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일본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
'''在大韓民国日本国大使館'''
홈페이지
1. 개요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설치한 외교공관.
-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Embassy of Japan)
-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영사부(Consular Section)
2. 역사
1876년 강화도 조약에 의해 조선과 일본 제국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임오군란 당시에는 조선군이 쳐들어오면서 공사관 인원들이 도주하는 사건도 있었고 공사관 소속의 무관이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을사조약 이후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면서 공사관은 사라졌다. 그후 1945년에 조선이 독립하고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반일감정 때문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어려웠다. 대신 대표부 정도만을 설치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외교관계가 복원되었다. 당시 주서울재외사무소의 참사관인 마에다 토시카즈(前田利一)[1] 가 주서울재외사무소장으로 승진하여 임시대리 대사 역할을 수행했다. 1966년 3월에 키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郞七)가 정식 주한 일본대사로 취임했다.
2.1. 연혁
- 1880년: 한성부에 일본공사관 설치.
- 1882년: 임오군란으로 방화, 소실되어 왜장대[2] 인근 이종승(李鐘承) 집으로 이전.
- 1884년: 온건개화파인 박영효의 자택을 구입하여 신축 이전했으나, 갑신정변으로 소실.
- 1885년: 한성근처로 이전
- 1906년: 을사조약의 체결에 따라 한국통감부로 승격, 남산에 설치.
- 1910년: 한일 합병 조약에 따라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병합되어 공사권이 폐지됨에 따라, 대한 제국 정부 조직과 통합 되어 조선 총독부로 개편됨. (이후 해방 전 까지의 정보는조선총독부문서 참조)
-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됨에 따라 '주서울재외사무소' 가 현 위치에 설치되어 대사관업무를 시작함.
- 1966년: 부산에 영사관 설치 및 '영사관'을 '총영사관'으로 승격.
- 1997년: 제주도(현 제주특별자치도)에 총영사관 설치.
- 2011년: 대사관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됨.
- 2012년: 1월, 한 중국인이 화염병을 이용한 방화를 시도했으며, 7월 한국독립협회 소속 한 회원이 트럭을 몰고 돌진을 시도하였다.
- 2015년: 지하 3층, 지상 6층으로 대사관 재건축이 계획되어 부지 바로 뒷편의 트윈트리 타워로 이전함.
3. 대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중학동)에 있다.[3]
대사관 건물은 1970년 완공되었는데 노후하고 협소하다는 이유로 증축을 꾸준히 요구했으나 서울 도심의 경우 문화재 100미터 안에는 높이 14미터가 넘는 건물은 들어올 수가 없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그 동안 문화재청이 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
[image]
우여곡절 끝에 허가가 나왔으며 2015년 재건축에 들어갔다. 지상 6층 건물로 지어지며 완공까지 4~5년이 걸릴 전망이라고.
대사관 임시 이전을 계기로 근처 이마빌딩에 있던 영사부도 같이 이전했다.
[image]
[image]
재건축 기간 동안 세들어 사는 트윈트리 타워에 걸린 일장기.[4]
철거 전의 대사관 건물이 다른 주한 대사관들과 비하여 특이했던 점은 대사관 담장이나 건물 외부에 대사관임을 나타내는 명판이나 국장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 등 시위가 자주 일어나다보니 도중에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설치하지 않은 듯(혹은 설치를 해도 대사관 담장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해 놓은 듯) 하다.[5] 그러나 건물 자체를 경찰들이 대놓고 순찰 방비하고 있고, 건물 층별안내도에도 관련 안내가 적혀 있어서 꽁꽁 숨겨져 있는 정도는 아니다. 또한 대사관 본관보다 시위가 덜한 대사관저/영사관저나 지방 소재의 총영사관에는 대사관/총영사관 명판과 일본 국장을 별 문제없이 붙여놓고 있다.[6]
건축허가 이후 4년간 건설을 시작하지 않아 2019년 4월 10일자로 건축허가가 취소되었다.
3.1. 영사관 및 기타 부속시설
부산광역시 동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각각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 부산광역시 동구 고관로 18 (초량동)
- 영사업무 관할: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역
-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초량역 인근에 있다.
- 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3351, 9층 (노형동, 세기빌딩)
- 영사업무 관할: 제주특별자치도 전역
4. 대사
한일관계로 인해 한국 내의 외교관 가운데 초치(招致)[7] 당하는 일이 가장 많은 대사이다.
주한일본대사는 일본 외무성에서 순위권에 꼽히는 요직이다. 주한일본대사를 지낸 대부분의 대사들이 유엔대사나 외무성 차관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대사관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외무성 내 주요 보직을 맡는 등 출세 코스를 달리는데 매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한일관계에 따른 외교 마찰이 잦고 초치도 많이 당하기도 하며 그만큼 업무강도는 상당히 강하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역시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 주재 일본대사관보다도 더 힘들다고 할 정도. 보통 요직은 커리어 관리 및 진급, 출세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선호도가 높고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주한일본대사 자리는 그야말로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직위이다.
2021년 1월 일부터 아이보시 고이치가 특명전권대사로 재직 중이다.
4.1. 역대 대사
역대 특명전권대사
- 임시대리대사(공사) 마에다 토시카즈(前田利一)
- 임시대리대사(참사관) 요시다 켄조(吉田健三)
- 1대 키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郞七)
- 2대 카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8]
- 3대 우시로쿠 토라오(後宮虎郞)
- 4대 니시야마 아키라(西山昭)
- 5대 스노베 료조(須之部量三)
- 6대 마에다 토시카즈(前田利一)
- 7대 미카나기 키요히사(御巫清直)
- 8대 야나이 신이치(梁井新一)
- 9대 야나기 켄이치(柳健一)
- 10대 고토 토시오(後藤利雄)
- 11대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郞)
- 12대 오구라 카즈오(小倉和夫)
- 13대 테라다 테루즈케(寺田輝介)
- 14대 타카노 토시유키(高野紀元)[9]
- 15대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郎)
- 16대 시게이에 토시노리(重家俊範)
- 17대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 18대 벳쇼 코로(別所浩郎)
- 19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 20대 도미타 고지(富田浩司)[10]
- 21대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4.2. 국방무관
일본에서는 방위주재관(防衛駐在官)이라고 한다.
한때 야마노 마사시(山野正志) 1등공좌(공군대령)가 재직했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표기한 방위백서 한국어판을 배포하자 국방부에서 야마노를 초치해 항의하기도 했다. 야마노 외에도 고토 노부히사(後藤信久) 1등육좌(육군대령), 쿠로다 마사히코(黒田全彦) 1등해좌(해군대령)도 무관으로 근무 중인데 야마노가 최선임인 모양. 출처
2019년 기준으로 와타나베 타츠야(渡邉 達也) 1등해좌와 나가시마 토오루(永島透) 1등육좌가 재직 중이다.
5. 사건/사고
타 국가의 대사 및 대사관에 비해 습격 사건이 상대적으로 자주 일어나고 있다.
2010년 7월 7일에는 당시 주한일본대사였던 시게이에 토시노리(重家俊範)대사가 서울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는데 독도 관련 단체 회원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지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통역을 담당하던 대사관 직원 호리에 마유미가 손에 부상을 입었다. 해당 회원은 2015년에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일으켰다.
2012년 1월에는 자신의 외조모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인임을 주장하는 한 중국인이 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하기도 했다. 해당 인물은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7월 9일에는 일본 극우세력의 평화의 소녀상 말뚝 테러에 항의하려는 목적으로 한 시민이 대사관 경내에 트럭을 이끌고 돌진하려다가 체포되었다.
2015년 12월 31일에는 김샘[11] 외 29명의 평화나비 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항의하는 불법시위를 하면서 일본대사관 내부로 무단침입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들 중 김샘과 나머지 2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공동주거침입)·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되었다. 김씨는 벌금 200만원, 같이 기소된 2명은 각각 벌금 50만원과 30만원을 선고받았다. #[12]
2019년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에는 사건사고가 심해졌다. 2019년 7월 19일에는 한 70대 남성이 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 20일에는 민노총 등 좌파 시민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 결국 22일에는 대사관이 우리 외교부 측에 공관 경비 강화를 요청했다. # 그와 같은 날에는 이 대사관 산하의 부산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민족주의 성향 단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6명이 무단침입을 한 후 공관 내에서 반일 시위를 벌이려다가 한국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
급기야 8월 8일에는 애국국민운동대연합의 리더를 자처하는 오천도라는 남자가, 고추장물을 독립운동가들의 피라고 주장하며 던지는 김기종급의 테러행위를 저질렀다. 본인은 의도는 좋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국가 망신에 아베가 좋아할 빌미만 제공한 셈이다. #
6. 역할
외교 공관이므로 당연히 일본국적이 아닌 자가 일본의 사증을 취득하거나, 일본인들이 여권 발급 등을 보려고 할 때 방문하게 되며, 재외선거를 할 때도 방문하게 된다.
해외자녀교육진흥재단 측에서 일본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교과서를 배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
2006년 3월 1일 이후부터 한국국적자가 단기체재사증 취득을 위해 거의 방문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일본에 사증 없이 입국하지 못하는 한국체류 외국인이 일본 단기체재 사증 취득 혹은 국적 불문하고 취업이나 유학등의 중장기 재류사증 취득을 위해서는 방문해야 한다.[13][14]
7. 기타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곳 중 하나이다.
[image]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항의 시위. 매주 수요일마다 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도 열린다.[15] 폭파 협박도 당한 바 있다.
8. 관련 문서
[1] 1984~1991년 주한 일본대사 역임.[2] 남산근처[3] 대사관 공사로 인해 임시 이전[4] 맨 오른쪽은 요르단 국기이며, 트윈트리 타워 B동에 주한 요르단 대사관이 입주해있다. 현재는 주한 멕시코 대사관도 B동에 입주하여 가운대 깃대에는 태극기 대신 멕시코 국기를 게양하였다.[5] 상대적으로 시위가 적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대사관 명판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이후 수요집회 등의 시위가 많아지면서 없앤 듯 하다. 그보다 훨씬 전인 1974년에 광복회 회원들에 의해 대사관 명판이 한 번 훼손된 적이 있기는 했다.[6] 이는 한국처럼 공관 앞에서 반일시위가 자주 일어나던 중국 주재 일본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2013년 신축된 주중일본대사관에는 외부에 국장을 별 문제없이 붙였다.[7] 외교부에서 항의할 일이 있을 때 해당국의 외교관을 불러내 항의하는 것이다.[8] 특이하게 무덤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있다.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있는 하늘묘원의 천주교 묘지 내에 있다.[9] 불멸의 이순신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2003년~2005년 7월 재임.[10] 2019년 10월 15일에 임관된 인물로 과거 주한 일본 공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토미타씨의 아내는 미시마 유키오의 장녀인 노리코이다.[11] 나무위키에 등재된 프로게이머 김샘과는 동명이인이다. 이석기 및 한상균 석방 집회에도 참여한 바 있다.[12] 엄연히 불법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 등 좌파언론은 김샘을 옹호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13] 원칙적으로 재류자격인정증명서가 필요.[14] 재류자격인정증명서가 교부되었을 때 해당 외국인이 단기체재로 일본국내에 있다면 일본국내에서 재류자격을 변경 가능.[15] 고베 대지진과 도호쿠 대지진 당시에는 각각 1주씩 휴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