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
1. 소개
前 KIA 타이거즈 야구선수. 해태 타이거즈에서 KIA 타이거즈로 팀 이름이 바뀐 이후 신인 1차 지명을 투수만 선택하던 전통을 깨버린 야수 유망주였다. 그만큼 김주형의 능력과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4] 하지만 선수생활 15년 동안 '''끝끝내 터지지 않은 유망주'''. 박병호의 완벽한 안티테제다.
KBO 리그 역대 선수들 중 2000타석 이상 누적 WAR이 '''뒤에서 2위'''. 심지어 플러스도 아니고 '''-0.54'''. 참고로 1위 자리는 허준이다.[5]
2. 선수 경력
3. 프로 은퇴
방출당한 후의 근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2020년 창단한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아마야구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관계로 정식 코치로 등록되지는 않았다.
4. 연예인 야구단 입단
2020년 5월 연예인 야구단 크루세이더스에 입단한 것이 알려졌다. 코치로 일하면서 사회인 야구 선수로도 활동하는 듯.
5. 플레이 스타일
KBO에 등록된 프로필 기준으로 185cm, 93kg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타고난 유연성을 지닌 선수였다. 어쩌면 이 신체 조건 때문에 KIA에 있던 수많은 코치, 감독들이 어떻게든 써먹어 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2016년 빼고는 타격에서 딱히 유의미한 기록을 남긴게 없어서 이렇다고 말 할 특징이나 장점은 없지만 그나마 코너 내야 수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나마.'''
사실 좋다고 평가 받는 수비도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수비가 아니라, 위에서 말한 본인 특유의 신체 조건으로 때우는 거친 수비를 하는 야수다. 수비 범위가 넓지 못한 걸 소위 몸으로 메우는 타입의 선수라 외야 수비는 썩 좋지 않은 편이며 행여 유격수라도 맡게 되는 경기는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린다.[6] 그래도 몸으로 때우기는 또 잘 때우는 등 보기와는 달리 몸이 상당히 유연하다. 간혹 3루수로 출전할 때는 파울라인으로 붙어서 오는 타구를 부드러운 자세로 잡아서 좋은 송구로 땅볼 수비를 하는 경우나, 1루수로 출전 시 다리를 쫙 벌려서 잡아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2루나 외야 수비도 가능할 정도. 실제로 유튜브 등에서 호수비 모음집 동영상들을 보면 1, 3루에서 어려운 타구를 낚아채는 김주형의 호수비 (!!) 장면을 의외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런 능력 덕분. 물론 가끔 보여주는 호수비 몇개가 14년간의 문제를 덮어줄 순 없는 일인지라.
여담으로 알루미늄 배트 마지막 세대였다.[7]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일본의 상당수 거포 유망주들처럼 알루미늄 배트 덕분에 실력보다 더 장타로 주목받은게 아닌가 하기도 한다.[8]
6. 여담
도플갱어가 있다.[9]
디시인사이드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짐짝, 짐주형이라고 불린다. 때문에 이 문서는 '짐주형'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 잦은 에러와 형편없기 그지없는 타격으로 팀에 짐과 같다고 붙여진 별명. 이 별명이 널리 퍼져 이제는 디시인사이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KIA 타이거즈 전담기자인 김여울의 블로그에 따르면 김주형 본인도 짐짝이라는 별명을 안다고 한다.
얼마나 유명한지 네이버 검색창에 '짐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짐주형'이 뜬다.
2011년 이후로 그의 별명은 '''지미'''로 낙찰되었다. 파울만 잘 친다고 하여 '지미 파울러' 라는 뭔가 그럴듯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잘할 때에는 짐금님, 지미 소사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김주형의 타율이 바닥을 치면서 기아갤에선 지미라고 부르기도 싫다며 거의 욕설로 대신하기도 했다. 2017년에 이르러서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생긴다고. 아마도 KIA 타이거즈 역사상 야구 외적으로 아무 잘못없이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선수일 것이다.
2018년 들어서는 별명인 ''''짐짝''''이란 단어도 불러주기 싫은지 KIA 팬들은 '그 화물' 이란 단어로 부르고 있다. 또한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 처리해야 한다는 드립이 종종 나오고 있다. 훗날 김주형이 팀을 떠난 후 이 번호를 받는 다른 선수는 뭔 죄냐며.[10]
최훈 카툰에서는 때때로 짐(MS)로 그려진다.[11]
헨리 소사에게 이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작 소사는 33번 선수라며 기억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수비 포지션에 입단 동기인 박석민과 많이 비교가 되기도 하는데, 두 선수 다 초고교급 타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결과는 근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로 인해 지금의 격차가 벌어졌다는 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은근히 금강불괴인데, 그래서 더 까인다. 야구도 못하는 야구선수 주제에 안 다쳐서 오히려 팀에 해만 끼친다고. 하지만 생각 외로 잔부상도 있는 편이라서 정작 필요할 때 부상으로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2015년 12월에 품절남이 되었고, 그 해 9월 득남하였다.
팬 서비스 안 좋기로 유명한 기아 타이거즈 내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별로 안좋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어느정도 감안해야하는 것도 있는데, 김주형 본인이 실력이 개판이라 경기를 말아먹은적도 많고 말아먹을 뻔한 적도 많아서 팬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프로가 팬을 두려워 하는 지경까지 다다랐다.[12] 그러나 김주형이 2019 시즌에 방출됐기에 기아 팬덤에서는 그딴 고민은 이제 더 안 하게 됐으니 기뻐하라는 비아냥으로 대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에 오타 타이시라는 김주형과 아주 비슷한 유형의 선수가 있다. 2명 다 1차 지명 출신의 고졸 우타 거포 내야수에[13] 등번호도 5번이며[14] , 큰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15] 2군만 거하게 폭격하고 1군 타석에서는 헛스윙만 하며 기회를 말아먹는 등 애증의 선수였다.[16] 허나 오타는 '''2017년 15홈런, 2018년 14홈런, 2019년 20홈런''' 등 맹타를 휘두르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반면[17] , 김주형은 2016년의 플루크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기대 이하의 모습만 보여주다가 방출당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18]
기아 타이거즈의 최원준이 이영민 타격상 출신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공,수에서 부진함을 보이자 김주형에 빗대 '최주형', '최짐짝'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아의 스카우터들의 얼마나 형편없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 기아 스카우터들은 1차 지명에서 곧 죽어도 투수픽 위주로만 고집하고 야수진을 1차 지명으로 뽑는것은 기피해왔는데, 가뭄에 콩 나듯 1차 지명에서 뽑았다는 야수진 자원인 김주형은 결국 실패한 픽이 되었기 때문이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1] 주로 1루수와 3루수를 맡는데 가끔씩 2루수도 본다. 2016 시즌에는 유격수까지 맡았다.[2] 2015년 7월 9일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익수로 출장했고, 2016년 6월 8일 경기에서 또 우익수로 나왔다. 2016년 9월 7일 우익수로 출전했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 기아의 김주형(김주형!) 힘차게 날려봐 화끈하게 (으쌰 으쌰 으쌰 으쌰~) 기아의 김주형 화이팅 (하나!둘!셋!넷!) 기아의 김주형(김주형!) 힘차게 날려봐 화끈하게 김~주형(화이팅!)[4] 2018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전까지 KIA 타이거즈의 유일한 1차 지명 타자였다. 2018년 1차 지명을 받은 선수는 김주형의 동성고 후배 한준수.[5] 허준은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였다. 통산 WAR은 -0.56.[6] 김주형을 포함해 유재신 등 단순 대수비 요원을 자꾸 유격수로 돌리려는 시도 때문에 터진 경기가 2017시즌만 해도 몇 번 있는지라 팬들은 김기태 감독이 유격수 수비를 너무 만만하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7] 고교야구가 알루미늄 배트에서 나무 배트로 전환한 것은 200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부터였다.[8] 사실 한국에서도 강혁 등의 이런 케이스로 꼽히는 선수들이 있다.[9] 공교롭게도 김주형과 최대성은 1985년생 동갑내기다. 김주형이 동성고 재학시절 부산고와 경기를 치르기 위해 부산을 찾았을 때 최대성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최대성의 어머니는 김주형을 보고 ‘아들과 똑같다’며 웃었다.[10] 한편 김주형이 방출된 뒤 KIA의 새 33번은 히어로즈 시절부터 아버지 유두열의 등번호를 달고 뛰었던 유재신에게 돌아갔지만 번호를 바꾼지 1년만에 방출됐고, 유재신이 방출된 후에는 김주형과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한 장영석에게 돌아갔다. 참고로 9번과 33번은 다른 팀에서 하나는 영구결번, 하나는 영구결번 예정자다.[11] 등번호가 틀렸다. 9번은 2012년까지 사용한 등번호이며 2013년 5월 23일 연타석 홈런을 친 당시에는 33번.[12] 단적인 예로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대수비로 나와 평범한 3루 방향으로 가는 번트 타구를 1루에 악송구를 하면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양현종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양현종이 세이브를 챙기며 KIA 타이거즈가 우승을 하자 양현종 덕분에 광주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할 정도. 그만큼 자신이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팬들에게 욕 먹는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2군에 박힌 지금 시점에선 함평에서 만나면 사인을 해준다고 한다.[13] 2008년 드래프트 1라운더 중 유일한 고졸 타자였다. 즉 당시 드래프트 고졸 타자 중 최대어. 심지어 앞 순서에서 소프트뱅크가 먼저 지명한 상태였으나 후순위로 지명한 요미우리가 추첨을 통해 교섭권을 얻어가면서 스틸픽까지 따냈을 정도의 유망주였다.[14] 오타 타이시는 원래는 마츠이 히데키의 55번을 받았다. 해당 번호는 마츠이가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준 영구결번 상태였는데 그것까지 깨고 신인이었던 오타에게 등번호를 준 것. 마침 김주형도 팀의 결번급 레전드인 홍현우의 5번을 물려받은 선수라 이 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다.[15]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순혈주의 특성상 오타 타이시는 터지기만 했으면 '''1군 감독 자리까지 보장'''되는 상황이었다.[16] 심지어 등장곡도 똑같이 본조비의 It's my life였다. 오타 타이시 등장 영상[17] 다만 공갈포 기질은 여전히 심해서 2019년에 타율 2할대 후반에 20홈런을 찍고도 OPS 7할 6푼을 기록하기도 했다.[18] 다만 오타는 본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기회를 받다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한 뒤에 포텐이 터진 것이고, 김주형은 KIA 한 팀에서만 원 클럽 맨으로 뛰면서 기회를 받다가 방출됐다는 차이점은 있다. 참고로 오타는 요미우리 시절 커리어 하이는 4홈런에 불과하다. 트레이드되기 전만 해도 오히려 김주형보다 못한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