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안 나겔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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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RB 라이프치히 감독직을 맡고 있다. 현재 '''유럽 축구계의 젊은 감독의 대표격인 인물'''로 역대 분데스리가 최연소 감독[1] 과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최연소 감독[2]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2. 선수 경력
Issing이라는 작은 클럽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한 나겔스만은 이후 FC 아우크스부르크와 1860 뮌헨의 유스 시스템을 거쳤다. 특히 1860 뮌헨에서 U-17 팀의 주장을 맡거나 U-21 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의 활약을 이어가던 나겔스만은 2006년에 1860 뮌헨의 2군 팀으로 승격하면서 성인 무대 데뷔를 앞두게 되었지만, 시즌 시작을 앞두고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단 한 경기도 소화하지 못하다가 1년 뒤인 2007년 자신의 친정 팀인 FC 아우크스부르크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릎 반월판 손상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고, 결국 2008년 만 21세라는 어린 나이에 선수 생활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3. 감독 경력
3.1. TSG 1899 호펜하임
선수 은퇴를 결심한 나겔스만은 반 년 남짓 남은 계약 기간동안 아우크스부르크 유소년 팀의 보조 코치 역할을 맡게 되는데, 당시 아우크스부르크의 2군 팀을 이끌던 토마스 투헬 감독이 나겔스만의 코치로서의 재능을 단번에 눈치챈 것이 나겔스만의 지도자 인생의 시발점이 되었다.
투헬의 지지에 힘입어 본격적인 코치 활동을 시작한 나겔스만은 자신의 유소년 시절 은사였던 알렉산더 슈미트 감독의 부름을 받고, 1860 뮌헨의 유스 팀 코치로 부임하게 된다.
2010/11 시즌 시작을 앞두고 TSG 1899 호펜하임에 합류하게 된 나겔스만은 U-17 팀의 코치로서 호펜하임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U-17 팀의 감독과 1군 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거쳐 2013/14 시즌 호펜하임의 U-19 팀 감독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2014년 팀의 U-19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면서 독일 유소년 리그 최연소 우승 감독이 되었고, 동시에 울리 슈틸리케, 귄터 네처, 유프 하인케스 등 독일 축구의 역사에 남을 슈퍼 스타들을 발굴해낸 명장 헤네스 바이스바일러가 설립한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의 수업을 수료하면서 언론으로부터 성공한 트레이너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2015년에도 U-19 분데스리가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시즌을 성공리에 마친 나겔스만에게 인생 최고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휘프 스테번스 감독이 심부전맥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사유로 부임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돌연 은퇴를 선언했는데, 이후 공석이 된 1군 감독 자리에 '''나겔스만 본인이 선임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8세였다.'''[3]
당시 언론에서는 아무리 나겔스만이 유스 무대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보였더라도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성인 팀을 휘어잡을 능력이 있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고,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는 축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한 경영진의 실수라는 보도까지 있었다.[4] '''그러나 나겔스만은 그 부정적인 견해들을 직접 반박하기라도 하듯이 팀을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했다.'''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나겔스만의 호펜하임은 홈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7승을 거뒀고, 강등권 문턱인 16위와의 승점차를 5점 차이까지 벌려놓으면서 15위로 시즌을 마쳤다. 나겔스만이 부임하기 이전에 팀이 시즌 내내 2승밖에 거두지 못하면서 강등이 유력해보였던 것을 고려하면 뛰어난 성과를 거둔 셈. 참고로 호펜하임 1군 스쿼드에서 나겔스만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86년생의 오이겐 폴란스키와 83년생의 써드 골키퍼 단 두 명이며, 주전 스쿼드의 연령대는 90~94년생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젊은 감독답게 드론을 날려서 선수 하나하나 움직임을 분석하고, 비디오와 영상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등 첨단 기술을 현대 축구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선수들과 텔레그램을 일일이 하고 있으며 스쿠터를 타고 선수를 쫓아가는 등 선수단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감독이다.
16-17 시즌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독일축구협회 (DFB)로부터 '2016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개인적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16-17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최종 4위의 성적을 거두면서 챔스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다.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 FC를 만나 1차전 홈에서 1:2로, 2차전 원정에서 2:4로 연달아 패배하면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탈락, 결국 유로파 리그로 밀려났다.
17-18 시즌 초반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첫 패배를 안기는 등 9월까지 무패를 거두었으나, 10월에 패-무-무-패의 실적을 거두어 만족스럽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허나, 이는 쥘레와 루디를 잃었던 것을 고려하면 예상 가능한 사고이다.[5]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리그 중반 바그너마저 잃었으나 누수된 전력을 고려하면 상당히 인상적인 성적. 그리고 끝내 호펜하임을 리그 최종 3위까지 올리며, 차기 시즌 챔스 본선 티켓을 따내어 자신의 주가를 더욱 높였다.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F조에서 배정되어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 FC에게 1, 2차전 총합 2:4로 패배하였고, 올랭피크 리옹과 FC 샤흐타르 도네츠크와도 분전했으나 결국 최종 4위로 탈락하였다.
18-19 시즌을 앞두고 아스날과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아스날은 우나이 에메리, 도르트문트는 뤼시앵 파브르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팀에 잔류하게 되었고 이전 시즌들에 비해선 비교적 낮은 순위인 9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3.2. RB 라이프치히
3.2.1. 2019-20 시즌
19/20 시즌부터는 RB 라이프치히의 지휘봉을 잡기로 계약하였다. # 데뷔전이자 개막전인 우니온 베를린 전에서 특유의 3백 축구를 보여주며, 완벽한 4-0 승리를 거두었다.
상술한 쓰리백은 센터백들의 잇다른 이탈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나, 팀 자체가 지난 몇 시즌 동안 백포에 익숙해져 있고, 감독 본인도 호펜하임 시절부터 포메이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전술적 유연성을 보여줘온 터라 팀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순항 중이다.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언이나 도르트문트가 주춤한 사이에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전반기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19-20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G조에 배정받아 올랭피크 리옹, SL 벤피카,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상대로 총 3승 2무 1패를 기록하여 조 1위로 조별리그를 뚫어내고 본선 토너먼트 16강에 진출하였다.
후반기에는 우니온한테 이긴 후 프랑크푸르트한테 2:0으로 패배, 엠게한테 2:2로 비기면서 주춤하나 했지만, 우승 경쟁팀인 뮌헨을 상대로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후 선두로 다시 치고 올라온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와 함께 치열한 우승 경쟁 레이스를 이어갔으나, 결국 3위로 정규 리그를 마감하였다.
2019-2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원정에서 조세 무리뉴의 토트넘 핫스퍼를 경기 내내 주도하며 1:0으로 이겼고, 2차전 홈에선 완전히 두들겨패며 3:0으로 압승하여, '''RB 라이프치히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을 이끌어냈다.[6][7]
8강전에서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놀라운 업셋을 일으켰고, '''RB 라이프치히 구단 역사상 8강에 이은 첫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4강전에서는 토마스 투헬의 파리 생제르맹 FC를 만났으나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0:3으로 패배하여 4강에 만족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9-20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라이프치히의 돌풍은 축구팬들에게 박수 받기에 충분했고, 또 나겔스만 감독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3.2.2. 2020-21 시즌
리가 2라운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호펜하임에게 1-4로 충격적인 패배로 잠시 주춤한 사이에 리그 선두로 치고나갔다. 5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6라운드 묀헨글라트바흐 원정에서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하며 바이에른 뮌헨에게 1위를 내줬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전에서 앙헬리뇨의 엄청난 활약으로 2-0 승리했다. 이후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라인을 너무 올린 나머지 0-5로 대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다만 스코어와 다르게 라이프치히가 마냥 밀린 경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대등하게 맞서다가 라인을 과하게 올려 두번째 실점 이후 멘탈이 나가버린 것이다. 이후 파리와의 2연전에서 1승 1패를 기록하고, 이스탄불 원정에서 4-3으로 극적으로 승리한 후 맨유와의 최종전에서 3:2로 복수에 성공하며 조 2위로 챔피언스 리그 2년 연속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올시즌 최악의 리그 성적을 보여준 첼시 FC의 램파드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 허나 라이프치히와 계약이 2023년까지 맺어져 있고, 방출 조항 또한 없으며 무엇보다 현재 라이프치히를 잘 이끌고 있기에 첼시로 갈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이후 토마스 투헬이 선임되며 라이프치히에 남게 되었다.
후반기 첫 경기인 마인츠전에서 2-3으로 패하는 이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꾸준히 2위를 지키고 있으며 1위 바이에른을 승점 5점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이후에는 리그 3연승을 거두고 DFB 포칼 3라운드에서는 보훔을 큰 차이로 눌렀다.
EPL 토트넘 핫스퍼 FC의 새 감독 후보군에 올랐다는 기사가 났다. 본인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듯 하다.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리버풀전에서는 대등한 승부를 펼치다가 수비수들의 실수 두 번이 전부 실점으로 연결되면서 0-2로 패했다. 8강 진출을 위해서는 나겔스만 본인의 전술적 유연함이 절실히 발휘되어야 하는 상황.
4. 전술 스타일
주요 포메이션이 정해져 있지 않을 정도로 유연성과 각 포메이션 및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감독이다. 한준희 해설위원에 의하면 안쓰는 포메이션이 없다고 할 정도. 젊은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경기 내에서의 피드백이 재빠르다.
일례로 19-20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라이프치히가 1-0 리드를 가져간 상황에서 미드필더인 엑토르 에레라를 빼고 주앙 펠릭스를 왼쪽 프리롤 공격수로 교체 투입, 완전히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오며 동점까지 만드는 데 성공하자 백3이지만 유연성이 짙은 기존의 플랜 A를[8] 교체를 통해 과감히 수정[9] , 시메오네와의 후반전 용병술 대결에서 판정승했다. 심지어 백3를 굳히기 위해 투입된 아담스는 결승골까지 넣었다.
현대 축구의 핵심인 빠른 공-수 전환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지공 상황에서는 빠른 템포의 빌드업과 잘 훈련된 선수들의 상호 오프더 볼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고 꿰뚫는 것을 중요시한다. 수비 전환 시에는 강력한 압박으로 상대의 속공을 지연시키거나 공을 뺏어 재역습, 그리고 상대의 지공 시 두 줄 수비를 세워 지역방어 및 존 프레싱을 시행하는 등 여러 감독들의 상징적인 전술들을 매우 잘 이해하고 흡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체로 스승 격인 투헬과 닮은 부분이 많은 편이다. 뛰어난 유연성과 전술적 이해도, 공간 분배나 상호 오프더볼 무브먼트를 활용한 공간 창출, 빠른 속도의 빌드업에 대한 강조 등. 다만 투헬은 최대한 피치를 넓게 쓰는 것을 선호하나, 라이프치히 부임 후의 나겔스만은 중앙으로 밀집된 형태의 공격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라이프치히의 랑닉 시절부터 이어오던 좌우로 컴팩트한 전술을 선호하는 팀 컬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10] 변화무쌍한 형태의 포메이션 때문인지 여러 포지션에서 활용이 가능한 유틸리티 플레이어들을 높게 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그 외에도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후 선수들을 매우 잘 활용하는 감독으로, 공격능력이 뛰어나지만 수비력이 불안한 예레미 톨랸, 니코 슐츠, 앙헬리뇨 등을 3백의 윙백으로 기용해 포텐을 터트렸고 그 외에도 마르크 우트, 제바스티안 루디등 많은 선수들이 나겔스만 밑에서 포텐이 터졌다. 나겔스만 밑에서 성장한 선수들중 타팀 이적 후에는 단점들만 부각되며 실패하거나, 타팀에서 자리잡지 못하던 선수가 나겔스만 밑에서 잠재력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보니 타팀 팬들에게는 사기꾼이라고도 불릴 정도.
5. 수상
5.1. 개인 수상
6. 여담
- 1987년생으로 무려 만 28세의 나이에 호펜하임 1군 감독으로 부임하며, 분데스리가 역대 최연소 감독 데뷔 기록을 세웠다. 마인츠 감독으로 만 33세 부임했던 위르겐 클롭이나, 벤피카 감독으로 만 36세 부임했던 조세 무리뉴,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만 36세 부임했던 펩 과르디올라 등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감독 생활을 시작한 명장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어린 나이에 1군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셈. 참고로 나겔스만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두 살 어리며, 리오넬 메시와는 동갑으로, 즐라탄, 부폰, 프랑크 리베리와 같이 그보다 한참 위임에도 현역 생활을 하는 선수들이 꽤 많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나겔스만이 얼마나 어린지 알 수 있다.
- 오토바이를 타며 스피드를 즐기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 평소 프리미어 리그의 리버풀 FC와 맨체스터 시티 FC의 경기를 자주 시청한다고 밝혔다. 펩이 이끄는 맨시티의 볼 소유시 포지셔닝과 유연성은 늘 매력적이고, 클롭의 리버풀이 보여주는 역습과 공격 패턴은 라이프치히와 유사하며 확장된 전술을 구사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좋은 감독이 되려면 리버풀 경기를 봐야 한다고 권장하며, 특히 리버풀 선수들의 항상 승리에 굶주려 있는 자세와 강한 정신력은 어린 선수들에게 큰 메시지를 준다고 언급했다.#
- UEFA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무대를 밟은 역대 최연소 감독이다. 16강에서 경험 많은 무리뉴의 토트넘 핫스퍼를 상대로 1·2차전 합계 4:0으로 압살하며 8강 진출, 무려 32세 231일 만에 UCL 역사상 토너먼트 무대를 통과한 최연소 감독에 이름을 올린데 이어, 8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2:1로 승리하면서 UCL 4강에 진출한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 과학적인 훈련 방식으로 주목받기도 했는데, 훈련장 공중에다 드론을 띄워 선수들의 움직임을 모두 촬영하여 전술을 짠다고 한다.
- RB 라이프치히에서 한국 선수인 황희찬을 영입하면서 국내에서의 관심이 많이 증가할 전망이다. 사실 호펜하임 시절에도 김진수를 지도한 바 있는데, 김진수는 공격적인 풀백을 원하는 나겔스만에 맞지 않아서 전북으로 이적한 바 있다
- 딱히 영어권 국가에 장기간 머문 적이 없는데도 영어가 수준급이다. 물론 독일 억양은 강하지만 영어 인터뷰를 막히는 일 없이 술술 한다.
- 어렸을 때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엄청난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맨유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만났을 때 캄 노우의 기적을 복수하겠다고 했고, 비록 1차전은 대패했지만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맨유를 유로파리그로 떨어뜨리고 맨유와 캄 노우의 기적의 주인공 솔샤르에게 대굴욕을 안겨주어 약속을 지켰다.[11]
- 2007-08 시즌에 FC 아우크스부르크 2군팀 소속 선수로 토마스 투헬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당시 나겔스만은 지속적인 부상으로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투헬이 다음 상대팀을 분석해보라고 했고 나겔스만의 분석이 너무나 꼼꼼해서 투헬은 나겔스만에게 선수은퇴를 하게 된다면 꼭 지도자의 길을 걸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7. 같이 보기
[1] 만 28세[2] 32세 231일[3] 동년생의 다른 축구선수들은 현역으로서의 전성기를 누리는 시기였으며 2020년 현재도 현역인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4] 나겔스만은 선임 당시 만 28세로 분데스리가 역대 최연소 감독이었고, 팀은 리그 최하위권을 달리면서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5] 실제로 플옵에서 리버풀을 상대할 때도 이 둘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6] 다만 이때의 토트넘은 팀의 주포인 케인과 손흥민, 겨울 이적시장 영입생이지만 팀에 녹아들어 활약을 펼치던 베르바인, 중원의 핵인 시소코까지 '''팀의 핵심 전력들이 전부 시즌아웃 또는 그에 버금가는 장기부상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라이프치히의 약점인 뒷공간을 파고들 윙어 손흥민과 베르바인이 경기 불과 1~2주전에 시즌아웃을 당한걸 생각하면 무리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7] 코로나19로 인해 2주차 경기들이 전부 연기되었는데, 이에 대해 토트넘 팬들이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 리그 재개가 결정된 6월보다도 한참 전인 4~5월에 이미 시즌아웃을 당했던 부상자들이 훈련에 복귀했기 때문. 심지어 손흥민은 훈련소까지 갔다왔다. 비슷하게 공격진이 메시와 그리즈만을 제외하고 전멸이었던 바르샤는 2주차 경기였던지라 장기 부상자였던 수아레스와 뎀벨레가 모두 복귀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다. [8] 3-1-4-2와 4-2-3-1이 혼합된 라인업이었다. 할슈텐베르크 - 우파메카노 - 클로스터만으로 구성된 백3였는데, 이 중 좌우 스토퍼인 할슈텐베르크와 클로스터만은 애초에 기존 포지션이 풀백이고 센터백은 부업이다. 이렇게 백3를 구성하고 우측에 라이머, 왼쪽에 앙헬리뇨를 배치해 왼쪽 윙백인 앙헬리뇨는 왼쪽 터치라인을 타고 내리며 풀백 - 윙백의 경계에 서면서 직선적인 공격에 집중하고 라이머는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미드필더와 윙백의 역할을 병행하게 했다. 윗선에서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는 임무를 맡은 사비처와 은쿤쿠도 백3일 때는 하프윙으로, 백4일때는 좌우 윙어로 기용해 유연성을 배가했다. 이 전술을 통해 아틀레티코의 컴팩트 4-4-2 진형을 상대로 포메이션을 바꿔가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틀레티코의 주요 공격 루트인 로디 - 카라스코의 왼쪽 라인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다.[9] 여러 포지션을 뛰다니며 지친 라이머를 빼주고 타일러 아담스를 투입해 우측 윙백에 고정시켰다. 사실 아담스도 라이머처럼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백을 모두 볼 수 있는 선수지만 이 날 아담스는 라이머와는 달리 투입 이후 철저히 윙백으로 기용. 이는 백3를 완전히 굳히며 수비적으로 안정감을 가져다주었고, 결과적으로는 아틀레티코의 맹공을 잠재우는 데에 성공했다.[10] 애초에 랑닉 - 하센휘틀 시절에는 극단적으로 중앙으로 밀집된 형태로 상대를 가두고 압박하는 4-2-2-2 전술이 라이프치히의 상징과도 같은 전술이었다.[11] 캄 노우의 기적 당시 역전골을 뽑아낸 선수가 올레 군나르 솔샤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