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타츠후미

 

1. 개요
2. 대표작
2.1. TVA
2.2. OVA
2.3. 극장판
2.4. 게임


1. 개요


伊藤達文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1964년 5월 28일 ~ 2020년 5월 23일. (향년 55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출신. 대표작은 전희절창 심포기어, 캐릭캐릭 체인지.
업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카나다 요시노리의 광팬이었으며 21세 때 고향인 모리오카에서 애니메이션 베로베로라는 동인 그룹을 결성해 카나다를 주인공으로 한 폭발초인 카나다맨[1]이라는 8mm짜리 필름을 제작해 1985년 중반 아마추어 필름 상영회에 출품한 경력이 있다. 이 작품은 당시 화제가 되어서 이듬해인 1986년 1월호 아니메쥬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다.
1987년 무슈 어니언이라는 작화 스튜디오에 입사했으나 활동을 별로 하지 않고 동료였던 카가와 히사시, 우마코시 요시히코와 함께 스튜디오 콕핏으로 이적해서 사망 전까지 소속되어 있었다.
여성 캐릭터를 귀엽게 그리기로 유명했다. 특히 스튜디오 콕핏이 하청으로 참여한 겐지통신 아게다마는 우마코시 요시히코와 이토 타츠후미의 팬들을 다수 만들었으며 귀여움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우마코시도 "귀여운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타마카와[2] 씨"라며 인정했다. 무슈 어니언 시절 선배였던 하야마 준이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손이 빨라서 다작도 자주 했다. 아래 대표작 목록은 전체 참여작의 절반도 안 될 정도.
고난이도의 안무 작화, 연출이 가능해서 이러한 장면의 작화나 연출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꽃보다 남자의 오프닝, 전희절창 심포기어 1화, 좀비 랜드 사가가 대표적이다.
2000년 경부터는 할 필름 메이커, 곤조, 선라이즈, SATELIGHT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연출을 자주 담당했다. 주로 야마우치 시게야스, 사토 준이치 감독 작품에 참여했다. 이토는 사토 준이치를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2008년 9월에 애니메이터 이토 마리코(伊藤真里子)와 결혼해 성이 타마카와(玉川)에서 이토(伊藤)로 바뀌었다.
2020년 7월 1일 동년 5월 23일 뇌간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아내 이토 마리코를 통해 전해졌다.# 향년 55세.
사후 킹스레이드: 의지를 잇는 자들 6화와 오르텐시아 사가 7화에 콘티 담당으로 크레딧되었으며 생전 미리 작업을 해 두었거나 동명이인인 것으로 보인다. 팬 반응으로는 생전 작업으로 보인다는 반응이 많다. [3]
정치적 스펙트럼은 우파. 일본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가 발생하고 휴교 등의 정책을 시행하자 경제는 어떡할 거냐며 이에 반대하는 트윗을 여럿 리트윗한 적이 있다.

2. 대표작



2.1. TVA



2.2. OVA



2.3. 극장판



2.4. 게임



[1] 카나다 특유의 폭발 작화를 의식하고 지은 이름으로 보인다.[2] 데릴사위로 결혼을 해서 성이 바뀌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3] 콘티는 작화보다 이른 단계에 미리 해두는 경우가 많아서 1년 전에 그려놓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