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1/1999시즌
1. 1999년 그랑프리
1.1. 1999년 캘린더
2. 메디컬 카
3. 경기 결과
3.1. 1전 호주 GP
3.2. 2전 브라질 GP
3.3. 3전 산 마리노 GP
3.4. 4전 모나코 GP
3.5. 5전 스페인 GP
3.6. 6전 캐나다 GP
3.7. 7전 프랑스 GP
3.8. 8전 영국 GP
3.9. 9전 오스트리아 GP
3.10. 10전 독일 GP
3.11. 11전 헝가리 GP
3.12. 12전 벨기에 GP
3.13. 13전 이탈리아 GP
3.14. 14전 유럽(뉘르부르크) GP
3.15. 15전 말레이시아 GP
3.16. 16전 일본 GP
4. 챔피언십 포인트 순위
1. 1999년 그랑프리
1999년 포뮬러 원 시즌은 50번째 FIA 포뮬러 원 시즌이다. 이 시즌은 3월 7일 호주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10월 31일 일본 그랑프리 까지 총 16경기로 치뤄졌다. 이 시즌은 브리지스톤이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였다. 페라리가 팀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을 거두었고, 미카 하키넨이 2번째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였다. 에디 어바인이 2위, 하인츠-해럴드 프렌첸이 3위를 차지했다.
1.1. 1999년 캘린더
2. 메디컬 카
[image]
이번 시즌에는 메디컬 카의 변경이 이뤄졌는데, 지난 시즌까지 쓰이던 C55 AMG 에스테이트에서 E 55 AMG T-모델로 변경되었다.
3. 경기 결과
3.1. 1전 호주 GP
3.2. 2전 브라질 GP
3.3. 3전 산 마리노 GP
3.4. 4전 모나코 GP
3.5. 5전 스페인 GP
3.6. 6전 캐나다 GP
3.7. 7전 프랑스 GP
3.8. 8전 영국 GP
이 경기에서 미하엘 슈마허가 다리 부상으로 여러 경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코너 진입 도중, 브레이크가 고장나 빠른 속도로 타이어월을 돌진하며 들이받았던 것인데, 워낙 빠른 속도였기에 다리가 골절되었고, 결국 6경기를 결장하게 된다. 시즌 전 규정 변경으로 만들어진 차량과 타이이월이 충격을 많이 흡수해주었음에도, 슈마허가 부상 없이 빠져나올 수 있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였다.
부상으로 결장하는 미하엘 슈마허를 대신하여 미카 살로가 뛰게 되었다.
3.9. 9전 오스트리아 GP
3.10. 10전 독일 GP
미카 살로가 F1 데뷔 첫 포디움을 이 경기에서 기록하였다.
3.11. 11전 헝가리 GP
3.12. 12전 벨기에 GP
3.13. 13전 이탈리아 GP
3.14. 14전 유럽(뉘르부르크) GP
스타트 때는 상위권 대부분의 선수들이 좋은 스타트를 하며 순조롭게 첫 코너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큰 사고가 발생한다. 중위권에서 데이먼 힐의 차량이 문제가 발생하며 속도가 크게 줄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베네통 소속의 알렉산더 우르츠가 급격하게 조향을 하다가 자우버의 페드로 디니즈를 뒤집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행히 부상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세이프티카 상황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레이스 재개 후, 대부분의 선수들이 순위를 유지해가며 달려나갔다. 이때, 뉘르부르크링의 변칙적인 날씨가 트랙을 어지럽히기 시작하였다. 트랙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맥라렌의 두 드라이버는 이 상황에서 더욱 고전하게 된다. 그 상황에서 뒤 꽁무늬를 노리는 선수는 윌리엄스의 랄프 슈마허였다. 쿨싸드의 페이스가 크게 떨어지자, 랄프 슈마허는 이를 놓치지 않고 19랩 째에 무난하게 추월에 성공한다. 이에 맥라렌 팀은 작전 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 비가 더 올 것이라 예상하였고, 챔피언십 경쟁에 힘을 쓰는 해키넨에게 웻 타이어를 장착시키고 쿨싸드에게는 드라이 타이어로 유지하여 달릴 것을 주문한다. 다음 랩에, 그의 경쟁자인 어바인은 드라이 타이어로 갈아 끼우며 각기 다른 전략으로 레이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 어바인의 피트스톱에서 피트크루들이 타이어를 갈아끼우는 데에 실수를 하며 28초를 소모하게 되었다.
32랩 째에, 레이스 리더 프렌첸이 차량 문제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챔피언십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던 상황에서의 리타이어는 그가 경쟁에서 탈락하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그렇게 레이스를 리드하는 선수는 쿨싸드로 바뀐다. 쿨싸드는 드라이 타이어로 유지하며 레이스를 리드하는 중이었고, 이러한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비가 그쳐 트랙이 다시 말라가는 중이었고, 뒷 차량과의 차이를 벌리며 레이스 판도를 온전히 이끌어가고 있었다. 반대로, 웻 타이어를 장착한 챔피언십 선두 해키넨은 다시 드라이 타이어로 다시 갈아끼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고, 선두인 쿨싸드에게 백마커가 되고 말았다. 패착인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큰 변수가 발생한다. 37랩 째에, 선두 쿨싸드가 무리를 하다 3번 시케인에서 런오프하며 리타이어한다. 후미 차량 랄프 슈마허와 큰 차이로 리드하고 있었기에 매우 아쉬웠던 상황. 이제 레이스 리더는 윌리엄스의 랄프 슈마허로 바뀌게 된다. 이어 타카기와 미카 살로가 리타이어한 뒤, 11랩 뒤인 48랩 째에 이번엔 2위를 달리던 지안카를로 피지켈라가 스핀을 하며 리타이어한다. 그야말로 전쟁터가 다름없었다. 리타이어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레이스 최후반부로 접어들고, 이대로라면 랄프 슈마허의 F1 첫 우승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뒷타이어의 펑처로 피트로 복귀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을 잃었고, 우승은 커녕 포디움마저 놓치는 참담한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섹터 1을 지나 그를 추월하려는 2위권 차량들이 보이고, 레이스 리더를 차지하는 선수는 베테랑 조니 허버트였다.
53랩 째에는 가슴 아픈 상황이 연출된다. 데뷔 때부터 최하위권에서 맴돌던 루카 바도어가 데뷔 6년만에 포인트 피니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차량 뒷쪽에서 불꽃이 보이기 시작하고, 얼마 못 가 차가 퍼지고 만다. 마지막 코너에 차량을 세우고 주저앉아 그의 차량 앞에서 한참을 흐느끼는 장면은 이번 레이스의 가장 슬픈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2]
61랩 째에, 포인트권 밖에서는 챔피언 타이틀 경쟁자인 해키넨과 어바인이 배틀을 하는 중이었다. 페이스가 좋았던 해키넨은 앞서 있는 어바인을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었고, 페이스가 급락하는 어바인은 그를 방어하는 데에 급급하였다. 급기야, 이를 버티지 못한 어바인은 마지막 시케인에서 브레이크 락업이 걸리며 해키넨에게 순위를 헌납하였고, 해키넨이 속력을 높이며 5위로 2점을 얻은 반면, 어바인은 7위로 포인트를 얻지 못하였다.
레이스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스튜어트의 조니 허버트였다. 이는 허버트의 F1 커리어 마지막 우승이기도 하였으며 스튜어트 그랑프리 팀의 창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다. 이어 2위는 데뷔 3년차인 야르노 트룰리, 3위는 루벤스 바리첼로였다. 트룰리는 이 경기로 F1 데뷔 첫 포디움에 올랐다.
20세기 F1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레이스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중하위 팀들의 포디움 석권과 디펜딩 챔피언의 추월쇼는 현재까지도 몇 없을 정도로 흔치 않은 레이스라고 말할 수 있다.
3.15. 15전 말레이시아 GP
미하엘 슈마허가 오랜 재활 끝에 서킷에 복귀하였다. 복귀하자마자 폴포지션을 차지하였고, 그가 이 경기에서 맡은 역할은 챔피언십 경쟁을 펼치는 어바인 밀어주기였다. 레이스 초반 어바인이 해키넨의 추격을 받자 슈마허는 속력을 줄여 어바인을 선두로 보내고 해키넨을 막는 것에 집중하였다. 이어 피트스톱 후에도 슈마허는 어바인을 밀어주고 해키넨 막기에 집중하였고, 어바인이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경기로 이 둘의 챔피언십 포인트의 차이는 4점차이로 어바인이 앞서나갔다. 다음 최종전에서 어바인이 우승하고 해키넨이 3위로 떨어지거나, 어바인이 준우승 후 해키넨이 그보다 못한 성적을 거둔다면 어바인이 데뷔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얻는다.
3.16. 16전 일본 GP
폴포지션은 미하엘 슈마허가 차지한 가운데, 챔피언십 2위인 해키넨은 2위, 선두 어바인은 5위에서 출발하였다. 해키넨이 시작하자마자 쾌조의 스타트로 미하엘 슈마허를 추월하며 격차를 벌려놓으며 시작하였다. 이후 큰 이변없이 레이스는 이어졌고, 해키넨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미하엘 슈마허는 해키넨과 5초 차이로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어바인은 1분 35초 뒤로 피니쉬하여 3위를 차지하였다. 해키넨이 우승함으로써 어바인의 결과와 상관 없이 그의 2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해키넨의 침착한 멘탈과 퍼포먼스가 돋보인 시즌이었다. 시즌 초부터 폴포지션을 따내며 숏런에서 매우 강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레이스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들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부터 침착한 레이스 운영으로 중요한 경기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그 결과는 그의 2연속 챔피언이었다.
어바인은 여러 아쉬웠던 순간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시즌이었다. 1996년 페라리 입단 이후 줄곧 슈마허에게 밀렸던 그였지만, 이번 시즌은 슈마허의 부상과 페라리 차량의 퍼포먼스 향상으로 챔피언 자리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웠던 순간들이 여럿 있었고, 특히 지난 유럽 GP에서의 두 번의 상황[3] 은 그로 하여금 챔피언 타이틀을 놓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페라리 입장에서는 어바인이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을 놓쳐 아쉬움을 삼켰지만, 시즌 후반 슈마허의 복귀와 그의 활약, 그리고 어바인의 분투 덕에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이후 페라리는 어바인을 방출하고 스튜어트 그랑프리에서 맹활약한 루벤스 바리첼로를 영입하며 팀의 전력을 더욱 강화하였고, 이는 페라리가 6연속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따내는 준비 과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