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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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Christ Cathedral (舊 Crystal Cathedral)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의 가든 그로브(Garden Grove)에 위치한,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 목사가 세운 대형교회 건물. 원래는 개신교 예배당이었으나 하술할 이유로 천주교 성당이 되었다. 건축가는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다.
1977년 건축을 시작하여 1980년 완공하였다. 건축비는 약 1800만 달러였고, 건축 과정에서 유리 1만 장 이상을 사용하였다. 건물 내 좌석 수는 2736석[2] 이며, 대표적인 커튼 월 건물이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캘리포니아에 있기 때문에 진도 8.0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더불어, 본당 내에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3] 본래는 미국 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America)[4] 소속 슐러 목사 일가가 소유하였으나 2010년 엄청난 빚 때문에 파산한 뒤 2012년 미국 천주교 오렌지교구 소유가 되었다.
오렌지교구는 수정교회를 인수한 뒤 주교좌 성당으로 삼고 명칭을 그리스도 대성당(Christ Cathedral)으로 바꿀 예정이라 발표했다. 수정교회 건물을 가톨릭 성당에 적합하도록 몇 년에 걸쳐 리모델링한 후 2019년 7월 17일 축성하였다.
주소는 13280 Chapman Ave., Garden Grove, Ca 92840
2. 로버트 슐러
창립자 로버트 슐러(1926-2015)는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1955년에 미국 웨스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개혁교회 목사가 되었다.[5] 1955년 교회를 처음 개척했는데, 이것이 수정교회의 전신인 가든그로브 커뮤니티처치[* 교회가 처음 입주한 건물이 자동차 극장이었다. 물론, 자동차 극장을 교회로 활용할 수 없어 자동차 극장에서 약 6 km 떨어진 곳에 300석 규모인 교회당을 임대하여 그 곳에서 예배를 하고, 예배가 끝난 다음에 자동차 극장에서 라디오 설교를 했다. 사진 속 교회는 1961년 완공된 '가든그로브 드라이브인 교회'로 차량 5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겸비하고 자동차 극장식 예배를 했다.][6] 다. 이때부터 '''매우 정교하게 상품화한 설교'''로 유명했다. 주석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교회 건물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 교회 주변 주차장에서 그대로 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설교를 듣는 일명 '드라이브스루 워십'(Drive-thru Worship)을 고안하여 유명해졌다.
신학적인 면에서는 노먼 빈센트 필(Norman V. Peale)이 주장한 '적극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소위 말하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자기개발서스런 설교의 원형을 제공한 인물이며, 1970년부터 'Hour of Power'(권능의 시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라디오와 TV로 주일예배 중계를 했다. 그야말로 대표적인 텔리반절리스트(Televangelist)[7] 로 이름을 떨쳤다.
슐러 목사는 "종교는 곧 기업이며 서비스 산업"이라고 역설하였고, 교회를 '하나님을 찾는 쇼핑센터'라고 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돈을 빌어서도 성공할 수 있다'며 자수성가한 보험재벌 클래멘스 스톤을 아낌없이 칭찬하며 그를 초빙해 예배 중 대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심지어 '빚을 내서 사업하라.'고 권장하기까지 했다.
1970년 방송된 'Hour of Power' 첫 회차. 당시 '가든그로브 커뮤니티 처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4분쯤에서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잘 하지 않는 시작 축도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물론 전체적인 예배의 흐름이나 설교의 내용은 기존의 정통 칼뱅주의가 아닌, 슐러가 직접 고안한 스타일이긴 하다.
위 영상을 보면 예배 시작과 동시에 성가대가 찬양을 노래하면, 이를 배경음악 삼아 강단의 높다란 유리벽이 열리는 등, 지금 보아도 혹할 만한 요소들이 예배 중간중간 있었다. 게다가 지역 신문에 광고도 무지하게 했고[8] , 방송 중간 나오는 책들도 잘 팔리면서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러던 1977년, 기존 예배당이 늘어나는 신자 수를 감당치 못하자 근처에 그 유명한 수정교회라는 대형 예배당을 증축하기로 결정하고, 1980년 입당했다. 그리하여 최첨단기법이 동원된 화려한 교회[9] 를 통해, 한국의 메가처치 건축과 설교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국내의 대중적으로 매력적인 설교, 그리고 휘황찬란하고 웅장한 교회건축은 크든 작든 수정교회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1980년 'Hour of Power'를 통해 방송된 수정교회 입당예배 실황. 영상 초반부에 보면 신자들이 교회 바깥 잔디밭에 앉은 모습이 나오는데, 1970-80년대 당시 AFKN을 통해 일요일 아침마다 Hour of Power를 보던 우리나라 개신교도들에겐 '미국에선 저렇게도 예배를 드리는구나.' 하고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대다수 한국의 개신교 먹사들에게 교회성장의 꿈을 주었음은 덤.
1980년 'Hour of Power'를 통해 방송된 수정교회 봉헌예배 실황.
한국에 있는 대형교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상 15분쯤에 Mr.Piano라고 불리던 세계적인 재즈피아니스트 로저 윌리엄스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유명 가스펠 가수 린다 홉킨스가 가스펠을 부르는 등[10] , 예배 중간중간 유명인사들을 초청하여 연주 또는 대담을 나누는 절차 또한 기존 예배에는 없었다.
오늘날 개신교계에서 비판적인 신학자들과 논객들은 "로버트 슐러 목사는 기복신앙과 번영신학, 편의주의 신학의 아이콘이자 미국과 한국의 개신교 전반에 외적성장, 양적부흥, 메가처치의 대표 격이다"라고 평가한다. 한국에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와 친분이 두터워서 1992년부터 서로 왕래하며 각자의 교회에서 설교한 적이 있다.[11]
수정교회가 파산한 이후, 그가 속했던 개혁주의 교단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크며, 일종의 반면교사로 통하기도 할 정도. 물론 아직도 장사하자 마인드가 많이 잔존하는 한국의 개신교에는 은연 중에 로버트 슐러와 그의 방법론을 동경하는 심리도 분명히 남아 있다.
2015년 4월 2일, 로버트 슐러 목사가 향년 만 88세에 식도암으로 소천하였다. 장례식은 고인이 세우고 목회했던 수정교회에서 치렀다.
로버트 슐러와 수정교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정리된 네이버캐스트가 있다.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2012년 교회 파산 직전에는 신천지 교주 이만희를 초청하기도 했는데, 신천지가 대한민국에서 사이비 종교로 인식되는 것을 생각할 때 꽤나 위험한 발상이었다. 신천지 측에서는 당연히 이를 이만희 홍보로 이용했다.
3. 수정교회의 파산, 가톨릭 성당으로 전환
이렇게 성장을 거듭해가던 수정교회가 본격적으로 삐걱대기 시작한 원인은 다름아닌 세습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 은퇴할 때가 된 로버트 슐러는 이미 70년대 말부터 교회의 부목사로 일했던, 자신의 아들 로버트 A. 슐러[12] 에게 2006년 1월에 교회를 물려줘 담임목사의 자리를 주었다.[13] 아들 목사는 아버지와 다르게 시대에 맞지 않고, 시청자 수가 급감해 돈만 먹는다고 생각한 Hour of Power 프로그램을 폐지하고[14] , 가운 없이 정장 차림으로만 예배를 드리며, 기존의 교회 프로그램도 상당수를 폐지 및 개편하는 등 여러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버지 슐러는 이를 같잖게 보고 '비전 공유의 결여'라는 이유를 내세워 2008년 10월 25일자로 아들을 해임하였다. 그 대신 딸 쉴라 슐러 콜맨이 2009년부터 이 교회의 목사직을 맡았다.
그러나 이미 속은 썩을 대로 썩었으니, 로버트 슐러의 자녀들이 수정교회와 관련 없는 일에도 따박따박 급여를 받았으며[15] , 심지어 수정교회의 하청업자(!!!)들한테도 돈을 받아 교회 공금을 백만 달러 이상 불법 유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더불어 가족 사이에서 교회 내 권력을 두고 암투도 심해져, 이미 원로목사 격이자 이사회 의장이던 로버트 슐러와 해임된 아들 목사, 그리고 딸 목사 부부까지 가세해 교회 운영을 두고 첨예하게 다투었다. 결국 교회가 파산한 지 1년이 지나 2011년 아버지 로버트 슐러 목사가 이사회에서 쫒겨나기까지 하며[16] 교회의 운영권은 딸 쉴라 슐러 콜맨 목사에게 돌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때 교인이 1만 명까지 성장했던 수정교회는 신자 수가 나날이 줄어들고, 매주 걷히는 헌금마저 감소하였다. 대형교회 특성상 매주 유지비가 엄청나게 필요하므로, 어느 일정수준 이상 헌금이 들어와야 이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내부의 이권 타툼으로 인해 예배와 설교도 질적으로 떨어지자 신자 수가 줄어들고, 신자가 줄었으니 당연히 헌금도 줄어들어 교회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17]
게다가 로버트 슐러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커, 예배 자체가 로버트 슐러를 기리고 숭배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 예배는 고스란히 수정교회에서 방송하는 'Hour of Power'에 방송되었다.[18]
설상가상으로, 2003년까지 이어진 건물 신축 등 무리하게 교회의 규모를 확장한 대가로 이미 재정이 열악했던지라, 교회부지 중 일부를 팔기까지 하면서 버티다 결국 2010년에 5500만 달러에 달하는 빚을 남긴 채 파산해서 건물이 채권단에 넘어갔다.[19] 이 무렵에 교인들에게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5조를 내달라.'는 황당한 말을 설교 시간에 하기도 했고, 파산신청 직후였던 2010년 10월 24일 주일예배에 로버트 슐러가 오랜만에 강단에 올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혹시 십일조를 내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달라.'는 설교도 했다.
결국 수정교회는 매물로 나왔는데, 마침 새로운 주교좌 성당 건물이 필요했던 천주교 오렌지교구에서 "기존가격보다 더 후하게 쳐주겠다." 하면서 매입을 시도했고, 결국 오렌지교구로 교회 건물이 넘어갔다. 이 소식은 한국 개신교에도 알려져 여러모로 큰 충격을 주었다.
가격제시는 같이 경합하던 채프먼 대학 측이 더 유리했지만, 슐러 목사가 "'''대학에 팔리면 교회가 캠퍼스로 변하지만 가톨릭에 팔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니 가톨릭에 팔아달라!'''" 하고 법원에 편지를 보내자, 법원이 감동하여 오렌지교구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다만 교회 건물의 원 소유자였던 목회자와 신자들이 3년간 무료로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볼 수 있게 하고, 3년 이후에는 싸게 임대비를 지불한다는 조건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사실 슐러가 인맥을 생각한 면도 있다. 슐러 목사는 수정교회 이전부터 주변의 가톨릭 성직자들과도 안면이 있었고, 1972년에는 당시 미국에서 저술 및 방송활동으로 유명한 가톨릭 주교 풀턴 쉰(Fulton J. Sheen)[20] 을 수정교회로 초청하여 강연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 사실 미국 개혁교회(RCA) 교단 자체부터 에큐메니컬을 추구하는 메인라인 교단 중의 하나인데다, 슐러 목사 개인의 신학적 성향도 반가톨릭 성향이 강한 강경 개혁주의 성향보다는, 가톨릭과 어느 정도 친교나 연대를 생각하는 신복음주의 계통이기 때문이다.
수정교회가 오렌지교구로 넘어간 그해(2012) 6월 29일, 오렌지교구는 수정교회를 향후 주교좌 성당으로 삼고 이름을 Christ cathedral이라 바꿀 것임을 발표했다.[21] 원래 수정교회 일대는 천주교 기준으로 성 칼리스토(St. Calistus) 사목구였으나, 수정교회가 Christ Cathedral이 되면서 사목구 이름 또한 Christ Cathedral이 되었다.
2013년 6월 29일 토요일에는 수정교회 앞마당에서 천주교 오렌지교구장 케빈 밴(Kevin Vann) 주교가 주례하여 첫 미사를 드렸다.
2013년 6월 29일, 그리스도 대성당의 첫 미사
첫 미사를 드린 다음날(6월 30일)에는 舊 수정교회의 신자들이 마지막으로 개신교 예배를 드렸다.
2013년 6월 30일 수정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올린 예배의 실황영상. 인도자는 로버트 슐러의 손자인 바비 슐러 목사.
이 교회의 원 이름은 Crystal Cathedral, 우리나라에서는 그낭 '수정교회'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번역하면 '''수정 주교좌 성당'''이다. 개신교, 그것도 주교직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단 소속 건물이었으므로 당연히 주교좌가 있을 리 없지만, 주교좌 성당들처럼 웅장하기 때문에 이름에 Cathedral(주교좌 성당)이라는 단어를 붙였다고 한다.[22] 서구 기준으로도 전례가 없는 특이한 작명이지만, 그만큼 건물에 대한 자부심이 쩔었음을 보여준다.[23]
그런데 가톨릭에 팔리면서 진짜 성당이 되었고, 오렌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되어 명실상부한 Cathedral(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교구에서는 새로 이름을 Christ Cathedral(그리스도 주교좌 성당)이라고 정했지만, 아직도 예전 이름인 Crystal Cathedral로 더 유명하다.
오렌지교구는 수정교회 건물을 인수한 이래 몇 년 동안 매우 의욕적으로 성당에 맞게 리모델링을 하였다. 십자고상과 제대를 안에 설치하고 이콘 장식도 달았다.[24]
2019년 7월 17일에는 오렌지교구장 케빈 밴 주교가 주례하여 장엄하게 축성미사를 거행하고, 정식으로 건물 이름을 바꾸어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했다. 이 축성미사로 수정교회 건물은 명실상부하게 '주교좌 그리스도 대성당'이 되었다.
축성미사에서 신부 2명이 가톨릭 성인 10명의 성해(聖骸) 일부를 담은 나무 함을 제대 아래에 봉안하였는데, 그중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성해도 있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목뼈의 일부인데, 오렌지교구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유해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2018년 12월에 전달받았다.[25]
[1] 사진 왼편은 'Crystal Cathedral'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수정교회의 본당 건물이다. 중앙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은 1961년부터 1980년까지 사용했던 교회이고, 오른편은 2003년에 지은 'Welcoming Center'라는 이름으로 로버트 슐러의 선교사업을 주관하는 교회부서들이 모여 있던 건물이다. 이 외에도 사진에는 없지만 Welcoming Center 건너편에 Family Life Center라는 건물도 있다. 본당 주변에 부속건물들이 줄지어 선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 개신교의 대형교회와 별반 차이가 없다.[2] 우리나라의 대형교회 중 영락교회 본당과 규모가 비슷하다. 영락교회 본당 내 좌석 수는 2500석[3] 수정교회 완공 이후인 1982년 만들어졌다.[4] 미국 성공회, 연합감리회, 복음주의 루터회(ELCA)와 함께 소위 백인 '주류 교단'으로 통하는 교단이다.[5] 이 교단이 원래는 네덜란드 국가개혁교회(Nederlandse Hervormde Kerk)의 미국 지부 격으로 설립되었으므로, 명칭도 처음에는 그냥 'Dutch Reformed Church'였다.[6] 이 항목 가장 위에 있는 사진 속 십자가 첨탑이 있는 건물이 바로 이 사진 속 건물이다.[7] 텔레비전+복음전도사(evangelist)의 합성어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TV 전도사'''. 철자 그대로 읽어 '텔레반젤리스트'라고 쓰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국립국어원의 영어 표기법을 따랐다.[8] 일례로, 1955년 교회 첫 예배 때 자동차 극장에 자동차 50여 대가 들어왔는데, 그 다음날 지역신문에 '자동자가 50대도 넘게 들어와 드라이브인 예배를 드렸다.'는 내용으로 광고를 신나게 했다.[9] 음향과 영상은 물론 강단 좌측 유리벽이 대문같이 열리게 만드는 등, 건축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된 건물이다.[10]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형식이 '특송'이라는 순서로 자리잡았다. 특송이라고 꼭 유명인이 하리라는 법은 없지만.[11] 검색해 보면 조용기 목사가 수정교회에 방문하여 설교한 동영상이 있다. 1994년 겨울인 듯. [12] 위에 게시된 영상에서 성경을 읽어주는 젊은 남자가 바로 로버트 슐러의 아들이다.[13] 이 세습 때문에 우리나라 대형교회들의 가족간 세습에 한 가지 변명할 구실이 생겼다. '미국에 그 큰 수정교회도 아들 목사님에게 물려줬는데 왜 안 되냐?'는 식. [14] 잠시 폐지되었던 이 방송은 2012년 3월 31일 다시 부활하여 지금까지 방송된다.[15] 수정교회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자녀들도 주택관리비라며 몇만 달러를 수령하였으니 말 다했다.[16] 쫒겨났지만, 퇴직금 등 교회에서 받은 돈만 170만 달러 정도 되었다고 한다.[17] 예배 때 연주를 담당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봉급마저 밀렸을 정도였다고 한다.[18] 특히 2000년대 들어와서 더욱 이러한 분위기가 심해졌다. 이후로도 로버트 슐러의 설교 장면을 메모리얼이라며 시시때때로 틀어주었다.[19] 교회재정은 파산했으나 교회 자체가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교회의 이름은 '셰퍼드 그로브'(Shepherd's Grove)로 변경되었으며 'Hour of Power'도 유튜브 채널을 이용한 생중계로 바뀌었을 뿐 아직도 진행중이다. 2013년 6월 30일에 수정교회 건물에서는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렸고, 그 이후 2018년까지 근처에 있는 갈리스토 성당 건물에 세 들었다가 2018년 3월 25일부터는 얼바인에 있는 작은 교회 건물에 정착했다. 교단 소속도 미국 장로교(PCUSA)로 바뀌었다.[20] 생몰년 1895-1979. 선종시 향년 84세. 1966년부터 69년까지 뉴욕주 로체스터(Rochester) 교구의 교구장으로 사목하다가 은퇴하였으므로, 수정교회에서 강연한 1972년 시점에서는 은퇴 주교였다. 로버트 슐러에게 엄청난 영향을 줬던 노먼 빈센트 필과 함께 당시 긍정적 사고를 설파하던 대표적인 인물로, 2012년에 가경자가 되었다.[21] 원래 오렌지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성가정 대성당(Holy Family Cathedral)이었지만 너무 건물이 옹색했다. 그래서 수정교회를 축성하는 대로 성가정 대성당을 대체하는 주교좌 성당으로 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22] 드물게 개신교단 소유 건물이면서도 'cathedral'이나 유사한 호칭으로 불리는 예배당이 없지는 않다. 하나는 원래 가톨릭의 주교좌 성당이었다가 개신교단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경우인데, 이 경우에는 보통 cathedral보다는 'Great Church'처럼 비가톨릭적 호칭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성공회나 일부 국가의 감리회, 혹은 루터회처럼 주교나 감독을 두는 교단에 소속된 몇몇 교회건물이 'cathedral' 혹은 이에 해당하는 다른 단어들로 불린다.[23] 수정교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교계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로버트 슐러가 은연중에 자신만의 성전을 세우고 싶어 건물 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겠느냐.' 하는 말이 있다. [24] 관련 링크를 참고해 보면 2019년 4월 기준으로 이미 성당으로서 온전히 기능할 수준이 되었다.[25] 오렌지교구는 여러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여러 나라 여러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길 원했다고 한다. 아시아 성인 중에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베트남인 성 안드레아 둥락 신부의 유해도 봉안하였다. 오렌지교구의 주보성인 중에 성 둥락 신부도 있기 때문에, 그의 유해를 봉안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