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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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스포츠 칼럼니스트, 신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 상세
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 갤러리와 사커월드에서 활동하던 일반 축구팬이었으며, 프로축구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의 서포터였다. 내셔널리그 명예기자로 활동중 2006년 있었던 고양 KB국민은행의 K리그 승격거부 사태에 단독으로 1인시위를 펼치고 경기장에 난입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펼치며 유명세를 탔다.
이 사건으로 내셔널리그 명예기자직에서 해고되었는데 KBS 축구 해설위원이자 축구 주간지 풋볼위클리 편집장이던 한준희의 눈에 들어와 풋볼위클리에 전격적으로 합류하였고, 일반 기사들과 다른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기사들을 내놓으며 이내 유명세를 탔다.
덕분에 풋볼위클리가 2년만에 폐간되었음에도 곧장 스포츠서울닷컴에 합류하였고, 이후 포털사이트 네이트로 자리를 옮기며 자신의 단독 칼럼란까지 마련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 듀어든과 더불어 축구 칼럼리스트계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하였고, 긍정적 의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강력한 흥행력을 지닌 축구 칼럼리스트로 군림했다. 이후 네이트를 떠나 한동안 서울신문 나우뉴스에 글을 기고하다가 자신이 직접 언론 매체인 스포츠니어스를 창간한 뒤 대표로 부임했다. 현재는 스포츠니어스에 자신의 칼럼을 기고한다.
KBS의 <비바! K리그> 시즌6 하프타임을 진행한 바 있으며, tbs 교통방송의 <황금축구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skySports의 <분데스리가 쇼>에 패널로 출연한 바 있으며, 2013년부터 E채널의 <용감한 기자들>에 패널로 출연했다. 용감한 기자들에서는 연예, 사회, 정치, 애니멀, 보험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토크 1등에게 주어지는 '용감한기자상'을 가장 많이 받은 출연자다. 또한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에는 패널로 출연해 뜨거운 반응을 얻어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2회 출연한 패널로 기록되기도 했다.
MBN <아궁이>와 TV조선 <대찬인생>, <B급 뉴스쇼 짠> 등에도 꾸준히 출연하며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도 다졌고 최근에는 강연자로도 활약 중이다. 칼럼과 방송 등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잡지사 풋볼위클리 공개 채용을 통해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정식 기자로 데뷔했다. 당시 면접자가 KBS 한준희 해설위원이었다. "골 때리는 칼럼"이라는 네이밍에서도 알 수 있듯 예측 불가능한 분석과 신선한 소재를 특유의 유머로 버무려 계속 칼럼으로 내놓았고, 이같은 기사는 일반 축구기자들이 내놓는 예측 가능한 분석이나 매너리즘 가득한 기사에 지겨워하던 일반 축구팬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져, 적극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또한 한국축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K리그를 사랑하고 자신의 칼럼이나 방송에서 K리그 소식을 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또 하나의 장점으로 한국 축구의 역사와 관련된 칼럼들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오른팔에 한국 축구의 대부 김용식 선생을 문신으로 새길 정도로 과거 역사와 과거 축구영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데,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축구 역사를 소개하는 칼럼을 틈틈이 올리곤 한다. 대중적인 인기는 적은 편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김용식 선생을 소개하며 묘소를 찾아간 칼럼을 올린 후에는 조중연 회장을 포함한 축협의 높으신 분들이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 벌초하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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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박주영의 병역 물타기 사건이나 기성용의 트인낭 사건 문제를 전격적으로 제기하는 등 여론의 눈치보지 않고 먼저 화두를 던지며 환기를 유도하는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기자들이 선수나 축구인 혹은 구단과의 친분으로 인해 비판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주관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돌진한다. 저 두 건 외에도 잊을 만하면 폭로기사를 터트리니 어떤 의미에서든 축구계에 꼭 필요한 저널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김현회가 박주영의 병역 회피에 대해 적나라한 비판을 하자 박주영 팬카페에서 조직적으로 여론 몰이를 한 적도 있다. 또한 한국 축구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기성용 SNS논란 기사도 바로 김현회의 작품이다. 기성용은 SNS로 최강희 감독을 비하했다는 김현회의 단독 보도 이후 “사칭이다. 보도한 기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몇 시간만에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병비리를 저질렀던 변병주 전 감독이 상무 전력분석관에 임명됐다는 사실도 단독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상무에서는 허위사실이라고 공식 자료를 내고 반박했고 김현회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김현회가 울며 겨자먹기로 사과했지만 축구팬들이 김현회의 칼럼이 맞고 상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밝혀내 억울함을 풀었다. 관련 기사 결국 밝혀진 진실
K리그와 바르셀로나의 친선전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올스타전이라고 칼럼을 통해 대차게 비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당시 김현회가 고정 출연 중인 비바 K리그에서 어쩔 수 없이 방송사 방침 때문에 바르셀로나와의 올스타전 촬영을 해야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김현회는 당시 고정 출연중이던 코너의 촬영을 거부했고 결국 김현회 없이 한주 방송이 진행됐다. 신념에 따라 지상파 고정 출연중인 방송의 출연을 거부한 것이다. 심지어 한국축구에서는 아무도 건드릴수 없는 정몽준 회장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적도 있다.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고도 할 말은 하는 언론인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축구가 졸전 끝에 망신 당한뒤 축구장에 물채우라는 원성이 자자했을때다. 축구가 엄청난 혈세가 들어간다면서 인터넷에는 축구를 비판하는 글로 도배됐던 시기에 김현회가 왜곡을 한방에 바로잡기도 했다. 김현회가 축구는 세금으로 운영되는게 아니라는걸 당당히 공개한 것이다. 이후 김현회는 축구에 대한 반감이 있는 이들에게 “죽여버리겠다”는 살해협박을 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2010년 월드컵이 끝나고는 조롱의 대상이 된 염기훈을 옹호하는 칼럼을 썼다가 또 한번 안티팬들의 집중포화를 당해야 했다. 당시 기사
저돌적인 비판 칼럼만 잘 쓰는게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칼럼도 많이쓴다. 현역으로 군대에 간 골키퍼 권기보에 대한 칼럼을 쓴 뒤로는 권기보 상병의 부대로 격려 전화가 쇄도한 적도 있다. 박지성이 현역에 있는 동안 김현회는 “나중에 은퇴할 때나 박지성 관련 칼럼을 한 번 쓸 생각이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박지성에 관한 기사는 많다. 나는 더 특별하고 참신한 칼럼을 쓰고 싶다”고 밝혔고 실제로 박지성이 현역에 있는동안 단 한번도 박지성 찬양 칼럼을 쓴적이 없다.
“(권기보 인터뷰 중) 당신 칼럼이 나온 뒤 부대로 전화가 엄청나게 왔다. 제초 작업을 하다가 지인들의 전화를 7~8통은 받은 거 같다. 어안이 벙벙해 인터넷에 접속해 봤더니 칼럼에 내 이야기가 쭉 소개됐고 미니홈피에도 벌써 몇 백 명이 다녀갔더라. 당신이 내 이야기에 대해 너무 잘 알기에 당신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그런데 나하고 동갑이더라. 나하고 친한 사람한테 물어봐야 알만한 것들에 대해서 써서 어디서 나하고 같이 축구를 했던 선수인줄 알았다. 그거 다 어떻게 알았나. 나는 군대에 있어서 당신과 인터뷰도 못했는데.” 관련 인터뷰
신영록이 의식을 되찾아 모두가 기뻐할 때 같은날 죽음을 맞이한 무명의 여자축구선수 칼럼을 써서 축구계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관련 칼럼
유명한 선수보다는 늘 소외된 선수들을 자주 주목하는 김현회는 유명하지 않은 한 실업팀 감독의 죽음에 대한 칼럼("회장님들, 우리 식구는 챙기셨습니까?")를 쓴 뒤 감격한 고인의 형(무려 60대 할아버지)이 직접 자필로 김현회한테 감사의 편지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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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사도 김현회의 강점이다. 가장 전설적인 인터뷰는 바로 김주영과의 이 인터뷰다. 축구와 관련없는 유머사이트에도 돌아다닐 정도로 레전드 인터뷰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 외 보육원 출신 선수선명진나 해병대 출신 선수김원일 등등 감동적이고 유쾌한 인터뷰로도 유명하다. 안정환 은퇴이후 약 70군데 언론사에서 안정환 인터뷰 요청했고 에이전시측에서 조중동등 국내 초대형 언론사에게만 단독 인터뷰 허락했는데 그중에 프리랜서로는 유일하게 김현회도 포함됐다. 안정환 인터뷰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믿고보는 김현회 인터뷰’라는 평가가 팽배하다.
이슈와 재미가 부족한 축구계에서 김현회의 똘끼도 큰 무기다. 문어 파울을 따라한다고 동네에서 낙지 사다가 점치는 똘끼 발산하기도 했고 (기사) 김현회의 무한도전이라는 코너를 통해서 드래프트를 신청하고 심판 자격증을 따고 특히 k3리그 선수로 등록해서 실제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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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드컵 당시 ‘나이지리아전, 치킨 주문 배달 공략법’이라는 칼럼이 네이트 역사상 최초로 관심지수 100을 달성한 적도 있다. (참고로 김대중 대통령 사망 단독 보도 1보기사 관심지수가 99였다.) 자비를 털어 자비 털어서 월드컵응원가를 만들어서 한국 축구에 헌정했고 이후 자신의 돈을 털어 홍명보 장학재단에 기부까지 했다. 그리고 홍명보 장학재단에서 고맙다고 자선축구 티켓 20장 공짜로 주자 이걸 또 트위터 통해서 축구팬들에게 다 무상으로 나눠줬다.
포항스틸러스 신영준이 성폭행 미수범을 잡았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해 신영준이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선행상을 받기도 했다. 구단조차 이 상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단독 보도한 김현회가 구단 관계자와 담당 경찰관을 연결해주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구계에서는 영향력이 큰 칼럼니스트다. 축구원로 김용식 선생을 재조명한 ‘당신의 축구 영웅은 누구인가요?’ 칼럼을 쓴 뒤로는 이후 대한축구협회에서 조중연 회장이 직접 김용식 선생 산소 가서 벌초하고 a매치때 추모 영상 제작해서 틀어주기도 했다. 협회 벌초 뉴스 김현회가 쓴 ‘한국 축구, 멕시코와 태국이 주는 교훈’ 칼럼 내용을 재구성한 한 고등학생이 ucc 공모전에서 입상해 특별전형으로으로 대학에 입학한 적도 있고 김현회 칼럼이 눈높이국어 중학에 실린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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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대한 고집도 강하다. 러시아어와 일본어 문서까지 연구해 소련 축구 대표팀에서 뛰었던 고려인 3세 미하일 안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고 이후 이 내용은 한 지상파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됐다. 베트남 전쟁 당시 형을 전쟁터에서 잃은 김호 감독의 일화를 처음 소개하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와 6.25 시절, 1970년대 양지 축구팀 등 역사 의식을 강조하는 칼럼을 자주 올린다. 대학 교수인 정윤수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자기보다 한참 어린 김현회를 존경한다고 밟히기도 했다.
1인 시위를 두번 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 2006년 고양국민은행이 승격거부를 선언했을 때였고 2013년에도 연맹이 승부조작 선수들의 징계 감면을 논의하자 그 회의장 앞에서 홀로 1인시위를 해 징계 감면 철회를 이끌어낸바 있다.당시 기사
K리그에 진출해서 김현회 칼럼에 소개되는게 꿈이었던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는 학창 시절 김현회에게 팬레터를 보낸 적도 있다. 훗날 제주유나이티드에 입단해 뛰고 있는 배일환이다. ‘최은성이 대전이고 대전이 최은성이다’라는 김현회 칼럼 이후 대전 서포터스가 그의 칼럼 제목을 그대로 걸개로 제작한 적도 있다.
[image] 하지만 박주영과 기성용 등 팬덤이 강력한 선수들을 대놓고 비판한 탓에 안티팬도 무척이나 많다. 심지어 특정 팬들이 김현회 기사에 몰려가 조직적으로 악플을 단 정황도 포착됐고 김현회는 결국 2015년 이들 악플러들에게 법적조치를 취했다. 이들은 김현회 칼럼에 상습적으로 악성 댓글을 달았고 사과를 요구했으며 사실을 왜곡해 김현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김현회에게 사과했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처럼 김현회에게 지속적으로 악플을 달았던 이들은 사과문과 각서까지 써야했다. 할 말을 하는 칼럼니스트라 워낙 안티팬이 많아 툭하면 표절, 비하, 왜곡 등등을 이유로 일거수일투족이 안티팬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김현회는 이에 대해 “이런 관심에도 감사하다. 늘 지금처럼 주목받지 않은 이들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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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스포츠니어스가 마침내 연맹한테 취재허가 라이센스를 받았다. 그동안 관중석에서 경기보고 취재하고 다녔다가 이제 공식적으로 기자실에서 취재도 가능하다.[2] 3. 비판
언론사 채용 시험 등 정식루트를 밟은 언론인이 아니기에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우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언론사에 입단한 여타 기자나 칼럼니스트들에 비해 글의 수준이나 칼럼의 문장력이 몹시 뒤떨어지고 수준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축구팬의 블로그 글을 무단으로 표절해 도용하고 심지어 게시판 의견까지 그대로 복사해 표절하는 행태로 귀결되고 있다.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축구 외 분야에 대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적는 경우도 있다. 한 예로 2013년 2월에 작성한 K리그 중계방송 관련 칼럼에서는 'SPOTV는 PP가 아닌 SO이기 때문에 접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내용을 썼으나, SPOTV는 2013년 당시 운영 채널들의 보급률이 낮아서 접하기 힘들었을 뿐 '''엄연한 PP다'''.[3] 당시 SPOTV에서 (중계권 거래 회사의 자회사 입장에서) 지역 SO의 직접사용채널을 통해 제작된 중계방송을 받아서 온/오프라인 방송으로 재송출한 것을 헷갈려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적힌 듯하며, 케이블방송에서의 PP와 SO의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칼럼을 쓴 결과 '(SPOTV는-김현회의 판단에는-SO로서) PP에서 K리그를 중계해야 이걸 받아서 송출하는 역할이다'라고 적힌 다음 문단에 'SPOTV는 SO의 중계가 있어야 이걸 받아서 튼다'는 문장이 나오면서 앞뒤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의 칼럼이 탄생했다.
DC 국내축구 갤러리 시절 FC 서울을 북패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글을 종종 남겼던 행적부터 시작해, 모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박주영 모나코 시절 방한썰을 풀었던 것과 기성용 SNS 폭로건, 그리고 서울 연고공동화정책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칼럼을 쓰는 등 FC 서울 팬층과 대립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때문에 FC 서울 팬층에게 지속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4. 사건사고
4.1. 이용규와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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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이용규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방문해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부적절한 수작을 부린다며 공개적으로 이를 항의한바 있다. 하지만 김현회의 주장과 달리 이용규가 먼저 부적절한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님이 드러났고 도리어 김현회 여자친구가 이용규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이며, 별다른 내용없이 팬과 선수의 관계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아낀다해도 전후관계 파악조차 않고 상대 사생활에 간섭성 비방을 유도하는 글을 미니홈피에 써놓고 득의양양했으며, 심지어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욕설을 섞어 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 갤러리(;;)에 실시간 중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태가 마무리 된 이후에도 경솔했지만 쌍방의 잘못을 운운하며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또한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이미 퇴사한 상태였음에도 여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자라고 신분을 사칭하기도 했다. 내가 당하는 것은 못 참아 전후관계 되돌아보지도 않지만 내가 싫어하고 비방하는 이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인드의 싹수를 일찍이 보여준 사건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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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018년 1월 김현회기자가 한 팟캐스트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이용규 선수와 그 여성분이 팬 이상으로 연락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2. 김석류에 대한 인신공격과 말바꾸기
스포츠서울닷컴 기자시절 전 KBSN 아나운서인 김석류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를 여신이라고 칭하며 찬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으나, 몇 년뒤 칼럼에서는 스포츠계 여신 호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스포츠 계통 여자 아나운서들을 싸잡아 비방하며 말을 바꾸었다. 이 와중에 과거 자신과 인터뷰까지 진행했던 김석류는 본인의 실수로 발생된 인터뷰 문제가 예시로 지적되며 기본적인 배경 지식도 없는 사람으로 모욕당하고 말았다.
4.3. 박주영 친선경기 출전협상 발언 사건
고정 출연중인 용감한 기자들에서 이니셜로 해외에서 뛰는 A 축구선수와 A 축구선수의 부모가 K리그 B팀과의 친선경기 출전여부를 놓고 실시간으로 돈놀음 협상을 벌였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선수는 머잖아 리그앙 AS 모나코에서 뛰던 박주영으로 지목되었고, 덕분에 박주영은 축구팬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비아냥과 욕설에 시달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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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며칠 뒤, 축구선수 출신 해설위원이자 당시 친선경기에 코디네이터로 직접 참여한 김태륭에 의해 해당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김현회는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정통한 관계자(;;)에게 해당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하였고 담당 코디네이터가 정확한 사실을 알기는 어려운 일이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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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김태륭은 자신이 직접 AS 모나코의 감독이었던 기 라콩브, 박주영과 직접 경기출장여부로 삼자대면을 가졌고 이를 심도 깊게 대화했다며 해당 내용을 인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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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김현회는 당사자에게 사과의 트윗을 올렸다.
4.3.1. 반론
김현회는 해당 논란에 대해 사과한게 아니라 시점이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 이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 죄송하다고 사과한 것이었고 해당 사건에 대한 진위 여부는 가려지지 않았다는 반론이 있다.
김태륭은 박주영과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으며, 특히 고려대 축구부 동문 사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박주영 쉴드를 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태륭과 박주영의 절친 관계를 설명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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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김태륭 해설위원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론조작을 한 정황이 포착되며 여론이 다시 뒤집힐 조짐을 보이고 있다.
4.4. 기사표절 도둑질 및 독자 우롱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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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박태준의 못 말리는 축구사랑 일대기'''라는 칼럼이 축구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홍차도둑'''이라는 유저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그대로 인용하고 베낀 '''표절'''이라는 의혹이 있다. 또한 프리랜서 방송인 백지연이 진행하였던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승부조작으로 인한 K리그 중단과 관련한 토론이 진행된 직후, 한 축구팬이 해당 게시판에 쓴 글을 그대로 자신의 칼럼에 베꼈다는 증거가 있다.
타인의 글 소재와 뉘앙스, 전개를 그대로 가져오고 심지어 작성된 대화멘트까지 자기 칼럼에서 흉내낸데다 게시판에서 일반 유저가 쓴 글을 자신의 칼럼에 붙여넣기 한것이 표절이 아니라면 세상에 표절이란 개념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흔히 말하는 논문표절과 비슷한 수법의 표절을 구사하는데, 사실상 글을 써서 밥먹고 사는 사람이 남의 글을 베낀 것이니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지적재산에 대한 도둑질이고 넓게 봐서는 독자를 우롱하는 행위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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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관련 허위사실 유포와 어그로성 칼럼
2017년 7월 25일에는 느닷없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용어와 개념이 2013년 이후에 FC 서울팬들이 왜곡과 날조로 만들어낸 허구인데 이걸 무지한 언론과 연맹에서 베껴 쓰면서 정설이 되었다는 뜬금없는 헛소리를 당당하게 기사로 게재했다가 오진 욕을 얻어먹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현회의 이런 왜곡과 날조에 대해 FC 서울에서 프로축구연맹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 요청을 하였고 프로축구연맹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이 당시 실제 논의과정을 통해 결정된 정책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재확인 해 주었다는 발표가 2017년 9월 1일 FC 서울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또한 프로축구연맹에서 보내준 당시 이사회 회의록 등이 공개되면서 김현회 칼럼은 완벽하게 오피셜리 왜곡과 날조로 쓰여진 칼럼으로 인증되었다.(관련 자료들은 하단 참고)
오피셜리 왜곡과 날조로 쓰여진 칼럼으로 인증되기 전부터 사실 기사 내용부터가 표절의 냄새가 물씬 났었다. 소재로 쓰여진 과거 기사가 동일할 뿐 이는 표절이 아니라는 수정코멘트가 있었지만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없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리구조 등 종합적으로 봤을 때 누가봐도 표절했다는 느낌이 든다. 블로그와 칼럼을 비교해 보고 독자들이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
또한 이미 그 블로그 주인과 김현회는 기사 출처 관련 트러블이 있었고 김현회씨 사건과 관련해서 그 외에도 이미 기사 표절로 유명한 김현회이기 때문에 이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블로그 주인과 친분이 생겼고 그 블로그 주인이 표절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수정코멘트가 있었지만 그렇다면 친분을 이용해서 특정 목적을 가지고 블로그 내용을 일부러 기사화 시켜줬다는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여기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자기 자신의 칼럼은 논리구조가 비슷해도 소재로 쓰인 과거 기사만 비슷할 뿐이라고 표절 의혹을 부인하면서 연맹이 제작한 한국프로축구 30년사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내용은 아무 증거도 없이 서울팬이 왜곡과 날조로 만들어낸 내용을 연맹이 무지해서 드래그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래 보시다시피 30년사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내용 역시 이미 과거 언론에 전부 언급되었던 내용으로 아래와 같이 간단명료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FC 서울에 유리하거나 그런 특별한 논리가 담겨져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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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이때까지 나온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관련 기사들은 전부 축구 역사에 관심 없는 현안만을 가볍게 파고들고 무지한 언론에서 필터링 없이 쓴 것이라고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아무 증거도 없고 김현회의 일방적 주장일뿐이다.. 실례를 들어 설명하자면 2009년에 위원석 기자가 K리그서 서울더비를 보고 싶다라는 기사에서 1996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서울 연고 3팀을 강제이전 시켰고 결과적으로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인 서울 연고지를 무주공산으로 만든 이 정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는데 김현회 논리에 따르면 위원석 기자는 역사의식도 없이 그냥 서울팬들이 만든 개념을 인터넷에서 발견해서 복사해서 붙여넣는 무능력한 기자가 되겠지만 참고로 위원석 기자는 1995년도부터 한국 최고의 메이저 스포츠신문사인 스포츠서울에서 근무하면서 2017년부터는 스포츠서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국내 유일한 발롱도르(Ballon d'or) 투표권을 가진 축구계의 대기자이다. 표절로 유명했던 김현회 기사를 믿어야 할지는 위원석 기자의 기사를 믿어야 할지는 역시 독자들이 판단해 주길 바란다.
또 하나 칼럼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2013년이라고 적시했지만 자기 본인이 2011년에 쓴 칼럼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용어를 표기했다는 것이다. 개념은 반대로 헷갈리긴 했지만 용어 자체가 2013년 이전에 명백하게 존재했던 것을 김현회 본인이 과거에 작성했던 칼럼으로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응원 문화의 산실 '하이텔 축구동'을 기억하시나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란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용어와 핵심 개념을 FC 서울팬들이 왜곡과 날조로 만들어냈고 이게 퍼져서 연맹 30년사까지 들어갔다는 주장은 이미 2014년에서 2015년에 걸쳐 안티 FC 서울 성향 논객들이 어떻게든 들이밀어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다가 결국 토론에서 처참히 무너진 역사적 사례만 재확인 시켜줄 뿐으로 아래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국내 축구 갤러리 개설 당시(2005년)부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용어와 핵심 개념이 거론되었고 2007년부터 국내 축구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장본인이 바로 김현회 본인이었는데 이쯤되면 그저 전적으로 어그로로 자기의 사이트 인지도나 높여보자는 저열한 상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도 국내 축구 갤러리에서 공동화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면 줄줄이 검색되고 있으며 2007년 샤다라빠가 쓴 글도 아래와 같이 나오고 있는데 서울팬들이 연고이전을 합리화하기 왜곡과 날조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용어와 개념을 만들었다는 김현회 논리가 진실이라면 샤다라빠의 글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성남의 칠성에 대한 고찰
그 외에도 언론 기사 안양 LG, ‘서울 LG’ 된다, 주인찾은 상암' 축구의 봄 활짝, PC 통신시절부터 사커월드까지 심지어 수원삼성과 안양LG팬의 글들 # 그리고 지금도 네이버, 다음 등에서 2010년 이전 날짜 지정을 하고 검색을 하면 수원팬을 비롯한 다양한 각 구단 팬들이 작성한 축구 커뮤니티의 게시물, 블로그 등등에서 서울 공동화 정책에 대한 용어과 개념은 무수히 검색되어어 일일히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게다가 다른 근거라는 것도 연맹에서는 지방 연고만 승인했지 서울 연고를 승인한 바가 없다[4] 거나, 서울 외부에서의 중립경기가 많았으니 서울팀이 아니다[5] 거나, 당대에는 서울 연고 공동화라는 용어가 없었으니 허구라는 김현회의 논리에 따르면 사실 이미 1990년대 PC 통신에도 서울 공동화(空洞化) 용어가 엄청나게 언급되었고 아래 첨부된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 문건에서도 공시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지만 당대에 없던 용어라고 그 역사적 사실이 허구라는 논리가 성립하면 일본이 1910년 지금부터는 일본강제점령기 또한 지금부터 이 정책은 민족말살정책 이렇게 용어를 만들고 했던 것이 아니니 허구이고 당대에 광주사태로 불렸던 5.18 민주화운동은 무엇이며 K리그란 용어 자체도 1998년도부터 사용했으니 '''K리그 35년''' 운운조차 허구라고 해야 할 판으로 한마디로 언론인이 썼다고 믿겨지지 않는 초딩논리로 점철되어 있다.
참고로 그 당시는 전용구장 개념도 미약했고 잔디 보호하고 관리하는 노하우 자체가 없었으며 특히 당시 동대문운동장을 비롯한 국내 운동장들 모두 지금과 같은 양잔디가 아닌 똥잔디였으며 특히 동대문 운동장은 프로축구경기 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 경기와 그 외 각종 아마추어 대회 주요 경기 거기에 스포츠 이외 행사까지 모두 소화해야 상태에서 서울에 3팀이 있었으니 구장 스케줄이 지금과 차원이 다르게 빡빡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축구팀 경기수에 제한이 있었고 이는 기사로도 남아있다.프로축구 서울연고팀 구장난
지방 구단들도 정도만 덜할 뿐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라서 대우, 포철, 현대 지방 구단들도 잔디 사정과 경기장 대관으로 홈경기의 85퍼센트만 홈에서 소화했다. LG, 일화, 유공은 3팀이 한 구장을 같이 쓰니 당연히 구장 스케줄이 더 빡빡해 홈경기 비율이 조금 낮았을 뿐이다. 근데 이런 건 쏙 빼먹고 51경기 중 19경기 딴 데서 했으니 유랑팀이란 침소봉대식 논리를 펼치고 있다.
옛날 신문기사 뒤져서 정몽준 회장도 "서울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서울 연고팀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라고 한 적도 있고 프로축구연맹 관계자가 "서울 연고 세 팀은 무연고팀이나 다름 없다"라는 문구가 포함된 기사를 가져와서 이래도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해당 기사의 전체 맥락이나 전후 관계는 전혀 살펴보지 않았다. 정몽준 회장의 1994년 발언은 1993년 서울 연고 프로야구단인 LG 트윈스가 115만 관중을 돌파하는 등 당시 서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프로야구 인기에 비해 저조한 프로축구 인기를 서울 연고 구단들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하던 말로 사실 프로축구가 지금보다 더 전체적으로 비인기인 상황에서 1994년 기점으로 각 구단이 서울 연고 구단으로 겨우 일화가 6년차, LG가 5년차, 유공이 4년차로 이런 짦은 기간을 연고정착을 위해 보냈기 때문에 서울시민들이 서울 연고 구단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상황에 가까운 것이었다. 즉 일화 60년, LG 50년, 유공 40년 등 수십년 동안 서울 연고 구단이었는데도 서울시민들이 이런 구단이 서울 연고 구단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정착한 기간이 짧기 때문에 나온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으며 사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축구는 오로지 국가대표팀 축구만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은데 1990년대까지는 더 심했고 즉 "국내 축구팀들끼리 하는 축구를 재미없게 왜 보냐?"는 양반이고 국내 축구팀들끼리 하는 그런 대회 즉 프로축구가 대한민국에서 운영되는지 알지 못 하는 국민들도 있을 정도로 프로축구 각 구단의 인지도는 물론이거니와 프로축구 자체의 인지도도 지금과 다르게 엄청나게 낮았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
덧붙여 1990년대 서울 연고 구단의 인기 및 인지도와 관련하여 현재 서울 이랜드 FC를 비롯 K리그의 수많은 비인기 구단들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 인터넷과 SNS 등으로 1990년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홍보수단이 많아졌지만 서울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서울 이랜드 FC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그 외에 다른 수많은 비인기 구단들도 이 질문에 자유로울수가 없으며 지역에서 인지도를 올리고 자기 지역팀을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K리그 구단들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나마도 여론 조사나 통계를 가져온 것도 아닌 정몽준 회장의 주관에 의한 막연한 발언이다.
덧붙여 정몽준 회장이 "서울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서울 연고팀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발언과 김현회가 주장하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없었다는 것과는 사실 논리적 연관 관계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1993년 J리그 개막전을 참관하고 당시 J리그 폭발적인 인기에 자극받은 축구협회 회장이자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인 정몽준의 의중을 담아 정책적으로 일본 J리그처럼 수도에 연고 구단을 두는 것 보다는 지방 연고지 위주로 지역연고제를 시행하면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을 오히려 뒷받침해 줄 뿐이다.
또한 연고 구단이 인기가 없다고 혹은 해당 지역에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발적인 연고이전이 아닌 리그 주관 기관에 의한 강제적인 연고지 이전이 정당화 될 수는 절대 없다. 2015년 부산 아이파크가 강등당했을 때 | 승강PO 2차전을 앞두고 부산시민 대부분은 축구가 하는지조차도 몰랐고 축구 기자가 부산역에 내려 택시를 탔을 때도 택시 기사는“구덕 운동장은 왜 가나”라며 물었으며 관련 기사, 부산에 취재하러 간 서호정 기자와 함께 있던 지인이 "지금 우리 주변의 이 사람들은 오늘 자기 고장의 프로 축구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됐다는 걸 알기는 할까?" 이런 대화를 나누고 서로 안타까움을 곱씹었다고 하는데 관련 게시물 이렇게 자기 연고지 구단이 강등 당하던 말던 아무 관심도 없고 실제로 강등 당해도 아는 사람도 없는 부산 아이파크같은 비인기 구단은 연맹과 정부에서 마음대로 연고지 이전 시켜도 된단 말인가?
더욱 의아한 것은 단 한명의 팬이라도 있으면 연고지 이전은 절대 안 된다는 식의 무조건적인 연고이전 반대 주의를 표방하는 인간이 김현회 아니었던가? 예전 칼럼에서 서울 연고 3팀들이 소수지만 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인 칼럼에서도 분명하게 기술까지 했었는데 응원 문화의 산실 '하이텔 축구동'을 기억하시나요? 서울 연고팀들은 소수팬이니까 연맹과 정부에서 구단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연고이전시킨 것은 잘한 것이고 연고이전도 아니고 지방팀들은 단 한명이라도 팬이 있으면 무조건적으로 연고이전이 안 되며 연고이전하면 패륜구단이 되는 것인가?
후자인 연맹관계자의 발언 역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위해 '서울에서 나가라고 강권하면서 사실상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한 말이다. 즉 한국에서 제일 큰 시장에서 나가라고 강요하면서 '''서울 연고지를 공동화(空洞化) 시켜야 K리그 판을 키울 수 있고 지역연고제 정착하고 반대로 서울 연고지 구단들이 존재하는 것이 K리그 발전을 저해하고 지역연고제 정착을 방해한다는 당시 연맹 관계자의 발언은''' K리그가 현재 왜 이렇게 발전을 못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발전이라고 하겠다. 서울 연고 구단이 없어야 K리그가 발전하고 지역연고제가 정착한다는 주장이 맞으면 2000년대 이후에도 서울 연고팀을 만들지 말고 지금도 만들 생각을 안 해야 하는데 현재 FC 서울과 서울 이랜드만으로는 부족하고 최대 3팀까지 늘리는 것이 현재 연맹의 목표이다. 프로연맹 "서울 연고팀 3개까지 늘린다"
그리고 FC 서울은 김현회의 이같은 만행을 참다 못해 프로축구연맹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 2017년 9월 1일 연맹으로부터 제공받은 당시 연맹 이사회 의사록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더 두고 볼 것도 없는 김현회의 완벽한 패배. 더 큰 문제는 연맹의 공식 문건이 확인된 상황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명칭과 개념은 FC 서울팬이 연고이전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왜곡과 날조로 만들어낸 허구이며 이를 무지한 기자들이 베껴서서 기사화 되고 연맹도 자신들의 역사를 몰라 한국프로축구연맹 30년사에 삽입되었다고 적시한 김현회의 칼럼은 '''명백한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법적 분쟁의 소지'''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김현회가 해당 문건의 사실을 알고도 글을 썼다면 말 할 것도 없고, 모른 채로 글을 썼다면 자칭 기자가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없이 뇌피셜을 끄적인 것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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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연맹 1994년 이사회 제7차 회의 의사록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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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연맹 95년 이사회 제1차 회의 의사록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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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관련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반성없는 졸렬한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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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구단에게 팩트 폭행을 당한 이후 김현회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심어린 반성과는 거리가 먼 위와같은 해명을 담은 게시물을 하나 올렸다.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이 있다면 FC 서울 구단과 FC 서울 팬, 한국프로축구연맹 직원 그리고 집필에 참여한 서형욱, 서호정, 김동환, 한준, 류청, 위원석, 양승남, 김성원 등등의 동료 축구 기자 및 축구 언론인 모두에게 자신의 허위 날조 칼럼으로 인해 피해와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하지만 졸렬한 변명 밖에 없었다. 또한 팩트 폭행을 당하여 얼마나 부들부들 했는지는 김현회가 위에 쓴 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FC 서울이 공개한 문건의 서울에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하면 잔류를 허용한다는 내용에 대해 김현회는 "FC서울이 문건을 공개해서 세 구단이 무조건적으로 쫓겨난 것이 아니었다는 제 반대의견을 입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써야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는데 아래처럼 자기 자신도 무슨 말을 할려는지 모르는 문장을 써 버렸다.
'''세 구단이 무조건적으로 쫓겨났다는 제 반대 의견을 반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FC서울이 공개한 문건 내용 중에 전용구장 관련 조건은 이미 당시에 기사로 나와있던 내용이었다.<프로축구>-서울연고 3개구단,내년 지방이전
즉 당시에 이미 기사로 다 나와있었고 한국어 위키백과 등에 이미 올라와서 알만한 축구팬들은 다 알고 있던 내용을 언론사 대표랍시고 칼럼 쓴다면서 기초적인 자료 수집도 안 해서 김현회 자기만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김현회는 자기가 쓴 칼럼의 주제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없었다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FC 서울이 공개한 문건으로 자신이 쓴 칼럼이 완전히 허위와 왜곡으로 증명되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페이스북에 기재된 김현회의 해명만 보면 김현회는 자신이 쓴 칼럼의 주제도 뭔지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4.7. FC 서울 안티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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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 갤러리에서 '''알레고양'''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당시 FC 서울에 소속되었던 수비수 김치곤을 개병신, 지랄등의 비속어로 인신공격한 전례가 있다. 또한 FC 서울을 응원하는 모 여성팬이 국내축구 갤러리에 왔다간 이후 환호하는 유저들에게 '하여튼 발정난 개축 - 축구에 대한 비하발언 - 놈들 여자라면 북패고 나발이고 좋아하네 ' 라고 말하며 여성을 성적인 상황에 악용해 희롱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인바 있다. 기사를 쓴 직후 기사내용에 논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기사를 읽은 독자들을 상대로 국내축구 갤러리에서 갖은 욕설을 동원해가며 악의적으로 비난했다는 증거도 있다.
그냥 일반 디시유저였다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여러 비속어로 욕설과 성적농담을 꺼내던 당시 이미 풋볼위클리와 스포츠서울닷컴의 축구 기자였다는 것이 문제.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편향된 사고방식으로 자신과 반대되는 이들에게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평소 성향을 인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위의 항목에 자세히 나와있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한 왜곡과 조작 시도도 연고이전팀인 FC 서울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에서 나온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추정하고 있다.
4.8. 히딩크 선임 논란당시 FC 코리아와의 갈등
2017년 9월 월드컵 최종예선 직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한다는 루머가 한국을 휩쓸때, 김현회는 이러한 극성 FC 코리아팬들을 대놓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참고로, 이때 얼마나 광풍이 심했냐면 신태용을 향한 욕은 기본이고 밖에 나가서 축협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촛불시위 제안이 나오기도 했었고 서호정, 서형욱, 박문성등이 "아무리 그래도 히딩크까지는 그렇다"라는 논지의 칼럼을 내다가 전례없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골수 축구팬들은 대부분 김현회를 쉴드쳤고 축사국을 비롯한 FC 코리아는 김현회의 기사처럼 촛불시위고 뭐고 아무것도 안 했다.
이런 이유로, 축사국을 비롯한 FC 코리아 팬들은 김현회를 굉장히 싫어한다. 이들을 비판하는 기사로는 히딩크 선임 논란 당시 이를 비판하는 기사나, 히딩크 선임 촛불 집회 기사가 대표적인 기사. 두번째 기사 댓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역시 사이다"라는 반응도 있고, "어디서 뒷돈받고 이따위 저질스런 글을 싸재끼나?"라는 두 반응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위에 서술한 사건들로 인해 김현회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축구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이때만큼은 통쾌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6] 그리고 악성 FC 코리아로 유명한 축사국에게 고소를 당했었는데 축사국의 고소 자료가 무려 나무위키 자료였고(...) 고소는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1] 축구 전문 팟캐스트 조축개축, 히든풋볼[2] 연맹 취재허가는 1년에 1천회 이상 기사를 써야 가능하고 군소 영세 언론사가 이걸 다 채우는게 쉽지않다. 특히 스포츠니어스는 간단한 보도자료 복사붙이기 뿌리기를 거부하는 회사라 더 빡셌고. 결국 김현회와 스포츠니어스 집념의 승리다.[3] SPOTV 산하 채널들은 이전까지 IPTV 위주로 보급되어 있다가 2015년 SPOTV의 채널들을 통한 KBO 리그 생중계 제작, 편성과 함께 케이블TV, 스카이라이프에서의 보급률이 증가했다.[4] 프로축구 단장위원회에서 유공의 서울 연고이전을 승인했다는 기사가 네이버만 치면 버젓이 나온다.[5] 이렇게 따지면 1995년 전남 드래곤즈 창단 이전까지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1994년 총 15경기 정규리그 홈경기 중 5경나 홈경기를 치른 포항 스틸러스나, 1996년도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시행 이후에도 2002년 월드컵으로 경기장 인프라가 완비되기까지 대부분의 구단들이 치른 수많은 중립경기들이 있으니 그러면 전부 무연고팀이거나 해당 연고지팀이 아닌것인가? 심지어 부천 SK는 무려 5시즌에 걸친 목동 운동장 신세로 '''목천'''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6] 물론 여기에서도 히딩크를 선임하자는 여론은 없지 않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칫하다간 브루스 아레나꼴 난다며, 그냥 2002년의 레전드로 남기는게 낫다고 하는게 주 여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