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에드워드역

 

太子站 | Prince Edward Station
'''홍콩철도유한공사'''
프린스에드워드
太子 | Prince Edward

왐포아 방면
몽 콕
← km
쿤통선
티우켕렝 방면
섹깁메이
km →
센트럴 방면
몽 콕
← km
췬완선
췬완 방면
삼수이포
km →

'''주소'''
홍콩 구룡반도 야우침몽구 몽콕
Nathan Road × Prince Edward Road West[한문][영문]
'''개업일'''
쿤통선
1982년 5월 10일[1]
1982년 5월 17일[2]
췬완선
[image]
'''프린스에드워드역 위층 승강장 모습.'''
[image]
'''프린스에드워드역 아래층 승강장 모습.'''
1. 개요
2. 역 정보
3. 역 내부 시설
4. 역 주변 안내도 및 주변 정보
5. 여담
6. 같이 보기


1. 개요


홍콩 구룡반도 야우침몽구에 위치한 MTR 췬완선쿤통선환승역으로, 1982년 5월 17일에 췬완선 전구간 개통과 동시에 영업을 개시했다.

2. 역 정보


1982년 5월 10일 출구 없이 췬완선 - 쿤통선 환승 승강장의 목적만으로 개업하였다가, 일주일 뒤인 1982년 5월 17일, 췬완선 전 구간 개통과 동시에 영업을 정식으로 개시하였다. 생긴 이후로 야우마테이역, 몽콕역과 더불어 3연속 췬완선 - 쿤통선간의 환승역이다.
서로 반대 방향끼리의 평면환승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였으며, 실제로 췬완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까우룽통역까지 가서 동철선을 이용하기 위해 쿤통선으로 갈아타거나, 그 반대로 가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야우마테이역의 경우 평면환승이 되지 않아 이곳까지 올라와서 서로 반대 방향끼리 환승을 하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바로 위아래층 승강장이니 여기까지 올라와서 시간 낭비할 생각은 하지 말자(...).
역명은 이 역 근처에 개통한 도로인 Prince Edward Road의 이름을 딴 것인데, 이 도로 또한 에드워드 8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영문 역명과 중문 역명이 따로 노는데, 영문으로는 Prince Edward이나, 중국어 역명은 '태자'(太子) 역이다[3]. 그 이유는 에드워드 8세가 자신의 이름을 딴 도로를 건설했을 당시 왕위를 포기하고 윈저 공으로 스스로 내려갔기 때문에, 태자라는 타이틀이 굳어버린 것.[4] 애초 이 역이 개통된 시기는 에드워드 8세가 퇴임한 지 한참 지난 엘리자베스 2세의 치세였던 때인 1979년으로, 즉, 이 지하철역 자체가 에드워드 8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이 역을 시작으로 남쪽 침사추이역까지 네이던 로드(Nathan Road)가 길게 이어진다. 워낙 지하철의 수요가 높다 못해 미어터지는지라, 버스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실제로, 이 도로 상에서만 움직일 계획이라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출-퇴근시간대의 경우 안 그래도 출구도 좁고 해서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3. 역 내부 시설


[image]
'''프린스에드워드역 시설 안내도. 원본(PDF)'''
1면 2선 상대식 승강장이 위아래로 평행이 되게 배열되어 있으며, 대합실 바로 아래층 승강장에서는 췬완선 상행(췬완역 방면) 열차와 쿤통선 하행(왐포아역 방면) 열차 간의 평면환승이 가능하며, 맨 아래층 승강장의 경우 췬완선 하행(센트럴역 방면) 열차와 쿤통선 상행(티우켕렝역 방면) 열차 간의 평면환승이 가능하다. 또한, 대합실에서 맨 아래층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도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역 내에 화장실이 있으며, 개찰구역 내에 있다.

4. 역 주변 안내도 및 주변 정보


[image]
'''프린스에드워드역 주변 안내도. 필요할 경우 원본 PDF 파일을 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역세권몽콕역보다는 매우 약하다. 몽콕 지역의 북쪽 끝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새공원, 꽃시장, 금붕어시장골목 등이 근처에 있다. 조류독감중국 대륙, 베트남 등에서 유행하면 새 시장의 경우 얄짤없이 닫힌다(...). 그리고 쭉 걸어 내려오면 몽콕역 근처의 아가일 스트리트(Argyle Street)로 내려와 몽콕역, 몽콕 동역, 랭함 플레이스 등으로도 갈 수 있다! 또한, 위 언급대로 몽콕역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버스들도 상당 수 있으니 지하로 내려가는 시간이 아깝다면 버스를 이용하는것도 좋다.
여기서 구룡성채가 있던 구룡성구가 위치한 구룡 동남부로 갈 수 있는 미니버스를 탈 수 있다. 안 그래도 지하철이 들어오지 않는 동네라 이게 그나마 가까운 방법. 다만, 2021년호만틴역에서 튄마선 환승이 가능해지면 지하철 사각지대 타이틀은 뺏길 예정.

5. 여담



5.1.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2019년 8월 31일 이 역 일대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참가자 중 과격 성향 시위대가 친중파 시민 및 삼합회[5]들과 시비가 붙어 한바탕 패싸움이 벌어지고[6], 이를 진압하고자 홍콩 경찰 전투경찰대(PTU)의 폭동진압 경찰들과 경찰특공대인 CTRU 소속 체포조 랩터 소대(速龍小隊)원들이 전동차 내까지 진입해 전동차 내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끌어내고 최루액을 난사했다. 진압봉으로 매 타작까지 난무, 한 커플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가 랩터 소대원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7]
이러한 폭동적 시위진압의 결과 경찰은 역 안에서 41명의 시위 참가자들을 전원 체포했고, 몇 명은 무차별 구타로 인해 중상을 입어 후송되었다. 41명 중 과격 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고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은 평범한 시위 참가자들이었으나 싸잡혀서 같이 무력진압 당했으며 경찰들은 끌어낸 시위 참가자 및 시민들을 모두 에스컬레이터에 1렬 종대로 앉힌 후 불심검문을 거쳐 안전모, 마스크, 복면 등을 소지한 인원은 전원 체포해 갔다. 이때 역은 과격 시위대의 집기 파손으로 폐쇄된 상황이었으며, 지하철이 끊겨버리자 밖에 있던 나머지 시위대도 졸지에 갇혀 버려서 손쉽게 체포당해 총 63명이 체포당했고 그 중 최연소자는 12세 소년이었다.
이 날 시위대는 물론 시위와 무관한 시민들한테까지[8] 대대적인 폭행을 일삼은 동영상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의해 공개되었고, 시위와 전혀 상관없던 시민들까지 마구잡이로 때리고 끌어내던 야만적인 폭동적 시위진압의 모습이 홍콩인들의 공분을 사서 분노가 매우 커진 곳이다.
2019년 9월 4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이 철회되었고 전반적인 시위는 누그러졌지만, 몽콕 주민들과 학생들이 이 역에서의 홍콩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9월 6-8일 3일 간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 또다시 대량 체포사태가 발생했다. 그나마 과격 시위대와 경찰들이 모두 떠난 뒤 숨어 있다 다시 나타난 지역 주민들은 LED 촛불을 이용해 밤새 비폭력 시위를 벌이며 야만적인 폭력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프린스에드워드역 시위는 9월 15일, 9월 30일, 10월 17일, 10월 31일 등 주로 2주에 한 번씩 진행되고 있다. MTR에서는 일부 CCTV 영상을 공개했지만 '''조작 흔적이 대놓고 보이는 등'''[9] 불완전한 공개였고, 결국 홍콩 법원에 소송이 올라갔다.
이후 2020년에 들어서면서 3월 홍콩 종심법원이 CCTV의 완전한 공개를 MTR사에 요구하는 명령을 내렸다.

6. 같이 보기



[한문] 香港九龍油尖旺區旺角 彌敦道與太子道交界[영문] Nathan Road × Prince Edward Road West, Mong Kok, Kowloon City District, Hong Kong[1] 가개업일. 출구 없이 쿤통선-췬완선간 환승 승강장으로만 개업했다.[2] 정식 개통일. 췬완선 완전개통과 맞추었다.[3] 광동어 발음으론 타이지(Taaizí), 표준중국어 발음으론 타이즈(Tàizǐ)[4] 여기에는 희대의 러브스토리(?!)가 있다. 에드워드 8세 항목 참조.[5] 이들은 무기까지 갖고 있었다!!! 참고로 몽콕 쪽엔 삼합회원들이 많이 살며 영화 속 이미지와 달리 다들 식당 종업원이나 배달원, 택시기사, 미니버스 기사, 경비원 등 멀쩡한 직업을 갖고 엎드려 있다. 몽콕 쪽 훠궈 가게들은 지금도 보스들의 회동장소로 쓰인다.[6] 이 때 삼합회와 시위대 사이를 말리며 둘 사이의 충돌로 인한 불행을 방지하려 하던 청년이 있으나 둘 다 그를 외면했고 삼합회원들은 망치와 몽둥이 등 흉기를 시위대에 휘둘렀다. 만일 전면전이 벌어졌다면 우산 정도가 고작인 시위대가 또한번 7월 21일의 비극을 당했을지 모르지만 시위대도 겁 먹고 이들에 굳이 맞서지 않았다.[7] 이 때 남자가 여자친구를 껴안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경찰들이 최루액을 난사하고 남자를 여자와 떼어낸 후 뭇매를 때렸다.[8] 사실 대부분 시위와 관련없는 시민들이었다. 그래서 더욱이 홍콩인의 공분을 샀다.[9] 같은 시간에 홍콩 경찰이 진입한 열차의 반대편 열차를 찍어놓고 3분 시점에 이어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