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축구선수)

 

김원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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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김신욱
FW
데얀
MF
고무열
MF
이명주
MF
하대성
MF
레오나르도
DF
아디
DF
김치곤
DF
김원일
DF
이용
GK
김승규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이름
김원일
金源一 / Kim Won-Il
출생
1986년 10월 18일 (37세)
경기도 김포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김포초등학교
통진중학교
통진고등학교
숭실대학교
병역
[image] 대한민국 해병대
직업
축구선수(센터백/은퇴)
에이전트
신체 조건
185cm, 77kg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 (2010~2016)
제주 유나이티드 (2017~2019)
김포시민축구단 (2020)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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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센터백으로 활약하였으며, 대학 시절 해병대를 가서 병장 만기 제대를 한 소위 "막군[1]" 출신임에도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프로 무대에 진입해 팀과 함께 정상에 서며 성공 신화를 썼다.
현역 통산 기록은 K리그1 216경기 출전 12득점 2도움.#

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전


경기도 김포시 출신으로 통진중학교, 통진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대학교 2학년 재학 시절 병역 의무를 빨리 마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 축구단에 입대 신청을 했으나 탈락했고, 이후 해병대[2]에 자원 입대하였다.

2.2. 포항 스틸러스


[image]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였지만 운동선수가 나이가 들어 공익요원 입대가 아닌 한창 전성기 때 선수 생활을 중단하고 현역 복무한다는 건 사실상 운동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본인 역시 이 때 축구를 거의 포기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영일만 주변 해안 경비를 서면서 정말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이 때 포항 스틸러스 경기를 관람하러 포항 스틸야드에 왔다가 축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생겨서 선수 생활을 재개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리고 이 때만 해도 불과 몇 년 뒤에 관람석에서 지켜보던 포항 스틸야드를 자신이 직접 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인터뷰
전역하고 복학한 후 당시 숭실대학교를 맡고 있던 윤성효[3] 감독을 찾아가 훈련을 시작했고 2010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자신이 군 복무를 했던 포항시 연고 팀인 포항 스틸러스의 6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의 축구 열정을 되찾게 해 준 팀으로 입단을 한 이 에피소드는 팬들 사이에서 꽤나 화제가 됐지만 축구를 2년 그만두고 심지어 6순위[4][5]로 입단한 선수가 얼마나 하겠냐는 의구심도 있었다. 심지어 2010년 포항은 역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기에 전망은 더욱 어두웠다.
시즌 중에 황재원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며 김형일과 센터백 조합을 이루는 경기가 많아졌고, 급기야 김형일이 2011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에 입대하자 김광석과 함께 부동의 주전 센터백 조합을 이루며 2012 시즌에는 정규 리그 44경기 중 32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오죽하면 국대급 수비수인 김형일이 복귀해도 김원일 때문에 자리가 없어서 바로 팔려갈 거라는 불길한 예측까지도 나올 정도. 그리고 예상대로 김형일은 전역 후 2014 시즌 시작 전에 중국으로 팔려갈 뻔 했지만 어찌어찌 잔류했다. 그러나 김원일 때문에 로테이션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으니 두 선수의 위치가 극적으로 바뀌었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2013 시즌 울산 현대와 리그 우승을 놓고 다툰 최종전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을 작렬하면서 팀에 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이 날 MOM으로 선정되었는데 본인은 몰려드는 기자들의 인터뷰에 "그냥 발 밑에 공이 있어서 차 넣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골은 14박 15일 휴가증이 걸려 있던 경기 이후 처음인 것 같네요"[6]라고 답하면서 기자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결국 2013 시즌 내내 보여준 활약에 이 날의 활약이 보태져 2013 시즌 K리그 베스트 11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올리며 인생 역전 스토리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때 운동을 포기하려 했던 선수가, 현역 시절 외박 나와 관람하던 축구 경기장에서 다시 축구를 하기로 결심하고 리그 우승컵을 들고 시즌 베스트 11에 뽑혔으니 현실에서 만화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를 쓴 셈.
한때 무명 선수로 축구 인생을 접을 뻔했지만[7] 윤성효 숭실대 감독을 만나 다시 축구에 매진하고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후에는 쉬는 날 시내에서 놀자는 친구들의 연락들을 "프로가 되었지만 난 아직 프로 선수가 아니다.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노력해야 한다."면서 거절하면서까지 훈련에 매달린 결과 결국 K리그 탑 클래스의 수비수로 거듭났으니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그의 인생 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여기로.#
단점은 자리를 잡고 하는 수비가 가끔 투박한 면이 있어서 2016 시즌에는 총체적 난국을 보인 포항 수비진과 더불어 욕을 좀 먹기도 했다. 하지만 무명 생활을 지나 현재는 K리그 상위권 팀들이 탐낼 만한 센터백 자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고 결국 2017 시즌을 앞두고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로 폭풍 영입을 하고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2.3. 제주 유나이티드


[image]
2016 시즌이 끝나고 제주 유나이티드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후 주축 수비수로 활동하였으며, 입단 첫해 리그에서 3골도 기록했다.
2019년 5월 28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1 14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선제골을 허용한 지 4분 만에 코너킥 상황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정산 골키퍼가 쳐낸 것을 최현태가 헤딩슛으로 연결했으나 임은수의 슈퍼 세이브에 막혀 나온 것을 그대로 밀어 넣으며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팀은 이후 PK를 허용하며 패배했다.
16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는 스리백의 중심으로 선발 출전하였으나, 눈을 의심케 하는 처참한 수비력을 보여 주며 전반 35분 만에 4골을 허용하는 굴욕을 당했다.[8] 그래도 후반전에는 정신 차리고 무실점으로 잘 막았으나, 끝내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2.4. 김포시민축구단


[image]
2019시즌 제주는 끝내 강등되었고, 팀과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대전 시티즌 이적이 유력해졌다.#
하지만 대전 대신 본인이 나고 자란 김포시민축구단으로 이적했으며, 팀은 2020년부터 새로이 개편된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에 참가한다.
그러나 반시즌만인 2020년 7월, 팀 동료 최요셉[9]과 같은 시기에 은퇴를 선언하였다. 고정운 감독은 만류하였지만, 제주 시절부터 생긴 종아리쪽 근육 부상이 계속 재발하여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김포에서 상대적으로 고액연봉자였므로, 팀의 다른 선수들에게 그 돈을 쓰거나 다른 좋은 선수를 영입해달라 전했다고 한다. [서호정] 김원일의 은퇴사, "누군가의 희망이 됐으니 성공한 10년이었다"

2.5. 은퇴 후 근황


은퇴 이후 포항시절 같은팀 동료였던 황진성. 조찬호와 함께 에이전시를 만들었다. 주로 하는 일은 선수 에이전트 업무 및 축구 컨텐츠 레슨으로, 2021년 겨울 이적시장에서의 임상협, 신광훈 두 선수의 포항 이적이 김원일 에이전트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3. 플레이 스타일


선수 내적으로 보면 파이팅도 넘치고, 무엇보다 역습 상황에서 수비로 돌아오는 스피드가 빠르다. 공격수보다 늦게 출발해도 금방 따라잡아 슈팅을 방해하거나 끊어 버리는 장면이 많다.
제주 이적 첫 해인 2017년에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포백의 중앙 수비가 아닌 스리백의 오른쪽 스토퍼로 배치되면서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시작한 것. 안현범이 자유롭게 오버래핑하면 김원일이 빠른 발을 활용해 측면 수비까지 커버한다.[10] 원래 제주는 김원일을 포백에 쓰려고 영입했는데, 자체 연습 경기에서 스리백에 딱 맞는 선수라는 걸 발견하고 중용하기 시작했다.
수비 범위만 넓은 게 아니고, 안현범과 연쇄적으로 오른쪽 측면을 타고 올라간 뒤 크로스까지 올리는 플레이를 한다. 김원일은 포항 시절 센터백 중 가장 빌드업을 못 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플레이는 약한 대신, 시원시원하게 넓은 공간을 치고 나가는 플레이는 김원일의 장기다. 숏패스는 약하지만 크로스와 중거리 슛은 곧잘 한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 점을 살려 제주에서는 공격 포인트를 꽤 쌓았다. 다만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는데, 경기가 안 풀릴 때 무의미한 크로스를 남발하는 경향도 있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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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병대 출신이기에 홈 경기 때마다 해병대 장병들의 엄청난 응원을 받고 있으며 본인도 경기 종료 후 해병대 관람석 앞에서 인사를 하고, 가끔 먹을거리를 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고 누적이나 부상 등으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할 때는 자신의 해병대 군복을 입고 경기를 관전하기도 한다. 심지어 2013 시즌 후에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축전까지 받았다.#
  • 김포시 출신으로, 김포시에서 축구 교실을 운영하는 이회택의 손을 거치기도 했다. 이회택 축구 교실 4기 멤버. 재미있는 것은 이회택도 김원일처럼 해병대 출신에 포항의 레전드 중 한 명이란 것. 사실 해병대도 김포에 배치받기 위해 지원했던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포항에 배치받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진로마저 바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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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무 축구단, 경찰 축구단 등 프로리그 군경팀 선수 혹은 공익근무요원신분으로 세미프로 리그에서 병역을 소화하지 못하고 일반 병사로 군대를 가는 케이스[2] 병 1037기 , 원래는 고향인 김포시에 있는 2사단에서 복무하고 싶었으나 1사단인 포항시로 발령 났다고 한다.[3] 볼드체 처리된 이유는 후술.[4] K리그 드래프트는 유스 우선 지명이 있어서 알짜배기 선수들은 선지명되어 실제 드래프트에서는 빠지기 때문에 그리 유망하지 않은 선수가 1순위로 지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6순위는 마지막 지명 순번이다. 그렇기 때문에 6순위면 실제로는 97~112번째 지명인 셈이고 2010년 총 지명 인원이 145명인 걸 감안하면 굉장히 뒷번호에 속하는 지명이다.[5] 근데 2013 풋볼앤토크에서 밝히길 사실 드래프트 1순위 2번으로 경남 FC에서 뽑기로 되어 있었는데 경남에서는 윤빛가람을 뽑고 김원일은 6순위로 밀렸다.[6] 실제로 보직은 수비수이지만 군 대회에서 공격수로 활약해 득점왕에 오른 전력도 가지고 있다.[7] 실제로 입대 전 6개월 동안 게임만 하며 거의 폐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8] 박용지의 돌파를 막는 과정에서 PK를 내주어 4번째 골의 원흉이 되었다.[9] 개명 전 이름은 최진호[10] 첼시 FC가 2016-17 시즌 비슷한 전술을 쓸 때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가 맡은 역할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