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조
1. 개요
1978년 경 북한의 김일성이 통치자로 있던 시절, 김정일이 김일성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위해 징발한 성노예 집단을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명칭.'''퇴폐적이고 색정적이며 추잡한 내용'''을 반영한 음악, 춤, 그림, 사진, 도서, 록화물과 전자매체 같은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그러한 행위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5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6장 '사회주의문화를 침해한 범죄' 제194조(퇴폐적인 행위를 한 죄)[1]
2. 상세
김정일 때부터 양성화 되었다고 하며, 대략 성적 봉사를 위한 만족조, 피로해소를 위한 행복조, 댄서나 가수 등의 가무조 등으로 역할이 분류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남한에서 생각하는 기쁨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이 조선로동당 5과 소속으로 북한에서 엄선한 미녀들을 모아서 편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현세에 강림한 북한판 성노예'''이다. 문서의 편의상 해당 단체를 이하 '기쁨조'로 통칭한다.
북한의 극도로 폐쇄적인 성격상 최고위층도 명칭은 물론 이 조직의 실체를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며, 당연히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 이 같은 내용을 처음 알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이, 북한 자체가 여행의 자유가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탓에 정작 북한 사람도 북한을 잘 모른다. 평양 외에는 자신이 살던 지역 일대에 갇혀 다른 지역의 상황조차도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곳에서 최고 지도자의 성적 만족을 위한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사실 북한에서 온 모 한의사에 따르면, 저런 젊은 여성들을 모은 것도 처음엔 성행위가 목적이 아니라 김일성의 장수를 꾀하는 측면에서 젊은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김일성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핑계일뿐이다. 왜 하필 '''젊은 사람'''이며 '''미모의 여성'''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없다. 기쁨조에 젊은 남자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핑계를 새로 만들어낸 건 아닌게, 원래 채음보양이라거나 나이 든 노인이 어린 여자애를 안고 자면 기운을 얻는다거나 하는 미신은 기존에 존재하긴 했다. 따라서 최대한 비밀리에 만들면서 그 모집 이유에 해당 핑계를 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소속
북한에서는 기쁨조를 소속 부서명인 5과라고 한다는 말도 있으나 이는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다. 조선로동당 5과는 북한판 채홍사[2] 로 김 부자의 흥청(興淸)[3] 을 뽑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쁨조는 이 5과 선발자 중에서 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과의 선발과정은 해당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문서에는 5과에서 기쁨조로 선발된 그 이후의 과정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원래는 조선로동당 5과의 소위 계급의 군관이었으나 김정은이 조장은 대위, 조원은 중위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대부분 김정은의 관저에서 김정은과 같이 산다. 기쁨조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집에 갈 수 없으며 당연히 가족도 못 본다.
이 일을 총 지휘하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5과는 선발의 모든 과정에 개입되어 있다. 선발 인원의 100배수의 인원을 앞서 밝혔던 과정으로 추천을 받아 추천서와 서류 심사를 통해 10배수로 압축하여, 질병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게 한다. 그 후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여성들을 당비서국에서 서류심사와 개인 면담을 통해 50명을 선발하는데, 당비서국은 이렇게 선발된 50명의 여성들의 사진과 최종 보고서를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제출하여 결재를 받는 것.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선발된 50명의 여학생들은 약 6개월간 교육을 받게 된다. 만족조는 술자리에서 시중 드는 방법, 성적 행위를 잘하는 방법을 교육받으며 행복조는 물리치료 전문의로부터 안마, 마사지, 지압 등 피로회복 전문 기술을 익힌다. 가무조는 흥을 돋우기 위한 노래와 춤을 배우게 되며 이후 보름 간의 해외 견학에 다녀와 김정일의 정기 주연일인 매주 토요일 '자유의 밤'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자유의 밤은 '인도의 밤', '페르시아의 밤', '도쿄의 밤' 등 의상과 음악 등을 현지 풍습대로 연출하여 상영되는 공연을 말한다. 이 외에도 각종 연회 자리나 등에 시시콜콜 불려가서 김정일은 물론 북한 고위급 관료들까지 상대한다고 한다. 여성들은 기쁨조의 일원이 됨으로써 명목상 호위총국 소위 계급을 수여 받고 만 25세까지 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하는 것이 된다. 기쁨조로 색출된 후에도 검사는 끊이지 않는다. 1년에 2차례의 신체 검사를 받고 상대의 아이를 배어 임신하거나 부적격 판정이 나면 즉시 해임된다고 한다.[4]
만 25세 이후에 기쁨조에서 퇴직한 이후에는, 소속과 보직만 변경되고 군대에 그대로 남아서 고위급 군관이 되거나, 퇴역 후 무역상사의 고위 간부를 하거나, 당 고위 간부를 하는 등, 고관대작의 길을 걷게 된다. 운이 매우 좋으면 김씨 일가의 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쁨조로서 만기퇴역을 할 경우이며, 중간에 짤리면 외국무역상사의 직원이 되거나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등 만기퇴역자보다 넘사벽으로 낮은 직급에 종사하게 된다. 심하면 같은 나이에 똑같은 날짜에 똑같이 기쁨조에 들어온 2명의 동기가 하나는 중간에 짤리고 다른 하나는 만기퇴역했는데, 중간에 짤린 인원이 만기퇴역한 인원의 부하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정도 직장도 북한에선 충분히 상류층에 든다.(...)
4. 도시전설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쁨조의 역할을 하는 조직은 '''실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실제 명칭이 '기쁨조'가 아닐 뿐이다.
사실 '기쁨조'라는 명칭이 달린 조직 자체는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쁨조'라는 말은 한국으로 치면 '개그맨', '코미디언'과 비슷한 의미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목적도 아니며 상설조직도 아닌 군소 조직에 불과하다. 기쁨조라거나, 더 나아가 만족조, 행복조 운운하는 명칭 자체가 북한 실정을 비꼬고자 사용된 일종의 멸칭에 가까우며, 실제로는 명칭이나 직제만 평범한 비서 집단으로 위장한 뒤 비밀리에 성접대를 행할 확률이 높다. 최고 지도자를 넘어 절대자적 존재로까지 추앙받는 리더가 속으로는 호화롭고 퇴폐적인 성문화를 즐긴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퍼지면 체제 유지에 큰 위협이 될 것이 뻔하니, 대놓고 추리할 수 있는 '기쁨조'라는 이름으로 부를 리가 없다.
이를 "남측 괴뢰의 선동과 최고존엄 모독 공작"이라며 부인하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 기쁨조와 관련된 내용은 1990년대 이후부터 탈북자들의 주장과 주 북한 외교관 및 심지어 일본 공산당 기관지 기자의 보도 등 교차검증이 비교적 가능한 자료들을 종합해서 불거지기 시작한 내용이다. 이 시기 일본의 수많은 기자들, 특히 좌파 계열 기자들은 북한의 기쁨조 실상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공산당 기관지 기자의 폭로.[5]
설령 기쁨조라고 유출된 영상들이 중국에서 만든 조잡한 영상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증언과 자료, 경험담들이 일관적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적어도 김정일을 위한 1개 중대급의 전속 유흥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백 번 양보해서 난교 임신 섹스파티[6] 라든지 스트립쇼 등의 사례가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한들, 전속 유흥단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북한에서 왕재산경음악단이 특수 고위층을 대상으로 제작한 공연 영상이 남한에 공개되면서 북한에도 비공개로 소위 자본주의식의 화려한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설령 이것으로 김정일의 개인 유흥집단에 대한 유추가 지나친 비약이라 할지라도 이로 인해 기쁨조의 존재가 잠시나마 다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워낙에 북한이 내부사정을 알기 힘든 나라인 데다 겉으로는 엄숙주의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공공연한 비웃음거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5. 기쁨조 출신 유명인사
6. 증언과 증거
대략 1975년경에 김정일은 김일성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위해서 기쁨조를 만들어서 바쳤다. 기쁨조 증언 기쁨조 안에 행복조, 만족조, 가무조가 있는데, 만족조는 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조, 행복조는 안마 등을 해주는 조이다. 이것도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기쁨조를 하다가 퇴직한 사람은 고급 아파트에 들어가게 해준다. 그러나 기쁨조를 나올 때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못하게 각서를 쓰게 한다고 한다.
김일성의 경호원을 1년 6개월 했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기쁨조는 1975년도에 처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인민국 협조단에서 18명 정도를 뽑았는데, 실력보다는 예쁘기만 했으면 됐다고 한다. 북한에는 음팔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사람이 스트립쇼를 하면 김일성이 좋아했다고 한다. 한편, 김정일이 자기 아버지에게만 안겨주기에는 부러웠는지 예술단에서 예쁜 사람들만 뽑아 김정일 주위를 빙빙 돌게 만들었다고 한다. '''즉, 김일성도 살아있을 때 기쁨조를 신명하게 즐겼다는 이야기이다.'''
김정일은 본처(영숙, 성·나이 미상) 외에 첩 2명과 생활하면서도 주변의 근무여성을 특별양성하여 성적유희로 농락했다.北 김정일 김정은의 잔인성과 복잡 음탕한 여자관계
김정일은 1977년부터 매년 시·도 예술전문학교 졸업반 여학생 가운데 미모의 30여 명을 선발, 평양적십자병원 의대에 1년 과정의 특설 반에서 기본간호교육을 시키고 홍콩·마카오 등의 지역에 파견하여 안마술 등 단기간의 연수를 시켜 자신이 최종심사한 여자를 집무실·공관·별장 등에 배치하여 즐겼다. 또 영화배우 유진희 (〈당의 참된 딸〉 주인공)·홍영희(〈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최삼숙·이정순·채수련·오화자·고지미 등 10여 명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10여 명·전용타자수·담당간호사 등 숱한 여자들과 성적유희를 자행했다.
김정일은 이들에게 공훈 배우 칭호를 수여하고 고급물품을 선물했다. 김정일은 변태적인 기질이 다분한데, 주말마다 각종 연회를 열고 무용수들에게는 나체로 춤을 추게 하며 참석자(중앙당 부부장급 이상)로 하여금 이들을 애무토록 한 뒤 즐기는 등 변태적 음란 기질자임을 잘 보여준다.
월간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김정일은 최소한 10명의 사생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며, "러시아 타블로이드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는 1997년 9월 23일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일간지의 친북 논조를 생각해보면, 해당 기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독립적인 출처로부터 검증되지 않았다. 조선계 출처(조선일보, 월간조선)의 성격상 북한관련으로 많이 언급되는 외신과 북한 관련 내용을 억지로 엮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월간조선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수령과의 잠자리’라는 제호 아래, 기쁨조를 비롯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여성 편력을 거의 전면에 걸쳐 소개했다고 주장하였다. "김정일에게 수많은 사생아가 있으며, 확인된 아이만 하더라도 10명 정도."라고 덧붙였다고도 주장했다.
집권 초기에는 김정은도 김일성,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여성들과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집권 초반에는 초대소나 별장 등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2014년 다리 이상과 발목 수술 이후엔 초대소·별장 등지에서 휴양하는 일이 잦다."며 "김정은이 자주 찾는 초대소와 별장 등지에는 키 170cm 이상 미모의 여성들이 근무하고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 생존 시 활동했던 기쁨조를 모두 해임하고 새로 (기쁨조를) 뽑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근 평양에선 기쁨조에 선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흠집 내는 여성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엔 기쁨조에 선발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던 평양 여성들이 "김씨네와 중앙당 늙은 영감들의 노리개질은 하기 싫다"며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정작 집권한 뒤에 기쁨조를 사실상 없애버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기쁨조라 불리는 5과대상자를 선발할 때 여성들에 대한 초모를 전면 금지하고 '''대상자를 모두 남성으로 채웠으며''', 간호사, 안마사와 같은 별장관리 임무도 '''전부 남자들이 맡게 됐다'''. 물론 절대권력자인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쁨조가 부활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기쁨조는 자취를 감춘 상태이다. #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에게 왕조국가에서도 보기 힘든 기쁨조는 대외적으로 보면 큰 마이너스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은은 평소 김일성과 김정일의 엽색행각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한 이유중엔 장성택이 김정일의 기쁨조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심각한 여성편력행위도 있다고 한다.# 김정은의 고모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가 김정은의 장성택 처형을 용인한 것도 김일성대에는 소규모로 음성적이던 기쁨조를 본격화시키고 활성화시켜 김정일의 총애를 받고 또 김정일을 기쁨조로 망가트린게 바로 장성택이어서라는 해석도 있다.
7. 참고
기쁨조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
- 북조선 고급 매춘녀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16mm 에로 비디오 영화로, 제작 시기는 1990년대 초중반 쯤으로 추정된다. 감독은 박재석, 그린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서 제작했다. 배경은 북한으로, 당시 한참 논란거리로 대두되던 기쁨조에 관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당시에 거의 모든 한국 영화에 출연하던 영화배우 박동룡 선생이 이 영화에서는 평양에서 나온 중앙당원으로 나온다. 줄거리는 한 마을에서 당에서 하사품으로 내려온 씨암탉이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한 유치원 교사가 기쁨조로 바쳐져 수태당하고 누이를 뺏긴 분노한 오빠가 복수를 감행하고 사이좋게 같이 탄광으로 끌려간다는 내용. 당시 에로 영화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북한 인권 문제의 실상을 잘 다뤘고, 베드신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력도 매우 좋은 수작이다. 이 작품은 일본에도 DVD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북조선 고급 매춘녀'라는 타이틀도 사실은 일본판의 제목. 국내에도 일본판의 소스가 '북한에서 제작된 포르노'라는 명목으로 웹하드에 돌아다니고 있는데, 당연히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 기쁨조 시리즈
90년대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일련의 에로비디오 시리즈. 북괴상스 인민군의 아내 편이나, 장로님 에쿠스 타신다의 뮤직비디오의 2분 47초경부터 나오는 장면 등으로 패러디 되기도 하였다.
[1] 그러나 북한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김씨 부자는 누구보다도 퇴폐적인 성문화를 즐겼다.[2] 연산군 대에 연산군에 게 보낼 미녀를 뽑던 관리. 영화 간신에 등장한다.[3] 채홍사 들이 뽑아온 미녀나 관기중에서도 선별한 미녀. 흥청망청이 여기서 나온말이다.[4] 예를 들면 전술한 바와 같이 기쁨조의 신체기준이 신장은 16세는 156cm/20세는 160cm/24세는 162cm 이상이어야 하는데, 16세 때 156cm였던 아이가 기쁨조로 뽑혀온 뒤 키가 자라지 않아서 20세 때도 여전히 156cm일 경우 부적격판정 대상이 된다. 물론 이것은 다른 여러가지 기준들 중 하나일 뿐이다.[5] 참고서적 : "서울과 평양". 하기와라 료 저. 1990. 도서출판 다나.[6] 김일성의 서자인 김현이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는 의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