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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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경주 이씨 판전공파
'''국적'''

'''출생'''
1979년 4월 26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사망'''
2005년 11월 18일 (향년 26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애스터 플레이스
'''부모'''
이건희, 모 홍라희
'''형제'''
오빠 이재용, 언니 이부진, 이서현
'''학력'''
예원학교 음악과 플루트 전공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불어불문학 학사
뉴욕대학교 대학원 예술경영학 전공
1. 개요
2. 생애
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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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그룹 이병철의 손녀이며 이건희의 막내딸이다. 모친은 홍라희. 즉,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의 여동생. 오빠인 이재용과는 11살이나 차이 나며 바로 윗언니인 이서현과도 6살의 차이가 나는 늦둥이였다.
생전에 한국 최대 재벌가의 막내딸이라는 거물인데도, 이례적으로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 자신의 사생활을 일정 부분 공개하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비교적 개방적인 성격으로 여느 재벌가 3세들과는 다르다는 평이 많았다.
2005년 11월 18일, 미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생애


예원학교,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아트 매니지먼트 과정으로 유학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 언니들과 함께 이건희를 통해 삼성에버랜드 주식 21만여주(8.37%), 삼성SDS 주식 257만여주(4.6%), 삼성네트웍스 주식 292만여주(2.81%) 등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20대 중반의 나이인 2004년에 국내 재산 순위 32위(1,950억원)로 막강한 재력가였다.[1] 사망한 후 이 재산은 모두 삼성장학재단에 증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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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사람들의 평으로는 재벌딸이라 티내고 그러한 면이 전혀 없었다고 하며 오히려 매미(태풍)때 익명으로 1억원을 기부한것으로도 알려졌다. 주위에 불우한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는 착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이윤형은 2003년 9월, 싸이월드에 ‘이뿌니 윤형이네~’ 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일상을 담았다. 재벌가 딸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네티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이윤형은 홈페이지에 자신과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사진들을 올렸다. 여느 홈페이지처럼 처음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과 개인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나 기타 배우려고 시도하다가 내 남자친구가 기타 잘 치거든. 그냥 남자친구한테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내가 맨날 게으름 펴서 안 늘어.^^”(2003년 10월 29일)

“가족들이랑 외식하고 영화보고 수빈이(남자친구) 잠깐 봤어”(2003년 11월 9일)

“스키장에서 콰당~ 어떤 여자가 와서 나를 박는 바람에 조금 놀랐어요. 아빠가 ‘이제 헬멧 안 쓰면 스키 못 탄다’ 그래서 아기처럼 헬멧 쓰고 타고 있어요.”(2003년 12월 26일) 등의 글이 네티즌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윤형의 홈페이지에는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지 않던 아버지 이 회장과의 일화, 이윤형과 남자친구 사이의 에피소드 등이 담겨 있어 네티즌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홈페이지에는 이 밖에도 가족과 함께 보낸 성탄절 이야기, 치아 교정으로 고생한 이야기, 집에서 김장한 이야기 등 재벌가의 사생활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홈페이지가 인기가 높은 것에 대해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인기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방명록에 글이 올라오면 답글도 달아주는 친절한 모습을 보여 인기가 더 높아졌다.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하루 4백~5백 명이 방문하자 사진첩과 프로필, 다이어리 등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였다가 주소와 이런 사실들이 언론에 노출되자 2004년 1월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홈페이지가 폐쇄된 후 이를 아쉬워한 네티즌들이 다음에 같은 주소로 팬카페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종종 오기도 했었다.[2]
한 네티즌은 이윤형의 홈페이지 폐쇄 소식을 듣고 “재벌 딸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모습이 귀여웠는데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은 그녀가 늦둥이[3] 막내딸로 자라서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여느 재벌계 회장들과 다르게 언론 앞에서 티 낼 정도로 딸들을 아끼는데다 이재용이 그룹의 후계자로 기대와 부담을 한 몸에 받으며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자란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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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는 명품 치장 없이 수수한 여느 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점심식사를 관계자들이 차로 가져와 전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서 재벌가 딸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여성스럽고 가늘어, 귀엽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낼 때는 매우 논리적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친구들과 의견이 다를 때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다음 조목조목 반박하는 성격이다.
성격이 소탈한 편이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조금 불같고 본인의 뜻대로 안되면 화내고 열내는 성격이었다는 평도 있으며, 결혼 반대에도 이런 성향이 자살로까지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사실상 인생에 큰 걱정이 될 정도까지의 고민은 없고 장애물도 없었을 텐데 처음 장벽에 부딪히니 심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기사나 경호원에게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게 하면 단호한 목소리로 거부하는 모습을 학생들이 많이 봤다고 한다.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평범한 독서실에서 공부를 해서 학생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그녀와 에버랜드에 가면 모든 것이 공짜여서 학생들이 그녀와 함께 그곳에 놀러 가고 싶어했다는 후문.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성격 좋고, 나쁜 소문 전혀 없는’ 학생이라는 평판을 받았다. 이대 학생들 사이에서 이윤형은 재벌가의 막내딸’이라는 꼬리표는 무의미하고, 여느 여대생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윤형의 과 후배는 “저희들에게는 언니가 재벌가의 막내딸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보통 학생들처럼 친한 친구들이랑 이야기 잘하고, 수업에도 잘 들어와요. 그래서 홈페이지 만든 이후에도 매체에서는 언니 이야기로 시끄럽지만, 학교 내에서는 전혀 이슈가 안 됐어요(웃음)”라고 말한다. 후배의 이야기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처럼 관계자들이 차로 그녀를 태우고 오가는 모습은 못 봤고. 이윤형이 입고 다니는 옷도 여느 여대생처럼 수수하다고 한다. 지금도 목소리가 가늘어서 여성스러움이 많이 느껴진다고.
대원외고 시절에는, 학교 옆에서 파는 햄버거를 먹으려고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달려가서 줄을 서서 사먹기도 했다고. 그당시에도 삼성그룹 딸로 유명하였는데, 주변 친구들은 "재벌가의 딸도 저런 음식을 먹는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모교인 대원외고에서 교생실습을 했다. 교생실습 때도 굉장히 성실하고 착했다고 하며, 당시 지인에 따르면 교생 끝나는 주에는 본인이 가르쳤던 반 아이들을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로 데리고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게 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소원은 "경호원 없이 친구들과 소박하게 떡볶이를 사먹는 것"이였다고.
학생들은 우스갯소리로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여느 학생처럼 평범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윤형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한 것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여느 재벌가 딸과는 다른 귀여운 행동이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했다. 평범한 대학생의 생활을 했고, 모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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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찍은 가족 사진.

3. 사망


처음에는 교통사고로 알려져 있었지만, 후에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 원인은 대외적으로 신수빈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5], 집안에서 반대해서 심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풍문과 신수빈과의 교제와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부모가 반강제로 미국에 도피 유학을 시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가 뒤따라 미국에 건너가 몰래 함께 지내는 등 교제를 계속하는 바람에 다시 이 사실이 밝혀지자 가족들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는 풍문이 있다.
그 둘은 그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는데, 그 이후 신수빈이 다시 미국에 들어와 따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윤형이 "지금 나에게 오라"고 전화했으나 이미 신수빈은 삼성가의 완강한 반대에 포기한 상태였으며 심지어 다른 여자를 만난 상황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하여 이윤형의 오라는 지시와 부탁에도 결국 가지 않았다. 이때 "지금 안 오면 자살한다"는 말을 신수빈에게 했다는 풍문도 있다. 그 후 조금 지난 뒤 이윤형은 신수빈이 다른 여자와 만난다는 그 충격과 우울증, 여러 상실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밝혀진 내용이다. 결국 몇 시간 후 신수빈과 그의 친구가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에서 이윤형이 전깃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장례식원불교식으로 치렀다.
그녀가 살았던 애스터 플레이스의 도어맨은 "때로 이윤형 양이 아파트를 나가지 않고 일주일 정도 그녀의 아파트 안에 머물렀다"고 말했으며, 또한 당시 뉴욕 현지의 한 언론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러한 말을 전했다.
사후 취재 결과, 이윤형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속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그 중 이윤형이 가장 속상해했던 부분은, 미국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절하되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실제 이윤형은 한국에서 만큼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최고의 딸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니었다. 여기에 갑작스럽게 바뀐 생활 패턴에 대한 부담감, 가족과 떨어져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결혼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신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심리적 상태에 이르지 않았겠느냐는 게 이윤형을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또한 이윤형의 자살은 당시 삼성의 위기와도 무관치 않은것으로 파악된다. 유난히 아버지를 잘 따르던 이윤형은, 당시 삼성이 X파일 사건 등과 관련 연일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이 회장이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자 불안한 심기를 보였다고 전해졌다. 특히 이윤형은 당시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이 회장이 미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이를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고인은 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자 이를 감당키 어려웠던 것"이라 전했다.[6]
신수빈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98학번으로 재학중에는 학교 스키 동아리에 가입,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하며 나이는 당시 27세로 전해진다. 일본에서 고교까지 졸업한 덕에 일본어에 상당히 능통하며 졸업 전까지 거주지는 서초동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수빈은 학교생활보다는 동아리 학생들과 잘 어울렸다고 한다. 스키 동아리의 한 학생은 "스키 동아리 회원들은 부유층 자제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랬는지 일반 학생보다는 자기들끼리 훨씬 친하게 지냈다"고 전했다. 이윤형과의 교제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아리 내에서 퍼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K대 내에서도 공개 데이트를 즐겼으며 겨울에는 이들 커플이 친구들과 함께 H스키장을 찾아 스키를 자주 즐겼다는 게 동아리 친구들의 말이다.

4. 가족 관계




[1] 주로 합병 등으로 벌었는데 현재는 불공정 자본거래로 막혀있다.[2] 위의 사진 참조[3] 이재용과 무려 11살, 이부진과 8살, 이서현과 6살 차이가 난다. 사촌오빠 정용진도 이재용과 동갑이었고, 사촌언니 정유경도 7살 차이 났을 정도.[4] 사실 이건 이윤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의 오빠인 이재용을 포함해 삼성그룹 오너 일가들이 원래 주변의 서민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지내는 소탈한 삶을 즐기는 경향이 컸다. 일례로 이재용도 가난한 고학생인 친구를 위해 등록금을 지원해주거나, 친구의 자취방으로 라면을 사들고가서 함께 나눠먹기도 했다는 증언이 수두룩하다.[5] 신격호 회장의 호적에 기록 안 된 자식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며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 집안 자제였다고 한다. [6]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누구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심적으로 매우 힘들것이다. '특별한 장애물 없이 살아온 그녀가 처음으로 맞이한 장벽에 무너졌다'는 식으로 쓴 윗 문단의 서술은 자칫하면 이윤형이 쉽게 살면서 쉽게 삶을 포기했다는 식으로 읽힐까 우려되며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