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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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물 웹소설. 작가는 괄목상대.
남한 사람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되어 역사를 바꾼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북한이 자본주의 개발독재 국가가 되는 대체역사물인 동시에 북한을 개발시키는 영지물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명예훼손으로 고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북한 및 외국인들은 실명을 사용했으나 한국 정치인[1] , 기업인들은 가명을 사용했다.
2. 줄거리
한국개발연구원 소속 연구원인 이정환은 술자리에서 TV에서 중계되는 국회 공성전을 보며 저 따위로 중우정치를 하느니 자신이 절대 권력자가 되어 플라톤식 철인 정치를 펼치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하고 그날 밤 이상한 메일을 전달받는다.'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결국은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정말?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주지!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원 이정환, 어느 날 자신 앞으로 온 수상한 이메일을 열고 환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장소가...... 무림도 아니고 이세계도 아니고, 왜 하필 북한이냐고!
'''위대한 영도자 동지께 민족과 겨레의 부름을 전합니다.'''
그 메일을 열어보는 순간, 이정환은 정신을 잃고, 깨어나보니 1985년 북한에, 김일성 종합대학 학부생이며, 북한 주석 김일성의 숨겨진 사생아인 '김정환'이 되어있었다.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독재국가의 주석의 자식이 되어버린 자신을 확인한 정환은, 나라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차후 나라를 망칠 것이 확실한 차기 주석과 음지에서의 권력투쟁을 시작한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19년 5월 12일부터 연재되었다.
2019년 7월 21일자로 71화에 걸친 무료연재를 끝내고, 맛보기 25화만 무료로 남기고 유료연재로 전환했다.
2019년 12월 13일자로 180화에 걸친 1부가 마무리되었다. 일주일간의 휴재 후 2부를 시작하였다.
2020년 7월 8일 330화로 본편이 완결되었다.
휴재 후 2020년 7월 20일부터 외전이 시작되었고, 2020년 8월 21일 20화를 추가로 완결.
카카오페이지에서도 연재되었으며 2020년 8월 21일 350화로 완결됐다.
4. 등장인물
5. 개변된 역사
5.1. 북한
당연히 작중 배경인 만큼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바뀐다.
5.1.1. 정치적 변화
현재는 김정환 본인의 독재국가이지만 김정환 본인이 은퇴하면서 자기와 같은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만큼 민주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애초에 백두 혈통이라 불린 김일성의 우상화를 깎아내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갖췄으며, 마지막에는 자신 스스로도 명예로운 은퇴로 북한을 독재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5.1.2. 경제적 변화
북한 석유 및 자원의 효율적인 개발로 경제가 급성장했다. 더 격화된 천안문 사태를 이유로 많은 나라들이 중국에 경제 제재를 건 사이 영국과 수교를 시작하면서 많은 나라들의 중국의 대체재로서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유전이 발견되고, 생산성이 있는 것이 확정되면서 일본의 버블 시기에 일본에서 얻었던 많은 양의 돈을 이 유전의 이익으로 스리슬쩍 치환하면서 국부펀드인 피오나 홀딩스를 만들었고, 김정환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큰 이슈들을 바탕으로 투자를 지속해 많은 이익을 얻어냈다.
이후 IMF 사태가 터진 한국의 많은 기업들을 꿀꺽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스로 북한에 투자를 결심한 기업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근대그룹 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현대그룹.
5.1.3. 외교적 변화
특히 김정환이 신경쓴 분야가 외교 분야였다.
우선 천안문 사태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수교를 준비하기 위해 우선 영국과의 수교를 진행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김일성의 유언을 날조하여 북미수교와 남북한수교를 이루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대 미국과의 외교 분야에 심혈을 기울여서 동아시아 평화 포럼이라는 이름의 로비 창구를 미국에 뚫어 놓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이 시기에 은퇴한 마가렛 대처를 해당 포럼의 이사장으로 섭외하는데 성공했고,[2] 원래에도 보수 성향이었던 그녀의 성향에 맞는 '여성 보수주의 정치가'를 양성하면서 미국에 큰 영향을 끼치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 포럼 출신이고, 포럼의 추천을 거쳐 현대 미국 부통령이 되었을 정도로 미국 정치계에 넓은 라인을 뚫어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 석유를 남한에 수출하고 미국이 창립한 OPEC를 견제하기 위한 석유공동체의 의장국이 되거나, 파이브 아이즈로 불리는 미국 핵심 외교국에 남북한이 동시에 참여하는 성과를 올리는 등 주요 동맹국을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5.1.4. 군사적 변화
군사력 역시 소련 출신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심각하게 낙후된 중국에 대항할 정도로 발전했으며, 현실의 북한군과는 다르게 수십만명을 소수정예 정규군으로 돌리고 수백만의 노농적위대는 예비군으로 재편하였다.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무인기, 전투기 등이며 적어도 자국 방어 분야에 있어서는 준 스텔스기급 효율을 내는 전투기 부대를 편성하는 데 성공했다.
육군또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대표적으로 소련출신 개발진들의 도움하에 만들어진 T-94 전차[3] , 현대적인 피카티니 레일과 광학조준경을 기본으로 한 개인화기들이 도입되었으며[4] 해군은 자체 건조한 원산급 구축함[5] 을 운용하여 제한적인 대양작전이 가능한 해군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원 역사와 달라진 외교관계에 힘입어 러시아제 무기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제도 일부 도입해서 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육군은 AH-64아파치를 도입하여 연변내전에 투입되었으며, 공군은 KA-16에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운영하고 있다. 해군은 미해군의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을 남포급이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5.2. 남한
원래라면 캐릭터 이름으로 써야 겠지만 그 경우 실제 역사와 차이점을 보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여기서는 모티브가 되는 실제 인물 이름을 사용했다.
김정환은 집권 후 일단 남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으나, 그의 행보로 바뀐 북한은 본의 아니게 남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하 그로 인한 변화로 인해 남한에 생긴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김정환은 집권 후 일단 남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으나, 그의 행보로 바뀐 북한은 본의 아니게 남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하 그로 인한 변화로 인해 남한에 생긴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 김정환이 집권한 때는 노태우 정권 때였으나, 이 때는 남한과 뭔가를 해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남한 정부에서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노선을 틀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테니 자금지원을 통해 북한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북진 외교의 웅장한 꿈을 품었으나, 북한에서 무반응을 보여서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지만 남북기본합의는 남한 기업들의 대북 진출에 필요한 재산권 관련 조항들만 추가되어서 원역사와 같이 체결되었다.
- 14대 대선에서는 북한에서 사업을 하기로 한 정주영이 불출마하고, 이렇게 되자 상대가 안될 거라고 생각한 김대중이 불출마하면서 김영삼이 손쉽게 당선되었다. 이는 사실 실제 역사에 빗대보면 엄청나게 큰 변화인데, 원래 민주화 운동에서 함께 했던 PK-호남이 갈라지게 된 계기가 14대 대선이었는데, 여기서 김대중이 대선을 포기하면서 지역감정이 심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중은 김영삼과 함께 자신을 지지하는 PK 지지층을 보존할 수 있었고, 그래서 김종필의 연합 제안을 거부할 수 있었다.
한편 김영삼은 집권 중 김정환에게 많이 당하는데[6] , 왜냐하면 회귀자인 김정환은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문민정부의 난맥상을 활용, 사고가 터질 때마다 북한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이벤트를 만드는[7] 방식으로 개혁개방 이후 인민들의 사상 개방에 따른 민주화의 갈망이 커지는 걸 막았기 때문이다.[8] 그래서 김영삼은 김정환에 이를 갈게 되나, 1997년 외환 위기 때 김정환이 북한에서 남한 대기업들이 망하지 않게 지분을 사주는 대신 휴전선을 없애는 것을 포함, 남북 교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소위 남북대타협을 제안할 때,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락하게 된다. 이에 반발한 보수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이를 진압하면서 마지막엔 인기를 좀 회복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 2002년 월드컵이 한-일 월드컵이 아닌 남-북한 월드컵으로 개최되었다. 김정환이 로비로 H조에서 북한-독일을 진출시키면서[9] 한국은 이탈리아와 싸우지 않았고, 힘을 더 비축해 결승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 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이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원역사에서 김대중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햇볕정책이 이미 전 정권에서 남북대타협을 이룬 지라 별로 쓸모없게 됐다. 대신 남한 국민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한 지라,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 원역사처럼 북한과 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진 못 하며, 원역사 만큼은 아니지만 경제 면에서 북한에 패했다는 충격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적인 개혁들도 일부 수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북한이 중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파병해야 할 병력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꾸민 'NLL에서의 교전' 계획에 호응해줬고, 2002년 남북월드컵에서 몇몇 경기들을 북한에서 치르게 해주는 대신 국군포로들을 다 돌려 받았으며, 개막식에 참여하기 위해 김정환이 처음으로 서울로 방남하는 등 진전된 남북관계에 어울리는 성과들을 거뒀다.
- 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이 당선되었으나, 노무현도 석패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의 개혁개방 후 남한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서, 소위 '안보 보수'와 주사파가 소멸하게 된다. 대신 경제 보수가 보수 진영의 주류가 되었는데, 좌파에서는 북한의 김정환이 남한의 대기업과 영합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남북대타협 이후 호남에 소재한 기업들이 사업하기 더 편한 북한으로 이전하면서 지역구민들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자,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 스탠스가 서로 완벽하게 뒤바뀌어버렸다. 즉, 보수 진영은 민족주의를 내세워 남북한 협력을 주장하고, 진보 진영은 남한 대기업과 영합하는 독재자 김정환을 규탄한다. 그간 남한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사전적인 의미와 달라진 보수-진보 진영이 사전적인 의미에 맞게 스탠스가 바뀐 셈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서 이회창은 현실에서도 '합리적 보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답게 남북관계의 변화를 무난히 수용해서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을 관통하는 고속철을 개통하기에 이르며, 북한이 주적이 아니게 되었으니 육군보다 해공군 전력을 강화하는 국방개혁 2020도 훨씬 빠르게 등장하게 되었다.
- 17대 대선에서는 원래 이명박이 당선되는 것이 맞으나, 이명박은 사업가로서 꿈을 품고 북한에 투신해 버려서(...) 대신 박근혜가 대선주자로 나왔다. 그녀가 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잘 알고 있는 김정환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 대항마인 (이 타임라인에서는 반북정당이 된) 민주당의 노무현을 지지해서 당선되도록 도왔다.
노무현은 김정환과 가장 많이 만나면서, 김정환의 주도로 남북한이 함께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게 된다. 이제 남북관계가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 한다는 확신이 생겼는지, 남한의 군복무도 반은 모병제로 전환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 18대 대선에서는 작품의 순수 창작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 과거 이라크 전쟁에도 참전했던 특전사 출신 전씨 군인이 특이하게도 민주당 경선을 거쳐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된 것. 원역사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민주당 주 지지층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이 양반이 민주당 후보가 되기조차 어려웠을텐데, 상술했듯이 위의 사건들로 인해 민주당 지지층들도 훨씬 관대해진 듯 하다.
5.3. 미국
김정환이 집권 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불량국가에서 벗어나서 서방진영에 진입하고 경제개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가까이 하려는 나라인 만큼 초반부터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된다.
- 조지 H. W. 부시가 2선에 성공한다. 빌 클린턴은 김정환과 의견이 일치한 마가렛 대처의 수완에 말려 들어가 마약 스캔들에 휘말려 스스로 대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부시는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의 주역이 되었으며, 클린턴이 펼친 대중 유화 정책 대신 견제 정책을 펼친다. 이로 인해 중국 공산당의 지배가 불안정해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게 된다.
- 북한에서 석유가 나고, 친미 국가가 되자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가 떨어져서 미국도 이스라엘에 관심을 덜 두게 된다.이로 인한 변화로 93년 오슬로 협정이 무산되었는데, 일단 대통령 부시가 아닌 부통령 딕 체니가 협상을 중재하러 간 것을 보면 애초에 협정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후원자를 잃어가던 이스라엘은 중국과 가까워지게 되는데, 이는 작중 또다른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 네오콘이 크게 준동하지 못했다. 물론 그 패권주의적인 성향이 어디 가지 않아서 작중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대처가 현실 역사와 비슷하게 "저들을 이대로 두면 미국과 전 세계의 재앙이 될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하지만, 상관이 부시였기 때문에 이들을 통제 하에 둘 수 있었고, 이후 민주당 정권 8년, 그리고 정통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존 매케인이 당선되어서 활개칠 여유가 없어졌다.
- 9.11 테러가 미국이 아닌 상하이를 대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작중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로, 자연스럽게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대신 중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났고, 이라크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대침체도 중국 공산당의 정책 실패로 인해 중국에서 일어나서 원역사와 비할바 없이 적은 피해만 입었다.
- 조지 부시가 2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대통령은 민주당의 앨 고어가 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원역사와 달리 쓴맛을 보지 않은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도 직접 개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데, 다행히도 생각없는 대통령들이 당선되지 않아서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 이후 선거에서는 버락 오바마를 마찬가지로 견제, 존 매케인이 2선을 하도록 지원하는데, 이는 버락 오바마가 동아시아에 무관심하거나 주요 쟁점을 일본에 몰아준 경력이 있어서 그것을 견제하기 위함.
- 물론 이득만 본게 아니라, 시간회귀자인 김정환이 손을 써서 미국의 혁신적인 기업들을 사들이거나 천재적인 기업인들을 빼돌리는 피해를 입긴 했지만 원역사에서 미국의 국력을 깎아먹은 그 사건들을 회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작중 바뀐 역사의 수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4. 중국
- 북한의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중국은 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 탱크맨으로 유명한 천안문 사건이 더욱 강경하게 진압된다. 예를 들어, 탱크를 가로막은 사람으로 유명한 저 탱크맨 사건의 경우, 이 역사에서는 탱크에 깔려 사망하고 그로 인해 중국은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게 된다.[10]
-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실패로 끝나고 이로 인해 덩샤오핑이 홧병으로 사망하면서 태자방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경제 제재로 압박을 받은 상하이방이 덩샤오핑을 배신하면서 발생한 일.
-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내면서 위구르의 이슬람족 탄압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9.11 테러가 중국에서 발생하게 된다.[11] 따라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주체 또한 중국으로 바뀌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은 중국의 사람 추적 기술 + 불운[12] 으로 빠르게 붙잡혔고, 이는 장쩌민의 축출에 활용되었다. 장쩌민은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아서 사태를 극복해 보려 했으나, 이미 그는 보시라이 직속 병사들에게 구금당해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공개처형을 당하면서 순교자로 추앙받게 된다.
-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중국은 중국이 다른 곳에서 이미 보였던 중국식 동화 정책을 펼치나 미국과 같이 실패하며,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의 헤로인이 중국 내로 퍼지는 원인이 된다.
- 결과적으로 태자당의 시진핑과 보시라이가 각각 당과 군을 나눠 가졌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테러 위협 대비 등을 빌미로 군대를 베이징 근처에 전개했던 보시라이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시진핑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는다.
- 보시라이가 중국의 국력을 착실히 깎을 동안, 김정환과 이석기의 공작으로 연변 분리주의가 심화되자 군을 투입해 진압하려하다 결국 북한(&한국)과 전면전이 발생하고, 북한군에게 제공권이 장악당하자 끝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 하지만 후진타오의 쿠데타로 전쟁은 종결되고 연변은 북한에 흡수된다.
- 후진타오는 다시 '도광양회' 기조로 중국을 이끌며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다. 북중관계는 외교관계는 회복했지만 당연히 중국인들의 감정은 극도로 나빠졌고, 북한과 함께 전쟁을 치른 한국과의 관계도 나빠져서 향후 안보 불안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6. 기타
- 현대 한국 정치를 자주 언급하다보니 종종 양극단 정치 성향의 독자들 때문에 댓글창이 불타오를 때가 많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면 소설은 읽어도 댓글창은 무시하는 것이 좋다.
[1] 김영삼 이후의 한국 대통령들은 가명을 쓰지만 전두환, 노태우는 본명으로 나온다.[2] 이는 단순히 돈 문제보다는 워커홀릭이었던 마가렛 대처의 개인적인 성향과 기본적으로 중국을 경계하는 두 사람의 코드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한 섭외였다.[3] 125mm 전차포가 장착된 걸로 보인다.[4] 자동소총 구경이 5.45mm 구경이거나 5.56mm 구경으로 바뀐 걸로 보인다.[5] 130mm 단장 함포가 장착된 걸로 보인다.[6] 정환과 임기 말에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화를 하는데, 현실 인물 캐릭터에 걸맞는 성깔을 보인다.[7]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일 평양 증권거래소 개장.[8] 원역사 대비 평화로운 방식이긴 하나 남한을 이용해 체제를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북한/대남 도발이다.[9] 북한은 이후 16강에서 탈락했다.[10] 사실 원 역사에서도 탱크맨이 탱크를 가로막으려고 한 것도 탱크에 깔려서 사망하여 천안문 사태를 더 크게 키우는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야 중국이 더 강한 제제를 받을 것이였기 때문이다.실제로 그의 사망 이후에 중국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급속도로 국가 막장 테크를 탄 것을 보면 본인은 죽었지만 그의 소망을 이룬 것이라고 볼수 있다.[11] 따라서 세계 무역 센터가 아닌 동방명주가 무너지게 되었다.[12] 원역사의 미국도 더 빠르게 오사마 빈 라덴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2번이나 있었는데 국방부와 CIA 간의 불협화음으로 놓쳤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