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목후이관

 


'''고사성어'''
'''楚'''
'''人'''
'''沐'''
'''猴'''
'''而'''
'''冠'''
초나라 초
사람 인
머리를 감다 목
원숭이 후
어조사 이
관직 관
1. 개요
2. 해당 단어의 배경
3. 라이벌 유방과의 대조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초나라 사람은 갓을 쓴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뜻의 고사성어. 목후(沐猴)는 원숭이가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 아니라 중국 남부에 많이 사는 레서스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중원 동남쪽 끝 변방에 살았던 이민족을 부르는 멸칭이다. 즉 초나라 놈들이 아무리 문명인 흉내를 내고 다녀봤자 본질은 천박한 야만인에 불과하다는 불꽃 지역드립으로, 풀어서 말하면 '초나라 원숭이놈'이라는 욕. 다만, 이 고사성어가 나온 당시에는 중국이 막 통일된 시기여서 같은 국가 사람이라는 의식조차 없었으므로(특히나 묘족이 주를 이뤘다고 추측되는 초나라에 대해서는 더욱이), 지역감정이 아니라 적대국에 대한 비하에 가까웠다.
이 말을 겁도 없이 서초패왕 항우에게 하다 팽형 당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연은 다음과 같다. 초한전쟁 시기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자영을 죽이고 함양을 불살라 버렸다. 함양은 허허벌판이 돼 아무런 가치가 없어졌고, 항우와 부하들은 진나라를 정복했다는 명예를 고향에 돌아가 자랑하고 싶기도 해서 금의야행 논리로 초나라 땅 팽성에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때 간의대부인 한생[1]이 나서서 관중 땅이 산과 강이 험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천하를 다스리기에 적합하다고 간했다. 항우는 황량해진 함양이 싫어서 무시했다. 한생은 생각없이 다 때려부숴놓고 돌아간다는 멍청한 생각에 분노에 이성이 마비되어 급기야 "인언 초인목후이관, 과연(人言 楚人沐猴而冠, 果然)."(사람들 말로는 초나라 인간들은 원숭이가 갓을 쓰며 사람 행세를 하는 거나 다름없다던데, 과연 그렇군.) 하고 지역드립을 뱉었다.
항우는 이 말을 처음엔 알아듣지 못하고 진평에게 물어본 뒤, 뒤늦게 뜻을 알고 격분해서 한생을 삶아 죽였다.[2] 그리고 멍청하게도 정말 팽성으로 돌아가 도읍을 삼았고, 자신이 몰락할 밑거름을 뿌렸다.
야사에서는 죽으면서 "나는 간언하다 죽지만 두고 봐라, 백일 이내에 한왕이 와 널 멸할 것이다."라고 일갈했다고도 한다.[3]
이 사건은 항우신안대학살 문서에도 많이 서술되었다.
항우의 졸렬한 대응 때문에 훗날 목후이관(갓 쓴 원숭이)이라는 말은 못난 소인배를 비꼬는 말로 확장돼 쓰였다. 조선의 대표적 권신 한명회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짓자 선비들이 이 말로 비꼬았다.

2. 해당 단어의 배경


제일 유명한 사례는 항우에게 지역드립을 시전한 유생이긴 하지만, 그 이전부터 중원의 화하족들은 형초(荊楚)지방 사람을 야만족이라 하여 깔봐서 같은 말이 계속 회자되었다.
다소 신화적인 하나라, 그리고 겨우 역사적 실체가 실증적으로 밝혀진 상나라, 여전히 부족 연합 수준이긴 해도 역사적 실체가 뚜렷한 주나라로 이어지는 중원 황하 문명화하족은 기원전 2천여 년 전부터 춘추시대까지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춘추시대에도 주나라 왕을 천자로 모시는 봉건제 질서가 확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황하 문명과 별개로 장강 부근에서 성장한 문명이 별도로 존재하며, 현대에는 황하문명과 별도로 장강문명이라고 분류된다. 장강문명권에 속했던 나라들로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가 있었는데, 이들은 황하 문명의 주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춘추시대부터는 양 문명이 확장을 거듭한 끝에 서로 충돌했는데, 이 과정에서 황하 문명 측은 자신들과 습속과 질서가 전혀 다른 장강 문명 국가들을 야만족이라 멸시했다.
장강에서 문명을 세운 초, 오, 월이 춘추전국시대에 풍습이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은 많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수민족인 묘족이 그들과 같은 계통이었다고 추정한다. 현대 사학에서도 이 당시에 중국 남부에서 널리 쓰이던 언어들은 한장어족 계통이 아닌 타이카다이어족이나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몽몐어족에 속한 언어들이라고 추정한다. 항우가 유생의 지역드립을 못 알아들은 이유도, 항우 입장에서는 외국어였기 때문인 듯하다. 한나라 시대에는 초, 오, 월도 어떻게든 중화 문명의 일종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어해서 사서 상으로는 주나라의 책봉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초나라는 주를 무시하고 왕을 자칭했고, 오월이 책봉받은 기록도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주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를 생깠을 가능성이 더 높다. 초와 오월은 단발머리에 문신을 일상적으로 새겼다고 하므로 복식에서도 풍습이 많이 상이했던 것 같다.
시경과 서경으로 대표되는 노래와 예술부분도 달라서 사면초가라거나, 전한 궁궐에 초나라 노래가 불렸다는 등[4] 일화가 전한다.
하여간 춘추시대부터 쌓인 국가 간 감정이, 진시황이 무력으로 갑자기 통일했다고서 사라지진 않아서 유생의 입에서 터져나왔던 것이다. 또한 관중#s-4 지역의 막대한 잠재력을 포기하고 고작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읍을 옮기려는 결정을 비판하는 의도도 있다. 실제로 이 관중 포기는 후술하겠지만 초한전에서 항우가 파멸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의외로 항우는 이 말을 처음 듣고 그 뜻을 몰라서 옆에 있던 신하에게 그 뜻을 물어봤다고 한다. 묻는 대로 알려준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은 '''진평'''. 이 욕설의 뜻을 세 가지나 들려줬다고 한다.[5]

3. 라이벌 유방과의 대조


유방은 이와 정 반대 모습을 보였는데, 중국 통일 후 주나라를 따라 수도를 낙양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다 징집 영장 나와서 농서로 가던 누경이라는 사람이 동향 사람인 우장군을 통해 면회를 청했는데, 유방은 듣도 보도 못하고 의관도 갖추지 못한 평민 병졸이 뜬금없이 면회를 청하는 걸 쿨하게 들어주었다. 수도를 낙양으로 한다는 유방의 말에 누경이 조언을 해 줬는데, 그 내용은 대충 '주나라는 원래부터 뼈대있는 가문이 누대에 걸쳐 널리 덕을 베풀어 제위에 오른 거라, 소통에 편리하도록 교통의 요지인 낙양에 도읍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몇 대 지나서 상황이 안 좋아지니 낙양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했는데, 폐하께선 밑바닥에서 전쟁으로 박박 기면서 올라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쌈박질만 하는 통에 아직도 산과 들판에 간과 해골이 가득히 방치되어 있는데 낙양이 좋을까요? 반란이 일어나도 방어하기도 쉽고, 경제력도 좋은 진나라 땅 챙길 수 있는 관중 안으로 들어가시라'는 내용.
요약하자면 '''낙양은 방어하기 힘들어서 성군이 아니면 못써먹음. 근본도 없으면서 쌈박질로 정권 잡은 님은 쌈박질하기 좋은 동네나 가는 게 낫겠음.''' 시체, 반란, 주나라에 비하면 덕이 부족하다와 같이 황제한테 하는 발언치고는 무례하지만 누경의 발언의 요점은 유방을 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허울 좋은 낙양보다는 관중으로 들어가 실속을 챙기라는 것이었다. 유방도 분노하기는 커녕 곧바로 신하들과 논의했고, 다른 이들은 모두 반대했지만 장량이 누경의 의견을 지지하자 '''즉시''' 관중을 수도로 삼고 누경에게도 포상과 직위와 유씨 성 등을 하사해 보답했다. 이 일회를 두고 고우영은 '유방의 가장 큰 장점은 쓴소리를 들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라고 서술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신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자를 잡아다 죽이는 인물치고 명군인 사람이 드물었다. 조조원소에게 대승한 이후 허도의 인물들이 원소와 주고 받은 내통 편지를 불태우는 아량을 보여줬지만 권력이 공고해지자 양수, 최염, 누규, 공융, 순욱 등을 자기 비위에 거슬린다고 죽였고, 조조가 천하통일에 실패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 사람들도 많다.[6] 항우는 특히 곱게 죽인 것도 아니고 끓는 물에 내던져서 죽였으니 더욱 항우의 옹졸함이 빛나는 고사로 평가되는 견해가 많다.
다만 반론도 있는데, 항우가 졸렬하고 잔인하다는 데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그러나 항우 말고 어떤 군주에게라도 '너는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 수준이다!'는 드립을 쳤으면 안 죽는 게 이상하다는 의견도 많다. 만에 하나 군주가 착해서 화가 안 났어도 자신의 위엄을 위해 죽여야 할만한 발언인 것이다. 게다가 군주의 고향인 초나라 사람들도 다 까내렸으니 살려두면 항우의 정치적, 군사적 기반인 옛 초나라 지역에서도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즉 한생이 초인목후이관이라고 한 드립 자체는 죽어 마땅하다는 것. 판단은 본인에게 맡긴다.
그 외 유방은 수도 천도 일화 말고도 소탈하고 대범한 면모를 많이 보여줬다. 승상격인 소하도 유방에게 "주공께선 평소에 오만무례하십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순순히 인정하고 소하의 무례를 탓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한신, 왕릉, 진평, 주창[7]등도 '''"폐하가 항우보다 나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폐하는 괴팍하고 욕을 일삼으시지만 항우는 다정했습니다. 항우가 통만 컸으면 우리가 절대 못이겼을 걸요." "폐하가 도무지 교양이란 게 없으시니 우리 쪽에 붙는 선비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절개 없이 재물만 탐하는 놈들뿐[8]입니다." '''"폐하가 어떤 임금이냐고 물어보셨습니까? 걸주 같은 폭군입니다."''' 같은 말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다. 그런데도 유방은 그냥 전부 인정하고 넘어갔다(...).[9]
유생들이 결사반대한 초나라 귀향을, 사람을 끓는 물에 내던져가면서까지 끝내 시행한 항우에게 돌아온 것은 초나라 대의의 파멸과 항씨 가문의 몰락, 그리고 초나라 장병들과 자신의 비참한 죽음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버린 관중 지역이 훗날 유방의 근거지가 되어 한나라 대업에 끼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 선택이 항우의 파멸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기타


이 말을 듣기 이전, 항우는 자신의 유방 암살 계획을 따라주지 않은 것에 격분한 범증에게 면전에서 '''이래서 어린애와는 대사를 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전부 유방에게 잡혀 죽고 말 것'''이라는 욕설을 들었지만, 뒤에서 욕한 것으로도 팽형까지 당한 한생과 달리 이에 대해선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갔다. 지인과 그 외 인간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던 항우의 면모가 느껴지는 부분. '나랑 친하면 봐주지만, 아니면 맞는 말해도 너 사형' 하지만 범증은 일단은 항우의 아버지격인 사람에 공신이고 서열 기준으로도 항우 바로 다음이니 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유의어로 '''영서연설(郢書燕說)'''이라는 말도 있다. 영에 사는 사람의 글을 연나라 사람이 풀이한다는 말로, 사리에 안 맞는 말을 억지로 맞는 것처럼 끌어댄다는 뜻. 영(郢)은 초나라가 일어난 지역으로, 초나라진나라에 밀려 수춘으로 쫓겨 가기 전까지 수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연나라는 춘추 전국 시대 중국에서 가장 깡촌 구석, 즉 고조선 바로 옆인 북경 주변과 요하 인근에 있던 나라... 현대어로 풀자면 '''덤 앤 더머''' 정도 된다.
고우영 초한지에서는 항우가 집극랑으로 있던 한신에게 한생의 사형 집행을 명한다. 여기선 한신이 한나라 왕족으로 나오기때문에 같은 나라 사람끼리 죽고 죽이게 한 것 이었다.[10] 한생은 국가를 위해 책임을 다한 대가로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한 처사라며 형장으로 끌려가는 내내 탄식하는데 한신은 그런 한생을 면박주며 왕에게 간언하는 자리에 있으며서도 자기 할 일을 하나도 못했으니 억울할 것 없고, 죽는게 당연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발끈하는 한생에게 한신은 '''항우가 자영을 죽일 때 부당함을 알려 중지시키지 않았고, 진시황릉 도굴을 말리지 못했고, 아방궁을 불태울때 간하지 못했으며, 진의 항병 20만을 죽일 때도 직분을 다해 말리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책임을 다한답시고 천도 결심이 확고한 왕 면전에서 욕설이나 했다'''고 나직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꾸짖는다. 즉 "이미 충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동안 안 하고 뭐했냐?" 한신이 한 마디 할때마다 점점 대답이 궁색해지고 숨이 막힌 한생은 할 말이 없어져 종국에는 눈물만 흘리다 펄펄 끊는 기름에 던져졌다.
또한 고우영 초한지에서 이 일은 한신과 장량이 만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항우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게 된 건 민중들 사이에서 금의야행의 뜻을 담은 노래가 퍼지자 이에 마음을 굳힌 것인데, 이 노래를 퍼뜨린 사람이 바로 장량이었다. 사면초가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 그리고 한신은 이를 이미 간파해서 '아마 그 노래를 만든 자가 지금쯤 어디선가 우리를 처다보고 있을 것이고, 유방이 파촉으로 갈 때 잔도를 끊은 자 역시 동일인물일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형장의 구경꾼들 사이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량은 과연 한신이라며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한신은 항우에게서 떠나기로 완전히 결심하고, 장량과 접촉해서 유방에게 갔다.
고우영 초한지에서 상당 부분의 모티브를 따 온 문정후 초한지에서도 한신이 한생에게 꾸짖는 장면이 똑같이 나온다.
초한전기에선 항우에게 천하를 재건할 것을 권하며 관중의 강점을 논하면서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다 했으나, 진나라 자체를 싫어하던 항우는 그냥 관중이 싫다고 거절한다. 한생은 초는 변방에 불과하다 했더니 항우에게 '성공했는데 고향에 안 돌아가면 금의야행[11]이랑 뭐가 다르냐'는 말만 듣는다. 어이가 없어진 한생은 그 유명한 초인목후이관으로 항우를 디스하고, 열받은 항우가 죽고 싶냐고 협박하자 '맘대로 하시지요, 어차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라며 빈정댔다. 항우가 끌고 가라고 하자 한생은 항우에게 '불쌍하구나!'라고 비웃으며 끌려나간다.
미야시타 아키라의 만화 '''열혈마계남'''(원제: 天より高く)에서는 일본 수상 츠루기 모모타로[12] 반대파의 소인배 국회의원과 얘기하면서 초인목후이관이라는 글씨가 쓰인 종이를 건네주는데, 이 소인배는 그 뜻도 모르고 많은 사람 앞에서 자랑질을 하였고, 이후 초인목후이관의 본 뜻을 알고는 엄청나게 분노한다.

5. 관련 문서


[1] 초한춘추와 법언에서는 채나라 출신, 한서에는 한나라 출신의 유생이라 나오며 사기에서는 한생이라고 한다. 사기가 정확할 듯.[2] 물론 군주와 군주의 나라까지 원숭이로 까내렸으면 죽는 게 당연하다. 군주가 매우 착해서 화가 별로 안 났어도 자신의 위엄과 체면을 위해 죽여야 하는 수준.[3] 실제로도 유방이 파촉에서 뛰쳐나온 때는 쫓겨난 지 대충 3달쯤 뒤 일이다. 항우를 죽이기까진 거기서 4년이 더 걸렸지만.[4] 한고조 유방을 포함한 건국세력들은 대부분 초나라에서 일어났다. 한고조 유방은 후에 자신이 초나라 출생이 아니라 위나라에서 이주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일부러 위나라와 위나라 출신 전국사군자신릉군 위무기를 띄워준다.[5] 원숭이처럼 무식한 놈이 관을 써봤자라는 뜻, 원숭이처럼 조급하다는 뜻,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 의관을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 셋 모두 항우의 상태를 매우 정확하게 까고 있는데, 실제로 항우는 원숭이처럼 판단력이 낮았고, 앞뒤 안 보고 살육과 파괴부터 해대는 근시안이었으며, 이런 병신짓만 계속한 끝에 5년 만에 저승으로 떠났다. 진평이 은근슬쩍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6] 조조는 분명히 만행으로 평생 자기 세력을 깎아먹는 일을 한 인물이다. 최악의 패륜인 서주 대학살 때문에 나중의 그의 영토가 되는 서주는 생산력이 박살났으며 많은 서주의 인사들은 고향을 떠나 조조의 적대 세력에 가담했다. 그 중에는 '''제갈량'''조차 있었다. 거기다가 의 과부섹스하다 자기 아들을 잃어버려 나중에 후계가 꼬이는 등 분명히 한계가 있었던 사람이다. 오히려 인생의 최종보스인 원소를 천운(관도대전의 오소 전투하고 백랑산 전투)으로 깨부수는 등 운빨로 최강자가 되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7] 이 사람의 종형인 주가(周苛)도 항우군에게 붙잡혀서 항우가 회유하려 들었을 때 '기껏 보여줘도 선비가 뭔지도 모르니 넌 그냥 가망이 없다. 헛고생 그만하고 빨리 우리 폐하께 항복하기나 해라.'라고 욕을 하다가 삶겨져 죽었다고 한다. 덤으로 주창은 동향 사람들조차 꺼릴 정도로 지독한 독설가였다.[8] 웃기는 것은 이 말을 한 진평이 자신이 바로 그런 인물이라 한때 장수들에게 밉보였다는 점이다. 자기 딴에는 유우머라고 한 말 같다만(...)[9] 다만 부하들은 유방을 강하고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뿐, 정말 항우가 유방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다. 교양 없고 괴팍하게 굴지만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랑, 교양 있고 다정하지만 뻑하면 민간인 수 만 수 십만을 잡아죽이는 인간 중 누가 더 인간성이 좋은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 인간성을 제쳐두고 사실 '''부하들도 유방이 더 잘해줬다.''' 유방은 비록 신하들에게 욕, 갈굼을 했지만 충언을 잘 들었고 공을 세우면 후하게 보상했다. 항우는 어떤 충언도 도통 들어먹지를 않아서 범증은 분통을 터뜨리고 진평, 한신은 유방에게 튀었다(...) 그리고 제후 분봉도 개판으로 해서 장수들마저 돌아선다. 아무튼 유방과 항우의 인간성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10] 근데 진짜로 동시대에 한나라 왕족인 동명이인이 있긴 했다. 물론 집극랑으로 항우 밑에 있던 건 우리가 익히 아는 그 한신이지만, 아무래도 고우영 작가가 헷갈린 듯.[11]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 즉,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혼자 폼내는 꼴을 비꼬는 말이다.[12] 돌격 남자훈련소의 그 주인공 맞다. 이 작품은 돌격 남자훈련소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남자훈련소 학생들은 일본 각계의 톱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