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챔피언스 리그/1998-99 시즌/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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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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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전,후반 45분이 모두 흘러간 상황에서 맨유가 0-1로 지고 있다가 '''추가 시간 3분 동안 2골을 넣어 승리한 경기'''로 지금까지도 '''맨유와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자주 회자되는 경기중 하나이다.역시 '''축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1]
당시 결승전 장소가 스페인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 노우였는데 '''경기 종료 직전 3분 안에 그 것도 교체 선수들이 들어와서 2골이나 넣으며 역전하는''' 드라마틱한 경기라면서 '캄프 누의 기적'이라고 말한다.[2]
2. 경기 전 상황
공교롭게도 이들은 조별리그에서 이미 같은 조로 시작한 팀들이였다. 그러나 각각 2:2 , 1:1로 비겨 승패는 가리지 못하고 바이에른이 조 1위, 유나이티드가 조 2위로 진출했다.[3]
1998-99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벤투스 FC를 상대로 1차전 홈에서 1:0으로 밀리는 상황에 라이언 긱스가 90분에 동점골을 넣으며 1:1로 비겼고, 원정에서 필리포 인자기에게 전반전 11분동안 2골을 먹히며 2:0으로 밀리는 상황에 극적인 3-2 승리로 결승에 진출했지만 '''팀의 중심인 로이 킨과 폴 스콜스가 경고 누적으로 결승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대는 FC 바르셀로나에 2승을 거둔데다 돌풍의 팀인 FC 디나모 키예프[4][5] 를 꺾고 올라온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양팀은 각각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지었고 여기에 맨유는 FA컵 우승까지 확정지은 상황이었다. 두 팀의 전력은 어느 정도 대등했으나 앞에 언급한 것 처럼 폴 스콜스와 로이 킨이 빠진 상황에서 우승의 무게는 뮌헨쪽으로 기울어 있었다.[6]
그리고...
3. 경기 내용
3.1. 전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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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6분 맨유의 오른쪽 진영에서 얻은 프리킥을 바슬러가 깔끔한 슈팅으로 그대로 골망을 흔들어버리면서 1-0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앞서가기 시작했다.[7] 이 후 맨유는 동점골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슈테판 에펜베르크와 옌스 예레미스의 미드필더 듀오에 밀려 중원에서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당시 맨유의 최고 투톱이였던 앤디 콜과 드와이트 요크의 공격진도 스위퍼인 로타어 마테우스를 필두로 토마스 링케와 쿠포르의 쓰리백 수비진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8] 이에 비해 뮌헨은 에펜베르크의 정확한 롱킥에 이은 스트라이커인 얀커가 간헐적인 역습 찬스를 만들어내며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가고 있었다. 그나마 전반 종료직전 긱스의 크로스를 앤디 콜이 유효 슈팅으로 연결한 것이 맨유 쪽에서의 가장 좋은 장면이었다.
3.2. 후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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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공격력은 더욱 거세졌으며, 맨유는 반격은 커녕 후반 중반까지 뮌헨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바슬러와 바벨이 위협적인 슈팅을 계속 시도했고, 후반 30분 메멧 숄의 칩샷이 골대를 강타하는 등 후반 35분까지 뮌헨은 반코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후반 37분 뮌헨은 얀커가 오버헤드 킥까지 선보였고 다시 한번 골대를 강타하면서 맨유를 점점 압박하고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예스페르 블롬크비스트를 빼고 테디 셰링엄[9] 을 투입했으며 이 후 앤디 콜을 빼고 올레 군나르 솔샤르를 투입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3.3. 폭풍의 눈, 추가 시간
추가 시간에 접어들면서 관계자들은 빅이어에 뮌헨의 띠를 두르기 시작했고[10] 맨유는 사실상 마지막 공격이 될 코너킥 기회를 맞이한다. 골키퍼인 슈마이켈까지 공격에 가담하면서 막판 뒤집기에 나서고.. 베컴이 차올린 코너킥은 토르스텐 핑크[11] 가 걷어내고[12] 세컨볼을 잡은 긱스가''' '오른발로' '''[13] 다시 한번 페널티 박스 안으로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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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링엄이 그대로 논스톱으로 때려 뮌헨의 골망을 갈랐다.''' 핑크가 공을 걷어 낼 때 거의 모든 뮌헨 수비진들은 바로 페널티 박스 밖으로 우르르 뛰쳐나갔는데 미처 나오지 못한 바벨과 링케는 셰링엄을 놓쳤고 셰링엄은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했다. 사실 핑크가 공을 걷어낼 때의 방향이 결정적인 실수였는데, 결국 세컨볼이 정확히 긱스의 발 앞에 놓이고 말았다.Cleared, Giggs with a shot! '''SHERINGHAM!'''
걷어냈습니다만, 긱스가 안으로, '''셰링엄!'''
이전까지 앤디 콜의 슛을 제외하곤 별 다른 위협적인 장면을 내주지 않았던 뮌헨의 수비진들은 이 벼락같은 슛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확히 90분 36초에 먹힌 실점이었다. 이 실점으로 그 동안 파상공세를 퍼부으며 승리를 자신했던 뮌헨 선수들은 단체로 멘붕에 빠졌다.[14] 당시 바이에른 뮌헨의 사령관인 히츠펠트 감독은 그때 상황을 기억하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고 회고했다.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던 중에 상대에게 실점을 한 상황인데다가, 이미 굳히기에 들어가기 위해 '''3장의 교체카드를 다 써버렸으며''', 공격 성향이 강한 바슬러와 지글러를 빼고 수비적 임무가 강한 살리하미지치와 토르스텐 핑크를 투입시켰는데, 이것이 악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2분, 다시 한번 맨유가 코너킥을 얻은 상황이었고 킥은 베컴. 1차적으로 셰링엄이 골대 앞으로 떨어뜨린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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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사무엘 쿠포르의 마크를 따돌린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논스톱으로 오른발을 내밀어 방향을 바꿨고, '''뮌헨의 골망을 다시 흔들었다.''' 이 모든 것이 2분 46초만에 일어난 일이었고, 84분 동안이나 압도적인 리드를 당하며 경기를 끌려갔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겨우 2분에서 3분이라는, 이 짧은 시간동안 강력한 카운터 2방을 그대로 적중시켜 2-1로 만들어버렸고, 그대로 경기는 끝났다. '''승자와 패자가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뒤바뀐 채로.''' 캄프 누의 기적, 또는 캄프 누의 비극은 그렇게 완성되었다."Beckham, into Sheringham '''AND SOLSKJÆR HAS WON IT!'''"[15]
"베컴이 올렸습니다. 셰링엄이 헤딩, 그러나 굴절되어 나온 공을 솔사르가 다시 한번! '''솔샤르의 결승골!'''''
경기 후, 아니 솔샤르의 역전골이 터지는 순간 벤치에 있던 맨유의 모든 선수들과 코치진들은 그대로 튀어나와 필드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고 맨유는 셀틱 FC, AFC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에 이어 유럽 클럽 사상 네 번째[16][17] 로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반면 뮌헨 선수들은 그대로 드러누워 역전패의 비극의 쓴 맛을 보며 절망에 빠졌고, 수비수 쿠포르는 몇분동안 땅에 얼굴을 박으며 눈물을 흘렸으며, 백전노장인 마테우스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빅 이어를 들어올릴 절호의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치면서 경기장을 쓸쓸히 퇴장했다."History is made, Manchester United, are the champions of Europe again, and '''Nobody Will Ever Win a Eureopean Cup Final More Dramatically Than This!'''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다시 유럽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유러피안 컵 결승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승리하진 못할 것입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첫 질문[18] 에 이렇게 답했다.
I Can't believe it, can't believe it. '''Football, Bloody Hell...'''
믿기지가 않네요, 믿기지가 않아요. '''이 죽일놈의 축구란게 뭔지...'''
4. 캄프 누의 기적, 혹은 비극이 일어난 원인
맨유는 골키퍼인 페테르 슈마이켈(당시 36세)과 데니스 어윈(33세)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전부 20대였고 교체에서 들어온 선수들도 테디 셰링엄(33세)만 서른 줄을 넘겼을 뿐이었다. 그에 비해 바이에른 뮌헨의 경우 '''로타어 마테우스(38세)(!!)'''를 필두로, '''마리오 바슬러(31세)''', '''토마스 링케(31세)''', '''미카엘 타르나트(31세)''', '''슈테판 에펜베르크(31세)''', '''올리버 칸(30세)'''등 서른 줄이 넘긴 선수들이 맨유에 비해 많이 있었다.[19][20] 중반까지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맨유의 숨통을 조이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지만, 연이은 찬스 무산으로 인해 경기에 쐐기를 박을 기회를 놓쳐버렸고, 후반 35분을 기점으로 노장 선수들의 체력이 점점 떨어졌다. 그에 비해 맨유는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드와이드 요크, 앤디 콜 등 전성기에 접어든 20대 선수들이 후반 막판 살아나고 슈퍼서브로 유명했던 솔샤르 같이 교체투입된 젊은 선수들이 힘을 내주면서 결국 마지막 순간 2차례의 카운터를 적중시키며 맨유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결장한 로이 킨과 폴 스콜스 역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20대 선수들로 만약 이 선수들까지 결승에 출전을 했더라면 맨유도 일방적으로 두드려맞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21] 즉 맨유 중원의 중심이었던 로이 킨과 스콜스의 결장으로 인해 맨유는 파이팅 넘치는 중원 듀오를 가동하지 못했고, 뮌헨은 에펜베르크와 예레미스의 중원 듀오와 30대 선수들의 노련미를 앞세워 후반 막판까지 맨유를 압박하고 있었으나 체력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결정적으로, 이런 기적(혹은 참사)이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앞서 언급한 맨유의 핵심 선수인 '''로이 킨과 폴 스콜스의 결장으로 인해 전력의 추가 뮌헨에게 기울었음을 감안하면, 결국에는 뮌헨 선수들의 멘탈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경기 시작 겨우 6분 만에 바슬러의 첫 골을 시작으로 뮌헨의 거의 일방적인 경기력으로 제압하면서 후반 막판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킨과 스콜스의 결장부터 축구 호사가들은 이 결승전은 뮌헨의 압승이 점쳐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는, 기적이든 참사든 그 원인은 뮌헨 선수들의 멘탈이 문제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훗날, 당시 결승전에 풀타임으로 뛰었던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 니키 버트는 "후반 중반부터 투입된 뮌헨의 '''메멧 숄은 마치 자기들이 이긴 것처럼 거만하게 행동'''을 하였는데 경기 중에 느닷없이 자신들의 팬에게 손을 흔드는 행위까지 보였다." 라고 회고했었다. 이는 훗날 2005년 리버풀 FC과 AC 밀란의 결승전인 이스탄불의 기적이 오버랩되는 장면인데 일례로, 스미체르의 득점 직전 리버풀의 공격 전개 장면에선 밀란의 미드필더인 카카가 공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서 신발을 매만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즉 경기가 끝나지도 않는 와중에 일찍 승리에 취한 나머지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상대팀은 주전 미드필더 2명이 경고 누적으로 출장정지를 먹었고 6분만에 앞서나갔으며 경기력도 우세한 상황이였던게 방심의 이유인데,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맨유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올라온 팀이며 득점 차는 단 1점 차였어서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노장 선수들의 체력저하와 선수들의 안일함 덕에 뮌헨은 한차례 역전승을 거두고 올라오며 자신감에 찬 젊은 맨유의 막판 뒤짚기에 무릎 꿇은 셈이다.
이 당시, 뮌헨은 사무엘 쿠포르를 제외한 선발 멤버가 전부 독일 출신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2년 후 2000-01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윌리 사뇰, 파트리크 안데르손, 지오반니 에우베르, 오언 하그리브스 등 검증된 해외 선수들을 대거 투입,[22] 8강전에서 맨유에 2연승으로 거두며 2년 전의 설욕에 성공했고 우승컵까지 거머쥐며 캄프 누의 악몽을 씻게 된다.
5. 여파
당시 현장 모습.
이 경기는 비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뿐만 아니라 당시 1992년 출범한 프리미어 리그에게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1980년대 유럽 클럽 대항전을 호령했던 잉글랜드 리그는 헤이젤 참사 이후 반강제적으로 유럽 무대의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캄프 누의 기적은 '''EPL 출범과 더불어 영국 축구가 다시 한번 유럽 무대의 중심 궤도로 진입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맨유에게도 이 우승은 매우 특별한 우승이였고 알다시피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에 이은 '''UCL 정복'''까지 일명 트레블을 달성하여 클럽 브랜드의 가치 또한 대폭 상승하게 된다.[23] 또한 맨유가 낳은 세계적인 스타인 데이비드 베컴은 1년 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악몽 또한 이번 결승에서 지워버리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24] 게다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이 대기록으로 인해 자타공인 클럽 감독계의 최종 보스로 떠오르며 이후에도 맨유를 넘어 유럽 축구의 전반적인 방대한 영향력과 성과를 남기게 되었으며, 기사 작위를 받으면서 '''Sir''' 알렉스 퍼거슨이라 불리게 된다. 엘리자베스 2세는 '''"그가 들어올린 것은 트로피가 아니라 영국의 자존심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축구는 영국이 종주국인데 헤이젤 참사로 축구 종주국이 유럽 축구의 중심에서 밀려난 상황을 뒤짚어 되돌려놓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99년에 일어난 맨유의 기적의 트레블로 인해 당시 유럽 리그의 헤게모니는 '''잉글랜드 리그의 부활과 독일 분데스리가의 하락세'''로 이어지고 결국 2002년부터 분데스리가는 유럽리그 랭킹의 3위자리를 프리미어 리그에게 내주게 된다. 이 시기부터 분데스리가는 이상하다시피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하였고,[25] 한 때 프랑스 리그1 에게도 밀리며 포르투갈, 네덜란드 리그와 동급 취급까지 받는 수모를 겪게 된다.[26] 이러한 분데스리가의 암흑기는 10년 가량이어졌고, 이 암흑기는 2000년대 중반 독일의 국가차원에서 시작된 유망주 육성 정책의 성공, 그리고 그에 힘입은 바이에른 뮌헨 등의 분데스리가 클럽들이[27] 서서히 유럽 무대에 다시 강세를 보이면서 비로소 끝나게 된다.[28][29]
6. 기타
- 결승전을 주최한 캄프 누의 주인인 FC 바르셀로나는 정작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는데, 조 추첨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바로 이 시즌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준우승팀 바이에른 뮌헨이, 다시 말해 이 경기를 만든 두 팀이 바르셀로나와 만난 것.(...) 죽음의 조 였다.[30] 바르셀로나는 토너먼트 티켓은 물론,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의 현장까지 두 팀에게 내어주고 만 것이었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승점셔틀인 덴마크 챔피언 브뢴뷔 IF에게 2승을 따냈지만 이 둘에게는 한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31][32]
- 결승골의 주인공인 올레 군나르 솔샤르는 이 경기가 벌어진 지 약 20년이 되는 2018년 12월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감독으로서의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앞두고 한 인터뷰를 통해 "선수 시절 최고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다만 이 평가는 현 시점에서 하게 된 생각이고, 당시에는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20년만에 같은 대회에서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낸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19-20시즌 홈 유니폼의 양쪽 소매에 있는 검은 띠에는 이 경기에서 동점골이 나온 시간인 90+1', 역전골이 나온 시간인 90+3'이 각각 새겨져 있다.[33]
7. 관련 문서
[1]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야구'를 '축구'로만 바꿨을 뿐인데, 이 경기만큼 이 말이 절묘하게 딱 들어맞는 경기가 거의 없다. 거의 90분 가까이씩이나 리드했던 뮌헨은 결국 패배했고 30초도 채 리드하지 않았던 맨유는 결국 승리했기 때문이다.[2] 그리고 캄 노우는 18년 후, 캄 노우의 주인 바르셀로나가 진정한 의미의 캄 노우의 기적을 일으킨다. 그러나 1년 후.... 그리고 또 1년후... 그리고 또 1년후... [3] 당시 챔스는 6조로 진행돼서 당시는 16강이 없었고 8강부터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그래서 각 조마다 1위가 토너먼트에 진출하고 조2위들의 승점과 골득실을 따져서 2팀이 더 올라갔는데 해당 시즌은 맨유와 레알이 저 룰에 의해 토너먼트로 갔다.[4] 참고로 FC 디나모 키예프는 1년 전(97-98)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홈에서는 3-0, 캄프 누 원정에서는 4-0으로 떡실신시켰으며 이 시즌(98-99)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떡실신시키며 올라온 우크라이나 명문 팀이다. 요약하자면 2010년대의 호구같은 디나모 키예프가 아니라는 소리.[5] 참고로 캄프 누 4:0 압승에 크게 기여한 선수가 당시 '''전반전 헤트 트릭'''을 달성한 '챔스 득점왕' '''안드리 셰브첸코'''.[6] 당시 맨유의 전력도 바이에른 뮌헨 못지 않았다. 라이언 긱스 - 로이 킨 - 폴 스콜스 - 데이비드 베컴으로 이어지는 미드필드 진영과 그 당시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이었던 야프 스탐이 이끄는 수비진, 또한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던 피터 슈마이켈로 이루어진 최고 수준의 팀이었다. 하지만 뮌헨 역시 슈테판 에펜베르크와 옌스 예레미스라는 당대 최강 파이터 미들진을 보유하고 있었고 사무엘 쿠포르와 토마스 링케의 수비 라인도 견고하였으며 골키퍼 역시 슈마이켈에 못지 않는 올리버 칸이 버티고 있었으니...(올리버 칸은 이 해에 슈마이켈을 제치고 UEFA 최우수 골키퍼에도 선정됐을 정도로 전성기였다.)[7] 바슬러의 킥은 원바운드가 되면서 갑자기 왼쪽으로 꺾였고 골키퍼인 슈마이켈은 역동작에 걸려 몸을 날리지도 못하고 실점하게 된다.[8] 5-4-1과 3-4-3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강력한 독일식 수비축구였다. 스위퍼에 마테우스를 필두로 쿠포르와 링케가 버티고 있었고 좌우에 포진된 마르쿠스 바벨과 미카엘 타르나트까지 버텼으며 당시 골키퍼 역시 올리버 칸이 버티고 있었다.[9] 에릭 칸토나의 대체자로 1997년에 맨유에 입단했다.[10] 사실상 경기장 내 사람들 대다수가 뮌헨의 우승을 점쳤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본 베컴은 속이 울렁거렸다고[11] 박주호의 바젤에서 뛰던 시절, 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뛰던 시절의 감독이다. 현재 J리그 디비전 1 빗셀 고베 감독으로 재임 중.[12] 급히 걷어낼 때 중앙 방향으로 걷어내면 안 되는 것은 꽤 기본적인 부분이었다. 핑크의 발을 보면 아웃사이드쪽으로 걷어냈는데 그렇게 세게 걷어내지 못했고 가운데 있던 긱스에게 정확히 떨어졌다.[13] 이것이 왜 놀랍냐면 긱스는 '''왼발잡이'''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때문에 슛을 하고도 공이 데굴데굴 천천히 굴러갔다.[14] 심리적으로도 다 이겨놓았다고 생각되는 경기를 놓쳤다면 공황상태에 빠져버린다. 복잡한 수의 경우를 따져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15] 이 대사는 맨유 팬 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 팬들에게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로 회자된다.[16] 4대 빅 리그로써는 처음 (사실상 스코틀랜드나 네덜란드 리그는 1강 또는 2강 체제이므로 상대적으로 트레블 확률이 높다.)[17] 이후 바르셀로나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인 2008-09 시즌, 루이스 엔리케 감독 재임시인 2014-15 시즌 트레블을 달성해 UEFA 소속 유럽 프로리그 1부 팀으로서 유일한 2회 트레블팀이란 칭호를 얻었으나 후에 바이에른 뮌헨도 12-13시즌에 이어 19-20시즌 트레블을 달성하여 유일한 기록은 아니다.[18] "퍼거슨 감독님,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추가시간에서 역전승을 이뤄내 새 유러피안 챔피언 등극과 동시에 트레블을 달성하심으로 꿈을 이뤄내셨는데요."[19] 몰론 골키퍼는 이 나이때가 전성기에 접어드는 시기이며 칸은 이 시기부터 전성기를 구가해 암흑기의 독일 축구를 발락과 단 둘이 지탱하게 된다. 실제로 칸은 2년 후 분데스리가에서는 4분 챔피언이라는 축구사에서 역대급으로 기억되는 극적인 리그 우승을 맛보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도 발렌시아 CF와의 긴장감 넘치는 승부차기 끝에 여러 선방쇼를 보여주면서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의 리그와 챔스 더블 우승에 크게 일조하면서 2001년 발롱도르 3위를 기록하고, 2002년에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회 내내 여러 차례 화려한 선방쇼를 보여주면서 독일의 준우승에 크게 일조하면서 2002년 발롱도르 3위, FIFA 올해의 선수상 2위, 거기에 골키퍼로서는 현재까지 유일무이하게 월드컵에서 야신상과 골든볼을 동시에 수상하는 등 큰 전성기를 누린다.[20] 공교롭게도 이게 2010년대의 바르셀로나와 비슷하다. 차이점은 골키퍼인 테어슈테겐이 '''주전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다.''' 메시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거의 30대이고 특히 수아레스나 아르투로 비달, 제라르드 피케 같은 팀의 중추적인 선수들이 거진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심각성이 있다. 이들의 선수 연령이 길어야 2-3년 정도인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우려스러운 문제다.[21] 이 경기는 뮌헨 선수들이 전성기의 정점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시기와 동시에 맨유의 스쿼드는 황금기의 꽃망울을 피는 시기와 겹쳐진 시기라고 보면 된다.[22] 2001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올리버 칸, 토마스 링케, 슈테판 에펜베르크, 메멧 숄등 단 네 명의 자국 선수만 선발로 투입시켰고 얀커와 지클러가 교체로 들어왔었다.[23] 2004년까지 클럽 수익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이 후 레알 마드리드가 1위를 차지.[24] 아르헨티나와의 16강 전에서 상대 미드필더인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발을 걸면서 퇴장당했다.[25] 특히 2003-04 시즌에는 유럽 리그 랭킹 포인트를 달랑 2점밖에 받지 못한다. 최근에는 10점을 기본으로 넘기는 분데스리가의 포스에 비하면 확실히 암흑기였다.[26] 물론 포르투갈 리그와 네덜란드 리그가 약한 건 아니다 당장의 FC 포르투의 포스만 봐도 근데 확실히 에레디비시는 과거에 비해 위상이 많이 내려갔다.[27] 2013년 도르트문트의 선전과 2000년대 후반 레버쿠전, 브레멘, 함부르크 등이 나름 유로파리그의 전신인 UEFA컵에서 선전을 하였다.[28] 2006년 3대 리그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 세리에A 대규모 승부 조작 사건으로 세리에가 몰락한 여파도 컸다.[29] 다만 대부호들, 특히 중동이나 중국의 큰손들이 프리미어 리그 팀들과 여타 다른 유럽 프로 1부 리그 소속팀들을 매입하거나 투자함에 따라 동력을 얻게 된 팀들이 신흥강호로 떠올랐다. 특히 이때까지 맨유의 위상에다 병풍급 존재감과 듣보잡 취급을 받고있던 맨시티는 UAE의 거물급 대부호의 팀 매입과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맨체스터와 유럽 프로리그 1부의 또다른 강호로 성장했다.[30] 저 당시는 토너먼트제가 8강부터 시작이었는데 6개의 조 1위팀들과 조 2위 중 승점이 높은 두 팀이 토너먼트에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뮌헨이 조 1위로 맨유가 조 2위로 올라 조별리그에서 만나고 결승에서도 만났다.[31] 여담으로 이때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훗날 2009-10시즌부터 10-11 시즌 뮌헨을 거쳐갔으며 14-15 시즌부터 15-16 시즌까지 맨유의 감독이었던 루이 판할이었다.[32] 재밌게도 이때 뮌헨은 브뢴뷔 IF에게 일격을 맞아 첫경기에서 패했었다.[33] 근데 맨유는 막상 이 시즌에 챔스 무대 자체를 밟지 못했다(...). 더 아이러니한 건 이 기적의 희생양인 뮌헨은 19-20 시즌에 역대급 행보를 보이며 챔스 우승에 트레블까지 달성했다. 다만 맨유도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챔스 진출권을 따내는 등 나름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