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귀(대조영)
1. 개요
- 상위 문서 : 설인귀
배우는 이덕화. 거란 출신의 당나라 장군으로 이해고와 더불어 대조영의 주적. 주인공의 숙적인 만큼 극중 등장인물 가운데에서도 무력이나 지략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는 인간흉기이다. 드라마 후반부에 거의 80을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수십명의 적병을 베고 창을 던져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이다.
마냥 선하고 고결한 캐릭터인 대조영과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극 후반부로 갈수록 열폭하며 이미지가 약해지는 이해고와 달리 극중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이해고와 같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포지션이지만 설인귀는 제왕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 대조영과는 달리 말단 병졸에서 대장군 자리에까지 오르는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출신 문제 때문인지 반대파로 보이는 자들도 많아서 대조영 못지않게 생고생을 많이 하는 인물.[1] 이덕화가 천추태후(드라마)에서 강감찬 역을 맡을 때 강감찬과 설인귀가 겹쳐 보인다고 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천한 출신이라 그런지 글을 못 읽는 등 무식한 모습을 보이나 그 외의 모든 능력, 예를들면 상황 판단 능력과 임기응변 등등이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만큼 캐릭터 자체는 상당히 명민하다고 볼 수 있다. 무인으로 출세한 인물답게 무력도 상당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이라는 대조영도 주인공 보정을 받아서 망정이지 죽어라 구르는 모습[2] 을 자주 보이는 만큼, 설인귀 역시 작중 안습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빼놓을 수 없는 특징으로는 신의를 중요시한다는 점인데, 대표적으로 대중상이 설인귀를 한번 살려주고 수없이 많은 도움을 받는다. 또한 2차 고구려 정벌에서 대패하자 패전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갇혀 개고생을 하는데, 측천무후나 거란에게 책임을 돌리면 장땡인데도 끝내 언급하지 않고 자신이 다 뒤집어쓴다.[3] 이들은 나중에 설인귀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의외로 의리 못지않게 뒤끝도 상당한 편인데, 뭔가 상대방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면 반드시 복수를 한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전공을 모조리 가로채는것도 모자라 매질까지 하고 쫓아냈던 부복애가 나중에 패전의 주범으로 몰리게 되어 부복애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자 단칼에 죽여버리고 적당히 둘러댄다. 뒤끝의 정도는 별 상관 없어서 방효태는 설인귀 휘하 거란 병력들을 이 옮기고 말똥냄새 나는 잡군이라고 무시하다가 나중에 이들이 큰 전공을 세우자 역으로 설인귀가 방효태의 발언을 들고와서 깐다.
2. 극중 행적
2.1. 1차 고당 전쟁
첫 등장 때부터 거란족 출신의 말단 병사[4] 라고 당나라 장수에게 무시당하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극초반에 대중상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당나라 장수들을 구하는 등 상당한 활약을 펼쳤으며 그 신묘한 무예를 눈여겨본 당태종에 의해 그 자리에서 덜컥 장수로 임명되었다. 이후에 차차 공을 세워 나가며 거란 출신이라 멸시받은 와중에도 당나라에서 제일가는 명장으로 거듭났다. 이후에 고구려 멸망에도 크게 일조하였으며 계속해서 고구려의 부활을 기도하는 대중상, 대조영 부자와는 평생의 숙적으로 지냈다. 그와중에 대중상과는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를 친분을 쌓아왔다.
1화의 요동성 전투에서 보급부대 말단병사로 첫 등장한다. 작중 언급에 의하면 천출인데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당나라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요동성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와중에 요동성의 군량고 위치를 알아낸 설인귀는 부복애라는 장수에게 군량고를 습격하자고 제안한다. 부복애와 강하왕 이도종은 군량고를 습격해 박살을 내었고, 식량 부족에 시달린 요동성은 결국 함락당하고 만다. 이 공로로 부복애는 장군으로 승진하지만, 부복애는 자신을 도와준 설인귀에게 포상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군영 이탈죄를 물어 설인귀를 처벌한다.
이후 포로로 잡혀 나무에 매달려있던 대중상(대조영의 아버지)를 감시하는 역할로 재등장. 대중상에게 물을 줄려다[5] 대중상의 계략에 낚여오히려 인질로 잡히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대중상과 함께 요동성을 탈출한다. 도주중 당나라 추격대에 포위당했으나, 때마침 부지광이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 추격대를 물리친다. 부지광은 설인귀마저도 죽일려고 했으나 대중상은 자신을 도와준 자를 죽일 수 없다며 설인귀를 살려보낸다.
안시성 전투에서 강하왕 이도종과 방효태가 부지광의 고육지책에 낚여 오히려 고구려군에게 몰살당하기 일보직전인 상황에서, 설인귀는 복면을 쓰고 나타나 고구려군의 추격을 막아내고 당나라 군대를 구해낸다. 부복애와 이도종 등은 설인귀의 정체를 알자 설인귀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당태종 이세민은 설인귀의 공로를 치하하여 그를 장군으로 승차시킨다. 이후 부복애의 제안으로 당나라 군대는 토산을 쌓기 시작했는데, 설인귀는 고구려 군이 분명 토산을 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선, 지형을 탐색하여 아예 예상 경로까지 예측한다. 이도종 등의 상관들은 그를 무시했으나, 설인귀는 명령도 무시하고 자기가 예측한 장소에서 매복을 하였고, 예상대로 대중상과 고구려 군이 그 곳으로 잠입을 시도한다. 매복에 낚인 고구려군은 몰살당했고 대중상역시 포로로 잡히나, 아직까진 당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없던 설인귀는 이전의 은혜에 보답한다며 대중상을 살려보낸다.
그러나 고구려군이 토산밑에 땅굴을 파서 토산을 무너뜨려버렸고, 부복애가 패전의 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부복애에게 앙심을 품고있던 설인귀는 부복애를 사로잡으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독단으로 부복애를 처단해버린다. 홍패는 원래 부복애의 부하였으나 이 쯤해서 설인귀의 부하가 되었고, 이후 평생동안 설인귀에게 충성을 바친다.
안시성 전투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당나라군에 피해가 누적되면서, 전황은 오히려 고구려 군에게 유리하게 되었고, 결국 당나라군은 안시성에서 철수했는데, 양만춘은 깃대를 화살로 맞추어 그 깃대가 당태종의 눈을 베게 만든다. 이 때 당태종 옆에 있었던 설인귀는 이세민의 상처를 지혈해준다. 이후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에게 추격당하고, 최소 3일을 버텨야 했던 이도종이 이끄는 결사대가 겨우 하루만에 전멸하는 막장 상황에서, 설인귀는 당태종에게 자신이 가짜 황제 노릇을 하여 시간을 벌겠다는 제안을 한다. 각종 패배로 인해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은데다 설인귀가 마음에 들었던 당태종은, 설인귀에게 '최대한 오래 버텨라'가 아닌 '살아서 돌아오거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여간 설인귀는 가짜 황제 노릇을 하면서 3일을 버텼는데, 하필이면 사신으로 온 인물이 대중상인지라 금방 계략이 들통나버린다. 곧 고구려군이 공세를 가했고,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는데다, 무조건 살아돌아오라는 황제의 명령도 있는 만큼, 설인귀는 도주할 준비부터 한다.
설인귀와 홍패는 간신히 살아남아 당태종에게 돌아왔고, 결국 1차 고당전쟁은 오히려 고구려가 당나라의 영토 일부를 빼앗고, 국경지역을 약탈해버리는 결과로 끝난다. 자존심이 상한데다 수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충격에 빠진 당태종은 드러누웠고, 자신의 진가를 인정해준 당태종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설인귀는, 고구려를 멸망시켜 당태종을 위한 복수를 완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2.2. 2차 고당 전쟁
2차 고당전쟁 무렵에 안시성 전투 당시 태어난 대조영(모종의 이유로 본명이 아닌 개동이라고 불렸다)이 성인이 될 무렵, 설인귀는 다른 장수들에게 밀려 뒷전 신세가 된 상태였다. 당태종 사후 다른 장수들은 천출에다 이민족 출신인 설인귀를 차별하였고, 이에 설인귀는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준 측천무후 편에 섰는데, 다른 장수들은 측천무후를 적대하다보니 설인귀는 더욱 무시당할 수밖에 없던 것. 2차 고당 전쟁 직전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는 5부가 귀족들을 조종하여 연개소문을 암살하고자 했으나, 암살계획이 대조영에게 발각되어 결국 실패하고 만다. 연개소문측은 암살의 배후가 설인귀임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결국 설인귀와 홍패를 당나라로 돌려보낸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재침공 했으나, 당나라 군부는 설인귀를 철저히 배제하였고, 휘하의 부하라고는 홍패밖에 없는 설인귀는 영주 쪽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거란부족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영주로 떠난다. 이런저런 고난 끝에(고려성으로 가던 대조영이 거란에 잡혔다가 초린을 인질로 잡고 탈출하기도 했다.),설인귀는 영주성을 거란에게 주는 조건 하에 거란군을 지휘하게 되었고, 이 때 이해고와 초린을 부하로 들인다. 당나라 장수들은 거란군을 냄새난다며 무시하고는 보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고는 고구려의 방어선을 우회하여 연남생이 이끄는 고구려군을 매복 공격[6] 하여 몰살을 시키는 등 큰 활약을 하였고, 거란군에 대한 평가는 반대로 뒤집힌다. 이때 대조영측은 당나라군으로 위장하고는 보급선을 교란하였고, 이세적은 설인귀에게 대조영을 잡는 임무를 주었으나, 작전 도중 그만 초린과 이해고가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해고가 초린을 구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대조영에게 작전 계획을 다 불어버리면서, 당나라의 총 공세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후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 군에 쫒겨 도주하던 중, 화가 치밀어오른 설인귀는 연개소문을 향해 활을 한번 쏴봤는데, 화살이 연개소문의 가슴에 꽂힌다(나중에 연개소문은 이 상처가 악화되어 죽는다). 고구려군이 코 앞까지 쫒아오자 방효태는 혼자 남아서 고구려군을 막아보겠다고 제안했고, 설인귀는 방효태에게 시비를 걸다가 살아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방효태는 결국 대조영에게 처단당했고, 그 사이에 설인귀와 거란군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간신히 돌아오긴 했으나, 문제는 당나라 조정에서 패전의 책임을 설인귀에게 묻고자 했던 것. 거란에 있던 설인귀와 홍패는 장안으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패전의 책임을 거란에게 씌울 수 있었음에도 설인귀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적은 패전의 책임을 측천무후와 거란에게 씌운다면 설인귀를 다시 복직시켜 주겠다며 제안을 하지만 설인귀는 끝내 거절하였고, 결국 설인귀와 홍패는 쫒겨나고 만다. 설인귀와 홍패는 모진 고생 끝에 완전 상거지가 되어 간신히 영주에 도착하는데, 설인귀가 거란을 팔아먹기는 커녕 오히려 모든 책임을 자기 혼자 뒤집어 쓴 것에 감동한 이진충은, 설인귀를 끝까지 돕기로 약조한다. 이후 이해고, 초린 일행이 고구려에서 첩자활동을 하는동안, 설인귀는 영주에서 거란군을 조련하며 고구려 공격을 준비한다.
2.3. 3차 고당 전쟁
양만춘이 암살당한 이후 당나라는 고구려를 또다시 침공한다. 이에 고구려에서는 외교로 해결한다며 설인귀에게 사신을 파견하지만, 설인귀는 사신을 만나기는 커녕 바로 사신의 목을 쳐버리고는, 거란군과 함께 안시성을 공격한다. 물론 안시성을 공격한 것은 전략적 이점 보다는 1차 고당전쟁의 원한을 갚고자 했던 것. 그러나 안시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인지라 공격은 지지부진했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못할까 우려하던 거란의 이해고는 인간쓰레기 신홍의 전략을 받아 들여 설인귀에게 먼저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안시성을 점령해도 늦지 않다고 제안한다. 결국 설인귀는 이를 받아들여 고구려 군 몰래 전선을 빠져나가 검산성으로 향한다. 검산성에서 당나라 본대를 막고있던 고구려군은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했고, 고구려군 본대를 이끌고 있던 지명천 장군은 설인귀와의 일기투에서 패하여 결국 홍패의 칼에 맞아 전사한다. 이후 본대와 합류해 이해고,초린 일행을 잡입시켜 성문이 열게 하여 평양성을 함락시킨다.
2.4.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성의 안동도호부를 맡게 되나 대조영을 비롯한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의 기습을 당하여 매번 낭패를 보았지만 이해고가 도와줘서 대조영을 제거할 계책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요동성으로 안동도호부를 옳긴 이후 다시 돌아온 대조영의 동명천제단 세력이 당나라 요인들을 살해한다. 이후 이해고를 불러 동맹천제단을 추적하려 애쓴다. 이해고의 필사적인 추격으로 동명천제단이 사라지고 보장왕마저 압송해간 후 안동도호부는 연남생에게 맡기고 본인은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문이 온갖 계략으로 사로잡은 대조영을 없애려고 획책을 부리나 귀부산의 인간 사냥터까지 가서 대패를 당하자 이현과 연관되어 죄를 묻게된 이문의 압송을 담당하고 살아남은 대조영에게 같이 동행한 대중상과 함께 충성 맹세를 받게 되었다. 그의 의도를 예측한 미모사가 대중상에게 미리 충성 맹세 하라 지시한 것. 이후 대조영은 이문을 피해 당나라의 손에서 빠져나가고 대중상도 설인귀를 직접 무력으로 설득해 그렇게 당나라를 떠났다.
2.5. 후반부 행적
대조영이 당나라로 탈출하고 10년후 이진충을 달래 거란과 당나라가 싸우지 않게 하려하지만 조문홰가 살해당하고 거란이 반란을 일으키자 원정군을 이끌고 거란을 침략한다. 이문을 미끼로 삼아 대조영과 거란군을 유인하고 그 사이에 이해고의 거란군을 급습하여 거란에 큰 타격을 입히고 이해고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영주성까지 다다르면서 거란을 압박하지만 대중상이 이끄는 3만 군대가 지원군으로 오자 상황은 백중지세가 된다. 해결책을 찾는 도중 이문이 화형당하게 생기자 이해고와 대조영이 주도권 싸움을 하기 위해 이해고와 이문을 포로 교환을 한다.
왜 자신을 구했냐는 이문의 말에 자신은 나이가 들어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고백하여 이문을 후계자로 임명한다.[7] 그 동안 설인귀에게 온갖 모욕과 멸시를 주었던 이문은 설인귀가 자신을 구해준 것뿐만 아니라 위로해주면서 이런 결정을 내리자 이후부터 이문은 '''설인귀의 충복이자 오른팔이 되어 홍패와 함께 설인귀를 보좌한다.''' 영주성을 공격하지만 대조영의 계책으로 패배하고 홍패의 등쌀에 마지못해 시체로 위장하지만 대중상에게 들킨다. 대중상은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다 이지경이 됐냐"며 한탄하고, 설인귀도 이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죽이라 한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라는 설인귀의 말에도 대중상은 설인귀를 죽이지 못하고 놓아준다.[8]"나는 100명의 이해고보다 단 한 명의 이문이 더 소중하다! 비록 이해고는 훌륭한 장수이기는 하나 내 적이다. 허나 이문이 저놈은 내 수하이니 자식과도 같다. 말을 좀 안 들어도! 말썽을 피워도! 제 자식을 죽게 하는 부모는 없느니라!"
본국으로 돌아온 설인귀는 측천무후에게 거란과 대조영을 갈라서게 만들기 위해 대중상을 진국공에 봉하라는 조언을 한다.[9] 그리고 설인귀의 예상대로 이 일을 계기로 거란과 대조영측은 한동안 서로를 의심하고 대립한다. 돌궐의 원정군을 준비하라는 측천의 명에도 불구하고 설인귀는 묵철을 찾아가 영주를 공략하라며 회유한다. 때마침 상황이 잘 돌아가 묵철에게서 영주를 공격하겠다는 서안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측천은 예전에 총기를 잃고 약간의 광기까지 가지게 된 상태라 이문은 측천과의 만남을 피하라 권유하지만[10] 그럼에도 굳이 측천을 만나 용서를 받지만 측천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던 와중 대조영이 요동을 정벌한 탓에 그곳을 지키던 양소위가 도망치듯이 장안에 오자 양소위와 대립한다.
이진충이 죽어 거란과 대조영의 유대가 예전같지 못함을 간파하고[11][12] 이문을 돌궐로 보내 동맹을 맺게 하고, 본인은 안시성을 찾아가 대조영에게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거란을 공격하라 권유하지만 거절당하고 대조영이 세워놓은 오합지졸 군세들을 보고 돌아온다.[13] 대신 거란을 찾아와 손만영과 이해고를 회유해 대조영을 공격하게끔 설득한다. 설인귀의 계획대로 이해고가 출병하자 그 사이에 돌궐과 당나라 연합군이 영주성을 습격하고 설인귀는 적절하게 합류한다.[14] 이해고의 부재에도 연합군이 영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대책을 세우는 도중 이문에게서 이해고가 대패했다는 사실을 듣고 손만영을 항복시키기 위해 영주성을 찾아간다.[15] 자신들을 함정에 빠뜨린 원흉을 죽이려는 손만영에게 이해고가 대패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16] 결국 손만영이 항복을 택하지만 성안으로 들어온 묵철이 본색을 드러내 손만영과 설인귀의 뒤통수를 거하게 쳐버린다. 그동안 오만방자한 돌궐의 행태에도 어떻게든 참아왔지만 자신의 이름까지 먹칠을 한 행동에 설인귀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다만 이는 오래 전 고구려 멸망 때 설인귀도 똑같이 저질렀던 짓이기도 했다. 당시에 거란족 또한 고구려 원정에 참전했으니 같은 상황의 오마주인 셈. 그러나 영주성 공격 때 설인귀는 진심으로 거란족을 박살내고 싶지는 않았던 데다가 이진충, 손만영과도 나름 오랜 친분 겸 악연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런 무차별적인 학살을 원하지 않았다는 차이점은 있다.
영주로 잠입한 이해고의 포로를 통해 이해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묵철에게 이해고를 잡으러 간다 선언한다. 그러나 묵철도 거란 함락의 전공을 빼앗길 수 없기에 설인귀가 잡은 포로를 강탈하여 이해고를 잡으려들자 인내심이 폭발한 설인귀는 포로를 살해해버리고 이해고를 잡으러 요하성으로 간다. 그러나 이해고의 저항이 거센 탓에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는 사이 묵철의 돌궐군이 뒤따라온다. 묵철이 이해고를 비롯한 거란인들이 보는 눈앞에서 손만영을 참살해버림으로써 그들이 격분하는 병크를 저지르자 성을 함락시키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와중에 예전에 이해고에게 투항한 당나라 장수들을 통하여 돌궐군 몰래 성을 접수하여 이해고를 비롯한 수뇌부들까지 포로로 잡는데 성공한다. 성안에 들어온 묵철이 거란 포로들을 강제로 데려가려하자 신경전을 벌이는 도중 대조영의 군사에 의해 요하성에 갇히게 된다. 대조영이 거란 포로를 받는 조건으로 길을 열어주자 영주로 귀환한다.
대조영에게 도망쳐온 이해고를 통해 대조영이 동모산으로 백성들을 새로운 나라를 세울 계획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측천에게 원정군의 총사로 이해고를 추천한다. 이해고와 이문이 양소위와 장현우를 살해하자 어쩔 수 없이 측천에게 이 사실을 고한다. 벌은 받겠지만 대조영이 패한 다음 받게 해달라며 측천에게 주청한다. 이해고가 이끄는 원정군이 장기전으로 갈 경우 불리해질 것을 예상하고 군수물자를 보급해준다. 이때 포로로 잡힌 대중상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사신을 맡아달라 하지만 거절당한다. 천문령 전투에서 대중상이 당나라군을 상대로 동귀어진을 시도하자 대중상을 죽이면 고구려군이 저항이 거세질 것을 내다보지만 끝내 대중상은 이해고에게 죽고 난전이 벌어진데다가 이검이 데리온 말갈군에 의해 본진까지 털려버리고 도주한다.[17] 도주하는 도중 이문을 만나 패배 소식[18] 을 확인하고 다 같이 자살하려 하지만 차마 하지 못하고 영주로 귀환한다.
노환으로 쓰러지면서도 이문에게 대조영을 물리칠 마지막 계책을 알려준다.[19] 허나 이문은 실패하고 죽어가는 설인귀에게 차마 실망감을 줄 수가 없어 이문은 거짓으로 돌궐과 동맹이 성공했다는 거짓보고를 하고 설인귀를 대조영과 이해고를 넘는 진정한 영웅이라 추켜세운다.[20] 이에 설인귀도 기뻐하며 이문이 있었기에 자신이 그 동안의 숙적들(대조영, 이해고 등)과 싸울 수 있었다며 고백한다.
그리고 이문이 장안성으로 떠나자 당태종의 환영을 보면서 자신의 여정을 회상하고 극에서 퇴장했다.'''설인귀''': 이문아... 정말 고맙구나. 내 비록 몸이 늙어갔어도 한순간도 대조영이 두렵지 않았느니라. 그건 말이야...이문이 니가 날 지켜줬기 때문이야.
'''이문''': 장군이야말로 이 못난 이문에게 진정한 사람의 길을 가르쳐주셨사옵니다.
'''설인귀''': 그리고...홍패야.
'''홍패''': 예, 장군...
'''설인귀''': 날 위해서 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홍패''': 아니옵니다, 장군. 이 홍패가 허구헌 날 장군의 속만 썩혀드렸사옵니다.
'''설인귀''': 아니야, 아니야... 너는 내가 가장 낮은 밑바닥에 있을 때도 날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느니라... 내가 가자고 하면 그 곳이 불 속이든 물 속이든 가리지 않고 따라주었느니라...
죽는 모습이 나오진 않았지만 고령의 나이와 병의 위중함으로 볼때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을 가능성이 높다.폐하...이 설인귀를 용서해주시오소서... 이 못난 놈이 끝내 고구려의 부활을 막지 못했사옵니다. 대조영... 그 놈에게... 패하고 말았사옵니다... 폐하... 선황 폐하... 폐하! 이... 이 설인귀도 데려가시오소서! 폐하...! 폐하...!
3. 기타
상당히 인간적인 미가 무척 많은 것이 주목할만한 점. 오랜 원수였던 대조영도 애증의 관계였던 대중상의 눈물과 호소에 감동받아 풀어주는 등, 대인배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부관인 홍패와의 코메디 씬 등이 돋보인다. 예를 들자면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설인귀가 편지를 받아들고 읽는 척 하자 곁에서 홍패가 '''"장군, 거꾸로 드셨습니다."'''라고 툭 내뱉는 등... 이덕화의 열연이 특히 빛났던 캐릭터로, 그 인기는 주인공인 대조영을 뛰어넘었으며 사실상 이 사극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이민족에 대해서라면 지극히 배타적이었던 기존 사극의 틀을 깨부수고 설인귀와 같은 주요 악역에게도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과 호쾌함, 그리고 코믹함'''을 불어 넣어 훌륭한 캐릭터를 창조해낸 점은 획기적인 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인공이 '''사극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개고생을 하는 사극'''의 주요 악역인 만큼 역시 온갖 개고생을 겪는데 극중에 패전의 책임을 지고 쫓기던 중에 마굿간에서 여물을 훔쳐먹는다거나 권력 투쟁 중에 별 추태스러운 일도 겪는 등 갖은 개고생을 하며 주인공인 대조영에 지지 않는 포스를 발산하면서 '''성장형 캐릭터'''가 뭔지 보여줬다.
작 중 수많은 인물들이 설인귀와 교감하거나 적대하더라도 실력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란족과도 거란국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적대하기 전까지 계속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며[21] 평생 적대한 고구려 세력에서도 대중상과 걸사비우와 인연을 맺고 '''그를 늙은 오랑캐로 보고 천대하던 이문마저도 끝내 진정한 수하로 만드는 강력한 인물.'''
1회부터 134회까지 최수종도 못한 전회 출연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것까진 좋은데 역사속의 설인귀와는 달리 무려 10여년을 더 살아 나중엔 좀비로 불렸다. (실제로 설인귀는 683년에 죽었고, 발해는 698년에 건국되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발해 건국 이후에도 설인귀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생몰년도가 실제 생몰년도와 다른인물이 수두룩하다 일단 제3차 고당전쟁 전 667년에 죽은 소정방과 669년에 죽은 이적도 고구려 부흥운동당시까지 살아있고 발해 건국 전에 죽었던 걸사비우도 발해 건국까지 살아있다.) 당연히 역사속의 설인귀는 대조영과 전혀 엮이지 않으며, 이미지를 훼손했기 때문에 나당전쟁에서의 패배도 다 묻혔다.
이세민 이후의 주군인 측천무후와는 오래전부터 공생해온 관계이고 설인귀 쪽에서 지략도 뛰어난데다가 오랫동안 충성을 바친 탓에 남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측천에게서도 신뢰를 받는다.[22] 때문에 설인귀가 당나라를 배신한 이해고를 추천했을 때도 이해고는 못 믿지만 설인귀를 믿는 기분으로 원정군을 이끌게 했다.
하층민 출신의 천하장사이며, 능력이 출중하지만 천한 출신 때문에 오랜기간 멸시와 차별을 받았다는 점,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상관을 진정한 주군[23] 으로 여겼다는 점, 그리고 임혁이 연기한 캐릭터와 애증의 관계라는 점에서[24] , 이덕화가 전작 무인시대에서 연기한 이의민 캐릭터와 비슷한 점을 보인다. 차이점이라면 이의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설인귀는 간간히 개그캐릭터 모습을 보였다는 것. 배우개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설인귀는 68화에서 계필사문의 도적단과 접전을 벌이던 도중에 양손도끼를 빼앗아 휘두르기도 했는데, 도끼 휘두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이의민이다.
촬영중 이덕화가 대형사고를 겪어 입원한 적이 있다. 당시 아래 앞니 전체를 다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현재 앞니는 전부 임플란트라고 한다.
배우개그인지 초반에 낚시를 좋아한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1] 대조영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노비로 전락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제자리를 찾긴 하지만 백제성에서 대조영의 관상을 본 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는 마을 촌장이나 전쟁에서 세운 공이 크다하나 노비한테 장군 자리를 주는 것은 반대하는 신료들에게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본래 신분은 노비가 아니였다고 반박해주는 등 순수한 능력만으로 자수성가했다고는 하기 어렵다. 오히려 저주받은 아이로 찍혀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였던 대조영을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살렸으니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2] 사극 주인공들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개고생을 많이 했다.[3] 설인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적과 소정방이 원하는 답이 저 둘이었다. 측천무후는 정치적으로 엮였다 쳐도 거란은 패전의 주범이라고 봐도 무방하므로 적에게 잡혀 기밀을 술술 분 이해고를 당나라로 압송하면 끝인데 오히려 기회를 주고 자신이 잡혀간다.[4] 실제 설인귀는 오늘날의 산시 성 윈청(运城) 허진 시(河津市)에 해당하는 강주 용문 출생으로 엄연한 한족이다. 등용문으로 유명한 바로 그 용문이다. 말 그대로 용 된 꼴.[5] 동정이 아니라 자신이 관리하는 포로가 죽으면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6] 첫번째 공세에서 연남생은 당나라 군을 방어선 뒤쪽의 골짜기로 유인하여, 당나라군을 박살내었다. 이해고는 방어선을 멀리 우회하여 골짜기로 숨어들었고, 똑같은 전술을 시도하던 연남생은 역으로 거란군의 매복에 걸리고 만다.[7] 원래는 이해고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지만 이해고가 당나라가 아닌 거란국의 장수가 되었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대조영과 이해고를 이긴 이문을 후계자로 생각한 것.[8] 예전부터 설인귀가 쌓아온 친분 탓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대조영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적이 있어서 차마 죽이지 못했다.[9] 역사적 사실로 걸사비우도 허국공에 임명하는데 그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는 내레이션으로 걸사비우를 허국공에 봉하였다 라고 한마디 짧게 나오긴 하는데 너무 금방 지나가버리는데다 드라마에선 멀쩡하게 걸사비우보다 위인 대조영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어색한 장면.[10] 설인귀가 원정군을 준비하라는 측천의 말을 어겼기에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기에 피하라고 권유한것.[11] 더군다나 거란은 유민들을 주겠다는 수차례 약속에도 불구하고 대조영의 통수를 친 탓에 사이가 안좋았다.[12] 이진충은 대조영과의 동맹을 위해 유민들을 내어주자는 입장이었고, 자신의 사후에도 이를 지키라는 유지를 남겼지만 이해고와 인간쓰레기 신홍을 비롯한 강경파들이 실권을 쥐고 있던데다가 황제인 손만영은 유우부단한 성격인 탓에 지켜지지 않았다.[13] 사실 설인귀도 이게 가짜라는 것을 눈치챘다.[14] 이 와중에 설인귀를 알아보지 못한 돌궐인들에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15] 다만 처음에는 성문으로 유인하여 대화를 하려했지만 초린과 검이가 들어올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한 탓에 결국 성안으로 들어왔다.[16] 여기에 이문이 이해고의 깃발까지 보여 확인사살까지 해준다.[17] 홍패는 대중상이 죽었으니 잘되었다며 기뻐하지만 설인귀는 되레 흥패의 뺨을 연신 후려치며 "대중상은 그렇게 죽으면 안되었다"며 노발대발하면서 슬퍼했다. 개인적인 슬픔도 있었지만 고구려군이 격분한 사실에 불안해했다. 당태종 이세민을 따라 종군했던 안시성 전투를 시작으로 일생동안 고구려인과의 전투를 벌이면서 그 경악스러울 정도의 악바리 근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온갖 일을 겪으면서 수많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18] 대본에 따르면 이문을 포함하여 10여 명 밖에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병사들을 다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문의 뺨을 때린건 덤[19] 대조영이 나라를 세웠다고는 하나 이미 천문령 전투에서 군사를 많이 잃어 군력이 허약하므로 돌궐을 부추겨서 발해를 치도록 만들라는 것.[20] 사실 설인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생각하는 이문의 정성을 생각해서 거짓으로 속은 척 해준 것이다.[21] 사실 설인귀의 출생이 (어디까지 드라마상에서) 거란족인데다가 당나라 조정과 군대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워낙 왕따를 당하다 보니 그를 받아주는 사람들이라고는 거란족이나 측천무후가 전부였다.[22] 측천은 문무대신들을 무능하다고 까내리지만 설인귀에게 만큼은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이런저런 지략을 내보이는 설인귀에게 감탄을 하고 믿어준다. 아무래도 측천 입장에서는 온갖 고초를 겪고 그 자리에 오른 자신과 이민족 출신으로 수많은 고행을 겪으며 자수성가한 설인귀를 동일시 한 모양.[23] 설인귀는 당태종, 이의민은 이의방.[24] 무인시대에서 임혁은 두경승, 이덕화는 이의민으로 등장하며, 대조영에서도 비슷하게 애증의 관계로 대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