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골란트급 전함

 


1. 제원
2. 개발
3. 특징
4. 활동
5. 최후
6. 동형함 목록
7. 관련 문서

'''Helgoland-Klasse Großlinienschiff'''

1. 제원


[image]
[image]
[image]
선행함
나사우급 전함
후계함
카이저급 전함
배수량
22,808톤(기준)
24,700톤(만재)
전장
167.2m
전폭
28.5m
흘수선
8.94m
터빈
3축 수직3단팽창 보일러
출력
27,617 마력 (20,594Kw)
속도
20.5 노트
항속거리
10노트로 5,500해리
승무원
1,113명
주포
30.5 cm SK L/50 2연장 6기 (총 12문)
부포
15cm SK L/45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8cm SK L/45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어뢰
50cm 어뢰관 6기 (총 6문)
장갑
측면장갑 80~300mm
포탑정면 300mm
장갑함교 400mm
갑판장갑 55~80mm

2. 개발


독일나사우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드레드노트급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국제정세는 좋지 못했다. 독일 제국-러시아 제국간의 관계는 비스마르크 시절과 달라졌고 외교적으로 고립된다고 생각한 러시아삼국 협상을 맺어 영국, 프랑스와 관계를 맺어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포함한 삼국 동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미국드레드노트를 보유하기 시작했고[1] 심지어 영국은 13.5인치 포로 무장한 슈퍼 드레드노트급을 건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 따라 독일 해군부는 기존 나사우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삼아 화력과 장갑을 개선하기로 결정하고 구식인 브란덴부르크급 전드레드노트 전함을 대체하기 위해 신형 전함 4척을 계획했다.[2]

3. 특징


[image]
헬골란트급의 문제중 하나인 측면 주포탑
헬골란트급은 기존의 나사우급 전함을 개량했기 때문에 나사우급의 문제점을 대부분 해결했다. 먼저 28cm(11인치)포에서 30.5cm(12인치)포로 교체하면서 화력이 증가했다. 또한 전장과 전폭, 추진기관의 출력을 늘려서 좀 더 외양항해에 적합하게 바꿨다. 배수량이 늘어나면서 포탑과 바벳도 12인치급 대응방어가 되게 강화했다. 하지만 아직도 파슨스 터빈를 사용하지 못했고[3] 포탑배치가 육각형이라서 전 포탑을 한 방면으로 사격 할 수 없어 화력은 감소되었다. 당시 브라질이 남미 군함경쟁을 하면서 미나스-그레아스급을 보유했는데 헬골란트급과 동일 개수의 12인치 포탑을 가지고 있었지만 적층식 구조를 사용해서 측면으로 전부 화력을 투사 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은 폰 데어 탄급 순양전함을 건조해서 비적층식으로도 전 화력 투사가 불가능하지 않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공간적 비효율성이 존재했고, 이 점은 카이저급 전함에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나 쾨니히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완전히 함 중앙에 모든 포탑을 배치하고 적층식 구조를 채택하게 된다. 한편 함교가 아주 두꺼운데 이점은 무게중심상의 이유로 근대화 개장을 하며 전면 200mm로 얇아지게 된다.

4. 활동


독일 제국순양전함으로 이루어진 제1 정찰함대를 이용해서 영국 해군을 도발해서 유인, 격멸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영국발트해에서 독일 순양함 SMS 마그데부르크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암호책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작전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1914년 12월, 독일이 영국 서부 일대를 포격하자 이 활동을 보고 있을 수만 없는 영국은 자국의 순양전함을 활용해서 거슬리는 독일의 순양전함을 괴멸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가 아닌 순양함과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독일의 제1 정찰함대에 걸려들어 영국 함대가 큰 피해를 입었고 히퍼 제독의 함대는 신속히 철수했다.
  •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후방에 있었던 대양함대 사령관 잉게놀 제독이 조기철수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잉게놀 제독은 나사우급 전함 4척, 헬골란트급 전함 4척, 카이저급 전함 5척, 쾨니히급 전함 4척을 지휘하고 있었고 히퍼 제독의 제1 정찰함대가 11척의 구축함과 순양함을 조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너무 빨리 후퇴한 것은 고작 영국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와 6척의 드레드노트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너무 소심하다는 평가를 받은 잉겐홀 제독은 도거 뱅크 해전 이후 해임된다.(스카보로우 추격:Raid on Scarborough)
1915년, 동쪽의 러시아 발트 함대를 압박하기 위해 나사우급 전함 4척, 헬골란트급 전함 4척, SMS 폰 데어 탄, SMS 몰트케, SMS 자이들리츠로 이루어진 전함 8척, 순양전함 3척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리가 만으로 출격했다. 소해작업 중에 러시아 보로디노급 전함 슬라바와 조우하고 교전, 슬라바를 항구로 내쫓는다. 소해작업을 하는 중에 독일 어뢰정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소해작업이 끝났고 충분히 러시아 제국을 압박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고 귀항한다.
1916년, 독일의 히퍼 제독이 제1 정찰함대를 이용해서 꾸준히 방해하는 영국의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를 괴멸시키기 위해 대양함대 사령관이었던 셰어 제독이 작전을 세웠고 곧 출항하게 된다. 독일의 순양전함 함대가 비티 제독의 기함 HMS 라이온을 대파시키고 2척의 순양전함 HMS 인디퍼티거블과 HMS 퀸 메리를 폭침시켰지만 빠르게 추적해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이 겨우 도착하여 반격에 나섰다. 조타에 문제가 생긴 HMS 워스파이트를 향해서 헬골란트급 4척이 전부 달려들어 열심히 포격을 가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 못했고, 사격중 표적의 위치확인에 실패하여 오히려 헬골란트의 경우는 15인치 포탄을 맞게 된다. 이후 나사우급 전함들과 함께 추격해온 영국 구축함, 순양함들을 향해 포격을 시작하여, 구축함 HMS 스핏파이어는 나사우의 포격을 맞아 대파, 귀항했고 HMS 블랙 프린스는 튀링겐과 나사우의 공격으로 격침시켰다. 셰어 제독은 영국 본함대가 오기 전에 철수를 명령했고 귀항중에 오스트프리슬란트가 기뢰에 피격되었지만 무사히 귀항했다.

5. 최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군비를 제한받게 된 독일은 드레드노트급에 해당하는 나사우급과 헬골란트급까지 보유를 인정받았지만,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분노한 영국은 전 드레드노트급인 도이칠란트급 전함 수준만 보유 가능하게 바꿨다. 결국 1번함 헬골란트와 4번함 올덴부르크는 스크랩되고 2번함 오스트프리슬란트, 3번함 튀링겐은 각각 미국, 프랑스로 인도되어 표적함으로 격침된다.

6. 동형함 목록


함명은 전부 지명에서 유래한다.
함명
유래
취역
최후
헬골란트(Helgoland)
헬골란트
1911년 8월 23일
1921년 스크랩
오스트프리슬란트(Ostfriesland)
동프리슬란트
1911년 8월 1일
1921년 미국에 인도,
미국의 육군 항공대의 표적함이 되어 격침
튀링겐(Thüringen)
튀링겐
1911년 7월 1일
1921년 프랑스에 인도, 표적함으로 격침
올덴부르크(Oldenburg)
올덴부르크
1912년 5월 1일
1921년 스크랩

7. 관련 문서



[1] 1907년, 미국은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세계 최초로 적층식 전함을 건조했다. 무장은 12인치 2연장 포탑 4기(총 8문)이다.[2] 다만 티르피츠 제독은 화력 개선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괜히 화력개선을 해서 영국을 자극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당시 독일은 대구경 화포 개발에 조금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3] 이 점은 카이저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