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고 안의 용
'''The dragon in my garage'''
칼 세이건이 집필한 책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 등장하는 비유.
'내 차고 안의 용'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의 전반부를 꿰뚫는 하나의 명제로, 칼 세이건은 이 명제를 통해 현대에 만연한 심령술, 초심리현상, 점성술 등의 존재를 '건전한 회의론'적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역설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수많은 검증은 이러한 회의론을 위한 도구이자 회의론 그 자체인 것이다.
위의 내용이 담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현대에 만연한 음모론, 초능력 사기, 외계인론, 기술신화 등에 반박하고 과학적 사고에 기반을 두어 건전한 회의론으로 돌아갈 것을 설토하는 내용이며, 현대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기본이 되는 '건전한 회의론'을 역설한 책이다. 다만 번역본이 오역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이 있으므로 유의하도록 하자.
음모론이나 오컬트 등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다룬 비유이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음모론자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음모론이 진짜라는 증거가 없다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반대로 그게 가짜라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는 반박을 해 왔다. 이를 "파파기아니스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이론이 진짜라는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걸 거짓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1] 하지만 음모론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동일한 논리가 반대 방향으로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증거의 부재는 존재의 증거도 되지 않아 내 차고 안의 용을 믿으라는 주장과 똑같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내 차고 안에 용이 살고 있다는 주장은 결국 나의 독단을 증거 없이 믿으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진중권 교수는 신은 안 믿는 사람에겐 존재론적으로 수퍼맨, 아이언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허구에 불과하다며 성경을 들이대려거든 인간의 해석이 아니라 그분의 뜻임을 입증할 녹취를 따서 공증받아 오라고 했다. 결국 칼 세이건이나 진중권은 대놓고 '없다'고 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으나, 그렇다고 다른 과학 이론과 대등하게 취급하진 않고 드래곤이나 슈퍼맨과 같은 취급하며 사실상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2]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은 비이성적인 믿음을 경계하는 칼 세이건이 우려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국력을 긁어모아 부처의 힘을 빌어 고려를 지키겠다며 팔만대장경 건립에 쏟아부었는데, 그런 에너지를 아껴 민생이나 국방에 투자하는게 기회비용 면에서 더 나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부처의 힘이 무색하게도 초조대장경은 불타 없어졌다.(...) 그때라도 정신차렸으면 좋았으련만, 오히려 더 크고 아름다운 팔만대장경을 짓는데 엉뚱하게 국력을 쏟아부었다. 결국 불교의 고려는 멸망하고, 유교를 국교로 내세운 조선으로 바뀌었다. 현대 한국인들은 웅장한 팔만대장경을 보며 당시 국가를 지키려던 선조들의 정성에 감탄을 마지 않으나, 그런 '''애틋한 정성이 '헛고생(삽질)'으로 전락할 위험을 칼 세이건은 경고'''한 것이다.
칼 세이건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내가 분명 외계인 또는 신을 느끼고 있는데 그까짓 증거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한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자신의 생각이 그것을 끌어왔기 때문이라며 원하는 걸 상상하라는 "끌어당김 법칙"-더 시크릿 이라는 것까지 고안해낸다. 하지만 임신을 하는 상상을 하면 실제로 임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임신이 될 뿐이다. 원래 믿는대로 느껴지고 몸이 반응하므로 정신승리하면 온 몸에 승리의 전율과 쾌감이 느껴지지만 그냥 행복회로라고 비화될 정도로 자기합리화라는 방어기제에 의한 위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의처증에 걸릴 정도로 아내를 의심하면 정말 바람피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뇌내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망의 실현을 상상하는 심상화는 진통제처럼 정신적 고통은 가라앉혀주니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말까지 나왔다. 진통제를 남용하면 통증이 없으니 모든게 다 해결된 것 같지만 단지 느끼지만 못할 뿐이다. 일단 통증은 적어져서 고통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으며 현실도피에 불과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인데, 똑같은 상황임에도 단지 생각만으로 신체의 반응이 달라지는 현상을 산울림의 '회상' 가사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길을 걷다 무심코 그대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는 편안하다가 문득 이미 그대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자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고 마음은 얼고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 그 애인이 죽은 것이라면, 그래서 귀신이 내 옆에 있던 것 아니었냐고 생각한다면 계속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편안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영매사가 가장 크게 활동한 시기가 2차대전 이후라는데, 원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면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려버린 듯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미쳐버릴 수 있기에, 그냥 내 주변에 계속 맴돌고 있다고 믿고 싶은 심리를 영매사는 잘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 종교도 결국 마찬가지인데, 천국에 가서 잘 살고 있다고, 나중에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으면' 마음이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진통제나 '국뽕(인민의 아편)'도 때에 따라서는 요긴하게 필요할 때가 있긴 하여 도구적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냈고 긍정적인 역할도 있으나, 남용하면 부작용이 있고 '과유불급'이라고 광신적인 이슬람 국가들은 그런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2020년에도 프랑스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르쳤던 중학교 교사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이슬람인에게 참수당했는데, 그 광신도들은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자각이 없고 '정의실현'이라고 믿고 있다는데 모순이 있다. 심지어 이슬람 아버지가 직장 다니는 딸을 못마땅히 여겨 사람을 시켜 딸의 두 눈을 칼로 찔러 멀게 해버린 사건도 보도되었는데 이들은 다 자기 딴에는 '신의 믿음으로' 정의라고 믿고 그리한 것이다. 종교의 문제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과학'은 합리적인 토론으로 부작용을 개선할 수 있으나, 오직 '근거 없는 믿음'에 의존하는 광신도들로 가득차면 이들은 논리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하니 쪽수를 믿고 소수를 아예 '제거'해버린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었는데[3] , 북한에서 종교가 금지되자 최고존엄을 숭배하는 등[4] , 뭔가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고픈 인간의 본성이 왜곡돼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기에 현대 민주국가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세워, 믿음은 자유지만 정치 쪽에 개입은 하지 말라고 타협한 것이다. 철저히 정치나 법 등 국가 시스템을 움직이려면 '증거' 위주로만 작동하도록 방침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칼 세이건의 '내 차고 안의 용'이 등장하던 미국의 상황은 UFO, 초능력 등이 '신과학'이니 '뉴에이지'니 하는 포장지로 바뀌어 한창 뜨고 있었고, 기독교 근본주의가 진화론을 부정하며 과학 교과서에 창조설을 넣으려고 지속적으로 로비하는 등 또다시 종교가 커지며 개입을 시도했었다. 대중과학자인 칼 세이건은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계몽서적을 출간했고, '내 차고 안의 용'도 전혀 어려운 과학 용어 없이 쉽게 비유적으로 근거 없는 믿음의 모순을 설명해주었다.
칼 세이건은 '내 차고 안의 용'에 대한 현명한 접근법은 멀쩡한 사람들이 똑같이 이상한 망상을 공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개인의 망상은 정신병, 다수의 망상은 종교'라는 말과 유사하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아파트 아래층에서 자신을 욕한다는 주부의 피해망상이 멀쩡한 가족들에게 전염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5] 포레족의 식인 풍습은 영혼이 영원히 함께 한다는 믿음에 기인했으나 현실은 쿠루병에 걸렸으며, 다수가 천동설을 믿었던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믿음에 상관없이 지구는 돈다. 아무리 현실부정을 하고 집단망상을 해도 망상은 망상일 뿐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마을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자개 저택의 비밀 편에서 칼 세이건이 문제 제기한 '멀쩡한 사람들이 똑같이 이상한 망상을 공유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분석했다. 어머니야 피해망상이라고 쳐도, 문제는 멀쩡한 아들과 딸마저도 엄마의 피해망상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가 설명하길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더라도 백사람 이백사람이 이야기할수록 그 소문의 힘은 커지며''' 셋이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까 어머니를 해치려고 한다는 생각에 같이 몰입하게 되는 일종의 소규모 '군중심리'라고 한다. 특히 가족 간의 유대관계가 강할 수록 쉽게 일어난다고 하니, 하물며 다른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미신'을 믿고 자라면 세뇌될 수 있다.
또 어머니가 피해망상에 빠지게 된 계기로는 끔찍하게 살해당한 오빠에 대한 트라우마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끔찍한 개인 사건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힘드니까 거기에 어떤 배후세력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고, 자신도 오빠처럼 살해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느 순간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현세가 지옥이었던 시대에는 현실도피적으로 내세사상이 발전했었다. 일종의 '아편'과도 같은데, 환상의 천국에서 행복한 상상을 하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말이다. 인간은 '도구적 존재'인 만큼 필요하면 만들어내는데, 당시 천재지변 등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던 무력한 상황에서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종교나 신화 등을 만들어냈다.
내 차고안의 용이든, 신이든, UFO든 각자의 믿음을 존중하면 되지 왜 자꾸 증거를 요구하며 따지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황희 정승처럼 '이 사람도 맞고 저 사람도 맞다'고 하기엔 '꿈보다 해몽'이라고 믿음도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6] 설사 사후세계가 있다해도, 그게 기독교처럼 예수천국 불신지옥인지, 불교처럼 윤회설인지, 부처는 지옥에 있다는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 하는 문제도 있다.[7] 믿음에 빠져들면 자신만이 진리요, 정답이라는 독단에 빠져들게 되고, 객관적인 증거로 타인을 설득할 수 없으니 결국 '종교전쟁'처럼 불신자들을 '쪽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아예 제거해버리는 방법으로 가기에[8] 칼 세이건은 애초 증거가 없으면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다.
'망상'조차 계속 주변에서 듣다보면, 특히 가족이나 친구, 애인처럼 유대관계가 깊다면 괜히 반박해봐야 "나를 못믿는 거냐, 의심하는 거냐"며 불화만 생기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픔을 공감하는 차원에서라도 같이 믿어주기에 점차 사실로 받아들이며 물들어간다. 특히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춘다. 종교나 제사, 풍수지리 등에 푹빠진 부모에게 의심하는 말을 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혼쭐이 날 수도 있다. 반면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부모가 듣고싶은 말을 해주면 칭찬받으니 아이는 부모에게 동화되려 한다. 물론 마음은 여전히 갸우뚱한 부분이 있다 해도, 괜히 본인 마음만 불편하니까 그냥 본인 마음 편하려고 '몰라, 에이 맞겠지 뭐'라며 점차 믿어버린다. 아이들은 과학적 사고와 논리로 판단하려는 것보다, 부모에게 칭찬받고싶은 욕구가 강하므로 부모에게 '언어'를 모방하여 배우듯이 종교나 풍습, 미신 등도 모방하여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믿게 되면 숨을 쉬듯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개의 머리를 잘라 상 위에 올려놓으면 정말 끔찍하다고 여기겠으나, 돼지 머리를 잘라 상에 올려놓으면 제사를 지내는가보다 하고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 차고 안의 용'이 수록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는 한국의 제사 문화도 지적했다. 그래서 간혹 서평에 보면, 이것은 칼 세이건이 잘못 안 것 같다면서, '내 차고 안의 용'처럼 보이지 않는 조상의 혼을 믿는 게 아니라 단지 전통이라고 옹호하는 내용도 있다. 물론 그냥 단순 풍습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는 정말 조상신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TV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안 지내면 불행한 일이 닥친다고 진지하게 신봉하는 사람의 인터뷰도 나오고, 심지어 '풍수지리' 논문에는 조상의 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후손이 불행하다는 내용까지 발표된 적이 있다.[9] 헌데 기독교인들은 반대로 제사를 '우상숭배'라며 벌을 받을 것처럼 기피하니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교회에서 총기난사가 벌어져 예배갔다가 죽거나, 제사 지내려 일가친척이 모인 가운데 산사태로 인해 떼죽음 당한 사례도 있어 지극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복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제사를 통해 일가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여 정을 나눈다면 가치야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목적이 전도되어 심지어 제사문제로 다투다 살인 사건까지 나기도 한다. 2020년 추석에도 제사 문제로 사람이 죽었다.'''#제사가 뭐라고…추석 전날 매형 살해한 60대 남성 자백''' 왜 나만 하냐, 이러다 갈등이 생기고 칼부림까지 나는 건데, 제사를 일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약 입장 바꿔 본인이 설사 죽은 입장이라면, 걸신도 아니고 그깟 제삿밥 좀 먹겠다고 후손들에게 저렇게 부담을 안기면서까지 제삿밥에 집착할 가치가 있느냐는 것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꼰대들은 그런 '희생'을 당연시했으나, 젊은 세대일수록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툴툴대며 억지로 차려준 제삿밥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갈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사실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호화로운 천도제나 장례식을 보면 정작 죽은 사람들이 이런 행위로 덕을 받는지는 알 길이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내가 이만큼 해 줬다"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 소박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유서에 화장하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만 세워달라고 했고 실제로 그러길 원했을 것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다.
제사도 과거엔 보릿고개로 진수성찬에 한이 맺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죽었기에 제삿밥이라도 실컷 먹어보라고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주던 것이었지만, 다이어트에 한이 맺힌 현대 사회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음식도 딱 조선시대 사람들이 먹던 거라 최근엔 바나나, 피자부터 심지어는 치맥까지도 올린다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중국식 유교적 풍습이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유교의 잔재인 남녀차별 속성도 있어 여자가 다 차려야 하기에 남녀평등 시대엔 맞지도 않아 제사 문제로 불화가 생기는 가정이 많지만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지속되고 있다. 폐기 음식물이 사회 문제인 시대에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물 올려놨다 버리는 것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으나 '조상에 대한 정성'으로 강제하며, 만약 며느리가 "헛고생을 정성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냐?"는 반론이라도 했다간 쫓겨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 속으로 불만만 쌓고 있으면 화병에 걸릴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냥 본인 마음 편하기 위해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자기합리화를 통해 체념하여 수긍해버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남자라면 군대 가야 한다' 같은 말들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그걸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으며 "왜?"라는 질문은 금기시되었다. 종교에서 "왜?"라는 질문을 하면 "넌 시험에 들었다!"고 악마 취급을 받으니 합리적인 의문조차 제기할 수 없게끔 만들고, 마찬가지로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사람들 틈에서 타민족과도 평등하게 지내면 안 되냐고, 사람을 '민족'이 아닌 개인으로 판단하면 안 되냐는 질문을 하면 '매국노 반역자' 취급 받다보니 귀찮아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게 점차 상식처럼 굳어진다. 그래서 종교와 민족주의를 세뇌시키기 위한 가공된 역사는 프로파간다로 활용돼왔고, 실제로 게릴라전의 승패는 첨단 장비가 아닌, '''민족주의나 종교에 기반한 의지나 인내심'''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니 '''지도자의 이권'''에 의해 소모적으로 희생될 위험이 있다.[10]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배후중상설.
내 차고 안의 용은 일견 투명드래곤과 비슷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투명드래곤은 작중 묘사를 보았을 때 실제로 물리력을 발휘하여 상대에게 분명히 타격을 입히므로 실체의 증거가 명백한 존재이다. 마치 프레데터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주인공 일행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존재는 물론 동선까지 파악이 가능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공기나 전파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지만, 여러가지 객관적인 방법으로 존재를 입증 가능하므로 존재를 의심하는 아이에게 굳이 "넌 시험에 들었다!"거나 "믿음이 부족하다!"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내귀에 도청장치, 베리칩 음모론처럼 순수하게 '믿음'의 영역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내 차고 안의 용'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실체를 입증할 수 없다면 그 자체가 '없다는 증거'이다. 칼 세이건은 실체를 입증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게 정말 있다'라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을 '내 차고 안의 용'으로 비유한 것이다.
1. 개요
칼 세이건이 집필한 책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 등장하는 비유.
'내 차고 안의 용'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의 전반부를 꿰뚫는 하나의 명제로, 칼 세이건은 이 명제를 통해 현대에 만연한 심령술, 초심리현상, 점성술 등의 존재를 '건전한 회의론'적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역설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수많은 검증은 이러한 회의론을 위한 도구이자 회의론 그 자체인 것이다.
위의 내용이 담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현대에 만연한 음모론, 초능력 사기, 외계인론, 기술신화 등에 반박하고 과학적 사고에 기반을 두어 건전한 회의론으로 돌아갈 것을 설토하는 내용이며, 현대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기본이 되는 '건전한 회의론'을 역설한 책이다. 다만 번역본이 오역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이 있으므로 유의하도록 하자.
2. 내용
3. 상세
음모론이나 오컬트 등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다룬 비유이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음모론자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음모론이 진짜라는 증거가 없다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반대로 그게 가짜라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는 반박을 해 왔다. 이를 "파파기아니스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이론이 진짜라는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걸 거짓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1] 하지만 음모론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동일한 논리가 반대 방향으로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증거의 부재는 존재의 증거도 되지 않아 내 차고 안의 용을 믿으라는 주장과 똑같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내 차고 안에 용이 살고 있다는 주장은 결국 나의 독단을 증거 없이 믿으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진중권 교수는 신은 안 믿는 사람에겐 존재론적으로 수퍼맨, 아이언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허구에 불과하다며 성경을 들이대려거든 인간의 해석이 아니라 그분의 뜻임을 입증할 녹취를 따서 공증받아 오라고 했다. 결국 칼 세이건이나 진중권은 대놓고 '없다'고 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으나, 그렇다고 다른 과학 이론과 대등하게 취급하진 않고 드래곤이나 슈퍼맨과 같은 취급하며 사실상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2]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은 비이성적인 믿음을 경계하는 칼 세이건이 우려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국력을 긁어모아 부처의 힘을 빌어 고려를 지키겠다며 팔만대장경 건립에 쏟아부었는데, 그런 에너지를 아껴 민생이나 국방에 투자하는게 기회비용 면에서 더 나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부처의 힘이 무색하게도 초조대장경은 불타 없어졌다.(...) 그때라도 정신차렸으면 좋았으련만, 오히려 더 크고 아름다운 팔만대장경을 짓는데 엉뚱하게 국력을 쏟아부었다. 결국 불교의 고려는 멸망하고, 유교를 국교로 내세운 조선으로 바뀌었다. 현대 한국인들은 웅장한 팔만대장경을 보며 당시 국가를 지키려던 선조들의 정성에 감탄을 마지 않으나, 그런 '''애틋한 정성이 '헛고생(삽질)'으로 전락할 위험을 칼 세이건은 경고'''한 것이다.
칼 세이건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내가 분명 외계인 또는 신을 느끼고 있는데 그까짓 증거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한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자신의 생각이 그것을 끌어왔기 때문이라며 원하는 걸 상상하라는 "끌어당김 법칙"-더 시크릿 이라는 것까지 고안해낸다. 하지만 임신을 하는 상상을 하면 실제로 임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임신이 될 뿐이다. 원래 믿는대로 느껴지고 몸이 반응하므로 정신승리하면 온 몸에 승리의 전율과 쾌감이 느껴지지만 그냥 행복회로라고 비화될 정도로 자기합리화라는 방어기제에 의한 위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의처증에 걸릴 정도로 아내를 의심하면 정말 바람피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뇌내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망의 실현을 상상하는 심상화는 진통제처럼 정신적 고통은 가라앉혀주니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말까지 나왔다. 진통제를 남용하면 통증이 없으니 모든게 다 해결된 것 같지만 단지 느끼지만 못할 뿐이다. 일단 통증은 적어져서 고통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으며 현실도피에 불과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인데, 똑같은 상황임에도 단지 생각만으로 신체의 반응이 달라지는 현상을 산울림의 '회상' 가사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길을 걷다 무심코 그대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는 편안하다가 문득 이미 그대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자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고 마음은 얼고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 그 애인이 죽은 것이라면, 그래서 귀신이 내 옆에 있던 것 아니었냐고 생각한다면 계속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편안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영매사가 가장 크게 활동한 시기가 2차대전 이후라는데, 원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면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려버린 듯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미쳐버릴 수 있기에, 그냥 내 주변에 계속 맴돌고 있다고 믿고 싶은 심리를 영매사는 잘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 종교도 결국 마찬가지인데, 천국에 가서 잘 살고 있다고, 나중에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으면' 마음이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진통제나 '국뽕(인민의 아편)'도 때에 따라서는 요긴하게 필요할 때가 있긴 하여 도구적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냈고 긍정적인 역할도 있으나, 남용하면 부작용이 있고 '과유불급'이라고 광신적인 이슬람 국가들은 그런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2020년에도 프랑스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르쳤던 중학교 교사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이슬람인에게 참수당했는데, 그 광신도들은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자각이 없고 '정의실현'이라고 믿고 있다는데 모순이 있다. 심지어 이슬람 아버지가 직장 다니는 딸을 못마땅히 여겨 사람을 시켜 딸의 두 눈을 칼로 찔러 멀게 해버린 사건도 보도되었는데 이들은 다 자기 딴에는 '신의 믿음으로' 정의라고 믿고 그리한 것이다. 종교의 문제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과학'은 합리적인 토론으로 부작용을 개선할 수 있으나, 오직 '근거 없는 믿음'에 의존하는 광신도들로 가득차면 이들은 논리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하니 쪽수를 믿고 소수를 아예 '제거'해버린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었는데[3] , 북한에서 종교가 금지되자 최고존엄을 숭배하는 등[4] , 뭔가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고픈 인간의 본성이 왜곡돼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기에 현대 민주국가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세워, 믿음은 자유지만 정치 쪽에 개입은 하지 말라고 타협한 것이다. 철저히 정치나 법 등 국가 시스템을 움직이려면 '증거' 위주로만 작동하도록 방침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칼 세이건의 '내 차고 안의 용'이 등장하던 미국의 상황은 UFO, 초능력 등이 '신과학'이니 '뉴에이지'니 하는 포장지로 바뀌어 한창 뜨고 있었고, 기독교 근본주의가 진화론을 부정하며 과학 교과서에 창조설을 넣으려고 지속적으로 로비하는 등 또다시 종교가 커지며 개입을 시도했었다. 대중과학자인 칼 세이건은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계몽서적을 출간했고, '내 차고 안의 용'도 전혀 어려운 과학 용어 없이 쉽게 비유적으로 근거 없는 믿음의 모순을 설명해주었다.
칼 세이건은 '내 차고 안의 용'에 대한 현명한 접근법은 멀쩡한 사람들이 똑같이 이상한 망상을 공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개인의 망상은 정신병, 다수의 망상은 종교'라는 말과 유사하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아파트 아래층에서 자신을 욕한다는 주부의 피해망상이 멀쩡한 가족들에게 전염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5] 포레족의 식인 풍습은 영혼이 영원히 함께 한다는 믿음에 기인했으나 현실은 쿠루병에 걸렸으며, 다수가 천동설을 믿었던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믿음에 상관없이 지구는 돈다. 아무리 현실부정을 하고 집단망상을 해도 망상은 망상일 뿐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마을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자개 저택의 비밀 편에서 칼 세이건이 문제 제기한 '멀쩡한 사람들이 똑같이 이상한 망상을 공유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분석했다. 어머니야 피해망상이라고 쳐도, 문제는 멀쩡한 아들과 딸마저도 엄마의 피해망상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가 설명하길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더라도 백사람 이백사람이 이야기할수록 그 소문의 힘은 커지며''' 셋이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까 어머니를 해치려고 한다는 생각에 같이 몰입하게 되는 일종의 소규모 '군중심리'라고 한다. 특히 가족 간의 유대관계가 강할 수록 쉽게 일어난다고 하니, 하물며 다른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미신'을 믿고 자라면 세뇌될 수 있다.
또 어머니가 피해망상에 빠지게 된 계기로는 끔찍하게 살해당한 오빠에 대한 트라우마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끔찍한 개인 사건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힘드니까 거기에 어떤 배후세력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고, 자신도 오빠처럼 살해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느 순간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현세가 지옥이었던 시대에는 현실도피적으로 내세사상이 발전했었다. 일종의 '아편'과도 같은데, 환상의 천국에서 행복한 상상을 하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말이다. 인간은 '도구적 존재'인 만큼 필요하면 만들어내는데, 당시 천재지변 등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던 무력한 상황에서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종교나 신화 등을 만들어냈다.
내 차고안의 용이든, 신이든, UFO든 각자의 믿음을 존중하면 되지 왜 자꾸 증거를 요구하며 따지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황희 정승처럼 '이 사람도 맞고 저 사람도 맞다'고 하기엔 '꿈보다 해몽'이라고 믿음도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6] 설사 사후세계가 있다해도, 그게 기독교처럼 예수천국 불신지옥인지, 불교처럼 윤회설인지, 부처는 지옥에 있다는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 하는 문제도 있다.[7] 믿음에 빠져들면 자신만이 진리요, 정답이라는 독단에 빠져들게 되고, 객관적인 증거로 타인을 설득할 수 없으니 결국 '종교전쟁'처럼 불신자들을 '쪽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아예 제거해버리는 방법으로 가기에[8] 칼 세이건은 애초 증거가 없으면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다.
'망상'조차 계속 주변에서 듣다보면, 특히 가족이나 친구, 애인처럼 유대관계가 깊다면 괜히 반박해봐야 "나를 못믿는 거냐, 의심하는 거냐"며 불화만 생기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픔을 공감하는 차원에서라도 같이 믿어주기에 점차 사실로 받아들이며 물들어간다. 특히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춘다. 종교나 제사, 풍수지리 등에 푹빠진 부모에게 의심하는 말을 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혼쭐이 날 수도 있다. 반면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부모가 듣고싶은 말을 해주면 칭찬받으니 아이는 부모에게 동화되려 한다. 물론 마음은 여전히 갸우뚱한 부분이 있다 해도, 괜히 본인 마음만 불편하니까 그냥 본인 마음 편하려고 '몰라, 에이 맞겠지 뭐'라며 점차 믿어버린다. 아이들은 과학적 사고와 논리로 판단하려는 것보다, 부모에게 칭찬받고싶은 욕구가 강하므로 부모에게 '언어'를 모방하여 배우듯이 종교나 풍습, 미신 등도 모방하여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믿게 되면 숨을 쉬듯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개의 머리를 잘라 상 위에 올려놓으면 정말 끔찍하다고 여기겠으나, 돼지 머리를 잘라 상에 올려놓으면 제사를 지내는가보다 하고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 차고 안의 용'이 수록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는 한국의 제사 문화도 지적했다. 그래서 간혹 서평에 보면, 이것은 칼 세이건이 잘못 안 것 같다면서, '내 차고 안의 용'처럼 보이지 않는 조상의 혼을 믿는 게 아니라 단지 전통이라고 옹호하는 내용도 있다. 물론 그냥 단순 풍습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는 정말 조상신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TV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안 지내면 불행한 일이 닥친다고 진지하게 신봉하는 사람의 인터뷰도 나오고, 심지어 '풍수지리' 논문에는 조상의 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후손이 불행하다는 내용까지 발표된 적이 있다.[9] 헌데 기독교인들은 반대로 제사를 '우상숭배'라며 벌을 받을 것처럼 기피하니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교회에서 총기난사가 벌어져 예배갔다가 죽거나, 제사 지내려 일가친척이 모인 가운데 산사태로 인해 떼죽음 당한 사례도 있어 지극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복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제사를 통해 일가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여 정을 나눈다면 가치야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목적이 전도되어 심지어 제사문제로 다투다 살인 사건까지 나기도 한다. 2020년 추석에도 제사 문제로 사람이 죽었다.'''#제사가 뭐라고…추석 전날 매형 살해한 60대 남성 자백''' 왜 나만 하냐, 이러다 갈등이 생기고 칼부림까지 나는 건데, 제사를 일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약 입장 바꿔 본인이 설사 죽은 입장이라면, 걸신도 아니고 그깟 제삿밥 좀 먹겠다고 후손들에게 저렇게 부담을 안기면서까지 제삿밥에 집착할 가치가 있느냐는 것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꼰대들은 그런 '희생'을 당연시했으나, 젊은 세대일수록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툴툴대며 억지로 차려준 제삿밥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갈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사실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호화로운 천도제나 장례식을 보면 정작 죽은 사람들이 이런 행위로 덕을 받는지는 알 길이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내가 이만큼 해 줬다"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 소박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유서에 화장하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만 세워달라고 했고 실제로 그러길 원했을 것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다.
제사도 과거엔 보릿고개로 진수성찬에 한이 맺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죽었기에 제삿밥이라도 실컷 먹어보라고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주던 것이었지만, 다이어트에 한이 맺힌 현대 사회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음식도 딱 조선시대 사람들이 먹던 거라 최근엔 바나나, 피자부터 심지어는 치맥까지도 올린다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중국식 유교적 풍습이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유교의 잔재인 남녀차별 속성도 있어 여자가 다 차려야 하기에 남녀평등 시대엔 맞지도 않아 제사 문제로 불화가 생기는 가정이 많지만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지속되고 있다. 폐기 음식물이 사회 문제인 시대에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물 올려놨다 버리는 것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으나 '조상에 대한 정성'으로 강제하며, 만약 며느리가 "헛고생을 정성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냐?"는 반론이라도 했다간 쫓겨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 속으로 불만만 쌓고 있으면 화병에 걸릴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냥 본인 마음 편하기 위해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자기합리화를 통해 체념하여 수긍해버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남자라면 군대 가야 한다' 같은 말들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그걸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으며 "왜?"라는 질문은 금기시되었다. 종교에서 "왜?"라는 질문을 하면 "넌 시험에 들었다!"고 악마 취급을 받으니 합리적인 의문조차 제기할 수 없게끔 만들고, 마찬가지로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사람들 틈에서 타민족과도 평등하게 지내면 안 되냐고, 사람을 '민족'이 아닌 개인으로 판단하면 안 되냐는 질문을 하면 '매국노 반역자' 취급 받다보니 귀찮아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게 점차 상식처럼 굳어진다. 그래서 종교와 민족주의를 세뇌시키기 위한 가공된 역사는 프로파간다로 활용돼왔고, 실제로 게릴라전의 승패는 첨단 장비가 아닌, '''민족주의나 종교에 기반한 의지나 인내심'''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니 '''지도자의 이권'''에 의해 소모적으로 희생될 위험이 있다.[10]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배후중상설.
내 차고 안의 용은 일견 투명드래곤과 비슷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투명드래곤은 작중 묘사를 보았을 때 실제로 물리력을 발휘하여 상대에게 분명히 타격을 입히므로 실체의 증거가 명백한 존재이다. 마치 프레데터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주인공 일행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존재는 물론 동선까지 파악이 가능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공기나 전파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지만, 여러가지 객관적인 방법으로 존재를 입증 가능하므로 존재를 의심하는 아이에게 굳이 "넌 시험에 들었다!"거나 "믿음이 부족하다!"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내귀에 도청장치, 베리칩 음모론처럼 순수하게 '믿음'의 영역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내 차고 안의 용'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실체를 입증할 수 없다면 그 자체가 '없다는 증거'이다. 칼 세이건은 실체를 입증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게 정말 있다'라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을 '내 차고 안의 용'으로 비유한 것이다.
4. 관련 문서
[1] 보스톤 대학의 천문학자 파파기아니스 박사가 본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법칙이다. 파파기아니스 박사는 UFO의 존재를 굳게 믿어왔던 사람이었는데, 회의론자들이 UFO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자 지금까지 UFO의 파편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UFO가 없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며 파파기아니스의 법칙을 고안했다.[2] 지동설의 허점으로 불리었던 연주시차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실제로 관측되면서 지동설을 지지하는 증거로 바뀌게 되었긴 하나, 이는 '불완전한 이론'이 차차 보완해가는 과정이었지, 애초 '근거없는 설'이 아니었다. 지동설 학자들이 점쟁이 점치듯 그냥 지구가 도는 걸 믿고 싶어서 믿었던 게 아니라, 천동설이 맞다는 가정 하에 하늘의 별들이 태양과 달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정확하게 수학으로 계산했는데, 문제는 계산한 결과와 실제 하늘 움직임이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지동설을 알아내게 된 거고 계산이 딱 맞는다는 걸 다들 검산해보고는 서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의심하고 판단하고 이론을 제시하는 것과, 그냥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는 것과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마치 법원에서 증거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혹 제기'를 하는 것은 받아들이나,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 '저 사람 눈빛이 범인이다'라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추론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3] '그건 진짜 종교가 아니다'라는 항변도 있으나 애초 종교 자체가 이현령비현령처럼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여 누가 맞는지 객관적으로 신에게 공증받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닌 문제가 있다. 마치 제사도 지금 상다리 휘어지게 지내는 제사는 '사이비 제사'라며 진짜 제사는 간소하다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럼 '진짜 제사'를 지내는 종가는 어디인지, 그럼 TV에서는 '사이비 제사'를 방영하고 있는데 '진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왜 항의하지도 않는지 하는 문제가 있다. 그 '사이비 제사'측 입장에서는 그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고 그쪽 나름대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또 종교의 부작용이 종교의 책임이 아니라면, 제국주의도 원래는 이슬람이나 북한처럼 잔혹한 독재자의 통치 하에 억압받는 국민들을 해방시켜주고 계몽시켜주자는 명분은 좋으니(타민족 학살하겠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단지 그걸 악용하는 부작용만 나쁠 뿐, 제국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심지어 홍콩인들은 영국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정도다.[4] Fucking USA의 작곡가가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 김일성을 미화하는 곡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한국에서조차 '민족의 태양'도 아닌 무려 '인류의 태양'이라고 할 정도로 절대시하며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물며 어려서부터 수령님을 단군 수준으로 배워온 북한인들이라면 심각할 수 있다. 한국에서 단군을 종교로 하는 단체가 있는데, '김일성교'로 분류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으며, 실제 해외 사이트에서는 북한도 종교 국가로 분류하기도 한다.(...)[5] 어느 아파트에서 피해망상 걸린 아줌마가 하루종일 바닥에 귀를 바싹대며 아래층에서 자기 욕을 한다고 주장하니 가족들이 전부 똑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취재진의 확인 결과, 전혀 아니었으며 일부러 아래층을 비워둔 상태에서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취재진에게 지금도 아래층에서 내 욕을 하고 있다며 들어보라고 했다. 이 아줌마는 피해망상증이 확실했으나 두 아들과 남편은 정상이었음에도 아줌마와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처음에는 안 들린다고 했는데 아줌마가 들린다고 자꾸 우기다보니 지쳐서 들린다고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체념하자 결국 4인 가족 모두는 아래층에서 자신들을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믿고 있었다. 이는 어떻게 우리 주위에서 음모론이 퍼져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히 음모론은 대개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보니 군중심리의 특성상 더욱 퍼져나가기 쉽다.[6] 길가다 넘어져서 병원에 실려가면 퇴마사들은 귀신의 소행, 종교인들은 신의 메시지, 사주학자들은 넘어질 팔자, 풍수학자들은 넘어진 장소에 안 좋은 기운이 있다고 해석한다. 각자 자신의 세계관대로 해석하며, 실제 그들 말을 들으면 또 그렇게 느껴지는게 인간의 심리다. 따라서 '''내 차고 안에서 용의 기운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다'''.[7] 맹신도들이 말하는 대로 만약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 브루노를 화형시킨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을 통해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라며 불태워 죽였던 광신도들도 천국에 가게되는 것이다. 이것은 천국에는 착하고 죄 없는 사람들만 간다는 주장과 충돌한다. 만약 무고한 여성을 잔혹하게 불태워죽인 살인마는 천국에 있고, 부처가 단지 '불신자'라는 이유로 지옥에 있다면 천국과 지옥의 개념 자체가 뒤바뀔 수 있으며 무고한 사람들을 단지 자신을 추종하지 않았다고 고통을 주고 괴롭히는 신이야말로 악마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또 불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아니라 착한 일을 행하면 우월하게 환생한다고 믿는데, '''우상숭배라며 절을 불태운 개신교인은 착한 일인지 나쁜 일인지, 또 누가 판단을 내리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즉, '''자신이 착한 일이라고 믿고 행한 일이, 관점에 따라서는 '악'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고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 잔혹하게 살해한 사람들이 '악'인데 천국에 가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천국은 악인들로 가득 찬 지옥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시이며 반박의 여지가 있으나 모든 종교를 수용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모순이다. [8] 지금도 중동에서는 이교도들을 끔살하고 있다. '불신지옥'이 협박이 아닌, 그 즉시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무서운 이유인데, 결국 이런 광신도들이 흉폭한 행위를 하는 것은 타고난 '악인'이 아니라 믿음이 너무 지나쳐 미쳐버린 것이니 믿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실제 자기 딴에는 '정의'라고 생각하고 벌이는 일이란게 더 무섭다. 물론 현대의 종교인들은 이런 근본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타인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현실과 타협한 것이다. 만약 정말 이슬람의 코란이 맞다고 믿으면, 이교도는 배척하고 응징하는 것이 맞지 보듬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9] 당연히 과학적인 인과관계는 없고, 논문의 내용도 조상의 묫자리가 좋고 관리가 잘 된 곳의 후손들을 찾아가보니 잘 살고, 관리 상태가 안 좋은 곳에 가봤더니 못 살더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는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아닐 수 있다. 즉, '''조상의 묘에 신경쓰고 관리할 여력이 있으니까 관리한 것 아니겠냐는 반론'''이다. 당장 거리에 나앉게 생기고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조상의 묘에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관리할 여력은 없을테니 말이다. 마치 부자니까 명품으로 치장하지, 명품으로 치장하니까 부자가 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10] 우리 민족은 형제인데 형제끼리 어떻게 싸우냐고 부르짖던 북한의 김정은은 정작 자신의 이권을 위해 형 김정남을 외국까지 쫓아가서 죽였다. 조선 시대 굶어죽고 수탈당하는 가엾은 농민들이 참다못해 봉기하자 외세의 힘을 빌어 자국의 농민들을 진압했는데, 농민들 입장에선 자국의 지도자든 제국주의자든 똑같이 피 빨아먹고 사는 악당에 불과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외세로부터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착취하고 있는데, 정작 북한은 '''2018년 노예국가 1위'''로 선정되었다. 우리민족끼리는 그냥 지도자의 수탈을 위한 프로파간다일 뿐이다.#‘현대판 노예’ 北노동자 미군정이 들어오면 피해를 보는 것은 백두혈통과 군부, 귀족층 등 일부에 국한될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혈통 불명의 원숭이'라고 하고, 일본 여성과 결혼한 진중권 교수를 단군 혈통의 피를 더럽혔다며 디스했는데, 이런 '우리민족끼리' 프로파간다의 순혈주의는 결국 히틀러처럼 흘러갈 수 밖에 없다. 백인우월주의가 누구를 차별하자는게 아니지만, 우생학에서 백인이 우월하다고 밝혀지면 거기서 차별이 생겨나고 배타적이 될 수 있다. 마치 유교에서도 대놓고 여성을 차별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부부유별' '장유유서' 등을 통해 남녀의 역할과 서열을 나누면 거기서 차별이 생기니 문제다. 물론 높은 사람은 아랫 사람을 잘 돌봐주라는 얘기겠지만, 사실 갈굼이나 태움 가해자들도 다 '교육' 목적으로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