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기대상/역사/1987~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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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7, 1988년
1987년
1988년
최초의 KBS 연기대상으로 토지에서 2년 연속 수상자가 나왔다. 임동진이 87년 최초의 대상 수상자였고 반효정이 이듬해 대상 수상자.
2.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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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이 사랑의 굴레로 커리어 첫 연기 대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MBC 연기대상에서 춤추는 가얏고로 대상, 2000년 SBS 연기대상에서 덕이로 대상 받으면서 현재까지 유일한 그랜드슬램 보유자.[1]
3.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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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이 ‘야망의 세월’과 ‘역사는 흐른다’로 대상을 받았다.
4.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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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훈이 옛날의 금잔디로 대상을 받았다.
훗날 대배우로 성장하는 이병헌은 이 해에 배우로 데뷔해서, 처음으로 시상식이 열린다기에 구경하러 왔었지만 본인의 좌석이 없었기에, 계단에 쪼그려앉아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박수만 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언젠가 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다는데, 그 다음년도인 92년도에 곧바로 신인상을, 18년 뒤인 2009년도에는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 내용은 그가 2009년도에 대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소감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5.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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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오현경이 TV 손자병법으로 대상을 받았다.
6.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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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4세였던 하희라가 먼동으로 최연소 KBS 연기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남편 최수종보다 5년 먼저.
7.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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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로 방송된 첫번째 해.
한명회의 타이틀롤이었던 이덕화가 대상을 수상하였다.
자사 작품인 《일요일은 참으세요》팀에게 특별상이 수여되었다.
8.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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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된 KBS 1TV 일일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에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지만 구수한 이북사투리를 구사하며 할 말은 다하고 사는 팔순의 할머니[2] 로 등장하여 열연을 펼친 나문희가 대상을 차지했다. 조연이 연기대상을 수상한 첫번째 사례로 손꼽힌다. 참고로 당시 나문희의 나이는 겨우 54세였다. 2020년 기준으로 손자로 출연했던 현재의 최수종보다도 더 젊은 나이다.(...) 즉, 자신을 내려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백발의 할머니를 잘 소화해낸 것.
김소연이 데뷔해서 아역상을 받은 시상식이기도 한데, 특유의 노안(...)[3] 때문에 무슨 '''성인배우가 아역상을 타냐고 방송국으로 항의전화'''가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김소연은 1995년 당시 정확히 '''15세'''로 중학교 3학년이었다.
9.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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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집 남자들의 안주인 역할을 맡았던 강부자가 대상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후속작이었던 첫사랑에서 수상자가 다수 배출되었다. 최우수상의 최수종, 우수상의 배용준부터 인기상, 조연상, 신인상까지...
특히, 실시간 전화투표로 결정되었던 인기상 수상자가 '첫사랑'의 배용준, 송채환이었는데... 송채환의 경우 여주인공이었던 이승연을 제치고 받은 것이라 더욱 화제가 되었고, 배우 본인도 예상을 못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남자 최우수상 부분이 압권이었는데, 전년도 수상자인 유동근과 하희라가 시상을 하면서, 각각 본인(...)의 이름과 남편의 이름을 호명하게 되었다. 유동근은 용의 눈물로 내년에 받겠다고 흘러넘겼는데, 그것은 1년 후 사실이 되었다.
10.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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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물에서 열연을 펼친 유동근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방원 역을 잘 소화해내어 대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일. 뿐만 아니라 최우수 연기상, 우수연기상, 조연상, 작가상까지 다수의 부문에서 《용의 눈물》 팀이 수상하였다. 유동근의 KBS 연기대상 쿼드 크라운의 시작.
이 방송분부터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했다.
11.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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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자는 야망의 전설에서 호연을 펼친 최수종이었다. 최수종의 KBS 연기대상 트리플 크라운의 시작. 이로써 방송 3사 연기대상 최초로 연기대상 수상 부부가 탄생하게 됐다. 배우자인 하희라가 1993년 《먼동》으로 대상을 탄 전례가 있다. 그리고 최수종의 대상 수상 당시 하희라가 첫째를 임신 중이어서 수상의 기쁨이 더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관객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축하해주었다.
최수종의 대상 수상은 연기대상 개최 전에 이미 많은 이들이 예측할 정도로 확정적이었다. 전년도 대상 수상자 자격으로 시상을 맡은 유동근은 대놓고 "동생 정태가(드라마상 최수종의 배역명) 대상을 탔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4]
전년도 수상자 자격으로 인기상을 시상하러 나온 류시원이 "인기상은... 또 접니다..."라고 스스로를 쑥스럽게 호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전년도에는 프로포즈[5] 그리고 이번 해에는 순수와 종이학으로 2년 연속 인기상을 수상한 것.[6]
IMF의 여파로 수목 드라마와 KBS 2TV의 심야 주말 드라마가 폐지되는 등[7] 전년도에 비해 드라마 방영 편수가 줄었고, 주말극과 일일극 그리고 월화극 중에서는 《순수》를 제외하고는 흥행작이 없어서인지 전년도에 비해 수상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12.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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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비의 채시라가 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도 KBS에서 밤 10시대 수목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았고, 《왕과 비》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게 흥행한 작품도 없었기 때문에 《왕과 비》 팀에서 무더기 수상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 되었으나 의외로 주요 부문에서는 채시라의 대상 수상과 김성령의 우수상 수상이 전부이다.[8][9] 이로써 야망의 전설 주연 배우들이 3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연산군을 맡아 아직도 회자되는 명연기를 보여준 안재모가 무관에 그쳤다는 것. 안재모의 경우 학교에도 출연했는데 상 하나 챙겨주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10][11]
그리고 기존 아역상이 전년도에 청소년상으로 바뀐데 이어 당해에는 청소년 연기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아마도 학교 시리즈 출연자들에게 수상하려는 포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 시리즈가 연이어 방영된 2001년까지 이 부문은 학교 시리즈 출연자들이 거의 독식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학교 시리즈의 출연자 중 20대도 적지 않았기에 후술하는 것처럼 2년 뒤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의외로 학교 시리즈인 《학교》와 학교 2에서 청소년 연기상부터 최우수상까지 모든 연기상 부문에 걸쳐 수상자가 골고루 그리고 가장 많이 배출됐다.
13.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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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에서 궁예로 열연한 김영철이 대상을 수상했다. 《바람은 불어도》를 통해 1995년 대상을 수상한 나문희에 이어 타이틀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 두번째 사례. 참고로 같은 날 열린 SBS 연기대상에서도 타이틀롤을 제치고 고두심이 대상을 수상했다.
이 해에 열린 방송 3사 연기대상에서 그동안 주로 조연으로 활약하던 중견배우들이 대상을 수상하여 관록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1] 2004년 KBS 꽃보다 아름다워와 MBC 한강수타령, 2015년 부탁해요 엄마로 현재까지 방송3사 통틀어 최다 연기대상 수상자.[2] 극중 황산해(최수종 분)의 할머니.[3] 물론 김소연의 나이를 감안하면 2020년 현재는 동안이다.[4] 《야망의 전설》에서 극중 형제지간으로 출연했다. 유동근은 정태의 형인 정우 역할을 맡았다.[5] '프로포즈'는 잘못된 표기이다. '프러포즈'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제목은 '프로포즈'로 표기되어 공식적으로 방영되었다.[6] 지금이야 이미지가 골로 갔고 TV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사실 90년대 중후반 때까지만 하더라도 류시원은 최고의 톱스타 중 한 명이었다. 나오는 출연작마다 최고 시청률 30%는 기본으로 넘기는 흥행보증수표였고, 이 때의 인기로 음반도 발매했을 정도였다.[7] 아씨가 방영되고 있었으나, 시간대를 저녁 8시로 옮기고 원래 저녁 8시에 방영되던 웨딩드레스를 조기종영 시켰다.[8] 물론 장장 3년에 걸쳐 방영된 대하사극이었기 때문에 임동진이 전년도에 이미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정태우, 김민정도 전년도에 청소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사실 채시라도 야망의 전설과 《왕과 비》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즉, 같은 작품으로 2년 연속 수상한 셈. 물론 최우수상 수상에는 《야망의 전설》이 더 결정적이었겠지만.[9] 그리고 채시라는 같은 해에 《사람의 집》이라는 저녁 일일드라마에도 출연했다. KBS에서 상을 안 주는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10] 사실 왕과 비에서 안재모는 1999년이 아닌 2000년 1월부터 3월까지 출연했기 때문에, 어쩌면 왕과 비로 그 해 신인상을 못탄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대신 같은 드라마에서 폐비 윤씨를 맡았던 김성령이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는데, 아무래도 1999년 왕과 비가 방영할 당시 김성령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1998년은 세조 임동진) 하지만 안재모는 그 다음해에 열린 연기대상에서도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왕과 비 연산군 파트가 1월부터 3월까지 너무 연초에 방영되었기 때문인 듯 싶다. 보통 연기대상에서는 그 해 연초보다는 연중이나 연말에 방영한 드라마를 더 챙겨주는 경향이 있다.[11] 결국 다음 해에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