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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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截拳道 / Jeet Kune Do[1]
이소룡이 창시한 무술 철학. 딱히 고유한 커리큘럼이나 형태가 없다. 애매모호함을 배격하고 극실용을 추구했던 그의 무술사상에 기반을 하는데, 그 배경에는 이소룡이 중국무술 특유의 형이나 투로 수련 등을 극히 싫어한다는 점이 있다. 실용적이지 못 할 뿐더러, 수련생들이 편협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2]
'절권도'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상술된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소룡은 형태나 이름, 특유의 유파에 구속되기를 '''정말''' 싫어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 이소룡이 절권도를 정립해나갈 때에는 자신이 창시하게 될 무술에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에 구속되어 수련생들이 일종의 편견을 가지지 않을까까지 걱정해서[3][4] 처음에는 '과학적인 길거리 싸움' 정도로 부르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본질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경지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감을 얻기 위해 각종 스포츠 서적을 읽기 시작하는데 그 중 이소룡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것이 펜싱이었고 펜싱의 플레이 방식을 자신의 싸움에 도입해보고 싶다고 했다.[5] 그래서 자신의 동료 댄 이노산토에게 "내가 창시할 무술은 'Intercepting fist'나 'Intercepting way'로 이름 붙이고 싶어. 광둥어로는 (상대의) 주먹을 차단하는 방법이라는 뜻의 절권도-Jeet Kune Do가 되겠지."라고 했고 이노산토는 "그럼 약자는 JKD겠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소룡은 JKD라는 약칭이 마음에 쏙 든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절권도 자체는 '이러이러한 것이 절권도다.' 같은 식으로 보긴 어렵고, 그냥 '''이소룡의 무술에 대한 철학'''으로 보는 것이 실제와 좀 더 가까울 것이다.[6]
2. 기술적 근원
이소룡 본인이 배운 무술과, 다른 무술가들과의 교류로 얻은 스타일을 자신의 몸에 맞춰 '''진번공부(振藩功夫) 혹은 준판쿵후'''[7] 로 체계화시켰는데, 이는 60년대의 이야기이고, 70년대에 이소룡이 사망 직전까지 만든 절권도는 이와는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이소룡 개인이 워낙 유명한데다, 절권도를 배우는 사람들도 영화 속 이소룡의 모습을 기대하는 까닭에, 실제로는 도장에서 두 가지를 다 가르치거나, 준판쿵후를 주로 가르치는 도장들이 많다고 한다. 절권도를 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한 장혁이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는 절권도 동작들은 절권도가 아니라 '''준판쿵후'''에 더 가깝다,
게다가 이소룡이 70년대 이전에 만든 교본과 자료들마저 이소룡 사후 마구 섞여서 사용되는 관계로 구분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여태까지 그의 손기술은 영춘권, 발기술은 태권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식으로 전해졌으나, 실제로 그런 것은 진번쿵후의 모습이라고 하며, 이 또한 실제 배운 사람들이 보여주는 준판쿵후를 접한 사람들에 의하면,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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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LA해변에서 이준구 사범(오른쪽)이 이소룡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시연하고 있다.#
- 태권도 연관설의 경우, 이소룡과 교류를 하던 이준구[8] 의 존재로 이준구가 발차기를 가르쳤다는 말이 있었으나, 이소룡이 이준구와 만난 것은 64년경의 롱비치 무술대회[9] 에서였으며, 댄 이노산토의 말에 따르면, 이소룡은 그 이전에 이미 발차기의 고수였다고 한다. 정확히는, 중국무술의 북파권법계열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고…[10] 그러나 이소룡이 다른 유파의 기술을 배우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 댄 이노산토가 회상하길 이소룡이 절권도를 정립할 때 "영춘권의 이해를 바탕으로 영춘권을 초월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 수련했던 무술답게 영춘권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절권도 철학에서는 영춘권과 달리 단타를 넣더라도 강하게 넣는 것을 추구하며, 트래핑을 하는 것보다는 회피를 중요시한다. 때문에 영춘권의 스타일과도 크게 다르다…. 애초에 '절권도의 스타일'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대한민국 절권도 총본관에 문의해본 쪽에서도, 영춘권의 스타일을 버렸다고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영춘권을 이해하고는 단어 그대로 초월해서 영춘권의 틀에서 탈피한 것이다.
그 밖에 펜싱의 스텝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대니 이노산토가 배운 무술인 칼리 아르니스의 번역이 잘못되어 펜싱이라 알려졌다는 설도 있다. 다른 설[11] 에 따르면, '''펜싱은 절권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여기에 다른 의견도 있는데, 애당초 유럽에는 펜싱스텝과 복싱의 기술을 혼합하던 무술교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소룡의 무술관을 보여주는 일화로, 브랜든이 태어났을 때, 미국인 제자가 아들에게 어떤 무술을 가르치겠냐고 물었다.
어떻게 보면 타격과 그래풀링 기술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질 미래의 무술 MMA의 성립 방향을 그 당시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한 혜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브랜든 리가 실전무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말로 반드시 필요했을 것들이다.
또한 채리불권(蔡李佛拳)의 노사(老師)들의 말에 의하면, 이소룡의 절권도에는 영춘권, 채리불권, 이소룡의 아버지가 익힌 홍권(紅拳/洪拳)[12] 이 모두 녹아들어있다고 한다. 채리불권도 정식으로 배웠던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인터뷰를 참조하자.
http://handosa.egloos.com/3688310
다만 유튜브에서 절권도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절권도의 스트레이트는 이렇구나.'같은 식의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는 일종의 편협 된 생각이며 이소룡 본인이 지향하던 바가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 현재 절권도 도장에서 가르치는 스트레이트는 십중팔구 직권[13] 으로 배울 것이다. 이는 이소룡이 정권보다는 직권이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고 더 길게 나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 이에대해 정권으로 뻗는 스트레이트는 절권도의 스트레이트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절권도에 대한 이소룡의 사상을 들여다보자. 이소룡은 주먹과 발을 '무기'로 봤기 때문에 무기는 앞에 놓인 채로 빠르게 반응해야한다는 생각에 입각해 오른손잡이임에도 사우스포 스탠스로 수련했다.[14] 단 이소룡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절권도의 모습이나 개인적인 철학을 담아 놓은 7권의 노트를 바탕으로 재구성 된 저서 'Tao of Jeet Kune Do'에 의하면, 수련생이 오른손잡이고 오소독스 스탠스를 편하게 여긴다면, 또한 오소독스 스탠스로 수련하길 원한다면 별 상관없이 그를 존중한다는 식의 서술이 되어있다. 다만 사우스포에서 수련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기존에 오소독스에서 수련을 했더라도 찻잔을 비우듯이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타일을 버리고 수련할 것을 명시했다.
즉, '이소룡의 절권도'가 아닌 '자신들만의 절권도'를 추구한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보자. 태권도를 오래 수련하다가 테드웡 절권도에 입문한 수련생이 있다고 치자. 그가 스파링 중에 습관적으로 내려차기를 해서 상대를 맞췄다면 그것은 태권도의 발차기이기 때문에 절권도라고 볼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아마 절권도 도장 중에 내려차기를 배우는 도장은 없을 것이지만 이소룡이 생전에 남긴 철학에 의하면 그 또한 수련생의 절권도인 셈이다. 유튜브에서 절권도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면 그것들을 '절권도'라는 틀에 가두고 보지 않고 '이게 이소룡이 지향하던 바구나'같은 식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현재 이소룡 개인의 방식으로 절권도를 가르치는 도장들은 사이비인것인가 한다면 그 또한 잘못 된 생각이다. 이소룡의 방식을 이어받아 가르치는 것은 절권도라는 철학체계를 구상한 이소룡을 한 명의 창작자로서 존중해주는 것이며 수련생들도 그의 방식을 배울 것을 원한다. 응용하는 것과 실제로 수련하는 것은 수련생들 개개인에게 남겨진 숙제일 뿐이다.
이소룡이 형태가 없는 무술을 추구했다고 해서 절권도라는 철학체계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소룡 개인의 방식의 절권도를 수련함은 수련생들에게'이 상황을 빠져나오는데 이러한 선택지도 있구나', '내가 기존에 때리던 방식보다 이게 더 효율적인 거 같아'식의 깨달음을 주는 것 뿐이고 상술했듯이 그것을 갈고닦을지 자신의 방식으로 개척할지는 수련생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이소룡에게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이노산토의 절권도와 테드 웡의 절권도가 분명히 다르지만 둘 다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는 이유가 뭐 때문이겠는가. 그것이 절권도의 의의임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3. 난립하는 도장 체계
상술했듯이 절권도 정립 당시 이소룡은, 기술적 제한이 거의 없이, 수련생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파이팅 스탠스와 기술을 배우는, 그것도 지도자와 수련생이 1:1로서 수련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진번쿵푸가 워낙 유명한데다, 이소룡이 생전에 작성했던 교범들이 대부분 진번쿵푸시절에 나온 거라, 현재에는 개념을 헷갈리는 도장들도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 모습이 너무 강렬했던지라, 현재에는 이소룡 영화 동호회(…) 같은 식으로 전락해버린 도장도 꽤나 많은 편이다. 심지어 절권도 교본이나 중국무술 용품 등을 팔아먹으려고 가짜 도장을 차린 뒤, 도장 주인도 자기가 모르겠다면서 영화를 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중국무술을 배웠던 지도자들이 절권도에도 투로나 품새를 만든다든지, 중국무술식의 수련체계를 들여온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4. 오리지널? 짝퉁?
현재 절권도는 이소룡의 친우이자, 이소룡으로부터 인스트럭터로 인정을 받은 댄 이노산토와 절권도 정립 이후에 배운 테드 웡 계열로 크게 나뉜다. 댄 이노산토 계열은 소위 컨셉 절권도라 하여, 이소룡의 무술철학적 측면에 중점을 둔 절권도를 수련한다.[15] 반면 테드 웡 계열은 진번쿵후가 절권도로 정립된 이후의 오리지널 이소룡 스타일 절권도에 가깝다고 한다.[16] 테드 웡 계열은 테드 웡 사후 맥이 끊길 수도 있었지만, 테드 웡이 후계자로 지목한 패트릭 챈이 뒤를 이었다. 테드 웡 절권도에 관심이 있다면 국내에 테드 웡과 패트릭 챈을 사사한 이재성이 A.A.M의 리더로 활동 중이니 문의해봐도 좋을 듯하다. 배울 수 있는 곳도 과천과 압구정에 위치해 있다.
과천 이재성 관장 체육관
https://www.jasonjkd.com : 한국 이소룡 오리지널 절권도체육관
https://www.youtube.com/user/tedwongjkd 유튜브 계정
신사동 하철[17] 관장 체육관
http://www.jkdaction.com : 절권도 트레이닝 스튜디오
https://youtu.be/PxeX2cdbYxw 유튜브 계정
이 외에도 이소룡의 첫번째 제자인 제시 글루버 계열과 제시 글루버의 수제자 토미 카루더스 계열 절권도는 실전을 굉장히 중요시하여 눈을 찌르는 핑거잽과 낭심 슬개골 타격에 중점을 둔다. 이소룡의 '''최고레벨의 절권도는 간단함이다.''' 하는 말을 중점으로 두어 화려한 수풀이보다는 기본 기술을 다양한 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게 수련하는 데 중점을 둔다. 테드 웡 계열과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세세한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를테면 테드 웡 계열 스트레이트가 일반 복싱처럼 뒷손을 뺨 쪽에 붙이는 반면 토미 카루더스 계열은 얼굴 앞에 가드를 유지하는데, 그 이유는 맨손 무술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토미 카루더스 계열의 절권도는 천안시에서 권소룡 관장이 오리지널 절권도 스쿨이라는 체육관에서 가르친다.
진륭 계열도 있는데 이쪽은 논란이 많다. 대만에 본관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노경열이 진륭의 절권도를 전승받았다.[18] 국내 최초 절권도관을 열었던 김종학 역시 진륭의 절권도를 전승받았으나 이후 테드 웡 계열에서 절권도를 사사해 지도 중이다. 시스테마로 유명한 유대경 또한 진륭 계열 절권도를 익힌 적이 있다.
고수를 찾아서에 등장한 김종학[19]
진륭계가 논란을 빚는 이유는 진륭 본인과 이소룡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노산토와 테드 웡은 이소룡과 실제 친분이 있었지만, 진륭은 어떤 기록에서도 이소룡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진륭 본인이 이노산토나 테드 웡에게 전승받았다면 모르겠지만, 그러한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수련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이노산토나 테드 웡이 서로 다른 계열이면서도 둘 다 '절권도'로 인정받는 것은 이소룡의 철학에 입각한 수련 때문이다. 진륭 계열에서 중점을 두어 가르치는 것은 트래핑과 경, 대동, 힘의 배합 등에 대한 이론이다. 이소룡은 "영춘권을 이해함으로써 영춘권을 뛰어넘는다."라고 했지 '''영춘권을 하라고 하진 않았다.''' 이노산토 계열에서도 트래핑을 가르치지만 절대 주가 되진 않는다. 진륭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하는 한 분명 사이비일 뿐이다. 정말 기묘한 무술인데, 이소룡과는 아무 관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소룡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준판쿵후랑은 또 얼추 비슷한 모습을 띤다는 점이다. 아마 진륭이란 사람이 이소룡의 영화에서의 동작을 따라해서 만든 무술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진륭 계열 절권도관들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체계성"'''이다. 진륭 계열에서 가르치는 힘을 사용하는 원리와 상황에 대한 판단 등 커리큘럼에 굉장히 체계적이고 기초논리도 탄탄하다. 심지어 '''절권도 계열 중 진륭계열이 가장 배울 만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20] 진륭이 진짜라고 입증되지 않는다 해도, 진륭의 무술을 현대창작무술로 재해석해도 될 정도이다. 진륭이 사이비라 해도 무술을 이해하는 안목은 상당히 높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창작자로서의 이소룡의 권위를 철저히 짓밟는 것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격투갤러리 등에서는 아예 '진륭권'이라고 신랄하게 까이는 중....
이소룡의 절권도 철학을 계승하여 발전한 컨셉 절권도(이노산토 계열)은 형태적인 면에서 현대 MMA와 매우 흡사하다. 당시 이소룡의 생각이 얼마나 진보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21]
절권도는 도복이나 정해진 수련복이 없기 때문에 띠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단이나 급의 구분이 없다. 따라서 "나 절권도 X단이야."라고 말한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이비. 따라서 지도자가 되려면 이노산토나 테드 웡 계열 체육관에서 사사받아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지도자 자격증도 한 번 취득하면 장땡이 아니라 견습~마스터 지도자까지 레벨이 세세하게 나뉜다고...
5.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절권도 철학
절권도는 무형의 철학에 가깝고, 이소룡은 이 철학을 영화에 끝없이 투영하고자 했다. 미국자본으로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인 《용쟁호투》에서 그는 시나리오 문제로 끊임없이 제작사 워너브라더스와 마찰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가 그의 철학을 집어넣기 위해서였다고…. 그 덕에 어느 정도 그의 무술에 대한 철학이 담긴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초반에 그가 걸어가던 어린 수련원을 지적하는 장면을 보자.
달은 목표, 즉 적을 제압하는 것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무술, 형식을 상징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하면 달을 볼 수 없다. 중국 무술들이 형식에만 치우침에 반대하여, 형식이 없는 실전무술을 재창한 이소룡의 철학을 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초반 오프닝 시퀀스 이후 배의 장면을 보자.
이소룡의 무술 철학에 있어서 목표는, 위에 서술하였듯이 적을 제압하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싸우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었다. 즉, The art of fighting without fighting. 절권도의 궁극적 도달점이다.
6. 기타
이소룡 왈, '''"절권도는 무법(無法)으로 유법(有法)을 상대하고, 무한(無限)으로 유한(有限)을 상대한다."''' 절권도의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낸 한 마디이다. 이를 설명하면 본능에 따른 순간적인 공격으로 모든 형식을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다만 전통을 무시한 본능 위주의 무술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그 영향도 제법 받아 각종 페이크 공격이 가미된 실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당산대형(1971)》을 찍었을 당시, 대만 무술인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때 팔극당랑문의 소욱창 노사(1940~)와의 만남이 영향을 줬다 카더라. 그에 관한 자세한 일화
6.1. 절권도 사용 캐릭터
절권도라기보단 절권도를 기초로 한 파이팅 스타일을 쓰고 있다. 하지만 도중에 이소룡의 호흡을 쓴다. 한국판 성우 남도형도 완벽하게 재현했다.
-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 - 단테
- 러브히나 - 세타 노리야스
- 로스트사가 - 리(로스트사가)
- 모탈 컴뱃 - 리우 캉, 쟈니 케이지
- 명탐정 코난 - 아카이 슈이치, 세라 마스미
- 버추어 파이터 - 브라이언트 남매
서로 스타일이 다른 절권도 형식인데, 잭키는 무늬만 절권도를 기초로 한 발차기 스타일이였고, 사라는 플라밍고를 쓰는 다소 태권도 스러운 모션이다. 버파 4까지는 적어도 공유되는 모션이 있었는데 반해, 버파 4 에볼루션부터 잭키만 이소룡 스러운 모션을 가지게 되어 성능도 그렇고 이소룡 스럽게 바뀌게 되었다.
작 중에서는 '비천류 쿵푸'라는 명칭으로 나오지만 대전 시의 폼이나 기술 시전 시의 모션 등으로 봐서 빼도 박도 못하게 절권도 확정.
둘 다 프로필 상들로만 그렇고, 실제 쓰는 무술은 진번쿵푸.
이 쪽은 아예 이소룡을 오마주한 캐릭터이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택견을 사용한다는 설정이었지만 대길 역을 맡은 장혁이 절권도를 익힌 탓에, 극중에선 절권도를 사용한다 카더라. 연표상 그 시기엔 절권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임 패러독스 논란도 잠깐 있었지만, 어차피 드라마 내용이 순수 창작인데다, 작중에 이대길이 무슨 무술을 사용한다고 딱히 명시되지도 않았다. 위에도 서술했다시피, 장혁이 대중에게 보여주는 포맷은 절권도가 아니라 초기 진번쿵푸의 형태다. 그냥 진번쿵푸와 영춘권을 응용해 드라마 액션에 적절한 동작들로 펼친 스턴트 연기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
EVER 스타리그 2004의 오프닝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자세를 취하며 팬들에게 절권도하는 박태민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1] 실제 광동어 발음은 찟퀸또우(zit6 kyun4 dou6)[2] 예를 들어 같은 용도로 쓰는 발차기라도 A 유파의 투로와 B 유파의 투로에서 다른 준비 동작이나 연결기로 나온다면 A 유파 수련생 입장에선 다른 발차기로 볼 수 있다는 식이다.[3]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 이소룡의 무술철학을 무슨 형태나 이름, 유파처럼 여기며 오리지널이나 완전하지가 않는다면 더이상 절권도가 아니라는 편견적인 입장에 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의 통찰이 미래까지 꿰뚫어보는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 절권도의 실전체계 확립은 이소룡이 사망 한 뒤 정체해버렸고 서양의 종합격투기가 유행을 하고 실전성 평가 면에서도 진작에 절권도를 넘어서 버린 것은 물론, 종합격투기 체계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비 종합격투기 종목들 또한 사정이 비슷하다. 실전이 사실상 완성 되버린 지금 자신들의 차별화 된 입지를 지키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었다.[4] 유사한 사례로는 극진가라데가 있다. 극진가라데를 창설한 최영의 총재는 재일교포로,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온갖 차별과 박해를 당하던 부류다. 그런 그가 기존 전통 가라데와는 차원이 다른 파격적인 신흥 가라데 유파를 선 보였음에도 일본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그만큼 실전성을 위해 상당 부분을 개편한 파격적인 유파였고 실제로 그 실전성을 입증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극진가라데 마저도 타 무술(특히 킥복싱)과 비교 당하고 실전성의 한계를 지적 받던 와중 종합격투기 붐이 일어나자 스스로 벽을 쌓아버렸다. 가라데의 한계를 인정하고 룰을 개편하는 순간 풀 컨택트와는 거리가 먼 종합격투기 유파로 전환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영의의 사망 이후 후계자들이 극진의 정통성을 사수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종합적인 성격의 개편으로 탄생한 유파는 대도숙 공도가 있으나 기존의 극진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져 공도 수련생들은 자신들이 가라데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때문에 종합적인 성격을 띄지 않는 무술과 격투기들은 정통성을 고수하거나 별개의 실전 유파를 창설 하는 게 고작이다.[5] 실제로 절권도 관련 서적에서 '스텝'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전/후진 스텝은 펜싱의 풋워크를 연상케하며, 공격방법 등을 설명하는 부분도 권투와 태권도 등을 비롯해서 다양한 무술의 공격방법들을 차용해와서 설명하곤 한다.[6] 사실상 절권도를 본질적으로 완벽하게 배우는 것은 유파나 형식에 구속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술 철학을 '''일종의 유지를 잇는 방식으로 이어나가는 정신적인 계승'''에 가깝다.[7] 이소룡의 본명이 이진번(李振藩)이었기에 이렇게 붙인 것으로 보인다. 진가태극권(陳家太極拳)이 진씨(陳氏) 가문, 즉 진가(陳家)의 태극권이라는 것에서 사용하는 이름인 것으로 이해하면 편하다.[8] 사범이라는 말은 무술계에서는, 엄밀히 말하면 일본어이다. 중국무술계에서는 교련(敎練)이라 한다.[9] 여기 이소룡이 참가하여 우승했다는 주장 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는데, 이소룡은 일종의 초대손님으로 여기에 가서 기술 시범을 했을 뿐이다. 생전에 이소룡은 어떤 무술대회에 직접 참가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0] 물론 반론도 있다. 일단 중국 북파무술계열의 발차기, 즉 퇴법(腿法)은 가라데나 태권도 등의 무술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태권도 등의 발차기를 전혀 접하지 않고) 전통쿵푸를 아주 제대로 익혔다가, 후에 태권도를 익히는 사람들은 발차기 교정에 호된 고생을 하곤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11] 1980년, 《Theorizing Bruce Lee》의 53~54쪽에서 이노산토 본인이 한 얘기에 따르면, 이소룡과 이노산토가 얘기하던 중에 이소룡이 "펜싱에서 가장 효과적인 카운터 법은 스톱히트(Stop Hit: 패리(parry: 슬쩍 피하거나 받아넘기는 것)하지 않고, 한 번에 공격해서 적을 막는 것)"라고 얘기했고, 이런 방식에 영향을 받은 싸움법을 절권도에 도입했다고 한다.[12] 구전이나 전설에 따르면, 황비홍(黃飛鴻)이 바로 홍권의 달인이었다. 홍권을 널리 보급한 것은 그의 제자로 알려진 임세영(林世榮).[13] 태권도의 정권이 아닌 세로로 뻗는 주먹, 영춘권의 일자충권의 영향을 받았다.[14] 이 또한 영춘권의 영향일 수도 있다. 영춘권에서도 오른손잡이 수련생이 오른손 오른발을 앞에 놓은 스탠스를 취하고 수련하기 때문이다.[15] 영춘권의 수련방식을 응용하거나 그래플링을 연습하는 등 실제 이소룡이 무술에 가지고 있던 철학에 입각해서 가르친다.[16] 이쪽은 펀치와 킥을 위주로 마치 킥복싱처럼 수련한다. 흔히 생각하는 치사오나 트래핑의 수련보다는 이소룡이 추구하던 타격방식을 반복훈련하여 대처능력과 응용력을 기른다.[17] 절권도장 관장 겸 영화배우로, 극한직업에서 이무배의 부하들 중 한 명(정확히는 '강력반' 조직원들 중 검은색 크롬하츠 후드집업을 입은 조직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18] 유튜브에서 JKD KOREA라는 채널로 활동 중이다. 테크닉적인 체계와 기본 원리에 대한 설명이 깔끔하다.[19] 이때는 아직 진륭 절권도를 할 때이다. 현재는 댄 이노산토와 테드 웡 계열에서 사사했다.[20] 사실 테드웡 계열 절권도는 미완성 작품이고, 이노산토계열 절권도 역시 이소룡의 생각과 완전히 똑같다 볼 순 없는지라 차라리 진륭 한 사람이 지가 처음부터 탄탄히 만든(...) 진륭계열이 무술로서의 완성도는 가장 높다 봐도 될 듯하다.[21] 이는 테드 웡 계열이나 토미 카루더스 계열도 마찬가지이다. 사용되는 기술만 놓고 보면 사실 MMA와 큰 차이가 없다. 펀치는 복싱 스킬이고 킥도 흔한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이기 때문. 굳이 특징적인 킥이 있다면 플립 킥 정도. 다만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디를 중점적으로 타격하는 가가 MMA와 절권도를 구분짓는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격투기여서 도망칠 수 없는 경기장 안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이겨야만 하는 MMA와 단시간에 급소를 타격하고 최대한 상황을 벗어나는 절권도의 차이는 같은 기술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