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리키 료

 

'''이치리키 료
一力遼 / Ichiriki Ryo
'''
[image]
'''직업'''
바둑기사
''' 소속'''
일본기원 도쿄본원
''' 생년월일'''
1997년 6월 10일
''' 국적'''
[image] 일본
''' 학력'''
와세다대학 사회학과 '''졸업'''
''' 출신지'''
미야기센다이
''' 입단'''
2010년
''' 단급'''
九단
''' 누적우승경력'''
13회[1]
''' 보유 타이틀'''
천원전, 기성전(소), 용성전, 오카게배
'''한큐바둑 닉네임'''
jpgo5(P), skyair(P)
일본기원 이치리키 료 소개 페이지
1. 개요
2. 상세
2.1. 2010~2017년
2.2. 2018년
2.3. 2019년
2.4. 2020년
2.5. 2021년
3. 기타
4. 주요경력


1. 개요


일본프로 바둑 기사. 2020년 12월 기준 일본 기사들 중에서 Go rating이 가장 높다.[2]
2010년대 후반부터 이야마 유타의 뒤를 이어 일본 바둑계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으며, 실제로 일본의 20대 프로 바둑 기사 중에서 시바노 도라마루 九단과 함께 선두를 달리고 있다.

2. 상세



2.1. 2010~2017년


일본기원 소속 한국인 프로 기사 송광복 九단의 문하생으로, 2010년에 입단했다.[3]
2014년 제1회 글로비스배 세계 바둑 U-20에 출전해 결승에서 쉬자위안을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2015년 제17회 농심신라면배에 일본 대표팀 선봉으로 출전해 3연승을 거뒀다. 중국 우광야에게 패해 4연승에는 실패했다.
2016년 제18회 농심신라면배에서도 일본 대표팀 선봉으로 출전해 한국 대표팀 선봉 이세돌 九단을 꺾었다. 하지만 중국 판팅위 九단에게 패해 2연승에는 실패했다.
2016년 4월 와세다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특기자 전형이 아닌 정시, 센터시험 - 대학별고사를 통과해 입학했다.
2016년 9월 2일에 야마시타 게이고를 꺾고 천원전 도전권을 획득했지만 10월 21일부터 시작된 천원전에서는 이야마 유타에게 1-3으로 패배해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2017년 4월에 개막한 중국바둑갑조리그에 충칭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2017년 8월 25일에 시바노 도라마루를 꺾고 왕좌전 도전권을 획득했고, 8월 31일에는 야마시타 게이고를 꺾고 천원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왕좌전과 천원전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각각 0-3으로 패배해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같은 해 11월 9일에는 야마시타 게이고를 꺾고 기성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2017년 11월 27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4번째 주자로 출전했지만, 중국 당이페이에게 패했다.

2.2. 2018년


1월 18일부터 시작된 기성(棋聖)전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0-4로 패해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5월 30일 LG배 16강전에서 강동윤에게 패해 탈락했다.
7월 28일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16강전에서 박정환에게 패했다.
9월 13일 모토키 가쓰야를 꺾고 왕좌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9월 21일 천부배 B조 16강전에서 박정환에게 패했다.
10월 6일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시바노 도라마루를 꺾고 우승했다.
10월 26일부터 시작된 왕좌전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2-3으로 패해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11월 26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4번째 주자로 출전했지만, 중국 판팅위에게 패했다.
12월 8일 중-일 아함동산배에서 중국 구쯔하오에게 패했다.

2.3. 2019년



4월 11일 제1회 한중일 용성전 1회전에서 커제 九단에게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틀 뒤 김지석 九단을 꺾고 결승에 올라온 커제와의 재대결에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6월 21일 TV바둑 아시아 7강전에서 딩하오에게 역전패했다.
9월 23일 일본 용성전 결승전에서 우에노 아사미 二단과 대결해 승리,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10월 5일 일본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장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10월 12일 제4회 몽백합배에서 8강에 진출했다.[4]
11월 명인전 최종예선 결승에서 후지사와 리나를 꺾고 본선 리그에 진출했다.
11월 22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3번째 주자로 출전했지만, 중국 양딩신에게 패했다.

2.4. 2020년


3월 NHK배 결승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4월 27일 한큐바둑에서 치러진 몽백합배 8강전에서 셰커에게 패배. 중국의 대회 우승이 확정됐다.
6월 1일 온라인으로 열린 LG배 32강전에서 박정환에게 패해 탈락했다.
7월부터 하네 나오키와 작은 기성전 타이틀전을 벌였고, 최종 스코어 3-0으로 6번째 도전 만에 처음으로 7대 기전 타이틀을 획득했다.
응씨배 본선에 일본 대표 중 한 명으로 출전했다. 28강 미위팅, 16강 안성준, 8강전 타오신란 등 중국과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을 꺾고 4강에 진출했다. 함께 참가했던 이야마 유타, 시바노 도라마루, 무라카와 다이스케, 고노 린, 쉬자위안은 조기에 탈락한터라 유일하게 남은 일본 프로기사가 된 상황. 또한 일본 국적의 일본인이 응씨배 4강에 진출한 것은 1996년 요다 노리모토 이후 무려 24년 만이다.[5] 준결승 상대는 셰커 八단.
삼성화재배에서도 2연승으로 8강에 올랐지만, 10월 30일 셰얼하오에게 패해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12월 16일 천원전 결승 제5국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승리. 최종 스코어 3-2로, 천원 타이틀을 획득하며 2관왕에 등극했다. 동시에 일본기원 규정에 따라 九단으로 승단했다.[6]
12월 22일 오카게배 결승에서 이다 아쓰시 八단을 꺾고 우승했다.

2.5. 2021년


1월 10~12일에 열린 응씨배 4강전에서 셰커 八단에게 0-2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월 24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했지만, 신진서에게 불계패했다.

3. 기타


기풍은 '''닌자 바둑'''이라고 불린다. 기회를 보다가 공격하고 치고 빠지는 전술을 잘 구사한다. 따라서 작은 전투가 여러 개 있는 대국을 잘 둔다. 하지만 정면승부에는 약한 편이다.
대표적인 속기파로 용성전이나 NHK배같은 속기전에 특히 강하다. 또 바둑돌 놓는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인데, 이 때문에 신인 시절에는 바둑 둘 때 손 늦게 나가게 하려고 1980년대 조치훈 九단처럼 바둑 두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아서 시간을 끈 적도 있다.
도호쿠를 대표하는 지방신문인 카호쿠신보와[7] TBS테레비 계열인 도호쿠 방송을 경영하는 이치리키 가문의 후계자다. 쉽게말해 금수저 도련님. 와세다대에 진학한 계기도 신문사 가업을 이어야 해서라고.카호쿠신보 아카이브
2020년 3월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평균 평점은 3점대 중후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기사 활동과 후계자 수업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스케쥴이 매우 빡빡했을텐데 강의 출석을 단 1번도 빠지지 않았을만큼 대학생활에도 많은 집중을 했다고. 참고로 졸업식에서는 이치리키가 수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졸업생 대표 연설은 하지 못했지만, 학교 측에서 특례로 바둑과 관련한 특별연설을 부탁해서 이런저런 언급을 해줬다. 내용은 대략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도 소양을 위해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단,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되고 본인 스스로 본업과 학업을 동시에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졸업 직후인 2020년 4월 카호쿠신보 도쿄지사에 입사했다.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후계자 수업도 받고 프로 기사 활동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4. 주요경력



[1] 나카노배는 비공식 기전이므로 누적우승경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카게배는 원래 비공식 기전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열렸던 2020년 제11회 대회는 공식전으로 진행되었다.[2] 12월 말 기준 세계 9위.[3] 이치리키 료는 송광복 九단의 문하생 출신이지만 관서기원 소속 한국인 프로 기사 홍맑은샘이 운영하고 있는 바둑 도장 '''홍도장''' 출신이기도 한데, 이는 송광복 九단의 문하생들이 홍도장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4] 여담으로 이 대회에서 한국 기사들은 전원 16강에서 탈락했고 이치리키 료를 제외한 나머지 7개의 8강행 티켓은 전부 중국인 기사들이 차지했다.[5] 2000년 응씨배에서 4강에 진출했던 왕밍완 九단은 일본기원 소속이긴 하지만, 대만 국적이다.[6] 참고로 이치리키 료는 그동안 7대 기전 타이틀전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5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번 천원전에서 처음으로 이야마 유타를 꺾었다.[7] 본사가 센다이에 있다. 미야기현 지방지이지만 실제로 도호쿠 블록지로 취급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