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 NBA 파이널
1. 개요
1992년 NBA 최종 챔피언 자리를 놓고 시카고 불스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간의 시리즈. 80년대 후반부터 당대 최강의 스윙맨으로 평가받았던 마이클 조던과 클라이드 드렉슬러간의 정면승부로 이목을 끌었으며, 6차전 끝에 불스가 전년도에 이어 2연패를 해대는데 성공한다. 마이클 조던이 마침내 역대 최고 선수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시리즈.[1]
2. 일정
- 1차전 - 6월 3일 : 시카고 스타디움, 시카고
- 2차전 - 6월 5일 : 시카고 스타디움, 시카고
- 3차전 - 6월 7일 : 메모리얼 콜리세움, 포틀랜드
- 4차전 - 6월 10일 : 메모리얼 콜리세움, 포틀랜드
- 5차전 - 6월 12일 : 메모리얼 콜리세움, 포틀랜드
- 6차전 - 6월 14일 : 시카고 스타디움, 시카고
3. 진출팀
3.1. 동부 컨퍼런스 : 시카고 불스
창단 30여년, 그리고 마이클 조던을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지명한지 7년만에 차지한 감격적인 첫 우승 이후 맞이한 시즌이었다. 우승 후유증 따위는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조던과 불스는 전년보다도 더욱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던은 평균 30.1득점을 기록하면서 생애 세번째이자[2] 시즌 2년 연속 정규 시즌 MVP를 기록하였고 불스 역시 67승을 기록하면서 전년도보다도 더욱 상승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매우 여유롭게 NBA 정규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한다.[3][4]
그렇게 돌입한 플레이오프 첫 상대는 8번 시드 마이애미 히트였고 가볍게 스윕하면서 2라운드행. 2라운드 상대는 쇼타임 레이커스를 이끌었던 팻 라일리의 조련 하에 컨텐더 팀으로 거듭난 패트릭 유잉을 필두로 한 뉴욕 닉스. 예기치 못하게 홈에서 열린 1차전부터 일격을 당하면서 시리즈는 장기전으로 흘러갔고, 육탄 방어를 앞세운 닉스의 수비력 앞에 조던 역시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7차전에서 조던 본인이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천신만고 끝이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데 성공. 이어진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클리브랜드 캐벌리어스. 브래드 도허티 - 래리 낸스 - 마크 프라이스의 빅3로 이루어진 캐벌리어스 역시 수월하지는 않은 상대였지만 6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시리즈를 따내면서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다.
3.2. 서부 컨퍼런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90년 파이널에서 배드 보이즈에게 통한의 패배를 당한 이후 찾아온 두번째 기회였다. 전년도에도 창단 이후 최다승 기록인 63승을 기록하면서 서부 컨퍼런스 1위를 차지, 언론에게서 불스의 호적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받았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절치부심한 매직 존슨이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패배하면서 두 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연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1991년을 마지막으로 매직 존슨의 급작스러운 HIV 감염으로 은퇴를 선언하면서 전통의 강호 레이커스도 그 빛남을 잃었다. 덕분에 서부에서 포틀랜드와 드렉슬러를 상대할 팀은 더 이상 없었고 성적 자체는 전년보다는 하락했지만 57승 25패의 성적으로 2년 연속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차지했다. 이번에는 플레이오프에서도 레이커스 - 피닉스 선즈 - 유타 재즈를 연파하면서 다시 한 번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4. 전개
4.1. 1차전
마이클 조던에 의해 포틀랜드의 수비가 초장부터 산산조각이 난 1차전이었다. 조던은 전반에만 무려 35득점을 기록하면서 파이널 전반 최고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고,[5] 그 덕분에 불스는 전반에만 무려 15점을 앞서나갈 수 있었다. 후반 들어서는 조던이 6점 득점에 그치면서 전반같지는 않았지만 대신 스카티 피펜과 B.J 암스트롱, 스캇 윌리엄스가 번갈아가면서 야투감을 폭발시키면서 3쿼터에 일찌감치 경기를 가비지 게임으로 만들어버렸고 최종스코어는 122-89로 무려 33점차 대승을 가져가면서 시리즈를 기분좋게 시작했다.
아울러서 이날 조던은 전반에만 무려 6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면서 파이널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는데, 6번째 3점슛을 성공시키고는 본인도 믿기지 않았는지(...) 손바닥을 내밀면서 어깨를 으쓱(Shrug)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NBA 파이널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아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실제 경기를 보면 더 임팩트가 큰데, 당시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조던이 3점슛에 그리 강하진 않다는 걸 노려 약간 거리를 두고 돌파를 주로 견제하는 수비를 했다. 그러자 조던은 3점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초반 2개를 놓친 후 6개를 '''실패 없이 연속으로 넣었다.''' 이 때문에 몇개 넣다가 놓치다가 한 다른 기록 보유자들보다 임팩트가 컸는데, 6개 연속 성공 구간 동안에는 뭘 던져도 다 넣을 것 같은 기세였기 때문. 이 때문에 조던이 하나하나 성공시킬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가 점점 커져갔다. 3점 연속 성공 구간 중간중간에 피펜의 레이업 미스를 풋백덩크로 꽂아넣거나 그림같은 페이더웨이를 꽂아넣는건 덤.[6]
덧붙여서 불스의 백업 센터였던 스테이시 킹은 조던이 신들린듯이 3점을 꽂자 본인이 더 신나서 타월을 투우사마냥 휘저으면서 땀을 훔치고는 Hot! Hot! Whoo!라고 연호했는데 이게 또 나름 찰져서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던 본인의 The shrug와 한데묶여 영상으로 자주 나온다.
4.2. 2차전
1차전에서 초반부터 맥없이 조던의 파상공세에 무너졌던 것과 달리 이 날 포틀랜드는 팀의 원투펀치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테리 포터를 필두로 전반을 54-45, 9점차 리드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3쿼터 시작과 동시에 조던의 슛감이 다시 살아나면서 3쿼터에만 14점을 퍼부었다. 여기에 존 팩슨 역시 3점슛 감이 폭발하면서 불스는 3쿼터를 7점 차이로 역전시킨 채 마무리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기 초부터 파울 트러블에 시달리던 드렉슬러가 4쿼터 4분여를 앞두고 6반칙 퇴장을 당하면서 경기는 그렇게 불스의 낙승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7]
하지만 방심했기 때문일까, 조던 역시 연이어서 파울을 범하면서 파울 트러블에 빠져버리고[8] 그 틈을 타서 포틀랜드의 2옵션이었던 테리 포터와,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비중이 공기에 가까웠던 주전 PF 벅 윌리엄스가 불을 뿜기 시작했고 경기는 다시 97 - 97 원점. 4쿼터 종료를 알리는 버저와 함께 시도한 조던의 버저비터 시도가 림을 외면하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이어진 연장전을 지배한 것은 바로 포틀랜드의 대니 에인지. 적재적소마다 야투를 꽂아주었던 에인지 덕분에 연장전에서 순식간의 스코어는 10점 넘게 벌어졌고, 포틀랜드는 귀중한 원정 1승을 챙겨서 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울러서 불스와 경기장을 공유하는 NHL의 시카고 블랙호크스 역시 이 해에 스탠리컵에 진출했고, 경기장 사용 우선권이 블랙호크스 측에게 있었다. 1992년 스탠리컵 6차전과 NBA 파이널 2차전이 같은날로 예정되었기 떄문에 여차하면 NBA 파이널 2차전이 하루 더 뒤로 밀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카고 블랙호크스가 깔끔하게 스탠리컵을 4전 전패(...) 스윕으로 마무리하면서 별 문제 없이 경기가 개최될 수 있었다.
4.3. 3차전
이해 트레일블레이저스는 홈에서 극강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었고, 실제로 플레이오프에서도 홈경기 8연승을 달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때문에 2차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포틀랜드 쪽으로 승기가 기울었다는 언론들의 예측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불스 필 잭슨 감독은 치열하게 공격 대 공격으로 맞섰던 1, 2차전과는 전혀 다른 수비 위주의 지공 플랜을 들고 왔고 이것이 적중했다. 2차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치른데다가, 그나마 경기 사이에 있었던 단 하루의 휴식일은 시카고에서 포틀랜드까지의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소비되었고 이로 인해서 양 팀 선수들 모두가 상당한 체력 문제를 겪으면서 야투 난조에 시달렸기 때문. 게다가 불스가 의도적으로 경기 페이스를 느리게 끌고 갔기 때문에 블레이저스의 또다른 장점이었던 속공 찬스마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질식에 가까운 수비력을 선보인 시카고 불스 앞에서 포틀랜드의 2옵션이었던 테리 포터는 쩔쩔 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에이스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고군 분투 덕분에 트레일블레이저스는 한때 15점차까지 벌어졌던 스코어를 간신히 한자릿수 차이(54-45)로 좁히며 전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불스는 1옵션이었던 마이클 조던 대신에 2옵션 스카티 피펜과 3옵션 호레이스 그랜트가 각각 14점, 13점을 기록하면서 공격을 전두지휘했다. 조던은 아이솔레이션 비중을 낮추는 대신 게임 조립에 집중하면서 전반 동안 고작(?) 10개의 야투만을 시도했다.[9]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비슷하게 이어졌고, 포틀랜드가 번번히 추격을 시도하면 그때마다 조던이 찬물을 끼얹는 득점을 기록하면서 경기는 94-84, 10점차로 불스의 승리로 끝이 난다. 한편 포틀랜드 입장에서는 3쿼터 한 때 56-60, 4점차까지 추격하던 상황에서 테리 포터의 레이업 득점이 불스 포인트 가드 B.J. 암스트롱에 대한 공격자 파울이 불리면서 무효화되면서 모멘텀을 놓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던 대목이 됐다.
4.4. 4차전
1990년 NBA 파이널을 포함해서 지난 3차전까지, 포틀랜드는 홈에서 열린 NBA 파이널 경기에서 무려 4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그리고 이 날도 조던은 날아다녔고, 4쿼터 막판까지 불스에게 주도권을 내준채 끌려다니면서 또다시 홈팬들을 실망시키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포틀랜드의 릭 아델먼 감독은 스몰라인업이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이것이 적중했다. 드렉슬러가 꾸준히 힘을 보탠 가운데, 대니 에인지 - 제롬 커시 - 클리포드 로빈슨 3명으로 구성된 백코트진이 왕성한 에너지 레벨을 보여주면서 공수 양면에서 불스를 압박했던 것. 반면 4쿼터 10분을 남긴 시점에서 이미 32득점을 기록했음에도, 정작 중요했던 클러치 구간에서 포틀랜드 수비진에게 철저히 틀어막히며 조던은 클러치의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무득점 굴욕을 당하면서 팀의 패배를 지켜보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볼 배급을 맡아줄 수 있는 팀내 유이한 자원 중 하나인 피펜이 파울 트러블에 휘말리면서 혼자 북과 장구를 동시에 쳐야할 것을 강요받았던 점으로 인한 체력 저하가 조던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역전의 단초가 되었던 경기 종료 3분전 드렉슬러의 결정적인 스틸까지 허용하면서 이래저래 조던으로서는 체면을 구긴 하루였다. 2차전과 마찬가지로 4차전 역시 다 잡은 경기를 불스 본인들의 집중력 저하로 날리고 말았는데, 필 잭슨은 손에 다 쥐었던 경기를 날려보냈다.(We had this one in hand and let it slip away)라고 아쉬움을 표출.
4.5. 5차전
4차전에서 체면을 구겼던 조던이 대각성한 경기였다. 전반에만 일찌감치 27점을 쓸어담으면서 포틀랜드 수비진을 초토화시켰다. 2쿼터 한 때 조던이 골밑에서 야투를 시도하다가 사진기자와 부딪혀서 발목을 접질리면서 불스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으나, 별 일 아니었다는 듯이 테이프를 발목에 한번 감고 나와서는 다시 포틀랜드 수비진을 탈탈 털어버렸다. 게다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포틀랜드의 에이스 드렉슬러가 조던을 전담수비하다가 전반전에만 4개의 파울을 범하면서 일찌감치 파울트러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한편 드렉슬러의 조던 전담수비는 포틀랜드의 연쇄적인 수비 붕괴를 야기했는데, 드렉슬러가 조던을 밀착마크한 관계로 테리 포터가 스카티 피펜을 전담해야 했는데, 문제는 포터와 피펜의 키 차이는 무려 5인치(12.5cm). 덕분에 포터 역시 피펜에게 탈탈탈 털리면서 전반전에만 조던과 피펜은 52득점을 합작하면서 포틀랜드의 백코트 진을 무참히 털어버렸다. 2/4차전에서 다 잡은 경기를 막판 집중력 부족으로 내준 것에 대한 반성인지, 조던은 4쿼터에도 쉴 새 없이 득점을 쏘아대면서 46득점(14/23)을 기록했고 경기는 가볍게 불스의 가비지 승리로 매조지. 2연패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둔 불스는 여유롭게 홈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4.6. 6차전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가고자 작정한 것처럼 포틀랜드는 1~3쿼터 내내 거세게 불스를 몰아붙였다. 그 결과 3쿼터 종료 시점에서 양팀의 스코어 차이는 무려 15점.(79-64) 4쿼터 시작 시점에서, 불스는 마치 수건을 던지는 것처럼 조던을 벤치에 앉혀두었고 그렇게 92년 파이널은 7차전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때 조던이 없어도 본인들이 컨텐더 팀인 것을 보여주려고 작정한 것처럼, 다른 멤버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피펜을 제외하면 암스트롱 - 킹 - 윌리엄스 - 헨슨으로 이루어진 벤치 멤버들이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면서 4쿼터 첫 4분을 14-2로 시작하면서 단숨에 경기를 난전으로 만들었다. 불스의 맹추격에 포틀랜드는 흔들렸는데, 에이스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더블 드리블, 2옵션 테리 포터가 킥 볼을 기록하면서 그대로 자멸(...) 그렇게 경기가 추격권에 들어자 필잭슨 감독은 당연히 조던을 경기장에 재투입. 조던은 4쿼터에만 12점을 기록하면서 불스를 승리로 인도했다. 포틀랜드는 마지막에 파울작전까지 동원하면서 거세게 저항했지만, 조던은 흔들리지 않고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켰고 이어진 공격권에서 포틀랜드의 야투가 림을 외면하면서 경기는 종료. 불스는 전년도에 이어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한다.
5. 파이널 MVP
마이클 조던
기록 : 6경기 출장, 42.3분 플레이, 35.8득점, 6.5 어시스트, 4.8 리바운드, 1.7 스틸, 야투율 52.6%.
6. 우승 반지
[image]
7. 여담
- 이 시리즈 전까지 언론 및 사무국에서는 80년대 매직 존슨 對 래리 버드 구도처럼 90년대를 조던 對 드렉슬러의 구도로 포장해서 마케팅에서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조던이 이 시리즈를 승리로 이끌면서 개인 커리어로나 팀 커리어로나 조던의 압승 구도가 성립되면서 자연스럽게 흐지부지.
- 전년도에 우승을 하고서는 트로피를 껴안고 펑펑 울던 것과 달리, 시리즈 종료 후 조던은 그저 해맑게 웃으면서 승리를 축하했다. 이번에는 왜 안 우냐는 기자의 질문에 "눈물 안짤겁니다. 그냥 샴페인만 터뜨릴 거에요(No tears this time, just champagne)."라는 답변은 덤(...)[10]
- 1969년 파이널 MVP가 설립된 이후로 2년 연속 파이널 MVP에 오른 것은 이 때의 조던이 처음.
- 또한 마이클 조던은 2년 연속으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데 이어 이번 파이널에서도 2연속으로 팀의 우승과 파이널 MVP를 동시에 기록하고, 그 이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드림팀의 일원으로 올림픽 농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단일 년도에 최초로 NBA 파이널 우승+정규시즌 MVP+파이널 MVP+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11]
- 이 해를 마지막으로 포틀랜드 블레이저스는 아직까지 NBA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12]
- 파이널에서 적으로 만났던 드렉슬러와 조던/피펜은 시리즈 종료 후 불과 한 달만에 이번에는 드림팀의 일원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불스가 우승을 차지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리즈였다. 91년과 93년은 각각 원정에서 우승을 했기 때문에 홈구장에서 우승 세레머니를 할 기회가 없었고, 이후 96년과 97년에는 홈구장에서 우승을 했지만 시카고 스타디움 대신 유나이티드 센터로 홈경기장을 이전.
[1]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해의 우승까지는 역대 최고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래리 버드/매직 존슨 등의 라이벌들이 있었던 수준이었고, 다음해 (현대 농구로 보기에는 다소 애로사항이 많았던 60년대 셀틱스 이후로) 전무후무한 쓰리핏에 성공하면서 GOAT로 대접받기 시작한다. 덧붙여서 만약 조던이 그대로 93년 농구계를 은퇴하고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선수들과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겠지만, 95년 복귀 이후 2차 쓰리핏에 성공하면서 조던의 GOAT 지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그 자체로 확고히 굳어지게 된다.[2] 88, 91, 92[3] 이 해에 불스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은 파이널 상대인 포틀랜드와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였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였는데 둘 다 57승으로 불스보다는 확연히 낮은 성적이었다.[4] 이 때 불스의 페이스는 워낙 무서워서 잘 나가는 팀들의 단골 떡밥인 "70승 도전" 얘기도 나왔는데, 실제로 전반기에만 13연승을 두번이나 달리는 무서운 기세를 보였다.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2연패-2연승-2연패 구간을 보내며 사실상 70승은 어렵게 되었고, 결국 3월 21일에 13패째를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이때 불스의 70승 꿈을 박살낸 것은 샤킬 오닐 영입 전 바닥을 기던 올랜도 매직.[5] 종전 기록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엘진 베일러의 33점이었다.[6] 아이러니하게도 1992 NBA 파이널 전 여러 전문가들에게 드렉슬러가 조던보다 가장 나은 점으로 손꼽히던게 바로 3점슛이었다.[7] 드렉슬러만이 아니라 주전 스몰포워드였던 제롬 커시 역시 6반칙 퇴장을 당하면서 포틀랜드는 스몰포워드 전문 요원이 아닌 슈팅 가드 대니 에인지와 파워 포워드 클리포드 로빈슨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돌려써야 했다.[8] 이 날 조던은 총 5개의 파울을 범했다.[9] 이에 대해서 필 잭슨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쓴 비유가 압권이었다. "2차전에서는 너무 조던이 모든 걸 다 이끌어주기를 기다렸죠. 마치 고무 젖꼭지를 입에 물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같았죠. 오늘은 좀 더 볼 소유를 다변화하는데 성공적이었습니다.("On Friday we looked for Michael to bail us out too often. It's almost like having that pacifier -- putting it in your mouth again and sucking on it. Today we did a better job of distributing the ball.")"[10] 조던은 1차, 2차 3연패 모두 두번째 우승 때 가장 해맑게 즐거워했다. 91년에는 위에 나온대로 첫 우승에 엄청나게 감격해했고 (라스트댄스 때도 나오지만 뒤풀이때는 피아노를 치는 등 깨방정 떨며 놀았다) 93년에는 여러 스캔들의 영향과 정신적인 피로도 때문에 좋아하긴 해도 그렇게까지 밝은 모습은 없었다. 96년에는 아버지 생각에 오열을 했으며 98년에는 육체적 피로와 여러 이슈가 있어 완전 해맑진 못했다. 조던이 코트 위에서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좋아했던 건 92년, 97년 뿐.[11] 이후 이 대기록은 정확히 20년후인 2012년에 르브론 제임스가 다시 세우게 되었다.[12] 99-00시즌과 18-19시즌에 각각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갔으나, 처음에는 레이커스에게 패하였고 후에는 워리어스에게 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