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민

 

1. 한국의 야구인
1.1. 소개
1.2. 선수 시절
1.3. 지도자 시절
1.4. 역대 기록
2. 한국의 아나운서
2.1. 진행
2.2. 여담


1. 한국의 야구인


임수민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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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9

올림픽 야구종목 메달
2000



한화 이글스 등번호 32번
최덕현(1997)

임수민(1998)

신경현(1999~2001)
한화 이글스 등번호 6번
오중석

임수민(1999)

황우구(2000~2001)
황우구(2000~2001)

임수민(2002~2004)

전현태(2005~2006)
한화 이글스 등번호 10번
임재철(2004)

임수민(2005~2006)

김태완(2007~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93번
임경훈(2012)

임수민(2013)

김민수(2014)
한화 이글스 등번호 75번
이대진(2013)

임수민(2014~2017)

이희근(2018)


[image]
임수민(林秀敏 / Soo-Min Lim)
생년월일
1973년 5월 31일
출신지
경기도 동두천시
학력
신답초 - 동대문중 - 동대문상고 - 성균관대[1]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2차 11라운드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6~2006)
지도자
북일고등학교 코치 (2011~2012)
한화 이글스 3군 수비·작전코치 (2013)
한화 이글스 2군 수비·작전코치 (2014)
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15)
한화 이글스 3군 수비코치 (2015~2016)
한화 이글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7)
한화 이글스 2군 주루코치 (2017)
상무 피닉스 야구단 수비코치 (2018)
영문고등학교 코치 (2019)
한일장신대학교 코치 (2020~)

1.1. 소개


한화 이글스 소속의 2루수. 前 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2루수(!). 별명은 임과장.

1.2. 선수 시절


동대문상고 (現 청원고) 시절만 해도 무명의 포수였지만, 성균관대 한문학과[2](1992학번) 진학 이후 한양대 차명주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공갈포 포텐셜이 폭발하고, 2루수로 전업에 성공해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2차지명된다.
그리고 데뷔 첫 해부터 주전 2루수 자리를 접수해 송지만, 이영우, 홍원기 등과 함께 한화 신인 4인방으로 불리며 한화이글스의 세대교체에 앞장섰다. 하지만 기대치만큼 활약하진 못하고 3년차까진 미미한 활약을 보이다가[3], 1999년 타율 .274 16개의 홈런으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99시즌 종료 후 군복무를 위해 잠시 팀을 떠났고, 2002시즌을 앞두고 복귀하여 2004년까지 세시즌을 더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 군복무(상무) 때는 시드니 올림픽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타격에서 보여지는 기록은 나쁘지 않았지만 극단적인 풀히터이자 배드볼히터였기 때문에 무수한 득점권 찬스를 무산시켰다. '임과장존'[4]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였다.
하지만 2루수로서는 그닥 나쁘지 않은 공격력을 보여주었는데[5] 문제는 수비였으니... 군복무 후 몸이 더 불어버려 수비범위가 좁아지면서 여러차례 한화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입대 전에도 수준급 수비력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아쉽진 않게 해주던 선수였는데, 복귀 후에는 다리가 느리고 순발력이 떨어져 병살타성 타구를 야수선택으로 만들어 주는 등 2루수로서의 커리어가 거의 끝난 모습을 보였다.
유승안 감독은 코치시절부터 보살펴 온 임수민을 꾸준히 주전으로 기용했지만, 2005년 부임한 김인식 감독은 임수민의 역할을 대타로만 한정짓고 수비로는 거의 기용하지 않았다. 백업으로 밀린 임수민은 타율은 낮았지만 중요한 타점을 여러번 뽑아주며 팀의 극적인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그리고, 한화의 최고 절정기로 달아오르던 2006년엔 그 힘이 다했는지 13경기 출장에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바로 은퇴하게 되었다.
[image]
참고로 강상수진필중과 더불어 초창기 야갤의 인기스타였다. 운동선수답지 않은 회사 과장님같은 인상이 매력포인트.
통산성적이나 지표 등을 보면 2루수로써는 영 그런 실력을 보여주었음에도 한화 2루수 레전드 취급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빙그레 시절부터 내려온 상당히 모자란 센터라인 문제에서 기인하는데, 한화의 2루수 계보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그나마 임수민이 이제까지 한화에서 그나마 2루수다운 활약(?)을 했으니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함정...[6] 한화 이글스 문서의 2-4번 문단 참조바람. 최근에는 정근우에 밀려서 이러한 일은 현재로서는 많이 사라졌다.

1.3. 지도자 시절


2011년부터 북일고등학교[7] 코치로 지도자생활을 시작[8]했으며, 2013년 한화 이글스의 3군 수비·작전코치로 임명되었다. 2014년에는 2군 수비·작전코치로 영전했으며, 2014 시즌 후 대부분의 코치들이 갈린 상황에서도 유임되면서 2015년에는 1군 수비·작전코치(!)가 되었다. 임수민의 거북이+돌글러브 속성을 잘 아는 많은 한화팬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충격과 공포일 뿐... 궁내체고을 영입했으나, 최악의 수비코치 콤비가 있는 한화의 2015년 ERA, FIP 기록이 궁금해진다.
많은 우려가 있지만, 1군의 김광수 수석코치가 수비·작전에 특화된 코치이고, 2군의 다테이시 미쓰오 수비 코치가 있으니 아직 속단은 이르다.
8월 16일자 코칭스태프 개편에서 3군으로 내려갔다. 그를 대신해 1군 수비, 작전코치를 맡을 사람은 왕년의 꼴무원 박영태.
2017 시즌부터 1군 타격보조코치를 역임하게 됐다.# 그러나 10월 13일 코칭스태프 개편에서 잔존 김성근 사단인 권영호, 박영태 코치 등과 함께 재계약에 실패했다.
2018년에 상무 수비 코치를 맡았다가 시즌 종료 후 사임했으며 2019년에 영문고 코치를 지냈고 2020년에는 한일장신대 코치로 옮겼다.

1.4. 역대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한화 이글스
115
324
.216
70
23
2
4
45
33
2
36
.336
.294
1997
98
202
.218
44
5
0
3
21
12
0
11
.287
.256
1998
49
67
.209
14
2
0
3
5
8
0
8
.373
.289
1999
107
339
.274
93
16
0
16
57
64
2
50
.463
.365
2000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복무
2001
2002
127
366
.227
83
16
1
10
35
55
3
47
.358
.313
2003
106
265
.275
73
17
0
6
41
28
2
26
.408
.338
2004
111
326
.245
80
20
1
9
29
26
1
19
.396
.287
2005
64
111
.234
26
6
0
3
25
10
1
6
.369
.264
2006
13
13
.154
2
0
0
0
0
0
0
2
.154
.267
<color=#373a3c> 통산(9시즌)
<color=#373a3c> 790
<color=#373a3c> 2013
<color=#373a3c> .241
<color=#373a3c> 485
<color=#373a3c> 105
<color=#373a3c> 4
<color=#373a3c> 54
<color=#373a3c> 258
<color=#373a3c> 236
<color=#373a3c> 11
<color=#373a3c> 205
<color=#373a3c> .378
<color=#373a3c> .309

2. 한국의 아나운서



[image]
이름
임수민(林秀玟)
출생
1967년 12월 10일
학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경력
1991년 KBS 공채 18기 아나운서
가족
슬하 1남 1녀
종교
천주교(세례명 : 루아)

2.1. 진행



2.2. 여담


  • 똥머리포니테일을 자주 한다.
  • 평소 소원송해와 함께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보는 것이였다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봄부터 정규방송이 잠시 중단되며 방송국 안에서 스페셜 방송 진행으로 대체가 되면서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1] 한문학과 (1992학번)[2] 체육교육과 등 체육계열 학과로만 진학하는 요즘 2010년대와는 달리 과거에는 법학과, 경영학과, 축산학과(...) 등 체육 특기생과는 관련 없는 학과로 진학하는 케이스가 있었다.[3] 근데 이게 어폐가 있는게 애초에 임수민의 드랲 라운드는 11라운드였다.당해 실업팀인 현대 피닉스에 선수를 뺏길 걸 우려했던 것도 있고, 97년부터 신인 드래프트가 12라운드로 제한이 걸리는 것 때문에 20라운드 넘어서까지 지명을 하긴 했어도 예나 지금이나 10라운드 정도까지 가면 구단에서 큰 기대를 하는 자원은 아니다. 신인때 주전 2루수 꿰찬게 신기했던 거... 3년차인 98년엔 유격수로 들어왔다가 수비불안으로 2루로 포지션을 옮긴 치멜리스에 밀렸다.[4] 워닝트랙의 다른 말. 아웃카운트가 2아웃만 아니면 희생플라이가 될 수 있는 타구를 2아웃 득점권에서만 날린다는게 특징. 희한하게 구장이 잠실이건 청주건 관계없이 딱 워닝트랙까지만 간다는 것도 특징이다.[5] 백업이 삼푼이 시절 한상훈이었다.[6] 이외에도 한화 이글스 문서에서 설명되다시피 그나마 2루수다웠던 선수가 전대영, 백재호, 한상훈 정도가 있는데 전대영은 공갈포에다 수비는 뭐 그저그랬던 선수였고 백재호는 유격수 겸업이었던 데다 존재감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한상훈은 뭐 알다시피 타격이... [7] 한화 계열 고등학교이며 충남 천안시에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한화그룹의 지원에 힘입어 야구 뿐만 아니라 학업실력도 우수한 학교다. 개교 당시 교명은 천안북일고등학교였으나 천안을 삭제했다.[8] 당시 감독이었던 이정훈이 자격증 미발급으로 덕아웃에 들어갈 수 없자 덕아웃에 있던 임수민 코치에게 무전기로 작전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