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

 






김강민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7
2008
2010
2018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



KBO 포스트시즌
2018 플레이오프 MVP



{{{#fff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37번}}}

(2000)

김강민
(2001~2002)


박주언
(2003)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0번}}}
송재익
(2001)

김강민
(2003~)


현역


<colbgcolor=#ff0000><colcolor=#fff> SK 와이번스 No.0
김강민
金江珉 / Kim Kangmin

생년월일
1982년 9월 13일 (41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image]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체
182cm, 87kg
학력
대구본리초 - 대구중 - [image] 경북고
포지션
외야수[1], 2루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2차 2라운드 (전체 18번, SK)
소속팀
[image] [image] [image] SK 와이번스 (2001~)
등장곡
러브홀릭스 - Butterfly
응원가
O Sole Mio[3][4]
이전 응원곡
[ 펼치기 · 접기 ]
더 킬러스 - Spaceman[29] EXO - 으르렁[30][31]

병역
예술체육요원[5]
에이전트

연봉
2억원 (42.9%↓, 2021년)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4회 (2007, 2008, 2010, 2018)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0)
플레이오프 MVP (2018)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SK 와이번스 소속 외야수[6]이자 SK 와이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7] 2021년 기준 세는나이 40세로 SK 현역 야수 중 최고령 선수였으나 김강민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난 7월생 추신수가 입단하면서 최고령 야수 타이틀은 벗게 됐다.[8]
이택근, 이용규, 이종욱과 함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KBO 리그를 대표한 중견수로 꼽힌다.[9][10]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 강한 어깨와 주자를 속일 수 있는 테크닉까지 외야수로서 수비면에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 현역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한국 최고의 외야수비[11]로 뽑혔다. 40살이 되어도 외야 수비에서 틈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리그 상위권의 수비를 보여주기에 타격이 저조하더라도 여전히 쓰임새가 좋아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종종 정수빈, 박해민이 김강민보다 수비면에서 낫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는데 불혹의 나이에도 이 둘과 여전히 경쟁할 수 있는 수비력을 보이기에 앞의 두 선수가 커리어가 끝났을 때 비교가 가능할 듯 하다. 그 수비 잘한다는 박해민은 자신보다 수비 잘하는 외야수이자 롤모델로 김강민을 뽑을 정도. 김강민 수비에 대한 비유 중 하나가 "나성범 어깨에 박해민 수비범위"
가장 대표되는 중견수로써 장점은 타구판단이다.[12]선수 본인과 감독들의 인터뷰에서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타구판단의 속도와 정확성을 남다른 장점으로 말하였으며, 호수비 영상을 보면 타격 순간에 판단을 마치고 낙구 지점까지 뛰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이고, 이러한 이유로 다른 선수들이라면 놓치거나 다이빙 캐치로 어렵게 잡을만한 타구를 여유롭게 잡아버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13] 또한 이러한 점 때문에 팬스 근처로 깊게 날아오는 타구를 등뒤로 쫓는 경우에 강점이 있다.
얕은 코스나 외야 좌우에서 벤트레그 슬라이딩 캐치 또한 안정적이며 여유로운 모습이고, 헤드 퍼스트 다이빙 캐치 타이밍 역시 실력이 좋다.
김강민 역시 발이 빠른편에 속하지만 같이 뛰었던 당시 중견수들은 소위 육상부라는 별명이 붙는 발이 매우 빠른 선수들이 많았다.[14] 이러한 선수들과의 비교했을 때 뛰어난 타구판단과 슬라이딩을 바탕으로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 했으며, 수비에서는 늘 최고자리를 다퉜다.[15]
게다가 투수 출신이라서 어깨가 매우 좋은 편이다. 외야에서 홈까지 거리도 노바운드로 쏴버리는 강한 어깨는 송구가 정확히 들어오면 발빠른 주자도 끔살당하기 때문에 주자 억제력이 높은 편이다.
타격에 대해서는 1군 진입 초기부터 주로 하위타선을 맡았고 크게 두드러지는 활약은 없었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2할7푼~3할대의 타격, 20도루가 가능한 도루능력과 10홈런을 넘기는 장타력을 보이며 쏠쏠한 활약을 하는 중장거리 타자로 변모했다.[16] 가장 유명한 장면이 2018년 플레이오프에서 동점 홈런.
세부적으로 보면 통산 wrc+가 98~100 사이에 있는 리그 평균 급의 생산력을 보인 선수로 소위 리그 중상위급의 생산성이라고 할 수 있는 115이상의 wrc+를 4차례 기록하기도 하였다. 타격이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크게 떨어지지도 않으며 훌륭한 수비력을 가졌기에 좋은 선수로 평가되는 것. 크보판 케빈 키어마이어로 평할 수도 있겠다.
2군에 오래 머물렀고 주전자리를 꿰차는 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1군 진입하기를 대수비로 시작하여 장점을 잘 유지하고 타격까지 꽃피면서 수비와 타격 모두 좋은 야수로 발전해 나갔고 꾸준한 쓰임새를 보이며 결과적으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의 위치까지 성장했다.
빼어난 수비와 평타 수준의 타격에 가려진 단점도 있다. 비슷한 시기 주전으로 올라선 조동화번트에 대해서는 장인 소리를 듣는 반면 김강민의 번트 실력만큼은 매우 심하게 안 좋다. 덕택에 팬들은 김강민의 번트 모션을 볼 때마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공포감을 느낀다. 2009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번트로 내야안타를 만들어 냈지만 번트 기술이 아닌 빠른 발을 이용한 안타라서 아직 번트가 미숙하다는 건 사실. 번트 파울플라이를 만든다거나, 2012년에는 자신이 댄 번트 타구에 얼굴을 맞는다거나(5월 4일 롯데전), 번트를 잘못대서 병살될 것 같으니까 일부러 공을 헤딩해서 혼자만 아웃당하고(9월 26일 넥센전) 마는(…) 어이없는 플레이도 했다. 그 경기 이후 네이버에선 김강민 천재논란(?)이 일어났다. 어찌됐든 순발력이 빛난 영리한 플레이.[17]

4. 여담


  • 별명은 인간을 넘어선 짐승같은 플레이라는 의미의 짐승강민, 짐강민, 김짐승이라 주로 불린다.[18] 참고로 이 문서는 짐승강민으로 리다이렉트 된다. 그런 탓에 못하면 별명이 가축이나 지게강민으로 바뀐다.[19] 18~19시즌에는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펼치면서 틀딱이 미래, 줄여서 이미래 내지는 미래형이라는 별명도 생겼는데 공교롭게도 이미래는 SK의 치어리더 이름이기도 하다. 이를 넘어 이젠 아예 프로 데뷔 년도인 2001년을 2001년생으로 바꿔 고졸 신인 취급하며 아가강민(...)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 아무래도 출신지가 대구광역시라 그런지 인터뷰 중간중간에 살짝씩 동남 방언 억양이 들리는 편이다. 그래도 다른 영남권 지역 출신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억양이 막 도드라지게 나오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입단 초기보다 서울말이 많이 늘기도 했고.
  • 사진이 취미여서 소싯적 인하대학교 앞 사진관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지역에서 신인시절 자취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20] 그 사진을 보고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거침없이 하이킥개성댁을 닮았다고도 한다(...). 김강민 3종세트 개성댁 합성 심지어 이 사진은 후에 2016년 엠스플에서 야구 중계때 공개되기도 했는데 당시 중계를 하던 한명재허구연은 처음에 공개된 사진을 보고 웃기는 커녕 진지하게 "오.. 정말 잘생겼네요. 미남입니다." 이러고 넘어가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이수나와 합성한 사진을 보고서야 웃었다.
  • 호타준족으로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동시에 할수 있는 타자지만, 부상 이후에 도루 개수가 줄었다. 물론 중견수로 계속 출장할 수 있을 정도로 수비능력은 여전하고 스피드 자체는 괜찮다. 37살에 시즌 절반을 결장했는데도 10개는 채우는 걸 보면 유지는 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초창기에 적었던 장타능력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것으로 보인다.[21]
  • 고교야구 시절,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주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선수들이 단체로 김강민을 피해 탈출한 적이 있을 정도.[22] 현재는 군기반장 보단 그냥 장난치는 동네형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그 모습 어디가진 않았는지 종종 팀이 안 좋다 싶으면 표정이 살벌하게 바뀐다.
  • 은근 유리몸 기질이 있어 전 경기 출장은커녕 120경기 이상 출장이 2007년, 2012년, 2019년, 2020년 네 번 뿐이다. 전성기가 지난 2019~20년 연속으로 120경기 이상 출전하는 것이 아이러니.
  • 양현종 킬러다. 통산 71타수 24안타로 극강의 모습.
  • 본래 굉장히 풍성했지만 2017년 기점으로 탈모에 시달리는지 예전보다 머리숱이 적다.
  • 입단을 투수로 했었고, 신인시절에는 2루수로만 출장을 하다가 외야수로 전향한지라 가끔 나오는 실책 아닌 실책은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게 대부분이라 수비를 못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았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image]
저쪽 홈플레이트 너머 지정석 그물망까지 간다든가
[image]
[image]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땅바닥에 패대기 친다든가 하는 식.[23][24] 하지만 이런 약점마저도 외야 수비에 능숙해진 후로는 없어졌으며, 현재 나이 40이 먹었는데도 SK 내에서 김강민의 수비력을 능가하는 중견수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 외모가 준수한 편이라 나름 얼빠들도 꽤 끌어모은 편.
  • 2019년 기준 SK 선수단 내에서 하나의 등번호를 가장 오래 쓰고 있는 선수이다. 신인 시절이었던 2001년~2002년에 37번을 달았다가 2003년부터 0번으로 등번호가 바뀌었는데, 이 0번을 2003년부터 단 1차례의 변경도 없이 계속 쓰고 있기 때문이다.[25] 그래서인지 차기 영구결번감으로 가끔씩 거론되기도 한다.[26][27][28]
  • 2019년, 과거 벤치클리어링 상대였던 류제국이 사생활 논란으로 야구계를 떠나자 네이버 등지에서 벤치클리어링 재평가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 롯데 자이언츠팬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선수 중 하나다. 이유는 너무 잘 해서... 통산 롯데전 OPS는 본인 통산 성적과 큰 차이 없는데, 사직구장에서 OPS가 .9를 넘는다. 그리고 김강민 플레이스타일 상 타석에서 못쳐도 수비로 조지든가 주루로 조지든가 하기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 자주 거론되며 댓글에는 제발 은퇴해달라는 댓글이 다수. SK팬들만큼 열심히 박수 쳐줄테니까 은퇴식은 롯데전에서 하라는 글이 꼴갤 개념글을 먹기도 했다(...). 기사로도 나왔다. 최근엔 원망의 경지를 넘어 미운정이 들었는지 꼴갤에선 김강민 은퇴식은 사직구장에서 치뤄야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박용택은 은퇴투어를 해야한다.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오갔을때도 박용택은 몰라도 김강민은 은퇴투어 해줄테니 제발 은퇴해달라는(...) 농담도 있었다.
  • SK와이번스 유튜브의 하루강민 영상에서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내야수였다고 한다. 외야 한자리에 구멍이 생겨 급작스럽게 외야수로 경기를 나가게 됐는데 그 경기에 다이빙캐치와 보살에 성공해 (...) 계속 외야에 있게 되었다고.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1
SK
1군 기록 없음
2002
1
0
.000
0
0
0
0
0
0
0
0
0
.000
.000
-
2003
2
4
.500
2
0
0
0
1
0
0
0
1
.500
.500
192.0
2004
23
25
.120
3
1
0
1
2
4
2
3
7
.214
.280
18.9
2005
23
40
.225
9
1
0
0
3
6
2
4
9
.259
.250
37.8
연도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6
96
145
.276
40
9
1
1
14
20
8
15
30
.342
.372
103.3
2007
124
334
.243
81
10
3
4
18
51
19
34
57
.312
.326
78.6
2008
106
258
.271
70
16
3
3
32
38
16
32
46
.352
.391
107.5
2009
104
341
.267
91
18
3
12
42
48
10
29
67
.323
.443
86.4
2010
115
401
.317
127
19
2
10
72
74
23
35
51
.369
.449
115.3
2011
80
281
.281
79
14
1
8
33
37
9
22
56
.331
.423
105.0
2012
123
427
.272
116
20
0
5
31
49
11
33
72
.354
.422
92.6
2013
105
352
.301
106
22
3
10
55
39
10
40
54
.370
.466
127.0
2014
113
430
.302
130
29
3
16
82
86
32
47
91
.368
.495
117.3
2015
96
293
.246
72
17
0
4
31
43
7
30
83
.315
.345
72.9
2016
115
366
.298
109
21
0
10
47
59
12
44
89
.371
.437
100.7
2017
88
183
.219
40
5
1
5
18
31
10
20
50
.296
.339
61.2
2018
80
235
.298
70
14
0
14
46
40
10
27
57
.370
.536
119.1
2019
127
422
.270
114
14
2
8
50
54
15
35
103
.324
.370
90.9
2020
122
327
.253
73
11
1
12
45
39
7
27
62
.323
.422
87.7
<color=#373a3c> KBO 통산
(19시즌)
1643
5419
.276
1332
241
23
123
622
718
203
410
985
.340
.412
98.2

6. 관련 문서


[1] 주 포지션은 중견수. 2006시즌에는 좌익수로 뛰었었고, 2017시즌 노수광의 합류로 인해 우익수로 뛰기도 했었다.[2] 통산 49경기 출장. 입단 당시에는 투수로 지명받아 입단했지만 내야수로 전향했었다. 2005시즌까지 2루수로 뛰다가 외야수로 다시 전향.[3]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오오오오~ 김강민~ 오오오오~ 짐승 강민~ 오 김강민~[4] 원곡버진 가사가 Ma n'a-tu so-le chiu bel-lo ohi-ne' 'o so-le mi-o sta-nfron-teate 'o so - - le'o so-le mi-o sta-nfron-tea te sta-nfron-tea te x2[5]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6] 주 포지션은 중견수이다.[7] 2001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1년째 현역으로 뛴 덕에 SK 와이번스의 역대 유니폼 중에서 창단 유니폼이었던 줄무늬 유니폼을 빼고는 다 입어봤다. 그야말로 SK 와이번스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8] 2021년 선수단 전체를 통틀어 현역 최고령 선수는 1982년 3월생인 투수 신재웅.[9] 팀 커리어는 4명중에 제일 낫지만 이들에 비해 2군 생활을 오래했고 주전으로 발돋음 하기까지도 기간이 꽤 길었기에 통산 기록이 가장 떨어진다. 다만 중견수 수비가 궤도에 오른 후론 항상 수비 잘하는 선수로 거론 되어왔고 타격도 2010년을 기점으로 성장하여 종합적으로 봤을때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하였기에 한 시기를 대표하는 중견수 그룹으로 묶이기에 부족함은 없다.[10]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언급된 셋은 2000년대 중반부터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김강민은 후발 주자로 2010년부터 그런 별칭을 얻었다.[11] 외야수 중 최고 수비력를 놓고 경쟁구도를 펼쳤던 이우민이종욱이 타격부진이나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거나 나이가 들면서 수비력이 쇠퇴하는 반면, 김강민은 궤도에 오른 이후론 수비력을 꾸준히 유지했다.[12] 라면수비.좋은 타구판단을 뽐낸 레전드 선수 이순철, 이병규와 비슷한 수비 스타일. 박해민 또한 새로운 계보[13] 이것 때문에 김강민의 수비가 화려함이 부족해서 의외로 저평가 받는다.[14] 이종욱, 이용규, 이대형 에서부터 박건우, 박해민까지 쟁쟁하다.[15] 16년에도 중견수 수비로 유명한 박해민이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중견수로 뽑았다.[16]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갖다 맞히는 능력은 적절하지만 월별 기복이 있는 스타일이다. 장타력은 어느 정도 한방이 있는 수준은 된다.[17] 어쩌면 진짜 천재일지도 모르는게 이때 병살을 막기위해 헤딩을 했고, 결과적으로 그 이닝에서 2점 선취득점을 올릴수 있었다. [18] 만화가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늑대인간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된다.[19] 그런데 모 기자가 별명의 유래에 대해 물었다가 썩 좋은 뜻이 아님을 알고 사과했다(...).[20] 김강민은 인천 출신이 아니니 당연히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문학구장에서 멀지도 않은 같은 인천미추홀구(과거의 남구)였던 데다가 구장까지 넓은 도로로 운전해서 갈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나, 사실 2군 활동을 주로 했던 그의 입장에서는 당시 2군 경기장인 용현동 2군경기장이 걸어서 가려면 갈만큼 상당히 가까웠고 인천에서 자취하는 사람들도 많은 대표적 지역 중 하나가 인하대 근처(정확히 당시는 후문쪽, 현재는 정문쪽도 개발되어 있다)라 그 곳에서 자취하기로 했던 듯하다. 사실 박재상, 박정권 등 동료들과도 왕조 시작 시기까지 그 동네에서 살면서 어울렸었다. 셋다 과거 추억하면 용현동 학익동 얘기를 꺼낸다. 2군구장이 강화도에 있는 현재는 강화도 하숙집이나 빌라 등에서 자취를 하는 선수들이 많다.[21] 물론 최정은 몸을 거의 100kg까지 더 불리면서 확연하게 스피드가 줄어들었다.[22] 2016년 1월 13일 라디오볼에서 언급.[23] 심지어 패대기 송구는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으로 했다.[24] 이게 일종의 습관성일수도 있는데 일본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카네모토 토모아키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주전 꿰차기 전부터 주전되고 나서 무시무시한 타격으로 각성했을 때에도 수비할 때 저런 정줄놓는 송구와 패대기 송구를 해대서 경기 끝나고 감독에게 매번 살인펑고를 받으면서 수비연습을 했다고 한다.[25] 게다가 김강민은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를 받았기 때문에 군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 적도 없었다.[26] SK 와이번스 현역 중 가장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로는 최정이 있다. 무슨 일이 있지 않는 이상 100% 확정. 세인트루이스로 떠난 김광현 역시 팀에서의 상징성으로 치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선수시절의 황혼기에 복귀했을시 영구 결번 확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정이나 김광현이나 아직 30대 초중반의 나이이기 때문에 은퇴까지의 시기는 꽤 먼 편이기에 그나마 그 전에 영구결번이 생긴다면 현재로선 김강민이 가장 유력하다. 김강민은 둘에 비하면 기록적인 면은 좀 떨어지긴 해도 원 클럽 플레이어이고 팀에 기여한 부분도 많으며 공격적인 스탯은 떨어져도 수비부분은 매우 좋기 때문에 영구결번의 확률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SK엔 창단한지 20년이 되었음에도 영구결번이 단 한명 존재하고 애초에 KBO 구단들이 영구결번을 주는 사례가 굉장히 적다는걸 생각하면 확률이 높진 않다.[27] 그래도 영구결번은 명예의 전당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 만큼 팀 내 상징성 등으로 보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같은 팀 내 투수 박희수가 종종 영결로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28] 여담으로 0번을 쓴 이유는 남는 번호가 없어서 단 거라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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