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전투

 

'''장판 전투
長坂戰鬪/長坂坡之戰'''

'''날짜'''
208년 9월
'''장소'''
형주 당양 장판(후베이성 징먼시 둬다오(掇刀区) 구[1])
'''원인'''
유비의 강릉 입성 저지 및 유비 섬멸을 위한 조조의 추격
'''결과'''
유비의 패주와 기록되지 않은 민간인 사상 발생
'''교전세력'''
'''조조군'''
'''유비군'''
'''지휘관'''
'''조조'''
'''유비'''
'''병력'''
5,000
불명
'''피해 규모'''
불명
불명


1. 개요


208년 벌어진 유비군과 조조군의 전투다.

2. 정사에서의 모습


선주가 당양(當陽) 장판(長坂)[2]

에서 조공(曹公, 조조)에게 추격당해 처자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나자, 조운이 몸소 어린 아이를 품에 안았으니 즉 후주(後主, 유선劉禪)이고 감부인(甘夫人)을 보호했으니 즉 후주의 모친이었으며 이들이 모두 위난을 면할 수 있었다. 아문장군(牙門將軍)으로 올랐다.

'''《삼국지》''' 조운전


당초 선주(先主)가 패했을 때 조운이 이미 북쪽으로 떠났다고 말하는 자[3]

가 있었다. 선주가 수극(手戟)을 내던지며 말했다.

“자룡이 나를 버리고 달아났을 리 없다.”

얼마 뒤 조운이 도착했다.

'''《삼국지》'''조운전. 주석 운별전


조공이 하루 낮, 하루 밤을 추격하여 당양(當陽-형주 남군 당양현) 장판(長阪)에 이르렀다. 선주는 조공이 갑작스럽게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처자식을 버린 채 달아났고, 장비로 하여금 20기(騎)를 이끌고 뒤를 끊도록 했다. 장비는 물가에 의지한 채 '''다리를 끊고'''는 눈을 부릅뜨고 모(矛)를 비껴 잡으며 외쳤다.

"내가 장익덕이다. 앞으로 나와 생사를 가름하자!"

감히 접근하는 적군이 아무도 없었고 이 때문에 마침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삼국지》''' 장비전


선주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듣고 조공은 정기(精騎-정예기병) 5천을 이끌고 이를 추격했다. 하루 밤낮에 3백여 리를 달려 당양의 장판(長阪)에 이르렀다. 선주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 장비, 조운 등 수십 기를 이끌고 달아났고, 조공은 그의 무리들과 치중을 크게 노획했다.

'''《삼국지》''' 선주전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208년 9월, 유비는 번성에 있다가 조조의 남진에서 그 예봉을 피하고 대항하려고 강릉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유종이 있는 양양에 들렀는데 유종 좌우의 사람들과 형주 사람들이 대부분 유비에게 귀부하였다. 형주 유민들을 이끄는 가운데 유비는 자신은 육로, 관우를 별도로 파견해 수로를 통해 이동시켰다. 한편 조조 역시 이를 예측하여 직접 호표기를 인솔하여 유민들을 이끌고 가느냐고 진군속도가 늦어진 유비를 따라잡았고[4], 격파된 유비는 가족들도 챙기지 못하며 황급히 달아났다.(조순이 이때 유비의 두 딸을 사로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유비는 10만이나 되는 백성들을 억지로 끌고 갈 병력도, 식량도 없었고, 행군하기엔 짐덩어리나 마찬가지인 백성들이 따라오지 않는 게 유비군에겐 훨씬 더 유리했다.[5] 거기다 유비는 조조군이 눈앞에 닥친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알게 되어 중과부적인 상황임을 깨닫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했고, 나중에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정예 기병대 추격군이 군과 백성을 가리지 않고 밟아 죽여가며 밤낮으로 쫓아오는 급박하고 두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엉겨붙어오는 백성들을 팽개치지 않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다 결국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6] 형제 같은 부하인 장비를 겨우 20기만 딸려보내 후방에 남겨 뒤를 끊게하고 소수의 부하와 함께 도주했다. 이런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각주에서도 언급했지만 10만이면 현대에도 중소규모 도시, 그 당시로선 대도시 급의 인구와 그에 딸린 치중인데 필연적으로 행군중에 백성과 치중의 행렬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대열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백성과 치중을 보호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 이 길어진 행렬 때문에 안 그래도 대열을 통제하기도 부족한 병력을 나누어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좋거나 매복하기 쉬운 곳, 반격하기 쉬운 곳 등 정해진 위치에 두기보단 행렬 각지에 분산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난데없이 기습을 당한다면 그대로 병력의 신속한 집결이 되지 않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여 치명타를 입고 각개격파 내지는 후방부터 붕괴되어 아수라장, 난전으로 진행되어 병력 및 인구, 물자 통제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 조조가 유비를 기습한 장판 전투도 그런식으로 진행되었다. 까놓고 유비로선 사람은 많은데 지킬 병사는 적은 중과부적인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추구하는 가치를 보고 백성들이 따라오는데 이것을 그저 버릴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쫓기는 입장인 만큼 척후병을 두고 혹시나 올 추격군에 대비했겠지만, 상대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달리 보병이나 치중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체격도 크고 갑옷도 좋은걸 걸치고 좋은말을 타고 돌격했을 정예 기병대만을 몰아서 하루만에 300여 리를 전력으로 달려오는 중이었고 척후병이 이를 발견해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려 유비군 수뇌부에 보고할 때 쯤이면 유비군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대열 후방부를 강습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선 정말 난데없이 나타난 셈이다.
이 와중에 조운은 단기로 북쪽으로 이동해 어떻게든 구출한 유비의 가족 일부를 지키며 유비에게 합류했으며, 장비는 불과 20여기의 기병만 가지고 장판교에서 조조군과 대치하여 유비가 탈출할 시간을 벌어줬다. 그리고 수로로 이동한 관우가 유비를 무사히 마중하면서 유비는 목적지인 강릉에 가지 못했지만 한진에 도착하여 유기와 연계하며 손권과 연합해 조조에 대항할 준비를 했다. 정사 삼국지 선주전 주석 한위춘추에 따르면 어떤 이는 유종과 형주의 관원을 위협해 남쪽 강릉으로 데려가 농성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유비는 '유형주(劉荊州, 형주목 유표)가 죽을 때 내게 고아를 맡겼으니, 신의를 저버리고 스스로를 구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오. 죽은 뒤 무슨 면목으로 유형주를 만나겠소'라고 거절한다. 기록으로 보면 유표는 유비를 아들들의 후견인 격으로 삼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후일 유기와의 합류는 유기 입장에서도 유비의 합세로 더 버틸힘이 생겼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설인 연의에선 장판 전투에 과장이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은 위에도 적힌 '''실제''' 조운장비의 활약을 모티브로 삼았다. 조운이 적진에 들어갔다는 것은 조운별전의 기록이지만, 자치통감에도 장비가 20여기로 장판교에서 조조군을 막고 어떤 사람이 조운이 북쪽(조조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고 하자 유비가 수극을 던지며 "자룡이 나를 버리고 달아날리가 없다." 라는 발언을 한 이후 조운이 유선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장비열전에는 '''강물에 의지해서''' 라는 말이 나오는데, 연의에서의 모습이 익숙한 사람들이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다리를 없애버린 후, 멀리서 소리치는 장면'쯤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절대 강을 건너가서 다리를 끊었다는 식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의지한다는 것은 '''배수진'''을 의미하며 말 그대로 장비는 강물을 등진 상태로 놓고(의지하고) 다리를 끊은 것이다. 이 장면이 정사에 나오는 것부터가, 진수가 관장지용이라 불리는 장비의 용맹무쌍과 그 활약상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기록의 의도가 그럴진데 강 건너에서 못 넘어오게 만든 다음 소리만 바락바락 지르는 장면이라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강 건너편에서 그랬다면 강물을 의지했다는 표현이 아니라 강을 사이에 두었다고 기술해야 자연스럽다. 참고로 여기서의 장비는 조조의 정예기병 5천을 전부 맞닥뜨린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장판파는 매우 혼란스러운 땅이었고, 조조군의 5000 정예기병과 유비의 패잔병, 그리고 그 난리통에 뒤섞인 수많은 민초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조조의 병사들은 유비를 찾거나, 아직 남은 유비군과 싸우거나, 민가를 약탈하거나 등등 제대로 통제되고 있지 않았다. 즉, 5000명의 정예기병이 질서정연하게 유비를 쫓고 있던 것이 아니므로, 장비가 상대했던 것은 5000 기병 전체가 아니다. 아마 유비 쪽으로 추격을 해오던 기병 수백과 맞닥뜨린 후 배수진을 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혼자서 수백의 기병을 맞이하여 사생결단을 내자고 호통을 치는 것 (그것도 퇴로를 스스로 끊은 채) 또한 보통 간담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정사에 기록된 내용이라고 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인지 의심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의 일이지만, 진수가 기록한 것은 '''그 정도로 놀라운 활약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진수배송지가 조운이랑 장비를 띄워주려고 없는 사실을 기록했을 리도 없다.
유비가 후미를 맡기기 위해 장비를 보낸 것은 어떤 의미에선 자살 특공 명령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그것을 수행한 인물은 이 내용 없는 지시를 전술로 승화할 수 있는 능력과 개성을 가진 장수였다. 장비는 한 줌 밖에 안되는 휘하 기병들을 이끌고 장판교 다리 앞을 가로막았다. 기습으로 인해 군대가 붕괴하고 지휘관 유비의 도주로 한번 꺾였던 유비군의 기세가 장비에 의해 뻔뻔하게도 그런 적 없었다는 듯이, 오히려 장비의 사자후로 인해 그 정예인 호표기들도 겁을 먹어 감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더 요란하게 우뚝 선 상황이 된 것이다. 조조는 오환족 같은 이민족 기병도 거느렸고 따라서 이민족 궁기병이 정예인 이들 사이에 섞여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는데도 호표기들은 멀리서 활 한번 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조조는 이 기습으로 철처하게 유비군을 격파한 후였고 유비의 목숨은 어떻게든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유비가 군비가 충실한 강릉으로 갈까봐 식량, 말 먹이를 보충해 줄 치중까지 버리고 급하게 양양으로 갔다가 유비가 지나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하루종일 잠도 안 자고 정예기병을 몰아서 단숨에 300여 리나 강행군으로 온 만큼, 이미 급습의 효과까지 끝난 마당에 난전상태에서 잔존 유비군이 지휘관 중 하나인 장비가 아직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각지에서 삼삼오오 모여 조조군의 발목잡기라도 하고자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면[7] 조조로서도 이 잔존병력까지 격파한다고 해도, 말이고 사람이고 더욱 피로가 누적되고 지쳤으며 보급도 없고 전투로 상하기까지 한 군대를 가지고 유비를 계속 추격하거나 강릉에 가기엔 난감한 상황에 빠질수도 있었다. 거기에 군대는 소수 정예지만 지쳐있고 보급도 없는 마당에, 자신들에게 암묵적으로 적대감을 품고 있는 10만에 가까운 군중도 수습해야 했을것이다. 추격대, 중군, 치중이 분리된 이런 군대를 이끌고 추격만 계속하다간 아직 형식적인 항복만 받아 자신에게 적대적인 형주 인심이 돌아서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결국 조조군 역시 쉬어갈 필요가 있었기에 조조는 더 이상의 무리는 피하는 쪽을 선택하며 추격을 포기하고 확실하게 유비가 강릉을 장악하는 변수를 없애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지난번 장필무(張弼武)를 인견하실 때 전교하시기를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삼국지연의(三國志衍義)》에 있다고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략)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조선왕조실록에도 장판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 선조 3권, 2년(1569 기사 / 명 융경(隆慶) 3년) 6월 20일(임진) 1번째기사이며, 말을 한 사람은 기대승이다. 정사에서도 장비의 행동이 언급되어있지 않나 생각할 수 있는데, 정사에서는 '조조군을 막아냈다'라고만 했고 '조조군이 달아났다'라고까지는 말하고 있지 않으므로 기대승은 맞는 말을 한 것이다.
비록 조운과 장비의 활약이 주로 강조됐지만 관우의 역할도 굉장히 크다. 관우는 수로로 움직이며 강릉으로 향했는데, 주로 북방쪽에서 활동해온 관우가 처음으로 수군을 지휘했을 것임에도 유비가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유비를 탈출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실시간 연락이 원활하지 않던 그 시대에 강릉 접수라는 목표로 틀어졌음에도 침착하게 수군을 움직여 유비를 도와준 관우의 활약이 없었다면 조운과 장비의 활약도 빛이 바랬으리라.

3. 삼국지연의에서의 모습


삼국지연의 기준으로, 유비조조를 피해 강하로 가던 도중 맞닥뜨린 곳이다. 유비의 가족을 호위하던 조운은 가솔의 행방을 찾을 수 없자 망설일 것 없이 적진에 뛰어든다. 이후 종횡무진 적진을 돌파하여 유선을 구출한다.
한편, 조운이 조조의 진영 쪽으로 가는 것을 본 미방은 조운이 배신했다고 유비에게 알리고, 유비는 그걸 믿지 않지만 장비는 배신자를 처단하겠다면서 장판교로 나선다.
유선을 구해낸 뒤 조조의 백만대군을 돌파하는 조운의 놀라운 무위는 그야말로 신들린 것이었고, 멀리서 지켜보던 조조는 여기에 감탄하여 '저 장수를 반드시 생포해야 하니 화살을 쏘지 말라' 라는 명령을 내린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단신으로 조조군을 처부수고 있으니 여기에 어그로가 끌려버린 조조군 장수들이 멋모르고 조운에게 덤벼든다. 하후은, 안명, 순우도, 종진, 종신[8]을 상대하면서 모두 단칼에 베어버린 조운은 그 무용을 하늘과 땅에 떨친다.
조운이 장판교에 도착하자 다리 위에서 기다리던 장비가 왜 배신했느냐며 호통을 쳤고, 조운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앞서 간옹의 보고가 없었다면 너와 대판 싸웠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조운에게 구원을 받은 간옹이 먼저 장판교에 도착해서 장비에게 일의 전말을 알려줬던 것이다.[9] 장비는 조운을 통과시켜 보내고 홀로 장판교 위에서 조조군을 기다린다.
조조가 나타나자, 장비는 홀로 장판교 위에서 대군을 맞이한다. 일찍이 관우에게 장비의 무용을 전해들은 바 있는 조조는 장비를 경계하며 진군을 멈춘다. 장비는 뒤에서 부하들을 시켜 마치 대군이 있는것처럼 위장하였고, 누가 나와 맞붙어 싸워보겠느냐며 크게 외친다. 조조군은 서로 눈치만 보며 감히 아무도 덤벼들지 못한다. 그렇게 꿈쩍도 않는 조조군을 보며 다시 한번 장비가 '싸울 생각도 없고, 물러날 생각도 없다면, 대관절 어쩌겠다는 것이냐? 내가 가서 전부 죽여주랴?'며 호통을 치자 하후걸은 놀라서 낙마하고, 조조와 다른 장수들도 패닉에 빠져서 혼란스럽게 도망간다.[10]
어쩔 수 없이 조조가 군사를 물리자, 장비는 장판교를 끊어버리고 도주한다. 잠시 후 장판교가 끊어졌음을 알게 된 조조는 속았다면서 다리를 얼른 고치고 추격을 시작한다. 만약 다리가 그대로 있었다면 의심많은 조조는 복병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는 계책일지도 모른다며 다리를 건너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장비에게 사정을 전해들은 유비도 다리를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았음을 지적한다. '''블러핑'''이 간파당한것이다. 물론 영원히 블러핑 하는것도 불가능하고 일단 시간벌이는 했으니 장비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다.

4. 삼국지평화


연의와는 달리, 삼국지평화에서는 과장이 심하다. 장비가 고함을 지르자 조조의 120만 대군이 전부 도망가고, 돌다리인 장판교도 부서지며, 강물이 역류하였다고 적혀 있다. 거의 도라에몽퉁퉁이 노래급으로 고함이 인간 레벨이 아니다. 여기서는 제갈량의 계략이 무서워서 도망간 게 아니라 정말로 장비가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다. 삼국지평화 자체가 장비 버프가 센 작품이기는 하다.
현대에 와서 삼국지 인물들이 역사적 인물들임과 동시에 소설 속 캐릭터들이기도 하듯이, 당시의 유비, 관우, 장비는 단순히 난세 속 걸물들일 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 속 영웅들이기도 했다. 삼국시대가 끝난 후 천년 정도 지난 삼국지평화 시점에서 당시 민중들 사이에선 정설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를 끌던 촉한정통론으로, 유비가 이기면 대중들이 환호를 지르고 조조가 이기면 탄식할 정도였으며 관우는 이미 충심의 상징으로 신격화된 상태. 이 상태에서 주인공이자 황실의 후예인 유비, 완벽한 인물로 포장된 관우와 달리 결함도 있지만 인간적인 매력으로 민중들에게 크게 어필한게 바로 장비였던 것이다. 역사상의 관우, 장비 사이에서 무력 우열은 언급이 없고 오히려 관우의 엄청난 무력이 묘사되는 장면이 더 많지만, 민간 설화에선 인격적인 결함에 대한 대가로 장비가 관우보다도 한 수 위의 무력으로 묘사되었다.(대신 관우는 역사상의 결함들은 생략되고 인격적으로 완성된 캐릭터) 이는 실존 인물인 관우, 장비가 아닌 이들에 기반한 관우, 장비란 '''민간 설화 속 주인공'''들에 대한 이미지로, 관우는 완전무결하고 고결한 영웅, 장비는 다혈질이고 결함도 있지만 인간적이고 무력에선 거의 만렙에 달한 자[11]란 점에서 대중들의 인기를 끈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장비는 교양이 있고 군자나 명사를 대우하는 성격이었다는 것. 어쨌거나 당시 중국 대중들 사이에서 이런 이미지가 신나는 활극에 가깝게 묘사된게 삼국지평화, 역사소설에 가깝게 창작과 역사를 버무려서 만들어진게 삼국지연의이다. 그런만큼 실제 역사상으로도 장비가 믿기 힘든 위용을 보인 장판 전투는 작품의 하일라이트 중 하나인 것.
여담으로 이 당시는 정말로 장비가 강물을 역류시켰거나, 강물을 끊어버렸다는 전설이 대중적이었던 듯하다. 화관색전에서도 장비가 강물을 끊어버렸다는 똑같은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5. 기타 창작물에서


유비, 제갈량, 조조가 모두 얽혀있는 전투이기 때문에 삼국지 영걸전의 세 개 시리즈에 모두 나오는 전투이다. 그리고 하후은은 세번 다 조운에게 여지없이 썰린다.

5.1. 삼국지 11


결전제패 모드에서 등장. 유비는 병력 3000인 데다 검병이기 때문에 1턴만에 전멸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는 길의 궁노는 한번 맞아도 병력을 몇백이나 잡아먹는 무서운 놈인지라 유비가 이걸 한번이라도 맞으면 치명적이다. 그래서 이벤트를 사용해서 클리어해야 한다.
먼저 미부인 이벤트가 있는데, 조운과 미부인을 서로 접촉시키면 다음 턴에 미부인이 죽으면서 동시에 조조군 전 부대가 혼란 상태에 빠진다. 이때 궁노를 조심하면서 재빨리 한진항 쪽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두 턴 후에 관우의 부대가 등장하는 이벤트가 있는데 이때 조조군의 기력이 20 하락한다. 그리고 도망가면서 장비를 양양~강릉 사이의 길목에 두면 다음 턴에 이벤트 발생해서 조조군은 또 혼란에 빠진다. 얼른 토구를 부셔서 한진항으로 들어가서 클리어하자. 조조를 궤멸시켜도 클리어지만 운이 좋으면 몰라도 성공확률이 1~3%다.
반대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양양을 함락시킬 수도 있다!'''[12] 이러면 제갈량이 '''이런 와중에 양양을 함락할 줄은 몰랐다.'''라고 감탄한다.

5.2. 영걸전 시리즈



영걸전 시리즈에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전투 중 하나. '장판파의 전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5.3. 진삼국무쌍 시리즈


황건적, 동탁(호로관), 관도, 합비, 적벽, 정군산, 이릉, 오장원 등의 맵과 함께 단골로 나오는 전투.
유비군의 경우 시간 내에 유비의 탈출이 승리 조건이며, 조조군의 경우 제한시간 내에 유비의 탈출을 저지하는 게 승리조건. 어느 쪽이든 시간 부담이 거슬린다는 게 특징이다.
또한 여기에서 유명한 조운과 장비의 이벤트가 나오며[13] 조조군 플레이에 아군을 크게 방해하는 요소로 나온다. 특히 장비의 경우는 호로관 메뚜기인 여포마냥 특수 버프를 달고 나오기에 장판교에서 '''인왕립'''한다고 한다.
3편에서는 아두구출 이벤트가 있는데, 적 한복판에 남겨진 아두를 구출하면 무쌍게이지가 무려 '''60초간 풀상태'''로 유지된다. 사실 무쌍난무가 콤보용인 원 주인공 조운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고,[14] 오히려 누구나 한번 써보는 무장은 단연 감녕일 듯. 60초동안 쓸 수 있는 뺑소니무쌍은 역대 삼국무쌍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상쾌감과 로망이 넘쳐흐르는 기술. 그야말로 주위맵이 싹 지워진다.
4편에서는 유비탈출전 전투에서 재현된다. 촉군, 위군 시점에서 각각 전투가 전개되며, 촉군은 추격하는 위군을 뿌리치고 강하까지 도주하는게 목표. 위군은 유비가 강하에 도달하기 전에 격퇴시키는게 목표. 시작하자마자 인왕립 이벤트가 발생하여 유비가 지나간 장판파 다리 위에 장비가 각성무쌍 상태[15]로 버티고 서 있는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유비가 걱정된다며 장비 역시 퇴각.
5편에서는 제한시간은 없어지고 피난민의 보호/격파 여부가 전공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조조군 입장에서 보면 피난민부대를 이끄는 민대장만 살려놓으면 다른 피난민은 아무리 죽여도 상관없다. 문제는 민대장이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을정도로 종이 맷집인지라 이게 장난아니게 완수하기 골치아프다.
조조군으로 플레이시 다른 아군 장수에 의해 민대장이 패주하는 일은 없지만 플레이어가 다른 유비군 장수를 때릴때 다가와선 멋대로 맞아죽는다. 이 때 유비가 진노하면 난이도가 어려움 이상일 경우 아군이 유비에게 죄다 썰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유비군으로 플레이시 총 4부대의 피난민 부대에게 '''직접''' 접근해야 아군과 합류하기 시작하는데 피난민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게 문제. 그것도 합류시키면 안전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아서 유비, 제갈량 등이 있는 '''아군 본대와 합류시켜놔도''' 다른 피난민을 합류시키러 가는 사이 '''죽는다.''' 일단 장판교만 건너면 피난민이 패주할 가능성은 적어지지만[16] 그렇다고 장판교를 건널 때까지 한 부대 한 부대 따라다니다간 아직 합류하지 않은 피난민이 패주하기 때문에 피난 루트의 적장들을 미리 제거해놓고 재빨리 다른 피난민을 구출하러 가야 한다. 보통 조홍-한호-악진-장합-하후패 순으로 빠르게 처리해서 장판교 북단을 깨끗이 한 후에 12시 가후와 피난민-10시 순욱과 피난민-3시 피난민 순으로 구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유비군측의 설명이 길어서 이쪽이 더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적군 사정따윈 신경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격해도 되는 유비군에 비해, 직접 해보면 민대장을 죽이지 말고[17] 공격범위를 1cm 단위로 예측해서 적장을 섬세하게 공격해야하는 조조측 플레이가 '''진정한 발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때의 원한이 얼마나 컸던지 한번 제대로 민간인 학살을 묘사하는 플레이를 넣어달라는 과격하고 난폭한 플레이어들도 간간히 보일 정도다.
진삼국무쌍 6에서도 나온다. 위 스토리모드에서는 장료로 플레이하게 되는데 촉 무장들을 때려잡고, 유비가 도망칠 배가 준비된 선착장까지 도달하여 관우를 쓰러뜨리면 끝난다. 장료의 성능이 워낙 좋아서 전작처럼 짜증나는 전투는 아니며, 전투 종료 후 이벤트 무비에서는 '''관우, 장비, 조운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장료를 간신히 막는''' 씬이 나온다. 삼국지를 다룬 모든 창작물 가운데 장료가 관장조를 압도하는 장면은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싶다. '''원래 장판파의 주역이었던 장비, 조운에게(덤으로 관우도)굴욕을 준 각색'''이 되었으며 전투의 주제도 크게 바뀌고 말았다. 창천항로도 이런 식으로 각색은 안했는데 장하다 코에이… 정사로 보나 연의로 위나라 쪽이라면 조조가 나와야겠지만 장료의 큰 공적인 하북평정부분이 생략되면서 생긴 분량 맞추기 겸 장료 띄우기인 거 같다. 후반부 번성 하후돈 갑툭튀와 동구 전투 장료의 죽음과 함께 희한한 각색 중 하나다.
촉 스토리모드에서는 전편 조운, 후편 장비로 플레이하게 되며 전편에서는 조운을 컨트롤하여 장판을 휘저으면서 아두를 구하는 스토리, 후편에서는 장판교에 우뚝 선 장비로 밀려오는 조조군을 쓸어 버리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진삼6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좋은 스토리모드가 특히 빛을 발하는 부분. 특히 장비의 경우는 장판교 앞에서 몰려오는 적 잡병을 쓸어 버리고, 끝도 없이 떨어지는 버프 아이템을 활용하여 그야말로 무쌍난무를 즐길 수 있다. 장판교 근방에서만 1000킬이 가능할 정도다.
진삼국무쌍 7에서는 촉 전용 스테이지로 등장. 사용가능한 무장은 장비, 조운, 제갈량.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하나의 스테이지와 시나리오로만 구성됐다. 플레이어 무장을 셋 중 하나를 골라 유비와 민중을 호위하며 장판교까지 도달하면 조운은 북동쪽에 고립된 아두를 구하러 홀로 이동하고, 장비와 제갈량은 그 사이에 유비와 민중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장판교에서 조조군을 막는다.[18] 조운이 아두를 구한 뒤 합류하면 장비가 제갈량에게 유비를 따라가 도우라고 부탁하고, 그 사이 유비는 진군을 재개하는 도중 복병과 마주. 제갈량이 도착하면 같이 복병을 처리한 뒤 계속 탈출지로 이동한다. 그 사이에 조운은 조조군이 오는 곳을 돌아다니며 조조군을 격파하고, 장비는 장판교에서 계속 다가오는 조조군을 처리한다.
악진, 이전, 허저, 그리고 하후돈까지 정리하면 장비와 조운이 유비에게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고, 합류하면 조조군 본대가 나타나 추격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복병과 함께 병기가 나와 유비와 민중을 공격하고, 민중이 당하기 전에 언덕 위 병기들과 복병들을 정리한 후 탈출지점 바로 앞에 도착하면 강화 상태의 장료가 나타나 앞을 막는다. 전작 위군 시나리오에서 혼자 관우, 장비, 조운을 털던 것과 달리 여기서는 막넴일 뿐이니 처리하면 문이 열리며 유비와 민중이 탈출에 성공하며 클리어된다.
이 스테이지에서 장비의 비장무기를 얻을 수 있으며, 장비가 마지막으로 플레이어 무장으로 등장하는 스테이지다.
8에서는 오픈월드 도입으로 인해 전장이 전작들보다 훨씬 드넓어지고, 여러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있다.[19] 7편에서 삭제된 조조군 입장의 시나리오가 다시 메인 스토리에 등장한다. 징비의 인왕립 이벤트가 공통 이벤트 컷씬으로 나오지만, 정작 장비로 플레이를 할 때는 인왕립 이벤트가 안 나온다는 것이 개그다.

5.4. 드라마 삼국


엄청 처절하게 묘사된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 창작물에서처럼 조조군이 마구잡이로 몰려오는게 아니라 진열을 갖추고 조운을 압박하는데다가, 조운이 잘 싸우기는 하지만 완전히 대군을 발라 버릴 기세로 종횡무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두를 보호하면서 처절하게 대군을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조운을 보고 활을 쏘지 말고 생포하라고 한 조조에게 조홍이 "관우를 잊으셨습니까."라고 하니 조조가 '''"또 감정이 앞설뻔했군."'''이라고 말한다. 즉 죽이란 말. 이런 와중에 조운은 피칠갑을 하고 겨우 빠져 나온다. 여기서도 유비는 유선을 집어던지지만, 그 유명한 "저런 놈 때문에 자네를 잃을 뻔했네." 대사 이후에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조운이 너무 많이 다쳤다고 걱정을 해준다.
장비 부분에도 제법 공을 들였는데, 84부작에 비해 상당히 박력이 넘치게 나온다.[20] 조조가 장비 뒤의 흙먼지를 두고 계략을 의심하는 순간 장비가 긴 고함을 질려대자 하후걸로 추정되는 무명의 장수 하나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조조는 후퇴한다.[21] 장비가 자랑스레 이를 보고하자 공명이 '내 장 장군을 다시 봤소'라고 칭찬을 하지만, 다리를 끊었다고 하자 '그럼 그렇지, 다시 봤단 말 취소요'라고 핀잔을 줬다. 여담으로 연출의 문제로 조조의 기억상실증을 볼 수 있다. 18로 제후때는 직접 얼굴도 보고 대화도 하고 여포와의 일기토도 지켜봤으며, 이후에도 숱하게 장비를 직접 봤던 조조가 관우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 처음보는 사람 대하듯 한다. 사실 이건 연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5.5. 화봉요원


저자는 최강전신이다.-조조군[22]

막지마라!. 내인생은 이제 시작되었다.-요원화.

장비가 다리에 버티고 선 것은 같지만 사실 다리는 '''바리케이드로 쓸 수 있게 개조해놓은 것이었고''' 조조 군이 화살을 쏘자 이 장치를 이용해 다리를 방패로 변환, 장비는 투창을 던져 조조 군을 압박한다. 이 와중에 조조는 장비가 던진 투창에 맞고 죽을 뻔 했다. 시인 조조 vs 화가 장비의 예술가로서의 깨알 같은 자존심 대결도 있었다.
또한 요원화가 잔병의 살수에서 유비군 장수 조운으로 각성하는 1차 계기이기도 하다.[23]

5.6. 삼국연의(1994)


연의에 충실하게 그려진다. 크게 조운의 아두 구출 파트와, 장비의 장판파 파트로 나뉘는데 조운이 아두를 구하고 종횡무진 날뛰는 장면에선 이 드라마의 특징인 테마곡이 들어간 무협지스러운 연출을 보여준다.[24] 조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다리에 도달해 장비에게 뒤를 맡긴 후, 장비가 다리를 버티고 서 있는다. 장비가 버럭 버럭 소리를 질러대자 메아리쳐서 울려 퍼지고, 이때의 조조는 뒤의 장수들을 슬쩍 돌아보며 마치 어떻게 좀 해 봐라고 하는듯 했으며, 괜히 옆에 있던 하후걸에게 눈치를 줬지만 하후걸이 녹즙을 토하며 낙마해 죽자 완전히 쫄아 '''제일 먼저 말을 내달리며 도망을 쳤다.'''

5.7. 고우영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에서 장비가 최고의 개그 캐릭터로 나오기 때문에 이 장판파 장면도 개그 장면으로 묘사된다. 특히 달려드는 하후걸에게 장비가 '이놈!'이라고 소리치고 하후걸이 그 타이포그래피에 찔려 죽자 조조가 겁먹어서 뒤로 돌격하는 모습은 장판파 최고의 개그. 또한 관우가 조조 밑에 있던 시절 '내 아우 장비는 나보다 더 뛰어나다'라고 말하자 조조는 이걸 따로 옷에 적어두도록 했었는데, 장비를 만나자 '너희들 옷에 써뒀던 그 글을 다시 읽어봐라'라며 떡밥을 회수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5.8. 토탈 워: 삼국


토탈 워: 삼국에서는 캠페인에서 조운이 유비의 아들을 구출해와서 유비와 조운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이벤트가 등장한다. 이것이 장판 전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 하며 전투 자체도 역사적 전투로 구현해 놓았다. 장비와 보병대를 가지고 다리로 오는 조조의 기병대를 막는 것이 주된 전투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웨이브 형식으로 적의 원군이 두차례 오며[25] 마찬가지로 버티다 보면 조운과 관우가 원군을 이끌고 온다. 이 전투에서 핵심은 호위창병의 거북진형을 이용해 화살을 최대한 받아내면서 적장들이 일기토를 걸어올때 장비가 한 일기토를 하기에 의천검이 있는 조조는 피하더라도 2차 웨이브 원군 장수인 영휘는 일기토로 썰어 사기 저하를 노려주고 장비의 포효 스킬로 추가로 적 사기를 줄여주어 뚫는 힘을 약화시키고 조운과 함께 쌈을 싸먹으며 관우로 보강하는 것이 관건.

유비 인게임 트레일러
유비의 트레일러는 장판 전투 때를 묘사했는데, 피난길에 쓰러진 한 백성을 유비가 손을 뻗어 일으켜준 직후 따라잡은 조조의 추격군과 대치하자 잠시 달아나는 백성들의 등을 바라보고서는 얼마 없는 장졸들과 함께 결연히 싸우다가 공격을 받아 검을 떨어트리고 쓰러지지만 곁을 지지해주는 의형제와 부하들이 그를 다시 일으켜주며, 유비가 일으켜줬던 백성이 유비의 검을 다시 갖다주자 이를 받아든 뒤 다시 결의를 다지고서 적벽대전 시점으로 넘어가 조조군에 돌격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1분여 정도의 짧은 트레일러고, 기합소리만 나올 뿐 제대로 된 대사 한마디 안 나오나 유비란 인물의 삶을 압축했다는 평을 받는다.

5.9.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아예 여기선 장비가 사자후를 토하자 강물에서 소용돌이가 일고 장비 뒤에 마귀의 형상이 나타나는 등 판타지적 연출을 더해 장비의 패기를 강조하고 있다. 하후걸이 놀라 쓰러졌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인지 선두의 기병들의 말이 모두 놀라서 난동을 부리고 조조도 식겁한다. 다만 여기선 간덩이가 부은 장수 3명이 차례로 장비에게 덤볐다가 일격에 목없는 귀신이 되어[26] 장판파 밑으로 떨어져 고기밥이 된다. 이후는 연의의 전개와 동일.

5.10. 삼국지 : 용의 부활


유덕화가 맡은 조자룡은 고향인 상산에서 무작정 군에 들어올려고 찾아오고, 고향 선배인 '나평안(홍금보)'의 휘하에 배속된다. 당시엔 몇 안되는 군사들이 조조군을 막아내기엔 무리였는데, 구세주처럼 제갈량이 나타나 그들한테 계책을 말한다. 그 싸운 과정에서 대장이었던 '나평안'은 선봉장한테 나가 떨어졌지만, 조운은 그를 물리쳤다. 그리고 그 공을 자신이 친형처럼 따랐던 '나평안'한테 준다. 그 이후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평안'은 유비 가족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지만 결국 장판파 전투에서 조조군한테 당하고 홀로 살아서 돌아온다. 형님의 사정에 결국 본인이 유비한테 부탁해서 유비의 가족들을 구출하러 가지만, 유비를 호위하던 병사들은 물론 두 부인이 모두 죽었다. 하지만 유비의 아들 아두만은 살아있어 그를 데리고 가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무용은 적인 조조가 탐을 낼 정도. 이 공이 인정되어 그는 오호장군으로 임명된다.

5.11. 적벽대전(영화)


적벽대전의 오프닝을 장식한다. 꽤 처절하고 치열하게 묘사되며, 유관장 삼형제와 조자룡, 제갈량 등 유비군의 캐릭터성을 하나하나 잘 보여준다. 황제를 겁박하고 반대파 공융을 처단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형주를 침략하는데, 유비군은 피난민때문에 행렬이 늦어져 후방에서 백성들을 인솔하던 유비의 안위까지 위급해진다. 백성을 버려야 산다는 제갈량과 미방의 말에 유비는 저들은 조조가 두려워 나를 따른 백성들이니 내가 책임지고 보호해야한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한편 조운은 본진에서 적의 선봉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유비를 만나는데, 감,미부인과 유선이 낙오됐다는 보고를 듣는다. 유비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지만 다시 피난민 도우는데 힘을 쓰고, 조운은 무언가 결심한 듯 다시 되돌아가 혈투끝에 유선을 구출한다.(이와중에 감부인이 칼맞아 죽고, 미부인은 소설대로 우물에 빠져 자살한다.)장비는 최후미에서 일군을 이끌고 피난민을 방어하는 역을 맡으며 제걀량의 계책으로 방패를 이용해 태양권으로 조조의 기병을 무력화 시킨다. 그리고 병력지원을 바라는 장비의 말에, 병사들 사이에서 마치 답하듯이 짠하고 나타나는 최종병기 관우의 모습이 압권. 그렇게 유비군의 맹장 3인방의 위용을 보고 조조는 자신에게 저런 용장이 없는 것을 한탄한다. 병사들이 희생하는 동안 유비는 백성들을 피난시키는데 성공하고, 마지막까지 남아 조조를 저지하던 관우가 청룡도를 조조 바로 앞에 던져 조조를 위협한다. 그리고 유비의 깃발을 적장의 말이 밟자 기지를 발휘해 쓰러트리고 말을 빼앗는다. 조조의 수하들이 관우를 포위했으나 관우빠돌이 조조답게 관우는 자신을 진작에 죽일 수 있었다며 쿨하게 놓아준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저들을 내 손아귀에 거둘 것이라며 욕심을 낸다. 한편 구사일생한 유비 앞에 제갈량이 나서 조조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동오와 동맹을 맺어야한다고 말하면서 장판 전투는 일단락된다.

6. 관련 문서




[1] 현대의 당양시는 과거 행정구역이 현 위치로 이동한 곳으로 후한말 당양과는 다른 곳이다.[2] 수경 저수주에 따르면 이 책이 저술될 당시에 당양은 후한말 당시 당양과 다른 곳이다. 옛 당양현성은 녹림, 장판 남쪽에 있다고 하며 당양현 동북쪽에 장판이 있다고 한다. 녹림은 녹림(綠林)산으로 현재 후베이 성 쑤이저우(随州)시에 있는 대홍산이며 당양현 인근은 현재의 후베이성 징먼(荆门)시 부근이다. 즉 후한말을 기준으로 하면 당양 장판은 오늘날 후베이성 징먼시 둬다오 구에 속하며 현대의 당양시와는 다른 곳이다.[3] 연의에서는 미방으로 나온다.[4] 당양에 이르렀을 무렵엔 무리가 10만에 치중이 수천 대여서 하루 10여 리를 간신히 이동했다고 하고 유비가 이때 관우를 시켜 별도로 파견해 강릉에 가게한 기록으로 볼 때 무리가 점점 불어나서 그만큼 속력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무리를 분산시킨 것으로 보인다.[5] 정사와 연의 둘 다 아예 부하 장수들이 버리고 가자고 하기까지 한다. 말이 10만 명이지 지금으로 쳐도 중소 도시급 인원인데 이 정도면 웬만한 수의 군대가 있어도 보호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대규모 행군을 진행하면서 별 다른 소요가 일어났다는 기록도 없다. 유비군이 그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6]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깨지는데도 살아남은 이들은 유비가 피신한 강하로 '''알아서 집결하는''' 질긴 생명력과 충성심을 보인다.[7] 실제로 나중에 이 잔존 병력들은 특별한 지시도 없는 상황에서 유비가 있는 강하로 집결해 적벽대전에 참전할 정도로 강한 생존력과 충성심을 보인다.[8] 이름이 언급된 장수들만 해도 이만하며, 앞뒤로 상대한 전체 장수의 수가 50명이라고 한다. 게다가 연의 저자는 이 50명을 단순히 장수라고 적은 게 아니라 명장이라고 적었다.[9] 관우 때처럼 배신자라고 낙인찍고 분노한 것이 아니라 한번 찔러본 것에 가까울 것이다.[10] 흔히들 '정사에서는 장비의 패기에 쫄아 도망갔고, 연의에서는 복병을 두려워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다지 맞지 않다. 연의에서 복병으로 조조군을 멈칫하게 한 건(대치상태) 사실이지만, 이후 세 번의 고함소리야말로 조조가 황급히 도망가게 만든 요인이였다.(퇴각) 정사에서는 좀 간략하게 적혀져 있어서 그저 조조군이 감히 덤비지 못했다는 서술만 있고(대치상태), 그 뒤에 두려워서 도망갔다거나 하는 서술은 없다.[11] 이는 또다른 인기 캐릭터인 손오공과도 비슷하다.[12] 실제로 이걸 성공한 사람의 사례가 나왔다!![13] 5탄에서 장비의 이벤트는 있는데 조운의 아두 구출 이벤트는 빠져있다. 단지 조조군으로 플레이 시 유비군 장수들 몇 명을 해치우면 혼자 유비군 증원으로 나오는 정도[14] 말을 탄 경우라면 논외. 아니 애당초 말을 탄 채로 무쌍난무을 써서 가는게 정석이다[15] 황금빛으로 빛나며 슈퍼아머에 공속, 공격력이 크게 상승한다. 호로관에서 여포와 싸울때도 볼 수 있다[16] 너무 시간을 끌면 장판교 건너에서 대기 중인 채모와 주령에게 맞아서 사망하기도 한다. 깊은 빡침.[17] 말이 죽이지 마라인거지, '''때리지 마라'''나 다름없다. 유비군 사냥을 즐기고 있다 싶으면 아차하는 순간에 '톡'하고 스쳐서 민대장이 잡힌 걸 보면 이성을 잃고 성격을 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8] 중간에 유비가 백성들이 지쳤다면서 잠시 진군을 멈춘다[19] 예를 들면 아두를 구출하는 서브 스토리.[20] 84부작의 경우, 목소리가 중후하긴 한데 약간 느릿느릿해서 압박감이 덜하고, 반대로 삼국은 배우의 음색 때문에 약간 날건달 같은 느낌이 나서 무게감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확실히 힘이 들어갔다.[21] 단, 연의에서는 조조가 장비의 기세에 놀라서 황급히 도망가고 이에 부하들도 뒤따라 후퇴한 거지만, 삼국에서는 조조가 그래도 여유롭게 퇴각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22] 요원화가 수십명의 장수를 도륙내자 이를 본 조조군 병사들의 말[23] 최종 각성은 수경팔기인 진짜 조운을 죽이면서 시작된다.[24] 이 배우는 장산이라는 배우로 1호 조운을 맡았다. 훗날 오우삼의 적벽대전 영화에서 황개를 맡는다.[25] 본군도 원군도 전부 기병이다. 장수는 1차 웨이브가 지휘관 타입 2차 웨이브가 모사로 놔두면 짜증나기에 즉각즉각 저격해주면 편하다.[26] 국내 더빙판에는 당연히 목 날아가는 장면 편집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