은 "새로운 메인 이벤터급 선수 양성"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점이다. 경기력이 뛰어나거나 특출난 캐릭터를 지니며 매니아 층에서는 높은 호응을 받았음에도, 머챈다이즈 판매량이 적거나 기존의 메인 이벤터들의 인기에 밀렸던 선수들이 이 타이틀을 획득한 후, 메인 이벤터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측에서도 적은 관심을 주다보니, 호응 부족으로 인한 악영향의 부담 역시 적었기때문에 가능하던 사례. 성공적인 사례로는 CM 펑크, 대니얼 브라이언이 있다.
WWE 측에서도 이를 의식한 것인지 두 명의 월드 챔피언이 맞대결하거나, 엮이게 되는 경우 비슷한 비중으로 프로모를 내보내며 똑같은 위치의 월드 챔피언임을 계속 강조했다. 게다가 2013년 말에는 상대적으로 타이틀 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존 시나'''가 챔피언에 등극했다. WWE는 이를 통해 스맥다운의 시청률 그리고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가치 상승을 노렸으나.....
2.3. 폐지
이는 3개월도 가지 못하고 (...) WWE는 두 개의 월드 챔피언십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결국 2013년 12월 15일, TLC 2013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은 WWE 챔피언십과 통합되었다. 당일 새로운 통합 챔피언 랜디 오턴이 탄생했는데, WWE는 그 다음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기존의 챔피언십 항목에 속해있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페이지를 "'''폐지된''' 챔피언십 (Retired Championship)" 항목으로 이동시키며 챔피언십 폐지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1년 WCW 챔피언십의 폐지 이후, 2002년부터 11년간 양대 월드 챔피언십의 지위를 지키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은 마지막 챔피언 랜디 오턴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빅 골드 벨트 자체는 섬머슬램 2014 다음날의 RAW에서 새 벨트로 교체될 때 까지 같이 사용되었다.
여담으로 WWE.com에서 진행하는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챔피언 벨트 중 1위를 차지했다.
통합된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다시 WWE 챔피언십으로 명칭이 변경됨에 따라 2016년 7월 RAW와 스맥다운의 브랜드 분리로 인해 부활 가능성이 유력해진 챔피언십이다. 현 WWE 챔피언 딘 앰브로스가 스맥다운의 지명을 받아 이 벨트가 부활한다면 RAW쪽으로 갈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국 부활하지 않고 WWE 유니버설 챔피언십이라는 챔피언쉽이 탄생된다.
3. 기록
4. 역대 챔피언 목록
- 현재 챔피언이나 최다 횟수, 최장 보유 기간 등 중요한 부분에만 강조 표시.
[1] WWE에선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과 '''월드 챔피언'''은 다른 개념이다. 월드 챔피언은 WWE 챔피언과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포괄한 개념이다. 과거의 WCW 월드 챔피언도 이쪽에 포함이 된다. 예를 들어 에지는 4회 WWE 챔피언과 7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의 경력을 통해 11회 월드 챔피언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레이 미스테리오가 챔피언이었을 당시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월드 챔피언'으로만 불렀는데 아마 레이 미스테리오의 가벼운 체구가 '헤비웨이트'라는 단어랑 어울리지 않아서인 듯하다.[2] 2001년 언디스퓨티드 챔피언 (통합 챔피언) 탄생에 따라 WWF 챔피언십과 통합되어 사라진 WCW 챔피언십도 2001년 12월에 폐지되었으나 타이틀 벨트는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십의 새로운 타이틀 벨트가 탄생하기 전인 2002년 3월까지 모습을 보였다.[3] 그 부커 T가 현역시절 지겹게 외쳐댔었던 Five Time!x5을 의미하는 타이틀이 바로 이거다.[4] WCW 챔피언십은 2001년 12월 WWE 챔피언십과 통합되면서 폐지되었다. 마지막 WCW 챔피언은 당시 첫 통합 챔피언에 오른 크리스 제리코.[5] 당시 인터콘티넨털 챔피언은 RVD. 잘하면 그의 커리어 첫번째 메인 타이틀 등극을 꽤나 앞당길 수도 있었다.[6] 2002년 11월 당시 RAW의 남성 타이틀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과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이 존재했고 스맥다운은 WWE 챔피언십과 WWE 태그팀 챔피언십 그리고 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이 있었다. 즉, RAW는 '''월드''', 스맥다운은 '''WWE'''의 앞글자를 붙여서 통일성을 주었다. 몇년 후 WWE 드래프트로 인해 몇몇 벨트의 소속 브랜드가 바뀌게되었지만 모두 벨트의 명칭에 익숙해진지 오래인 관계로 명칭은 그렇게 굳어졌다.[7] 물론 차이는 있다.[8] RAW의 전속 월드 챔피언십일때나, 2009년 제프 하디와 CM 펑크의 대립 당시.[9] RAW에 속했었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스맥다운에 이동한 시기는 2009년 중순 드래프트 때이지만 위에 언급된 제프와 펑크의 대립, 언더테이커나 제리코 등 메인이벤터들의 챔피언 등극으로 월드 챔피언으로서의 지위에는 변함이 없었었다.[10] 당시 트리플 H의 200일을 넘기는 장기집권으로 인해, 바티스타가 그를 꺾고 챔피언에 오를 때에 벨트의 위상은 어마어마하게 높았었다.[11] 실제로 WWE 챔피언 벨트는 당시 챔피언의 요청에 따라 크기 조정이 가능하다. 헐크 호건도 WWE 언디스퓨디드 챔피언 시절, 벨트가 너무 커 고간에 걸린다고 사이즈를 줄여서 차고 다녔다.[12]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브랜드 별로 분리되있던 로스터들을 "Superstars" 항목에 통합.[13] 당시 RAW 단장 에릭 비숍의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수여로 첫 챔피언 등극이 이루어졌다.[14] 크리스 제리코(당시 WWE 월드 태그팀 챔피언), 부커 T, RVD, 케인까지 참여한 최초의 엘리미네이션 챔버 매치에서 승리. 이때 제리코 입장 시 당시 쓰던 테마곡인 Saliva의 "King of My World"가 즉석 라이브로 흘러나왔다. # 참고로 이 날 Saliva는 서바이버 시리즈 2002의 테마곡인 "Always"도 라이브로 불렀다.[15] 3판 2선승제 경기에서 승리.[16] 골드버그가 지면 은퇴해야한다는 조건이 걸렸던 경기.[17] 케인까지 참여한 3자간 경기에서 승리.[18] 숀 마이클스까지 참여한 3자간 경기에서 승리. 경기 후 WWE 챔피언 에디 게레로가 나와서 축하해줬다.[19] 랜디 오턴은 이날 챔피언 등극으로 인해 '''WWE 역사상 최연소 월드 챔피언'''의 기록을 세웠다.[20] 에지와 크리스 벤와가 참여한 3자간 타이틀전에서 벤와와 에지가 서로 핀폴과 서브미션 승을 거두는 애매한 상황이 나옴에 따라 빈스에 의해 공석 처리.[21] 크리스 벤와, 크리스 제리코, 랜디 오턴, 바티스타, 에지까지 참여한 일리미네이션 챔버 매치에서 승리. 특별 심판: 숀 마이클스.[22] 이후 6월 30일 스맥다운으로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스맥다운에 있었던 WWE 챔피언인 존 시나가 RAW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중 2005년 11월 각본상 에디 게레로의 챔피언 등극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기당일 아침에 일어난 본인의 사망으로 무산[23] 바티스타의 삼두근 파열 부상으로 인해 공석 처리.[24] 20인 배틀 로얄에서 우승.[25] 랜디 오턴까지 참여한 3자간 경기에서 승리. 레이가 타이틀을 보유한 기간에는 '''월드 챔피언십'''이란 명칭이 사용되었다.[비고] A B C D E F G 머니 인 더 뱅크가 사용되었다.[26] 에지의 대흉근 부상으로 인해 공석 처리.[27] 20인 배틀 로얄에서 우승.[28] 레이 미스테리오까지 참여한 3자간 경기에서 승리.[29] 언더테이커까지 참여한 3자간 경기에서 승리.[30] 당시 스맥다운 단장이었던 비키 게레로가 언더테이커의 서브미션 피니시였던 헬즈 게이트의 위험성을 문제삼아 타이틀 박탈.[31] 언더테이커와의 TLC 매치에서 승리.[32] JBL, 바티스타, 레이 미스테리오, 케인과의 챔피언십 스크램블 매치에서 승리. 당일 방어전을 치뤄야 했던 CM 펑크가 레거시 일당에게 공격을 당해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자 제리코가 대타로 투입되었다.[33] 스틸 케이지 매치에서 승리.[34] 크리스 제리코, 레이 미스테리오, 마이크 녹스, 케인이 참여한 일리미네이션 챔버 매치에서 승리. 원래 당일 첫 경기로 펼쳐진 WWE 챔피언십 일리미네이션 챔버 매치에서 타이틀을 잃어버린 에지였지만 당일 메인이벤트인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일리미네이션 챔버 매치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코피 킹스턴을 공격하고 대신 경기를 하게 된다. 참고로 에지는 역사상 하루에 일리미네이션 챔버 경기를 두 번 가진 유일한 선수이다.[35] 빅 쇼까지 참여한 3자간 경기에서 승리.[36] 라스트맨 스탠딩#s-1 매치에서 승리.[37] 래더 매치에서 승리.[38] TLC 매치에서 승리.[39] 헬 인 어 셀 매치에서 승리. 그리고 '''최고령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나이 44세 194일. 한국 나이로 45세. 1962년생이라는 설을 적용하면 47세 194일, 한국 나이로 48세가 된다.[40] 존 모리슨, R 트루스, CM 펑크, 레이 미스테리오까지 참여한 일리미네이션 챔버 매치에서 승리.[41] 빅 쇼, CM 펑크까지 참여한 4자간 경기에서 승리. 역시 이 때도 월드 챔피언십이란 명칭을 사용했다.[42] 알베르토 델 리오, 레이 미스테리오까지 참여한 4자간 TLC 매치에서 승리.[43] 당시 스맥다운의 임시 단장 비키 게레로가 WWE 로얄럼블(2011)과 2월 11일 방영분 스맥다운에서 열린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서 에지가 "경기 내에서 금지된 스피어"를 사용했다며 에지를 해고시킨 뒤, 벨트를 '''억지로''' 돌프 지글러에게 넘기고 이날 돌프의 챔피언십 등극 세레머니를 가진다.[44] 테디 롱 단장이 나와 돌프 지글러가 자신을 습격했다고 하며 에지를 복직시키고 타이틀전을 마련했다. 에지는 이에 힘입어 타이틀 획득. 덤으로 최다 획득 기록까지 갱신했다.[45] 에지의 부상 후유증에 따른 은퇴로 인해 공석 처리.[46] 알베르토 델 리오와의 래더 매치에서 승리. 이 날 승리로 크리스찬은 데뷔 17년만에 첫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동시에 그랜드슬램 달성.(과거 기록인 하드코어 챔피언 기록이 인정되므로)[47] 랜디 오턴에게 침을 뱉자 분노한 오턴이 로블로를 날리면서 DQ승. 하지만 경기 조항에 'DQ로도 타이틀이 변동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놨기에 챔피언이 되었다.[48] 노 홀즈 바드 매치에서 승리.[49] 이 날 승리로 헨리는 데뷔 15년만에 첫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50] 마크 헨리와의 체어 매치에서 승리. 그러나 이후 헨리가 빅 쇼에게 체어 위에 DDT를 시전했다.[51] '''"18초"만에 타이틀 획득(...)'''[52] 이로서 빅 쇼는 45초 챔피언이라는 오명을 벗어났다.[53] 빅쇼와의 라스트맨 스탠딩 매치에서 승리해 첫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 획득. 덤으로 간만에 '''"TV 쇼에서 타이틀이 변동"'''되었다.[54] 이 날 잭 스웨거 & 잽 콜터와의 핸디캡 매치로 인해 지쳐있던 델 리오에게 '''마침내''' 캐싱인을 하여 성공했다. [55] 아무래도 지글러의 부상 덕에 이런 결과가 나온 듯 하다. 얄궂게도 AJ는 디바스 타이틀을 먹었다.[56] WWE 챔피언십과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이 동시에 걸린 통합 챔피언십 경기에서 랜디가 승리하며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57] WWE 챔피언십과 통합된 다음 날,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폐지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