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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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MC.
1990년 대 톱스타로 인기는 2000년 초반까지 계속됐다.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대한항공에서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했다.[1] 미스코리아 참가를 계기로 승무원직을 그만두고, 대회에서 '미'에 뽑혀 유명세를 타며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2] 새리미용실 이훈숙 원장이 발굴했다고 한다.#
데뷔 당시 미스코리아 출신답게 세련된 용모와 말솜씨로 인기를 얻었다.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1990년대 패션 아이콘으로 불렸으며, 그녀가 입고 나온 스타일은 길거리 보세까지 모두 품절 될 정도였다고. 드라마 '첫사랑'을 비롯 각종 드라마의 주연,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 MC까지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 출연했을 당시 차인표와 썸씽이 있었다고 했으나, 차인표는 이승연이 아니라 신애라를 선택했으며 그 뒤 결혼에 골인했다. 물론 결혼은 개인의 자유니까 의도는 없었겠지만, 후술할 사건들로 인해서 차인표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그럭저럭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 활동
지금이야 시대가 한참 지나서 그렇지, 1990년대 그녀의 인기는 김희선, 황신혜 등의 당대 탑스타들이 전혀 부럽지 않은 인지도와 워너비 스타로서의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1990년대 탑스타들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던 사람이 이승연이었다.[3]
당시에는 이홍렬쇼, 서세원쇼처럼 진행자의 이름을 딴 토크쇼들이 크게 인기를 얻던 시절이었는데, 주로 남성위주의 토크쇼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시절에 '''여배우가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내 건 토크쇼'''를 인기리에 진행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4] 지금은 비록 여러가지 사건들 때문에 이미지가 나쁘지만, 당시에는 혼자서 토크쇼도 능수능란하게 진행하고, 스타일도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지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연예인이었다. 게다가 데뷔 전 스튜어디스로 일했던 경력도 있어서 발음, 발성이나 예능에서 대처능력이 비슷한 시기의 심은하, 고소영, 신은경 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능숙하고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가 아래 후술할 사건으로 종영되고 바로 이어서 '김혜수 플러스 유'가 방영됐는데, 진행실력이 이승연과 비교당하면서 무지하게 까였다. 김혜수도 이승연 못지않은 진행 경력을 자랑하는데도 말이다.[5]
필모그래피만 봐도 첫사랑이라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이 외에도 사랑을 그대 품안에, 모래시계와 같은 굵직한 드라마에 나왔으며, 모두 한국 드라마사에서 뺄 수가 없는 기념비같은 작품들이다. 당시 동료 연기자였던 김희선, 심은하 등이 활동 초창기에 연기력 논란으로 곤혹을 치를 때에도 오히려 준수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나름 믿고보는 배우 타이틀도 지니고 있었다.[6]
당시에도 많은 워너비 스타들이 있었지만, 이승연은 특히나 패션과 스타일 등에서 여성들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다. 오히려 남자들보다 같은 여자들의 지지가 더 많았던 대표적인 연예인. 당시 길거리 보세가게에서는 그녀가 드라마에서 들고 나온 가방, 옷등의 카피품들이 '이승연 OOO' 식의 이름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으며, 그녀가 조연으로 나오던 드라마 조차도 핫한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되었었다. 소위 1990년대식 메이크업으로 인식되는 브라운 립스틱, 염색한 보브숏컷, 철사 헤어밴드 등은 모두 그녀의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들. 현재 국내 최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은 일을 막 시작했을때 당시 톱스타였던 이승연을 담당하게 되어 매우 설렜으나,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잘린 것에 충격을 받아 이승연에게 인정받기 위해 개인 포트폴리오를 제작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터뷰 기사
이렇듯 1990년대 연예계는 그녀를 빼놓고 말하면 이야기가 안 될 정도의 충분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래 후술된 운전면허 사건, 위안부 화보 사건 연타로 모든 커리어를 한 방에 날려먹었다. 이후로 당시 활동하던 여자 연예인들과의 경쟁 라인에서 완전히 밀려났으며, 지금의 이미지와 입지로 전락했다.
사실 위안부 사건이 너무 역대급이라 상대적으로 묻혀서 그렇지, 애초에 이승연의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운전면허 사건 때문이었다. 면허 사건 이후로 지상파 출연을 거부당했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누드 화보를 선택했는데 그게 하필 위안부를 소재로 한 막장 행보인지라...... 결국 스스로의 연예계 생명을 완전히 아작내는 꼴이 되었다.
위안부 사건 이후 한동안 방송에 나올 수가 없었고, 복귀 이야기만 나와도 여론이 급격히 나빠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안방극장 복귀를 시도했지만,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 드라마만 나온 뒤 다시 종적을 감췄다.
설상가상으로 프로포폴 사건 때문에 한동안 지상파 출연이 막힌 후에는 자연히 JTBC나 MBN같은 종편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했다.
3. 사건사고/논란
실제 사생활 측면에서는 사회적 물의를 뻑하면 일으키는 등 좋은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미 운전면허 사건 이전에도 음료회사, 매니저와의 전속계약 위반이나 파기로 소송에 휘말린 전적이 있으며 운전면허 사건 이후로도 종합소득세 문제, 의류회사와의 소송과 뺑소니 연루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그리고 후술할 나라망신을 일으킬 사건으로 사실상 커리어가 박살났다.
3.1. 운전면허 불법 취득
대표적으로 오르내리는 것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은데, 일단 1998년에 불법 운전면허 취득으로 큰 문제가 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7] 불법 교습 따위가 아니라 간 크게도 운전면허학원의 모델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대가로 도로주행 대리시험과 학과성적 조작을 통해 말 그대로 운전면허를 불법으로 취득했던 것. 이후 징역 8개월, 집유 1년, 사회봉사 80시간 명령을 선고받았다.# 약 2년 동안 활동을 못하다가 재기하는 듯했으나, 이 사건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으니...
3.2. 이승연 위안부 누드 사건
2004년 2월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흑역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누드집을 발표한다고 공표한 것이다. 이 일로 전 국민의 분노를 사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승연 위안부 누드 사건 문서로. 항간에는 이승연을 기획사의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있으며 혼자 총대를 멘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의견도 있다. 화보집을 모바일 서비스로 제공할 계획이 알려지며 큰 비난을 받았다.
나이 40살에 결혼한 후 2009년에 딸을 출산하고 다시 방송인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워낙에 위안부 누드 사건 자체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사건인지라 지상파 드라마에 간혹 캐스팅이 돼도, 드라마 자체가 듣보잡 드라마인지라 대중에게는 얼굴을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워낙에 개런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지라 가끔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저축은행 대출상품 광고에 얼굴을 비추는 듯.
과거에 위안부를 '창녀'라고 조롱하고 비하했던 김구라가 고작 약 1년 정도 자숙 후 왕성히 활동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방송에 나오기까지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셈이다.
이는 이승연이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김구라에 대한 용서가 너무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이승연은 개념이 없어서 자신이 하는 짓이 뭔 짓인지 자각을 못 한 무지였지만 김구라는 자신의 욕설 기믹에 위안부를 이용했고 안산 소녀상 사건의 일베 회원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짓을 뻔히 알면서 그걸 일부러 하면서 즐긴 것이기 때문이다.
3.3. 프로포폴 투약
'이승연과 100인의 여자'라는 토크쇼와 드라마 대풍수에 출연하는 등 슬슬 활동 영역을 넓히던 와중에 2013년 2월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검찰에 조사를 받았고, 3월에 불구속 기소되면서 다시 한 번 이미지에 치명타를 맞았다. 100인의 여자도 방송 및 제작이 중단된 상황. 대출 광고는 배종옥이 출연하는 걸로 바뀌었다.
2013년 11월 25일에 열린 최종 공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동년 12월 9일 KBS와 MBC에서 출연금지 명단에 올랐다.
4. 이후 근황
2014년에는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 캐스팅됐다.
2016년 7월 10일 TV조선 '마이웨이'에 출연해서 근황과 심정을 공개했다.
2016년 8월 4일 KBS에서 출연금지가 풀렸다. 이에 대다수 시청자들은 KBS가 막장으로 간다면서 까고 있다.#[8]
2017년에 MBC에서 출연정지가 해제됐으며, 2018년 3월 25일에 방송을 시작한 주말 드라마 "부잣집 아들"의 출연으로 복귀했지만 그 유명한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영 내내 시청률 부진에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한 편이다.
그나마 2019년에 출연한 KBS 일일 드라마 왼손잡이 아내의 경우에는 두자릿수 시청률을 보이며 순항하긴 했다.
2020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갑상선 저하증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
5. 출연작
5.1. 드라마
- 우리들의 천국 시즌 2
- 폴리스 (1994) - 홍미란
- 금요일의 여인 정애리의 천사 없는 천국 (1994) - 강혜린
- 사랑을 그대 품안에 (1994) - 고은채
- 마지막 연인 (1994) - 미순
- 모래시계 (1995) - 신영진
- 호텔 (1995) - 한수민
- 거미 (1995) - 강주리/미치코
- 아이싱 (1996) - 신서영
- 첫사랑 (1996) - 이효경
- 신데렐라 (1997) - 장혜원
- 웨딩드레스 (1997) - 김하나
- 마음이 고와야지 (1998) - 이연지
- 사랑하세요 (1999) - 유은혜
- 러브스토리 (1999) - 승희
- 사랑의 전설 (2000) - 이지혜
- 메디컬 센터 (2000) - 진가연
- 동양극장 (2001) - 차홍녀
- 가을에 만난 남자 (2001) - 신은재
- 내 사랑 누굴까 (2002) - 오지연
- 완전한 사랑 (2003) - 문지나
- 사랑과 야망 (2006) - 송혜주
- 문희(2007) - 최상미
- 주홍글씨 (2010) - 한경서
- 해피엔딩 (2012) - 홍애란
- 대풍수 (2012) - 영지
- 부잣집 아들 (2018) - 남수희
- 왼손잡이 아내 (2019) - 조애라
5.2. 영화
- 피아노맨 (1996) - 송미란
- 체인지 (1997) - 미술교사
- 헤라클레스 (1997) - 메가라
- 토요일 오후 2시 (1998) - 두연
- 미워도 다시 한번 2002 (2002) - 나수정
- 빈집 (2004) - 선화
5.3. 예능
-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MBC, 1993~1994)
-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 (SBS, 1998)
- 이승연과 100인의 여자 (케이블 - 스토리온)
- 신세계 시즌 2 (MBN, 2014)
- 언니들의 선택 (MBN, 2015)
- 이승연의 위드 유 (JTBC, 2016)
6. 둘러보기
[1] 승무원 시절에도 사내 ‘스마일 퀸'에도 뽑히는 등 미모로 유명했다.[2] 일설에는 당시 후보들 중 압도적으로 돋보여 ‘진’ 당선이 유력했으나,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 때문에 ‘미’로 밀렸다고 한다. 참고로 출전 당시 한국나이로 25살이었다.[3] 일례로 1997년 연말에 방영한 주말극 '웨딩드레스'에 출연할 당시 탑스타로 치고 올라오던 김희선보다도 더 먼저 타이틀롤에서 앞섰다. 화제성도 김희선보다 더 앞서기도 했다.[4] 평균시청률 25%, 최고 시청률 35% 정도였다.[5] 9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등 다수의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었다.[6] 이후 김희선은 영화 와니와 준하로, 심은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청춘의 덫을 통해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7] 이승연은 불구속 입건 후 전화 인터뷰에서 "내 프로를 아끼는 시청자들에 대한 책임도 있고 좋은 마무리로 속죄하고 싶습니다."라고 답변을 했으나,# 당시 진행하던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에서 성의없는 사과를 보여줘 비난을 부채질했다. 덕분에 시청률도 20% 초반까지 떨어졌다.[8] KBS는 배우 오광록, SG워너비 김용준, 개그맨 이수근, 룰라 이상민, H.O.T 토니 안, 개그맨 김용만 등 최근 몆 년간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출연금지를 해제했을 뿐 아니라, 삼진아웃(불법 운전면허 취득, 위안부 누드, 프로포폴 투약)을 낸 이승연까지 출연금지 명단에서 해제시켰으니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