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사건사고
1. 야스쿠니 신사 방화사건
2011년 12월 26일 새벽에 누군가가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렀다. 경비원이 재빨리 발견했기에 신사 안의 산문기둥이 그을린 정도로 끝났다.
2012년 1월 8일 주한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이 검거되었다. 그는 자신의 외할머니가 일본 때문에 피해를 입은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였으며,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중국인은 재판을 받고, 징역 10개월을 살게 되었다.
2013년 1월 3일, 야스쿠니 신사 방화범 류창을 중국으로 송환하기로 했다. 한일 범죄인 인도조약 3조 '절대적 인도거절' 항목에 따르면, "정치적 범죄이거나 정치범으로 판단될 경우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우는 것이 정치적 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류창은 이미 징역 10월을 복역했지만 일본이 자국내 범죄를 이유로 신병인도를 요구해와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았으며, 이 결정에 중국은 환영했고 일본은 유감을 표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어쨌든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것에 대해 한국 측에서 처벌하여 일본 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했고, 또한 류창에 대한 일본의 인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 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 그 외에도 우리나라가 일본에 가진 유감을 인도 거부라는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나름대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대처를 잘 했다는 평이다.
2. 야스쿠니 한국인 1인 시위 사건
2012년 8월 15일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어난 1인 시위 사건.
한국인 문신 예술가 이랑 씨는 8월 15일 오후 2시 무렵에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일본 정부는 징용자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사과하라"는 내용으로 1인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극우 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5-6명에게 집단으로 린치를 당했다.
이후 일본 경찰이 출동해서 이씨를 경찰서로 데려다 놓았다가, 주한대사관 영사부에 연락해 인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8월 17일, "나는 평화적으로 1인 시위를 했을 뿐인데 일본인들이 나를 일방적으로 공격했다"라면서 당시 찍은 사진을 증거로 자신을 린치한 자들을 일본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1인 시위를 행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오히려 폭력을 행사한 야쿠자와 극우단체 회원에게 문제가 있다. 하지만 1인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이씨를 잡아간 일본 경찰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에는 1인 시위가 불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당시 현장의 경찰들 대응은 시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단 극우 세력들이 휘두르는 폭력으로부터 이랑 씨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더 짙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씨가 극우 단체 회원들을 일본 경찰에 고소하더라도 극우 단체를 두려워하는 일본 경찰의 성향상 이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을 지는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씨의 행동이 잘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이지만, 일부에선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한 건 잘못되었다는 반응도 있는 듯.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이씨는 일본을 비하하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평화롭게 시위했을 뿐이다.
참고로 1996년 주일한국대사관 정문에 일본 극우단체 회원이 차량으로 들이박은 사건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일본 경찰은 불구속 입건하고 대충 풀어준 적이 있다.
3. 야스쿠니 신사 방뇨 사건
2013년 5월 24일 한 대담한 정사갤러가 야스쿠니 신사 연못에 오줌을 갈긴(!!) 인증 게시물이 힛갤(현재는 삭제됨)에 올라왔는데, 벌써 몰려온 정사갤러들과 국빠, 일빠, 관심병자들의 병림픽으로 헬게이트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당 사건은 이후 니코니코 라이브에서도 일본인들에게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며, 2ch 같은 사이트에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측은 '''신성한 장소''' 에서 용서할 수 없는 폭거', '장난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악의적'이라며 범인의 빠른 체포를 희망하는 중. ###
4. 2013년 8월 10일 도쿄 촛불시위
도쿄 도심에서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당연히(?) 우익 단체 또한 지지 않고 맞선 듯.
5. 야스쿠니 신사 방화 미수 사건
2013년 9월 22일 한국인 강모 씨가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침입해 방화를 저지르려다 순찰 중이던 경비원 에 의해 체포되었다.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용의자는 21일 일본에 입국했으며 22일 오후 5시 경 야스쿠니 신사에 침입하여 폐문 후에도 화장실 쪽에 숨어 방화 계획을 꾸미던 것을 경비원에게 발각당해 도주하다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한국 여권과 톨루엔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담긴 페트병, 라이터 등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체포 도중 경비원에게 붙잡히자 페트병을 꺼내 던지려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용의자인 한국인 강모 씨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으며 이후 자세한 동기 등에 대하여 조사를 받았다.
6. 아베 신조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덕분에 이미 냉각될대로 냉각되었던 한일관계는 절대영도를 향해 가는 중. 예전에도 총리가 참배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현직 총리로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후 7년만의 참배. 또한 아베 신조는 지난 임기 때는 참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동이 더욱 크다. 정작 본인은 지난 내각 때 참배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발언했을 정도. 게다가 이번에는 한일관계가 매우 안 좋은 상태에서 참배했기에 파장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성토했다.
게다가 아베 신조는 야스쿠니 신사에 2013년부터 8년 연속 다마구시(玉串)[1] 를 공물로 보내왔다. 매번 참배를 하지는 않았어도 사실상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간 셈이 된다.
더불어 저 날은 마오쩌둥 탄생일 120주년이라 중일관계도 다시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문제라며 줄곧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미국도, 이번 사태에 대해선 '일본이 잘못했네'를 외치는 중.#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하여 대중국 포위망을 짜야 하는 입장인지라, 여기에 초를 치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이 당연히 달가울 리가 없다. 그런데 일본이 거기에 완전히 반하는 행동을 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격노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이 이런 미국의 반응에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미국의 반응을 예측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참배 얼마 전에 미국은 미국 부통령까지 파견해가며 한일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해왔다. 당시, 부통령이였던 조지프 바이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말렸다. 이에 아베 신조 총리는 "갈지 말지는 내가 판단하겠다"고 대답했다고. 그리고 바이든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을 것이니 한일관계를 개선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졸지에 미국 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셈. 일본 정부는 바이든 부통령을 겨냥하며 "확답 안 했는데 왜 자기네 희망사항을 섞어서 한국 대통령(박 대통령)에게 말해 놓고 거짓말시켰다고 화내냐?"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여태껏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러시아와 유럽연합까지 이번 참배에 대해 '실망했다', '유감이다' 등의 뜻을 표했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 모두 2차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생각했을때 당연한 일이다. '한중일 관계를 일본이 스스로 악화시키고 있다'가라는 여론은 덤.
여담이지만 이 일에 대해 일본에서 활동 중인 혼혈 방송인 하루카 크리스틴은 "해외에서 가장 비교할 만한 사례라면, 만약 '''독일 총리가 아돌프 히틀러의 묘에 참배한다'''고 하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라고 소신을 밝혔다. # [2]
2014년 1월 10일 프랑스 외무장관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을 편드는듯한 입장을 표명했다는 보도가 전해져서 국내외에서는 보도 직후 2차대전 승전국, 그것도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프랑스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불과 하루만에 프랑스 외무장관의 해당 발언이 일본 언론에 의해 왜곡되어 보도된 것으로 드러났다.[3][4]
영국 주재 중국대사 류샤오밍은 "야스쿠니 신사는 호크룩스 같은 존재다. 일본 영혼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다[5] ."라고 비판했다.
2014년 1월 20일, [6]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인데 그런 테러리스트 기념관을 만든 중국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이 폭풍처럼 "테러리스트보다 훨씬 더 무수한 사람을 학살하고 피해가 더 큰 A급 전범들을 애국자이니 평화의 주동자이니 헛소리로 찬양하며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두는 너희들이 할 소리냐?"라는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7. 야스쿠니 신사 욕설 낙서 사건
2014년 5월 26일 한글로 'ㅋㅋ' 'ㅂㅅ' '개새'라는 낙서(…)가 야스쿠니 신사의 입구에 있는 기둥에 써있는 것을 발견하고 신사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 일본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도쿄 경시청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
8. 2014 연말 야스쿠니 방화사건
12월 31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한 일본인이 방화했다가 체포당했다고 한다. 피의자의 변으로는 정치적인 의도가 아닌, 자살할 의도로 일부러 야스쿠니에서 방화한 것이라고 했다.
9. 야스쿠니 신사 화장실 폭파 사건
10. 야스쿠니 신사 천황 모독 사건
[월드리포트] 일본 극우 야스쿠니 신사가 일왕을 비판한 이유는?
야스쿠니 최고책임자는 왜 6개월만에 사임했나
지난 2018년 6월 야스쿠니 신사 내에서 진행된 내부 회의중 '고호리 구니오' 궁사가 천황을 모독하는 발언을 해서 일본 내에서 논란이 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전쟁 이후 현 아키히토 천황은 단 한번도 신사를 참배하러 오지 않았는데[7] 이를 보고 궁사가 아키히토의 행보를 비판하면서[8] '''"천황이 야스쿠니 신사를 망치려고 하고 있다!"'''라는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회의록은 일본의 한 주간지가 녹음해서 최근에 유출시켰다.
아무리 일본 천황이 별다른 실권이 없다고는 해도 일본 자국 내에서는 분명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유출된 이 회의 내용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해당 궁사가 '사퇴'하는걸로 결론이 났다. 日야스쿠니 궁사 "일왕이 신사 망친다" 발언 파문에 사퇴
일본에서만 논란이된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은 야스쿠니 신사의 현 상황을 말해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일본 극우가 떠받드는 일본 왕가에서 배척받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압박이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야스쿠니 신사도 더 이상 예전같은 위상을 가진 곳이 못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19년 8월 보도에 따르면 2018년경 야스쿠니 신사측에서 당시 아키히토 덴노에게 2019년 야스쿠니 신사 창설 150년을 맞아 실시할 예정인 기념 행사에 참석할 것을 요청했으나, 궁내청 차원에서 이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망언의 배경에는 그때 당시 야스쿠니 참석 거부에 대한 반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11. 야스쿠니 신사 정문 부근 화재사고
2018년 12월 12일 오전 7시경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있는 신몬(神門, 정문에 해당) 부근에서 불이 났다. 하지만 곧바로 꺼지면서 다른 건물 등으로 옮겨붙지는 않았다고 한다. 도쿄 경시청은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남녀 2명을 대상으로 화재 당시 상황과 경위, 방화 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이들은 경찰에서 "우리는 홍콩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日 야스쿠니 정문 인근서 불…현장에 있던 '홍콩인' 남녀 조사(종합)
[1] 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2] 아돌프 히틀러는 총통벙커에서 4월 30일에 자살한 후 시체는 벙커 입구 근처에서 불태워졌으며 베를린 자체가 한창 전투 중이었기 때문에 무덤이고 뭐고 없다.[3] 구체적으로는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은 "프랑스는 독일과 전쟁의 비극을 겪어 봤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다", "이는 언제나 민감한 기억에 관한 문제이며, 그에 대한 해답은 역사가들의 연구와 민주적인 토론을 동시에 진행하고, 무엇보다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통해 찾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 자체로는 과거사 문제의 정치외교적 중요성을 전제로 하면서 일본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외교적으로 잘 조율된 수사였던 셈.[4] 그런데 일본의 주요 언론, 특히 교도통신은 프랑스 외무장관의 발언 중 '기억(memory)에 관한 문제'라는 대목을 아베 신조 내각을 비롯한 일본 우익진영에서 애용하는 '전몰자 존숭(memorial)'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역사가들의 연구와 민주적인 토론'이란 대목에서도 '역사가가 다루어야 한다'는 내용만 보도하여 1년 전 아베 신조 수상이 "침략 여부의 판단은 정치가가 아닌 역사가에 맡겨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비슷한 인상을 풍겼다.[5] The Yasukuni Shrine in Tokyo is a kind of horcrux, representing the darkest parts of that nation's soul.[6] 일본 열도에서 중국이 한국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상하이에서 수용하였다는 오랜 소식을 접하여도[7] 사실 이와같은 행보는 아키히토의 아버지 대인 히로히토 때부터 관련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히로히토 또한 야스쿠니에 전범들이 합사된 이후 참배를 한적이 없으며 사후 시종이 남긴 메모에도 이에 대해서 비난하면서 참배하지 않았으며 아키히토 당시 천황은 아버지의 의지를 이어받아 참배를 하지 않았다.[8] 여기에는 아키히토 덴노가 전후 평화주의적 행보를 보이며 참회발언을 한것에 대한 비판또한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도 '''위령 여행으로 어디를 방문하든 거기에 위령은 없다''' 라는식의 망언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