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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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5년 대홍수




2. 1972년 대홍수


관련글
1972년 남한강 유역의 제천군 등이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3. 1984년 9월 서울 대홍수


1945년 해방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가장 강력하고 혹독했던 홍수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수도권 치수(治水) 시스템의 소홀과 일기예보의 오보 등으로 피해를 키웠기에 대표적인 인재(人災)로도 꼽힌다.
1984년 8월 거대한 비구름을 몰고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준'이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서울경기도, 강원도 등 중부지역에 시간당 50 mm의 집중호우를 뿌렸다. 9월 1일 하루만에 서울에 298.4 mm의 비가 내려 이 당시 기상 관측 이래 서울 1일 최고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속초에도 이 때 3일간 650 mm의 비가 내리는 등 중부지역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결국 수압을 못 이긴 한강안양천 등 인근 지류 하천의 수문과 옹벽이 죄다 터지면서 강물이 범람했다. 을축년 대홍수 이후 59년 만에 한강 수위가 10 m를 넘었고 그 결과 서울은 또 다시 흙탕물로 가득찬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특히 풍납동, 성내동, 망원동 등은 웬만한 집이 대부분 침수됐고 서울의 모든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려졌다.[1]
이 홍수로 2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그 중 '''서울에서만 1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사망 189명, 실종 150명. 또한 침수된 주택의 수는 2만 채를 훌쩍 넘어섰다. 전국적으로 추산된 재산피해는 당시 돈으로도 막대한 금액인 2502억 원.
이 당시 가장 큰 문제점은 서울의 치수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였다는 점과 일기예보가 엉터리였다는 점이었다. 특히 9월 1일 5시부터 1시간동안 50 mm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는데 그때까지 서울에는 어떠한 기상특보도 발효되지 않았고 '''물폭탄이 왕창 쏟아지고 난 뒤에야 호우경보가 발령돼''' 논란이 됐다.
이 당시 홍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남한이 홍수 피해를 입자 북한 측에서 적십자사 간 소통을 통해 쌀 5만 석, 천(옷감) 500 km, 시멘트 100 kt[2]과 기타 의약품 등 수해 구호물자를 보내줬고 이후 남북관계가 한층 훈훈해진 사례가 있다. 그 결과 1년 뒤인 1985년 9월에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상호교환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였다.
반면 당시 정부와 서울시 당국은 '천재'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한 탓에 주민들 혈압만 오르게 만들었고,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망원동 주민들이 시 당국과 수문 시공사 현대건설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1987년 1심을 비롯해[3] 1990년 3월 2심, 동년 8월 대법원 상고심[4]에 이르기까지 전부 승리를 거머쥐었다.(망원동 수재사건) 이들이 승리하는 데에는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도움이 있었다.
한강 개발공사가 1982년부터 진행중이었다가 이때 폭우로 더 속도를 내게된다.

4. 1990년 9월 한강 대홍수




1990년 9월 중국에 상륙한 제17호 태풍 '도트'가 서울 상공을 통과하는 저기압과 연결되면서, 9월 9~12일에 걸쳐 한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이 기간동안 경기도 이천군에는 581 mm, 서울특별시에는 486 mm의 강우량이 기록되었다. 실제로 한강이 범람하여 영등포역 일대까지 물이 가득 차올랐었다고. 당시 잠수교는 13.70 m란 수위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피해는 고양군 일대에서 발생하였는데, 한강의 수위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5]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現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의 한강 제방이 붕괴, 평야지대에 위치한 능곡과 일산(신도시 개발 이전의 옛 일산) 전체가 물에 잠겨 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6]
한강뿐만 아니라 지천에서도 홍수가 발생하여[7], 안양천 쪽의 광명시왕숙천 쪽의 구리시 등 수도권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왕숙천에서 많은 양의 부유물이 떠내려와 당시 건설 중이던 강동대교를 덮쳐, 교량 일부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 때 고양군 지역의 한강 제방을 견고하게 복구하면서 고양과 파주 등 경기도 서북지역 개발에 대비하고자 제방 위에 간선도로를 지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자유로'''다.
모 선생님의 수업 도중, 이 때 경험담을 말씀해 주셨는데 용산역에 내려보니 대합실까지 물이 차올랐고, 집이 한남동이었는데 집 근처에 가보니 일대가 다 잠겨서 동네 아저씨가 배를 타고 다니더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했다. 2022 수능 대비 강의에서는 버스 좌석까지 물이 차서 기사 아저씨가 더는 못 가겠다며 전부 하차하자고 말했고, 집에 가는 길을 벽을 짚으며 갔다고 한다. 동네에 갔더니 아저씨들이 배를 타며 자기를 부르고 한강 수위가 홍수 수위와 같아 친구네 약국도 잠긴데다가 자신의 집은 어촌이 되었다고 한다.(...)

5. 1996년 7월 홍수


1996년 7월 26~28일[8]에 걸쳐 경기도 북부(파주시, 연천군 등)와 강원도 북부(철원군, 화천군, 춘천시, 인제군 등)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9] 철원군의 경우 7월 26~27일 단 2일만에 492.8 mm의 폭우가 쏟아졌다.
아무래도 이 일대가 전방지대라 군부대 쪽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특히 군부대가 있는 곳은 대체로 산골짜기 쪽이 많은지라 다수의 군부대 막사가 산사태로 매몰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실종된 군인 수만 60여 명에 달했다.
당시 KBS 2TV에서 방송되었던 병영드라마 신고합니다도 이 수해로 인해 촬영에 차질을 빚었다. 특히 이 드라마의 주요 세트장 중 하나이던 '할머니집'이 수해로 유실되었다. 이 드라마 13회에서 부대가 비 피해를 입는 장면과 할머니집이 유실되어 탁주군단장 할머니(김지영 분)와 고은실(이혜영 분)이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집중호우가 한탄강임진강으로 흘러들었고, 한탄강 하류에 있던 작은 규모의 연천이 '''붕괴'''되면서 임진강 하류의 문산 일대를 직격했다. 저지대에 시가지가 있던 문산은 '''3 m''' 깊이로 물에 잠겨버렸고, 시가지 전체가 거의 초토화되는 피해를 입었다. 문산 시가지는 이후 1998년과 1999년에도 홍수로 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견디다 못하여 파주시문산역과 시가지 일부를 '''5 m 높이로 올려버렸다.'''
붕괴된 연천댐은 철거하고, 현재는 그보다 약간 상류에 훨씬 더 큰 규모의 한탄강댐을 건설하였다.(2016년 완공). 다만 댐이 완공될 때가 되니 이번엔 몇 년째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어서 본래 홍수 조절만을 위해 건설되는 댐의 용도를 가뭄 대비도 가능한 다목적댐으로 바꾸어 달라는 요구가 있다.

6. 1998년 8월 폭우


1998년 7월 31일~8월 1일 사이의 밤중에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최대 300 mm에 달하는 기습적인 폭우가 내려 계곡에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 지리산 야영객과 주민 등 10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리산 폭우 참사 참조. 하지만 이 참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8월 18일까지 집중호우는 전국을 돌며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전국적으로 엄청난 비 피해가 발생했다.[10] 서울의 경우 8월 4일 211.4 mm, 6일 122.9 mm, 8일 '''332.8 mm'''의 강우량을 기록하는 등[11] '''거의 20일간 매일같이 비가 쏟아졌다.''' 이 해 8월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1237.8 mm'''(...)[12] 이 해 서울의 연 강수량은 '''2349.1 mm'''..[13]
8월 전체의 위성영상
한국 전체에 대략 20일까지 구름이 엄청 발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전국적으로 사망 및 실종 324명, 재산피해 1조 2487억 원을 기록. 이때의 집중호우는 특히 좁은 지역에 시간당 100 mm에 가까운 엄청난 폭우가 단시간 쏟아지는 특징을 보여 '''게릴라성 집중호우'''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참고 사망자 중에는 한국일보 편집부 기자 김석진도 있었다.
동일한 시기에 중국 양쯔강 일대도 기록적인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쪽에 폭우를 쏟아낸 비구름대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이동하며 한국에도 폭우를 뿌린 것...

7. 2000년 7월 폭우


7월 22일 17시쯤부터 경기남부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수원은 '''331.2 mm'''라는 기록적인 수치의 폭우가 내려 가장 심각했다. 수원은 이를 계기로 홍수피해를 최소화 하기위한 대비를 철저히 하여 이후 발생한 중부권 폭우사태에도 수원만은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등 집중호우대비에 관해선 모범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8. 2006년 7월 폭우



9. 2010년 9월 폭우 사태


2010년 9월 21일 수도권 지역에 갑작스런 폭우가 내려 큰 피해가 발생했다. 주로 서울, 인천, 경기도 부천 등 남서부 지역에서 집중호우가 시작되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광화문 광장, 강남역 등 주요 도심지에서도 큰 피해가 속출하였다. 서울 전 지역에서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를 뿌리며 이날 하루 259.2mm의 집중호우가 내렸고 강남과 강서에 293mm, 마포에 280mm 등을 기록하며 위력적인 장대비가 내렸다. 당시 기준 9월 강수량으로는 1908년 관측 시작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 폭우 사태는 2010년 추석 연휴 첫날 발생하여 연휴 분위기에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었는데, 서울 양천구 신월동, 목동 등 일부 저지대의 주택 1만 6천여 세대가 침수되어 추석 연휴를 준비하던 많은 가정에 큰 피해를 입혔다. 또한 2010년 추석은 수요일이어서 월요일과 금요일에 휴가를 내면 최장 9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 기간이었기 때문에, 아예 해외로 떠나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공실 피해도 많았다. 피해가 발생하여 급하게 귀국하거나 귀국하고 보니 집이 풍비박산이 나 있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특히 2010년 폭우 사태는 2011년 폭우 사태의 전조와도 같았는데, 도심지 침수가 본격적으로 문제시되어 하수 시설 확충이 지적된 첫 집중호우였다. 특히 강남 지역이 개발된 이래로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이 처참하게 침수된 건 이 때가 처음이었으며, 네티즌들 사이에 강남도 폭우 앞에 처참히 침수된다는 것을 보여주어 많은 충격을 안겨준 케이스가 되었다. 이 해부터 포털 사이트에는 매해 여름 폭우 때마다 강남역 침수가 키워드로 등장하게 되었고, 신분당선 공사 및 삼성타운 건설로 인한 기존 하수도 구조변경이 문제로 지적되며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강남 지역에서는 강남역 일대 이외에도 양재IC 인근의 염곡지하차도가 침수되어 일시적으로 교통이 통제되었고, 도심지역이 아닌 헌릉로 구간 비도심 지역의 저지대도 일부 침수되어 교통에 불편을 겪었으며,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히는 대치역 인근이 전면 침수되어 # 폭우 앞에는 강남 고가 아파트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1년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남부순환로 인근도 이 때 크게 침수되면서 # 사당역 사거리에서 교육연수원 인근 저지대 구간 교통이 한동안 통제되었고, 사당역, 방배역 등은 우면산 능선에서 흘러내려온 물로 큰 피해를 입어 2호선이 무정차 통과하기도 하였다.#
또한 광화문광장#s-5.4, 강서구청 사거리, 오류역, 홍대입구역, 신용산역#, 군자역, 상일동 등#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서울 주요 도심지역들이 잇따라 침수되며 큰 피해를 입어 당시로서는 역대급 폭우라는 말을 붙이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서울의 주요 번화가 지하철역이 물에 잠기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지하철역의 폭우 대응이 미흡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이후 대부분의 서울 지하철역 출입구 주변에 홍수용 물막이 설비를 확충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2011년 발생한 더욱 큰 폭우와 역대급 재해로 인해 이슈의 크기로는 약간 묻힌 감이 있으나, 어쨌든 2010년대의 시작을 장식한 심각한 폭우 사태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큰 사건이었다.

10. 2011년 중부권 폭우 사태




11. 2013년 중부 폭우



12. 2014년 동남권 폭우 사태




13.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




14. 2017년 중부권 폭우 사태




15. 2017년 동남권 폭우 사태




16. 2018년 5월 중부권 국지성 폭우 사태




17. 2018년 강원 영동권 폭우 사태




18. 2018년 한반도 폭우 사태



바로 전의 강원 영동권 폭우 사태랑 바로 이어서 일어나고, 태풍 솔릭이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고 발생한 폭우라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졌다.

19. 2020년 한반도 폭우 사태




[1] 김양수 작가의 웹툰 생활의 참견에 당시 홍수가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https://m.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5613&no=154&week=mon&listSortOrder=ASC&listPage=6 김양수 작가의 나이, 당시 풍납동에 거주했던 사실로 보면 거의 이때의 홍수가 에피소드의 소재가 맞아보인다.[2] =100 Gg[3] 판례 84가합5010 참고.[4] 선고 90다카10527.[5] 을축년 대홍수 이후 최고 기록.[6] 이로 인해 3호선 구파발역까지 침수피해가 일어났다.[7] 한강 본류가 불어나면서 지류의 흐름이 본류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범람하였다.[8] 당시 미국에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지만 각 방송사의 메인뉴스에서 올림픽 소식보다 이 홍수 소식을 먼저 보도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9] 동일시기 발생한 북한의 홍수와도 연관이 있다.[10] 여간해서는 폭우가 내리지 않는 경북 북부지역도 예외가 아니었고, 영동지방 정도만 큰 피해가 없었다.[11] 이 당시 서울과 2시간 거리인 강화군 일대에 8월 5일 11시~6일 11시 24시간 동안 무려 '''619.5 mm'''의 비가 내렸다. 서울은 그나마 내륙이어서..[12] 평년값으로 서울의 '''1년''' 강수량과 맞먹는다![13] 이정도면 세계지리에서 배우는 열대우림 기후에서의 연 평균 강수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