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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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LG 트윈스 소속의 내야수.
개명 전 이름은 '''김남석'''(金南碩)이나 2012 시즌을 앞두고 2011시즌에 입었던 부상에서 이겨내기 위해 어머니가 직접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인 '재율'로 개명하였다.
2. 선수 경력
광주일고 재학시절 2007년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에 7라운드에 지명받았지만 거부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였다.[5] 대학 재학시절 2011년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에 5라운드에 지명되어 입단하였으나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186cm에 95Kg의 당당한 체격의 거포형 유망주로서 한방 능력을 가지고 있다. 2011시즌 초반에는 주로 2군에서 4번타자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퓨처스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었다. [6]
퓨처스리그 올스타전 MVP를 왜 기용 안하냐는 팬들의 바람 덕분인지 7월 21일 데뷔후 첫 1군 무대에 입성하였고 그 날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7] 내야수라는 점과 우타자가 적은 LG에서 그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높아졌고 박종훈 감독은 그에게 타격 잠재성이 있고 그를 꾸준히 기용할 것 이라고 말했지만 9월 15일 SK 와이번스전에서 김강민과 1루에서 충돌하여 무릎 인대가 파열, 시즌아웃 되어버렸다.
2012년 시즌이 기대되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여담이지만 KIA의 박성호와 함께 제4회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 멤버이기도 하다.
2.1. 2012년
무릎인대부상으로 시범경기 출장이 불투명할 것으로 보였으나 회복되었는지 시범경기에 나와서 매서운 장타력을 뽐냈다. LG 트윈스에서는 희소가치가 높은 우타 거포이니 만큼 계속 기회를 받을 것으로 보였다.
타석에서 그다지 신통치 못한 모습을 보이다가 5월 2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3:0으로 앞서던 1회말 2사 3루에서 '''류현진'''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8] 이 홈런이 이날 경기의 쐐기포가 되면서 LG는 6:2로 승리했고 김재율은 이날 4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타율이 1할이 안 되었다(타율 0.091).
그 후에도 1루와 3루를 커버할 수 있는 우타자라는 이점이 있어 계속 기회를 받았지만 타격 부진은 꾸준히 이어졌고 수비에서도 종종 에러성 플레이를 하면서 집중포화를 맞았다. 결국 2군행이 결정되었고 내야수 콜업 순위에서도 다소 밀린 상태.
2012시즌이 끝난 후 경찰청 야구단에 입대하였다.
2.2. 2013 ~ 2014년
경찰청에서 주장을 맡으며 괜찮은 활약을 하였다. 14시즌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였다.
2.3. 2015년
무난히 1군에 올라올거라 예상했지만… 그놈의 부상 때문에…[9] 6월 10일에이 돼서야 2군에서 첫 경기에 출장하였다. 하지만 2군 타율 2할 초반의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된다.
이대로 15시즌을 끝내는 줄 알았으나 10월 6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 뜬금없이 콜업되어''' 선발 1루수 7번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10] 하지만 3타석 0안타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8회 대타 임훈으로 교체되고 만다. 이 경기가 마지막 경기였던 관계로 김재율의 시즌 성적은 이 날 경기 기록. 즉 1경기 3타수 0안타 0볼넷 0출루. 타율.000 출루율 .000 장타율 .000
2.4. 2016년
시즌 내내 2군에서만 머물고 1군에는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2.5.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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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팀타선이 사멸해버린 5월 후반. 1군의 네 선수(유강남, 임훈, 정성훈, 이형종)가 2군으로 가고 대신 올라오게 되었다. 5월 30일 경기에서는 경기 후반 대타로 나와 삼진을 기록했으나 다음 날인 5월 31일 경기에선 1루수 7번타자로 출장하여 멀티히트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 하였다.
1군에 올라온 후 일주일간 18타석이지만 4할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4일 NC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첫 홈런이자 무려 1859일만의 홈런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팀이 역전패하면서 빛이 바랬다..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 후 부진에 빠지며 타율이 2할4푼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7월 12일 SK전에서는 경기 후반 대타로 투입되어 1타수 1홈런(시즌 2호) 1볼넷을 기록했다.
8월 6일 2군으로 내려갔지만 23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히메네스의 교체 선수로 1루수 제임스 로니가 오면서 기회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정작 그 로니는 도망가버리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9월 5일 잠실 기아전에서는 연장 10회말 3-3 2사 13루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쳐내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개인 통산 첫 끝내기 안타.)
9월 8일 넥센전에서 연장 10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서건창의 빠른 타구를 어마어마한 호수비로 다이렉트로 잡아내면서 팀의 승리를 확정지었다.
9월 9일 두산전에서 장원준과 10구까지 가는 혈전끝에 적시타를 쳐내면서 팀의 승리를 도왔다.
후반기 들어 극도의 부진에 빠진 양석환 대신 4번 타순에 들어가는 경기가 늘고 있다.
커리어 하이 기록과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냉정히 말해서 내년에도 1군에서 주전을 확정적으로 보장 받을 만한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특히 14홈런을 기록한 양석환과 2군에서 홈런왕을 차지한 윤대영 등 경쟁자들이 있기 때문에...). 비시즌 동안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즌 후 기존 2,900만 원의 연봉에서 134.5% 인상(팀 내 최고 인상률)된 6,800만 원의 연봉을 받게 되었다.
2.6. 2018년
시즌 초 주전경쟁에 실패해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게 18시즌 LG는 양석환과 김용의가 주전 1루 경쟁을 하면서 번갈아 나가고 있다. 심지어 가르시아의 부상으로 양석환이 3루로 가는 호재가 있었음에도 류중일 감독은 김현수를 1루수로 쓰고 대신 외야에 이천웅을 투입하는 선택을 하여 김재율은 완전히 찬밥신세가 돼버렸다. 김현수는 말할것도 없고, 양석환과 김용의도 타격을 그럭저럭해주는 상황이어서 출장각이 보이지 않는다.
5월 3일 윤대영이 말소되고 올 시즌 처음으로 1군으로 콜업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5월 4일 8번 1루수로 선발 출장하게 되었다. 이 날 경기에서는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5월 7일 2군으로 내려갔다.
6월 7일 한달만에 1군으로 오기는 했지만 2타석동안 삼진을 연속해서 먹으면서 1군용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상대편 투수가 아예 대놓고 스트라이크만 3개를 던지는데도 못 친다.(...) 결국 해당 경기에서 출루 한 번 못하고 이천웅이랑 교체되었다.
6월 현재 경기 후반 대타나 1루수를 보고 있는 김현수의 백업 멤버 역할을 하고 있다. 6월 22일 롯데전에서는 오랜만에 선발로 출장해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7월 19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2일 두산과의 경기 전 1군으로 올라와 마지막 9회 초 대타로 나섰으나 시원하게 삼진을 당하며 게임 끝. (1루 주자였던 이천웅이 동시에 도루하다 도루자.)
2군에서 조차 2할도 못치고 삽질하던 중 1군에 올라와서 두산전 13연패의 방점을 찍었다.
8월 5일 SK전에 김용의의 대타로 나와서 1타점 2루타를 기록, 채은성의 안타 때 홈에 들어왔다. 그러나 팀은 12:3으로 패배..
8월 11일 다시 1군으로 내려갔다. 아도니스 가르시아가 부상으로 제대로 엔트리에 들지 못하는 상황이라 1루수와 3루수 자리에 공백이 생겨 해당 포지션인 김재율 입장에서는 주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이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8월 14일 화성과의 경기에서 1회 수비 도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쓰러져 앰뷸런스로 이송되었다. 시즌후 2019년 김재율의 인터뷰에 따르면 수비도중 동료와 콜 플레이가 제대로 안돼 정면충돌했고 갈비뼈 4개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터졌다고 한다. 아 안습...덕분에 시즌을 망친 원인이 되었다고.
2.7. 2019년
양석환의 군입대와 1루수 토미 조셉 영입으로 완전히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주전 3루수 후보 1순위에 올랐지만 스토브리그 막바지에 결국 김민성이 LG로 오게 되면서 주전 자리를 잡기엔 힘들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백업 자리조차 2차 캠프 막판에 또 옆구리를 삐끗해서 부상을 당하면서 물건너 가게 생겼다. 역시 쿠크다스...
4월 24일 드디어 퓨처스에 합류해서 일단 사이버 세계의 링크를 빠져나오긴 했다.
6월 15일 시즌 첫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으며, 선발 3루수로 출장하였다.
타격과 수비 모두 부진하며 20일 다시 말소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받은 1군 기회였다.
10월 23일 은퇴 의사를 밝힌 서상우를 포함해 장원삼, 이나현, 양원혁, 장시윤, 김태영과 함께 방출되었다. #
3. 은퇴
방출된 후인 2020년 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이후로는 지도자 과정을 준비 중이다.
현재는 김성배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타격코치로 재임중이다.#
부산광역시에 살다가 광주광역시로 야구 유학을 가서 그런지 동남 방언 베이스에 서남 방언이 묘하게 섞인 말투를 사용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 은근히 부상을 자주 당하는 유리몸 기질이 있다. 물론 경기중 상대 선수와 충돌사고로 그리 된 경우가 많지만 하필 부상을 당하는 시점이 슬슬 치고 올라오려는 시점에 당하는것들이라 기가막힌 타이밍에 잘 부상당한다. 더불어 수비도중 동료선수와 자주 부딪히는걸 보면 콜플레이 미숙과 집중력 부족도 한몫하는듯 하며 거대한 체구에 와꾸만 보면 강철몸일거 같은데 부딪히기만 하면 인대부상에 뼈가 부러져대니 롯데 자이언츠의 안중열 처럼 겉모습에 비해 내용물이 부실한것일지도(...) 데뷔 초기에 큰 부상때문에 부모의 권유로 김남석 → 김재율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한 일화도 있다. 문제는 개명 후에도 세번이나 부상으로 발목 잡히니...
- 결국 이런 계속된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2019년을 끝으로 은퇴하고 만다.
- 스톡킹에서 나와서 밝힌 바로는 유강남의 사인을 많이 해줬다고 한다. 경기 끝나고 나오면 유강남이다!!! 하면서 오신 팬분들이 나름 있었다고.
[1] 2012년에 김남석에서 개명했다.[2] 체육교육학과 07학번.[3] 지명 거부 후 대학 진학[4] 무적LG 김~재~율~ 워워워워 워워워워워~ LG의 김~재~율~ 워워워워 워워워워~ 7병규의 응원가였다. 그러나 7병규가 17시즌에 별로 출장도 하지 않았고 응원가 자체도 시즌 후반에 나와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5] 대학 시절에는 최고의 클린업 중 한명으로써 강한 파워와 뛰어난 선구안,스타기질까지 있어 고대 여대생들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심지어 연대생들도 좋아했다고.. 2020년 5월 MBC SPORTS 스톡킹에서 대학 캠퍼스 낭만때문에 대학교에 진학했다고 언급을 했다. [6] 참고로 1군 리그 올스타전 MVP는 이병규가 선정되었기 때문에 2011년 올스타 MVP는 모두 LG.[7] 이 날 경기는 심수창이 트레이드 전 17연패를 달성한 경기다. [8] 데뷔 첫 홈런[9] 베이스를 밟다가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10] 대부분의 젊은 선수들이 미야자키 교육리그로 가게 되어 그 공백을 메꾸러 올라온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