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마 유타

 

'''이야마 유타
井山裕太 / Iyama Yuta
'''
'''第二十六世本因坊 文裕''' [1]
[image]
'''직업'''
바둑기사
''' 소속'''
일본기원 관서총본부[2]
''' 생년월일'''
1989년 5월 24일(35세)
''' 국적'''
[image] 일본
''' 출신지'''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 입단'''
2002년
''' 단수'''
九단
''' 현 보유 타이틀'''
기성(棋聖)전, 명인전, 혼인보전, 아함동산배, NHK배
''' 누적 우승 경력'''
62회
''' 주요 경력'''
7관왕 2회, 연간 그랜드슬램 달성
'''한큐바둑 닉네임'''
Callaway(P), jpgo01(P)
'''타이젬바둑 닉네임'''
detective
''' 홈페이지'''
일본기원 이야마 유타 페이지
1. 개요
2. 상세
2.1. 프로 입단 이전
2.2. 2002~2015년
2.3. 2016년
2.4. 2017년
2.5. 2018년
2.6. 2019년
2.7. 2020년
2.8. 2021년
4. 별명
5. 기타
6. 약력
7.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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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 바둑 기사. 2010년대 일본 바둑계를 평정한 기사이다. 2020년 일본 바둑 상금 랭킹 1위.

2. 상세



2.1. 프로 입단 이전


오사카에서 태어나, 5살 때 아버지가 사준 게임으로 바둑을 배웠다. 6살 때 이시이 구니오(石井邦生) 九단[3]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시이 九단은 이례적으로 이야마 유타와 1000국 가량 대국하며(대부분 인터넷 바둑) 직접 가르쳤다.[4]

2.2. 2002~2015년


2002년에 입단했다.[5] 2005년 아함동산배에서 우승하며 일본 바둑 사상 최연소 우승(16세 4개월)을 달성했고, 2009년 명인전에서 장쉬 명인을 최종 스코어 4-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며 최연소 7대 기전 타이틀 획득(20세 4개월) 기록과, 최단 기간 九단 승단(8년 10개월)[6] 기록을 세웠다.
2013년 3월 14일에 장쉬 기성을 최종 스코어 4-2로 꺾고 기성(棋聖) 타이틀을 획득하며 일본 바둑계 최초로 7대 기전 '''6관왕'''에 등극했다. 동시에 사상 3번째로 그랜드슬램[7]도 달성했다. 동년 10월 17일에는 야마시타 게이고 명인을 최종 스코어 4-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 사상 2번째로 대삼관(大三冠)[8]을 달성했다. 하지만 십단전에서 계속 가로막혀 7관왕 달성이 미뤄지다가,[9] 2014년 12월 왕좌전, 천원전 도전기에서 패하며 4관왕까지 물러났다. 2015년에는 다시 십단전을 제외한 6관왕에 복귀했고 십단전 도전기에서도 위정치 7단을 꺾고 도전권을 획득했다.

2.3. 2016년


2016년 3월 8일부터 열린 십단전에서 이다 아쓰시 십단을 최종 스코어 3-1로 꺾고 십단 타이틀을 획득, 일본 바둑 사상 최초로 '''7관왕'''에 등극했다.
6월 30일 혼인보전에서 다카오 신지 九단을 4-1로 꺾고 5연패에 성공, 영세 혼인보(26세 혼인보) 자격을 획득했다. 혼인보 가문에 들어간 예명은 몬유(文裕)로, 文은 문수보살(文殊菩薩), 裕는 이름 유타(裕太)에서 따온 것이다.
2016년 들어서부터 중국의 예후바둑이나 한국의 타이젬 바둑 등을 통해 인터넷 대국을 많이 하기 시작했는데, 이 인터넷 바둑에서는 박정환 九단과는 호각이었지만, 중국스웨 九단[10]이나 커제 九단, 저우루이양 九단, 한국의 신진서 六단이나 이동훈 八단, 김지석 九단 등 다른 정상급 기사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이 인터넷 대국들은 공식 대국이 아니지만, 이야마 九단이 국제기전에 많이 나온다고 해도 일본 국내에서처럼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근거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11월 13일 명인전 제7국에서 다카오 신지에게 흑 2집 반 차로 패배. 최종 스코어 3-4로 명인 타이틀을 상실했다.[11] 동시에 7대 기전 타이틀 독점도 종료.
2016년 말에 알파고타이젬한큐바둑에서 한중일 탑기사들에게 60전 전승을 거둘 때 일본 기사로는 유일하게 대결했는데,# 이 때 알파고를 상대로 가장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내로라 하는 한중의 탑기사들도 초반 50수만 지나면 죄다 불리했는데 이야마 유타는 어느 정도 대등하거나 혹은 유리한 장면까지 끌고 갔다. 다만 결과는 아쉽게도 이야마 유타의 패배로 끝났다.
참고로 알파고가 둔 수들 중에 충격을 받은 수는 없다고 한다.

2.4. 2017년


1월 29일 하세배 1차전에서 중국 1위 커제를 상대로 22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2차전에서 박정환을 꺾고 결승에 올라온 커제와의 재대결에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7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인간 기사 중 유일하게 딥젠고에 패배[12]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최종 성적도 3전 전패로 최하위(...)
5월 31일 LG배에서 중국 저우루이양을 꺾고 8강에 진출했다.
8월 초 명인전 본선리그에서 8전 전승을 거두고 명인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명인전 도전기 7번기에서 다카오 신지를 최종 스코어 4-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탈환, 약 1년만에 다시 7관왕에 등극했다.[13]
11월 13일 일본에서 열린 LG배 8강전에서 양딩신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일본 기사의 메이저 세계대회 4강행은 2011년 마지막 후지쯔배에서 이야마 유타 본인이 3위에 오른 이후 6년 만이라고 한다.
[image]
LG배 4강전 종국 직후. 커제가 초반에 우세하던 흐름에서 도저히 질 수 없는 바둑을 졌다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이틀 뒤 4강전에서 현 세계 최강자 커제마저 흑으로 격파하며 결승에 진출, 본인에게 있어 첫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에 매우 가까워졌다.(결승 상대는 중국의 셰얼하오) 참고로 장쉬 九단의 LG배 우승 이후로 일본기원 소속 기사는 약 12년 동안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없다. '''사실 결승까지 올라간 건'''[14]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듯 준우승에 그치며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2.5. 2018년


2018년 1월 한중일 명인전에서 중국 롄샤오와 한국 이세돌에 연달아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월 5~8일 LG배 결승에서 중국 셰얼하오에게 1-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준우승이 확정되자 이야마 유타 본인도 괴로워하고 일본기원 관계자들도 엄청나게 괴로워했다.
LG배 결승에서 셰얼하오한테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을 때 괴로워하는 인터뷰를 한 이후에 마지막에 한 말이 '''"나의 도전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겁니다."'''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3월 춘란배2018년 신설 대회인 천부은행배에는 국내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 그 후 삼성화재배, LG배에는 재도전했지만... 신아오배는 향후 개최 자체가 불투명.[15]
3월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에서 박정환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5월 2일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판팅위에게 패해 1회전에서 탈락했다.
5월 18일 LG배 32강전에서 자오천위에게 패배했다. 초반 실리 싸움에서 자오천위에게 밀리며 중앙 지향적인 판을 구사하였고, 중앙에 40집 가까이 되는 큰 집을 만들며 역전하나 싶었는데 우변에서부터 중앙으로 들어간 삭감 수를 잘 처리하다가 막판에 잘못 받으면서 중앙이 돌파당하자 아쉽게 돌을 거두었다.
7월 24일 중국에서 열린 세계대회 바이링배 16강전에서 롄샤오에게 승리했다. 그러나 이틀 뒤 8강전에서는 구쯔하오에게 패해 탈락했다.
7월 28일 한국에서 열린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16강전에서 강동윤에게 패했다.
8월 3일 기성(碁聖)전 3국에서 쉬자위안에게 패배. 최종 스코어 0-3으로 기성(碁聖) 타이틀을 상실했다. 동시에 7대 기전 타이틀 독점도 종료. 참고로 일본 7대 기전 타이틀 방어전에서 이야마 유타가 영봉패를 당한 건 이번이 최초다.
8월 14일 일본 한큐 바둑 축제 대국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패했다.
9월 4~6일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2승 1패를 거두며 일본 기사 중 유일하게 통과했다. 10월 1일 16강전에서 리쉬안하오에게 승리. 그러나 다음날 8강전에서 그해 LG배 결승 상대였던 셰얼하오와 다시 만나 또 졌다.
11월 2일 명인전 최종국에서 장쉬 九단에게 패배. 최종 스코어 3-4로 명인 타이틀을 상실했다.[16]
12월 13일 왕좌전 최종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승리. 최종 스코어 3-2로 왕좌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12월 19일 천원전 최종국에서 야마시타 게이고에게 승리. 최종 스코어 3-2로 천원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이로써 7대 기전 우승 횟수는 역대 최다인 43회가 되었다.[17]

2.6. 2019년


2월 18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했지만, 박정환에게 패했다.
3월 15일 기성(棋聖)전 최종국에서 도전자 야마시타 게이고에게 승리. 최종 스코어 4-3으로 7연패에 성공했다.
3월 19일 월드바둑챔피언십 준결승에서 커제에게 패해 탈락했다.
4월 19일 십단전 4국에서 무라카와 다이스케에게 패배. 최종 스코어 1-3으로 십단 타이틀을 상실했다.
5월 6일 일본 그랜드 챔피언전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9일 LG배 16강전에서 커제에게 패해 탈락했다.
6월 21일 TV바둑 아시아 선수권 7강전에서 신민준 九단에게 불계패했다.
7월 4일 혼인보전 6국에서 도전자인 고노 린에게 승리. 최종 스코어 4-2로 8연패를 달성했다.
8월 3일 국수산맥배 16강전에서 변상일에게 패배. 2년 연속 첫 판에서 탈락했다.
14일 봉황고성배 8강전에서 스웨에게 패해 탈락했다.
30일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탕웨이싱에게 패배했다.
11월 26일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본선 2차전 9국에서 파죽의 7연승을 달리던 양딩신에게 20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그러나 2020년 8월 18일에 인터넷 원격대국으로 열린 본선 3차전 10국에서는 박정환에게 불계패했다.[18]
11월 29일 왕좌전 결승 4국에서 도전자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반집 차로 패배. 최종 스코어 1-3로 왕좌 타이틀을 상실했다. 타이틀을 방어했다면 명예 왕좌 칭호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12월 18일 천원전 결승 5국에서 쉬자위안에게 승리. 최종 스코어 3-2로 5연패를 달성했다.

2.7. 2020년


3월 6일 기성(棋聖)전 결승 6국에서 고노 린에게 승리. 최종 스코어 4-2로 8연패를 달성했다.
3월 NHK배 결승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승리를 거두고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6월부터 시작한 혼인보전에서[19] 도전자로 올라온 시바노 도라마루 명인과의 7번기를 치렀다. 1~3국은 불계승. 4국은 불계패. 7월 9일에 열린 5국에서 백 4집 반승을 거두고 최종 스코어 4-1로 혼인보전 9연패에 성공했다.[20]
7월 29일 춘란배 24강전에서 신민준에게 패했다.
8월 초 명인전 본선리그에서 8전 전승을 거두고 명인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9월 8일 응씨배 28강전에서 구쯔하오에게 역전패했다.
10월 3일 교토에서 열린 일본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야마시타 게이고를 꺾고 5년 만에 우승했다.
8월 말부터 진행된 명인전 도전기에서 4국까지 3승 1패를 기록하며 압도했고, 10월 13~14일에 열린 제5국에서 불계승을 거두며 시바노 도라마루에게서 명인 타이틀을 탈취했다.[21]
11월 14일에 개막한 중국바둑을조리그에 일중우호팀(or 중일우호대)[22]의 일원으로 참가해,# 5승 3패를 기록했다.#
12월 16일 천원전 결승 5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패배. 최종 스코어 2-3으로 천원 타이틀을 상실했다.

2.8. 2021년


2월 22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4번째 주자로 출전했지만, 신진서에게 불계패했다.

3. 국민영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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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일본 바둑계 최초로 7대 기전 완전 제패를 달성했던 이야마 유타는 2017년에 다시 한번 7대 기전을 독차지하며 연간 그랜드슬램[23]까지 달성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1월 5일국민영예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이날 오전 각의가 끝난 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13일에 시상식이 열렸다.# 쇼기의 하부 요시하루는 25번째, 이야마 유타는 26번째 수상자로 확정. 바둑/쇼기 계에서는 사상 최초로 국민영예상 수상자가 나왔다.
이야마 유타에 대한 국민영예상 시상 사유는 아래와 같다.

囲碁界を牽引する棋士の第一人者として、

바둑계를 견인하는 기사의 1인자로,

顕著な功績を重ね続け、年間グランドスラムを含む、

현저한 공적을 거듭, 연간 그랜드슬램을 포함,

囲碁界初の2度の七冠同時制覇という歴史に刻まれる偉業を達成、

바둑계 최초의 2회 7관왕이라는 역사에 새겨질 위업을 달성,

多くの国民に夢と感動を、社会に明るい希望と勇気を与えることに顕著な業績があった。

많은 국민들에게 꿈과 감동을, 일본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에 현저한 업적이 있다.

이야마 유타의 수상 결정 소감은 아래와 같다.

この度、国民栄誉賞を受賞させていただく事となり、大変光栄であるのと同時に、身の引き締まる思いです。

이번 국민영예상을 수상하는 것은 큰 영광인 동시에, 몸이 굳어지는 느낌입니다.

棋士としてまだまだ発展途上の自分がこのような賞をいただいて良いのかという思いはありますが、今後に期待していただいているものと理解しております。

기사로써 아직 발전 중인 제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느냐는 고민이 있습니다만, 앞으로의 성적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少しずつでも前に進んでいけるよう、これからも誠心誠意、囲碁に向き合っ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성심성의껏 바둑판 앞에 앉겠습니다.

이야마 유타의 스승 "이시이 구니오" 九단의 소감

国民栄誉賞受賞、誠に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국민영예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全国数百万の囲碁ファンの皆様方はこの朗報に拍手喝采を送って下さることでしょうし、私も身の震えるような思いをしています。

전국 수백만명의 바둑팬 분들께서는 이 소식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고, 저도 몸이 떨리며 같은 마음입니다.

井山君はプロ棋士になって16年になりますが、これからの道程の方が数倍も長いのです。

이야마 군은 프로 기사가 된지 16년이 되었는데(2002년 입단), 앞으로의 여정이 몇 배나 깁니다.

この素晴らしい栄誉と重みを担ってこの受賞を励みとし、これまで以上に研鑽に努め囲碁界の発展のために尽力して下さい。

이번 수상이라는 위대한 영예와 무게를 안고, 이번 수상을 격려로, 지금까지 이상으로 연구에 힘쓰며 바둑계 발전에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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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3일 진행된 국민영예상 시상식. 왼쪽이 이야마 유타 九단, 가운데 아베 신조 수상, 오른쪽 하부 요시하루 九단.
이야마 유타는 사상 첫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가 국민영예상을 수상한 사례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

4. 별명


바둑 갤러리, 사이버오로, 타이젬바둑 등에서 불리는 별명은 '''거봉센세'''다. 두 글자로는 '거봉'이라 부르고, 한 글자로 축약할 때는 '봉'이라고 부른다. 아예 '''Iyama “The Grape” Yuta Sensei'''라는 별명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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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Master vs 이야마 유타. 흑 알파고, 백 이야마.
알파고와의 60국에서 알파고를 거봉 상태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바둑에서 이런 거봉 모양은 중복의 표본이기 때문에 두면 안 되는 '''안 좋은 모양(우형) 0순위'''이다. 대국은 결국 알파고가 이겼지만 이야마 유타 九단의 알파고 거봉 상태 만들기가 워낙 충격적이었기에 별명으로 굳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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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명은 바둑 갤러리 위주로 쓰면서 여러 군데로 퍼져나갔는데, 기어이 한국기원 월간바둑 2018년 1월호에서 거봉 '선생'으로 언어순화(?)해서 공식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둑 갤러리의 반응은 "바갤럼은 바둑계 어디에나 있다" 아카이브
한국에서 '거봉센세'로 불리는 것에 대해 이야마 유타 九단의 반응은 아래와 같다.

내게 그런 별명이 붙은 줄 몰랐는데 기분 좋다. 별명을 붙여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한다. 알파고 마스터와 대국은 초반에는 복잡했는데 나중에는 잘 풀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판 전체로 보면 알파고의 대세관에 내가 미치지 못했던 거 같다.

출처: 알파고를 포도송이 만든 일본의 ‘거봉 선생’(중앙일보)


5. 기타


  • 키가 정말 작다. 160cm대 초반으로 추정되는데, 180cm인 신진서 九단, 180cm가 넘는 박정환 九단, 커제 九단과 비교하면 정말 머리 하나 이상 차이 난다. 키가 194cm인 퉈자시 九단과 비교하면 이야마가 어깨까지밖에 안 온다.
  • 오른손잡이지만 바둑을 둘 때는 왼손으로 바둑돌을 잡아서 바둑판 위에 착수하는데, 이건 이야마의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이야마에게 바둑을 가르칠 때 "왼손을 사용하면 뇌에 좋다."며 왼손을 사용하도록 지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2011년부터 10년 연속 상금 랭킹 1위를 지키고 있고, 특히 2013년에 받은 1억 6461만엔은 사상 최고다. 이야마 유타 9단이 신예 기사였던 시절, 얼마나 돈을 벌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5억엔만 벌면 여한이 없겠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는데 2016년까지 벌어들인 상금이 10억엔, 즉 100억원을 돌파했다.
  • 2012년에 쇼기 여류기사 무로타 이오(室田伊緒)와 결혼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생년월일이 똑같이 1989년 5월 24일이기 때문에, 혼인 신고도 5월 24일에 했다. 하지만 2016년 1월 25일, 이야마는 일본기원을 통해 둘의 이혼을 발표했다.# 이후 2019년 7월, 재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2017년에 한 중국 언론에서 이야마 유타 九단이 일본기원의 금지 조치를 무시하고 중국의 바둑 인공지능 절예와 인터넷 대국#을 했다는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금지 조치를 무시했다는 건지에 대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은데다, 이야마가 절예와 대국했다는 이유로 일본기원으로부터 제재나 경고를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신빙성에는 의문이 있다.
  • 현 일본 바둑계의 명실상부한 1인자[25]이고 한국과 중국 기사들이 초강세를 보이는 국제 기전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몇 안되는 일본 기사지만, 세계 대회에서 모습을 자주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는 일본기원의 대회 운영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기원의 경우 중국기원, 한국기원과 달리 7대 기전을 포함해 주요 국내 대회의 1년 일정을 미리 정해놓는데,#[26] 이 국내 대회의 일정이 세계대회 본선 출전 일정과 겹칠 경우 국내 대회에 전념하기 위해 세계 대회 본선 출전을 사퇴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27][28]

6. 약력


  • 2002년 입단
  • 2005년 아함동산배 우승, 七단 승단
  • 2007년 신인왕전 우승
  • 2008년 야마토증권배 그랜드챔피언전 우승, 명인전 도전권 획득, 八단 승단
  • 2009년 야마토증권배 그랜드챔피언전 · 용성전 · 명인전 우승, 九단 승단
  • 2010년 NHK배 준우승, 명인전 · 야마토증권배 넷오픈 우승, 아시안게임 남자 단체 동메달
  • 2011년 십단전 · 금불산배 · 용성전 · 아함동산배 · 천원전 우승, 후지쯔배 3위
  • 2012년 십단전 · 본인방전 · 기성(碁聖)전 · 용성전 · 왕좌전 · 천원전 우승
  • 2013년 기성(棋聖)전 · TV바둑 아시아선수권 · 혼인보전 · 기성(碁聖)전 · 명인전 · 천원전 · 왕좌전 우승.
  • 2014년 기성(棋聖)전 · 혼인보전 · 기성(碁聖)전 · 아함동산배 · 명인전 우승
  • 2015년 기성(棋聖)전 · 혼인보전 · 기성(碁聖)전 · 아함동산배 · 명인전 · 천원전 · 왕좌전 우승
  • 2016년 십단전 우승으로 일본 바둑 최초의 7관왕(전관왕) 달성, 기성(棋聖)전 · 혼인보전 · 기성(碁聖)전 우승, 명인 타이틀 상실(다카오 신지)
  • 2017년 두 번째로 7관왕 달성. 쇼기하부 요시하루와 함께 일본 '국민영예상' 수상자 선정. #
  • 2018년 LG배 준우승 • 기성(棋聖)전 우승 • 혼인보전 우승 • 천원전 우승 • 왕좌전 우승 • 십단전 우승 • NHK배 우승 • 월드바둑챔피언십 준우승, 기성(碁聖) 타이틀 상실(쉬자위안), 명인 타이틀 상실(장쉬)
  • 2019년 기성(棋聖)전• 혼인보전 • 천원전 우승, 십단 타이틀 상실(무라카와 다이스케), 왕좌 타이틀 상실(시바노 도라마루)
  • 2020년 기성(棋聖)전 • NHK배 • 혼인보전 • 아함동산배 • 명인전 우승, 천원 타이틀 상실(이치리키 료)
'''<일본 7대 기전 타이틀>'''
  • 기성전(대)(棋聖戦) : 총 8회(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 명예기성(名誉棋聖)
  • 명인전(名人戦) : 총 7회(2009, 2010, 2013, 2014, 2015, 2017, 2020)
  • 혼인보전(本因坊戦) : 총 9회(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 이십육세 혼인보(二十六世本因坊)
  • 천원전(天元戦) : 총 8회(2011, 2012, 2013, 2015, 2016, 2017, 2018, 2019) / 명예천원(名誉天元)
  • 왕좌전(王座戦) : 총 6회(2012, 2013, 2015, 2016, 2017, 2018)
  • 기성전(소)(碁聖戦) : 총 6회(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 명예기성(名誉碁聖)
  • 십단전(十段戦) : 총 5회(2011, 2012, 2016, 2017, 2018)
'''<기타 기전>'''
  • 신인왕전 : 우승 1회(2007)
  • 아함동산배 : 우승 5회(2005, 2011, 2014, 2015, 2020)
  • NHK배 : 우승 3회(2017, 2018, 2020)
  • 용성전 : 우승 3회(2009, 2011, 2012)

7. 저서


  • 이야마 유타, 7관 달성의 길(井山裕太七冠達成への道―囲碁史上初の偉業): 2016년 처음 7관왕을 달성했을 때 출간한 책으로, 아마존닷컴에서 판매 중이다. 링크

[1] 제26세 혼인보 몬유. 자세한 내용은 혼인보전 문서 참조.[2] 관서기원과는 다르다.[3] 1941년생의 바둑 기사로 이전까지 국내외에서 뚜렷한 성적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다가 2001년 제14회 후지쯔배 본선 1회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이창호 九단을 불계로 꺾어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던 주인공이다.[4] 훗날 이야마 九단은 스승님의 집과 자신의 집 간의 거리가 워낙 멀어 어린 나이에 왔다 갔다 하며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기 힘든 터라 원거리 대국이 가능한 인터넷 바둑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5] 원생 리그에서 46연승을 포함, 71승 8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입단했다.[6] 일본기원 승단 규정에 따르면 소속 기사가 7대 기전 중에서도 3대 메이저 타이틀(기성(棋聖)전, 명인전, 혼인보전)을 획득할 경우 九단으로 승단하게 된다.[7] 7대 기전을 전부 1번 이상 우승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르는데 조치훈이 1987년에 최초로 달성했고, 2010년에는 장쉬가 2번째로 달성했다.[8] 기성(棋聖), 명인, 혼인보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으로 조치훈 九단이 1983년에 최초로 달성했다.[9] 2013년 4월 도전기에서 유키 사토시, 2014년 1월 도전자 결정전에서 다카오 신지, 11월 8강전에서 고바야시 사토루에게 패했다.[10] 9월 10일 스웨 九단과 이야마 九단의 인터넷 대국에서는 이야마 九단이 만방으로 깨져서 집 차가 50집 이상 벌어지는 바람에 조기에 불계패를 선언하기도 했다.[11] 초반 3연패를 당한 후 3연승을 거두며 승부를 최종국까지 끌고 갔지만 최종국에서 접전 끝에 패배했다.[12] 박정환(바둑기사)미위팅은 딥젠고를 이겼는데, 이야마 유타만...[13] 참고로 전관왕은 아니다. 일본에는 7대 기전 외에도 NHK배, 용성전, 아함동산배 등이 있는데, 2017년에 이야마는 용성전과 아함동산배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다.[14] 대진운이 좋았다며 운빨 탓을 할 수도 없는게, 이야마 유타는 32강 이영구 九단, 16강 저우루이양 九단, 8강 양딩신 五단, 4강 커제 九단을 꺾고 결승까지 올라간 것이다. 이영구도 한국에서 10위권 내에 드는 기사고 양딩신도 중국에서 10위권 안에 있는 잘나가는 신예. 저우루이양과 커제는 세계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이야마 유타는 '''말할 것도 없는 강한 기사들만 다 이기고 올라간 것'''이다.[15] 1회 대회를 끝으로 더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16] 1~2, 4국을 이기며 좋은 기세를 이어가는 듯했으나, 5국부터 3연패를 당했다.[17] 종전 최다 우승 기록은 조치훈의 42회였다.[18] 초반에는 팽팽하게 맞섰지만, 중간에 큰 실수를 하는 바람에 185수 만에 흑 불계패를 선언했다.[19] 본래 5월부터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1달 연기.[20] 이로써 이야마 유타는 일본기원 규정에 따라 은퇴하거나 60세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혼인보 몬유(本因坊 文裕) 칭호를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21] 그와 동시에 통산 3번째 대삼관을 달성했다.#[22] 일본기원의 이야마 유타, 무쓰우라 유타, 후쿠오카 코타로, 관서기원위정치[23] 한 해에 7대 기전 타이틀을 전부 제패하는 것을 의미한다.[24] 첫번째 7관왕: 2016년 4월 21일~2016년 11월 3일 / 2번째 7관왕: 2017년10월 18일~2018년 8월 3일.[25] 근 10년간 일본 바둑계 최강자로 군림했고 특히 2016~2018년에는 7대 기전 타이틀을 2차례나 독차지하기도 했지만,[24] 이후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 기사들에게 조금씩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2020년에 대삼관에 복귀하는 등, 여전히 일본 1인자로 불릴만한 성적을 내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치리키 료, 시바노 도라마루와 함께 일본 바둑계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기사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것으로 보여진다.[26] 기성(棋聖): 1~3월 / 십단: 3~4월 / 혼인보: 5~7월 / 기성(碁聖): 6~8월 / 명인: 9~11월 / 왕좌&천원: 10~12월 일정으로 기전이 열린다. 사실상 1년 내내 일본 7대 기전 대국 스케줄이 꽉 찬 셈.[27] 당장 올해만 해도 이야마 유타시바노 도라마루가 혼인보전 7번기에 전념하기 위해 LG배 출전을 사퇴했다.6월 4일 뉴스[28] 한국 국내 바둑 기전 중에 큰 상금이 걸린 대회가 별로 없어서 국제 기전에 꼭 참가하고 싶어하고, 중국바둑갑조리그에 용병으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한국기원의 기사들과는 처지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