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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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貞勳
1920년 4월 22일 ~ 1988년 11월 25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2. 작중 내역
1920년 평안남도 진남포부(현 남포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도 아오야마가쿠인대학[1] 영문과, 북만학원(北滿學院) 대학[2]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영어, 러시아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에 아주 능통했다고 한다. 그 선배에 그 후배라 할 수 있다.
북만학원 대학 졸업 후인 1943년 중국 본토에서 한국 광복군에 소위로 입대하였고 이진용, 김동석 등과 같이 대한광복군에 복무하였다.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하얼빈에서 기차로 조선인들을 해방된 고국으로 실어 나르는 업무를 하였다. 이 당시 이 일은 보기와 달리 위험한 일이었고 이 와 관련해 그의 딸 타티아나를 잃고 말았다고 한다.
평양에 돌아와 죽은 딸의 시신을 안고 백석을 찾은 고정훈은 아무런 설명 없이 백석에게 화장장을 알아봐 줄 것을 요청하고 홀로 딸의 시신을 화장한다. 이후 이를 안 백석은 고정훈을 크게 나무랐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백석의 소개로 조만식 선생을 만났다. 다시 조만식 선생의 주선으로 소련 공보원에 취직했다. 그는 여기서 소련군의 통역으로 활동하며 기밀 문서 등을 수집. 조만식계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이후 많은 기밀 정보를 수집하여 월남하게 된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 7기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장교로 복무하였다.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특별보좌관, 국방부 장관 특별보좌관,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과장,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 등을 지내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이었던 1950년 3월에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그 이후에는 조선일보 논설위원, 진보당 선전간사, 민주혁신당 선전국장, 대한구국청년단 총재 등을 지내며 혁신계 인사로 활동했다.
1981년 민주사회당을 창당하고 총재가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사회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태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2년 김갑수의 신정당과 합당하여 신정사회당이 창당되자 신정사회당 총재를 지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정사회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주 지지기반인 진보유권자들 사이에서 신한민주당을 밀어주면서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민주한국당 이중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