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대군

 



'''조선 세종의 왕자'''
'''평원대군
平原大君'''

'''군호'''
평원대군(平原大君)[1]
'''시호'''
정덕(靖德) → 정헌(定憲)
'''본관'''
전주(全州)
'''이름'''
림(琳)[2]
''''''
진지(珍之)
''''''
근행당(謹行堂)
'''부왕'''
조선 세종
'''모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부인'''
강녕부부인 남양 홍씨(南陽 洪氏)
'''묘소'''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이곡리
'''생몰
기간
'''
'''음력'''
1427년 11월 18일 ~ 1445년 1월 16일
'''양력'''
1427년 12월 6일 ~ 1445년 2월 22일
1. 개요
2. 생애
3. 사망
4. 여담
5. 가족과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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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소헌왕후 심씨의 7남이다.[3]

2. 생애


1434년(세종 16년)에 평원대군으로 봉해졌다.# 1437년(세종 19년)에 종학에 입학하였고 이듬해에 호군 홍이용의 딸과 혼인하였다.#
평소에 경서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시전》과 《예기》, 《대학연의》를 숙달했다고 한다. 무예 연마에도 힘써서 활쏘기승마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성품 또한 겸손하고 조용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3. 사망


1445년(세종 27년) 2월 22일에[4] 천연두로 17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5] 다섯째 형 광평대군이 죽은 지 한 달밖에 안 된 때였다. 세종소헌왕후는 잇따른 아들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는 세종이 말년에 불교에 심취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이곡리에 있다.

4. 여담


  • 평원대군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묘소 근처에 별궁으로 세운 것이 수진궁이다. 이 수진궁은 나중에 평원대군의 봉사손이 되는 제안대군의 집으로 옮겨져 봉작을 받기 전에 사망한 왕자녀 및 혼인 전에 사망한 12세 이하의 어린 공주옹주들의 제사를 같이 모시는 곳이 되었다.

5. 가족과 후손


부인인 강녕군부인 남양 홍씨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예종의 아들이자 평원대군에게는 조카손자인 제안대군이 그의 봉사손으로 입적했다. 양자로 들어갔다는 말도 있지만, 항렬 상 맞기 않기 때문에[6] 봉사손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제안대군도 후사가 없었고, 이후 정종의 12남 도평군의 현손 이파(李葩)가 제안대군의 양자로 입적된다. 다만, 제안대군과 이파가 죽은 지 한참 후의 일이었다.
[1] 군호는 강원도 원주의 별칭인 '평원(平原)'에서 유래했다.[2] 야고코로 에이린의 '''린'''을 이렇게 쓴다.[3] 문종, 세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의 친동생이자 영응대군의 친형이다.[4] 음력 1월 16일.[5] 세는나이 19세.[6] 평원대군은 제안대군의 작은할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