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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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천 년대 줄기세포 연구로 언론에 의해 노벨상 가능성까지 점쳐지며 한국에서 각광받던 황우석 박사가, 2005년 MBC PD수첩의 보도로 줄기세포 논문을 조작한 것이 밝혀진 사건. 이전에도 의심의 목소리는 있었지만, 해당 사건이 대중적으로 불거진 건 2005년 11월 PD수첩 방영 이후부터였다. 그리고 12월에 이르러서는 파국에 이르고 만다. 전체 사건 일자는 다음 참조. 믿기지 않는 거짓말의 스펙터클 - 한겨레21, 2005년 12월 19일, 신윤동욱.
2. 사건 진행
2.1. PD수첩: 1차
당시 작고 초라했던 사건의 발단은 2005년 11월 22일 MBC의 시사프로 PD수첩이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방송하면서 시작되었다. 해당 방송에서 PD수첩은 난자 채취 과정에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실제 이 과정에서 난자 제공자에게 금품이 전달되었고 난자 중 일부는 연구실의 여자 연구원들을 상대로 채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학윤리 문제가 불거졌다.[1]
참고로 이런 의혹과 난자 채취의 부작용 문제는 사실 PD수첩 방영 이전부터 일부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에서 계속 제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해 난자를 여러 개 성숙시켜야 하는 경우에 있어서 이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난자를 성숙시키고자 난소 자극 호르몬을 투여하게 된다. 정상적인 여성의 경우 월 1개의 난자만 성숙시키지만 외부에서 호르몬이 투여될 경우 서너 개를 넘어 많게는 몇 십 개씩도 성숙시킨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겪을 부작용은 실로 예측하기 어렵고 심한 경우 복수가 차서 응급실에 실려갈 수도 있다. 시험관 아기 항목에 서술되어있듯 신체적, 정신적으로 절대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그런 데다가 황우석 측이 자행한 난자 채취는 인공수정을 위한 채취보다 호르몬을 과하게 써서 심하면 난소 자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손상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애초에 난자는 태어날 무렵부터 그 총 개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정시기에만 월 1개씩 나오는 것을 억지로 몰아다쓰면 당연히 그 부작용이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하여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황우석 박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시인하며 공직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신의 한수였는데, 황우석의 대중적 인기가 지나치게 높다보니 반작용으로 도리어 방송 후 '''PD수첩은 국가적 인재의 연구를 방해했다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사소한(?) 잘못 하나를 가지고 국가적 영웅을 몰락시키려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하룻밤새 PD수첩 시청자 게시판에 글이 3000개가 넘게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 황우석 지지자들이 MBC 앞에서 촛불시위를 함으로써 황우석 스캔들은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하였다.
PD수첩 및 MBC 전체에 대한 네티즌들의 광고주 퇴진 운동도 확산되었는데, 오죽하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사회 분위기에 우려를 표시했을 정도였다. 2005년 11월 27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기고한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을 통해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또 노 대통령은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사용된 난자의 출처 의혹을 보도한 PD수첩에 대한 광고 중단 등 비난 여론에 대해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라며 '''"이 공포는 이후에도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네티즌, 황우석 보도 MBC PD수첩 집중공격에.. 노대통령 "도 넘었다".
다만 이런 비난과 광고 퇴출 등의 압박 속에서도 PD수첩은 황우석 박사에 대한 다른 의혹이 있다며 이후 2차 방송에 대한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허나 이 와중인 2005년 12월 4일 YTN이 MBC PD가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러 와서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 같은 발언을 하는 등 강압적 취재를 했다고 일방적인 거짓 폭로성 보도를 했고, 덕분에 PD수첩은 순식간에 생사람 잡는 막장 프로그램 따위로 위상이 추락한다. 이런 국민적 분노 여파 속에 PD수첩의 후속편은 방송 중단, PD는 당연히 경질됐고 MBC는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밤 9시 메인 뉴스에서는 마치 남남처럼 느껴질 만큼 자사 프로그램인 PD수첩을 탈탈 털었다. 덕분에 합리적인 의심임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재검증을 주장한 PD수첩의 요구는 이 일로 완전히 묻혀버리고 만다.
그와 반대로 황우석에 대한 동정 여론은 더욱더 솟구쳐 황우석에 대한 지지는 더욱 커졌다. 오죽하면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팬들도 있었고, 일부는 황 박사가 출근하기를 바란답시고 황 교수 사무실까지 찾아와 꽃잎을 뿌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지지자들과 진달래 꽃길. 하지만 이후 이 진달래 꽃길 이벤트는 황우석이 이벤트 업체에 부탁해서 벌인 자작극이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2]
당연히 이런 여론 속에 주요 정치인들은 여야 구분없이 대동단결(?)하여 황우석 박사를 위로하였다. 여야 대표 황우석 옹호, 한나라당 대선 후보군 황우석 위로. PD수첩 역대작가 릴레이 기고.[3] 다만 여기서 민주노동당은 예외적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가, 조선일보가 민주노동당이 황우석 박사 연구 방해한다고 기사를 써제끼는 바람에 대차게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2.2. BRIC 유저의 의혹 제기
이렇듯 PD수첩만 몰락하고 끝날 뻔 했던 황우석 사태가 반전을 맞이하게 된 것은, 2005년 12월 5일[4] 새벽에 anonymous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유저가 BRIC(포항공대 생물학 정보 센터) 게시판에 논문에 실린 사진 몇몇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글을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래는 전문.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몰라도 전형적인 아재 문체(...)인 데다가 비문이 여럿 섞여서 읽기 힘들지만 한줄로 요약하면 '''"논문을 무료로 볼 수 없어 아쉬운대로 부록만 봤는데, 똑같은 사진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다."'''가 요점이다. 이 글이 처음 퍼진 곳 중 하나가 디시인사이드 과학 갤러리였는데, 글이 퍼진 초기에는 합성이 아니냐는 의심들이 있었다.[7][8] 당일 오전 11시경, 보다못한 과갤의 한 능력자가 직접 논문을 다운받아 해당 사진을 확인해 본 결과, 같은 세포 사진을 다른 세포인 것처럼 올렸다는 것을 확인했다.[9]The show must go on
anonymous[5]
(2005-12-05 05:28)
혹자가 말했다. "Science Magazine이 어떤 잡지인데 감히...!!!" http://news.kbs.co.kr/article/newstime_sun/200512/20051204/806397.html (조금 짜증나니까.. VOD의 8:00분 부터 보시라)
::: 또 다른 혹자들이 말했다. "Science Magazine의 peer reviewer들이 바지저고리가 아니거든요!!!" http://www.ytn.co.kr/news/news_view.php?cd=0103&key=200512021608347321
::: 위대한 Science Magazine이 말했단다 "My precious... 난 믿어요~" http://www.ytn.co.kr/news/news_view.php?cd=0103&key=200512021730008123 ::: 계층불문이구동성 "오랫만에 좋은 읽을거리 나왔다"그러기에 어디 한번... 보러갔더니... "돈 안내면 안보여준다!!!"길레 달랑~ 부록만 얻어왔다. 꼬부랑 글씨 종내 알 수 없어 그림만 봤다. '숨은그림찾기'는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두루 돌려보아야 더 재미있는 법! http://www.sciencemag.org/cgi/data/1112286/DC1/1[6]
미리 내려받은 것이 있으면 얼른 11/12쪽에 늘어 놓인 조각그림들 중에서 똑같은 그림2장을 찾아보시라. 눈 내리는 산사에 외로이 계시는 석좌교수님께서도 심심풀이 삼아 한번 찾아 보시지요~ 나는 두 쌍 찾았습니다!!! 몇 개 더 있다는 말도 있고...
이 폭로 이후, 사건 초기부터 황우석에게 비판적이었던 프레시안에서 바통을 넘겨받아 황우석 측에 진실을 요구하는 기사를 여러 개 쓰기도 했다. 소장 생명과학자들 "줄기세포 사진들 놀랍게 흡사", '2번 줄기세포'는 '가짜'인가 '실수'인가?
처음에는 너무 어이없는 짓이라 해당 전공자들조차 '''"황우석이 바보도 아니고''', 저런 수준 낮은 조작을 하겠냐? 당연히 그냥 실수겠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황우석 교수 측에서도 단순한 실수일 뿐 사진이 잘못된 건 이미 알고 있었고, 이미 사이언스에도 통보했다고 조작 논란을 일축하려 했다.[10] 그러나 또 다른 과갤러가 황 박사의 2004년 논문 사진도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히자...'''황우석의 위신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국민들 대부분이 속았단 게 밝혀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인위적 실수''''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까지 동원한 건 덤. 여담으로, 일본 쪽에서도 이 시점부터는 열심히 담론에 뛰어들었는데, 사진조작 중 몇 가지는 일본 웹에서 먼저 밝혀진 뒤 한국에 역수입 될 정도였다. 일본이 후지무라 신이치 사건 이후 얼마되지 않아 연구조작 분야에 민감한 분위기였기 때문인 탓도 있을 것이다 . 원본이 된 세포사진을 포토샵 등으로 좌우반전 시켜서 가로세로 비율만 살짝 바꿨더니 다른 사진이 완성되는 것을 발견한 것은 레전드. 그리고 몇 년 뒤 한국은 다시 일본을 놀리게 되는데..
이 일이 언론을 타자, 소수를 빼고는 중립이거나 황우석을 지지하던 여론은 당장에 두 패로 갈라졌다. 연구를 하는 도중 일어난 비윤리적인 사건까지는 몰라도 '''연구 결과 자체를 조작한 건 그야말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PD수첩은 여전히 매국노로 돌팔매질 당하고 있었으나, 온라인에서는 폭탄이 터지듯 매일 같이 논문의 조작된 사진과 DNA 프린트가 올라왔고, 이시기 인터넷은 키배로 들끓었다. '''과장 좀 보태자면 분단 이래 최대의 국론 분열이었다. 심지어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까지 이 사건에 묻혔을 정도였다.'''[11]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일을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 황우석은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하지만 황우석의 이런 행보는 결과적으로 자충수였다. 정확한 해명은 안하고 뜬금없이 앓아눕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그 과정에서 찍힌 작위적인 이 사진은 일방적으로 황우석 편이었던 언론조차 뜨악하게 만들었다. 해명이 아닌 정치를 하는 황교수의 작태에 과학자들은 분노했으며, 중립적인 입장이었던 사람들은 과학자인지 정치가인지 모르겠다며 황 교수를 비판했다.
허나 이런 비판에 중앙일보 의학 전문 기자 홍혜걸과 KBS 기자 홍사훈은 동네 도서관에도 꽂혀있는 사이언스가 '''일반인은 억만금을 줘도 아무나 볼 수 없는 잡지라고 물타기를 시전'''[12][13] 하거나, '''진실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라는 파시스트 뺨치는 희대의 망발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로 황우석 사태를 보수 vs 진보의 대결로 만드는데 주력했다. 이유는 2005년 당시 MBC는 최문순 사장의 영향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던데다가, 카우치 존슨 노출 사건 등 여러가지 사고가 겹쳐서 보수 세력이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겨레 신문사 역시 한창 황우석이 주가를 올렸을 때 이에 편승하여 자사 내 제2창간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으로 임명하여 감투를 쥐고 '황우석 교수님과 한겨레 닮았습니까?' 'H2O, Co2, H2 = 한겨레(H) + 황우석(H)'[14] 이라는 마케팅을 펼쳤다. 그나마 이후 연구결과가 조작으로 드러나면서 사과하기는 했고, 황우석 사태 당시엔 조선-동아에 비하면 논조가 온건했긴 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어쩡쩡한 논조를 취한 거'''라 보면 된다.[15] 그외 지역 언론사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인터넷 언론사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업코리아, 데일리서프라이즈가 사건 초반에도 황우석 비판 논조를 취한 정도였다.
하지만 후술된 노성일의 폭로 발언 등으로 대세가 뒤집히자 언론의 태세전환(...)이 시작되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KBS와 SBS는 12월 18일부터, 조선일보는 한 발 앞서 지난 14일자부터 양상훈 정치부장의 칼럼 <황우석은 과학자여야 합니다>로 황우석을 비판하고 '언론의 반성적 연구’를 언급하며 변화의 조짐을 보였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7일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프레시안의 경우는 과학 담당 강양구 기자의 활약이 유명하며[16] PD수첩과 함께 당시 언론 중엔 몇 안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언론사와 담당 기자는 상당기간 역적 취급을 당했지만.#
방송사의 경우 YTN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KBS의 경우 사건 초반에 MBC를 신나게 까댔다가 노성일 이사장의 폭로 이후엔 보도국쪽은 잠잠해졌으나, 생방송 시사중심에서 황우석 관련 음모론을 방송했다가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고, 추적60분도 황우석 관련 음모론을 방송할 뻔 했다가 취소했다. SBS의 경우 보도국 쪽은 사건 초반에 제보자의 신상을 취재한답시고 제보자를 사실상 과학계에서 매장시키는 행동을 했고, 동시에 MBC를 신나게 까대다가 마찬가지로 노성일의 폭로가 나오면서 버로우했다. 다만 시사전망대의 경우는 제외였는데, 이는 진행자를 맡은 '''진중권이 사건 초반부터 황우석과 황빠들을 까는 발언을 했기 때문'''(…).
2.3. 노성일 이사장 긴급 기자회견
결국 이 끝없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결정적 증언이 터졌다. 당시 황우석에게 줄기세포를 제공한 미즈메디 병원의 이사장 노성일이 긴급기자회견에서 '''"체세포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란 폭탄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그 뒤 전국민이 받은 충격은...충공깽 그 이상.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야말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국민들이 지지하던 그의 연구가 알고보니 통째로 사기극이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고, 당연히 국민들은 큰 좌절감과 허탈함을 겪었다.
사족으로 당시 PD수첩 황우석 편을 제작했던 한학수 PD의 말에 따르면 노성일은 논문조작 자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황우석이 줄기세포가 있다고 한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고, 때문에 난자 매매 문제가 터져나왔을 때 자신이 한 일이라고 총대를 매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2.4. PD수첩: 2차
노성일 원장의 해당 발언 이후, PD수첩이 폐지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방송국 자체가 사장될 뻔했던 MBC는 기사회생했고, 여세를 몰아 반대여론에 방영하지 못한 후속보도를 밤 10시 황금 시간대에 70분간 긴급 편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 시청률 또한 기염을 토했는데, PD수첩의 평균 시청률은 5~6%였으나 이날 시청률은 13%를 넘겼다.
게다가 PD수첩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던 YTN의 김진두 기자가 황우석 교수의 최측근인 안규리 교수의 출장에 동행했을 뿐더러 미국으로 출국 당시 600만원이 넘는 출장비를 전액 지원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MBC의 처지가 순식간에 뒤바뀌게 된다. 후에 YTN은 출장비를 돌려줬다고 해명했지만 황우석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준 기자가 출장비를 지원받았다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공정성은 커녕 청부 취재 의혹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MBC 당국에서는 1차 방송을 한 직후, 황우석 측에선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진짜 핵폭탄인 2차 방송'''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고, PD수첩 측이 응하질 않자 방송이 나가기 바로 전에 문제의 YTN 기사가 터졌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MBC PD와 김선종 연구원이 인터뷰를 했던 그 당시에, 김 기자에게 출장비를 지급했던 안 교수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YTN과 황 교수의 의심스러운 정황은, 황우석의 대리인 노릇을 한 아이러브 황우석의 카페 주인 윤모씨가 YTN 기획조정실장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PD수첩팀이 황우석 측에게서 줄기세포 샘플을 건네받아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었을 때, YTN은 유전자 결과가 논문과 다르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TN은 그 사실을 숨겼고, PD수첩이 신나게 털리고 있을 때도 모르는 척 했으며 김선종의 사진 조작 인터뷰를 은폐하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개인 이메일 보도 등 각종 폐단를 저지르다 결국 취재과정이 공정치 못했음을 시인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2.5. 서울대 자체 조사: 결말
PD수첩의 보도 내용과 노성일 원장의 증언 등이 겹쳐 서울대에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시작했고, 얼마 후 연구결과가 조작되었다는 결과가 나오자 한국은 그야말로 요동쳤다. 황우석의 성과라고 나열되던 것들의 실상이 알고보니 그야말로 '''대국민 사기극'''이었던 셈. 줄기세포는 '''1개도 없었다'''. 2005년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는 부풀린 것도, 과장한 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통째로 조작된 것이었다. 게다가 황우석의 또다른 쾌거로 인정받던 복제소 영롱이의 '''논문도 없었다'''. 그 소가 복제소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증거인 유전자 검사는 커녕, '''연구노트조차 하나도 없었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영롱이가 언론의 주목을 받던 비슷한 시기 다른 연구팀에서는 '''진짜로''' 복제소(새빛이)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라 언론의 관심 밖이었고, 학문적 성과는 황우석 팀이 가져갔기에 유전자 검사도 하지 않고, 논문도 쓰지 않았으나 그 교수팀은 복제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연구노트가 남아있다.
PD수첩의 한학수 PD가 황우석 사태 이후로 내놓은 책인 <진실, 그것을 믿었다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에서 언급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한참 황우석 팀에서 복제소로 주가를 날릴 때,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던 교수가 논문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황교수 측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자, 황우석 교수는 '''"정 교수가 이해해주시오. 나는 바빠서 논문 쓸 시간이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연구 노트도 논문도 아닌 포털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도 없고, 논문도 없는 소가 황우석의 말 한 마디만으로 복제소가 된 것이다. '''과학 전문 기자들이 논문이 있는지 없는지 클릭질 한 번만 했어도 황우석 이 양반이 이토록 스케일 크게 사기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훗날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는 황교수에게 복제소에 관련된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황교수는 '''이사 도중 잃어버렸다'''는 답변을 한다. 한마디로 국내 첫번째 복제소라 알려진 영롱이는 '''과정이 없어졌으니 과연 황우석이 직접 만든 것인지, 우연히 튀어나온 것인지, 어디에 돈 주고 만들어서 바꿔친 것인지, 우시장에서 임신한 소 한마리 사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두산 호랑이 복원 사업과 관련해 당시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는데 사업 시작 보도는 물론 매월 여러 언론사에서 3달 후 나온다, 2달 후 나온다, 1달 후 나온다, 출산 임박! 기사로 보도하다가 정작 출산 예정일에는 아무 기사도 안 나왔다. 나중에 임신한 대리모 호랑이가 배가 가려워 핥다가 창자가 빠져나와 죽었다는 식으로 해명하기는 했으나 정작 동물원 사육사는 그런 일 없었다고 한다. 어느 언론사 기자 중 한 명만 임신 여부를 동물원으로 취재 한번만 갔으면 됐을텐데도 평상시 명절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실에서 보내주는 명절선물 한우세트만 받아먹으면서 기사 쓰기에 익숙했던 기자들은 어느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고 "황우석 박사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하는 안일한 태도로 넘어갔다는 거다. 이때 백두산 호랑이의 난자도 문제가 되었는데 대리모가 호랑인지 사자인지도 해명이 엇갈렸고 심지어 돼지 난자에 돼지 핵을 넣은 순수한 돼지라는 류영준 교수의 실명 제보도 있다. 이쯤 되면 황우석의 연구가 호랑이 난자에 호랑이 핵을 넣었지만 중간에 난산을 한 실패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한 것 같은 사기라는 것 외에는 다른 해명이 불가능하다. 또 그가 업적이라고 내세운 광우병 내성 소나 무균 돼지들도 결국 허상임이 드러났다.
복제된 줄기세포 가운데 몇 개는 처녀생식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사실 이것도 발견 자체는 대단한 것이지만, 연구노트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일 뿐, 기술적이거나 과학적인 발견은 될 수 없었다.
확실한 조작임이 밝혀지자 황우석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라있던 교수들이 '난 그저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고 자세한 내용 같은 건 알지 못한다. 나랑 상관 없다.'라고 징징거림으로써 단지 친분이나 이해 관계만으로도 논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다시 한번 충공깽했다. 황우석의 기막힌 언플과 제 식구 챙기기 스킬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와중에도 황교수는 '''1개면 어떻고 3개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원천 기술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과학자로서는 상식을 초월하는 발언을 하며 6개월만 주면 재연해 보이겠다며 전형적인 시간벌기식 큰소리를 쳤다.[18] 그런데 여기에 또 넘어가 원천기술이 있다면 기회를 또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많았다.[19]
연구 결과가 조작이라고 나오자 검찰에서 수사에 들어갔고 대법원에서 판결한 결과, 연구비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수암생명공학 연구소에서 시간을 들여 줄기세포 연구를 다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비 횡령에 대해 황교수 측에서는 "생명 공학에 관한 연구는 돈도 많이 벌게 되지만 그만큼 연구에 많은 돈과 인원을 필요로 하고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 하지만 당시 환경상 경제적 지원과 연구 인력이 부족하고, 시간도 촉박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변명을 하였다. 사실 무슨 연구든 돈이 많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당시 황우석 교수팀에 들어간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생각해보면, 이전이건 이후건 별 든든한 지원도 없이 합법적 틀 속에서 연구를 해나가는 많은 타 연구팀들이 볼땐 그야말로 볼멘 소리일 뿐이다.
3. 황우석 사건이 남긴 점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은 결국 황우석의 조작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거리를 남겼다. PD수첩 팀이 최초로 제기했던 '난자 매매 의혹'은 감시와 견제를 담당하는 언론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의혹을 제기할 때에는 제기하는 쪽에서 허점이 없어야 반대편으로부터 반박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데, PD수첩은 취재 윤리를 위반하여 당시 국민적인 인기를 받던 황우석과 그 지지자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는 빌미를 자초했다. 이는 분명한 잘못이다. 허나 한편으론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것을 최우선시 해야 할 언론들이 '''진실은 외면하고 오히려 국익 혹은 국익이라고 착각하는 가치를 더 중시'''해 날조와 폭력적인 수단마저 묵인하는 어리석은 행태를 보였다. 때문에 한국 언론사는 대중의 신뢰를 많이 잃고 처절한 반성을 해야 했다.
한편, 대중들 역시 객관적,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지 못한채, 날조 범벅 언론 플레이에 끊임없이 선동당했다. 아니 분명 논란이 거셀 때에도 황우석의 논문에 대하여 의심되는 부분은 확실히 보도되었으며, 때문에 대중 스스로도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황 박사팀을 의심할만한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도 다수의 대중은 합리적 의심 대신 "황 박사가 아니라면 아닌거야!"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이런 모습은 결국 대중의 파시스트적인 광풍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며, 한국에서도 더한 수준으로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를 두고 대중의 시민 의식에 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당시 PD수첩의 PD 신상정보는 인터넷에 마녀사냥 식으로 떠돌았고, 덕분에 안전을 우려한 PD의 일가족은 자식들이 학교도 못 나가는 상태로 거처를 옮겨야 했으며, PD 본인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경호원을 달고 다니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물론 사태가 끝난 뒤 PD에게 사과나 유감을 표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또한 이번 스캔들로 인해 나름 진보적인 시각을 가졌다 자처했던 이들이 여럿 동반 몰락하였는데, 국가에 의한 개인의 희생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던 이들이 '''자칭 국익 앞에선 과정이고 윤리고 뭐고 다 필요없고 무조건적인 감싸기만 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대중에게 충격을 선사하였다. 이때 체면 구긴 인물 중 대표적인 예가 딴지일보로 이름을 날리던 김어준 총수였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김어준을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상당수 존재할 정도.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앞에 서술한 난자 채취의 부도덕성 비판을 까면서 실험 대상에 대한 안전문제는 사실상 미국 등의 음모라는 출처 불분명한 음모론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반대로 황우석을 깐 당대 명사들 가운데 지금까지 유명한 이는 '''진중권 교수''' 정도 뿐인데, 진중권은 이전부터 물불 가리지 않는 논객으로 유명했으나 황우석 사태 당시엔 소위 황빠들과 피말리는 논쟁을 수없이 벌였고, 덕분에 황빠들에게 실제 포위를 당해 경찰의 보호 아래 건물을 빠져나가기도 하는 등 거의 사탄급 증오를 받았다. 이후 디워 논쟁에서도 다시 디빠들의 원수가 되면서 옳은 말 하고도 평생 먹을 욕은 다 먹었다.
보수적 시각을 가졌다는 사람들도 논란이 되었다. 대표적인게 김대중(기자) 조선일보 주필. 아예 색깔론에 근거한 좌파를 운운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 좌파 매체와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MBC 의 보도를 옹호하거나 PD수첩에 응원을 보내다 '수첩'이 사과하는 바람에 공중에 떠버렸다고 깎아내렸다. ### 하지만 이후 PD수첩이 맞았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PD 수첩에 대해서도 응원하며 "나도 MBC PD수첩의 이 보도가 짜증스럽다. 그러나 막상 MBC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또 다른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관용을 모르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광고까지 취소되는 것은 심했다고 한 ##### 발언들은 이후 공중에 떠버렸다는 김대중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몇몇 언론의 이중적인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황비어천가를 불러제끼며 객관적인 취재를 등한시하고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일조하다 사달을 냈음에도, 언론 본연의 임무인 의혹을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못한 자신들의 실수를 반성하기는 커녕 앞장서서 PD수첩을 신나게 비난하다가, 진상이 밝혀진 후 재빠르게 태도를 바꿔 황우석 측을 비난하는 뻔뻔한 작태를 보였다. 이들은 MBC가 취재 윤리를 위반했다며 신나게 털어댔지만 정작 자신들은 취재원과 정보원의 신원을 노출시키질 않나, 청부취재를 하지 않나, 본인들 스스로가 취재 윤리를 어기는 내로남불식의 추태를 보였다. 물론 사건 이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각 언론사들이 자신들의 태도에 대해 진지한 반성문을 올렸으나, 조선일보만은 끝끝내 올리지 않는 뻔뻔함을 보였다. 또 PD수첩의 PD들이 대학생 시절 운동권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색깔론을 주장하는 오류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대 학벌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맹종 또한 이 사건의 대참사를 불러들어들였다는 뼈아픈 지적이 제기되었다. 황우석의 논란이 폭로되는 와중에도 서울대 수의학과 정교수가 그럴리가 없다는 서울대의 권위와 브랜드에 기댄 근거없는 일방적인 옹호들이 터져나왔을 정도.
한편, 외신들은 황우석 스캔들을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조작이란 관점보단 '''국익 앞에 과정이나 윤리 따윈 크게 필요없다'''는 논리가 국론이 되어가는 모습 자체를 많이들 분석하고 비판했다. 즉, 한국의 '''대중, 언론, 정치권을 싸잡아서 비판'''한 셈이었는데, 그나마 우리 내부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수습을 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실제 PD수첩 PD는 이후 저널리스트 관련 해외상도 받았다. 그 외 이 사태로 인해 과학 윤리에 대한 기준이 마련된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실제 학계에서 지명도가 좀 있는 저널이라면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논문 철회나 연구조작, 연구윤리문제로 사건이 터져 수습했다거나 다른 데서 터진 사건을 에둘러 말하며 주의를 환기하는 기사나 편집자 노트가 실린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더 오래 전부터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그걸 밝혀내고 처벌하는 시스템도 일찍 만들어졌다.
이 사건의 내부고발자는 결국 업계 일선에서 물러났다. 국내에서 내부고발자 보호에 얼마나 소홀히 여기고, 심지어 배신자 취급하기도 하는지 똑똑히 드러난 사건. 특히 내부고발자들 신원이 들통날 때 언론이나 국가 기관은 이를 제지하긴커녕 오히려 방관 혹은 일조하기도 했다. 한편, 이런 소식을 들은 브릭의 젊은 과학자들은 생활고를 호소하는 제보자들에게 '아름다운 제보자상'의 이름으로 성금을 전달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이상해보일 것이다. 양심을 따른 이는 직장에서 잘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던 과학계에서 추방을 당한데다가, 공백기를 지난 이후에도 배신자 딱지가 붙어 지내는데 거대 사기극을 일으킨 사람은 아직도 호의호식한다.# 물론 내부고발자 항목에도 있듯 이런 일이 이 분야에서만 벌어지는건 아니지만, 명심할건 한학수 PD가 말한 대로 한국은 이 제보자들에게 진정 엄청난 빚을 졌다는 것이다.[20]
4. 관련자들의 행보
- 박기영: 박기영 교수는 조작으로 밝혀진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논문의 제 13저자(기여 없음)로, 참여정부의 정보과학기술정책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황 교수를 국민적 스타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2004년 사이언스 논문 링크에 접속해 보면, 제목 밑의 저자 목록에서 펼쳐보기를 통해 박기영 교수의 영문명 Ky Young Park을 확인 가능하다. 허나 박기영 교수는 이 논문에 생명윤리 자문을 했다고 20개월 넘게 주장했으나, 정작 난자 기증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서울대 조사위 최종 보고서에서 '기여 없음'으로 결론났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3차관(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관련 사건이 재부각되고 여론의 반발이 심해지자 자진사퇴했다.
- 이병천: 황우석의 수제자로 황우석 연구진이 와해되었지만 언제 다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직에 버젓이 있으면서, 복제견 실험을 주도했다. 실제로 몇몇 복제견을 양산하기도 했으나 그 복제견중 일부가 마약탐지견으로 채택된[21] 과정 등에 대해 의혹이 있고, 황우석 사태 이후 10여년 이상 진행해오던 복제견을 위한 실험들이 상당히 비윤리적인 방식이었기에 문제가 되고 있다. 복제견 메이의 죽음에 이어 고등학생이던 아들을 논문 공동저자로 올린 것도 밝혀져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조카 2명도 입시규정을 위반하고 입학한 것이 밝혀졌다.# ##
- 백선하 : 과거 황우석 사단에 속했던 백선하가 서울대병원 의사로 백남기 농민의 수술을 억지로 집도하고 외인사를 병사로 둔갑시키는 등, 엄청난 논란이 될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당시 황우석 관련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더욱 커진 적도 있었다.
5. 황우석 사태 관련 참고자료
- '황우석 논문조작' 제보 류영준 "난 분노했다"
- 황우석 사태의 내부고발자, 드디어 입을 열다 - 위에서 언급한 류(유)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네이처 인터뷰 번역문.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 재미 생명공학자가 본 황우석 신드롬 - 다만 2005년도 기사라 사태의 흐름에 훨씬 늦은 감이 있다. 허나 교수들의 공로 독식 등등에 대한 부분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 "황우석 논문 조작, 10살 소년 살리려 제보했다" - 류영준 교수의 인터뷰 내용
- NT-1 특허의 실체와 국내외 학계의 반응을 분석한 기사.
6. 기타등등
- 황우석 사태 관련 각종 음모론과 '황빠'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각종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고 사건이 종결된 지금까지도 황우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황우석 극단 지지자, 일명 '황빠'들이 존재한다. 자세한 사항은 황빠 문서 참고.
-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영화가 2014년 개봉한 제보자이다.
7. 관련 문서
[1] 연구원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연구원은 임상시험과 같은 인체실험에서 '''"불리한 위치의 시험대상자"'''로 분류되며 정신지체자, 죄수, 미성년자 등과 함께 '''"인체실험에 대한 특별 보호대상"'''이다. 연구원은 자신의 상급자인 연구책임자에게 불복종하기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서는 황 교수가 연구원들의 졸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함부로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2] 다만 프레시안에서 처음 이런 기사가 나갔을 때 당연히 황우석 지지자들은 부정했고, 아이러브 황우석의 카페 주인이었던 고운은 자기 노모가 밤새도록 꽃을 준비했다고 주장하며 일부 사진을 올리고 다음해 2006년 2월 16일에 고소를 하기도 했다. 허나 훗날 해당 기자는 다음에 꽃을 주문하고 싶다면 사진 속에서처럼 일부러 가지가 달린 꽃을 주문해서 힘들게 꽃만 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지가 붙어있지 않는 꽃을 주문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3] 여담으로 당시 한 현직 의원은 오프더 레코드로 황우석의 정치인 포섭책을 설명했다. 가장 큰 특징은 초청을 통한 개별 접촉이었다고. "당신에게만 보여드립니다"라는 태도로 실험실 깊숙히까지 보여준 다음, 돈봉투를 쥐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양산형 "맞춤형 접대"에 감동한 정치인들은 황우석 옹호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나.[4] 그러니까 12월 4일 문제의 YTN 방송이 나간 다음 날.[5] 닉네임이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에서 쓰인 바에 따르면 이른바 '재림 고수'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6] 연구가 거짓으로 밝혀진 현재에는 파일이 내려간 상태이다.[7] (펌)The show must go on -황구라 논문의 실체!, 디시인사이드 과학 갤러리[8] [특종] Bric 에서 황우석 교수가 구라친거 밝혀냈다, 디시인사이드 과학 갤러리[9] 제가 방금 사이언스 온라인에서 원본을 확인해봤습니다., 디시인사이드 과학 갤러리.[10] '''그런데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게시판에 사진이 올라온 것은 2005년 12월 5일, 황 교수 측이 사이언스에 수정 요구를 한 것은 '''같은 날 오후'''. 이런 식의 빤한 거짓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더 무서운 건 그래도 눈먼 황빠들은 계속 속았다는 것이다.[11] 논의에 뛰어든 주체가 너무 많다보니, 親황우석 진영과 反황우석 진영을 정리해놓은 짤방까지 꾸준히 업데이트 될 지경이었다. [12] 사이언스 구독 신청 링크. 애초에 대학교 다니는 사람이면 학교 도서관을 통해 볼 수 있다. 사이언스 구독권을 사놓지 않는 도서관은 없다고 봐도 된다.[13] 그리고 잘 생각해보자. 일반인이 억만금을 줘도 아무나 볼 수 없는, 일반인에게 공유의 기회조차 없는 지식을 전하는 잡지가 과연 무슨 가치가 있을지.[14] 이전 한나라당이 추진했던 H2O 프로젝트의 패러디.[15]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도 황우석 사태 당시에 한겨레와 비슷한 논조를 취했다. 미디어오늘은 당시 한국일보가 그나마 나았고,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조중동이랑 똑같은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도 색깔론을 편 조선일보를 가장 비판하긴 했다.[16] 중심을 지킨 심층보도로 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2020년 현재, 조국 흑서 공동집필 등 현정부의 위선적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데, 그로인해 친정부 성향의 커뮤니티 및 정부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 조리돌림 수준의 인신공격을 당하고 있다. 물론 적폐 규정은 덤.[17] 이 날 뉴스데스크 첫 보도가 노성일 이사장의 MBC와의 인터뷰 보도였는데 이 보도를 전하면서 한 첫 멘트가 이것이다. 그리고 당시 황우석 사태를 취재한 PD수첩 한학수 PD(현재 MBC 시사교양 1부장)가 황우석 사태에 대한 취재기 형태로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18] 황우석 “줄기세포 만들었다” vs 노성일 “과학자 눈 못 속여”, 동아일보, 2005년 12월 16일 입력, 2009년 09월30일 수정.[19] 원천기술 있다면 황교수 다시 기회 줘야 80%, 리얼미터 2005년 12월 24일. [20] 링크된 기사의 주인공인 류영준 교수는 과학동아 팟 캐스트에 출연해서 "내부 고발자임에도 국립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자신이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사실 이 특이 케이스는 류영준이 고신대학교 의예과 출신인 의사라서 가능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부침을 거듭했지만 병리학 레지던트를 마친 후 전문의를 취득한 뒤 강원대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병리학은 흔히 기초 학문으로 오인되지만 실제로는 임상과 기초의 경계에 있는 학문이다. 소위 기초 의학이라는 해부학이나 생리학, 생화학 같은 학문들이 임상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희박한 반면, 병리학은 조직 진단을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그가 의사가 아니었고 환자 진단과 치료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을 경우 심각한 불이익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21] 유전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개들보다도 탐지능력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