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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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image]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1]
'''이름'''
전현태(全峴兌 / Hyeon-tae Jeon)
'''생년월일'''
1986년 7월 9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합천군
'''본관'''
완산 전씨
'''출신학교'''
서울이수초-대치중-부산고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5년 한화 이글스 2차 12순위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5~2015.7.4)
KIA 타이거즈 (2015.7.11~2016.7.18)
'''응원가'''
한화 시절 : 트랜스픽션 - Get Show[2]
'''한화 이글스 등번호 6번'''
임수민 (1999~2004)[3]

'''전현태(2005~2007)'''

송광민(2008)
'''한화 이글스 등번호 28번'''
김백만 (2001~2009)

'''전현태(2010~2015)'''

양성우(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95번'''
신창호 (2012~2014)

'''전현태(2015)'''

고영득(2017~)
'''KIA 타이거즈 등번호 030번'''
-

'''전현태(2016)'''

나용기(2019)
1. 소개
2. 프로 시절
2.1. 입단 후 2010 시즌까지
2.2. 2011 시즌
2.3. 2012 시즌
2.4. 2013 시즌
2.5. 2014 시즌
2.6. 2015 시즌
2.7. 2016 시즌
3. 기타
4. 연도별 성적


1. 소개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선수.
별명은 아사다 마오를 닮았다고 해서 전사다 마오, 전마오, 또는 발음 나는대로 해서 저년태(…)도 있다. 또 '''전땅크'''도 있는데 이유는 아래에 서술. 발이빠른 선수였다.

2. 프로 시절



2.1. 입단 후 2010 시즌까지


부산고를 졸업[4]하고 2005년 한화 2차 2라운드 12순위에 입단했다.
김인식 감독 하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본 건지 일찌감치 경찰청에 들어가 2009년에 제대, 한화에서는 보기 드문 군필 유망주이다. 최진행과 더불어 상당히 머리를 잘 굴린 케이스. 전현태보다 나이도 더 많은데 아직 미필이었던 김태완, 송광민 등은 아 망했어요~!
김강, 이양기 등과 함께 근 5년간의 한화 2군의 실태를 잘 보여주는 선수. 당시 전현태와 포지션 경쟁을 벌이던 선수를 보면 2008년에 입단한 내야수 오선진이 있는데, 툴 측면에서는 사실 오선진은 전현태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오선진의 프로 '''통산''' 홈런 개수인 2개를 전현태는 사직에서 '''이틀동안''' 칠 수 있는 장타력이 있으며 오선진도 발이 평균이상은 되고 센스가 좋은 편에 속하지만 전현태의 그것에는 못 따라간다.(2010년 시즌 도루성공 25 도루실패 8. 오선진은 프로 '''통산''' 개수가 12개.)
그런데 우습게도 더 좋은 하드웨어에 비해 프로 6년차를 맞이했고 경찰청에서 군 복무까지 했었던 전현태가 프로 3년차를 맡이했던 오선진과 비슷한 타격능력을 보였으며[5] 수비능력은 되려 오선진 이하였다.
2군에서 꾸준히 기회를 주면서 키웠던 김강이나 2군 4번타자였던 이양기, 그리고 2군 유망주중에 손꼽히는 유망주였던 최진행 또한 수비능력은 1군에서 수비능력이 굉장히 떨어져서 애먹고 있거나 2군으로 다시 내려갔으며 이 세명은 2군 구장이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나오는 한계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군에서 키운 오선진도 헤맨 기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른 주전 야수들에 비해 훨씬 빠르게 자리잡고 수비를 안정화시켰다. 김강이야 그렇다치고 전현태의 절반, 이양기와는 7~8년 가까이 차이나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본인이 노력 부족도 있을 지 몰라도 어쨋든 한화 2군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케이스 중 하나.
어쨋든 그래도 한화의 야수 자원이 '''소멸'''한 덕분에 백업으로 뛰다가 3루에 잠깐 자리를 잡았던 적도 있었는데, '''잡자마자 괴멸적인 수비로 인해 다시 백업으로 퇴장'''. 2010년 2군의 주전 3루수였다가 1군에 땜방을 하러 왔던 김회성이 2군으로 다시 쫓겨나고 중간에 병역관리 부재로 훈련소에 끌려가면서 시즌을 마감한 송광민을 대신해 손지환이 땜빵을 맡으면서 그 백업으로 들어갔는데, 오선진-전현태 둘은... 한마디로 말해서 '''악몽같은''' 3루수들이었다.(...)
어쨌든 그래도 끝내기 내야 안타도 치고 하면서 백업으로 자리잡는 데 성공하였다. 2군의 유망주였던 한윤섭, 김강석 등이 군대를 가면서 군제대하는 오선진백승룡 정도밖에 자리를 뺏을 선수가 없었는데, 오선진은 시즌 초반 부상을 당하고 2011년 시즌 들어서 본 백승룡은... '''더''' 절망스러운 수준이었다.(...)

2.2. 2011 시즌


2011년 시범경기에서 엄청난 타율을 선보이며 한상훈과의 포지션 경쟁이 예상하였으나….
시범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2루 수비에서 계속 정줄 놓고, 떨어지는 변화구의 풍기질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을 심어줬다. 강동우의 노쇠화도 심해 전현태가 1번 타자 역할을 충실히 해주어야 되는데 수비가 안되니….
결국 2011년 시즌에는 지명타자로 몇 번 나오다가 백업으로 전락. 가끔가다 내야수비를 봤지만 여전히 끔찍한 수준이었고, 결국 4월 11일자로 2군으로 내려갔다.
5월 6일자로 1군에 복귀했으나, 되도 않는 타격과 수비로 대주자 전용으로만 뛰고 있다. 5월 12일자 잠실 LG전에서 2:1로 뒤지고 있던 9회 2사 2루에 대주자로 들어간 상황, 대타 이양기의 좌전 안타로 홈으로 쇄도, 동점주자가 될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나 조인성의 무릎에 스스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하며 헤딩,(...) 홈에서 아웃 되고, 본인 이마는 열 세 바늘을 꿰매야 하는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image]
하지만 이 때 사건으로 한화 이글스는 예전과는 다른 심기 일전을 보여 주고, 그 유명한 야왕의 "예끼 니미 XX~!" 명언도 이날 나오면서 팀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고 본인도 분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3루에서 이여상과 경쟁 체제를 구축하던 오선진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2군에서 올라온 3루 자원 김회성이 스스로 기회를 걷어참으로서 3루 경쟁 체제에 가세했다. 3루 수비는 여전히 형편없지만, 최소한 전보다는 많이 나아져서 김회성보단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으며, 타격면에서도 롯데와의 원정 3연전에서 팀이 패하는 가운데 2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존심을 지켰다. 대전구장이 아니라 '''사직에서 친 거다'''. . 승부랑 상관없는 경기에서 뜬금포 2방으로 패승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내야 수비가 좆망이긴 하나, 어쨋든 포기한 경기 내야 전 포지션 땜방용 내야수로 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
7월 19일 KIA전에서 역전승의 발판이 되는 2타점 적시타를 날려 1군에 살아남는 타격을 다시 했다.
이후의 경기에선 주로 대주자(...)로 출장했으나 여러모로 신통치 않았다. 작년의 주루센스는 어따 팔아먹었는지 정줄놓 주루 플레이로 견제사를 당하는 등 한화팬들 뒷목을 부여잡게 해버렸다.
전체적으로 보면 2011 시즌 한대화 감독이 크게 기대했지만 기대를 실망으로 되돌려 주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2010년에 비해 안 좋던 수비도 퇴보, 유일한 장점이었던 주루 플레이도 퇴보(...).
결국 2011 시즌 종료 후 마무리 훈련에서 오선진과 함께 야왕님의 경☆축 지옥훈련이 당첨되었다.

2.3. 2012 시즌


2013 시즌이 끝나도록 항목이 없었는데 이유는 달랑 2경기만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에 나온 2경기 중 1경기가 바로 '''이 경기'''로 8회에 병살 코스에서 류현진과 한화팬 모두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린 송구를 한 2루수가 바로 전현태다.

2.4. 2013 시즌


1년 넘게 안 나와서 이대로 끝나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으나 시즌 엔트리확장 때 올라왔다. 2루, 3루, 유격이 지옥수비라는 걸 이미 알기에 포지션을 어디다 박았는지(...)에 팬들의 관심이 쏠렸는데. 무려 '''우익수''' 그리고 '''1루수'''에 박아버렸다. 물론 수비능력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타격능력 중 파워만은 여전히 기대되는 편. 홈런을 1개 치긴 했다.

2.5. 2014 시즌


올해도 2군에 있다가 6월 21일 이학준을 대신하여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이후 내려갔다가 손바닥 부상을 입은 송광민을 대신해 7월 10일에 다시 등록되었다. 하지만 별로 좋지 못했고, 다음 날 다시 말소되었다. 대신 신인 내야수인 이창열이 등록되었다.

2.6. 2015 시즌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2015년 7월 4일웨이버 공시되었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갓 군 복무를 마친 23세 육성선수인 좌완 투수 문재현이다. 사실상 방출 수순. 그리고 kt wiz조범현 감독이 관심을 가진 듯하다. 기사
그렇게 2015 시즌 한화에서 나이저 모건, 추승우, 정민혁에 이은 4번째 웨이버 공시 선수가 되었다.
2015년 7월 11일, 웨이버 공시 마지막날 KIA 타이거즈가 한화 측에 300만 원을 지급한 뒤 데려갔다.
그런데 전두환 前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엄청난 광주를 연고지로 하는 팀에서 전두환의 혈육을 영입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좀 들긴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연좌제를 적용할 순 없다는 의견도 있으니 비난은 걸러서 듣자.
그러나 웨이버 공시가 지난 뒤에도 1군 콜업은 없었고, KBO 퓨처스리그가 종료된 후에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시즌 종료를 2경기를 남겨 둔 10월 5일 양현종윤석민이 말소된 자리에 황수현과 함께 1군에 등록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KIA의 포스트 시즌 탈락이 이미 확정된 시점이니...
콜업된 그 날 삼성전에 팀이 6: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하며 2015년 1군 타석에 처음 섰다. 하지만 임창용에게 삼진당하며 경기는 끝.
시즌 후 마무리 캠프의 최고참으로써 후배 선수들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2.7. 2016 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4월 12일 상무 경기를 끝으로 단 한 차례도 2군 출전 기록이 없다가, 7월 중순에 조용히 구단 홈페이지의 선수 명단에서 사라졌다.
아프리카 소대수 방송에 나온 나유리 기자의 말에 의하면, 팀 상황상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해 신창호, 최현정과 함께 방출되면서 결국 은퇴를 하게 되고, 유소년 야구단 미라클 이글스의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청주고 코치로 옮겼다.

3. 기타


전두환 前 대통령과는 명절에 세배드리는 사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야갤에서는 전현태에게 장군의 손자, 땅크드립을 쳤다.[6]
퓨처스리그에서 영 좋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7년도 2군에서 주전으로 활동했을 때 삼진 90개를 당하며 남부리그 한시즌 최다 피삼진 갯수를 경신했으며, 2009년도에 경찰청에서 복무했을 때 91개의 삼진을 당하며 북부리그 한시즌 최다 피삼진 갯수를 경신했다.
의외로 볼넷을 골라내는 능력은 있는지 안타를 그만큼 못치는 것인지 몰라도 통산 안타보다 볼넷이 더 많고, 출루율과 타율의 갭도 1할이 넘는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한화 이글스
21
27
.148
4
1
0
0
0
3
0
8
.185
.343
2006
1군 기록 없음
2007
2
3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08
경찰청에서 복무
2009
2010
100
156
.205
32
3
0
5
21
34
25
26
.321
.317
2011
78
69
.188
13
1
0
2
11
26
7
15
.290
.329
2012
2
4
.000
0
0
0
0
0
1
1
1
.000
.200
2013
21
33
.152
5
1
1
1
3
4
0
6
.333
.282
2014
10
10
.100
1
0
0
0
0
2
0
0
.100
.10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5
한화 / KIA[7]
2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color=#373a3c> '''KBO 통산(9시즌)'''
236
304
.181
55
6
1
8
35
70
33
56
.286
.307
[1] 이 사진은 전현태 선수의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온 사진이다.[2] 전현태! 이글스의 전현태! 안타 날려라~ 저 하늘로 지금! x3 응원가가 좋은 편이라 못하면 응원가만 좋다고 까인다(...) 임재철의 LG 시절 응원가와 원곡이 같다. 전현태가 팀을 떠난 후 이 응원가는 이성열 응원가로 사용된다.[3] 임과장님은 2005 시즌에 10번을 달았으며, 2006년은 다른 등번호를 달았다.[4] 서울고를 다니다가 전학을 갔다.[5] 둘다 멘도사 라인을 약간 밑도는 타율. 단 홈런개수는 오선진은 한개도 때려내지 못하면서 장타력 차이를 보였다.[6] 해당 기사에 “(전)현태가 '''20년만 빨리 태어났더라면 철통 경호'''를 받으며 야구 했을지도 모르지.” 라는 한화 관계자의 인터뷰가 있는것을 보면, 청와대의 관리 대상인 8촌 이내의 친척일 가능성이 높다. 전두환도 고향이 경남 합천이고 전현태도 고향이 경남 합천인 걸 보면 8촌 이내의 친척이 거의 확실할 것이다. 청와대 친인척 관리기준에 따르면 친가는 8촌까지다.[7] 시즌 중 KIA 타이거즈로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