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다

 


'''Škoda A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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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다}}}
[image]
'''정식 명칭'''
Škoda Auto
'''한국어 명칭'''
스코다[1]
'''설립일'''
1895년 12월 18일
'''설립자'''
바츨라프 로린 (형), 바츨라프 클레멘트 (동생)
'''본사 소재지'''
[image] 체코, 믈라다볼레슬라프
'''업종'''
자동차 제조업
'''모기업'''
폭스바겐 그룹
'''매출액'''
€ 16.559 billion (2017)
'''순이익'''
1.274 billion (2017)
'''홈페이지'''
Škoda Auto
1. 소개
2. 역사
2.1. 로린 & 클레멘트, 슬라비아
2.2. 슈코다(Škoda) 웍스의 인수와 슈코다 오토의 시작
2.3. 제2차 세계대전
2.4. 공산주의 정권하 국영화 시절
2.5. 민주화 이후 민영화
3. 인지도
4. 한국 시장 진출
5. 생산 차량
5.1. 단종된 차량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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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체코의 자동차 기업으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자동차 회사 중 하나. 국내에선 흔히 '스코다(SKODA)'로 알려져 있으나, 체코어 표기법상으로는 '슈코다'[2]가 정확하다.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본래 중부 유럽과 동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한 회사지만, 폭스바겐 산하로 들어온 후에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서유럽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2. 역사


원래 슈코다는 에밀 슈코다(Emil Škoda)라는 엔지니어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1869년에 창립한 중공업 및 군수산업 회사다.
스코다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 5개 중 하나이다. 나머지 4개 회사는 타트라, 다임러 벤츠, 오펠, 푸조다. 창립자는 바츨라프 로린과 바츨라프 클레멘트 형제이다. 1895년에 로린 & 클레멘트 자전거 회사로 시작하였는데 이를 '''유서 깊은 중공업 재벌'''인 슈코다 웍스가 인수하였다. 스코다 자체는 자동차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철도차량과 야포와 전차부터 전함의 거대한 함포까지 생산했다.[3] 그러다가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화 이후 국영화되었는데, 공산권 내에서 품질 좋은 차를 많이 생산하여 인기가 있었고 한때 서유럽으로까지 자동차를 수출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수출에만 힘썼던 모양인지(...) 체코슬로바키아 내에서는 한국의 현대차급의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래도 트라비가 보급되던 동독보다 나은 수준이긴 했지만.

2.1. 로린 & 클레멘트, 슬라비아


1894년 체코의 보헤미아에 살던 26살의 책 판매원 바츨라프 클레멘트가 독일산 자전거의 부품을 구하고 싶어서 독일에 편지를 보냈지만 '부품을 구하고 싶다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보내시오'라고 독일어로 답장이 왔다. 화가 난 클레멘트는 그들보다 나은 자전거를 제작하고자 그의 형제 로린과 함께 터노브 근처에 자전거 공방을 세운다.
1898년에 벨로시패드[4]를 기반으로 만든 그들의 첫 오토바이는 핸들바에 엔진이 고정되고, 앞바퀴를 굴리던 탓에 위험하고, 불안정했다. 로린은 이 바이크를 타다가 앞니 두개가 빠졌다. 더 안전한 교통수단을 만들기 위해 독일의 기술자 로베르트 보쉬에게 도움을 청하여 1899년에 다시 출시한다. 1900년에 영국 런던에 수출을 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첫 수출 바이크는 꽤나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1905년, 드디어 타트라 이후로 체코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로린 & 클레멘트 사는 트럭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1924년에 제품에 불이 붙는 결함이 발생하자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다른 투자자를 유치하여 1930년부터 공장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이스파노-수이자의 기술제휴로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 라인업을 도입하였다. 이후 새로운 디자인의 백본 프레임 섀시와, 당시 아주 획기적인 공법이었던 완전독립식 서스펜션을 단 스코다 420 Popular를 생산하게 된다.

2.2. 슈코다(Škoda) 웍스의 인수와 슈코다 오토의 시작


같은 해에 이 회사로부터 ASAP(Akciová společnost pro automobilový průmys, 체코어로는 그냥 자동차 회사)라는 새로운 회사가 분사되었다. 이 회사를 당시 대기업인 슈코다 웍스가 인수하면서 ASAP는 슈코다 웍스 및 슈코다 마르큐의 상표로 차를 팔기 시작했다. 1930년대 당시 믈라다 볼레슬라프에 있는 215,000 m2의 공장에서는 3,750명의 블루컬러 노동자와 500명의 화이트컬러 노동자가 근무했다.

2.3.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LT vz. 35 경전차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전차 탑재용 주포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1938년 체코가 나치 독일에게 병합되면서 독일군을 위한 전차안을 내놓는 등 나치 독일 산하 군수기업으로 있었다. LT vz. 35 경전차는 독일군에서 35(t)라는 제식명이 붙은 채 사용되었다. 종전 무렵 슈코다 웍스와 슈코다 오토 모두 연합군의 폭격으로 공장이 박살났다.

2.4. 공산주의 정권하 국영화 시절


2차 세계대전 후에 슈코다의 공장들이 재건되었으나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당연히 국유화되었고, 이후 1990년까지 공기업으로 운영되었다. 이때까지 슈코다는 체코 기업이면서 동시에 슬로바키아 기업이었다(당시에는 나라 이름이 체코슬로바키아였기 때문이었다).

2.5. 민주화 이후 민영화


1990년 체코가 민주화된 후 들어선 정부는 슈코다 그룹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슈코다 오토를 따로 떼서 파트너로 독일폭스바겐을 선정했고, 1991년 3월에 슈코다는 폭스바겐과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당시 선진 기술이 필요함에 따른 것이었고, 폭스바겐의 투자 이후 슈코다는 꾸준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파트너십을 맺은 후 슈코다의 지분 30%를 인수했고, 1994년에는 60.3%로 지분율을 높이며 슈코다를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편입하며 이 때를 기점으로 민영 회사로 전환된다. 1995년 12월에는 슈코다의 지분율을 70% 이상으로 높였다.
한편 모회사였던 슈코다 그룹은 민영화 과정에서 잘못된 경영으로 1999년에 구조조정을 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됐고, 계열사들이 차례차례 해외 기업으로 매각되어 체코 '''브랜드'''면 몰라도 체코 '''기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게 되었다.[5] 철도차량을 제작하는 스코다 트랜스포테이션(Škoda Transportation)은 원래 이 회사 기관차 공장창이었지만 2002년 민영화가 되어 지금은 사실상 다른 기업이며 투자회사인 PPF 산하에 계열로 있다.[6]

3. 인지도


유럽 시장에서는 같은 폭스바겐그룹의 스페인세아트와 더불어 서민들이 타는 대중차라는 이미지로 자리매김 했으며,[7] 서유럽, 특히 독일에서 인기가 많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실용적인데다가 기본기가 튼실한 자동차 제조사라는 평가를 받으며, 폭스바겐의 인수 후 날이 갈수록 평가가 좋아지고 있다. 유럽 자동차 시장을 한국의 자동차 내수 시장에 대입 및 비교하자면 기아자동차와 매우 유사한 포지션이라 할 수 있는데, 자동차 업계에서 유서 깊고 신뢰성 있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으로 거대 기업에 피인수 되어 마이너 브랜드로 활약하는 것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2006년에 출시된 마케팅 도서인 "프리미엄 파워"에서는 하위 세그먼트에 신경쓰고 있는 폭스바겐 브랜드가 프리미엄급으로 되려면 폴로골프폭스바겐 브랜드 대신 스코다 브랜드로 내놓는게 어땠겠냐는 말을 할 정도.
아니나 다를까 유럽 현지에서는 현대기아차, 그중에서도 특히 기아자동차 모델들과 가장 많이 비교하는 게 스코다 모델들이다. 물론 이들은 회사의 규모에서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각자 주력으로 미는 자동차의 가격대와 수요층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다. 정확하게 따지면 공장 규모의 차이는 크지 않다. 기아자동차 역시 체코에서 유럽용 자동차를 생산하며, 스코다 공장과 규모가 그리 다르지 않다. 즉, 체코의 두 메이커가 스코다와 기아인 것이다. 그리고 스코다는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에서 인기가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그룹에서도 스코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 2012년 독일 아우토빌트지에서 스코다와 기아차의 대표 차종들을 비교 평가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는 스코다의 승리. 비슷한 성능의 차량들이었지만 미세하게 스코다 차량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약점으로는 디자인이 꼽힌다. 스코다 차량들은 굉장히 실용성이 높은 차들이지만, 동시에 못생겼다거나 아주 지루한 차라는 관점이 더 많다.[8] 거기에 스코다 차량은 택시로도 많이 사용하는 차량이기 때문에 젊은 층에서 꺼리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2012년 이후로 옥타비아를 필두로 디자인이 괜찮아지고 있다. 특히 신형 수퍼브의 경우 예전에 그 지루한 이미지와는 크게 달라졌다. 특히 예티와 같은 실용라인 차량의 디자인 역시 많이 다듬어지면서 모기업인 폭스바겐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높은 조립 만족도와 폭스바겐의 플랫폼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플랫폼 활용으로 인한 높은 고속주행 안정성은 아우토반에서도 만족할만한 주행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2013년 이후로 판매량이 30% 이상 상승하였다.
자전거로 시작한 회사의 역사 때문인지 투르 드 프랑스를 포함한 3대 그랜드 투어와 세계선수권 대회, 그리고 주요 프로팀들에게 팀 차량을 광범위하게 지원하고 있다. 덕택에 국내에서의 보편적인 인지도와는 달리 대한민국 자덕들에게는 나름 친숙한 브랜드라고도 볼 수 있다.
2015년 11월에 현대자동차가 영입한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도 스코다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적이 있다.
전차 게임 월드 오브 탱크에는 슈코다 사가 제작한 체코 전차들이 등장한다. 2017년 4월부터는 슈코다에서 라이브 방송 기반의 디지털 쇼룸을 열었으며, 공식 웹사이트를 접속하면 화상전화를 통해 차량을 관람하고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다(#).

4. 한국 시장 진출


최근 폭스바겐 그룹에서 스코다의 대한민국 진출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폭스바겐의 구동계 및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 등이 강점으로, 대한민국에서의 낮은 인지도가 약점으로 평가되는 중. 폭스바겐의 후광 때문인지, 중국에서 스코다를 팔고 있다.
하지만 2015년 9월에 터진 폭스바겐배출가스 조작 사건에 스코다의 모델들도 딱 걸리면서, 스코다의 대한민국 진출 역시 사실상 불투명하다. 일단 옥타비아가 골프의 플랫폼, 구동계를 공용하다 보니...
이후 기사에서는 일단 2016년 상반기 이후를 목표로 런칭 계획을 세웠다. 사업 설명회에서 차량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일부 기업들이 포기했다고 하는데 기존 폭스바겐의 자리와 위상을 스코다로 넘기고 한국에서 판매하는 폭스바겐 브랜드 차량의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 까이고 있다. 2016년 7월 즈음에 아우디폭스바겐 딜러사의 산하로 한국에 판매한다고 했지만, 우선협상 딜러들도 스코다의 가격에 물음표를 제시하는 바람에 2016년 7월 진출설은 물 건너간 상태. 게다가 VW의 이미지가 점점 나빠지면서 안드로메다로 간 상태다.

5. 생산 차량



5.1. 단종된 차량



6. 둘러보기




[1] 체코어 발음으로는 "슈코다" 이다.[2] [ˈʃkoda\][3] 러시아 제국 해군 때부터 소련 해군 시기까지 운용된 초기형 드레드노트 전함 강구트급 전함과 후계함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 전함이 이 회사 12인치 함포를 채택, 핀란드에서는 저 마리야급중 하나의 주포를 뜯어다 요새포로 쓰고 소련도 한척의 포탑들을 뜯어다가 요새포로 애용하는등 의외로 나름 1차대전 이전부터 전간기까지 12인치 전함 함포로 이름날렸던듯 하다.[4] 당시의 앞바퀴가 큰 자전거. 빈폴 로고로 쓰이는 그 자전거다.[5] 참고로 발전소를 만들던 스코다 파워는 두산그룹인수되었다. 스코다 파워가 체코 플젠을 기반으로 한 회사여서, 프로 축구팀인 FC 빅토리아 플젠을 소유하고 있었다. 스코다 파워가 두산그룹으로 넘어간 이후, 두산그룹은 빅토리아 플젠의 유니폼 메인 스폰서와 구장 명명권자(두산 아레나, Doosan Arena)가 되어 축구단을 통해 '두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6] 다만 이 PPF 그룹은 체코를 기반으로 한 투자회사이니 스코다 트랜스포테이션 만큼은 체코 회사로 볼 수 있을 듯 하다.[7] 세아트의 경우 젊은층을 위한 아우디 아래급 스포티 메이커로 정립되는 중.[8] 구글에 스코다를 쳐보면 마치 싸울 것처럼 인상을 쓴 것같은 차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