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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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Johnson
'''톤의 마술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톤을 구사하는 기타리스트'''
에릭 존슨은 1954년 8월 17일생으로 미국 오스틴 텍사스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보컬리스트이다. Guitar Player 매거진에서 말하길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라고 평한다
1990년에 2번째 앨범 Ah Via Musicom으로 플래티넘 판매를 이룩하고 1991년 싱글 Cliffs of Dover로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락 연주 부분에서 수상을 했다.
그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 텍사스(Texas) 주의 주도, 오스틴에서 태어났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유명한 기타리스트로는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S.R.V)이 유명하다.[1] 텍사스의 분위기와 텍사스 출신의 다른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을 보면 에릭 존슨도 왠지 카우보이 복장에 강아지풀 하나 입에 물고 낡아빠진 스트랫으로 블루스/록 음악을 거칠게 후려댔을것 같지만, 에릭 존슨은 정 반대였다.
그는 온가족이 음악에 미친 가족에서 태어났는데, 휘파람을 프로급으로 불었던 그의 아버지와 함께 3명의 누나, 여동생들과 함께 피아노를 배우며 상당히 곱게 자랐다. 그리고 그는 11살에 가서야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11살이란 나이는 지미 헨드릭스, 조 새트리아니, 스티브 바이 등 여러 천재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나이인 건 맞지만, 그는 겨우 5년이 지난 16살에 이미 그 지역 모든 남녀노소 기타리스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의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15살에 그의 첫 프로연주자 생활로 (에릭 존슨의 성격과 이미지로 보면 신기하지만) 사이키델릭 록 밴드 '마리아니'(Mariani)에 참여했는데 물론 그닥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으므로 1968년에 발매한 그들의 앨범은 대중의 무관심에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에릭 존슨이 기타 히어로의 위치에 올라선 현재, 15살의 에릭 존슨이 참여한 마리아니의 앨범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며,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을 정도로 15살의 에릭 존슨의 기타 실력은 출중했다. 어쨌든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텍사스 주립대에 들어갔다. 얼마후 휴학한 뒤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마리아니는 탈퇴하게된다. 몇 년 후 그는 돌아와 퓨전 장르를 추구하는 그룹 일렉트로마그넷 (Electromagnet)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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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텍사스의 대학에서 공연하는 일렉트로마그넷.)
일렉트로마그넷은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텍사스 지역 내에서 순회 공연과 지역 레코드사에서 2개의 앨범을 발매하며 몇 년 동안 활동했다. 하지만 메이저 레코드사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고 끝내 해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바로 새로운 자신만의 밴드를 만들었는데 '에릭 존슨 그룹'(Eric Johnson Group)이라고 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 지은 이 3인조 밴드는, 베이시스트 카일 브록(Kyle Brock)과 드러머 빌 매독스(Bill Maddox)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1978년에 Seven Worlds 라는 풀 앨범을 역임하였다. 이 앨범은 몇 년 동안 텍사스 지역 내 음악 평론가들에게 장안의 화제가 되어 다루어졌는데 이 앨범은 결국 에릭 존슨이 유명해진 다음 메이저 레코드사에 의해 1998년 전국 출시되어 판매되었다. 하지만 1978년 당시에는 그럴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돈에 쪼들린다. 그래서 잠시 에릭 존슨 자신만의 밴드 활동은 잠시 접고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뛰며 연명하고 있었는데(하지만 지역밴드 활동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84년 드디어 메이저 레코드 사중에서 최고로 꼽히며 영화 배급사로도 유명한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사에 의해 발탁되어 메이저 시장에 진출한다.
그가 어떻게 워너 브라더스 사의 관심을 끌게 됐는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1.당시 엄청나게 유명한 팝 프로듀서였던 예명 '프린스' (Prince)가 텍사스 지역 TV 방송이었던 오스틴 시티 리미트(Austin City Limits)에 출연한 에릭 존슨을 우연히 보고 워너 브라더스의 꽂아줬다.
라는 설.
2.그가 세션 기타리스트로 뛰고 있었을 때 그가 세션으로 활동하는 가수중에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er Cross)[2] 라는 유명 싱어송라이터가 있었는데, 그의 워너 브라더스에 소속되어 그의 프로듀싱을 맡고 있었던 데이비드 티클(David Tickle)이 크리스토퍼 크로스 뒤에서 세션 연주를 하고 있던 에릭 존슨을 눈여겨 보고 워너 브라더스에 스카우트했다.
라는 설이 서로 싸우고 있다. 프린스, 데이비드 티클, 에릭 존슨, 워너 브라더스 당시 사장 넷 중에 한 명이 입을 열지 않는 한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그가 스카우트해서이든, 우연이든간에, 데이비드 티클을 부 프로듀서로 삼아 1986년, 에릭 존슨은 톤즈(Tones)라는 이름의 밴드로 메이저 세계에 데뷔한다. 기타 평론가 울프 마샬은 이 앨범을 가리켜 “60년대는 Are You Experienced, 70년대는 Wired, 그리고 80년대는 [Tones]가 Stratocaster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의 음악과 실력의 진가를 알고 있는 비평가들의 많은 호평 덕분에 그의 음악적인 능력과 연주 실력은 음악 업계에서 알아주는 수준이 됐지만, 그의 진가를 잘 모르는 대중들의 얼음과 같은 차가운 성원에 힘입어 간신히 1987년 그래미 락 연주부분에 노미네이트된 것마저 떨어지고 그가 대중적으로 그닥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워너 브라더스사는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계약이 끝나도록 그냥 냅둔다. 그래서 결국 그는 예전에 지역 레코드 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워너 브라더스보다는 한참 아래인 인디 레코드사, 시네마 레코드(Cinema Records)사와 계약을 맺고 근근히 음악 생활을 이어간다.
결국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되는데
1990년에 낸 대박 앨범
Ah Via Musicom 때문이다.
이 앨범은 시네마 레코드가 아닌 메이저 레코드사,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 사에 의해 발매됐는데, 그 이유는 사실 시네마 레코드 사는 캐피톨 레코드사의 자회사 인디 레코드사로서, 시네마 레코드 사장이 이 앨범을 듣고서 경악하여, 본사 캐피톨 레코드에 연락하여 진급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처음에도 언급했던 명곡 'Cliffs of Dover'는 이 앨범 수록곡이었는데, 이 곡으로 에릭 존슨은 고배를 마셨던 그래미 상에서 1991년 락 연주부문 수상을 하기 이르고, 이 앨범은 급기가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켜 플래티넘 디스크가 된다.
국내 CF, 방송의 BGM으로도 애용된 차분한 분위기의 'Trademark', 잼 세션 스타일로 녹음된 'Righteous'는 연주곡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록 음악 전문 방송국의 애청곡으로 떠올랐고 각종 기타 전문지의 인기투표 1위를 휩쓰는 등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전부터 Fender를 써오긴 했지만 이 앨범에서 빈티지 스트라토캐스터를 써서 녹음하고 투어를 다니면서 펜더 유저로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일단 그렇게 그가 유명해지자 슬슬 에릭 존슨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하나는 까다로운 성격이다. 유명 음악 프로그램의 MC이고 같은 텍사스 출신이었던 코미디언이 에릭 존슨을 소개할때, 에릭이 히트 앨범은 있어도 히트곡은 없고 그가 채식주의자였던 점과 술을 입에 절대 안되는 금주를 시행하고 있던 점을 꼬집어 만약 그가 햄버거에 맥주를 입에 달고 곡을 썼으면 히트곡 한 두 곡을 써냈을 거라고 비아냥 거렸다가 에릭 존슨의 사악한 간계로 프로그램 하차 위기까지 갈 뻔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인데 사실 그는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이 아니라 '''완벽주의자 그 자체'''이다.
물론 그는 유명해지기 전에도 완벽주의자이긴 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훌륭하지만 에릭 존슨 입장에서는 열악한) 녹음 장비와 마스터링 장비, 작업 환경, 악기, 그리고 앨범을 재촉하는 음반사 사장님 때문에 그 성격이 그닥 발휘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플래티넘 디스크도 받고 유명해지면서 세계 최고의 음향장비, 악기들을 공급받게 되고 음반사 사장님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자 그가 추구하는 '완벽' 이란 게 실현 가능하게 되면서 그의 완벽주의자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덕분에 쓴곡을 또 고치고 또 고치고 X 500, 녹음하고 또 녹음하고 또 녹음하고 X 100, 다듬고 또 다듬고 X 50, 더 잘 치라고 세션 드러머, 베이시스트들을 들볶고 또 들볶고 X 10 하면서 몇년을 끌어댔다. 덕분에 음반사 사장님만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5년만에 나온 1996년작 두번째 앨범 'Venus Isle'은 그의 크게 향상된 음악적 재능과 연주 실력, 보컬 능력,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줬지만, 평론가라면 모를까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대중은 히트곡이 없는 그의 앨범을 무시하고 만다.[3]
덕분에 또다른 플래티넘 디스크를 기대하며 수십억의 스튜디오 대여료, 장비 대여료, 세션 고용비, 그리고 에릭 존슨의 생활비와 그의 완벽주의자 성격때매 질질 끌어대서 한없이 늘어나는 추가 대여료와 추가 인건비를 참아내고 있던 사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재계약을 안하는 방식의 신사적 해고도 없이 그냥 에릭 존슨을 해고시킨다
하지만 메이저에서 짤렸다고 징징대며 다시 인디 레이블로 돌아가기엔 에릭 존슨은 너무나 컸다.
그를 인정해주는 전문가 세계에서 그는 다시 재기하는데 저 유명한 스티브 바이와 조 새트리아니가 기획하는 G3에 1996년 멤버로 초빙되면서 그는 공연을 다닌다. 게다가 그가 참여한 '1996 G3 : Live in Concert' 라이브 공연실황 앨범은 초대박을 쳐서 다시 플래티넘 디스크를 수상한다.
그리고 그가 불운의 2집을 녹음하던 당시인 1994년에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 'Alien Love Child'가 그의 팬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그가 캐피탈 레코드에서 짤린 뒤 정식 콘서트를 열기 시작해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덕분에 그는 2000년에 스티브 바이의 레코드사를 통해 Alien Love Child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며 대중들에게 모습을 간간히 보인다.
사실 완벽주의자 에릭 존슨에게는 재녹음, 보정, 마스터링되지 않은 그냥 생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이었는데, 웃는 얼굴로 사랑의 매를 꼬나쥔 팬과 스티브 바이에게 뭇매를 맞으며 반협박성 설득을 당한끝에 그걸 극복해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애증의 스튜디오로 돌아와 성공적으로 미발표곡 모음앨범과 4집, 'Souvenir', 'Bloom'을 각각 2002년 2005년에 발매하며 인기를 얻더니, 드디어 2005년 Fender에게 아티스트 시그네쳐 출시 제안을 받게된다.
그의 유명한 히트 싱글인 Cliff of Dover는 유명 기타게임 Guitar Hero III: Legends of Rock 와 Rocksmith 수록되어 다시금 인기를 얻는다.
2010년 오랜만에 'Upclose' 앨범을 발매했다. 팬들의 평은 여러가지 시도를 해서 기존의 앨범과는 약간은 이질적인 컨셉인 전작'Bloom'에 비해 호의적인 편.
그는 2014 년 3 월 Jimi Hendrix의 음악을 조명하는 Experience Hendrix Tour에 참여했다. Zakk Wylde, Buddy Guy, Jonny Lang, Kenny Wayne Shepherd, Dweezil Zappa 및 Doyle Bramhall II와 함께 출연했다. 평소 라이브투어때마다 지미헨드릭스의 곡을 커버해왔던 에릭존슨은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지미헨드릭스에 대한 존경심을 멋진연주로 표현해냈다.
2014년 6월 24일 'Europe Live'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60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녹슬지 않은 기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2014년 11월 6일 그의 절친한 동료인 Mike Stern과 Electric합작 앨범을 발매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같이 공연을 가지며 라이브 동영상과 부틀렉으로 소식을 전했던 이들의 첫 정식 콜라보레이션 앨범 Eclectic은 텍사스에 위치한 Eric Johnson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으로 Eric johnson 밴드의 베이시스트 Chris Maresh, CBS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자 데이비드 레터맨 쇼 하우스 밴드의 드러머인 Anton Fig, 전설적인 블루스 보컬리스트 Malford Millian 등이 참여했으며 탄탄한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톤과 연주 성향이 판이하게 다른 두 기타리스트의 인터플레이가 감상의 재미를 극대화 해주고 있다는 평이다
2016년 10월7일 오랫만에 그의 새앨범 EJ로 팬들에게 돌아왔다 전곡이 어쿠스틱 컨셉의 방식으로 녹음된 앨범으로 그의 수준급의 통기타연주와 피아노연주를 들을수있다 9곡의 창작곡과 사이먼가펑클, 레스폴과 메리포드의 곡을 커버한 커버곡 4곡을 담고있다. 앨범발매를 기념으로 미국 60개도시 투어를 돌거라고한다.
에릭 존슨은 펜타토닉 플레이어다. 그러나 여타 펜타토닉 주자들과는 느낌부터 다르다. 기존의 기타리스트들이 이것을 보다 록적인 맛을 살리기 위해 거칠고 공격적으로 다루었다면 그는 이 펜타토닉을 아름답게 다듬었다. 존 맥러플린, 스티브 모스, 지미 헨드릭스 등으로부터 영향받은 그의 기타는 프레이즈 진행시 풀링 오프와 해머링 온, 슬라이드 등의 핑거 테크닉이 주가 되는 연주를 통해 레가토 솔로를 전개한다. 때문에 에릭의 기타는 물 흐르듯 부드럽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현을 잡아채는 듯한 컨츄리 기타 주법들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있어 프레이즈 전개가 매우 다양하고 수준이 높다.
보통 연주인들은 속주에 급급한 나머지 음을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고 지나친 이펙터를 사용하는 등, 자신의 테크닉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에릭의 경우 이러한 오류는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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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에릭 존슨은 '''로즈우드 지판 수준으로 배음이 좋은 메이플 지판 기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를 했으나 빌더들이 통사정해서 그냥 로즈우드 지판으로 만들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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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일 좋아하는 깁슨 ES-335로 1996년 비비 킹과 투어 도중 네쉬빌 기타샵에서 구매한 기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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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존슨 특유의 영롱하고 매력적인 톤과 물흐르는듯한 연주로 기존의 스트라토캐스터의 음색과는 다른 느낌의 연주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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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존슨의 앰프셋팅
Clean tone : Fender Twin Reverb Piggy-back
Lead tone : 1969 Marshall Super Bass 100W or Marshall 50W Plexi
Dirty Rhythm tone : Marshall 50W Plexi
에릭은 자기만의 소리를 얻기 위해 앰프를 3개로 세팅해 쓰고있다. 즉 Clean, Moderate Dirty, Real Dirty 등으로 나누어 쓰고 있으며, 스테레오 코러스를 절묘하게 이펙팅해 아름답고 환상적인 소리를 뽑아낸다. 또 복수의 앰프로 신호를 분리해 각각 다른 셋팅의 소리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그의 사용장비를 정의하기가 힘든 것이 계속해서 장비 및 세팅을 바꾸고 곡마다(곡 중간중간에도) 이를 달리하기 때문에 'EJ는 이러이러한 장비를 사용한다'고 하기는 힘들다.
록 기타 역사에 끼친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명석한 코드 보이싱과 유려한 레가토 프레이즈, 깔끔한 톤이다. 이 모든 것을 토대로 하여 진행되는 에릭의 멜로디라인과 프레이즈는 ‘노래하는 기타’ 바로 그것이다.
이펙터는 그때그때 바뀌지만(본인 스소로 They are always changing.이라고 말한다) 라이브때의 세팅은 어느정도 틀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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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존슨의 페달보드 사진
사진상의 장비는...
(샘플 사용기 영상)
2012년 던롭사에서 나온 그의 시그네쳐 퍼즈 페이스이다. 에릭 존슨이 직접 개발에 참여했으며 60년대 빈티지 달라스 실리콘 퍼즈 페이스를 복각했다고 한다. 굉장히 더티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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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희망도 없는 DUMBLE
그의 이펙터는 AC 어댑터가 아닌 배터리 구동하는데 그 전지도 메이커는 듀라셀 의 것만 고집하고 (메이커마다의 차이를 구별 할 수 있는거 같다) 이펙터에 깔아놓는 보드도 무조건 베니어합판을 이용하는데 이펙터에 흐르는 이상전류를 잡아줘 본연의 톤을 뽑아내기위해서라고 한다.
↑ 이 영상을 보면 그가 라이브 투어때 주로 사용하는 앰프와 페달보드 그리고 어떤식으로 사용하는지 간략하게 알수 있다
에릭존슨의 톤을 따라하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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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존슨의 스트링은 다른 스트링에 비해 4,5,6현 줄이 더 굵게 제작되어 나왔으며 보다 묵직하고 꽉찬 코드사운드를 위해 제작되었다.
다만 6번줄이 050의 두꺼운 사이즈다 보니 기타에 따라 너트를 개조해야할수도 있는 상황이 생기니 주의해야한다
그는 튜닝 시에는 일반적으로 6 현에서 1 현 으로 차례로 조율 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3 현 2 현 1 현 4 현, 5 현, 6 현 의 순으로 현의 중앙 측에서 바깥쪽으로 아래쪽으로 퍼져 나가도록 튜닝을한다. 이 모습은 에릭존슨의 레슨 비디오에서 확인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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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lop Eric Johnson Classic Jazz III
두께 1.14mm 의 작은 사이즈의 붉은색 피크로 솔로연주에 특화된 재즈스타일의 피크지만 얇다보니 거친연주를 자주 할시 빨리 닳아 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두께 자체는 얇은 편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 피크는 다른 재료에 비해 비교적 무른 편인 나일론 재질이라 마모가 심하다. Jazz III는 솔로 연주를 즐기는 기타리스트들에게 인기가 많은 쉐이프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베리에이션이 있으므로, 나일론 재질의 피크가 맞지 않거나 마모의 압박이 심하다면 Tortex나 Ultex 재질의 피크도 있다.
그의 최고의 명곡 Cliffs of Dover
또다른 그의 대표곡 Manhattan
지미 헨드릭스의 Spanish Castle Magic 커버
스티비 레이 본의 헌정송.
일렉트릭 기타 음악은 대중으로 하여금 거칠고 시끄러운 음악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에릭 존슨은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기타 연주로 그러한 편견에 이견을 제시하는 기타리스트로써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으며 현재도 쉬지 않고 투어를 도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강하진 않지만 강하게 가슴으로 남는 음악으로 팬들과 뮤지션, 기타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받는 그가 바로 기타리스트 에릭 존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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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Johnson
'''톤의 마술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톤을 구사하는 기타리스트'''
1. 소개
에릭 존슨은 1954년 8월 17일생으로 미국 오스틴 텍사스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보컬리스트이다. Guitar Player 매거진에서 말하길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라고 평한다
1990년에 2번째 앨범 Ah Via Musicom으로 플래티넘 판매를 이룩하고 1991년 싱글 Cliffs of Dover로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락 연주 부분에서 수상을 했다.
2. 그의 일대기
그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 텍사스(Texas) 주의 주도, 오스틴에서 태어났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유명한 기타리스트로는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S.R.V)이 유명하다.[1] 텍사스의 분위기와 텍사스 출신의 다른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을 보면 에릭 존슨도 왠지 카우보이 복장에 강아지풀 하나 입에 물고 낡아빠진 스트랫으로 블루스/록 음악을 거칠게 후려댔을것 같지만, 에릭 존슨은 정 반대였다.
그는 온가족이 음악에 미친 가족에서 태어났는데, 휘파람을 프로급으로 불었던 그의 아버지와 함께 3명의 누나, 여동생들과 함께 피아노를 배우며 상당히 곱게 자랐다. 그리고 그는 11살에 가서야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11살이란 나이는 지미 헨드릭스, 조 새트리아니, 스티브 바이 등 여러 천재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나이인 건 맞지만, 그는 겨우 5년이 지난 16살에 이미 그 지역 모든 남녀노소 기타리스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의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15살에 그의 첫 프로연주자 생활로 (에릭 존슨의 성격과 이미지로 보면 신기하지만) 사이키델릭 록 밴드 '마리아니'(Mariani)에 참여했는데 물론 그닥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으므로 1968년에 발매한 그들의 앨범은 대중의 무관심에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에릭 존슨이 기타 히어로의 위치에 올라선 현재, 15살의 에릭 존슨이 참여한 마리아니의 앨범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며,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을 정도로 15살의 에릭 존슨의 기타 실력은 출중했다. 어쨌든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텍사스 주립대에 들어갔다. 얼마후 휴학한 뒤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마리아니는 탈퇴하게된다. 몇 년 후 그는 돌아와 퓨전 장르를 추구하는 그룹 일렉트로마그넷 (Electromagnet)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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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텍사스의 대학에서 공연하는 일렉트로마그넷.)
일렉트로마그넷은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텍사스 지역 내에서 순회 공연과 지역 레코드사에서 2개의 앨범을 발매하며 몇 년 동안 활동했다. 하지만 메이저 레코드사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고 끝내 해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바로 새로운 자신만의 밴드를 만들었는데 '에릭 존슨 그룹'(Eric Johnson Group)이라고 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 지은 이 3인조 밴드는, 베이시스트 카일 브록(Kyle Brock)과 드러머 빌 매독스(Bill Maddox)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1978년에 Seven Worlds 라는 풀 앨범을 역임하였다. 이 앨범은 몇 년 동안 텍사스 지역 내 음악 평론가들에게 장안의 화제가 되어 다루어졌는데 이 앨범은 결국 에릭 존슨이 유명해진 다음 메이저 레코드사에 의해 1998년 전국 출시되어 판매되었다. 하지만 1978년 당시에는 그럴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돈에 쪼들린다. 그래서 잠시 에릭 존슨 자신만의 밴드 활동은 잠시 접고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뛰며 연명하고 있었는데(하지만 지역밴드 활동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84년 드디어 메이저 레코드 사중에서 최고로 꼽히며 영화 배급사로도 유명한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사에 의해 발탁되어 메이저 시장에 진출한다.
그가 어떻게 워너 브라더스 사의 관심을 끌게 됐는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1.당시 엄청나게 유명한 팝 프로듀서였던 예명 '프린스' (Prince)가 텍사스 지역 TV 방송이었던 오스틴 시티 리미트(Austin City Limits)에 출연한 에릭 존슨을 우연히 보고 워너 브라더스의 꽂아줬다.
라는 설.
2.그가 세션 기타리스트로 뛰고 있었을 때 그가 세션으로 활동하는 가수중에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er Cross)[2] 라는 유명 싱어송라이터가 있었는데, 그의 워너 브라더스에 소속되어 그의 프로듀싱을 맡고 있었던 데이비드 티클(David Tickle)이 크리스토퍼 크로스 뒤에서 세션 연주를 하고 있던 에릭 존슨을 눈여겨 보고 워너 브라더스에 스카우트했다.
라는 설이 서로 싸우고 있다. 프린스, 데이비드 티클, 에릭 존슨, 워너 브라더스 당시 사장 넷 중에 한 명이 입을 열지 않는 한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그가 스카우트해서이든, 우연이든간에, 데이비드 티클을 부 프로듀서로 삼아 1986년, 에릭 존슨은 톤즈(Tones)라는 이름의 밴드로 메이저 세계에 데뷔한다. 기타 평론가 울프 마샬은 이 앨범을 가리켜 “60년대는 Are You Experienced, 70년대는 Wired, 그리고 80년대는 [Tones]가 Stratocaster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의 음악과 실력의 진가를 알고 있는 비평가들의 많은 호평 덕분에 그의 음악적인 능력과 연주 실력은 음악 업계에서 알아주는 수준이 됐지만, 그의 진가를 잘 모르는 대중들의 얼음과 같은 차가운 성원에 힘입어 간신히 1987년 그래미 락 연주부분에 노미네이트된 것마저 떨어지고 그가 대중적으로 그닥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워너 브라더스사는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계약이 끝나도록 그냥 냅둔다. 그래서 결국 그는 예전에 지역 레코드 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워너 브라더스보다는 한참 아래인 인디 레코드사, 시네마 레코드(Cinema Records)사와 계약을 맺고 근근히 음악 생활을 이어간다.
결국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되는데
1990년에 낸 대박 앨범
Ah Via Musicom 때문이다.
이 앨범은 시네마 레코드가 아닌 메이저 레코드사,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 사에 의해 발매됐는데, 그 이유는 사실 시네마 레코드 사는 캐피톨 레코드사의 자회사 인디 레코드사로서, 시네마 레코드 사장이 이 앨범을 듣고서 경악하여, 본사 캐피톨 레코드에 연락하여 진급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처음에도 언급했던 명곡 'Cliffs of Dover'는 이 앨범 수록곡이었는데, 이 곡으로 에릭 존슨은 고배를 마셨던 그래미 상에서 1991년 락 연주부문 수상을 하기 이르고, 이 앨범은 급기가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켜 플래티넘 디스크가 된다.
국내 CF, 방송의 BGM으로도 애용된 차분한 분위기의 'Trademark', 잼 세션 스타일로 녹음된 'Righteous'는 연주곡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록 음악 전문 방송국의 애청곡으로 떠올랐고 각종 기타 전문지의 인기투표 1위를 휩쓰는 등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전부터 Fender를 써오긴 했지만 이 앨범에서 빈티지 스트라토캐스터를 써서 녹음하고 투어를 다니면서 펜더 유저로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일단 그렇게 그가 유명해지자 슬슬 에릭 존슨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하나는 까다로운 성격이다. 유명 음악 프로그램의 MC이고 같은 텍사스 출신이었던 코미디언이 에릭 존슨을 소개할때, 에릭이 히트 앨범은 있어도 히트곡은 없고 그가 채식주의자였던 점과 술을 입에 절대 안되는 금주를 시행하고 있던 점을 꼬집어 만약 그가 햄버거에 맥주를 입에 달고 곡을 썼으면 히트곡 한 두 곡을 써냈을 거라고 비아냥 거렸다가 에릭 존슨의 사악한 간계로 프로그램 하차 위기까지 갈 뻔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인데 사실 그는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이 아니라 '''완벽주의자 그 자체'''이다.
물론 그는 유명해지기 전에도 완벽주의자이긴 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훌륭하지만 에릭 존슨 입장에서는 열악한) 녹음 장비와 마스터링 장비, 작업 환경, 악기, 그리고 앨범을 재촉하는 음반사 사장님 때문에 그 성격이 그닥 발휘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플래티넘 디스크도 받고 유명해지면서 세계 최고의 음향장비, 악기들을 공급받게 되고 음반사 사장님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자 그가 추구하는 '완벽' 이란 게 실현 가능하게 되면서 그의 완벽주의자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덕분에 쓴곡을 또 고치고 또 고치고 X 500, 녹음하고 또 녹음하고 또 녹음하고 X 100, 다듬고 또 다듬고 X 50, 더 잘 치라고 세션 드러머, 베이시스트들을 들볶고 또 들볶고 X 10 하면서 몇년을 끌어댔다. 덕분에 음반사 사장님만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5년만에 나온 1996년작 두번째 앨범 'Venus Isle'은 그의 크게 향상된 음악적 재능과 연주 실력, 보컬 능력,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줬지만, 평론가라면 모를까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대중은 히트곡이 없는 그의 앨범을 무시하고 만다.[3]
덕분에 또다른 플래티넘 디스크를 기대하며 수십억의 스튜디오 대여료, 장비 대여료, 세션 고용비, 그리고 에릭 존슨의 생활비와 그의 완벽주의자 성격때매 질질 끌어대서 한없이 늘어나는 추가 대여료와 추가 인건비를 참아내고 있던 사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재계약을 안하는 방식의 신사적 해고도 없이 그냥 에릭 존슨을 해고시킨다
하지만 메이저에서 짤렸다고 징징대며 다시 인디 레이블로 돌아가기엔 에릭 존슨은 너무나 컸다.
그를 인정해주는 전문가 세계에서 그는 다시 재기하는데 저 유명한 스티브 바이와 조 새트리아니가 기획하는 G3에 1996년 멤버로 초빙되면서 그는 공연을 다닌다. 게다가 그가 참여한 '1996 G3 : Live in Concert' 라이브 공연실황 앨범은 초대박을 쳐서 다시 플래티넘 디스크를 수상한다.
그리고 그가 불운의 2집을 녹음하던 당시인 1994년에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 'Alien Love Child'가 그의 팬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그가 캐피탈 레코드에서 짤린 뒤 정식 콘서트를 열기 시작해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덕분에 그는 2000년에 스티브 바이의 레코드사를 통해 Alien Love Child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며 대중들에게 모습을 간간히 보인다.
사실 완벽주의자 에릭 존슨에게는 재녹음, 보정, 마스터링되지 않은 그냥 생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이었는데, 웃는 얼굴로 사랑의 매를 꼬나쥔 팬과 스티브 바이에게 뭇매를 맞으며 반협박성 설득을 당한끝에 그걸 극복해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애증의 스튜디오로 돌아와 성공적으로 미발표곡 모음앨범과 4집, 'Souvenir', 'Bloom'을 각각 2002년 2005년에 발매하며 인기를 얻더니, 드디어 2005년 Fender에게 아티스트 시그네쳐 출시 제안을 받게된다.
그의 유명한 히트 싱글인 Cliff of Dover는 유명 기타게임 Guitar Hero III: Legends of Rock 와 Rocksmith 수록되어 다시금 인기를 얻는다.
2010년 오랜만에 'Upclose' 앨범을 발매했다. 팬들의 평은 여러가지 시도를 해서 기존의 앨범과는 약간은 이질적인 컨셉인 전작'Bloom'에 비해 호의적인 편.
그는 2014 년 3 월 Jimi Hendrix의 음악을 조명하는 Experience Hendrix Tour에 참여했다. Zakk Wylde, Buddy Guy, Jonny Lang, Kenny Wayne Shepherd, Dweezil Zappa 및 Doyle Bramhall II와 함께 출연했다. 평소 라이브투어때마다 지미헨드릭스의 곡을 커버해왔던 에릭존슨은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지미헨드릭스에 대한 존경심을 멋진연주로 표현해냈다.
2014년 6월 24일 'Europe Live'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60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녹슬지 않은 기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2014년 11월 6일 그의 절친한 동료인 Mike Stern과 Electric합작 앨범을 발매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같이 공연을 가지며 라이브 동영상과 부틀렉으로 소식을 전했던 이들의 첫 정식 콜라보레이션 앨범 Eclectic은 텍사스에 위치한 Eric Johnson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으로 Eric johnson 밴드의 베이시스트 Chris Maresh, CBS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자 데이비드 레터맨 쇼 하우스 밴드의 드러머인 Anton Fig, 전설적인 블루스 보컬리스트 Malford Millian 등이 참여했으며 탄탄한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톤과 연주 성향이 판이하게 다른 두 기타리스트의 인터플레이가 감상의 재미를 극대화 해주고 있다는 평이다
2016년 10월7일 오랫만에 그의 새앨범 EJ로 팬들에게 돌아왔다 전곡이 어쿠스틱 컨셉의 방식으로 녹음된 앨범으로 그의 수준급의 통기타연주와 피아노연주를 들을수있다 9곡의 창작곡과 사이먼가펑클, 레스폴과 메리포드의 곡을 커버한 커버곡 4곡을 담고있다. 앨범발매를 기념으로 미국 60개도시 투어를 돌거라고한다.
3. 연주 스타일
에릭 존슨은 펜타토닉 플레이어다. 그러나 여타 펜타토닉 주자들과는 느낌부터 다르다. 기존의 기타리스트들이 이것을 보다 록적인 맛을 살리기 위해 거칠고 공격적으로 다루었다면 그는 이 펜타토닉을 아름답게 다듬었다. 존 맥러플린, 스티브 모스, 지미 헨드릭스 등으로부터 영향받은 그의 기타는 프레이즈 진행시 풀링 오프와 해머링 온, 슬라이드 등의 핑거 테크닉이 주가 되는 연주를 통해 레가토 솔로를 전개한다. 때문에 에릭의 기타는 물 흐르듯 부드럽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현을 잡아채는 듯한 컨츄리 기타 주법들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있어 프레이즈 전개가 매우 다양하고 수준이 높다.
보통 연주인들은 속주에 급급한 나머지 음을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고 지나친 이펙터를 사용하는 등, 자신의 테크닉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에릭의 경우 이러한 오류는 찾아 볼 수 없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제프 벡,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등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마샬 앰프를 애용했던 이전 시대의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장점을 그의 연주에선 쉽게 만날 수 있다. 때론 정열적으로 때론 부드럽게 연주할 줄 아는 에릭 존슨은 그래서 잘못하면 따분하게 들릴 수도 있는 펜타토닉 스케일(도-레-미-솔-라)을 가장 맛있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로도 평가받는다.
훌륭한 연주인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은 바로 자신만의 특징을 담은 소리를 들려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결코 이름난 명기를 쓴다고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특유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에릭 존슨은 진정한 이 시대의 기타 개척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4. 사용하는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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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 Fender Stratoc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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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 Fender Stratoc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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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nder Stratocaster Eric Johnson Proto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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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nder Stratocaster Eric Johnson Sig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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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nder Stratocaster Eric Johnson Signature (Rosewood)
원래 에릭 존슨은 '''로즈우드 지판 수준으로 배음이 좋은 메이플 지판 기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를 했으나 빌더들이 통사정해서 그냥 로즈우드 지판으로 만들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 1958 Fender Stratocaster “Faye”
- 1962 Fender Stratoc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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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일 좋아하는 깁슨 ES-335로 1996년 비비 킹과 투어 도중 네쉬빌 기타샵에서 구매한 기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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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 Gibson Les Paul
- 1963 Gibson SG
에릭존슨 특유의 영롱하고 매력적인 톤과 물흐르는듯한 연주로 기존의 스트라토캐스터의 음색과는 다른 느낌의 연주를 선보인다
4.2. 기타 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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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존슨의 앰프셋팅
Clean tone : Fender Twin Reverb Piggy-back
Lead tone : 1969 Marshall Super Bass 100W or Marshall 50W Plexi
Dirty Rhythm tone : Marshall 50W Plexi
에릭은 자기만의 소리를 얻기 위해 앰프를 3개로 세팅해 쓰고있다. 즉 Clean, Moderate Dirty, Real Dirty 등으로 나누어 쓰고 있으며, 스테레오 코러스를 절묘하게 이펙팅해 아름답고 환상적인 소리를 뽑아낸다. 또 복수의 앰프로 신호를 분리해 각각 다른 셋팅의 소리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그의 사용장비를 정의하기가 힘든 것이 계속해서 장비 및 세팅을 바꾸고 곡마다(곡 중간중간에도) 이를 달리하기 때문에 'EJ는 이러이러한 장비를 사용한다'고 하기는 힘들다.
록 기타 역사에 끼친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명석한 코드 보이싱과 유려한 레가토 프레이즈, 깔끔한 톤이다. 이 모든 것을 토대로 하여 진행되는 에릭의 멜로디라인과 프레이즈는 ‘노래하는 기타’ 바로 그것이다.
4.3. 이펙터
이펙터는 그때그때 바뀌지만(본인 스소로 They are always changing.이라고 말한다) 라이브때의 세팅은 어느정도 틀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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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존슨의 페달보드 사진
사진상의 장비는...
- Echoplex EP-3 (used only for lead)
- B.K Butler Tube Driver
- Electro-Harmonix Deluxe Memory Man
- Ibanez Tube Screamer TS-808 (used mainly for playing power chords)
- ToadWorks Barracuda Flanger
- Dunlop Fuzz Face
- Dunlop Eric johnson signature Fuzz Face
(샘플 사용기 영상)
2012년 던롭사에서 나온 그의 시그네쳐 퍼즈 페이스이다. 에릭 존슨이 직접 개발에 참여했으며 60년대 빈티지 달라스 실리콘 퍼즈 페이스를 복각했다고 한다. 굉장히 더티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 BOSS DD-2 (used for the dirty rhythm sound)
- B.K Butler Tube Driver (lead and clean sound)
- Dunlop Cry Baby Wah
- TC Electronic SCF Stereo Chorus / Flanger
- MXR Digital Delay (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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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희망도 없는 DUMBLE
그의 이펙터는 AC 어댑터가 아닌 배터리 구동하는데 그 전지도 메이커는 듀라셀 의 것만 고집하고 (메이커마다의 차이를 구별 할 수 있는거 같다) 이펙터에 깔아놓는 보드도 무조건 베니어합판을 이용하는데 이펙터에 흐르는 이상전류를 잡아줘 본연의 톤을 뽑아내기위해서라고 한다.
↑ 이 영상을 보면 그가 라이브 투어때 주로 사용하는 앰프와 페달보드 그리고 어떤식으로 사용하는지 간략하게 알수 있다
에릭존슨의 톤을 따라하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4.4. 기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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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존슨의 스트링은 다른 스트링에 비해 4,5,6현 줄이 더 굵게 제작되어 나왔으며 보다 묵직하고 꽉찬 코드사운드를 위해 제작되었다.
다만 6번줄이 050의 두꺼운 사이즈다 보니 기타에 따라 너트를 개조해야할수도 있는 상황이 생기니 주의해야한다
그는 튜닝 시에는 일반적으로 6 현에서 1 현 으로 차례로 조율 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3 현 2 현 1 현 4 현, 5 현, 6 현 의 순으로 현의 중앙 측에서 바깥쪽으로 아래쪽으로 퍼져 나가도록 튜닝을한다. 이 모습은 에릭존슨의 레슨 비디오에서 확인할수있다.
4.5. 기타 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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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lop Eric Johnson Classic Jazz III
두께 1.14mm 의 작은 사이즈의 붉은색 피크로 솔로연주에 특화된 재즈스타일의 피크지만 얇다보니 거친연주를 자주 할시 빨리 닳아 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두께 자체는 얇은 편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 피크는 다른 재료에 비해 비교적 무른 편인 나일론 재질이라 마모가 심하다. Jazz III는 솔로 연주를 즐기는 기타리스트들에게 인기가 많은 쉐이프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베리에이션이 있으므로, 나일론 재질의 피크가 맞지 않거나 마모의 압박이 심하다면 Tortex나 Ultex 재질의 피크도 있다.
5. 연주영상
그의 최고의 명곡 Cliffs of Dover
또다른 그의 대표곡 Manhattan
지미 헨드릭스의 Spanish Castle Magic 커버
스티비 레이 본의 헌정송.
6. 음반목록
6.1. 정규앨범
6.2. 라이브앨범
6.3. 비정규앨범
7. 끝내며
일렉트릭 기타 음악은 대중으로 하여금 거칠고 시끄러운 음악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에릭 존슨은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기타 연주로 그러한 편견에 이견을 제시하는 기타리스트로써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으며 현재도 쉬지 않고 투어를 도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강하진 않지만 강하게 가슴으로 남는 음악으로 팬들과 뮤지션, 기타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받는 그가 바로 기타리스트 에릭 존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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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을 할 때 나는 보이싱과 멜로디 라인에 많은 신경을 쓴다. 한 곡이 기억되고 오래 사랑받는 건 멜로디이기 때문'''
에릭 존슨의 인터뷰 중에서…
[1] 여담으로 둘다 1954년생이다.[2] 데뷔 앨범으로 1980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최우수 편곡'의 5개 부분을 수상한 뮤지션.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Arthur'의 주제곡 'Best That You Can Do'가 잘 알려져 있다. [3] 다만 이 앨범에 Cliffs Of Dover 못지않게 사랑받고 많이 카피되는 Manhattan이 수록되어 있다.[4] 본문에서 설명했듯 사실상 그의 첫 솔로앨범(1978년)이지만 그의 유명세 이후 상당히 뒤늦게 발매된 앨범이다.[5] 그가 텍사스 지역에 활동하는 사이드 블루스 밴드로 수록곡 Rain이 그래미 어워즈에 노미네이트되었다[6] 1988년 오스틴 시티 리밋이라는 지역 음악방송의 라이브를 담은 앨범이다[7] 1984년 이 역시 동일한 방송에서 한 라이브인데 여리여리하면서 풋풋하고 미소년에 가까운 에릭존슨의 모습을 볼수있다[8] 미발표곡과 커버곡을 모은 앨범[9] 마이크스턴과 공동작업한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