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교

 

[image]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18호'''

19호

'''수표교'''
경희궁 흥화문
1. 개요
2. 원래의 수표교
2.1. 역사
2.2. 특징
2.3. 교통
2.4. 여담
2.5. 대중매체에서
3. 원 위치에 가설된 임시 수표교
3.1. 특징
3.2. 교통
4. 여담
5. 이전 복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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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1. 개요


水標橋 / Supyogyo
청계천에 있었던 다리.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청계천의 수량을 측정하여 홍수에 대비하던 다리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 20번지와 중구 수표동 40번지 사이에 있었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해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현재 수표교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197-1이다.

2. 원래의 수표교



2.1. 역사


1406년(태종 6년)에 처음 세워졌다. 이 때 청계천[1]을 파고 그 위에 세운 7개의 다리 중 하나로 그 중 현재는 수표교만 남아있다.
창건 당시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이름은 근처에 있는 마전(馬廛)[2]을 딴 ‘마전교(馬廛橋)’였다.[3]
1441년(세종 23년)에 청계천의 수위 측정을 위한 기둥인 수표(水標)를 다리 서쪽에 세운 이후부터 ‘수표교(水標橋)’로 불렸다.#
언제 다리로 바뀌었는지는 모르나 《성종실록》의 이 기사를 보아 1493년(성종 24년) 9월 이전에는 이미 돌로 개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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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에 새긴 ‘무자금영개조’. '정해개축' 글씨. 왼쪽 사각형 틀안의 글씨가 '정해개축'이고
그 오른쪽 글씨가 '무자금영개조'이다. 일제강점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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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
이후 몇 번 고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수표교의 서쪽 귀틀석 일부에 ‘戊子禁營改造(무자금영개조)’, ‘丁亥改築(정해개축)’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각각 ‘무자년에 금영에서 고쳐 지었다.’ ‘정해년에 고쳐세웠다는 뜻’이다. 전자의 경우는 영조 때인 1768년(영조 44년), 후자의 경우는 고종 시기인 1887년(고종 24년)에 새긴 것으로 보인다. 《비변사등록》에 무자년인 1768년에 수표교의 개수를 시작하는 문제를 논한 기록이 있으며#승정원일기》에는 정해년인 1887년에 수표교를 보수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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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없는 수표교 사진. 미국의 한 대학한국학연구소에서 보관 중이던 것을 근・현대 사료수집가
김영준씨가 2005년 1월 16일 KBSTV쇼 진품명품》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고종 때 개축하면서 난간을 새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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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수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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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임인식이 촬영한 1953년의 수표교. 왼쪽은 여름에 홍수난 모습, 오른쪽은 겨울에 썰매타는 아이들의 모습이다.[4]
이후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남아 있다가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해 북악산 밑의 신영동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1965년에 장충단공원 안의 남소문동천[5]으로 다시 옮겨져 현재에 이른다. 수표도 수표교와 같이 옮겨갔으나 1973년 동대문구 회기로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이전되어 지금에 이른다.

2.2. 특징


  • 길이 27.5m, 너비 7.5m, 높이 4m로 재질은 전부 화강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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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교각과 하부 구조
  • 맨 밑 바닥에 길이 약 8m 정도 되는 지대석을 9개 놓고 그 위에 긴 돌을 두 단으로 쌓아 교각을 만들었다. 교각은 지대석 한 줄 당 5개씩 있기 때문에 총 45개이다. 교각 윗단과 아랫단의 의 모습이 차이가 있다. 아랫단은 다듬지 않은 것이고, 윗단은 가장자리를 다듬은 것이다. 그리고 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교각의 돌들을 대각선으로 세웠는데 윗단과 아랫단의 돌이 약간 엇갈려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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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중앙부 교각에 새겨진 ‘경진지평(庚辰地平)’ 글씨
  • 중앙부의 교각에는 ‘경진지평(庚辰地平)’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1760년(영조 36년) 경진년(庚辰年)에 실시한 청계천 정비공사 때 새긴 것으로 이후 준설의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모래나 흙이 어느 글자의 어느 위치까지 쌓였는지를 확인하고 준설의 정도를 가늠하는 용도로 쓰인 것.# 이 글씨는 광통교 교각에도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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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멍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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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귀틀석과 청판석. 바닥에 세로로 놓인 돌이 귀틀석이고
그 사이마다 가로로 놓인 돌이 청판석이다.
  • 교각 위에 길이 4 ~ 5m 정도의 멍에석을 놓고 그 위에 귀틀석을 놓았다. 멍에석은 귀틀석 바깥으로 돌출된 모습으로, 끄트머리가 둥근 것이 특징이다. 귀틀석 사이에 청판석을 깔아 다리의 바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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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난간
  • 난간은 제일 바깥쪽 귀틀석 위에 설치하였다. 난간의 엄지기둥은 총 11개이며 연꽃봉우리와 연잎 모양의 조각으로 되어있다. 그 사이마다 6각형의 돌란대를 끼우고 그 아래에 난간동자를 두어 돌란대를 받치게 하였다. 이런 양식은 궁궐에서 주로 쓰였는데 민간의 다리에 적용된 보기 드문 경우이다.

2.3. 교통



2.4. 여담


  • 조선시대에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백성들이 다리를 밟는 '답교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1년 내내 다리가 건강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양의 주민들은 먼저 보신각의 종소리를 듣고 그 다음에 청계천의 다리 위를 왔다갔다 했는데, 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통교와 수표교로 갔다고 한다. 이 답교놀이는 조선 멸망 이후 한동안 맥이 끊겼다가 1970년에 복원되었고 2009년 3월 5일에 서울시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었다.#
  • 수표교 남쪽에는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신 사당 중 하나인 영희전이 있었다. 여기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왕들은 1년에 몇 번씩 창덕궁에서 수표교를 건너야 했다. 숙종도 여러 번 들러 참배하였는데, 어느 날 영희전에서 창덕궁으로 돌아가던 중 수표교 근처에서 희빈 장씨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야사일 뿐이라 진지하게 믿기보다는 그냥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정도로 여기면 된다.
  • 2019년 12월 18일부터 2020년 3월 15일까지 청계천박물관[6]의 1층 기획전시실에서 수표교를 주제로 한 기획전 '수표교, 한양에 비가 내리면'을 개최하였다.#

2.5.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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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7]에 재현되었던 수표교[8]
  • SBS 대하드라마야인시대》의 배경 중 하나로 나온다. 1부 2화에서 종로 패와 혼마치 패가 패싸움 하는 곳으로 처음 나왔고, 이후 거지촌 에피소드의 주 배경이 된다. 김두한(안재모 분)과 하야시(이창훈 분)가 맞붙기 전까지는 청계천우미관 패와 일본인 야쿠자들의 자연 경계였기 때문에, 수표교 통행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언급이 몇 번 나온다.[9]

    2부에서는 아무래도 1부보다는 등장이 많지 않다. 6.25 전쟁 때는 북한 공산군이 죄없는 양민들을 학살하는 곳으로 나왔고 전쟁 후에는 명동파동대문파의 자연 경계가 되어 서로 대치하는 장면으로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114화로, 1956년 지방선거민주당 서울시의원 후보 김득만(류태술 분)이 여기서 선거유세를 하다가 화랑동지회의 테러를 받는 장면이었다.

난간이 변형된 부천판타스틱스튜디오의 수표교. 57초부터 나온다.
세트장의 수표교는 실제와 싱크로율이 비슷했으나, 아무래도 세트이다보니 실제보다는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 《야인시대》가 종영하고 불과 1년 뒤인 2004년 MBC 드라마영웅시대》 촬영 중에 난간의 모습이 바뀌었고, 2012년 3월에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가 철거될 때 같이 헐려 사라졌다.

3. 원 위치에 가설된 임시 수표교



'''청계천의 교량'''
상류 방면

이름

하류 방면
삼일교
'''수표교'''
관수교
[image] '''대한민국의 사적'''
460호

'''461호'''

462호
공주 수촌리 고분군
'''서울 청계천 유적
(광통교지, 수표교지와 오간수문지)'''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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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표교
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 때 장충단 공원에 있던 수표교를 원 위치에 옮겨 지으려 했으나 새 청계천의 길이와 맞지 않아 무산되었다. [10] 대신 본래 자리에는 수표교를 본 딴 임시 다리가 놓여있다. 이름은 그대로 수표교이다.
수표교 복원에는 실패했으면서도 위치는 그대로 재현한 탓에 수표로와 연결이 안 된다. 하필 이 길이 을지로3가역 1, 2번 출구에서 종로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길인데다 수표로 북단에는 토익학원 등이 몰려 있는 종로2가 구역이라 2호선을 타고 종로2가 구역을 방문하는 시민들에게 은근히 빡치는 불편을 안겨주고 있다. 복원에 성공했으면 몰라도, 복원에 실패하여 15년째 임시 수표교를 쓰고 있는 실정이라 수표로 직통으로 연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청계광장을 기준으로, 청계천의 6번째 다리다.

3.1.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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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표교 교각과 들보
  • 굵은 원형 강관 4개로 네 모퉁이에 교각을 세웠다. 그리고 강재아이빔(I-beam) 들보를 걸친 형교(桁橋) 형식으로 세웠으며, 겉에는 판재(板材)를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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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표교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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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표교의 바닥
  • 난간과 바닥 마감재는 나무로 되어있다. 난간의 모습은 수표교 원본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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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알림표지판#
  • 다리의 앞, 뒷면 중앙에 수표교 알림표지판이 있다. 짙은 회색 바탕에 흰 글씨로 되어있으며 큰 글씨로 ‘수표교’라 쓰여있고 그 아래에는 로마자로 ‘Supyogyo’라 표기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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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산책로로 들어가는 수표교 계단.
  • 수표교의 동남쪽 끄트머리에 청계천 산책로를 오갈 수 있는 계단이 놓여있다. 출입구 번호는 10번. 동북쪽에도 있긴 한데(번호는 9번) 다리하고는 좀 떨어져있다.

3.2. 교통


  • 버스: 서울 버스 173번을 타고 '청계2가, 수표교' 정류장에서 내리는 게 제일 빠르다. 노원 방향 정류장보다는 신촌 방향 정류장이 더 가깝다. 이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는 173번 외에는 없으며 그나마 다음으로 가까운 정류장은 '종로2가 사거리'와 '남대문세무서 · 서울백병원'이다.[11]

4. 여담



5. 이전 복원 문제



[1] 당시 이름은 ‘개천(開川)’이었다. ‘청계천(淸溪川)’은 일제강점기에 바뀐 이름이다.[2] , 또는 소와 말을 타거나 부리는 데 쓰는 기구를 파는 가게.[3] 현재 청계5가에 있는 마전교와는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다리이다. 그 마전교도 이름의 유래 과정은 같다.[4] 자세히 보면 수표의 윗 부분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수를 측정하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셈.[5] 남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개천이었다. 지금은 장충단공원 구역을 제외하고 전부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다.[6] 서울 성동구 마장동 소재.[7] 야인시대 촬영 세트장이다.[8] 사진은 《야인시대》 12회에서 김두한문영철이 수표교 밑에서 싸우는 장면이다.[9] 21화에서 하야시의 집을 턴(...) 김두한이 수표교 쪽으로 도망가자 뒤쫓던 시바루(이세창 분)가 청계천을 넘어가면 문제가 커진다며 돌아갔고, 38화에서 김두한이 회식 때 거나하게 한 잔 하고 수표교를 건너가자 김영태(박영록 분)가 염려하는 장면도 나온다. 물론 이건 김두한의 의도적인 도발행위였지만. [10] 광통교 역시 길이가 맞지는 않았지만, 새 청계천보다 '''짧기 때문에''' 인도를 넓혀 덧대는 식으로 건설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수표교의 길이는 새 청계천보다 '''길기 때문에''' 옮겨오지 못하였다.[11] 저 둘 중에서는 '종로2가 사거리'가 훨씬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