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숙

 


<colbgcolor=#0ba95f> '''이름'''
양승숙
'''출생일'''
1950년 3월 21일 (74세)
'''출생지'''
충청남도 논산시
'''최종 학력'''
한양대학교 대학원 (간호행정학 / 석사)
'''소속 정당'''

'''현직'''

'''약력'''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
제18대 국군간호사관학교장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군인이다. 2001년에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여군으론 첫 장성급 장교가 되었다.

2. 생애


1950년 3월 21일생(74세).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논산여자중학교대전시 호수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1] 전남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남편 이병웅(李炳雄)은[2] 제31보병사단에서 으로 근무하던 중에 같은 대학교 친구[3]의 소개로 전남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던 양승숙과 만났고, 자신이 병장으로 전역한 뒤 복학하여 대학교를 다니다가 양승숙이 소위가 되었을 때 정식으로 고백하여 결혼하였다. 그리고 슬하에 두 이 있다.[4]최초의 여군 스타 양승숙 준장남편 외조 덕에 女星 됐어요
1973년에 간호후보29기로 임관했고, 간호장교로 근무했다. 1986년 6월에 중령으로 진급하였고, 1992년에 대령 진급에서 탈락했지만[5] 이듬해인 1993년에 대령으로 진급심사를 통과하였고[6], 1994년 9월 1일에 정식으로 대령계급장을 달았다. 대령 때도 국군간호사관학교장을 맡은 바 있으며, IMF시대로 간호사관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했지만[7] 양 대령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결국 2001년 5월 31일에 간호사관학교 존치결정이 났다. 그리고 육군본부 간호담당관 및 간호병과장으로 재직 중 2001년 하반기에 준장진급이 확정되었고, 2002년 1월에 정식으로 준장계급장을 달았다.[8] 준장 진급 당시에 첫 여군이니만큼 전투병과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유력한 후보로 민경자(여군사관24기) 대령, 엄옥순 대령(여군사관24기)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여군 장교 중에 짬이 가장 높은 편이었던 그녀가 되었다.[9] # 장성 진급 후에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을 지냈다. 사실 당시 유력한 것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보병연대장을 지낸 엄옥순 대령이었다. 그러나 엄옥순이 위암이 걸리면서 진급이 어려워 양승숙이 준장으로 올라갔다. 엄옥순은 결국 위암으로 별세했다.
그리고 양 장군은 2004년 1월 9일 31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하였다. 원래 전역일은 1월 22일인데, 후임 지휘관 이재순 장군이 새해에 새출발이 가능하도록 배려하기 위하여 전역일을 앞당겼다고 한다. 이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바로 그 이인제에게 석패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재도전하였다. 당내 공천에서 안희정,[10] 이인제[11]라는 거물을 뚫고 공천권을 따냈으나 결국 공천불복하고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한 '''이인제'''에게 또 패하였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참여정부 최연소 청와대 대변인 김종민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2014년에 당시 대전광역시장이었던 권선택의 정무부시장 후보에 올랐다는 얘기가 돌았으나, 본인은 "들은 바가 없다"고 부정했다. #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25번에 올랐다. 당선권은 아니지만 여성과 남성을 1:1로 배치하는 비례대표의 특성상 명망 높은 여성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같은 간호장교 출신인 윤종필 예비역 준장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3번으로 이름이 올랐고 결국 당선되었다. 2012년부터 양승숙을 밀어내고 공천을 받은 김종민은 출구조사를 뒤집는 이변을 연출하며 이인제를 밀어냈다.
[image]
2017년 제19대 대선피우진 중령과 함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2018년 11월, 제8대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에 취임했다.
21대 총선 경선 탈락 후에 민생당에 입당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계룡·금산)
열린우리당
37,163 (39.45%)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계룡·금산)
통합민주당
14,974 (17.56%)
낙선 (3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6,069,744 (25.54%)
낙선 (25번)
[12]

4. 관련 문서




[1] 어머니의 병간호 및 집안 사정으로 고교를 1년 늦게 입학하였다.[2] 충남대학교 사범대학 출신으로 대전시 인근에서(정확히는 충남 쪽) 교사 생활을 했다. 아내 양 대령이 장군으로 진급할 무렵 충남교육청 장학사를 지냈고, 2002년 8월에 장학관으로 승진하여 충남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났으며, 2007년 8월에 금남초등학교장(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 관할)을 끝으로 정년퇴직하였다.[3] 친구는 이 당시 학군장교 후보생이었다.[4] 장녀는 대전대를 졸업하고, 02년 5월에 결혼하였다. 02년 당시 28세였다. 장녀의 남편, 즉 양승숙의 맏사위는 식당을 하고 있으며, 부친이 대령으로 예편한 군인 집안 출신이라 한다. 차녀는 중부대를 졸업하였고, 언니와는 3살 터울이며, 02년 당시 이벤트회사에 다니며 등단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 현재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5] 당시 간호병과 대령 자리는 2년에 한 번 to가 날 정도로 적었다고 한다. 그때 진급대상자가 양 대령, 동기, 후배 1명이었는데 후배가 진급하였다고 한다.[6] 당시 간호병과 대령 2명이 집안사정으로 전역하게 되어 TO가 생겼다.[7] 당시 신입생을 받지 않고, 남아있는 생도들이 모두 졸업을 하면 자동으로 폐교할 계획이었다고 한다.[8] 양 장군은 "1992년에 진급했더라면 2001년 8월에 정년퇴직을 하여 장군기회를 놓칠 뻔했다. 이것이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9] 여군사관 출신의 장성은 2010년에 송명순 준장으로 배출되었다.[10] 전과자 일괄 공천배제 원칙으로 탈락.[11] 공천 부적합자로 탈락.[12]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당선자 13명을 내었다. 임기 중간에라도 양승숙 후보가 승계하려면 당선자 13명 중 12인이 사퇴나 상실 등으로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90년대까지는 입각, 탈당 등의 이유로 의원직을 많이 내놓았지만 2000년대 들어 정당정치가 확립되면서 이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