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고등학교

 



'''천안고등학교'''
天安髙等學校
'''CHEONAN HIGH SCHOOL'''
[image] [image]
'''교 훈'''
'''근면 · 강직 · 검소'''
'''국가'''
<color=#373a3c><colbgcolor=#98bbff> [image] 대한민국
'''분류'''
<color=#373a3c> 일반계 사립고등학교
'''개교'''
<color=#373a3c> 1954년 4월 15일 계광고등학교
'''이사장'''
<color=#373a3c> 제11대 오정애
'''교장'''
<color=#373a3c> 제8대 손문종
'''학생 수'''
<color=#373a3c> 31학급 1,068명
'''교직원 수'''
<color=#373a3c> 66명
'''성별'''
<color=#373a3c> 남자고등학교
'''건학이념'''
<color=#373a3c> 경천애인 · 인재양성
敬天愛人 · 人材養成

'''상징동물'''
<color=#373a3c> 청마
'''교목'''
<color=#373a3c> 향나무
'''교화'''
<color=#373a3c> 매화
'''주소'''
<color=#373a3c>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000ea2 봉명로 53
}}}
'''학교법인'''
<color=#373a3c> 계광학원
'''관할교육청'''
<color=#373a3c> 충청남도교육청
'''홈페이지'''
<color=#373a3c> 천안고등학교 공식 홈페이지
학교알리미 천안고등학교
천안고등학교 대나무숲

[image]

'''자부심! + 도전! = 강한 천고'''[1]

[2]
- 천안고등학교의 슬로건

1. 개요
2. 역사
3. 구조
4. 상징
4.1. 교가
4.2. 청마의 노래
4.3. 응원가
4.4. 청마의 행진
5. 특징
5.1.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
5.2. 천안고 동문회
5.3. 청마반
5.4. 기숙사
5.5. 학교 건물의 특징
5.6. 진학 실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
5.7. 청마 예술제
5.8. 방과후 활동
5.9. 기타 사항
6.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6.1. 버스
6.2. 철도
7. 출신 인물
8. 기타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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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안고등학교 (天安髙等學校, Cheonan High School)'''충청남도 천안시에 위치한 일반계 사립 남자고등학교이다. 학교법인 계광학원의 설립자인 우강 서광벽 선생에 의해 1954년 개교하였으며, 같은 재단의 계광중학교와 부지 및 시설 일부를 공유한다.

2. 역사


  • 1951년 12월 3일 : 학교법인 계광학원 설립인가
  • 1954년 2월 19일 : 계광고등학교 3학급 설립인가
  • 1954년 4월 15일 : 천안시 오룡동 61번지 개교 (서광병 초대교장 취임)
  • 1955년 3월 2일 : 6학급으로 학칙 변경
  • 1955년 6월 30일 : 천안시 봉명동 83번지로 교사 이전
  • 1959년 4월 17일 : 천안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 1960년 2월 19일 : 9학급으로 학칙 변경
  • 1971년 12월 1일 : 18학급으로 학칙 변경
  • 1975년 10월 27일 : 27학급으로 학칙 변경
  • 2000년 10월 18일 : 30학급으로 학칙 변경
  • 2003년 6월 5일 : 제11대 오정애 이사장 취임
  • 2014년 9월 1일 : 제7대 황춘배 교장 취임
  • 2015년 2월 3일 : 제60회 졸업식(394명)
  • 2016년 3월 2일 : 2016학년도 입학식(417명)
  • 2017년 2월 7일 : 제61회 졸업식(379명)
  • 2017년 3월 2일 : 2017학년도 입학식(350명)
  • 2018년 2월 9일 : 제62회 졸업식(369명)
  • 2018년 3월 2일 : 2018학년도 제65회 입학식(311명)
1951년에 계광학원 설립인가를 받고 1954년 4월 15일 천안시 오룡동에서 계광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 당시의 위치는 천안제일고등학교[3] 앞의 버들육거리와 남부오거리 사이의 중앙로 인근으로 추정된다. 당시만 해도 오룡동은 천안시 구도심의 한복판으로, 천안의 중심이었다. 초대 교장은 계광학원을 설립한 우강 서광벽 선생이 계광학원의 초대 이사장과 함께 겸임하였다. 아후 바로 다음해인 1955년에 지금의 봉명동 부지로 이전하였다. 천안고의 개교기념일은 특이하게도 오룡동에서 개교한 날이 아니라 봉명동 신축 부지로 이전한 6월 30일로 되어있다. 때문에 매번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걸린다. 계광-천고 라인이라면 6년 내내 못 논다.[4] 1959년에 지금의 천안고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8년 2월에 제62회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3. 구조


본관, 신관, 기숙사(웅비관), 세미나실 및 교실(우강관&청마홀), 강당(J&C홀), 구 강당(계광홀), 급식실, 정심관(도서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음악실, 과학실 등의 특수 교실은 계광홀 1층에, 도서실과 자습실은 2층에 있다. 정심관은 2017년 5월 16일 이전 급식실 자리에 새롭게 지어졌다.
운동장은 중앙정원 아래쪽에 넓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운동장에서 학교 건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계광중학교와 운동장을 공유한다 [5]
학교정문에서 급식실 올라가는 길, 중앙정원, 운동장 옆길 등에 초목이 잘 가꾸어져 칙칙한 남고의 우울함을 약간 덜어준다.
중앙정원 한가운데에는 천안고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매설한 타입캡슐이 자리잡고 있다. 2004년 6월에 매설되었으며 개봉은 2054년 6월 30일 개교 100주년에 거행될 예정이다.

4. 상징


여러 상징이 있지만, '''청마'''가 상징의 키워드이다. 특별반은 청마반, 예전 교지 이름도 청마[6]...
아래 노래들은 1학년 음악시간에만 몇번 부르고, 교가 제외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아예 부를일이 없다. 교가는 부를 일이 좀 있다. 졸업하고 나서도 동문 모임하게 되면 항상 부른다.
2020년 입학한 학생들은 교가를 제외하고는 있는줄도 몰랐다.

4.1. 교가


1절
차령맥 줄기차게 뻗어온 아래
위례성 옛 역사 빛을 뿌리고
오룡의 정기 받은 거룩한 땅에
슬기로운 건아들 모여들었네
(후렴)씩씩하게 자~라난 천고[7]의 열매 금수강산 곳곳에 씨가 되겠네
2절
화랑도 이어받은 우리의 몸에
광덕을 터전삼고 관순을 따라
이나라 이루-울 새 일꾼들이
배움을 찾으려고 모여들었네
(후렴)
같은 법인인 계광중학교와 가사 중간에 ''''천고''''가 ''''계광'''으로 달라지는 걸 제외하면 완전히 같다. 그래서 계광중에서 바로 올라온 학생의 경우 입학식날부터 교가를 몰라서 합죽이가 되어야 하는 일은 없다. 아무래도 같은 재단을 공유하다보니 생기는 일인데, 계광중이 아닌 다른 학교에서 천고로 진학한 친구들에게는 다소 위화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입학식날 전통이라고 하면서 교가를 배운다.

4.2. 청마의 노래


1절
근면한 밝은생활 청마의 기상
희망찬 내일 향해 힘차게 뛴다
오룡의 큰 기개로 하늘을 뚫는
우리는 젊은학도 보람에 산다
(후렴)아 아 슬기로운 천고의 청마
아아 용맹스런 천고의 청마
2절
강직한 우리 성품 내일의 기둥
무한한 가능성의 젊은 우리들
청운의 높은뜻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젊은학도 꿈을 키운다
(후렴)
3절
검소한 생활태도 고이 간직한
전통의 우리 천고 명예를 지고
향나무 푸른기상 빛을 발하는
우리는 젊은 학도 희망에 산다
(후렴)
여담으로 1, 2, 3절의 첫 단어는 학교의 교훈 근면, 강직, 검소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4.3. 응원가


청마 청마 청마야! (땃땃땃)
오룡의 정기 받았다 청마 용사들아
대적할 자 그 누구냐 청마 전진한다
우리는 근면한 청마 용사다
영원히 전진할 우리는 청마
청마 청마 청마야!
배구부나 골프부가 있지만 학생들이 응원을 가지는 않기 때문에 부를 일이 없다.

4.4. 청마의 행진


1절
숭고한 피땀들이 얼룩진 이 곳
후박과 향목으로 감싸인 천고
백제의 옛정신을 되살려보세
이곳은 청마가 달리는 배움의 동산
(후렴) 우리 모두 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
우리모두 달려라 달려 청마의 행진
2절
근면 강직 검소를 횃불삼아서
부자나라 이룩할 길을 밝히세
대한나라 역군될 천고의 청마
열심히 갈고 닦아 씨를 뿌리세
(후렴)
3절
높푸른 하늘위로 치닫는 청마
해맑은 태양아래 뭉친 천고인
나가자 싸우자 모두 이기자
(후렴)

5. 특징



5.1.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


1954년에 인문계 고등학교로 개교하였는데, 저 때만 해도 천안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천안권역 뿐만 아니라 충남권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주로 장항선 철도가 다니는 지역이나, 충남 서해안권 지역에서는 지명도가 있었다. [8] 1950년대만 해도 천안에는 계광고등학교(천안고등학교의 전신)와 '''천안여고'''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인문계 고등학교가 부족했던 옛날에는 멀리 농촌지역에서 올라와 하숙하며 다니던 학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산, 예산, 서산, 당진, 태안 등지에서도 천안고등학교에 지원했을 정도이다. 지금은 전부 재개발에 들어간 천안고등학교의 아랫 동네인 봉명동 부창구역이 당시 천고 학생들의 하숙집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천안/아산권의 인구가 1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도시의 세력이 확장되어 지역내에서는 전통의 명문교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여담으로 타 지역과는 드물게 '''사립 고등학교'''가 지역명을 쓰고 있는 특이한 경우.
사실 전국적으로 보면 천안고보다 오래된 학교들은 많이 있다. 천안 지역만 하더라도 제일고(과거 농고)가 천안고보다 20년은 먼저 개교했고, 공고, 심지어 천안여고도 천안고보다 먼저 생겼다.[9] 애초에 '''민간인이 사재를 털어 고등학교를 설립하기 전까지 공립 일반계고를 지을 생각을 안했다'''는 쪽이 적절할 듯. 농업과 경공업 중심이었던 50-60년대의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사실 농고나 공고를 보내는게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여고가 먼저 생긴 이유는 '''어차피 농고나 공고는 남자만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천안고가 지역 명문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유지의 자제들이 이 곳에 진학하거나, 졸업생 본인이 지역 유지가 되어 동문 파워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2. 천안고 동문회


천안고에서 멀지 않은 충무로 길가, 충무병원 맞은편에 총동문회가 2층을 임대하여 쓰고 있었다. 어떤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2017년 현재 동문회 사무실은 원성동 구 집합주유소 사거리 근처로 이전한 상태.

천안 지역에서 천안고 동문회의 힘은 상당한 편이다. 천안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서북구에 새로이 지어진 신생고등학교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중앙고북일고에 비해서도 동문의 입김이 쎄다. 그도 그럴 것이 1950~60년대에 천안에서 유일한 인문계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10]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예비역 육군 대장 박찬주[11] , 기자/앵커 출신으로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용학,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현 천안시장 구본영이 천안고 출신이며, 교사 출신의 김지철 현 충청남도 교육감도 천안고 출신이다. 천안시의원과 충남도의원에 재직 중인 동문도 많다.
천안고 동문들의 힘이 얼마나 결집되느냐에 따라 선거의 향배가 갈리기도 한다. 2000년 4월 실시된 16대 국회의원 천안 갑 선거구가 대표적이었다. 당시 천안 갑 선거구에 등록한 천안고 동문은 전용학 후보 한 사람이었고, 동문회의 빵빵한 후원을 등에 업고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전용학 후보[12]를 포함한 복수의 동문[13]이 출마했고, 결국 동문 파워가 분산되어 모두 당선되지 못한 흑역사가 있다. 여담으로 그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현재 4선 의원인 양승조 국회의원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일한 천안 갑 선거구에 천안고 출신의 한태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으나, 본인의 첫번째 선거인데다 현역의원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구 획정 탓에 새누리당 후보에 패배하고 말았다. 그래도 첫 출마임에도 30% 중반대의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총동문회와는 별도로 각 지역별 동문회가 존재한다.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된 동문의 경우 '''재경(在京) 천안고 동문회''', 대전에서 생활하는 동문은 '''재전(在田) 천안고 동문회'''에서 활동하는 식이다. 그리고 특정 대학별로 동문회가 따로 있기도 하다. 서울대학교의 천서회, 고려대학교의 청호회가 대표적이다. 서울 지역 대학가에서 지방 일반고 동문회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 속에서도 천안고 출신 동문회는 압도적으로 잘 운영되고있다.[14] 여담으로 천안고등학교 동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대회가 해마다 5월에 열리고 있다.

5.3. 청마반


청마반은 1993년부터 운영된 천안고등학교의 심화반이다. 93년 당시 천안고는 평준화 고등학교였다. 비평준화 시절에 비해 상위권과 중위권 학생들의 학력 편차가 너무 커지자 대학 진학 실적을 우려한 교사들이 상위권 학생들을 모아 심화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청마반'의 시작이다. '청마반'이라는 세련된 이름은 비교적 최근인, 2005년 신입생인 52회부터 생겨났다. 그 전 51회까지는 '생활관' , '기숙반' 등 별도의 호칭 없이 학년별로 다르게 불리다가 '청마반'으로 명명되어 현재까지 내려온다. 청마반은 평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특별'''한 수업을 받는데, 주로 국영수 위주로 수업을 받는다.
속히 말하는 특별반답게 성적 상위권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청마반 학생들에게는 정심관 3층에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자습실이 있어 야간 자습이 끝난 뒤 추가적으로 청마반 심야자습을 실시한다. 63회 이전 학생의 경우 총 60명을 선발해서 기숙사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고, 40명 넘게 기숙사를 신청했을 경우, 그 중 상위 40명을 선발해 기숙사에 입사했다.
2016년 고1 학생들인 63회부터 기숙사 시스템이 개편되어 30명 정원의 제 1기 '''청마 웅비반'''이 새로 편성됐다. 이 개편된 청마반은 이전과 다르게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며, 성적 상위권 학생들 중 청마반에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보고 선발한다(내신 40% + 모의고사 40% + 면접 20%). 2018년에는 청마반에는 내신 3등급인 학생이 존재할 정도로 내신 커트라인이 낮아졌다.
2021년 입학생 기준으로는 40명 정원(기숙사 20명 포함)의 청마반을 편성하여 프로그램 진행 예정이다(편성기준: 중학교 내신(200), 진단평가(300), 신입생과제(50), 면접(50) )
학교 내에서 청마반 시스템은 특정한 [15] 학생들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있어서, 학생들 간의 학교내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정 대학교[16] 설명회를 청마반 중에서도 상위권 대상으로만 진행하기도 한다.
참고로 2015년 서울대학교 입시설명회는 전교 20등 까지만 선정해서 사전공지만으로 진행했다.

5.4. 기숙사


천안고 열정관(1, 2학년 하얀 건물) 뒤쪽 쌍용대로에 면하여 '''웅비관'''이라는 기숙사 건물이 있다. 웅비관은 2006년 5월 7일 일요일에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에는 4인 1실 * 26실 = 104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고, 2019년 리모델링 이후에는 2인 1실 * 26실 = 52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개교 이래 처음 생긴 기숙사 전용 건물으로, 천안고 51회가 3학년 때 처음으로 기숙사를 사용하여 기숙사 1기가 되었다. 웅비관이 생기기 전에는 계광홀의 집현전 맞은 편 화장실 옆 자습실이 비어있어, 캐비넷 몇 개 갖다놓고 생활관으로 활용했다. 학년 구분 없이 그냥 이불 깔아놓고 자는 곳이었다고 한다. 49회를 마지막으로 사용 종료했다.
2015년까지는 선발된 청마반 60명 중에 40명을 선발했고, 2016년 신입생부터 제 1기 청마 웅비반이 되어 웅비생 30명을 선발한다. 2021년 신입생 부터는 청마반 40명중 20명을 선발한다. 2018년 65회 신입생 기준으로 내신 50%, 진단평가 50%(흔히 말하는 반배치고사와 비슷한 수준이다.)로 1차 청마반 후보를 선발한다. 그 중 신청을 받아서 면접을 거쳐 36명의 1학년 1학기 청마반을 확정한다. (참고로 청마반 개편 때문에 2019년에는 1학년 20명, 2학년 20명, 3학년 12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렇게 청마반에 선발된 학생들은 한 학기동안 다음과 같은 일정을 따르게 된다(2018학년도 1학년 기준). 저녁 배식 후 6시 40분부터 8시 10분까지 청마반 특별 수업을 진행하고, 8시 30분부터 10시 40분까지 심야 자율학습을 한다. 약 20분간의 자유시간 이후 11시에 기숙사 점호를 한다. 토요일에는 주말 자습이 있는데, 평일과 같은 8시 40분까지 정심관 3층으로 등교하여 12시까지 진행된다. [17]
그리고 2019년 2월, 웅비관 리모델링이 진행되었다. 변경사항으로는 먼저 수용인원 축소가 있다. 원래 2층침대 2개가 놓여있어 4명이 한 방을 사용했으나, 1층 침대 2개로 바뀌고 2인 1실로 개편되었다. 또한 각 호실 별 냉장고 설치가 있다. 냉장고는 삼성전자의 RR09FARAEWW 모델로, 간단한 음료 정도를 보관할 수 있는 크기이다. 그리고 각 층 학습실도 리모델링되었는데, 과거에 놓여 있던 독서실 책상을 모두 치우고, 개방형 책상을 구비하였다. 그 외에 옷장과 에어컨도 교체되었다.

5.5. 학교 건물의 특징


기숙사와 J&C홀을 제외하고 모든 건물이 이어져 있다. 때문에 비 오는 날에도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구름다리가 있지만 비는 다 맞는다. 어차피 기숙사는 잠 잘때나 들어가는 곳이고, 평상시에는 J&C홀을 이용할 일이 별로 없긴 하다. 우강관과 본관 건물 2, 3층이 서로 이어져 있고, 열정관과 본관은 구름다리로 이어져있다. 3학년 8반이 사용하는 우강관 3층 가장 끝 교실은 뒤쪽이 엄청나게 넓다. 그 곳에서 말뚝박기하고 축구를 해도 전혀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교실 뒤쪽이 휑하다. 교무실이 여기저기에 있다. 교감이 있는 본관에 가장 큰 본교무실이 있고, 각 학년단마다 교무실이 따로 있다. 그리고 교장실은 우강관 1층 청마홀 입구 반대편에 있다. 또한 남자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총 2곳의 여자화장실이 있는데, 교원용 및 내빈용 화장실이다. 2017년 5월, 웅비관 옆쪽 옛 급식실 자리에 '정심관' 이라는 건물이 들어섰는데, 도서관과 음악실, 자습실같은 다목적실이 위치해 있다.
* '''본관'''
본부 교무실과 3학년 교실(3학년 9반~10반), 체육보건실, 대회의실, 교과교실, 일본어실, 영어교실(English Bay, Morning Calm), 위클래스, 학생복지부실이 위치한 곳이다.
* '''우강관'''
3학년 교실(3학년 1반~8반), 이전에는 청마반 학습실이었지만 현재는 3학년 문과반이 된 4층, 스마트 교실, 로봇봉사단 교실, 교장실, 이사장실, 법인사무국, 과학정보실, 청마홀이 위치해 있다. 우강관 1층 청마홀 뒤편에는 콜로세움이라고 불리는 노천극장(야외 공연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저녁시간에 학생들이 주로 캐치볼을 하기도 한다. 2017년부터 청마 미니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라고 한다.
* '''열정관'''
신관이라고 불린다. 1, 2학년 교실, 1학년/2학년 교무실, 진로활동실, 기술/가사실, 국어교실(우듬지실)이 위치해 있다.
* '''정심관'''
1층에 음악실, 밴드와 오케스트라 자재가 있는 음악 준비실, 미술실, 여러 동아리가 사용할 수 있는 특별활동실, 체력단련실이 있고, 중국어실인 공자학당이 있다. 2층에는 도서관과 열람실, 3층은 청마반 학생들 전용으로, 청마/웅비 학습실, 하브루타실, 교사실과 세미나실, 창의인성부 교무실이 있다. 일부 학생들의 심한 장난으로 화장실이 상습적으로 막히게 되여 1층 장애인 화장실과 청마반 학생들이 사용하는 3층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개방하지 않는다.
* '''과학관'''
2층에 구 도서관이 있었다. 집현전이 뒤편에 있으며 3층에는 계광중학교 학생이 사용하는 계광홀, 1층에는 과학실과 창고가 있다. 참고로 현재 지구과학실은 원래 음악실이었는데 정심관 신축 이후 음악실이 이전하면서 지구과학실이 되었다.
* '''웅비관'''
학생 기숙사. 각 학생 숙소와 학습실이 있다.
* '''후생관'''
1층에 매점과 급식 조리실, 2층에 급식실이 있다. 엘레베이터가 있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19년만 하더라도 1층에 주차장, 2층에 급식실과 조리실[18]이 있었다. 지금도 흔적은 남아있어 급식실 2층 타일 색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게 그 이유 때문이다.
* '''J&C 홀'''
학교 체육관.

5.6. 진학 실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 항목을 읽기 전, 이하 서술들은 모두 비평준화 시절 천안고의 이야기임을 유념하자. 평준화가 된 지금은 타 고등학교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닥치고 서울대를 많이 보내면 된다!!!'''

지방의 사립 남자고등학교 중 안 그런 곳이 별로 없겠지만, 정말 고3 및 졸업생의 진학 실적에 대한 집착이 강한 학교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속칭 '''Top3 (천고 중앙 북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기인하는 악습이다. 천안 지역에서 학교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입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이고, 그것이 우수한 신입생을 유치하여 좋은 대입 결과를 내는 선순환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1995년 제 42회 입학생을 시작으로 비평준화로 돌아선 이후, 쓰리고 그 중에서도 천안고는 몇 년간 상위권 학생을 제대로 유치하지 못해 꽤나 애를 먹었다. 인원수+공립고 프리미엄의 중앙고, 충남 각지에서 우수 학생이 몰려드는데다 두둑한 재단의 지원을 둔 북일고와 경쟁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프로스포츠마냥 중학교를 졸업하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FA계약처럼 이것저것 걸어서 학생을 유치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천안고만 불리한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북일이나 중앙고 역시 해마다 말도 안되는 치킨 게임을 벌여야 했다.
그 시절 천안고가 내세운 장점으로는 크게 '''막강한 동문 파워''' + '''깔끔한 교복''' + 서부 지역에 위치한 '''편리한 교통''' 정도였다. 그러나 실상은 예비 고등학생들에게 그다지 어필이 안되는 내용일 뿐이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예비 고 1이 동문 파워의 막강함은 어떻게 체감할 것이며, 교복은 그 자체로 억압의 상징 아니던가. 게다가 천안 쌍용동을 비롯한 서부 지역에 택지가 개발되기 전에는 천안고가 있는 봉명동은 '''천안의 외곽''' 시골 동네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교통이 딱히 편리하지도 않았다. 이래저래 중앙고와 북일고에 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대입 실적을 그럴싸하게 내서 플래카드를 거는 것이 확실한 어필 전략으로 자리잡게 된 것. 게다가 당시의 천안고는 서울대 진학자에게 '''입학금 및 1학기 등록금'''을 하사하는 엄청난 특전을 주었다. 고교 졸업성적과는 별개로.
이게 먹혀들어갔던 것이, 정말로 그 시절엔 서울대 숫자만 따져도 충분히 천안시내에서는 어필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의 '''중학교 3학년'''에게 가고싶은 대학을 물어보면 '''연세대, 고려대요!'''라고 말하는 애들이 별로 없다. 다들 서울대라고 말하지.... 사실 서울대 진학 숫자만 가지고 학교의 척도를 결정한다는게 말이 안되긴 하는데, 그래도 프로스포츠에 준할 정도로 박터지게 벌어지는 천안시 고입 유치전쟁에서는 엄청난 무기가 되는 것이다. 겨우 '''서울대 합격자 수'''일 뿐인데 . 서울대를 많이 보낸 학교에 진학함으로써 일종의 후광효과를 향유하는 셈인데... 그렇다고 이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실제로 여러 해를 거치며 증명된 사실이다. 대입에서 고교 내신 반영 비중이 높아졌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천안지역의 상위권 남학생들은 기숙사학교+상위권 집중관리로 수능 준비에 유리한 북일고와 학년당 학생 수가 많아 내신관리에 유리한 중앙고를 지망하는 바람에 입시경쟁에서 도태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2005년~2007년 사이의 천안고 아웃풋은 시내 쓰리고와 비교해서 게임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물론 천안고의 삽질로 인한 반사이익은 쓰리고의 나머지 학교인 북일고등학교천안중앙고등학교가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집착은, 대학 진학실적이 좋으면 우수 신입생 자원이 풍부해져서 3년 후에 다시 좋은 진학 실적을 내게 되기 때문에 주변학교와의 경쟁이 수월해지고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쥐는, '''입시 선순환'''구조를 안정적으로 얻기 위한 것이었....으나 항상 잘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유치전에 활용할 수 있는 졸업생들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예비 고1학생들보다 4~5년 정도 선배인, 고입 당시의 대학교 1~2학년들의 입시실적이다. 그러나 천안고가 서울대를 20명이나 합격시키며 승승장구하던 2002~2003년 당시에 입학했던 천안고 50~51기의 실적은 말 그대로 개교 이래 최악이었다. 그나마 50기는 49기 재수생들의 커버 효과로 외견상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재수생 엄호를 받지못한 51기는 말 그대로 폭망...
이는 1등 지상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대입을 준비해보면 서울대는 커녕 연세대, 고려대에 진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다. 하물며 연고대는 아니지만 KAIST포항공대도 있고, 수도권 및 각 지방에 산재하는 각종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예과 등등이 있는데... 진짜, 전근대적인 발상에 가깝지만 실제 진학지도를 지휘하는 교사들의 기본 마인드는 '''닥치고 서울대 써라. 나머지는 잡대학'''. 학교는 어떻게든 서울대 합격자를 늘리고자 별의별 꼼수를 다 부리게 되었다.
일단 고3이 되어 어느정도 상위권에 든 학생들을 추려낸 다음 그들을 속칭 '서울대반'으로 편성하여 집중관리에 들어간다. 이 집중관리라는 것이 대입에 민감한 고 3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엄청나게 주는 것인데다, 교사들의 추가 수업을 강요하는 시스템인 것. 게다가 기본적으로 학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오로지 성적'''만으로 학생을 판단하는, 학생을 도구로서 간주하는 권위적인 작태이다. 또한 학생부 조작등의 관행이 있어왔으며[19] 특정 방과후 수업 [20] 을 위 학생들 전용으로 설치하여 타 학생들은 수강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일반 학생들이나 상위권 학생들 모두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편이다. 더욱이 학교가 학생에게 유무형의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제 아무리 해당 학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더라도(...) 일단 성적이 되는 학생에겐 전공 따지지 말고 무조건 서울대에 쓰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식이다. 즉 주어진 지원 기회 중 한번은 반드시 (전공 따지지 말고, 즉 관심있는 학과든 아니든 따지지 말고) 서울대에 지원하라는 식인 것이다.[21] 게다가 서울대라는 곳이 보통 까다로운 곳이 아니기 때문에,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에 제약조건을 걸어놓는데 '''그것마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이를테면 최근까지도 서울대는 인문계는 국사와 제2외국어를 무조건 응시해야했고, 자연계는 ll과목을 1개만 응시할 수 있었는데, 이런 기준을 강요하는 곳이 인서울 대학 중에서는 서울대 뿐이라, 본인의 취향이나 대학 진학 후 진로에 맞춰서 선택과목을 응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 초반까지 국사는 1학년 과목이면서도 수능에 출제되는 해괴한 과목인데다 공부 분량이 많아서 진짜 서울대 지원자를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했었던 건데 그걸 강요한다니.. 게다가 자연계 상위권 학생 중에서 물리에 자신이 없거나 향후 진로를 물리를 쓰는 쪽으로 하지 않을 학생에게 서울대 지원하려면 3+1(l과목 3개, ll과목 1개)밖에 안되니까 화학 l+ll - 생물 l+ll 조합을 공부한 최상위권에게 무조건 물리1이나 지구과학1을 응시하게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제2외국어는 애초에 수능 수준의 수업을 하지도 않으면서 알아서 챙기라는 식이다.
이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엄청난 반항이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그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더라도 학교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일례로 IMF 직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 자연계열 최상위권들은 의대, 치대, 한의대, 약학 계열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이 많아졌는데, 그런 학생들의 경우 고3에 올라갈 때쯤 되면 애시당초 서울대에 가겠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서울대에는 한의대, 치대를 선발하는 전형이 없었을 뿐더러...[22] 적당히 눈을 낮추면 갈 수 있는 학교가 전국 여기저기에 많기 때문. 바로 그런 학생들에게까지 '''학교에 대한 명분'''을 앞세워 서울대 원서질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게 되었던 것. 물론 학생 개인이 합격증 콜렉터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학교와 학생이 서로 윈윈하는 것이겠지만 실제 대부분 학생에게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래서 1학기 수시가 있던 2000년대 중반까지 학교는 내신 1등인 학생과 원서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고[23], 일부 학생은 정당한 권리를 앞세워 학교로부터의 압박에서 벗어나지만, 졸업한 이후에 교사들이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의리 없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졸업생 선배'''라고 이야기를 하는 등 뒷끝이 좋지 못한 관계로 남는다.
그렇다고 상위권 관리를 제대로 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원래 FA계약에는 먹튀가 존재할 수밖에 없듯이 고입을 치르며 데려온 우수한 신입생들 중에서도 성적이 급락하는 학생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 학생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성적 상위권에서 멀어지지만 오로지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상위권 집중관리를 동일하게 받기도 한다. 반대로 입학할 때는 상위권이 아니었으나 학년이 지나면서 두각을 드러내는 언더독과 같은 학생은 '''특별반 소속이 아니라면 무시한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었는데, 2007년 졸업생 중 인문계 최고득점자 학생은 이렇게 특별한 관리를 받지 않은 학생이었던 것. 결국 성적만 보고 이 학생에게 서울대 원서를 쓸 것을 요구했는데 이 학생은 원래부터 서울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제2외국어'''를 응시하지 않았다.[24] 해도해도 안되니까 결국 이 학생이 교차지원(......)을 시킨 것. 애시당초 상위권을 제대로 관리했다면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심각한 경우[25]에는 졸업하고 나서 수 년이 지나 '''개인적인 목표'''가 생겨서 수능을 다시 치른 '''예비역 20대 중반 졸업생'''등에게도 연락을 취한다. 이를테면 그 학생의 동기 중에 서울대 재학중인 졸업생에게 연락을 해서 '''"XX야 너 OO이랑 친구지? 이번에 그 친구가 수능을 봤던데... 샘이 그 친구랑 그렇게 안 친해서 그런데 잠깐 학교에 같이 와 볼 수 없을까?"''' 라고 유인하는 식으로[26] 서울대 원서질을 강요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어거지로 낸 진학실적이 고교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여전히 먹혀들어간다는 데 있다. 그 학교의 진학실적 자체가 자녀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데 결정적인 유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러 특목고와 비교를 하면서 특목고를 따라잡겠다고 더 강도를 늘리고 있다. 그나마 2016년 신입생부터 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에, 고입 인풋을 높이기 위한 불필요한 경쟁 및 진학실적 요구는 많이 줄어들거라 기대된다. 다만 현재는 북일고자율형 사립 고등학교가 되어 경쟁에서 이탈했고, 천안중앙고의 프리미엄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이라 천안고가 가만히 있어도 우수학생들이 알아서 오는 형국이 되었다...
참고로 수시 합격 발표가 난 후 아이들이 정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문자가 올 수도 있다. 열어보면 그 학년도에 천안고가 명문대를 얼마나 보냈는지 친히 알려준다. 의대 3명, 서울대 3명, 성균관대 16명... 등등.

5.7. 청마 예술제


청마 예술제는 천안고등학교의 학생 축제로 1988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주로 벚꽃이 피기 직전 혹은 지고 난 다음인 4월의 어느 토요일에 열렸었다. 왜냐하면 돈으로 무장한 어느 신생학교와 축제가 겹치지 않게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벚꽃은 그 학교가서 보면 되기 때문에... 사실 남학교 축제가 다 그렇듯 콘텐츠 자체가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학교가 개방되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에 중요도가 높았다. '''학교에 여학생들이 오기 때문.'''
그때그때 조금씩 콘텐츠가 바뀌지만 연례행사도 있었다. 흑사회 중앙정원 전시회나 '''미스 청마''' 선발대회, 1학년 반장들이 주체가 되어 뽐내는 '''우정의 무대''' 등등.... 인접한 천안여상과의 콜라보도 인기가 있었다. 2004년에는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학교에서 돈을 왕창 쏟아부었는데, 그 때는 무려 구피가 왔었다. 일개 지방 고등학교 축제인데.. ㄷㄷ
2004년 5월 29일 토요일에는, 천안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개교 50주년 기념축제를 천안종합운동장 광장에서 따로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에 개그 콘서트에서 잘 나가던 박준형김기수가 사회를 봤고, 빅마마, 배일호, '''장나라''' 등이 초대가수로 출연했었다. 교사들이 소녀시대가 왔다는데 사실이다! 당시 사진과 영상. 진짜다. [27] 심지어 옆 학교인 계광중에서는 2017년에 김보겸이 왔다! 1학년 한정이긴 하지만 보겸을 만날수 있었다고 하기에 엄청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졌었다. 사실 경쟁은 치열하지 않았고 특정 학급이 독점으로 만났다.
2013년을 마지막으로 토요일에 하던 축제는 마지막이 되었고, 2014년부터 동아리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수능 끝난 뒤 쯤 평일에 열리게 되었다.
2017년도 축제 찬조공연 도중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찬조공연이 금지되었지만 2018년도에도 왔다.

5.8. 방과후 활동


매일 8교시 방과후 시간에 50분간 진행하는 활동으로 보충학습의 성격을 띠고 있는 교과 방과후와 창의인성 활동의 성격을 띠고 있는 창의활동 방과후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주로 교과 방과후를 선택하는 편.
신청이 시작되면 서버가 폭주한다. 신청시 인기있는 과목은 5분 내로 매진되니 주의 하도록. 요즘들어 수강신청 마감이 10초가 채 안 걸리는 과목들이 많아지고 있다. ex 국어, 수학심화
총 4개의 유형(A, B, C, D)이 있는데 한개의 과목이라도 유형에 따라 다르거나 없을 수 있다. 특별한 방과후 부서가 아닌이상 방과후는 100%가 2개 이상 신청해야 하며 3개 이하로 신청했을 경우 빈 시간에는 자습을 하게 된다.

5.9. 기타 사항


학교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엘리베이터도 없고 [28][29] 구관 건물은 낡은 편이다. 이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이, 건물 2층 이상은 아예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학생이 입학하게 된다면 큰 불편함을 겪게 된다. 도서실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정심관이 개관된 이후로는 다시 커졌다. 도서실이 과학관에 위치해있던 당시에는 책장 사이를 걷다보면 좁은 것이 체감이 되었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도서관이 그렇게 작았던 것은 아니었다. 현재 집현전이라 불리는 자습실의 가장 넓은 공간이 원래 도서관이 있던 자리이다. 서가도 꽤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토론수업에 유용하도록 모둠형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어서 보기드물게 쾌적한 도서관을 자랑했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그러나 2007년에 새로 바뀐 교감선생 철학이 '''자습실을 늘려서 애들을 빡세게 굴려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자습 공간 확충을 위해 서가가 작은 방 안에 다 짱박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방은 원래 교사들의 집무실 겸 정보검색실[30], 복사실로 쓰이던 곳이었다. 실제 2004~2005년경에 촬영한 천안고 홍보영상에 보면 그 시절 쾌적한 도서관을 알 수 있다. 진정 천안시내 각급학교 어디를 내 놓아도 꿀리지 않을 퀄리티의 도서관이었다. 다행히 정심관이 생긴 지금은 다시 꽤나 넓은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한 때는 모노가타리 시리즈, 액셀 월드 등의 라노벨이나 식객,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의 만화가 있었으나 도난사고로 많이 소실되었고, 2015년 말 이후부터는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남아 있던 책들마저 모두 폐기해서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운이 좋다면 26년이나 , 고전부 시리즈,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일간의 행복 등을 발견할수도 있다. 도서관 내에는 열람할 수 있는 오래된 도서자료가 무지하게 많다. 이유는 자료보관을 위한것도 있지만, 교사들이 버리지 말라고 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70~80년대의 도서자료(심지어 비디오도 있다!)는 물론이고 유신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국제순회방문 일지라던지, 1954년에 쓰여진 고가연구, 한국문자급어학사 같은 희귀서적들도 있다. 여러모로 역사가 있는(?) 도서관인 셈.[31] 졸업앨범도 64년 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운 좋으면 연예인이나 본교 졸업생 선생님들의 졸업 사진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기부받은 영어 원문 책들 중에는 상당히 오래된 것들이 많은데(대부분이 40~50년대 서적들이다.), 최고로 오래된 것은 1937년(...)에 Osbourne McConathy가 쓴 "The Music Hour First Book - (Dedicated to Lowell Mason)"이라는 책이다.
66회 신입생 고입설명회때, 아무도 천안고의 상징인 청마반에 대한 질문이 없자, 마지막 질문에서 청마반에 대해 질문하는 학부모께서 당시 진행을 맡으셨던 진로교사에게, "청마반은 무엇이고, 선발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라는 질문을 하여, 다행히 청마반에 대한 소개를 할 수 있었다.
보통 한 학기 후반에 연체자 목록을 달아놓는데, 어째 가장 많이 연체된 사람들이 교사들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실시 이후, 65회 학생들은 2학년때 법행정, 경제경영, 융합공학(물리학+화학), 생명공학(화학+생명과학), 천체물리(물리학+지구과학)로 나뉘며, 자연계(융합공학, 생명공학, 천체물리) 안에서도 기하 선택과 기하 미선택으로 나뉜다. 매년 다르지만 소수인원으로 구성되는 과목은 등급 쟁탈전이 치열하다.(특히 의대희망 학생들이 존재하는 생명공학 계열은 더욱......)
천안고등학교가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로 지정된 66회 이후부터는, 2학년과 3학년은 모두 본인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여 듣는 구조가 되었다.

6.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6.1. 버스


천안고등학교 정류장
광혜당약국, 계광중학교 정류장
  • 그외 대다수의 시내운행 버스 및 910번 버스.
학교 앞 대로가 천안종합버스터미널 및 번화가인 두정동에서 주거밀집지역인 쌍용동, 신방동, 불당동을 비롯한 서부로 가는 주된 도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버스가 이쪽을 지난다.

6.2. 철도



7. 출신 인물


  • 구본영: [32]
  • 길환영: [33]
  • 김복환: 초대 SR 사장
  • 김영석: [34]
  • 김지철: 16, 17대 충청남도 교육감
  • VERIVERY 민찬
  • 박찬주: [35]
  • 신소걸
  • 오대환: 배우
  • 우예종: 전 부산항만공사 사장
  • 영재(1980):
  • 이관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장, 전 통일부 차관
  • 이광구: [36]
  • 이준원(1962)
  • 임성재 : 프로골퍼, 1998년생
  • 임형재
  • 전용학: 전 국회의원
  • 전유광
  •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주) 사장
  • 테리(김기태): 가수, 댄스그룹 조이디의 멤버
  • 한종희: 삼성전자(주) CE(소비자가전)부문 사장


8. 기타


  • 청마홀 뒷편 기숙사 앞 계단에서 뽑기가 잘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9. 관련 문서


쓰리고

[1] 요즘 밀고 있는(?) 문구이다. 특히 진로진학 관련 인쇄물 등에서는 빠지지 않는다.[2] 해당 문구의 캘리그래피 작가도 천안고 출신이다.[3] (구)천안농업고등학교[4] 2016년에는 개교기념일이 7월 1일로 미뤄져서 기말고사 후 놀 수 있었다.[5] 도로 기준으로 절반을 갈라 왼쪽은 천고, 오른쪽은 계광중이 사용한다. [6] <청마>라는 이름의 교지는 90년대부터 만들다가 49~50회 때인 2003년 가을을 마지막으로 휴간되었다. 그 뒤로 교지편집부는 존속했지만 정작 교지를 만들지 않다가 2011년 57회가 주축이 되어 <천고in> 이라는 이름으로 교지가 만들어지게 된다.[7] 계광중학교 교가는 이 '''천고'''를 '''계광'''으로 바꾸면 된다. 나머지는 똑같다.[8] 그렇다고 전국급의 인지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충남의 교육도시는 공주시였고, 이 때만 하더라도 대전이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이자 가장 큰 도시였기 때문에 충남의 명문고는 대전에 몰려있었으며, 그리고 천안의 경우 서울까지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예로부터 학생 유출이 심했다.[9] 천안여고가 3년 빨리 개교했다.[10] 중앙고 1회는 1971년에 졸업하였다. 북일고는 1979년.[11] 동생과 두 형까지 4형제가 모두 동문이다.[12] 원래 새천년민주당 후보로서 당선되었으나, 2002년 한나라당으로 이적하였다. 이것이 그에게 철새 정치인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렸고 이후에 출마하는 선거마다 고배를 마시게 된다.[13] 자민련소속의 도병수 후보[14] 졸업생 동문회에서 재학생들을 관리해주는 노력이 상당하다.[15] 성적 상위권[16] 서울대학교,포항공과대학교,한국과학기술원[17] 고교 평준화 이후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믿고 거르는 웅비 반이라고 불린다. 학생들에 의하면 2016학년도가 끝나고 2017학년도가 될때 여러 사건이 있었다는 말도 있고, 2017년 3월을 기점으로 2학년으로 올라간 많은 수의 웅비반 학생들이 웅비반을 나갔다는 원인도 있다고 한다.[18] 학생들이 배식받는곳과 교직원들이 식사하는 그 위치[19] 내신 성적 조작이 아니라, 특정 대회 참가 기회 및 수상실적을 서울대 지원할 학생에게 몰아주는 식으로[20] 이건 레알이다. 1학년중 청마반, 즉 공부잘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생활기록부를 따기위해 특별 방과후수업이 만들어졌는데. 일반 학생들을 수강신청을 못하게 해놓았다.[21] 좋은 말로 '''명분을 주고 실리를 취해라'''라는 식으로 상위권 학생을 설득하기도 한다. 근데 내 앞날도 보장하기 힘든 대입에서 학교에 '''명분'''을 제공해 줄 정도로 여유로운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혹시나 있다고 해도 정당한 방법이 아닌 것이다.[22] 치대는 2016년부터 부활[23] 서울대는 1학기 수시가 없었다. 그래서 1학기 수시로 타 학교에 합격하면 그냥 그 학교에 가야했다.[24] 당시 연세대나 고려대는 제2외국어 필수가 아니었다[25] 고 3 재학생들의 성적이 타 학교에 비해 낮아서 입시 폭망이 예상되는 경우[26] 사실 지방 사립고등학교의 서울대 진학자의 경우 거의 전 학년 교사들이 이름을 다 안다. 그리고 졸업생이 오지랖을 부려서 졸업 후 학교를 몇 번 더 찾아가면 바로 레전설급 애교심을 가진 모범 졸업생이 되기 때문에, 서울대 진학자와 모교의 커넥션은 꾸준히 유지가 되는 편. 당장 교장이 직접 서울대 동문회 정기총회를 뛰어다니는 판이다.[27] 소녀시대는 예전에 했던 통신사 주관 이벤트덕분에 왔었다. 53~55회가 학교를 다니던 2008년 4월의 일이다.[28] 오티스 엘리베이터GM1. 국승정에는 승객용으로 표기되어 있고 5038-611이다.[29] 대부분의 학교에는 현대엘리베이터동양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것을 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30] 사실상 PC방이었다.[31] 역시 같은재단인 계광중학교도 마찬가지로 고서가 많은데 8~90년대 책은 물론이고 70년대도 찾을 수 있으며 빛바랜 서적도 찾을 수 있다.[32]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화 되었으며 시장직을 상실했다[33] PD 출신, 보도 통제 및 수신료 인상으로 여론에 뭇매를 맞고 2014년 해임됐다. 이후 새누리당에서 정치에 도전하려다가 실패. 여러모로 논란이 많은 인물[34] 2018년 1월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며 영장이 발부되었다.[35]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석방되었다.[36] 우리은행 신입행원 공채 채용비리 사건으로 사퇴했다.