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
1. 상세
홍콩의 영화 감독이다.
1946년 5월 1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출생해 4살 때 홍콩으로 건너왔다. 할리우드 영화 매니아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영화를 접하면서 영화 감독의 꿈을 꾸게 되었다.
19세부터 실험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1969년 케세이 필름 스튜디오에 조수로 입사했고, 곧이어 홍콩 영화 황금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쇼 브라더스로 옮기게 되었다. 쇼 브라더스에서 당시 최고의 무협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장철의 조감독으로 연출을 배우게 되었다. 1975년 <철한유정>이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되지만 너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상영금지 처분을 받게 되자 골든 하베스트에서 코미디 영화를 찍으며 거의 10년간 오랜 슬럼프를 겪게 된다. 참고로 이 시절 만든 영화들의 필름은 이후 화재로 소실되어 영원히 못 보게 된 작품들도 여럿 있다. 화재 원인은 필름 보관 스튜디오 측 잘못으로 드러났다. 덕분에 첩혈가두 원판을 비롯한 여러 영화는 이 세상에 안타깝게도 유실되어 없다. 물론 몇몇 작품들은 화재를 용케 피했는데 그 가운데에선 철한유정 등 오우삼이 한국에서 홍콩느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덜 알려졌을때 비디오로 출시 된 것도 있다. 이 시기 오우삼은 석천[1] 에게 아시아 채플린이라는 캐릭터를 주고, 채플린 영화들을 짬뽕한 반패러디 반오마주 영화 <활계시대> 를 찍기도 했다.
이런 오우삼이 다시 감독으로서 기사회생 하게 된것은 바로 서극의 후원으로 만든 1986년작 '''영웅본색'''. 이 작품이 홍콩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흥행과 반향을 일으킨 히트작이 되어 오우삼을 일약 액션장르의 흥행 감독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후 첩혈쌍웅, 종횡사해 등의 영화를 연출하며 '''홍콩 느와르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1992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오우삼은 할리우드로 건너간다. 오우삼을 비롯한 홍콩 영화인들이 대거 해외로 건너간 것을 중국 반환 이후 공산당의 문화 탄압을 우려해서라는 의견도 있지만 적어도 오우삼의 경우는 홍콩 귀속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2] 다른 홍콩 영화계의 거물인 서극과의 사이 악화로 홍콩에서는 정상적인 작품 활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헐리우드의 오퍼가 오자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다.
1993년 장 클로드 반담을 주인공으로 한 하드 타겟[3] 을 시작으로, 브로큰 애로우로 할리우드에서도 흥행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된 그는 이후 페이스 오프, 미션 임파서블 2등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2002년에는 자신이 주로 해왔던 액션 장르가 아닌 전쟁 드라마에 도전한 윈드토커[4] 를 내기도 했고, 2004년 페이첵을 거쳐 2008년에 적벽대전을 내놓았다.
상당히 잔혹한 묘사의 무협 영화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장철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며 영화 연출을 익힌 탓인지 오우삼의 홍콩 느와르 영화들도 상당히 잔혹한 묘사의 연출이 많았다. 이 때문에 그의 영화의 폭력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 잠깐 들린 적이 있는데, 그에게 그의 영화는 너무 폭력적이라고 은근히 까는 한국 기자에게 "내 영화는 폭력을 반대한다."[5] 고 아주 기자를 멍때리게 만들 말을 한 바 있다.
오우삼 자신은 폭력을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지만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애초에 총 맞는다고 그냥 구멍만 뻥 뚫리는 게 아닌 이상 사방으로 피가 튀고 줄줄 새는 그의 표현 방식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의 영화에서는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영상적 표현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쌍권총'''[6] 을 들고 쏘는 것이라든지[7] , 그렇게 쏘는 권총은 탄은 무한탄창이라는 것이다.[8] 결정적 순간에서의 슬로우 모션,[9] 그리고 날리는 '''비둘기''' 등이 그렇다. 특히나 비둘기는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해서, 비둘기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장면만 나와도 오우삼 영화인줄을 알아본다고 할 정도.[10] 이때문에 오우삼의 페르소나는 주윤발이지만, 비둘기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오우삼 영화에서 비둘기가 등장하는 것은 오우삼이 기독교(루터교회) 신자여서 이기도 하고[11] ,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피가 낭자한 느와르 영화에서 상당한 대비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무서운 영화 2에서 이 비둘기 씬이 패러디 되기도 했다. 두 인물이 결전을 벌일 때 비둘기가 날아 오르는데 머리에 새똥이 떨어진다. 2분 9초 부터.
오우삼은 장철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지만 슬로우 모션을 활용한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샘 페킨파 쪽의 영향도 아주 크다. 영웅본색 2에서는 직접적으로 샘 페킨파의 영화를 따라한 장면도 있을 정도. 장철이고 샘 페킨파고 죽음의 미학 하면 손꼽히는 감독들이니, 이 둘의 방법론이 오우삼에게서 믹스된 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느와르 영화에서는 뛰어나지만, 전쟁물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감독이다. 적벽대전에서의 어이없는 연출은 물론이거니와, 윈드토커[12] 같이 소재도 괜찮은 주제를 가지고도 고작 그 정도 연출을 보여주는 걸 보면 확실히 전쟁물과는 거리가 먼 감독인데다가 윈드토커와 적벽대전까지의 기간이 꽤나 길었는데도 전혀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면 전쟁물에서는 B급 감독이라고 불러도 할말이 없을 정도다. 근데 적벽대전은 그래도 웰메이드 삼국지 영화화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다.
여하튼 그의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쿠엔틴 타란티노[13] 나 마틴 스콜세지 등이 그의 영화에 매료된 것으로 유명하다. 아예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빌을 찍기 전 우마 서먼에게 영웅본색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연기하자고 할 정도였다고.[14]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2를 만들면서 오우삼을 감독으로 해야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관철시켰다고 한다. 당시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 배우를 멋지게 찍어주는 감독이란 평판이 돌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대놓고 롱코트와 쌍권총이 등장하는 매트릭스 등 그의 영향을 깊게 받은 영화들이 한둘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카우보이 비밥에서 오우삼의 영향이 느껴진다. 또한 블랙 라군에서도 쌍권총을 든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오우삼 영화에서 나올법한 홍콩 마피아 두목도 나온다. 메탈기어 솔리드 2에서의 마지막 보스전인 라이덴vs솔리더스의 싸움에서도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연출이 있다.
사실 아버지는 유교를 연구하는 선비여서 그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인 오우삼은 논리적이고 조용한 사람이다.
DC, 마블 코믹스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요즘 할리우드의 영화는 가면 갈수록 보기 싫어진다. 특히 만화를 각색해서 만든 영화들은 전혀 나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헐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아시아인 최초로 손도장을 남긴 인물이다.[15]
첩혈쌍웅 리부트를 제작중이며, 루피타 뇽오가 출연한다고 한다. 뇽오는 주윤발이 연기한 캐릭터를 맡는다고 한다.
2. 오우삼에게 영향을 끼친 것들
그의 스승, 그에게서 영화적 기법들을 많이 배웠다.
하드보일드 총격전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슬로우 모션. 물론 장철도 슬로우 모션을 많이 썼다. 참고로 영웅본색 2편에서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의 오마쥬인 계단 총격전 장면이 나온다.
더운 홍콩에서 암흑가 사람들은 바바리 코트를 입는다. 이게 그분의 영향이다. 참고로 장 피에르 멜빌의 두번째 숨결의 2007년판 리메이크에서 역으로 홍콩 느와르를 오마쥬한다. 즉 장 피에르 멜빌을 오마쥬한 오우삼을 리메이크가 다시 오마쥬했다.
3. 감독 작품
- 여자태권군영회(1974)
- 소림문(1975)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 한국 배우 조춘도 출연한다.
- 영웅본색(1986)
레전설.
- 영웅무루 (1986)
[image]
원래 촬영은 1983년에 다 했으나 추후의 사정과 영웅본색의 성공으로 개봉한 작품.
한국에서는 1984년에 '구사일생'이란 이름의 반공영화로 개봉했다. 하지만 1989년 서진통상 및 1992년 영성비디오에서 낸 비디오 제목은 그대로 '영웅무루'. 원표가 주연인 영화 <파우>에서 숙부로 나오고 여러 조연[18] 으로 많이 나온 배우 고웅이 주연이며 영환도사 임정영이 악역으로 나오고 이혜숙의 이름도 오프닝 크레딧에 올라와 있다. 네이버 N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원래 촬영은 1983년에 다 했으나 추후의 사정과 영웅본색의 성공으로 개봉한 작품.
한국에서는 1984년에 '구사일생'이란 이름의 반공영화로 개봉했다. 하지만 1989년 서진통상 및 1992년 영성비디오에서 낸 비디오 제목은 그대로 '영웅무루'. 원표가 주연인 영화 <파우>에서 숙부로 나오고 여러 조연[18] 으로 많이 나온 배우 고웅이 주연이며 영환도사 임정영이 악역으로 나오고 이혜숙의 이름도 오프닝 크레딧에 올라와 있다. 네이버 N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 영웅본색 2(1987)
레전설 영웅본색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주윤발을 쌍둥이 동생 설정으로 부활.
- 첩혈쌍웅(1989)
- 의담군영 (1989)[19]
- 첩혈가두(1990)
- 종횡사해(1991)
- 첩혈속집[20] (1992)
- 하드 타겟(1993)
- 브로큰 애로우(1996)
- 페이스 오프(1997)
- 미션 임파서블 2(2000)
- 윈드토커(2002)
- 페이첵(2004)
- 적벽대전(2008, 2009)
- 검우강호(2010)
- 워리어스 레인보우: 항전의 시작(2011)
- 워리어스 레인보우2: 최후의 결전(2011)
- 태평륜(2014)
송혜교가 주연으로 홍콩, 한국, 일본 합작 로맨스 재난 영화라고 한다. 태평륜 침몰 사고를 배경으로 한다.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가 2014년 12월 개봉. 만약 흥행했다면 위기의 송혜교 측에서 반전을 잡아 홍보를 많이 했겠지만 개봉했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는 것을 보면⋯. 아니나 다를까 흥행은 망했다.
- 맨헌트(2017)
4. 수상경력
[1] <취권> 에서 사범으로 유명한 배우이다.[2] 적벽대전에서 보이듯이 오히려 오우삼은 대륙의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3] 소문으로는 반담이 그를 '할리우드'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서극과의 계약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탓에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4] 물론 밀덕후들에게는 대차게 까이고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영웅본색을 찍냐면서... 실제로 봐도 소재는 좋으나 연출이나 구성, 전개, 고증 등의 요소는 병맛의 극치를 달린다. 흥행도 시원하게 말아먹어서 1억 1500만 불의 제작비를 들였는데 전세계에서 7762만 8265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쳤다. 영화의 흥행수익은 극장과 반씩 나누어 가져야 하니 이 정도면 7~8000만 불은 손해 본 셈이다.[5] 뜬금없는 소리같이 들리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실제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폭력을 쓴 사람들은 의형인 송자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대만의 조직을 몰살했지만 결국 그 자신도 폐인이 되고, 종래에는 죽음을 맞은 영웅본색의 마크나, 살인 청부업자 일을 그만두고 새 삶을 살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죽은 첩혈쌍웅의 소장, 폭행당한 친구의 원수를 갚으려다 사람을 죽였고, 결국 두 친구를 모두 잃게 된 첩혈가두의 아B처럼 그 의도가 좋았던 나쁘던 간에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6] 주로 베레타[7] 적벽대전에선 쌍검으로 나온다.[8] 의외로 영웅본색에서는 무한탄창같이 쌍권총을 막 갈겨대지만 총알 수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총을 버리고 미리 숨겨둔 다른 총을 꺼내 쏘거나 장전을 하는 장면도 분명 제대로 있다. 문제는 후속작이 진행될수록 무한탄창이 된다는 점⋯.[9] 헐리우드의 폭력미학의 거장인 "샘 페킨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10] 다만 오우삼의 이름을 드높인 영웅본색에는 비둘기가 나오지 않는다. 비둘기 연출은 첩혈쌍웅부터다.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만든 작품인 브로큰 애로우, 윈드토커에서도 비둘기는 나오지 않는다.[11] 기독교에서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다. 실제로 오우삼은 미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루터교 학교를 나왔고, 한때 루터교 목사가 될 생각을 갖기도 했다.[12]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나바호 인디언 이야기.[13] 영화사 간부가 "오우삼이 액션은 좀 찍지?" 하니 "예,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천장에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14] 킬 빌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오우삼 감독 영화 ‘페이첵’에도 우마 서먼이 출연한다.[15] 이병헌, 안성기는 아시아 배우로 한정해서 최초이다.[16] 단, 종파는 마틴 스콜세지는 가톨릭이고 오우삼은 개신교 하위종파인 루터교 신자로 꽤 차이가 있다.[17] 영웅본색에서 주인공이 출소한 후 취직하러 찾아간 곳이 택시 회사다.[18] 지존무상에서 유덕화 손등을 칼로 찍던 악역.[19] 한국에서는 1990년 '흑전사'란 제목으로 개봉했고 장철 감독을 제작자로 앉혀놓고 그 밑에서 영화를 찍고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장철을 도와주고자 만든 작품이다. 주성치가 진지하게 나오며, 오우삼과 천녀유혼의 연적하로 유명한 오마가 공동으로 감독을 맡았는데, 오마 역시 장철의 조감독 출신이었다.[20] 원제는 날수신탐(辣手神探)인데 한국 수입사가 멋대로 첩혈쌍웅의 속편인 양 이 제목으로 개봉했다. 흥행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