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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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도권 전철 1호선 160번. 인천광역시 중구 참외전로 121 (인현동)[1] 소재.
2. 역 정보
경인선의 역으로, 경인선 첫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했다. 즉 한국 철도사의 First 8(1899년 역사상 처음으로 운행한 8개 역)[2] 중 하나. 개통 당시에는 '축현(杻峴)역'이었다.[3] 하지만 일본인들 입장에서 杻[4] 과 峴이라는 한자를 잘 안 쓰다 보니 역명이 어렵다고 역명 공모를 통해 1926년 4월 25일 '상인천역'으로 바꾸었다. 이 탓인지 161번의 "인천역"은 한번도 이름이 바뀐 적이 없는데도, 인천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인천역"을 "하인천역"이라고 부른다.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며 잠시 '축현역'으로 바뀌었다가, 1955년 8월 7일부터 현재의 이름인 동인천역이 되었다.
경인선이 1899년에 최초로 개통되었을 당시 동인천역이 시종착 기능을 수행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 상에 넓게 퍼져 있다. 경인선은 제물포-노량진 구간이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인천항의 당시 이름이 제물포였던 관계로 일제 초기에는 인천역이 제물포역으로 불렸다.
일제시대 부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신포동, 현 동인천역 앞, 싸리재, 배다리)은 상인천이라 불리었으며 이는 1926년에 축현역을 상인천역이라 명명한 이유가 크다. 이에 근처의 학교들이 '''상인천''' 명칭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5] 이후 1956년 역 이름이 바뀌었는데 단순하게도 (?) 인천의 동쪽, 구 인천 중심가의 동쪽에 역이 있다는 이유에서 였다. 당시에는 인천 시가지의 범위가 현재의 중동구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역은 주변 중구 주민들뿐 아니라 미추홀구, 특히 용현동 주민들의 철도 교통 요지였다. 미추홀구 용현동에는 2016년 수인선 2단계 개통 전까지 지하철역이 없었고 어떤 역이든 버스로 20-30분 정도 소요됐는데, 동인천역이 급행 정차역이므로 주로 이용되었다. 수인선 개통 이후에도 동인천역의 수요는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수인선의 배차 간격이 매우 긴 데다가 인천역에서 바로 급행 열차를 이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6]
3. 역사(驛舍/歷史)
1899년 경인선이 개통할 당시에 개설된 축현역은 현재 인천원예농업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경인선의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주변의 부지가 비좁아, 1908년에 선로를 이설하면서 현재 위치로 역사가 이전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서울역에 이은 한국 두 번째 민자역사이다. 이 역사에는 '''인천백화점'''이 들어서 있었는데, 다른 민자역사와는 다르게 '''대기업이 아닌 주변 상인들이 합작하여 만든 민자역사'''이다. 인천백화점은 부평의 동아씨티백화점(현 모다 부평점), 간석동의 희망백화점과 함께 90년대 초중반까지 인천의 3대 백화점 중 하나로 성업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와 1999년 인근에 있었던 화재 사고로 인해 위기를 맞았고, 90년대 후반부터 구월동 도심에 대기업 계열의 하이웨이 백화점(현 NC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치명타를 맞았다.[7] 이에 따라 2001년에 패션 전문 쇼핑몰인 '''엔조이쇼핑몰'''로 이름 및 업종을 변경하여 재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망했다. 그리고 이 건물은 폐건물이 되었다. 원래 롯데마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고 한다. 동인천역 벽보에 민자역사 입주자를 구한다는 내용이 써져 있다. 2014년 12월 다시 오픈한다고 했지만 2016년 6월 기준으로 아직도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 2015년 10월 12일 기준 동인천역 지하상가 부분의 외벽 공사가 완료된듯. 조만간 쇼핑몰 오픈을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다. 2016년 9월 중 지역 면세점 등이 포함된 상가로 재탄생한다는 소식이 있다.[8] 구 인천백화점 공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내부 통로는 일부 노숙인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그리고 점용허가 기간 만료로 원상회복(=철거) 방침이 내려졌으나, # 법적 분쟁이 생겼다. #
어쨌든 이 덕에 1번 출구와 다른 출구가 따로 떨어져 있어, 이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이 동인천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약속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못 만난다면 십중팔구 1번 출구와 다른 출구에서 서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승강장에서 인천역 쪽으로 쭉 가다 보면 지하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그곳으로 가면 2, 3, 4번출구로 나갈 수 있으며, 승강장 가운데에 있는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1번 출구로 나갈 수 있다. 2번 출구는 동인천역 지하상가와 직결되어 있어, 2번 출구로 갈 경우 지하상가를 거쳐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경인급행이 완전 개통되고 나서 급행의 시종착역이 되었다. 급행이 특이하게 종점인 인천역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기서 끝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인천역 수요 자체가 적고, 동인천-인천 사이의 곡선 반경이 커서 속도를 내기가 힘들다. 그리고 동인천역 이후로는 복복선이 복선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인천역이 두단식 승강장이라서 회차 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
동인천-인천 구간의 급행 선로를 지하로 부설하여 지하 인천역을 만들고 수인선과 직결할 계획이 있었고, 송도역까지 급행이 운행될 예정이었다.[9]
2013년 6월 재난위험시설 D등급으로 지정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재난위험시설은 위에 민자역사 백화점 건물이고 일반인은 들어갈 일이 거의 없으니까 안심하자.(4, 5층은 TV 경륜·경정장으로 사용 중이다.) 물론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안심할 수는 없지만.
가끔씩 동인천 급행으로 동인천역에 들어오는 열차가 용산 급행방면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경우도 있다. 사고가 터진게 아니라 지연운행 및 인상선 차량 용량이 확보된 경우가 매우 잦아 본 승강장에 도착할 경우 심각한 지연이 발생할 수 있어 편의상 이렇게 운행한다.[10] 인천방면 승강장으로 건너오자. 열차는 회차하여 그대로 용산으로 간다.[11]
3.1. 축현역? 유현역?
1899년 9월 18일 최초 개통시의 역명의 한자 표기는 杻峴驛 인데, 이 것은 '축현역'이 아니라 '유현역'으로 보인다. 당시 '싸리재'[12] 라는 지역명칭을 한자로 표기하여[13] '싸리 뉴(杻)'와 '고개 현(峴)' 즉 '뉴현'을 두음법칙에 따라 '유현'으로 표기한 것이며 대부분 한자로만 표기되었으나 당시 유일한 한글 전용 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은 1899년 9월16일자에 유일하게 한글로 "화륜거 왕래시간"을 실었으며, 여기에 '인쳔' '유현' '우각동' '부평' '오류동' '로량진'역의 열차 시각을 소개 함으로서 최초 경인선의 운행 시각표와 소요 시간 자료를 남겨 주었다.
1979년 9월 18일 철도청에서 발행한 '한국철도 80년 약사'에서 1926년 4월 25일 '유현역을 상인천역으로 바꿈'이라는 역사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93년 12월 31일 철도청에서 발행한 '한국철도요람집'의 '동인천역'의 연혁에
- 1899. 9.18. 유현(杻峴)보통역으로 영업개시,
- 1926. 4.25. 유현(杻峴)역을 상인천역으로 개칭,
- 1955. 8. 7. 동인천역으로 개칭
물론 '옛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杻'는 '싸리 뉴'라 되어있을 뿐이나 최근 발행된 한자사전에서는 '뉴자이나 싸리 축'으로도 볼 수 있음을 표기하고 있다. 물론 일부 기록 예를 들면 [인천항구도(仁川港口圖)에서는 '杻峴 停車場' 옆에 '츅현 뎡거장'이라는 한글 표기]가 있는데 어디서 언제 어떻게 그려진 지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면 경인철도 개통 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자로만 표기되던 '杻峴'이 어느샌가 '축현'이라 읽혀 지면서, 아예 역명과 지명이 바뀌어 버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천과 축현이 합쳐서서 '인현'으로 바뀌었기에 축현이란 지명조차 과거의 이야기가 되버렸는데, 축현이란 이름은 '축현초등학교'등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4. 일평균 이용객
동인천역을 이용하는 도시철도 일일 승객 수이다. 아래 표는 승차객 + 하차객의 총합이다.
- 1990년대까지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덕분에 유동 인구와 이용객이 제법 많은 역에 속했지만,[14] 인천의 중심지 이동과 상권의 노후화와 쇠락으로 인해 이용객이 감소했으며, 특히 인천광역시가 1호선이 지나는 지역보다 관교동ㆍ구월동과 송도신도시에 관심을 많이 보이기 때문에, 다른 광역시급 도시들에 비해, 상권 붕괴에 대한 타격을 제일 심하게 당했으며, 도심 공동화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과거에 비해 영광을 크게 잃어버린 대표적인 역이다. 2020년 이용객은 하루 평균 23,189명으로 전성기였던 1990년대 초반 이전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 다만 수십 년간 꾸준히 이용객이 줄어들기만 한 것은 아니고. 특이하게도 경인선의 다른 역들이 2000년대 내내 꾸준한 이용객 감소로 골치를 앓았던 것과는 달리, 동인천역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꾸준히 이용객이 증가하는 패턴을 보였다. 동인천역 상권이 침체일로를 겪은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결과이다. 기존에는 전통적인 상업 중심지로서 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었으나, 신포국제시장의 닭강정, 화평동의 대야냉면 등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관광객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또한, 슬럼화 문제로 골칫거리였던 북부역 역세권에 광장을 조성하면서 접근성을 높인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 2000년대 중반 이후 동인천역 이용객 수가 반등하면서 2010년에 와서는 하루 4만 명을 회복했다. 그러나 2011년을 기점으로 다시 성장세가 꺾여 감소세로 전환되었는데, 2014년에 잠깐 소폭 반등한 것을 제외하면 이용객이 꾸준히 줄고 있다. 2015년에는 6년 만에 4만 명대가 붕괴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수인선이 인천역까지 연장 개통함에 따라 한꺼번에 2천 명이 줄었고, 그다음 해에도 1,500여 명이 더 줄어들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인천 도시철도 2호선 개통과 동시에 버스 개편으로 미추홀구의 버스들은 대부분이 주안역으로 가서 여기 승하차인원이 조금씩 감소했고, 제물포역이 급행 정차역이 되면서 승객이 일부 빠져나갔다.
5. 승강장
6. 열차운행 시각표
6.1. 1호선 특급 열차
- 2019년 4월 27일 기준 (평일)
- 2019년 4월 27일 기준 (주말, 공휴일)
7. 역 주변 정보
경인선 철로를 기준으로 중구와 동구로 행정구역이 구분돼 있기 때문에 나가는 출구 방향에 따라서 접근하는 자치구가 다르다. 남광장 쪽으로 나가면 중구 동인천동, 북광장 쪽으로 나가면 동구 송현동이다. 다만 역무실은 중구 주소지에 있기 때문에 역의 주소는 중구로 표기한다.[15]
구한말 이래 1990년대 중반까지 한 세기를 풍미한 도심. 이 때문에 역 주변에서 적산가옥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인근에는 구시가지가 있으며, 역 건물 건너편의 '''대한서림'''[16][17] 이 명실상부 동인천 상권의 랜드마크인지라 여기를 약속 장소로 잡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현지 학생들이나 이 지역에서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대한서림 앞'을 약속장소로 잡는다. 덕분에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이 많다.
인천의 구도심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동네인 만큼 이 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는 근대 문화유산 내지는 문화유산 급으로 꼽을 만한 장소들이 상당히 많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18] , 애관극장[19] , 미림극장[20] , 답동성당[21] , 내리교회[22] 등이 있다.
차라리 인천역에서 가는 게 약간 더 빠르긴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도 근처에 있다. 자유공원으로 가기 위한 길이 오르막길이니, 운동 삼아 여기서 걸어 올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한서림 오른쪽 골목으로 쭉 올라가면 된다. 이 길을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홍예문 삼거리에 오래된 배팅장이 하나 있는데, 투구 자세로 타격을 하는 괴랄한 모습의 박찬호 그림이 야구팬들 사이에 명물로 알려져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토박이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 그림의 탄생 비화다. 당시 동인천 인근에는 애관극장, 미림극장 등 오래된 극장들이 있어 옛날식 영화 패널을 그리는 화백이 많았다. 그 중 한 화백이 배팅장 패널을 의뢰받았는데, 당시 인기 절정이던 박찬호의 투구 자세를 그렸으나 배팅장 사장님은 타자 사진을 원했다고 한다. 다시 그리기 귀찮아진 노(老) 화백이 어깨 너머로 방망이만 대충 그려서 납품한 것이 저 그림의 기원이라는 설.[23]
연안부두[24] 가 근처에 있어서 중국인이나 조선족,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계열 외국인들이 많고 배를 타러 가는 사람들[25] 도 이 역 주변을 많이 들르는 편이다.[26] 2019년까지는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이 근방에 있어서 이 곳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많았지만 연안부두 1터미널과 신포동 2터미널을 합친 새 국제여객터미널이 2020년 송도에 새로 생기면서 옛 이야기가 됐다.[27]
동인천역 상권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주안역, 동암역, 부평역과 함께 인천의 중심지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번화한 곳이었으나 1999년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로 인한 마이너스 이미지와 인천백화점 터의 연이은 부도, 인천광역시의 구월동과 관교동 중시로 인해서, 지금은 동인천역 상권이 주안역, 동암역과 함께 완전히 몰락한 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다. 그에 따라 학군도 청라, 연수, 송도, 영종, 논현 등 신도시로 옮겨가고 있고 이제는 중앙시장 쪽이 우범지역이 될 위험성 때문에 전기 공급을 끊는다는 카더라까지 나오고 있다.[28]
인천에서 가장 구제옷이 스타일리쉬하고 구하기 쉽고, 어느정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맞출 수 있는 곳이 동인천역 주변 거리의 특징. '''인천 구제옷의 산실'''이라고 부르면 딱 맞다. 로데오 거리는 신포시장 뒤 쪽에 위치해 있으며, 가게 점포 수는 부평 로데오나 구월동 로데오보다 많지만 사람 수는 10분의 1 수준.
주변 명물은 동인천역 뒷거리의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과 동인천 앞 신포 닭강정이다. 화평동 냉면은 유일한 북쪽 출구인 4번 출구에 있다. 정확히는 북동쪽으로 나 있으나, 경인선의 역들을 방향으로 구별할 때는 북쪽과 남쪽으로만 구분하는 관습이 있다. 유일하게 남북으로 뻗어있는 동암역도 서쪽을 북부역, 동쪽을 남부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철에서 내려서 승강장 서쪽 끝 부분(인천행 기준 1-1)으로 가서 카드 찍고 오른편의 4번 출구로 나오면 2012년에 공사를 끝낸 북광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돌아서 쭉 가다가 길 하나를 건너면 그곳이 냉면 골목이다. 맛은 기대치 말자. 어디까지나 양이 유명할 뿐.
반대로 4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양키시장(중앙시장 or 송현자유시장)과 송현동 순대거리가 있는데 음식들은 평범한 수준. 하지만 가격은 저렴하다. 북광장 옆 중앙시장은[29] 예전에 비해 상당히 많이 쇠락해졌다. 유동인구가 줄어든데다 상점들도 운영하는 곳보다 운영하지 않는 곳이 더 많을 정도다. 특히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도 햇볕조차 안 들어오는 어두운 곳이기 때문에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래도 양키시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꽤 레어한 외국 물건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30] 지금은 한복, 이불 등을 파는 혼수거리로 바뀌었다. 본래 배다리 쪽 입구에 모여 있던 한복거리가 확장한 셈.
신포 닭강정은 신포국제시장에서 팔고는 있는데 말이 근처지 좀 걸어야 한다. 어차피 기름에 튀긴 닭고기인데 소화도 할 겸 걸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어차피 대부분 전철 타고 왔을 테니 힘들면 버스를 타고 가도 좋다. 한 정거장 정도니까. 신포 닭강정의 가격은 2018년 기준으로 중짜리가 13000원, 대짜리가 17000원으로 되어 있다.
인천에서 술값이 가장 싸다고 할 수 있는 동인천 삼치골목도 있다. 앞서 설명한 대한서림 오른쪽 길로 올라가다 보면 청소년 문화회관을 지나서 오른쪽 골목이 삼치골목이다.(대한서림에서 약 500m 정도 거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치구이의 가격은 3000원이었고, 4-5cm 두께의 삼치를 4-5덩이를 주는 등 인천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술값이 제일 싼 편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지금도 오르긴 했지만 저렴한 건 마찬가지.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막걸리 1천 원에 파는 축제 같은 걸 한다. 잘 알아보고 가면 정말 저렴하게 술을 먹을 수 있다.
인현동에는 '''전기구이 통닭'''과 '''삼계탕'''이 매우 유명하다. 지금도 그곳에서 유년생활을 보낸 40대 이상의 어른들은 옛 맛을 기억하며 즐겨 찾으시며 삼복 때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삼계탕을 시키면 나오는 인삼주가 별미이다.
동인천역 남쪽 앞 광장은 오래 전부터 인천시민들이 모이는 장소로 자주 활용돼왔다. 그래서 대통령선거 등과 같은 전국 단위 대형 선거에서는 대중 유세 장소로 활용된 적이 많다.[31]
4번 출구 쪽은 예전엔 시장 골목 안이라서 다소 음침한 분위기였는데, 2012년 가을 시장을 한 블록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새로 광장을 만들었다. 2겹의 로터리처럼 만들어서 바깥쪽(역 출구에서 가까운 쪽)엔 버스 정류장, 안쪽(역 출구에서 먼 쪽)에는 택시 정류장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306번 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 및 을왕리해수욕장 방면으로 갈 수도 있고, 그 외 청라, 가좌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십정동 방면의 306번 버스나 청라, 가좌동 쪽에서 오는 버스는 이 북광장에 들어오질 않고, 남부역의 동인천역사거리 쪽으로 가니 참고할 것.
북광장이 생긴 이후 이 광장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린다. 동구청에서 주최하는 지역 축제인 '화도진 축제'의 무대공연이 이곳에서 열리며 매달 토요일 하루를 골라서 진행하는 나눔장터도 이곳에서 열린다. 특히 북광장에 설치된 초대형 LED 스크린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경기 단체 응원을 진행하는가 하면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가끔 생중계하기도 한다. 다만 이 북광장의 가장 큰 문제는 노숙자들이다.
2015년 겨울부터는 북광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는데 구경하는 사람도 많고 동인천역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겼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던 노숙자들이 사라져서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괜찮은 편. 2016년 2월 말에 철거하고 다시 광장으로 복구했다. 곧 겨울이 끝나기도 하고 3.1절 행사를 위해 철거한 듯. 그리고 2016년 11월, 이번엔 '화도진 스케이트장[32] '이라는 이름으로 12월 9일 개장한다고 한다.[33] 이번에는 스케이트장 뿐만 아니라 썰매장[34] 도 같이 운영한다고 한다. 광장 한쪽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도 설치한다.
그러나 2017년 말 동구 의회가 구도심 공동화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일회성 이벤트에 예산을 쏟아붓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고 결국 2018년 동구 예산안에서 스케이트장 설치·운영비가 전액 삭감돼 2018년 겨울부터는 스케이트장이 운영되지 않고 있다. 다만 광장 한가운데에 크리스마스 트리는 설치되고 있다.
신포역에서 동인천역으로 이어지는 신포공공지하보도 사업은 2020년 정부의 국비와 인천광역시청의 시비를 예산으로 받아놓고도 단 1원도 집행하지 않았다. 기사
7.1. 관련 문서
8. 기타
- 종점의 기적이 발생하기도 한다.
- 서문다미의 만화 '너의 시선 끝에 내가 있다'는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동인천행 급행열차가 배차 간격을 맞추기 위해 가끔 상행 선로에 정차한다.
- 제물포역 인근에 '제물포'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인천역 인근에도 동인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가 없다. 동인천중학교는 인천시청역 부근인 남동구 구월동에 있고 동인천고등학교는 남동구 만수동에 있다.[35] 아울러 동인천여자중학교는 서구 가좌동에 있다.
[1] 인현동 1-613번지[2] 제물포역(현재의 인천역), 축현역(현재의 동인천역), 우각동역(없어진 역), 부평역, 소사역(현재의 부천역), 오류동역, 영등포역, 노량진역. 다만 우각동역이 개통 후 10년도 안 되어 일찍 없어져서 First 7로 불리기도 한다.[3] 이 지역 지명을 한자로 풀면 싸리나무 축, 고개 현 자를 썼다. 순우리말로 고치면 싸리재가 되는데 이 지역에 오래된 가게 상호명으로 싸리재라는 이름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연수구 송도역 근처에 있는 축현초등학교가 과거에는 이 일대에 있었다. 이 부지에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4] 杻의 훈음은 '감탕나무 뉴, 수갑 추, 싸리나무 축이다. 윈도우에서는 '뉴'로 놓아야만 변환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뉴욕을 표기할 때 이 한자를 종종 사용했다.[5] 대표적인 것이 배다리에 있던 인천고등학교의 병설 상인천 중학교.[6] 동인천에서 내려서 그냥 옆에서 타면 되지만, 동인천-인천 사이에서 차가 기어간다. 잘못하면 놓친다.[7] 사실은 그 이전부터 구월동이 동인천을 계승할것임이 서서히 예고, 진행이 되고 있었다. '''기사'''[8] 「면세점 쇼핑몰로 새단장 중.. 기대되는 동인천역 민자역사의 '변신'」, 2016-04-15, White Paper[9] 이게 실현됐다면 1호선을 이용하는 인하대 통학생들이 주안역에서 511을 안 타고 전철 타고 쭉 갔을 가능성이 높다.[10] 이런 경우를 "상선착발"이라고 하는데 시간표가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로컬관제에서 융통성있게 상선착발을 지시해주는 것이다. 보통 종착역에서 반복을 해야 하는데 이미 많이 지연되어 온 경우, 또는 인상선에 차량이 단 한대도 없어 여유공간이 많을 때 이런 상선착발을 많이 시켜주는 편이다. 용산역에서도 이런 식으로 착발을 시켜주는 경우가 있다.[11] 용산역에서도 같은 경우가 있다.[12] 또는 '싸릿재' 또는 '싸리나무 고개', 또는 삼리재(3리재)[13] 영문 역명은 싸리재라는 표현을 그대로 썼다.[14] 개통한 지 5년 정도 지난 1979년에 벌써 6만명선을 찍어누른 6만 5천여명이라는 최고 일평균 이용객을 기록했고, 이후 1980년, 1981년, 1984년, 1990년부터 1993년까지 6만명선을 기록하였으나 1994년 이후부터 이용객이 격감, 1999년에 이르러서는 3만 5천여명을 기록하고 말았다.[15] 바로 옆의 도원역도 비슷하다. 역의 부지가 동구, 중구, 미추홀구와 미묘하게 겹치는데 역무실은 동구에 있다.[16] 배다리 헌책방 골목과 더불어 인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 토종 서점. 1953년 문을 연 뒤 현재까지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디지털 문화로의 시대 변화 탓에 책을 사서 읽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2012년 8월 도서 판매 공간을 축소하는 리모델링 공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경영난은 갈수록 심화됐고 결국 2015년 초 폐업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러다 폐업 추진 소식이 경인일보를 통해 전해졌고 이후 폐업을 만류하는 지역 여론이 거세져 결국 폐업 의사를 접었다. 현재 대한서림 빌딩 1층과 2층엔 빵집 뚜레쥬르가 들어섰고 대한서림은 3~4층만 사용하고 있다. 5층과 6층은 치과가 입주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천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인천의 책방 하면 대한서림부터 떠올린다. 특히 구시가지 쪽에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17] 대한서림의 바로 옆에도 '동인서관'이라는 꽤 작지 않은 서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곳 역시 책을 덜 사는 시대 변화 때문에 가게 크기를 좁혀서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앞으로 옮겼다. 주변에 제물포고, 인일여고, 인성여고 등 오래 된 학교들이 건재하기 때문에 참고서 구매 수요는 여전히 많다.[18] 도원역과 동인천역 사이 한가운데에 있다. 동인천역 4번출구에서 나와서 한복상가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오면 헌책방 거리를 만날 수 있다. tvN 드라마 도깨비의 일부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고 영화 극한직업의 주무대 '수원왕갈비통닭' 자리도 이 골목에 있다. 무법변호사와 인랑 촬영지로도 쓰였다.[19] 구한말부터 같은 자리에서 운영되고 있는 유서 깊은 토종 극장[20] 인천 최후의 일반극장. 근처에 있던 다른 극장은 죄다 문을 닫았고, 인천시 통틀어 멀티플렉스 체인이 아닌 극장은 애관극장과 고전영화 상영관으로 바뀐 미림극장, 예술영화 상영관인 '영화공간 주안' 뿐[21] 국가 사적으로도 지정된 인천 지역 천주교의 본산. 인천교구청 청사가 이 성당 뒤에 있었으나 교구청은 송도국제도시로 떠나간 박문여자중-고교의 부지로 2017년 2월에 이전했다.[22]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대한민국 최초의 감리회 교회. 이 때문에 '한국의 어머니 교회'라는 별칭도 있다.[23] 자유공원 박찬호[24] 동인천역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소요된다.[25] 주로 타지인.[26] 제물포역 역시 마찬가지.[27] 다만 백령도나 덕적도, 연평도, 자월도 등지로 가는 경우 연안부두를 계속 이용해야 하기에 아직 연안부두 이용수요는 있는 편이다.[28] 그러나 주변의 맛집이나 골목길 등이 블로거 등을 통해 동인천 상권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아주 줄지는 않았다.[29] 북광장 오른쪽 편에 민트색으로 건물 전체가 도색된 큰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이 이 시장의 핵심 건물이었다. 건물 내부에는 인근 미림극장과 함께 한국영화 개봉관으로 명성을 떨친 오성극장이 있었으나 동인천 상권의 쇠락에 밀려 결국 2003년 폐관했다.[30] 2000년대 초까지는 유명 의류 브랜드의 짝퉁 상품이나 구제, 보세 의류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인천지역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 모습도 사라졌다.[31] 유동인구의 수로만 보면 북광장보다 남광장 쪽 유동인구가 훨씬 많다. 남광장 앞은 상업지역이고 북광장 앞쪽은 주거지역이기 때문.[32] 동구 스케이트장에서 '화도진 스케이트장'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동구의 새로 바뀔 예정인 명칭인 '화도진구'를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리 담당업체는 ㈜메이저스포츠산업[33] 2016년 11월 16일 현재 공사 중이다.[34] 얼음썰매로 추정[35] 다만 동인천고는 원래 도화동 선인재단 근처에 학교가 있었다가 1988년 현재의 만수동으로 이전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