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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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헤이룽장성의 성도(省都)인 대도시.
송화강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중국 동북부의 공업 요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971만 명, 면적은 5만 3,796㎢이다.[2] 하위 행정 구역은 8개의 시할구, 3개의 현급 시, 7개의 현이 있다.
조선족들은 인명과 도시 등의 고유 명사를 표기할 때 중국어 발음이 아닌 한국어식 한자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는데(그래서 조선족 계열 언론 사이트를 보면 한국인에게는 중국어 원음으로 익숙한 현대 중국인 인명들도 꼬박꼬박 한국식 한자음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하얼빈은 '합이빈'이 아닌 '할빈'이라 부른다. 영어 표기도 Harbin이며 애초에 만주어 '하르빈'[3] 을 한자로 무리하게 음차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쪽이 실제 발음에 가깝다.[4] 마찬가지로 근처에 있는 대도시 치치하얼(齐齐哈尔)도 '제제합이'가 아닌 '치치할'로 부른다. 이 도시도 마찬가지로 만주어로는 '치치가르(Cicigar)'.
이 곳도 위도가 높기 때문에, 단일 시간대임을 감안해도 일출, 일몰 시간의 계절별 차이가 한국보다 큰 편이다. 더군다나 베이징보다 훨씬 동쪽이고 표준시 경선인 동경 120도보다도 훨씬 동쪽이어서 더 그렇다. 반대로 서쪽 지방은 여기하고 똑같은 시간을 써도 '''3시간''' 이상 늦다.
2. 역사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쳐 금나라가 지금의 하얼빈시 아청구에 금의 초창기 수도인 상경 회령부(上京 會寧府)를 건설해 도읍으로 삼았으나 그 후 해릉왕때 오늘날의 베이징인 중도(中都)로 이전했고 금나라 멸망 후 역사에서 잊혀졌다. 오랜 세월이 지난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하는 동청철도를 건설하면서 도시가 세워졌다. 왜 러시아가 러시아 땅 놔두고 청나라 땅을 가로지르게 철도를 깔았냐면 당시 청나라는 서구열강의 호구 취급받던 시절이라 러시아가 그렇게 깔아도 청나라가 막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하얼빈을 본진으로 흑룡강을 기점으로 북만주, 더 나아가서 만주-한반도 전체를 노리다가 러일전쟁으로 일본에게 패해 북만주와 연해주로 다시 물러나게 된다. 도시 초기 건설에 러시아가 많이 관여를 했기 때문에 다롄처럼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 많이 남은 편이다.
'''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가 있었다.''' 이후 러시아 적백내전 당시 10~20만에 달하는 백군 난민이 하얼빈에 정착했다. 한 때는 이들은 하얼빈에 영구 정착을 염두해두고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중학교 15개, 고등학교 6개를 건설했으며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정교회 성당과 폴란드인을 위한 가톨릭 성당, 독일계 러시아인을 위한 교회와 덴마크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개신교 교회, 러시아계 유대인을 위한 시나고그까지 운영되었다. 그러나 1931년 당 명칭부터 러시아 파시스트 당인 RFP가 들어서고 1932년 만주국이 건설되면서 일본의 치하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뒤집힌다. '''이 때 731 부대가 같이 세워졌다.''' RFP는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러시아인들을 일본군에 넘기면 대개 731부대에서 살해당했다. 일본에서는 731부대의 러시아인 희생자들이 소련군 포로라고 날조를 하고 있으나 731부대의 러시아인 희생자 상당수는 임신부를 포함한 민간인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하얼빈의 러시아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등등은 상하이로 피신한 후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호주, 미국, 캐나다 등으로 망명했다.[5] 그러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이 잠시 관할하였고 이 와중에 RFP 핵심 멤버들은 총살당했다. 1946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지금도 국제열차를 통해 러시아 철도와 연결되는 곳.
의외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 고려된 적이 있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형상을 수탉으로 비유하길 좋아했고, 하얼빈이 '닭머리'에 위치했던 것을 고려했다는 듯. 또한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국민당과 싸우고 있던 만큼 소련과의 물리적 거리도 작용했다고... 그러나 국민당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공산당이 중국 전토를 얻게 됨에 따라 난징, 시안, 카이펑 등 대체재가 생겨나게 되자 하얼빈 천도론은 없던 것이 되었다. 최종 선택지는 베이핑.
3. 기후
러시아와 가까운 도시라 아주 춥다. 재채기를 하면 침 방울이 어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하얼빈 빙등제 기간에 현장 사진을 찍겠다고 장갑을 벗었는데 '''손가락이 얼어서 V를 만들 수 없는(...)''' 충격적인 상황을 체험할 수도 있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냉대기후, 그 중에서도 냉대동계건조기후에 속한다. 전형적인 북부 내륙 분지이기 때문에 1월 월 평균 기온 '''-17.6℃''', 7월 월 평균 기온 23.1℃, 연 강우량 524mm이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대도시 중 하나로 겨울에는 -30℃ 밑으로 내려가는 날이 있고, 역대 최저 기온 기록은 -42.6℃,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은 39.2℃이다. 참고로 겨울의 추운 기후 때문에 빙성(冰城)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허나 여름이라고 서늘하기만 한것도 아닌게 여름 7월 최고기온은 30도에 근접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온화한 수준의 더위도 볼 수 있고 폭염 수준의 더위도 볼수 있다. 그만큼 연교차가 크다. 다만 문제는 여름에도 종종 평균 기온에서 한참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 이 때문에 건물 대부분의 두께가 두껍다. 흙먼지 이외에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미세 먼지가 없기 때문에 햇빛이 따갑다. 강수량은 1월 기준으로 3.4mm정도로 겨울엔 매우 건조하며 여름에도 7월 강수량이 142.7mm로 서울에 비해 눈,비가 적게 내린다.
하얼빈과 겨울을 견줄 수 있는 도시로는 캐나다의 위니펙 [6] 이나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나 하바롭스크 가 있다.
웃기게도 이렇게나 추위로 유명한 하얼빈이 헤이룽장성에서는 가장 따뜻한 도시이다. 그러나 하얼빈보다 인구가 많은 도시 중 하얼빈보다 더 추운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얼빈쯤 가면 애초 거의 시베리아에 붙어있는 곳이고 북극이 가까워지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1922년 1월에는 한파가 매우 심해서 '''월평균기온이 -27.6 ℃'''의 경이로운 기록을 보이며 1898년 기상관측사상[7] 1월 역대 최저 평균기온으로 남아있다.[8]
다만 이런 추위와는 달리 하얼빈시의 위도는 별로 높진 않다. 하얼빈의 위도는 북위 45° 45′으로 이탈리아의 밀라노(북위 45° 27′ 51″)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 그런데 밀라노의 1월 평균기온은 2.5℃로 하얼빈보다 무려 20℃나 더 따뜻하고 위도 상 한참 남쪽인 대한민국의 울산광역시(북위 35° 32' 59″) 1월 평균기온(2.2℃)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름철 기온은 두 곳의 온도 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 하얼빈의 최난월 평균기온은 23.1℃인데 밀라노의 최난월 평균기온은 23.6℃로 겨우 0.5℃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하얼빈은 여름은 밀라노 못지 않게 덥지만 겨울은 밀라노보다 훨씬 더 추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후 덕분에 매년 겨울 1월 5일부터 2월 5일까지 빙설 대세계가 열린다. 얼음 축제와 눈 축제를 합친 행사로서 얼음과 눈으로 만든 예술품들이 대거 전시되며, 하얼빈 한가운데를 지나는 쑹화강이 완전 얼어붙어서 강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케이트장으로 탈바꿈해 개썰매로 시승이나 마차 시승 등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후가 혹독하니까 취소선 드립할 게 아니라 진짜로 추위에 약하면 절대 가지말자. 하얼빈의 명문 대학인 하얼빈 공업대학 운동장도 얼어붙어서 스케이트장이 되는데,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운동장에 물을 얼려 스케이트장으로 개방한다.
이 빙등제는 네임밸류로 치면 삿포로 눈 축제가 근소하게 우위지만 삿포로 정도는 간단히 쌈싸먹을 추운 기후의 영향으로 축제 기간은 훨씬 길고, 겨울 얼음, 눈 축제 중에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다만 이쪽은 눈을 뭉쳐서 만든 조각보다는 얼음을 깎은 식의 조각 위주인데, 이는 만주의 건조한 기후와 무관치 않은듯 하다. 하얼빈 빙설대세계는 화천산천어축제 때 항상 열리는 부가 행사장인 실내 얼음조각 전시장과도 얼음조각 제공 제휴관계에 있다. 겨울철에는 빙설 대세계 행사장이 아니라도 도시 곳곳에 얼음, 눈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 해의 이슈나 유명인물도 조각상으로 만드는데, 2014년 겨울에는 시내에 싸이 조각상이 전시되기도 했다.
1996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였다.
4. 방언
하얼빈 방언은 발음이 보통화에 가장 가깝다.[9] 그래서 하얼빈의 언어 연수 기관도 이것을 강조하며, '하얼빈에 가면 동네 시장 상인들에게서까지 방송국 아나운서와 똑같은 발음을 들을 수 있다'는 우스개까지 있다.
5. 교육
하얼빈공업대학, 헤이룽장대학, 하얼빈이공대학 등이 유명하다.
6. 교통
일반적으로 하얼빈으로의 접근은 크게 하얼빈 타이핑 국제공항을 이용하거나, 베이징 혹은 연길 등에서 하얼빈역까지 열차로 이용할 수 있다. 열차의 경우는 야간열차도 이용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서울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과 중국남방항공이 하얼빈행 직항을 띄우고 있다[10] 그 외에는 베이징 등에서 국내선 환승으로 와도 된다. 하얼빈 타이핑 국제공항의 국제선은 주로 대한민국, 러시아 등으로 향한다.
하얼빈 타이핑 국제공항은 2017년부터 신공항을 만들고있으며, 2018년 5월 국내선 공항은 완공되었다. 국제선은 아직도 비행기 창고를 개조한 조그마한 터미널을 사용중이다. 국제선 공항에는 북한면세점도 있다.
2013년 개통한 하얼빈 지하철이 있다.
7. 관광 및 명물
헤이룽장성이 전체 여행 유의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하얼빈도 일단은 여행 유의 지역이나 이곳이 여행 유의 지역인 것은 북한 때문이고,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밤에 우범 지대를 기웃거리지 않는 이상 치안 걱정은 거의 할 필요가 없다. 걱정할 만한 범죄는 소매치기 정도며, 한밤중에도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이 돌아다닐 정도로 강력 범죄는 적은 곳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밤중에 돌아다니거나 인적이 드문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삼가야 한다.
중국 어디든 그렇지만 현지인들이 영어를 잘 쓰지 못해 중국어를 구사할 수 없다면 여행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지만 어학연수를 하러 온 한국인들이 많고, 지리적 특성상 조선족 인구가 많아 의외로 한국어가 그럭저럭 통한다. 말이 안 통하는데 급하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왠지 한국계일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자.
한국 식당이 많이 있는 편인데 대부분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종업원이 있으므로 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밖에 러시아와 접해있어서 그런지 러시아어도 통하긴 하지만 한국어만큼은 아니다.
하얼빈의 주요 명소는 대체적으로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곳이 많다. 그리고 겨울에 하는 빙등축제가 하얼빈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계로, 겨울에 오는 것이 추천된다. 단, 위에 언급하였듯이 시베리아급 추위를 자랑하기 때문에 방한 대책은 필수. 추위와 눈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만 좀 머물다 보면 따뜻한 곳이야말로 천국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돈 없으면 답이 없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들은 영하 10도 정도로는 춥다는 느낌도 안 들 정도라고 하며, 가끔 겨울인데도 가까운 곳 나올 때는 챙겨입기가 귀찮다고 반팔 셔츠를 입거나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용자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륙 동단 내륙 지방이라 여름도 꽤 더운 편이다.[11]
- 하얼빈역 -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 하얼빈역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 그리고 이토가 저격당한 곳이 별도의 발판으로 표시되어 있다. 안 의사가 저격한 곳에는 화살표 모양의 블록이, 이토가 저격당한 곳은 사각형 모양의 블록이 있다. 또한 2014년 일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중국 정부는 하얼빈역에다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지었다.[12] 기념관이 세워진 후에는 하얼빈역 플랫폼에 들어가지 않아도 표식물을 기념관 통유리를 통해 볼 수 있다. 2017년부터 하얼빈역 공사로 인해 후술할 장소로 전시물을 임시 이전했다가, 2019년 3월 30일 재개관했다.
- 조선족민속박물관 안중근의사기념실 :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 전까지 유일했던,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기념했던 장소였다. 뿐만 아니라 만주 지역 조선족 동포들의 생활상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 성 소피아 성당 : 20세기 초 러시아가 이 지역을 점유하고 있을 당시, 병사들의 예배 등을 위하여 지어 놓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 크기로만 따진다면 블라디보스토크의 정교회 성당보다 크지만, 종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정교회 성당에 비해 성 소피아 성당은 관광지로서의 역할만 가지고 있다.
- 하얼빈 롱타(哈爾濱龍塔)
- 호림원 : 다양한 종류의 호랑이들과 사자들, 라이거와 타이온과 퓨마, 재규어, 표범 등 고양잇과 동물들을 모아놓은 동물원이다. 사파리투어가 가능하다
- 태양도
- 중앙대가
- 하얼빈 맥주박물관
- 하얼빈 빙등 축제: 겨울에는 얼음 축제가 열리곤 한다. 이때 엄청난 얼음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 다만 영하 30도의 맹추위는 견뎌야 한다.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수행했다면 아주 조금 더 견딜 만할 것이다.
[1] 해당 인물은 laowhy86이라는 유튜버이며 중국에 10년 넘게 거주했다.[2] 일개 도시 하나의 면적이 대한민국 면적의 절반이다![3] 만주어로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4] 대한민국에서도 1970년대까진 하르빈이라고 주로 불렀다.[5] 그 여파로 오늘날 하얼빈에 남아있는 러시아인은 극소수이고 상술된 종교 시설 상당수가 관광지로 보존되거나 버려졌다. 시나고그의 경우 조선족 학교로 개조되었다.[6] 취소선 칠게 아니고 진짜로 사실 위니펙보다 하얼빈이 더 춥다. 하얼빈은 거의 시베리아에 위치한 이르쿠츠크, 야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북아시아 쪽 러시아 도시들과 동급이다.[7] 아마 1909년 이전까지는 평균기온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전에는 띄엄띄엄 관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8] 동시기 서울에도 1월 평균기온이 '''-7.8 ℃''', 최저기온 '''-21.0 ℃'''로 굉장히 추운 겨울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고.[9] 의외로 베이징 방언은 보통화와 억양이나 발음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什么(무엇)를 보통화에서는 shenme로 읽지만 실제 베이징 방언은 she'e에 가깝게 발음한다. 그래도 요즘은 하도 방송통신이 발달해서 그 차이가 적긴 하다.[10] 2019년 하반기부터 제주항공도 직항을 띄우고 있다[11] 여름에 하얼빈에 여행을 갈 경우, 반팔티와 함께 긴 팔 얇은 잠바 정도는 가져가 주는것이 좋다. 그 이유는 일교차가 커서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12] 일본 정부가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의 의거 관련 표식물(위에서 언급한 그것)들의 철거를 요청하자, 아예 별도로 기념관을 지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