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피라미드 고조선 문명설

 

1. 개요
2. 주장
3. 티베트의 피라미드(?)
4. 서안의 피라미드(?)
4.1. 중국이 서안 피라미드를 은폐한다?
4.2. 고조선과의 연관성(?)
5. 그외
6. 결론
7. 참고 자료
8. 같이 보기


1. 개요


중국 서안한국인조상들이 만든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2. 주장


이 피라미드는 대략 '''5000년~6000년 전'''에 고조선인이 만든 유적지로 1945년 인근을 비행하던 한 조종사의 촬영에 의해 발견되었다. 훗날 '몰다스프'라는 러시아 과학자가 이 부근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하였고 주변 지역에 100개가 넘는 피라미드군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현재 피라미드는 중국의 공안에 의해서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 학술 조사가 불가능하며 중국에의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독일의 고고학자 하우스도르프가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몰래 잠입하여 피라미드를 발견하였다. 이때 하우스도르프는 'Die weiße Pyramide'(하얀 피라미드)라는 책을 저술하여 피라미드의 존재를 서방에 알리며 비로소 알려졌다. 중국 측에서는 이를 조작이라며 일축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중국에서 36명의 '''비밀''' 조사단이 꾸려져 유적을 조사했다. 이때 발굴에 참여한 장문구 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문자백김치, 중앙에는 상투 머리를 한 시체까지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동이족 문물이 쏟아져 나오자 발굴단장은 이 유물들이 조선인의 유물임을 깨닫고 자존심이 상하여 철수시켰으며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것을 장문구 씨 등에게 협박하였다. 하지만 장문구 씨는 임종 직전에 소신 발언을 하였으며 비로소 중국의 피라미드가 한국의 역사의 일부임이 알려졌다. 장문구 씨의 유언은 인터넷에서도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측은 이곳에 나무를 심으며 무덤을 훼손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당연히 사실과 다른, 서양의 유사 과학자들과 한국의 유사 역사학자들의 억지 주장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이 피라미드의 정체는 티베트의 성산 강린포체 혹은 한무제, 한경제, 소제#s-2 등 한나라 황제들의 무덤들이다.

3. 티베트의 피라미드(?)


1945년 미국 공군에 소속 된 조종사가 C-54 수송기를 몰고 당시 연합군의 속한 중국군에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중 기계 결함이 발생해 저공 비행을 하던 였는데 이때 티베트에서 피라미드를 목격했다. 제임스 가우스맨은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러시아의 몰다디프 단장은 발굴단을 이끌고 티베트에서 거대한 피라미드군을 발견하였다. 이 피라미드는 외부 요인에의해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근처에는 100여개의 피라미드군들이 존재하였다. 아울러 그곳을 조사한 결과 석조 인간상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주장하는 미군이 저공 비행하였다는 장소는 인도와 중국 사이 티베트 인근으로 추정되지만 어째선지 촬영했다는 사진에는 서안이 찍혀 있다. 이해가 안 된다면 서울을 저공 비행하면서 사진을 찍었더니 강릉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찍혔다고 생각하면 좋다. 티베트 초고대 문명 음모론이 서안 초고대 문명 음모론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사진이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1945년에는 미국 공군(USAF)이라는 조직은 없었다.'''
[image]
강린포체의 북쪽 사면. 우리나라에는 카일라스산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몰다디프 단장이 발견했다는 피라미드의 정체는 티베트의 성산인 강린포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산은 티베트 불교에서 수미산으로 간주하여 신성시하며 당연히 피라미드가 아니다. 이 러시아 발굴단은 강린포체를 초고대문명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에게 러시아 합동조사반 파견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중국 측에서는 자연 현상으로 생긴 산이라고 일축하며 거부하였다. 근처에서 발견된 피라미드 1백여 개 또한 자연적인 지질현상 때문에 금자형(金字型)으로 갈라진 암봉일 뿐이다. 이를 두고 중국이 무엇인가 캥기는 게 있어서 막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이 산은 티베트의 성산(聖山)이라서 중국보다는 세계 종교인들의 입김이 더욱 강한 지역이다.
덧붙여서 이 산은 등반금지 지역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초고대문명 발생지이기 때문에, 혹은 중국이 불리한 역사를 감추기 위해 금지한 것이 아니다. 이 산을 티베트 불교에서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수미산으로, 힌두교에서는 시바가 거주하는 성소로 받아들이는 등, 종교계에서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에 입산이 금지되었을 뿐이다. 2001년에 스페인 팀이 중국 측에 등반을 허가받았지만 전세계의 불교와 힌두교 신자들이 강력히 반대하여 불발되었다. 게다가 위의 사진에 나온 강린포체의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설령 등반을 허가하더라도 깎아지른 듯 엄청나게 높은 경사로 인해 사망자가 숱하게 나왔을 터이니, 종교적인 부분을 떼고 봐도 등반 허가를 해줄리는 만무하다. 이곳 참고.
금방 탄로나는 거짓말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유사역사학자들은 한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우리나라 역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요즘은 티베트와 몰다디프를 은근슬쩍 지워버리고 유포하기도 한다.

4. 서안의 피라미드(?)


[image]
2차 세계대전 도중 미군이 찍었다는 사진
우리나라의 유사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학설(?)이지만 당연히 사실이 아니며 이 피라미드들은 2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중국의 한나라 황제들의 무덤이다.

4.1. 중국이 서안 피라미드를 은폐한다?


이 황릉들은 항공촬영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앞서 말한 티베트 피라미드 음모론과 섞여나온 헛소리다.
중국 측이 카일라스 산, 즉 강린포체 입산을 허락하지 않는 사실과, 하우스도르프가 찍은 한나라 황제들의 황릉을 교묘하게 섞어서 중국 정부가 서안의 피라미드를 은폐한다고 와전된 것이다. 이 해프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우스도르프가 저술하여 1994년에 출판한 '하얀 피라미드(Die Weiße Pyramide)'라는 책을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저자 '''하르트비히 하우스도르프(Hartwig Hausdorf, 1955~)'''는 유사과학에 심취한 독일인 저술가로, 음모론에 심취하여 중국이 감추었다는 티베트의 '하얀 피라미드'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정말로 피라미드를 발견하여 사진을 찍고 서양에 알렸는데, 이때 찍은 사진이 바로 서안에 있는 피라미드다. 즉 강린포체를 찾아 헤매다가 착각하고 서안에 있는 한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찍은 것이다.
하우스도르프는 이때 찍은 한나라 황릉 사진을 들고 음모론을 내세웠다. 이 피라미드들은 외계문명이 만들었던 초고대문명이며 피라미드들이 오리온 성좌 모양으로 배치된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이 사람은 중국이 은폐하는 동이족의 문명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외계문명 음모론을 믿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하여 활동한 것이다. 하우스도르프는 한나라 왕릉들뿐만 아니라 마야,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도 외계문명이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중국이 이 피라미드를 은폐하는 이유는 이 무덤에서 외계인 시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애초에 하우스도르프의 피라미드 주장은 유사역사학이 아니라 유사과학이 출발점이었다.[1] 하우스도르프의 저작물들
이러한 뒷이야기를 알 리 없는 지나가던 유사역사학자들은 이 떡밥을 물고 한나라 황릉이 우리 조상들의 피라미드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을 하겠다고 이 무덤에 나무를 심는 행위를 중국에서 은폐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는 사실이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은폐되지 않았다.구글 한무제 무릉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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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의 무릉(茂陵)
이 사진은 중국 공안들의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 관광객들도 잘만 다닌다.#1 #2 #3 #4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하는데 한국인들도 잘만 다닌다. #5
중국인들도 이 중요한 문물을 은폐할 리 없다. 오히려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공개하고 했는데, 중국에는 홍보사이트도 존재하며, 환빠들이 동이족 조상들의 피라미드라고 주장하던 한경제 양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오히려 한국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강서구 동주민센터 섬서성문물정화특별전안내 무릉유물의 유물
그러면 나무를 왜 심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나무 심기는 중국 측 나름대로 무덤을 조경한 방식일 뿐이다.[2] 중국은 이 무덤의 존재를 감추기는커녕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한다. 단지 근처에 진시황릉이 있어서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더 많이 갈 뿐이지... 애초에 나무로 무덤을 감출 생각이었다면 산책로를 없애고 단순한 산처럼 보이기 위해 나무를 불규칙하게 배치했을 것이다.

4.2. 고조선과의 연관성(?)


결론부터 말하면 연관성은 없다.
장군총과 한무제 무릉 간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서 방추형 계단쌓기는 고구려에만 존재하는 무덤 양식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고유 양식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야 문명치첸 이트사고구려 건축물이라는 주장을 따를 가능성이 아주 높다.[3]
참고로 이렇게 주장하면 불리한 쪽은 오히려 고구려다. 중국은 전국시대에 이미 방추형 무덤 양식이 존재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대해졌다. 만주에는 소규모 적석총만 존재할 뿐이며 그중 가장 거대하다는 장군총도 중국과 비교하면 매우 작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이 고맙다고 외칠 만한 주장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고구려 적석총은 그 이름대로 돌을 쌓는 방식(적석)이지만, 이 서안 피라미드라는 무덤은 흙을 쌓아 만든 방식이라서 아주 다르다.
그리고 이 무덤이 소재한 지역이 고조선 강역과 가깝다는 주장도 있는데 서안은 중국 섬서 성의 중심지이며 고조선의 강역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동이족의 강역과 비교해봐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주장 또한 고조선이 대륙을 지배했다는 주장과 짬뽕된 거짓말이다. 이덕일조차 고조선이 섬서 성까지 진출했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image]
중국 섬서성
[image]
고조선 강역도
고조선 강역에 대한 논란의 자세한 내용은 해당문서 참고.
그렇다면 장문구의 증언은 무엇인가?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4]

1963년4월에 우리 고적발굴팀 36명은 당국으로부터,

진시황의 다른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을 조사해야 하니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출발전, 조사단장은 우리 발굴단원들에게 이번 유적은 매우 중요하여

조사,발굴 내용을 외부에게 일체 누설하면 안되니 이점을 각별히 유념하기 바란다고 말하였고,

우리일행은 기차와 버스,트럭을 나누어 타고 이틀만에

목적지인 넓은 평원지대에 도착하였는데 창밖으로 이집트 피라밋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들이 많이 있었고,

도착한 우리 발굴단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탄성을 질렀어요.

우리 중국에도 이런 피라밋이 있었구나! 하는 기쁨과 경이로움이 뒤섞여서 말이죠,

우리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또다른 이 엄청난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조사단은 4팀으로 나뉘어져 이후 3일동안 피라미드의 가장 큰 순서대로

먼저 가운데 3개 피라미드를 지정하여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3곳다 거의 한 형태의 것이었는데 이중 양옆의 두곳보다는 가운데 것이 대단했어요.

거대한 벽돌 피라밋 지하 입구로 들어가자 약 3~5층으로 석실이 나뉘어져 있었고,

상층부 공간으로 들어갈수록 말과 마차를 그림으로 화려하게 조성된

벽화,그림,'''여러 문자(중국글 한국글등)'''들, 조각류 약 6200여점, 맷돌,절구,솥,그릇등

생활도구 1500여점, '''배추김치(원래김치인 백김치)''' 동물의 뼈등

음식물 400여점, 청동검 활 금관(신라형) 칼,창등 장신구류등 부장품 7800여점,

상투머리를 한 정 중앙시신'''(진시황의 모습과 흡사했슴)'''등

14구과 호위상 3000여점등이 대량발견 되었습니다.

우리는 난생 처음보는 이러한 너무나도 엄청난 유물,유적에 대해

모두 하나같이 무엇에 홀린듯 하였으며,

'''마치 외계인의 세계,외계인의 무덤'''을 발굴하고 있는듯한 느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유물들을 확인하면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을 했었는데,

작업 '''3일째''' 되던날 대충 '''7할'''정도 파악,작성된 상황이었고

이날 오후쯤에 이를 당시 발굴 단장이던 모 교수에게 중간 보고하자

그분은 큰 한숨을 내쉬면서 이런말을 했어요,

이 유적은 우리 화하족 유물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유적이다...

중화역사 이전의 조선문명이야! 라고 말하면서

큰일이다!..일단 당국에 보고 한 후에 다시 지시를 받아야 하니

지금까지 발굴을 모두 중단하고 유물들은 모두 그자리에 두고 일단,

오늘은 그만 나가세!" 라고 말하여 모두 발굴을 중단한 체 나와 숙소에 있게 되었는데,

그날 밤, 발굴 중단과 동시에 철수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우리 발굴 단원들은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곧 그 유적이 우리의 유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해 하였고

일행은 그곳에서 떠나기에 앞서 숙소에서 현지 공안에게 이곳에서의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작성 제출하였고, 그렇게 돌아온 이후,

그 '''피리미드들에 관해 더이상 들은적'''은 없습니다.

그게 그 피라미드에 대한 저로써의 마지막이었고 제가 아는 다 입니다

당시 발굴요원이었던 장문구(張汶邱)의 임종 전 증언내용...이라고 알려진 글.

  • 중국 측이 은폐하기 시작했다는 시점은 2차 세계대전 시점이라더니 1963년에 비로소 동이족 문물이라고 깨닫는다. 그 전에는 감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 저 말을 믿으면 조사 3일 만에 4팀으로 나뉜 발굴단 36명이 유물 18,000여 점을 일일이 작성하였다는 소리가 된다. 따라서 이 증언을 한 사람은 발굴에 대해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
  • 주장에 따르면 해당 피라미드가 1960년대에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진시황릉은 1970년대에 발굴되었다. 그럼에도 진시황의 또다른 유물 운운하는가 하면, 아직 찾지도 못한 진시황의 시체와 모습이 똑같은 시체가 존재했다는 서술까지 나온다. 게다가 글쓴이는 무덤의 주인이 상투를 틀었다고 주장하며 은근슬쩍 진시황동이족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데, 화의 관점으로 보면 진시황의 출신지인 진나라는 중국 서쪽에 존재했다. 전국시대(중국) 문서 참고.
  • 중국 문자와 한국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유적지가 5000~6000년 전에 조성되었다는 주장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주장이다. 유사역사학자들은 이때 발견된 문자가 바로 가림토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근거로 한자도 우리나라의 문자라고 주장하기도한다. '가림토'라는 존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더라도 여러 자료들을 교차검증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은 기원전 1200년경에 처음 등장하였고 환단고기에서는 가림토가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2181년으로 약 4000년 전이라고 주장한다. 이마저도 가림토의 제작연대가 올라갔다며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3세 단군인 가륵 재위 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니'라며 가림토의 제작연대를 아주 정확하게 기록했다. 두 거짓말이 부딪여 헛소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즉 피라미드 조성의 시점을 올려도 너무 많이 올려버렸다. 한자는커녕 유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가림토도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다.
  • 백김치가 유적에서 발굴되었다고 주장하는데 : 2020년 현재 중국의 백김치는 김치와 다른 원류라며 중국이 김치 국제표준을 ISO에 등정하였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고추임진왜란 이후에 비로소 전래된 건 알아도 배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점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배추의 어원은 백채(白菜)로, 중국 남북조시기(6세기)에 순무를 품종 개량하여 만들어진 채소이기 때문에 결코 5천 년 전의 고대 유적지에서 나올 수 없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비로소 고려시대 이후에야 약재로 쓰인다며 처음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배추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점은 고춧가루가 들어온 시점보다 늦고 그전까지는 서민들은 배추김치를 먹을 엄두조차 못 냈다.
  • 쐐기를 박는 것은 그들이 1945년 혹은 1963년에야 피라미드의 존재를 알아냈다는 주장은 서구 음모론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사실 뒤늦게야 서구의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졌음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학계와 관계없는 대다수 대중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고고학계에서는 이 고분이 한나라 시대 무덤임을 이미 알고 탐험대들을 보냈다. 1914년 학술 보고서

요즘 새롭게 주장되는 내용 중에는 중국 정부가 뒤늦게 한나라 황제들에게 끼워 맞춘다는 주장도 있는데, 한서를 보면 황제의 사망 시 "葬○陵'라는 식으로 어느 능에서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주변의 마을[5]들이 실제 기록에 부합하는 명칭을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황제릉마다 황제를 어느 정도는 끼워맞춘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서안 피라미드 고조선 문명설만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끼워맞추는 것은 아니다.
환빠의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고구려 적석총들보다 시간적으로 빠른 한나라의 황제릉과 연결하는 것은 되려 동북공정이나 냐선일체 등에 부합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5. 그외


현재 음모론자들은 '서안 피라미드'에만 주력하여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하지만 사실은 위 티베트 피라미드 이외에도 폐기처분된 주장들이 여러가지 있었다.
  • 몽골 피라미드(?)
이 주장은 김상일의 저서 '인류문명의 기원 한(p. 377)'에서 몽골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해당 부분은 프레드 마이어 쇼터가 저술한 "pyramids of shensi"-Magazine(Downey California, MM< 1985)의 89쪽의 해당 사진을 인용했는데, 해당 책에서 나온 피라미드가 바로 서안 피라미드였다.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 몽골 피라미드 이야기는 갑자기 사라졌다.
  • 만주 피라미드(?)
초창기에는 만주에서 5천 년 전에 생성된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서안, 티베트, 몽고에 우리나라 피라미드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 활동권이었던 곳에 피라미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는지 들러리로 붙어다니던 양념 같은 주장이었다. 초창기에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어떠한 근거도 내밀지 않았다. 이 주장은 고구려 적석총인 장군총의 연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나온 헛소리인 듯하다.
  • 마야 피라미드(?)
이 주장은 사실 아직도 남아있다. 발음의 유사성을 두고 상상을 펼친 주장인데, 요약하면 고구려의 유민들이 멕시코로 넘어가서 마야 문명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물론 근거 없는 낭설이다.

6. 결론


이 잘못된 주장이 일반인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면서, 유튜브 등지에는 주장을 반박하는사람을 비정상 내지 매국노로 모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동이족 시절에 한창 날렸으니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자고 주장하지만 동이족이라는 표현은 중화사상의 관점에서 동쪽에 존재했던 이민족들을 가리키는 멸칭이다. 2천 년 후 일본인들이 우리가 쪽발이 시절에 한창 날렸으니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자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설은 거짓이다. 이 주장은 중국 강린포체 은폐설 → 중국 외계문명 은폐설 → 중국 동이족문명 은폐설 단계로 이어져 내려오는, 태생부터 이상한 주장이다.

7. 참고 자료


초록불의 잡학다식
야스페르츠의 墨硯樓
장문구 증언록 출처

8. 같이 보기



[1] 이 피라미드가 외계인의 문명이라는 소리는 미국에서는 유명한 미스테리 떡밥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지만 하우스도르프가 놓친 것이 있었으니, 이미 70년 전에 한나라의 무덤임을 알고 조사단을 파견했다는 학술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2] 사진에 보이는 나무는 측백나무다. 중국은 측백나무를 고귀한 나무로 여겨서 고위층들의 무덤에 조경하는 경우가 많다. 명나라 황제 무덤들에도 측백나무로 조경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제갈량의 사당도 측백나무로 조경되어 있다.[3] 실제로 KBS에서 진지하게 주장했던 적이 있다. 즉 이 주장에 긍정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파놓은 다른 함정에도 같이 빠지는 것이다.[4] 글의 원문을 그대로 싣기 위해 오타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5] 특히 한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만들 때는 주변에 황제릉을 관리하는 마을까지 새롭게 만들었는데 그 지명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