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느와르

 

1. 개요
2. 상세
3. 주요 작품
4. 주요 배우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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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에서 탄생한 영화 장르.

2. 상세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홍콩에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던 범죄 영화들을 당시 한국에서 부르던 용어. 장르 자체는 사실 역사가 제법 오래되었다. 1986년작인 영웅본색도 이미 60년대 영화를 재창조 수준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며[1] 5~60년대부터 이어져 오던 홍콩영화계의 장르 중 하나로 홍콩에선 무협영화와 같이 단골 장르이다.
이 용어를 대체 누가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1980년대 후반 한국 영화 월간지 로드쇼가 이 용어를 알린 바 있으며 로드쇼에서 당시 경쟁지인 스크린을 제치며 홍콩 느와르 특선이라든지 고전 영화까지 별책 부록 및 정보를 실으면서 더 알려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홍콩 느와르'를 느와르 장르에 넣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홍콩 느와르로 불리는 영화들의 상당수는 영웅본색의 영향을 받아 느와르 필름이라기보다는 현대의 범죄계를 배경으로 한 무협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줄거리에서는 물론, 범죄 세계를 무협 용어인 "강호"라고 일컫는다든지, 의형제, 사제지간, 배분을 따지는 모습 등은 무협물과 똑같다.[2] 물론 느와르 장르 자체가 제대로 정립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닌 일종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다만 무간도 트릴로지는 확실히 정통 느와르에 가까운 편이다.
5~60년대 홍콩 무협물의 거장으로 호금전[3]장철[4]이 있는데, 이들 영화의 구성은 홍콩 느와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장철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던 오우삼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정할 정도이다. 물론 샘 페킨파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홍콩 느와르의 시초작은 허안화 감독의 <호월적고사> 또는 맥당웅 감독의 1984년성항기병[5]으로 본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후에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는 장르의 모든 것[6]이 집결되어 있어 이후 제작된 홍콩 느와르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과 아시아에서 홍콩 느와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6년작 영웅본색. 이어 이 당시 오우삼 감독이나 임영동 감독[7]이 만든 작품들도 대부분 홍콩 느와르 대표작으로 분류될 수 있다.
주로 남자들의 의리를 다루는 영화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과 같은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조폭이 멋지게 그려지는 폭력물이지만 주로 악당이 모두 죽어버리는 권선징악적인 내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느와르물의 제작 및 주연에 나선 인물 중에는 실제 갱단인 삼합회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국내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었지만 조폭들이 배후에서 자기네들을 멋지게 그리도록 제작진과 배우를 협박한 것. 삼합회 출신은 대만 출신 등광영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은 1990년 초반 한국 영화지 로드쇼와 인터뷰에서 홍콩 느와르라는 한국의 용어에 대하여 거부감을 보인 바 있다. 공교롭게도 그의 출세작인 <몽콕 카르멘(旺角卡門;왕각가문, 1988‎)>을 '열혈남아'란 싸구려 제목으로 개봉하여 한국에서도 자신을 홍콩 느와르 감독으로 취급하였다면서. 이는 한국 관객의 편식 탓도 크다. 한국에서 그 당시 개봉되는 많은 홍콩 영화가 느와르 장르였고, 왕가위 감독의 작품 또한 느와르로 취급받은 것. 하지만, 로드쇼에서 마치 한국만 이렇다는 투로 아비정전 실패를 보도한 점이라든지 정작 대만에서 먼저 몽콕 카르멘을 열혈남아란 제목으로 개봉했던 게 보도하지 않은 등, 한국 영화 및 관객에 대한 비하적인 시각이 있다는 비난들도 받아야 했다.
왕가위의 말처럼 홍콩 느와르란 이름으로 홍콩 영화계에 너무 장르적인 편견을 가지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왕가위의 암울한 홍콩 현실을 다룬 영화 아비정전도 한국 개봉당시, 홍콩 느와르인 것처럼 홍보를 했다가 실제 쟝르가 달라서 흥행과 평이 참혹했던 걸 봐도.
그렇긴 해도 홍콩 느와르 영화들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또한 유럽과 미국의 매니아들에게서 큰 인기를 얻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런 매니아들 중 하나였으며 홍콩 느와르 전성기 시절에 활약하던 오우삼, 임영동 같은 이들은 헐리우드로 진출하기도 했다.
1990년대 홍콩 영화의 쇠퇴기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많이 잊혀졌다. 사실 홍콩 느와르는 홍콩의 중국 귀속이 다가오면서 지존무상이나 도신과 같은 허무주의적인 도박물로 바뀌었다.
홍콩 느와르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영화는 무간도로, 높은 평가와 흥행에 이어 헐리우드에서 디파티드로 리메이크 되어 원작과 마찬가지로 역시 성공하기도 했다. 무간도 이후 홍콩 내에서 홍콩 느와르는 흑사회 시리즈나 콜드 워 시리즈 등이 명맥을 이어가지만, 사실상 한국 극장가나 홍콩 제외한 아시아 극장가에서는 사라져버렸다. 어느새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잡은 두기봉 감독만이 굳건히 위치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3. 주요 작품


  • 강호정
  • 고혹자 시리즈
  • 대행동
  • 무간도 트릴로지
  • 성항기병 시리즈
  • 열혈남아
  • 영웅본색
  • 용호풍운
  • 정전자
  • 천장지구
  • 첩혈가두
  • 첩혈쌍웅
  • 협도고비
  • 호월적고사[8]
  • 흑사회
  • 첩혈속집

4. 주요 배우



5. 관련 문서



[1] 원작은 전과자의 사회 갱생 문제를 다룬 사회 드라마였다.[2] 심지어 총에 맞고 쓰러졌다가 일어설 때 총구를 땅에 대고 의지하며 일어나는 장면도 많은데, 실제로는 슬라이드에 불순물이 끼이거나 총구가 막혀 작동 불능이 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실총 사용시엔 금해야 할 일이다. 그런 자세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검으로 땅을 짚어가며 일어나는 장면을 변형한 것이기 때문. 세 사람 이상이 서로 동시에 총구를 겨누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3] 1932~1997[4] 1923~2002[5] 원제는 '''省港旗兵'''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홍위병 출신 홍콩 망명객들이다. '旗兵'은 기수(깃발을 들고 가는 병사, 즉 홍위병)를 뜻하고, '省'은 여기서 광둥 성을 뜻한다. 즉 대륙과 홍콩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범죄 세계로 흘러드는 대륙 출신 홍콩 망명인들을 들어 홍콩인들의 정체성을 묻는 수작이다. 시리즈물로 제작되었으며 총 4편. 2편부터는 맥당웅 감독의 동생인 맥당걸이 감독을 맡았다. 3편에서는 유덕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1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에 서금강(옥보단에서 아내를 NTR당하는 포목상 주인역으로, 원래 고향은 헤이룽장 성인 대륙 출신인데 홍콩으로 이민와서 배우를 했다. ..)이 주연 또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시리즈의 퀄리티가 갈수록...[6] 갱단, 총격전, 의리[7] 대표적으로 용호풍운[8] 홍콩의 여류 감독인 허안화의 작품으로, 홍콩 느와르의 극초기 작품이다. 1981년작으로 주윤발과 종초홍이 주연을 맡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