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보빈

 

'''알렉산더 블라디미로비치 보빈
Alexander Vladimirovich Vovin
Александр Владимирович Вовин
'''
'''출생'''
1961년 1월 27일
소련 레닌그라드
'''국적'''
(러시아계 미국인)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직업'''
언어학자
1. 개요
2. 생애
3. 언어학자로서의 업적
3.1. 고대 한일 양국의 언어 연구
3.3. 향가 연구
4. 기타


1. 개요


러시아 태생의 미국 언어학자로, 일본어한국어 연구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한국어가 부여어족의 직계 후예라는 학설의 강력한 근거를 제시, 논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생애


소련 레닌그라드(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했다. 198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구조언어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87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하마마츠 추나곤 모노가타리에 대한 연구로, 고대 일본 문학 및 일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1990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동양학 연구소에서 재직하다가, 199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1994년까지 미시간 대학교에서 재직하다가, 이후에 마이애미 대학교로 이직하여 1년간 재직하였다. 1995년부터 2014년까지는 하와이 대학교에서 재직하였고, 그동안 일본국제 일본학 센터독일보훔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2021년 현재는 프랑스고등사회과학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3. 언어학자로서의 업적


현존하는 고대 일본어고대 한국어 연구의 권위자들 중의 한 사람이며,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의 하나가 고구려어신라어의 계통 연구 및 일본의 고문헌 해독이다.

3.1. 고대 한일 양국의 언어 연구


고대 한국 남부를 '고일본어권(Old Japanese)'이라는 개념으로 보고 한반도 중남부와 일본열도의 야요이족은 계통이 같은 언어(고일본어)를 사용하였으나 Peninsular Japonic 한반도 중남부의 고일본어족은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북쪽에서부터 남하한 어족(현대의 한국어로 계승된 부여어족으로 추정)에게 흡수 및 소멸, 추방되어 한반도에서 거의 사라졌고,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어족은 일본열도에만 남아 오늘날 일본어가 되었고 북쪽에서 한반도로 남하한 어족의 직계 후예는 현대 한국어라는 학설을 발표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그의 대표적인 논문 '고구려에서 탐라까지(From Koguryǒ to T’amna)'를 참고하라. 탄탄한 이론적 무장과 왕성한 활동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기원을 다룬 학설 중 지지를 많이 받는다.
주된 근거는 삼국사기 권34, 권37이나 양서 백제전 등에서 기재된 한반도 중남부 지명이나 고유명사가 한국어보다는 고일본어와 상통하는 면이 많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일반명사나 지명을 근거로 거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44권에는 加羅語謂門為梁云라고 하여 가야에서는 梁을 문(門)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梁의 발음은 돌(twol)이었고 한국어에서 문을 '돌'로 발음하는 경우는 없다.[1] 문(門)의 고유어라는 '오래' 역시 '돌'과는 아무런 유사성이 없다. 따라서 해당 단어는 한국어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발음이다. 그보다는 고대 일본어에서 문을 뜻하는 토(と, to)와 유사하기 때문에[2] 가야 토착어와 일본어 간 관계는 가야 토착어와 한국어간 관계보다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3]
한반도 중남부와 일본열도에 동일한 어족이 존재하였다는 학설은 임나일본부설을 연상시키기에 한국인 입장에서 껄끄러울 수 있다. 해당 학설의 대표자인 알렉산더 보빈은 임나일본부설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논문에서는 오히려 임나일본부설과 배치되는 주장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4]
즉, 요약하면 한반도 중남부에는 원래 고일본어 화자들이 주로 살았지만[5] 이후 한반도의 고일본어 화자 그룹은 (대략) 기원전 7-6세기부터 만주에서 남하한 고대 한국어 사용자들[6]에게 밀려났다. 그래서 보빈 교수는 고일본어 화자들이 일부는 일본 열도로 건너갔거나 또는 언어적으로 한국어에 완전히 병합당했고. 현대 한국어는 남하한 부여어족의 직계 후예라고 주장한다.
한국학자 중에서 서울대 명예교수 김방한이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김방한 교수는 한반도에 퉁구스(알타이)적 영향을 받은 북방계 어족이 존재하는 것과 별도로, 이들과 이질적인 언어인 '원시 한반도어'[7]를 사용하는 기층적 집단이 따로 있어서 서로 공존하였다고 주장했다. 원시 한반도어를 쓰는 어족은 북방계 어족에게 흡수되거나 북방계 어족을 흡수하여 오늘날의 한국어의 전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어와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삼국사기의 수사자료(3, 5, 7, 10)은 부여계 어족인 고구려어가 아니라 원시 한반도어라고 하였다. 관련 주장은 알렉산더 보빈의 반도 일본어설과 세부적인 면에서 그 주장을 달리하지만[8] 한반도에 이질적인 언어집단 두 개가 공존했다는 입장에서는 보빈의 주장과 맥락을 같다고 평가받는다.

3.2. 고대 한국어 연구


우선 고구려어에 대한 연구 성과를 보면, 고구려어로 된 여러 지명과 인명, 관직명 등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현대 한국어와의 친연성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있다. 2020년 현재 주류 언어학계에서는 이 가설을 매우 유력하게 보는데, 보빈이 조사한 고구려어 고유명사들이나 조사 등에서 한국어 어휘와 유사한 것이 대거 발견되었기 때문이다[9].
반대로 가야어신라어의 어휘들은 일본어 어휘와 비슷한 것이 많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보빈은 초기 가야어와 초기 신라어가 일본어족에 속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임나일본부설과는 관련이 없고, 일본어를 사용한 민족들이 한반도 중남부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삼국통일 직전의 신라어는 이 일본어를 사용한 민족들이 고대 한국어를 사용하던 만주, 요서지방에서 한반도로 남하한 한국계 종족들에게 정복당한 후 동화되어 형성된 언어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결정적인 근거가 없고 일부 주장에 허점이 있어서[10] 아직 정설로 확고하게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모처럼 학계의 미스터리였던 한국어의 계통 분류에 대한 유력한 가설이 나왔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3.3. 향가 연구


향가의 해독에도 손을 댄 바 있는데, 이에 관한 유명한 연구로 초창기 향가의 일종인 서동요가 실제로는 신라 가요가 아닌 백제 가요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있다[11]. 그가 근거로 내세운 것으로 신라어 고유명사의 표기에 쓰이는 한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백제어의 음운 표기에 쓰이는 한자가 주로 발견된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이후 현존하는 서동요는 삼국시대가 아니라 고려시대에 지어진 향가이기 때문에 다소 특이점이 있다는 게 밝혀져 남풍현 교수의 이론대로 서동요, 처용가, 풍요를 고려시대 향가로 분류하게 되었다. 보빈 교수 또한 최근에 출간한 논문을 보면 역시 이 가설을 포기한 듯하다.[12] 실제로 이승재 교수가 출토한 백제 목간을 보면 백제어의 표기법 자체가 서동요의 훈주음종(訓主音從) 표기와 완전히 다르다.

3.4. 고대 일본어 연구


전술한 고대 일본어에서의 고대 한국어의 영향에 대한 연구 성과도 있지만, 그가 고대 일본어에 대해 내놓은 연구 결과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일본 고전 문학에 대한 것이다. 그에게 박사 학위를 안겨준 하마마츠 추나곤 모노가타리의 해독이 대표적이며, 다른 일본 고전들을 해독하는 연구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며 고전 일문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히고 있다. 2020년 현재는 만요슈영어로 번역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4. 기타


한국어일본어 모두 매우 잘하는 편이다. 다만, 보빈 본인의 말로는, 자신의 제1연구 대상이 일본어였던데다가 일본에서 상당히 오래 활동한 경력 덕에 한국어보다 일본어 실력이 좀 더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국어 역시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보빈이 간혹 한국어로 쓴 글들이 있는데, 읽어 봐도 외국인이 썼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전형적인 논문형 어휘와 구조로 수준도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주류 국어학계, 사학계 등에 대해 꽤나 비판적이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 학계의 민족주의 경향 때문인데, 상기한 한반도 남부 토착 언어가 일본어족이었을 것이라는 그의 학설과 달리, 한국 학자들은 한국사에서 다루는 모든 고대 국가 및 세력의 언어를 한국어족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그 밑바탕에는 민족주의적인 정치 논리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13]

[1] 한국어에서 문을 돌로 발음하는 울돌목, 돌쩌귀 등 사례가 있으니 틀린 지적일 수 있다. 일본어 토(と, to)보다도 훨씬 정확한 발음을 현재까지 사용하는 셈이다. 이들 외국 학자들이 대부분 전공이 일본어이고 한국어는 곁가지로 같이 연구하는 정도에 그치다 보니 한국어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런 사례는 오히려 울돌목, 돌쩌귀 등 돌이 고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일본어족 계통 언어의 흔적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게다가 보빈은 한국어 또한 그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는 실력자이다.[2] 신사의 토리이와 연관도 있지 않을까.[3] 가야도 여타 한국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한국어족 계열 언어의 사용자들에게 정복되었다고 본다. 다만 중앙집권체제가 제대로 이룩되지 않고, 정복이 어려운 복잡한 지형 사이사이에 소국들이 난립한 데다가, 일본어족 사용자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있었던 듯한 한반도 최남단에 있었으니 토착적 요소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4] 일본의 역대 덴노들 중의 몇몇 사람들이 고대 한국어를 쓰던 한국계라는 주장도 한 적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혐한 극우들이 벌이는 역사왜곡의 단골 주제인 진구황후의 정체도 고대 일본을 다스리던 한국인 여왕이라고 하는 사람이니, 일본의 극우들이 알렉산더 보빈의 논문을 읽어봤다면 뒷목 잡고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다.[5] 원래의 일본어족한반도 중남부에서 생겼지만, 야요이 시대 무렵, 그러니까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걸쳐 한반도의 고일본어 화자들이 오늘날의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오늘날 간토 지방의 이서 지역을 모두 일본어 사용지대로 바꾸었다고 추정한다.[6] 부여어족 계열의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로 추정한다.[7] 김방한은 '원시 한반도어'의 정체가 무엇인지 설명하진 못했다. 이 언어는 알렉산더 보빈의 말마따나 한반도 중남부에서 쓰이던 일본어족의 조상언어일 수도 있고, 고립어나 주변의 현존하는 다른 어족의 언어, 또는 소멸한 미지의 어족일 가능성도 있다.[8] 김방한의 학설은 한반도의 토착 언어가 일본어족에 속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열어둔다.[9] 물론 고유명사는 다른 언어의 어휘를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반드시 순수 고구려어 어휘라고 단정짓기는 애매하지만, 조사나 서술어 부분은 물론이고 문장 형식까지 유사하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고구려어가 한국어와 친연 관계일 가능성이 커졌다.[10] 가령, 보빈은 탐라라는 국명이 일본어인 타(田)+무라(村) 혹은 타미(民)+무라(村)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지만, 세계의 주류 언어학계는 한국 언어학계의 주장대로 한국어 단어인 과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11] 참고로 현재 백제 가요임이 확실히 밝혀진 유일한 고대가요가 바로 정읍사다.[12] 보빈 교수는 논문 양이 워낙 많고 본인의 이론도 꽤 많이 바뀐 편이라 최근 논문을 보는 게 중요하다.[13] 당장 그의 반도 일본어설을 언급할 때에도 반드시 임나일본부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설명해야 하고, 학자들 역시 학자 이전에 국민이기 때문에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