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전차
1. 기본 개념
Cruiser Tank
전차의 한 갈래. 영국군의 전차 운용체계의 하나로, 보병과 함께 움직이며 화력 지원을 하는 종래의 전차와는 달리, 적 전선을 돌파하거나 우회하면서 중심부를 타격 섬멸하며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는 개념으로, 전간기에 등장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활약했다.
일단 전간기 서방 열강이 전차의 운용법에 고심했던 흔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즉, 보병전차에 상대되는 개념이며, 전통적인 보병 중심의 전술 체계에서 탈피하여 과거 기병이 수행했던 임무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초기형 3, 4호 전차도 순항전차, 보병전차의 개념에 영향을 받은 점이 드러나며, 특히 3호 전차가 순항전차의 개념이 많이 드러난다. 기동성을 중시한 조향장치와 대전차전을 중시한 주포 등 이처럼 중형전차, 경전차, 순항전차의 관계는 무 자르듯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사용자가 붙인 분류를 따라야 한다.
기본적으로 당시 기준으로 고속성능이 요구되었으며, 대신에 장갑 방어력은 극초기 모델의 경우 총탄과 포탄의 파편 정도를 견딜 수준(14mm)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경시되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전차 설계 자체가 경전차에 치중되었기 때문으로 순항전차 만의 문제가 아니였는데, 포탑을 소형화하고 남는 무게를 장갑에 집중한 프랑스와 처음부터 방호력만 생각한 영국의 보병전차를 제외한 소련의 BT, T-26 시리즈 전차, 미국의 M2 경전차, 독일의 1 ~ 4호 전차 모두 14mm대의 장갑이였고 중형전차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가벼웠다.
즉 순항전차의 방어력이 부족했다는 의미는 소련과 미국의 중형전차(T-34, M3, M4)보다 장갑이 부족했다는 뜻이지 절대로 독일보다 얇았다는 뜻이 아니였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듯이 3호, 4호전차도 중형전차보다는 순항전차에 가까운 개념의 전차들이였기 때문에 장갑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영국의 순항전차들과 공유하고 있다. 결국 독일의 3호, 4호 전차와 순항전차는 방어력의 부족에 시달리다 전면장갑이 중형전차와 별 차이 없게(70mm~100mm) 되고, 순항전차 개념으로 얇은 측면장갑을 가졌던 3호, 4호전차는 대전차소총에 시달리다 쉐르첸을 장착하였으며, 순항전차는 신형이 나올때마다 측면이 두꺼워져 최종적으로 46mm가 되어 중형전차 중에서도 가장 측면이 두꺼운 T-34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순항전차가 유독 장갑이 얇다고 알려진 이유는 영국이 순항전차를 설계할 때 복합장갑(2~3중)과 공간장갑을 많이 썼는데, 이 중 겉에있는 장갑의 수치만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복합장갑 구조 때문에 영국 순항전차는 리벳접합을 2차대전 끝까지 고수해야했다. 덕분에 장갑 교체, 유지보수, 충격 저항력[1] 및 생산에는 유리했다고 하지만 리벳의 단점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고, 용접방식으로 제작한 후기형 크롬웰은 줄어든 리벳의 무게만큼 장갑을 102mm까지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리벳으로 장갑을 추가한 사례로 소련의 KV-1E로 리벳 방식으로 추가 장갑을 장착하고 있다.
2. 등장
전간기 동안 세계최고의 전차 개발, 생산, 수출국의 위치를 차지한 영국은 1차대전식의 육상전함을 탈피한 여러 종류의 전차들을 개발하였으며, 점차적으로 전차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미래의 전차는 기존의 전차들처럼 참호를 돌파하고 보병을 지원하는 육상전함 내지는 이동 토치카의 역할을 벗어나 보다 새롭고 다양한 역할이 가능할 것이라는 발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이론은 풀러, 호바트[2] , 리델 하트등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갔으며, 영국 육군내에서 전차의 운용을 놓고 종래의 보병 지원용 이동 토치카 주의와 새로운 고속전차의 이론이 충돌하면서 결국 영국의 차기 전차 개발은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로 이원화 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서 1936년 최초의 순항전차 Mk.1(A9)이 등장한다.
3. 개발순서
그러나 순항전차의 개발은 본격적인 대량 생산 전 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방호력도 당시의 3, 4호전차와 비슷했고 사막에서도 신뢰성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된 커버넌터부터 문제가 심각해졌다. 때문에 이를 해결한 크롬웰 계열 전차가 등항하기 까지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M3 리와 M4 셔먼, M10 울버린 등을 얻어와 상당수의 순항전차를 대체하게 된다.
3.1. 순항전차 Mk. I, Mk. II (A9, A10)
A9, 즉 순항전차 Mk.1은 외양부터 리벳접합에 기관총탑이 있는 구식이며, 현가장치는 신뢰성은 좋지만 순항전차용으로 쓰이기에는 반응속도가 느렸다. 게다가 상용 버스 엔진을 그대로 가져다 쓴 엔진은 출력이 부족했다. 덕분에 최초의 순항전차로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40km/h의 최고 속력을 기록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2. 크리스티형 전차 (A13) 시리즈
A9과 A10이 모습을 드러낸 1936년 영국의 기갑부대 총감 마텔 소장은 BT시리즈의 우수한 기동성에 주목하고 그 근원인 크리스티형 전차를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한다. 그에 따라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기반으로 한 신형 순항전차 Mk.3(A13)가 1937년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부터 코멧까지는 크리스티 현가장치와 그 변형을 사용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3. 순항전차 Mk. VI (A15) 크루세이더
커버넌터와 동시에 진행되었지만 커버넌터는 심각한 결함가지고 있어 사용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커버넌터보다 조금 나았을 뿐 무리하게 소형화한 엔지니 잔고장과 과열이 밥먹듯이 일어나는 등 완전한 해결은 아니였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4. 순항전차 Mk. VII (A24) 카발리어
크루세이더가 아직 채 완성되지 않았던 1940년말, 6파운드포 탑재를 전제로 한 신형 순항전차계획이 수립되었다. 결국 이전까지의 전차는 상황에 쫒겼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요구 사항은 6파운드포 또는 그 이상의 주포를 운용할 수 있는 3인승 포탑, 76mm이상의 장갑, 보다 강력한 엔진, 그리고 24t 이내의 중량이었다. 이에 따라 처칠을 만든 벅스홀은 처칠 보병전차의 축소형인 A23을, 크루세이더 전차를 만든 너필드측은 크루세이더의 확대형인 A24를 내놓는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5. 순항전차 Mk. VIII (A27L) 센토어
너필드의 A24가 결국 실패작으로 판명되자, 신형 순항 전차를 위한 개량은 당시 영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였던 레이랜드에게로 넘어간다. 레이랜드는 크루세이더의 것과 다르지 않았던 카발리어의 현수장치와 변속기를 신형으로 교체하였고, 엔진 구획도 재설계하여 보다 미티어 엔진과 조화가 된 신형 차체를 내놓는다.
다만, 아직 개발 단계였던 멀린의 차량형이 실패할 것을 우려한 영국 육군 전차 위원회는 [3] 때문에 신형 차체에 리버티 엔진형과 멀린의 차량형인 미티어 엔진형을 각각 만들도록 했고, 때문에 A27의 리버티 엔진형, 즉 A27L(liverty) "크롬웰" 이 등장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6. 순항전차 Mk. VIII (A27M) 크롬웰
드디어 정상적인 영국전차답게 잔고장이 없고 고속성능을 자랑하며, 공수주가 조화를 이루었으나, 이미 비슷한 성능의 M4 셔먼이 대량조달되던 상태였다. 해당 항목 참조.
3.7. 순항전차 (A30) 챌린저
크롬웰의 공격능력 향상을 위해 17파운더를 부착했으나, 대실패.
챌린저 항목 참조
3.8. 순항전차 (A34) 코멧
챌린저의 실패를 교훈삼아 17파운더포의 약화 버전을 장착하며 타국의 비슷한 체급 중형전차와 비교해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코멧 전차 항목 참조
3.9. 최후의 순항전차 (A41) 센추리온
초기 개발 단계에서 순항전차로 제안 됐기는 하지만, 이후 사실상 보병전차와의 통합형 전차인 Universal Tank로 전환됐고, 이에 따라 정규 양산된 센추리온 전차는 최초의 영국식 MBT에 해당된다. 성능좋고 공수주가 조화를 이루었으며, 17파운더 포를 제대로 장착하여 화력도 상당했지만... 이미 종전 직전이라 제2차 세계대전에는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다. 그 대신 Mk.3형이 6.25 전쟁에서 활약하게 됐다.
센추리온 전차 항목 참조
4. 영연방군
4.1. 캐나다: 램 1 / 2 순항전차
- 해당 문서로
4.2. 오스트레일리아: 센티넬 순항전차
항목 참조
5. 이야기거리
대전 중반, 특히 처칠 초기형이 삽질을 시작한 무렵부터 영국군 내에서는 보병전차의 폐지가 논의되었으며, 이후 차기 전차의 개발방향은 순항전차로 선회한다. 결국 영국 최초의 주력전차인 센추리온 전차는 순항전차 개발계획에서 출발했던 것.
그러나 실전에서 순항전차는 크롬웰 전차의 등장 때까지 안습의 길을 걸었다. 초기 모델들은 방어력도 무난하고 기동력도 좋았지만 카베난터 부터는 급한 개발과정으로 인해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어 실전에 쓸 수 없는 전차였고, 크루세이더 전차는 그나마 카베난터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문제투성이였다. 크롬웰 전차는 그나마 쓸만한 차량이었지만, 고속성능을 제외하면 셔먼과 큰 차이도 없었다. 반면 보병전차들은 느리고 대보병 고폭탄이 없다는 거 외엔 추축국이 아주 싫어할 정도로 떡장이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8.8cm 대공포까지 동원되기 이르렀다.
결국 보병전차가 운용계획이 구닥다리였다면, 순항전차쪽은 운용계획은 현대적이었지만 '''군의 요구 성능과 조달 계획부터 글러먹었던 것'''.
그리고 대전 이후 영국군의 주력전차는 순항전차의 후계를 표방하여 별도의 이름이 붙은 순항전차는 모두 C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듯[4] 영국의 각세대 주력전차도 그 이름이 C로 시작한다. 하면서도 당대 최대의 장갑방어력과 당대 최저의 기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거 혹시....
6. 다른 나라의 유사한 모델
- 미군의 중(中)전차들은 영국에 공여되는 대로 순항전차를 운용하는 기갑부대로 돌려졌다. 그리고 성능면에서 대부분의 순항전차보다 전반적으로 더 나았지만 순항전차의 고속기동을 대체할 수 없어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았다.
- 독일군의 3호 전차 역시 기동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순항전차와 맥을 같이한다. 그리나 3호 전차도 생각보나 빠르게 관통력의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나마 히틀러가 관통력을 늘리라고 닥달해서 최소한의 관통력은 얻은데다가 독일군의 우수한 전차병의 노력으로 어느정도 버티지만 결국 4호 전차 장포신형을 배치해야 했다. 그 이후로도 판터같은 신형전차를 개발함과 동시에 88mm 대공포를 비롯한 대전차포에 많이 의지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