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
한자: 祭衣
라틴어/이탈리아어: Casula
영어: Chasuble
독일어: Kasel
에스페란토: Kazublo
전례복 중의 하나로 제일 마지막에 입는 겉옷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는 물론이요, 루터교회, 감리회 등에서도 으레 착용한다[1] . 정교회에서의 제의는 따로 '''펠로니온(Φαιλόνιο, Phelonion)'''이라고 한다.
로마 전례서 337항에 의하면 사제는 제의를 미사나 그와 관련된 거룩한 의식 때 영대와 장백의 위에 착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영대와 같이 제의도 전례의 형태에 따른 색깔을 따라야 한다. 또한 사제가 죽으면 제의를 수의로 입힌다.
제의는 로마 제국 후반에 여행용 복장으로 쓰였던 원통형의 판초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이 판초는 라틴어로 까술라(Casula) 혹은 '작은 집'으로 불렸는데, 모든 면이 무릎까지 닿고 팔부분에는 주름이 잡혀 있어서 팔을 자유롭게 모을 수 있었다. 초대 교회 성직자들은 구약 시대 유대교 제사장들이 예복을 갖췄던 선례를 본받아, 그 당시 로마 시민들의 외출복 내지는 정장이었던 의복을 전례복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교부 예로니무스는 에제키엘서 주석에서 '''"우리 역시 지성소에 들 때마다 일상에서 더럽혀진 일상복을 입을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가짐과 의복을 갖추고 주님의 성사를 거행해야 할 것이다."'''[2] 라고 언급하며 당대에도 성찬례를 거행할때만을 위한 전례복을 마련했음을 보여준다.
시대가 지나고 제의는 갖가지 화려한 무늬와 장식이 추가되거나 재단 방법이 변하기도 했다. 서방 교회에서는 원래 '''고딕식 제의'''라고 하는 펑퍼짐한 고깔모양 판초 형태였다가 13세기 초반에는 제의의 측면을 조금 짧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3] . 지금의 소매가 늘어지지 않고 팔끝까지만 오는 반원형 형태를 띠게 된 건 15세기 이후이며,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팔부분을 움직일 수 있게 크기가 줄어들었으며 두 손을 모을 수 있도록 앞부분이 잘려나가 바이올린 꼴로 만들어졌는데, 이런 형태를 '''로마식 제의'''라 한다. 반면에 동방 교회에서는 서방 교회가 양 소매를 줄인것과 달리 앞부분을 트여 망토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는데 이를 펠로니온(φαιλόνιον)이라고 부른다. 서방 교회에서 제의를 신부와 주교가 모두 사용하는 것과 달리 동방 교회에서 주교는 동로마 제국 멸망 이후 황제의 예복인 사코스(σάκκος)를 착용한다.
사제는 미사를 집전할 때 전례력을 따져 전례법에 의해 지시된 색의 제의를 맞춰 입어야 한다.
라틴어/이탈리아어: Casula
영어: Chasuble
독일어: Kasel
에스페란토: Kazublo
1. 개요
전례복 중의 하나로 제일 마지막에 입는 겉옷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는 물론이요, 루터교회, 감리회 등에서도 으레 착용한다[1] . 정교회에서의 제의는 따로 '''펠로니온(Φαιλόνιο, Phelonion)'''이라고 한다.
로마 전례서 337항에 의하면 사제는 제의를 미사나 그와 관련된 거룩한 의식 때 영대와 장백의 위에 착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영대와 같이 제의도 전례의 형태에 따른 색깔을 따라야 한다. 또한 사제가 죽으면 제의를 수의로 입힌다.
제의는 로마 제국 후반에 여행용 복장으로 쓰였던 원통형의 판초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이 판초는 라틴어로 까술라(Casula) 혹은 '작은 집'으로 불렸는데, 모든 면이 무릎까지 닿고 팔부분에는 주름이 잡혀 있어서 팔을 자유롭게 모을 수 있었다. 초대 교회 성직자들은 구약 시대 유대교 제사장들이 예복을 갖췄던 선례를 본받아, 그 당시 로마 시민들의 외출복 내지는 정장이었던 의복을 전례복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교부 예로니무스는 에제키엘서 주석에서 '''"우리 역시 지성소에 들 때마다 일상에서 더럽혀진 일상복을 입을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가짐과 의복을 갖추고 주님의 성사를 거행해야 할 것이다."'''[2] 라고 언급하며 당대에도 성찬례를 거행할때만을 위한 전례복을 마련했음을 보여준다.
시대가 지나고 제의는 갖가지 화려한 무늬와 장식이 추가되거나 재단 방법이 변하기도 했다. 서방 교회에서는 원래 '''고딕식 제의'''라고 하는 펑퍼짐한 고깔모양 판초 형태였다가 13세기 초반에는 제의의 측면을 조금 짧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3] . 지금의 소매가 늘어지지 않고 팔끝까지만 오는 반원형 형태를 띠게 된 건 15세기 이후이며,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팔부분을 움직일 수 있게 크기가 줄어들었으며 두 손을 모을 수 있도록 앞부분이 잘려나가 바이올린 꼴로 만들어졌는데, 이런 형태를 '''로마식 제의'''라 한다. 반면에 동방 교회에서는 서방 교회가 양 소매를 줄인것과 달리 앞부분을 트여 망토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는데 이를 펠로니온(φαιλόνιον)이라고 부른다. 서방 교회에서 제의를 신부와 주교가 모두 사용하는 것과 달리 동방 교회에서 주교는 동로마 제국 멸망 이후 황제의 예복인 사코스(σάκκος)를 착용한다.
2. 전례력에 따른 제의의 색깔들
사제는 미사를 집전할 때 전례력을 따져 전례법에 의해 지시된 색의 제의를 맞춰 입어야 한다.
[1] 기타 개신교, 특히 장로회에서 목사들이 입는 예복은 제의가 아니다. 종교개혁 당시 제네바의 법관들이 입었던 법복에서 유래된 "가운"이다. 이 가운은 "제네바 가운", "목사 가운", "클러지가운"이라고 불린다.[2] Phillips 1911, pp. 1056-1057[3] 양팔 부분이 정통 고딕식 제의에 비해 다소 짧은 것은 '세미고딕'이라고 한다.[4] 김 추기경이 사제서품을 받은 직후, 어머니(서중하 마르티나)와 함께 찍은 사진.[5] 사제, 부제 포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의 경우 차부제까지[6] 지금 교황이 입고 있는 제의 안에 입은것은 차부제가 입는 투니카(tunica)와 부제가 입는 달마디카인데 이때는 제의 안에 입는 것이므로 원래 차부제, 부제가 입는 것들과 달리 얇고 간소하다. 장엄미사때 주교는 모든 성직[5] 을 총괄하는 이라는 의미에서 로마식 제의 안에 투니카와 달마디카까지 껴입었다. [7] 이 날 전야제가 바로 할로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