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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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전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 외야수, 현 LG 트윈스 2군 감독.
2. 선수 시절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1]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프로필상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내야수로도 활약했었다. 눈이 나빠서 야간 경기에는 거의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종 6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와, 해태 투수 문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해태의 3년 연속 우승을 확정지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3. 지도자 시절
3.1.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 시절에는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났다는 것이 중평. 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
3.2.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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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 우승의 공로로[2] ,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3]
3.3.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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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사퇴하며 황병일도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삼성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무려 2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는 것. 그리고 2012 시즌 삼성 2군 타자들은 죄다 부진했다.[4]
3.4.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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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송재박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고 송일수 2군 감독이 김진욱의 후임으로 신임 감독이 되자 공석이 된 2군 감독을 맡았다.
그렇게 2군 감독을 1년간 지내고,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아 kt wiz로 자리를 옮겼다.
동시에 다시 1년 만에 송재박 2군 타격코치가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3.5. kt wiz 2군 감독 및 수석 코치 시절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고 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가, 4월 15일 자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황병일이 타격도 겸임하면서 이숭용이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10월 12일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후임 감독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김진욱 감독의 부임 이후 수석코치에서 사임했다. 후임 수석코치는 이광길.
3.6. LG 트윈스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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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시즌 중에 타격 인스트럭터로 합류하여 2군 타격코치로서 일을 하고있다.
시즌 종료 뒤 해임된 9명의 코치 중 한명이었지만 양상문 단장 사임 이후 철회되었다. 기사 내용에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2019년 2군 감독이 됐다.
2020년에는 LG 2군을 유일한 6할대 승률로 27년만에 북부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젊은 선수들이 주로 주축을 이루었기에 고무적인 성과이다.
4. 연도별 성적
[1]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2] 무엇보다도 김상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3]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4] 2011 시즌 삼성 2군 팀 타격 기록이 도루 제외 전부문 전체 2위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팀 타격 기록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사사구와 홈런이 급감해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이 하위권으로 크게 하락했다. 참고로 2012 시즌 삼성 2군 타격코치는 황병일을 포함해 강기웅과 김종훈까지 3명으로 등록되었었는데, 김종훈은 시즌 중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강기웅은 이제 코치로 복귀한지 2년째가 되기에, 연배나 경험이 많은 황병일이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