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배구인)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대한민국 배구를 대표하는 리베로.
존칭은 '''월드 리베로'''.
하지만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몸소 보여 주고 있을 정도로 지도자로서는 영 좋지 않은 모습들만 보이는 배구인.
2. 선수 시절
초등학교 6학년 때 165cm였을 정도로 어렸을 때는 나름대로 키가 컸기 때문에, 이거 하나만으로 배구부에 들어갔다. 이후 이리 남성중학교에 진학하여 배구를 계속하지만, 중3 때 180cm을 찍은 후 키가 180cm에 고정됐다 카더라. 키가 안 자라는 통에 이리 남성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그래도 신진식과 함께 좌우 쌍포로 활약하며 남성고 배구부가 전국 대회를 싹쓸이하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명지대학교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1] 이를 눈여겨 본 강만수 감독의 추천으로 현대자동차서비스에 계약금 7,000만 원을 받고 입단하여 안성재[2] 와 더불어 수비전문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리베로 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되자, 국내 리그는 물론 국제 A매치에서 매년 수비 관련 부문을 휩쓸며 2001년 여오현이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 부동의 국가대표 리베로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당시 소속 팀 현대캐피탈의 성적은 더 이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후인정과 함께 지독한 콩라인 시절을 보냈으며, 송만덕이 감독으로 부임했을 적에는 송만덕 감독에게 반발해 방신봉과 함께 대놓고 선수단을 이탈한 항명 사건을 저질렀다.
김호철 감독이 취임한 뒤 2005-06 시즌과 2006-07 시즌에 우승하고 은퇴한 후, 현대건설의 코치로 선임됐다.
3. 지도자 시절
'''화려했던 현역 시절에 비해 지도자로써의 평판은 코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대단히 나쁘다'''.
3.1. 코치 시절
현대건설의 코치로 재임했을 적에 이렇다 할 리베로를 키워내지 못했다는 박한 평가를 받은 후 경질되었으며, 2012-2013 시즌에 플레잉 코치로 현대캐피탈에 복귀했다. 선발 리베로는 아니고, 세트 중반 로테이션 상 후위에 빠지는 센터와 엮여 교체되는 교체 요원이 그의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을 당했고, 결국 시즌이 끝난 뒤 다시 은퇴하고 우리카드의 코치로 옮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평가는 나빴다.
게다가 명 리베로 출신인 주제에, '''그가 지도했던 리베로들은 모두 망했어요'''! 한 마디로 '''마이너스의 손'''이다.
우선 그가 키웠는데 실패한 선수를 나열해 보자면...[3]
신예지, 오아영[4] , 김연견(현대건설) // 신동광, 정성민, 박종영(현대캐피탈)
이 선수들은 이호 시절 주전 리베로로 기용되었던, 싹수 보이는 유망주들이었는데 결국 망한 선수들이다. 리베로를 잘 키워 보겠다고 데려온 코치가 월드 리베로 출신의 코치다. 이 시기 두 팀의 공통점은 수비가 답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팀들이었단 거다. 그 LIG도 수비는 부용찬이 들어온 후 상당히 좋아졌다. 이마저도 LIG는 세터진이 워낙 노답이었던 탓에 10년이 넘도록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 중 신예지, 오아영은 직전 시즌이자 통합 우승 시즌인 10-11시즌의 1, 2 리베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호의 삽질로 인해 개그만 일삼다가 3라운드에 지명된 체격이 허접한 선수에 밀렸고, 원 포인트 서버-리시버 자리마저 셀카 사기범이자 송명근의 여자사람친구에게 밀리며 결국 오아영은 2011-12시즌 종료 후, 신예지는 2012-13시즌 중 은퇴 공시되었다.
현대캐피탈은 신동광이 먼저 상무에 갔다 왔고, 그가 돌아온 뒤 정성민이 입대했다. 특히 이 5명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리베로인 박종영은 오정록이 불의의 큰 부상으로 은퇴하긴 했지만 그 전에도 백업 리베로로 자주 출장했었던 싹수 보이는 리베로였는데, 실제로 이호 부임 전에는 상당히 잘 메워 줬었으나, 이호가 있으면서 시즌이 지날수록 폭망하였다. 얼마나 박종영이 노답이었으면 그 나이 들어 노쇠한 여오현을 그 시즌 최고액으로 데려왔을까....
우리카드의 코치로 옮긴 후 지도했던 리베로 정민수 역시 데뷔 초와 다르게 2014-2015 시즌에는 상당히 부진했다. 어떻게 했길래 수비 조직의 기본이라는 리베로가 이따구였던 것일까... 게다가 2015 월드리그 때 부용찬 대신 국가대표로 나갔던 정민수는 국가대표팀에서도 망했어요...
3.2. 감독 시절
2015년 4월 23일,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감독을 맡게 되었으며, OK저축은행의 구단 프런트로 일하고 있었던 장영기를 코치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팀에 부임한 후 사고를 저질렀는데, 주전 리베로 김해란을 대전 KGC인삼공사의 주전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맞트레이드한 것. 팀에 변화가 필요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이호의 선수단 장악력 때문인지 크게 논란이 됐다. 김해란이 팀 프랜차이즈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로공사 팬들은 집단멘붕과 분노만 유발했다.
그리고 청주 KOVO컵에서 현대건설에 1-3, 심지어 김해란도 무릎 재활 때문에 안 나온 인삼공사에게 1-3으로 지며 조 예선 2패로 광탈했다. 그리고 작전타임 때 경기 포기 수준의 발언으로 각도드립을 포함해 쿼크 단위로 까였다. 드래프트에서는 정식 선수를 단 한 명만 지명하는 작태로, 또 다시 까임 소스를 제공한 건 덤. 이로 인해 '''"돌호"'''로 까였다.
정규 리그에 들어서는 몰빵으로 욕은 먹지만 더 심한 몰빵 감독의 존재로 덜 먹고 있고, 레즐리 시크라에게 개소리를 안 하는 데다가 현대 시절 팀 선배의 딸인 하혜진에게 철밥통 없이 실력 미달을 보고 김미연을 적극 활용해 김미연을 지난 시즌 문정원처럼 해 주게 만들고, 컵 대회의 작전타임 뻘소리도 고치면서 평판이 조금 나아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2015년 11월 17일,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인해 감독직에서 사임하고 박종익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이미 정규 시즌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로 입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고 2015년 코보컵 때 그가 보여 준 모습을 보았을 때, 나중에 기사에서 언급된 이야기지만 선수단과 심각한 불화로 낙마했다는 게 이번 사태의 숨겨진 진실이다.
선수단이 감독에게 항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자체로도 팀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는 게 사실인데, 박종익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은 후 2연속 셧아웃 연승을 거두는 등 도로공사가 2014-2015 시즌 그 좋았던 모습으로 부활하면서 이호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였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다(...). 결국 도로공사 팬들은 물론, 여자배구 팬들에게는 이성희와 함께 감독도 아닌 금지어로 낙인찍혔다.[5]
[1] 물론 당시는 전문 리베로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다.[2] 한양대학교 92학번 출신으로, 1987년 바레인 세계청소년배구선수권 우승때 한국 청대 대표선수였고, 하종화,마낙길,장재원등과 동기로 같이 현대자동차써비스에 입단해 센터로 활동했었다. 선수 은퇴 후 계열사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의 주무로 이동해 지도자 생활 중.[3]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문서에서 발췌.[4] 前 GS칼텍스, 인삼공사의 배구선수 오현미의 동생이다.[5] 양철호 감독 또한 금지어지만 그나마 감독 중에선 박미희 감독과 함께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자기 팀 팬들에겐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코치 시절 친정 팀에서만 금지어다. 이유는 김수지 보상선수 관련 언론에 대놓고 흥국생명 보상선수가 최악이라고 현금보상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어그로 끌었다는 사유가 금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