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베르고미
1. 소개
1980년대 아주리 파워 디펜스의 1인자. 당대에 프랑코 바레시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달랐고, 리베로 바레시와 파이터 형 베르고미로 수비에서의 룰도 달랐지만, 양 밀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위대한 주장이었으며, 국가대표에서도 같이 센터백 라인을 형성하는 등, 여러가지로 서로의 축구인생을 공유하였다.
그는 인테르의 암흑기를 지탱한 위대한 원클럽맨이자 주장으로 별명도 '미스터 인테르' 일만큼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타점 깊은 태클과 강력한 대인마크는 그의 상징과 같은 장면. 라이트 백으로 데뷔하여 센터백으로 대성했다는 점을 보면 후배인 파비오 칸나바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베르고미는 1979년 인터밀란에 데뷔하여 1980-81시즌부터 1군에 데뷔하여 1981-82 시즌 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인터밀란이 코파 이탈리아에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인터밀란은 당시 세리에 A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리고 사키 압박축구를 토대로 맹활약하는 오렌지 삼총사와 프랑코 바레시의 AC 밀란, 디에고 마라도나의 SSC 나폴리, 미셸 플라티니 이후에도 강력한 유벤투스 FC에 밀려 인테르가 힘을 쓰지 못하는 등 꽤나 울적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인터밀란도 로타어 마테우스,안드레아스 브레메,위르겐 클린스만을 영입하여 게르만 삼총사를 결성한 뒤 1988-89시즌 베르고미는 그토록 고대하던 스쿠데토를 들어올린후 1990-91시즌 베르고미가 안정적으로 이끄는 수비진과 게르만 삼총사의 맹활약으로 결승전에서 AS 로마를 꺾고 UEFA컵을 차지한다. 이때의 활약으로 베르고미는 인터밀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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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4 시즌에는 데니스 베르캄프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으나 베르고미는 인터밀란을 지휘하며 UEFA컵을 들어올렸을 때가 그의 클럽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이때 베르캄프는 대회기간 동안 8골을 넣었고 베르고미는 1992년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 후 첫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97-98 이미 노장이 된 베르고미는 호나우두, 하비에르 사네티와 함께 라이벌 SS 라치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베르고미는 통산 3번째 UEFA컵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1998-99 시즌이 끝난 후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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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 밀란의 신성이었던 주세페 베르고미는 1982년 4월 만 20세도 안된 나이로 아주리의 저지를 입고 데뷔하였다. 이것을 일종의 신인의 테스트가 아닌 것이 베르고미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아주리 멤버로 깜짝 발탁된다. 물론 신인을 경험 삼아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 시키는 경우는 그전에도 간간이 있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베르고미는 그것이 아니었다. 파올로 로시의 해트트릭으로 브라질이 무너졌던 것으로 유명한 본선 2차 리그 브라질 전에서 베르고미는 부상당한 콜로바티를 대신하여 교체투입되었다. 이 경기에서 베르고미는 19세라고 믿어지지 않는 원숙한 수비력으로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어지는 4강전, 결승전에 모두 선발 출전한[3] 베르고미는 이탈리아의 44년 만의 월드컵 대관식의 한축으로 당당하게 자리잡게 된다.
프랑코 바레시가 가에타노 시레아에 밀려 대회 내내 벤치를 달군 것과는 대조적이다[4] .
UEFA 유로 1984는 지역 예선 탈락으로 참가하지 못하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했으나,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놓였던 이탈리아는 16강 전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프랑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린 당하며 2:0으로 패하고 짐을 싸게 된다. 조별예선도 영 게운치 않은 것이 시레아와 베르고미라는 당대 최고의 커맨더-파이터형 수비수 조합이 버티고 있는 아주리의 수비라인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디에고 마라도나 한명에게 완전히 쥐락펴락 당했기 때문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끝나고 베아르조트 감독과 주장인 가에타노 시레아가 물러난 후 베르고미는 주장 완장을 물려받게 된다. 20대 중반에 갓 들어간 젊은 수비수에게는 파격적인 대우 였다. UEFA 유로 1988에서 4강으로 가능성을 보인 이탈리아는 1990년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고 베르고미는 주장으로서 자국에서 월드컵을 들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당시 아주리는 골키퍼에 인테르의 레전드 발테르 쳉가, 주전 수비라인에 파올로 말디니-프랑코 바레시-주세페 베르고미-리카르도 페리로 이어지는 밀란-인테르 라인을 구축하고 단일 월드컵 최장기간 무실점. 517분 무실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한다. 자국 버프와 압도적인 수비라인으로 우승후보 단연 1순위로 꼽힌 이탈리아였지만 마라도나의 도발과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승부차기에서 패배함으로써 대회 3위로 마무리 하고 만다.
그래도 베르고미의 위상은 공고할 거라 봤으나 비치니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 지휘봉을 잡은 아리고 사키는 슬슬 베르고미를 배제하기 시작했고, 사키와 베르고미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UEFA 유로 1992 지역예선에서 경기 종료 1분 전 투입 된 것에 대한 불만을 비신사적인 파울을 하고 퇴장을 당하면서 아주리와는 사실상 작별을 하게 된다.
주장직 역시도 프랑코 바레시가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체사레 말디니 감독[5] 은 베르고미를 깜짝 발탁한다. 원래는 치로 페라라가 1998년 월드컵 승선이 유력했으나, 그가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하면서 월드컵 출전이 불가능하자 말디니 감독은 베르고미의 경험을 존중하여 베르고미를 발탁한 것이다.
하지만 파올로 말디니-알레산드로 네스타-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파비오 칸나바로라는 주전 포백 라인이 건재했기 때문에 베르고미의 8년만의 월드컵 복귀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조별예선 3차전 오스트리아전에서 네스타가 부상으로 대회를 아웃 당하자 베르고미가 투입되었고, 이어지는 16강, 8강전까지 노련한 활약을 펼치며 네스타의 부상 공백을 성공적으로 매꿨다고 평가받는다.
이 대회 이후 1998-99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
3. 플레이 스타일
베르고미는 라이트백과 센터백 모든 자리에서 월드클래스 활약을 펼쳤던 선수로 아주 강인한 수비력을 갖추었으며 패스도 엄청 잘했다.
4. 우승 경력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79 ~ 1999)
- 세리에 A : 1979-80 , 1988-89
- 코파 이탈리아 : 1981-82
- UEFA 유로파 리그 : 1990-91, 1993-94, 1997-98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82 ~ 1998)
5.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이탈리아의 스포츠 채널인 sky sports italia에서 해설자로 일했다. 파비오 카레사와 함께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중계했고,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같이 중계하는등''' 최근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6. 여담
여담으로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경기를 뛴(통산 756경기) 원클럽맨이지만,[6] 눈물 나게도 그의 등번호 '''2번'''은 영구결번이 되지 못했다. [7]
[1] 보통 소속팀 인테르에서는 팀의 센터백 뎁스가 워낙 굵어서 라이트백으로 출전한 경기가 좀 더 많았지만 이탈리아 국대에서는 거의 센터백으로 뛰었다.[2]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프로필.이때 당시 그는 '''19살이었다!''' [3] 참고로 앞에서 베르고미와 교체되었던 콜로바티는 부상에서 곧 복귀하여 4강전, 결승전에 모두 출장한다. 4강전에선 클라우디오 젠틸레가 브라질전에서의 경고누적때문에 결장, 결승전에선 플레이메이커 지안카를로 안토뇨니가 결장하고 안토니오 카브리니, 콜로바티, 가에타노 시레아, 주세페 베르고미, 클라우디오 젠틸레 등 수비진이 총출동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4] 시레아는 리베로 역할로 수비라인의 조율자 역할이었으므로, 파이터형 센터백인 콜로바티나 베르고미가 그 조율형 센터백의 파트너 내지는 우군으로서 출장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같은 리베로 스타일로 시레아와 직접적 포지션 경쟁을 해야했던 것이 바레시의 불운이었다.[5]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6] 통산 756경기, 리그 519경기, 유럽대항전 117경기 모두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1위는 당연히 하비에르 사네티. 단, 코파 이탈리아는 119경기로 팀에서 가장 많이 뛰었다.[7] 현재 인테르의 영구 결번 두 개는 모두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든 두 주장의 몫이다. '''3번''' 자친토 파케티와 '''4번''' 하비에르 사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